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渤海文字에 대하여 : 李强선생과 商論함

        崔羲秀 효성여자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1990 韓國傳統文化硏究 Vol.6 No.-

        70년대 후반기부터 학술계에서는 발해사를 비롯하여 발해의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 가운데의 일부 저서나 논문들에서는 발해문자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는데 그 대부분이 발해에 자기의 민족문자가 없었다는 견해를 제기하였다.

      • 奈良時代 遣唐使의 歷史的 役割에 대하여

        이정희 효성여자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1999 韓國傳統文化硏究 Vol.13 No.-

        古代の日本における遺唐使の派遺は舒明天皇二年(630)に始まって、寬平6年(894)にわっている。この期間の中に、律令國家の興隆が著しかった奈良時代を中心に、日本の政治や文化に及ぼした唐の影響は實に大きかった。それだけに日本古代史における遺唐使の果たした役割は大きいのである。卽ち遺唐使は日本の古代律令國家の支配體制の整備强化に必要な中國の先進文勃を導入する一方、周邊國との外交關係をも設定して、律令國家の存立に必要な要件を作る外交使節としての役割と義務を擔って來た。 このょうな日本を代表する使節としての遺唐使の性格についてはいろいろ論議されて來たが、嚴密な意味での遺唐使は朝貢使でわり、この朝貢貿易を通じて導入された唐の文物は日本の文化發達には勿論、天皇の權威や君臣秩序の强化にも大いに役に立ったのである。また國內の律令の編纂と天皇を頂點とした小中華世界を指向しっつ、新羅をはじめ周邊の諸國を蕃國視する理想を外交上に現責化しようと努力した。唐に日本という國號天皇という王號制定を知らせてこれを認めさせようとにしたのも奈良時代の遺唐使の主要な政治的役割であった。この遺唐使によって導入された文化は人的·物的な面だけではなく、無形の精神なをものまでも含んでいる。 このような任務を遂行する遺唐使の選任には、學問的な能力だけではなく容貌、言動に至るまでその要件が嚴しく、名門の特定家系出身の者が多く、世襲化の傾向までもあった。 遺唐使の派遺の時の航路は、初期は新羅の沿岸づたいの航路によって唐との交通をおこなったが、8c以後東アジアの國際關係の中で新羅と敵對關係に入るとこの航路は利用できなくなり、博多から直接揚子江の入口への港口への海路を開かさるを得なくなった。しかしながら治岸づたいの航路に比べてこの航路には危險性が高く、航海中に難破することが多かった。この航路の利用には潮流ヤ季節風に對する知識が必要であったが、當時の日本はそのような知識がなかった。 以上のことから推測して、遺唐使の派遺時の航路變更などの諸問題は造船技術の發達や航海術の進步によるものではなく、當時の東アジアの國際環境の情勢變化によるもと判斷したいのである。

      • The Heritage of Korean Ceramics

        Kim, Wondong 효성여자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1996 韓國傳統文化硏究 Vol.11 No.-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조 말에 이르는 한국도자의 시대구분을 생산된 도자기의 표면색깔에 따라 네 시기로 크게 구분하여 이를 갈색시대, 회색시대, 녹색시대, 백색시대로 명명해 본다. 이러한 시도는 종래의 왕조에 의한 시대구분이나 세기(世紀)등의 연대에 의한 편년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한국사의 정치사적 이해와 별 무관하게 한국도자를 해외에 소개할 때 한국사에 관한 기초적 이해조차 미비한 상황을 감안하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시대구분이라 하겠다. 물론 이들 주조색(主調色) 이외의 색채를 가진 도자가 전혀 생산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위에서 예를 든 갈색, 회색, 녹색, 백색은 그 시대에 생산된 대부분 도자기의 색채를 대표하고 있다는 점에는 틀림이 없다. 첫째, 갈색시대는 도자생산에 있어서는 B.C. 5000-400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석기시대 초기부터 신석기시대 말까지, 그리고 학자에 따른 견해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B.C. 1000년 경에 시작해서 서력기원의 시작을 전후로 한 시기까지를(청동기 시대) 이른다. 여기에는 이른바 빗살무늬토기, 덧띠무늬토기, 민무늬토기 , 홍도까지 포함한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의 토기(earthenware)가 이 시기의 주요한 생산품이라 하겠다. 둘째, 회색시대는 원삼국시대, 삼국시대, 통일시대까지 이르는 시기로 이른바 김해토기, 와질토기,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토기를 포함하는 것으로 엄밀하게 구분한다면 토기보다는 고온에서 환원염으로 소성한 석기(石器, stoneware)질이 대부분이다. 셋째, 녹색시대는 10세기 신라말에서 고려말인 14세기에 이르는 시가로 초기에는 기형 및 유약등 제작기법에 있어서 중국 청자의 영향을 받던 시기로 부터 고려적으로 완숙하는 시기 및 말기의 퇴락하는 시기까지 이른다. 이 시기에 제작된 도자로는 순청자, 상감청자 진사 및 철화로 시문된 청자까지를 포함한다. 이 녹색시대에도 주조색과는 다른 고려백자가 소량이기는 하지만 제작되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백색시대는 조선왕조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15세기 초엽에서 조선왕조의 말년에까지 이른다. 이 시대에 제작된 도자는 고려도자가 퇴락하는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시작하여 소박하고 신선한 문양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표출된 분청사기로 불리는 분장회청사기를 먼저 들 수 있다. 다음으로 분원에서 제작된 양질의 백자를 비롯하여 여러 지방가마에서도 제작된 질적으로 다양한 순백자, 그리고 중국 명대 청화백자의 자극으로 인하여 시작되어 토착화의 과정을 거친 청화백자를 들 수 있다. 요컨대 각 시대에 생산된 도자의 색깔에 의한 시대구분은 제작기법, 소성방법, 문화적 선진세력인 중국도자의 경향, 그 시대 사람들의 종교의식, 미의식 등의 변천울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왕조 및 연대에 의한 시대구분 방법과는 다른 것으로 지극한 간명하고도 직설적이며 편리한 시대구분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