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애니 베어드(Annie L. A. Baird, 1864-1916)의 선교사역과 음악

          김사랑 한국음악학학회 2019 음악학 Vol.27 No.2

          애니 베어드는 한국 선교 초기인 1891-1916년까지 사역했던 미북장로교 파송 선교사로, 교육 사업과 다양한 출판 활동으로 한국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를 남긴 선교사로 평가받고 있다. 음악분야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뛰어난 언어적 음악적 재능을 바탕으로 다수의 찬송가를 번역하고 편찬하는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일반 노래집인 챵가집 을 편집・출판하여 음악 교재로 활용할수 있도록 했다. 챵가집 은 한국인의 가창 특징을 고려한 편집과 다양한 장르의선곡으로 당시의 근대음악교육의 단면을 보여주는 의미를 가진다. 애니 베어드는 한국에 들어온지 6년만인 1897년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초급교재인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50가지 도움들 (Fifty Helps for the Beginner in the Use of the Korean Language)를 발간하여 선교사들의 한글 교육에힘을 썼다. 또한 빼어난 한글 실력으로 샛별전 , 쟝자로인전 , 고영규전 등의한글 소설을 썼고, 한국의 새벽 (Daybreak in Korea)과 같은 영어 소설 등다수의 저작을 남겼다. 그녀의 저술들은 남아선호사상, 여성의 차별대우 문제 등한국여성들의 실상을 드러내는 내용을 다루면서 현세적 복을 강조하는 무속 신앙, 조상 숭배와 풍수지리 사상, 조혼 풍습 등 다양한 당시의 한국문화들을 매우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글 교재를 번역 및 편찬하여 다수의 한국학생들이 모국어로 근대식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그녀의 활약을 토대로볼 때, 언어의 능숙함과 한국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정서를담은 섬세한 번역과 한국인들의 연행방식을 고려한 선곡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수적인 신앙인으로서 당시의 선교부의 선교 방침과 세계 선교 흐름에 따라‘계몽’을 위한 서구적인 교육 시스템을 한국에 뿌리내리고 교회의 리더들을 양성하기 위해 서구식 음악교육을 지향했던 애니 베어드지만, 한국적인 정서를 고려했던 번역과 한국인의 음악언어를 이해한 선곡은, 한국인들과 근거리에서 다양하게소통하려 했던 태도와 한국의 가치와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려 했던 문화적 감수성을 보여준다. Annie Baird, who worked as an NPCUSA (Northern Presbyterian Church of USA) missionaries in Korea from 1891 to 1916, contributed greatly to the music field in Korea of the modern era. She translated numerous hymns with excellent linguistic and musical talents and was an important committee member for hymn publication in Korea. In addition, she edited and published an occasional songbook Changgajip which was compiled various genre included Asian traditional tunes, nursery rhymes, and school songs. Changgajip was a widely used textbook and a meaningful collection as a selection and arrangement that took into consideration of Korean’s singing characteristics. This presentation focuses on how Annie Baird's perspectives and educational ideas were reflected in her music activities. Annie Baird began her ministry at a time when the mission movement was in full swing in the United States, and when the women’s mission of various denominations, including the Women's Missionary Association, reached its peak. Growing up under a conservative church, Annie Baird was faithful to the mainstream mission perspectives and strategy of the time. 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educational missions, she worked with Husband Baird, who founded Soongsil School in Pyeongyang, to translate and edit textbooks, to serve as teachers. She believed that education would be a crucial tool to “enlighten” Korean youth on gospel foundations and to build their talent up. In that sense, her educational activities generally were not far away from the beneficiary's position. However, if we look at the results of the activities in more detail, we can see that Annie Baird not only contributed greatly to the dissemination of ‘Hangul’ and the publication of Hangul textbooks but also considered the emotions and customs of Koreans in hymn translation and in songbook compilation. Thus, I suggest that Annie Baird was a beneficiary and a subject of education, at the same time was at a place where she was compelled to make new musical negotiations.

        • KCI등재

          한국에서의 음악학 담론과 제도

          김성혜(Sunghye Kim) 한국서양음악학회 2009 서양음악학 Vol.12 No.3

          My study is a critical examination of the historiography of Korean musical scholarship and a more comprehensive view of Korean music and history. The main goal of this study is to elaborate a new form of rhetoric and strategy for both historical and ethnographic studies of Korean music. By exploring the various attempts of earlier scholars to establish indigenous musical scholarship, my study details how musical scholarship can symbolically represent the core of historical tension and amnesia which has resulted in conflict between indigenous vs. foreign, tradition vs. modernity, and past vs. present in modern Korean society. Following the spirit of Michel Foucault’s dialogics and micropolitics, my study explores the following theme: why and how academic discourses have played an ambiguous role in encouraging, and at the same time discouraging monolithic and canonized language use and scholarly convention. Furthermore, my observation on discourse reveals the interaction produced between power and resistance in the larger process of institutionalization and the concomitant processes of de-institutionalization.

        • KCI등재

          2000년 이후 한국오페라의 현황과 변모 양상에 대한 연구: 초연 작품을 중심으로

          전정임 ( Chungim Chun ) 한국음악학학회 2020 음악학 Vol.28 No.2

          2000년 이후 한국오페라가 새롭게 창작ㆍ공연된 횟수는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최초의 한국오페라인 현제명의 《춘향전》이 초연된 1950년부터 1999년까지 50년간 총 44편의 한국오페라가 초연되었다면, 2000년 이후에는 2000년대(2000년~2009년) 55편, 2010년대(2010년~2019년) 91편 등 총 146편의 한국오페라가 초연된다. 본 논문은 2000년도 이후 한국오페라계가 급격하게 활성화된 원인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한국오페라의 발전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향후 한국오페라의 발전 내지는 글로벌화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2000년대 이전과 이후의 한국오페라 초연 양상을 비교해 보면, 첫째, 작곡가 측면에서 2000년 이전에는 오페라 작곡가가 기성 작곡가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숫자 면에서도 미미했었던 것이, 2000년 이후에는 젊은 세대부터 기성세대까지 폭넓은 양상을 보여주며 수적으로도 방대한 층을 형성하고 있다. 둘째, 공연 장소 측면에서 2000년 이전에는 한국오페라 초연 공연이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2000년 이후에는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더욱 많은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셋째, 주최 오페라단별로는 2000년 이전에는 공공기관인 국립오페라단이 한국오페라 공연을 주도하였다면, 2000년 이후에는 사립오페라단이 공연을 주도하고 있다. 넷째, 대본의 출처별로는 2000년 이전에는 타 장르 중에서 연극희곡을 오페라 대본화하는 경우가 많았고 소재 면에서도 고전물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였다면, 2000년 이후에는 문학을 대본화하는 경우가 많고, 소재 면에서도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으며, 현실적 이슈나 일상을 다룬 작품들의 비중도 높아지는 등 소재가 확대되고 있다. 한편, 2000년 이후 한국오페라의 활성화의 원인으로는 오페라 축제들의 한국오페라 공연 편입, 오페라 창작 지원 사업의 패러다임 변화, 지자체 및 지방오페라단의 한국오페라에 대한 관심 확대, 오페라 전문 인력의 육성 등을 들 수 있다. Since 2000, the number of creation and performances of Korea operas has increased dramatically. From 1950 - when The first korea opera Hyun Je Myung’s Chunhyangjeon was premiered - to 1999, for 50 years, a total of 44 korean operas were premiered, whereas after 2000, 55 pieces (from 2000~2009), in the 2010s (2010~2019) 91 pieces, a total of 146 korea operas were premiered. This thesis aims to find out the cause of the dramatic invigoration in the korea opera field after 2000. Based on this research, the thesis focuses in understanding what the power to maintain the development of korea opera is and assist in the development of korean opera and globalization When comparing the aspect of premieres in korea operas before and after 2000s, first, in terms of composers, before 2000, opera composers were made up of older generation composers and the number of composers was insignificant. On the other hand, after 2000, there is a wide range of composers from the younger generation to older generation and shows a vast increase in the number of composers. Second, in terms of performance venues, before 2000, premiere of korea operas were mainly centered in Seoul but after 2000, many performances were held in regions other than Seoul. Third, in terms of opera companies hosting the premiere, before 2000, the Korea National Opera - a public institution - led the performances of korea operas but after 2000, private opera companies are leading the performances. Fourth, in terms of sources of script, before 2000, among other genres, script writers converted theoretical plays into opera scripts and traditional works made up a huge percentage of the subject matter. After 2000, in many cases, writers converted literature into opera scripts. Furthermore, the subject matter has been expanding. For instance, Many scripts focus on individual figures, and the number of pieces that deal with real issues and everyday life have increased. Meanwhile, the causes of invigoration in korea operas after 2000 include the inclusion of opera festivals in korea opera performances, changes in the paradigm of performing arts creation support projects, expansion of interest in korea operas from local governments and local opera companies, fostering of professionals in opera etc.

        • KCI등재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한국적 변용과 공연전략

          최승연(Choi, Seung Youn) 한국대중음악학회 2021 대중음악 Vol.- No.27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EMK뮤지컬컴퍼니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유럽 뮤지컬 라이선스 협약 조건을 활용해 라이선스 뮤지컬 공연 시 국내 정서에 맞도록 한국적 해석을 입히는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 논문은 EMK의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를 주목하고, 유럽의 원작을 미국인 작업자들이 각색하고 여러 변화 단계를 거친 후 한국에서성공한 뮤지컬로 정착되고 IP까지 귀속되는 과정을 논구한다. 논의의 결과 <몬테크리스토>의 가족주의는 한국적 해석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확인된다. 유럽의원작을 미국의 창작진이 각색하며 낭만적 사랑에 대한 테마를 확대하고 멜로드라마적 해석을 첨가했으나 실제로 멜로드라마적 표현방법을 활용하여 테마를 시각적으로 명확히 가시화한 것은 한국 프로덕션이었다. 관객의 감정을 조작하고 플롯을 통해 뚜렷한 도덕적 태도를 보이는 것에 모든 요소가 종속되어 있으며, 사회적 원인보다 개인의 사적인 윤리의 영역으로 갈등을 축소시키는 멜로드라마의귀결은 한국 버전의 가족주의를 통해 훨씬 뚜렷하게 부각된다. 한국 프로덕션의무대는 공간을 상상하게 하고 배우를 부각시키는 스위스 초연의 연극적 연출방식을 지우고, 무대의 영상 테크놀로지와 대형 세트를 활용하여 공간의 그림이 객석을 압도하는 환영주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정리됨으로써 낭만적 사랑과 가족주의를 결합한 멜로드라마 <몬테크리스토>를 완성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젠더 배치 면에서 한국 대극장 뮤지컬의 보수화를 견인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MK Musical Company has consistently used the terms of the European musical’s relatively free licensing agreement to apply “Korean interpretation” to suit domestic sentiment. This paper focuses on EMK’s musical Monte Cristo, and discusses the process of American workers adapting the original novel of Europe and settling into a successful musical in Korea after transforming it into a certain performance context. As a result, Monte Cristo’s Familism is confirmed as a concrete interpretation of the Korean transformation. The original Switzerland musical version was adapted by American creators, expanding the theme of romantic love and adding melodramatic interpretations, but it was actually Korean production that visualized it using melodramatic expression methods. All elements of melodrama depend on manipulating the audience’s emotions and showing a clear moral attitude through plots, and the result of melodrama, which reduces conflict to the realm of personal ethics rather than social causes, is much more clearly highlighted through the Korean version of Familism. The stage of Korean production eliminated the theatrical staging of Switzerland premiere that imagines beyond the actual space and highlights actors/actresses, and used the stage’s visual technology and large set to maximize the illusionism that overwhelms the audience, completing the melodrama Monte Cristo. This changes can be seen as driving forces of the conservatism of Korean mega musicals, especially in terms of gender placement.

        • 나화랑의 민요 심취와 애호, 한국 가요사적 의의 짚어보기

          민경탁(Min Gyung-Tag) 한국대중음악학회 2016 대중음악 Vol.- No.18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8·15 해방 이전에 데뷔해 1960년대까지 전성기를 보낸 작곡가들을 흔히 제1 세대 가요 작가라고 일컫는다. 이들 중에서 각별히 신민요와 민요풍의 가요를 양산하며, 물밀 듯 밀려온 대중음악의 서구화 풍조 속에서 한국 가요의 정체성을 고수하려는 노력을 각별히 보인 이들을 선별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김서정, 전기현, 김교성, 문호월, 이면상, 김준영, 형석기, 김해송, 박시춘, 송민영, 나화랑, 한복남, 황문평, 고봉산 등이다. 이 중에서 작곡가 나화랑의 작품 세계에 여타 작곡가에서보다 유별난 민요 심취 및 애호 성향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의 민요를 편곡해 다량 음반으로 제작, 보급하였으며, 신민요·민요풍의 대중가요를 양산(量産)한 것으로 조사되기 때문이다. 나화랑은 전통민요 편곡 민요 음반을 70종, 대중가요계 신민요·민요풍의 가요 작곡 음반을 132종, 도합 202종의 민요계 음악을 남긴 것으로 나타난다. 그는 우리 전통 가락 위에 그 시대의 감각을 동시대 여타 대중가요 작곡가보다 다채롭게 담아내었다. 한국 음악의 정체성을 고수하면서 시대에 맞게 변화시키려 각별히 노력했는데, 그 성과가 한국 가요사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 신민요와 민요풍의 가요는 1940년대 중반~1960년대에 도입되는 서구의 리듬에 밀려 많이 위축되었다. 하지만 양적으로 열세에 있을 뿐, 전문 국악인들의 민요보다 대중을 향한 자장은 더 넓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가요가 세계적으로 위상을 높여가는 오늘날 그 풍조가 서구적으로 지나치게 경도 되어 가고 있음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In general, the term of the first generation composers is the ones who had made their debut before Aug.15 liberation and spent their best days until 1960s. Among them, especially, there are some composers who had tried to make many new folk songs and showed their awareness and effort to stick to identities of Korean music. These composers include Kim Seo-Jung, Jeon Gee-Hyun, Kim Kyo-Sung, Moon Ho-Weol, Lee Myun-Sang, Kim Joon-Young, Hyung Seok-Gee, Kim Hae-Song, Park Si-Choon, Song Min-Young, Na Hwa-Rang, Han Bok-Nam, Hwang Moon-Pyung, Go Bong-San etc. Most of all, we can find that in the world of art work of Na Hwa-rang, there are his unusual immersion and attachment to Korean classical music. He had arranged a number of Korean songs, produced and distributed them into many albums, and mass-produced Korean pop songs and new folk songs, leaving accomplishments of his establishing Korean music identities. In the meantime, new folk songs of the communities of Korean pop songs and folk songs-based pop music which had been composed by the pop song writers were turned over by the pop music of the Western, but all of them were not perished. There being small in size, the vision of the traditional musician for the mass were broader than ever. Still, pop song of new folk songs are being produced and enjoyed.

        • KCI등재
        • KCI등재

          한국 인디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형성에 관한 연구

          권현우(Kwon, Hyun Woo) 한국대중음악학회 2021 대중음악 Vol.- No.27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논문은 1990년대 생성된 인디 씬을 중심으로 한국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형성에 영향을 준 요인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의개념과 함께 서구의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형성과정을 살펴봤으며, 한국 형성기 인디 일렉트로닉 음악의 뮤지션, 레이블 관계자와의 반구조화 면접법을 실시해 인디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 형성요인을 도출하였다. 먼저 주류 음악계에 도입된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을 살펴보기 위해 1990년대 초 한국 대중음악에서 하우스, 테크노를 비롯한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 요소의도입과, 대중음악과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한국 댄스 클럽의 형성과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의 전파, PC통신 동호회 ‘21세기 그루브’ 활동으로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문화적 전파 및 네트워크형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클럽문화와 PC통신 동호회는 한국 인디 일렉트로닉댄스 음악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요인으로 2000년대 이후 대중가요와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결합과 한국적 토착화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펌프기록과 DMS TRAX와 같은 테크노 전문 레이블의 활동과 음반 등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이들이 한국의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며 테크노 문화를 일반 대중들에게 확산시킨 것을 확인하였다.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장르이지만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에 대한 연구는한국의 현재 진행형인 대중음악과 앞으로 다가올 대중음악의 새로운 연구 방향을제시 할 것이다. This paper aims to reveal the factors that influenced the formation of electronic dance music in Korea, focusing on the indie scenes created in the 1990s. To examine electronic dance music introduced into the mainstream music industry, the introduction of electronic dance music elements including house and techno in Korean popular music in the early 1990s, and attempts to combine popular music and electronic dance music were examined. Next, I investigated the formation of Korean dance clubs, the spread of electronic dance music, and the cultural dissemination and network formation of electronic dance music throuth the ‘21 Centrury Groove’, a PC communication club. Club culture and PC communication clubs played a decisice role in the formation of Korean indie electronic dance music, and since the 2000s, they have played a large role in the combination of popular songs and electronic dance music and indigenization of Korea. In addition, I examined the activities and albums of techno-specialized labels such as ‘Pumpgirok’ and ‘DMS TRAX’, and confirmed that they were in charge of producing and distributing electronic dance music in Korea and spreading the techno culture to the general public. Although it is a genre with a relatively short history, the study of electronic dance music will suggest a new research derection for popular music, which is currently in progress in Korea, and popular music to come.

        • KCI등재

          한 일 발라드 음악에 나타나는 음악적 차이에 관한 고찰: 일본문화개방 이후 2000년대 전반기를 중심으로

          이주원(Lee, Ju Won) 한국대중음악학회 2021 대중음악 Vol.- No.28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한국의 대중음악에서 발라드 음악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각종 대중음악 순위에서의 점유도가 매우 높은 장르이다. 이러한 양상은 1980년대 이문세, 이영훈으로 대표되어지는 ‘팝발라드’의 유행을 시작으로 더욱 두드러져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재까지 한국의 발라드 음악은 영미권 팝음악을 비롯한 여러 다양한 음악장르의 영향을 받아 왔고, 같은 발라드 장르 안에서도 세부적인 장르구분이 있겠지만 한국발라드만이 지니는 전형성 또한 존재하며 세부 음악장르로 인식되기보다는 음악스타일로 구분되는 경향이 있다. 발라드로 통칭되는 음악장르는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만 유독 한국과 문화적 교류가 빈번했던 일본의 발라드 음악과 한국의 발라드 음악은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일본의 발라드 역시 영미권 팝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197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음악적 특징이 정립되었으며 한국의 발라드와 마찬가지로 고유의 전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중음악에서의 점유율 측면에서는 한국 발라드 음악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국 발라드 음악과는 연관성이 깊은데 대표적으로 1990년대에 한국에서 일본음악에 대한 많은 표절시비들이 있었으며, 1998년 한․일 문화개방 이후 2000년대 전반기를 중심으로 일본음악에 대한 대규모의 번안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일본음악에 대한 번안이 가장 활발히 있었던 시기인 2000년대 전반기의 한국과 일본의 발라드 음악을 음악적으로 비교해봄으로써 양국의 음악이 어떠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정리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양국의 문화교류 양상 및 그 영향의 단면을 가늠해 보고자 하였다. 연구는 1998년 일본문화개방 이후 일본음반에 대한 개방이 이루어진 2000년부터로 영향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시기의 한국과 일본의 발라드를 선율, 화성분석을 통해 그 양상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연구대상은 각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음원순위 사이트라고 볼 수 있는 멜론과 오리콘에서 상위 50위안의 곡들 중 발라드 장르에 해당하는 곡들로 선정하였다. 기간은 2000년부터 5년간의 기간으로 이 기간은 한국에서 일본 음악의 번안이 활발히 일어난 시기와도 겹친다. 해당 연구기간이 ‘일본문화 개방기’라는 측면에서 선정되었기 때문에 리메이크와 번안곡들은 연구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연구를 진행한 결과 양국의 발라드음악이 선율, 화성 전개양상에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단조의 사용빈도에서 양국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비율상 한국의 발라드 음악은 25.7%가 단조 음악이었으며, 일본은 10.8%로 한국에 비해 절반 이하로 낮다. 두 번째, 선율전개에 있어 선율이 못갖춘마디에 시작하는 경우에도 양상차이가 있었다. 한국의 경우 35.6%의 비중으로 못갖춘마디로 선율을 시작하고 있었으며, 일본의 경우 64.8%의 비중으로 못갖춘마디로 선율을 전개하는 비중이 매우 높았다. 특히 본 연구자는 양국 발라드 음악에서 드러나는 선율 전개방식의 차이에 주목했다. 선율은 가사와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 주요 선율에 오는 단어는 그만큼 청자에게 높은 전달력을 갖는다. 반대로 부가 선율에 위치한 단어의 전달력은 떨어진다. 이러한 원리라면 가사에 있어 중요한 기능을 하는 단어는 주요 선율, 혹은 상대적으로 전달력이 높은 화성리듬상의 강박에 위치할 확률이 높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문법상 어순이 같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한․일 발라드 음악의 선율 전개양상 역시 비슷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는 문법체계가 다른 영미권 음악의 영향일 수도 있고 다양한 요소의 영향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이 시기 양국 발라드 음악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양국의 발라드 음악인들이 지니고 있던 지향점의 차이가 반영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아직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양국 음악이 제대로 비교 연구되지 않아 연구에 한계는 있었지만 차후 이전 시기 음악의 비교가 이루어진다면 한국과 일본의 발라드 음악 양상이 더욱 선명하게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Ballad songs currently hold a large margin in modern Korean music. It is an especially highly-raking genre in the various modern music charts. Such trends started in the 1980s with the popularization of “pop ballads,” as represented by artists such as Lee Moon-se and Lee Young-hoon. Until now, Korean ballad songs have been influenced by a variety of music genres including popular music from Western nations and—although specific subcategories exist even within the same ballad genres, Korean ballad songs certainly have their own unique characteristics. Ballads as a musical genre exist in all parts of the world, but the ballads produced in Korea and Japan share many similarities due to the frequent cultural exchanges made between the two countries. Japanese ballads, in turn, were greatly influenced by Western popular music, leading to their gradual establishment of a unique identity—just as with Korean ballads—from the latter half of the 1970s. From the perspective of capturing the popular music market, however, Japanese ballads are still unable to surpass those produced in Korea. With the close ties between Japanese and Korean ballads, there were many allegations of plagiarism in the 1990s regarding Korean songs taking ideas from Japanese songs. Following Korea’s acceptance of Japanese cultural arts in 1998 and focused on the early 2000s, there were many adaptations of Japanese music being produced in Korea. Therefore, this study aims to compare the musical aspects of Korean and Japanese ballad songs in the early 2000s, which was the era in which Japanese music was most frequently adapted in Korea. By understanding the differences between the music in both countries, an attempt has been made to estimate both nations’ leaps in cultural exchange, as well as their aftereffects. The method for the study involved analyzing the melodies and harmonies of Korean and Japanese ballads starting from the 2000s (following Korea’s acceptance of Japanese cultural arts in 1998) and a comparison made between the samples. The subjects for the study include the top 50 songs in both nations’ largest popularity-based ranking sites—Melon and Oricon—and filtered them by songs which categorize under the label of ballads. A period of five years is covered from the year 2000, which overlaps with the most active number of adaptations made of Japanese songs in Korea. Because the period of study was selected in the context of “Korea’s acceptance of Japanese cultural arts,” remakes and adaptations were excluded from the scope of the study. The results of the study indicated that there were differences between both nations’ ballad songs in the progression of melodies and harmonies. The summarized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there were major contrasts in the frequency of use when it came to the use of minor keys. 25.7% of Korean songs were set in the minor key, compared to 10.8% of Japanese songs—lower than half in ratio. Second, in the case of the progression of melody, there were differences in melodies starting on incomplete bars. 35.6% of Korean songs started melodies on incomplete bars, whereas 64.8% of Japanese songs did likewise, demonstrating a markedly high ratio. This study especially focused on the differences of melodies in both nations’ ballad songs and their contrasting progressions. Melodies have a strong relationship with lyrics and therefore the words attached to key melodies have further effectiveness in delivery for the listener. On the other hand, words located in minor melodies demonstrate less effectiveness in delivery. Based on this theory, there is a high possibility that the key words of a song will be located on the core melodies or on the stronger points of the harmonies and rhythm, which contain relatively higher effectiveness in delivery. With an understanding that Korean and Japanese have the same structure in grammar, Korean and Japanese ballad songs should likewise have

        • KCI등재

          미래를 향한 기억: 윤이상 음악에서 한국 문화의 위치와 의미

          최애경 ( Ae-kyung Choi ) 한국음악학학회 2017 음악학 Vol.25 No.1

          1958년부터 1994년까지 36년에 걸쳐 작곡된 윤이상의 음악은 대부분 1956년 한국을 떠난 후 유학시절을 거쳐 1970년대 망명 예술가로서 정착하게 된 유럽의 지리적·역사적 공간과 유럽 현대음악 문화의 흐름 속에서 작곡되었다. 한국과 독일, 동아시아와 서유럽은 윤이상의 삶과 예술에서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그러나 강제로 추방당한 고향 통영과 한국의 사회 문화 및 전통에 대한 기억은 개인 및 예술가로서의 윤이상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핵심이라 하겠다. 또한 그가 직간접으로 한국의 안과 밖에서 경험한 한국 현대사에 드러난 억압과 고통, 저항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그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기억의 미학을 통해 예술적으로 승화되었다. 이런 점에서 윤이상 음악에서 한국 사회 및 전통음악의 위치와 의미의 핵심은 `미래를 향한기억`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윤이상의 음악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기억의 사회적·문화적 관계와 의미를 기억행위의 구체적 정보를 일차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의 제목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17년 오늘 우리에게 윤이상 음악의 현재적 의미가 무엇인지 되짚어보고 있다. Most of Yun`s music written for 36 years from 1958 to 1994―he left Korea in 1956, studied and settled in Europe in the 1970`s as an emigre artist―was taking form in the 1970`s cultural context of European modern music and geological, historical space of Europe. Korea, Germany, East Asia, and Western Europe have multiple meanings in Yun`s life and art. Especially memory of the social culture and tradition of Tongyoung, where he was born and raised, and Korea, where he was persecuted by the government, is the heart that has kept his identity as an artist alive. Furthermore, the oppression and suffering and protest he experienced directly or indirectly in the history of in and out of Korea profoundly affected his music, which emphasizes the social roles of music, and he elevated these three concepts into art through the aesthetic of memory. In this respect, the meaning and core of Korean society and traditional music in Yun`s works can be condensed into “Memory for the Future.” This study traverses the titles of Yun`s works, whose titles primarily include social, cultural relationships and meanings of the memory in Korean culture; thereby, this study focuses on the current meaning of Yun`s music.

        • KCI등재

          전문 음악가와 가정의 경계에서: 한국 초기 여성 음악가의 출현과 대중잡지에 재현된 그들의 표상

          서승임 ( Seung Im Seo ) 한국음악학학회 2021 음악학 Vol.29 No.2

          이 논문은 한국 근현대 음악사 서술에서 여성 주체를 가시화하기 위한 시도의 하나로, 여성 음악가의 출현 배경인 고등 음악 교육의 성격과 공론장인 인쇄 매체에 여성 음악가가 재현된 표상을 분석한다. 한국에서는 1910년대 말부터 서양음악을 전공한 여성 음악가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미국 감리교 선교단체에서 설립한 이화학당(이후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의 음악 교육과 일제강점기 일본 고등음악학교로의 유학은 초기 여성 음악가 출현에 중요한 배경이다. 성격이 다른 두 제국이 교차하는 식민지 한국에서 서양음악을 전공한 여성들은 1920년대초부터 신문, 잡지와 같은 인쇄 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성 음악가들은 이전 한국 사회에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여성상으로서 당시 주요 대중매체의 조명을 받았다. 1장에서는 한국 근현대 음악사 서술에서 젠더사적 관점의 필요성을 강조한 후, 2장에서는 한국의 초기 여성 음악가 활동을 연구한 이복선의 “여성음악 사십년기”(1958)를 참조하여 여성 음악가 출현에 주요 배경이 되는 고등 음악 교육의 특징을 살펴본다. '이화 출신'과 ‘일본 유학 출신'이라는 두 트랙을 대표하는 김메리와 김원복을 예로 들어 음악회, 학교, 교회 및 그 외 음악 단체 등의 공적 영역에서 여성 음악가로서 종사했던 다양한 직업적 경력들을 탐색하여 초기 여성음악가들의 활동 양상을 재조명한다. 3장에서는 여성 음악가들을 주요 소재로 한 잡지 기사로 초점을 이동한다. 그들이 대중매체에 재현된 특징을 크게 신여성(new woman), 주관성(subjectivity), 가정성(domesticity)으로 구분하여 초기 여성 음악가들을 둘러싼 음악 담론이 가진 젠더적 경향성을 읽어낸다. 이 연구를 통해 필자는 한국의 초기 서양음악 문화 구축 과정에서 서양음악을 전공한 여성전문 직업군의 탄생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재사유하고, 한국 근현대 음악사 서술에서 여성 음악가 혹은 여성음악 관련 담론의 비가시성이 초기 여성 음악가를 둘러싼 담론의 젠더성과 무관하지 않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Western music field in the early 20th-century colonial Korea witnessed the emergence of professional women musicians. Beginning with the music education for schoolgirls at Christian missionary school, Ewha and studying music abroad in Japan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birth of musical women as a career. In the case of Korea, women musicians first appeared in the public sphere in the early 1920s, a period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After that, approximately fifty women worked in the western music field as performers, music teachers, and a member of the musical groups before the Liberation in 1945. Although women musicians actively contributed to constructing the early western music culture in colonial Korean society, their emergence and participation have not been considered seriously under the view of androcentric nationalism which emphasizes the collective, social, and national way of music. To attempt to bring up the perspective of gendered history in colonial Korean music culture, this paper explores the published magazine articles written by several professional women musicians. Concurrently with the emergence of expert musical women, their writings and interviews began to be actively published in the form of public magazine articles since the middle of the 1920s. The magazine articles provide in detail the vivid life condition that colonial Korean women musicians experienced. This paper first examines the educational background for the birth of a new type of musical woman and illustrates the different kinds of musical careers they engaged in the public sphere: a concert, a school, a church, and associations. Later, it focuses on their magazine articles which take on the character of personal anecdotes to understand the life and experience of women musicians. By examining the articles, I attempt to analyze the gendered aspects of women musicians’ writings in common; new woman, subjectivity, and domesticity. Through this paper, I argue to reconsider the importance of gendered characteristics in not only constructing the early Korean musical culture but also emerging a new specific model of musical woman, which affects Korean society until now.

        연관 검색어 추천

        활용도 높은 자료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