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러시아 국가 이미지에 관한 연구: 20~30대 한국 여성을 중심으로

        방교영 ( Gyo Young Bang )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2011 슬라브연구 Vol.27 No.4

        본 논문은 20~30대 한국 여성이 바라보는 러시아 국가, 국민의 이미지에 관한 연구이다. 이를 위하여 민족문화의 범주를 질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그에 따라 응답자가 국가의 이미지를 배타적으로 구별, 응답할 수 있는 범주를 찾았다. 브랜드 이론에 근거한 5범주(역사, 언어, 사회, 가족, 종교)와 호프슈테더의 문화적 토대인 5범주(우정, 순종성, 남성성, 강인성, 집단성)를 기준으로 했다. 연구결과, 한국 여성에게 러시아의 이미지는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다. 이들은 러시아의 역사가 전쟁과 공산주의로 점철되고 있었다고 판단하며, 러시아가 채택했던 공산주의 체제의 이미지를 강압과 냉혹함의 이미지와 함께 투영하고 있다. 러시아는 소련의 아류로서 냉소적이고, 차가우며, 공산주의의 지배력이 아직도 잔재한 사회로 한국 여성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접촉성 혹은 소통 가능성의 측면을 측정하는 러시아 국민에 대한 이미지 또한 부정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족에 대한 이미지로서는 다양한 단어가 추출되었으며, 러시아 국민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반반(48% vs 52%) 정도 우정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반면, 나머지 이미지로서 러시아의 과거 냉전 이미지로 러시아 국민들마저 판단하고 있다. 한국 20~30대 여성들에게 러시아는 ``경직``, ``강압``, ``폐쇄``, ``차가움``, ``냉혹``, ``무서움``의 이미지이다. 이와 같은 자유 민주사회 VS 폐쇄 공산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이미지를 20~30대 한국 여성은 극복하지 못한다.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이미지는 20~30대 한국 여성에게 순종적이지 못한 남성, 집단의 이미지로 러시아를 바라보게 한다. 이와 같이 피상적 소통의 차원에서 러시아는 20~30대 한국 여성에게 부정적이지만, 이들에게 러시아는 확증하기는 어려운 불확실한 이미지로서 존재한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국가의 이미지는 고정적이지 않고 변화한다. 국가의 이미지는 국가 스스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 의해 규정되는 ``남의 눈에 비친 이미지``다. 본 연구는 러시아를 모델로 삼아 한 국가가 특정 시장에 나아가 자신을 각인하는 데서 ``이미지로서의 정체성``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는가를 탐구했다. This study is the first report among the three-phased research on Russia`s national image, the image on the nation, its people and the government held in the minds of Korean women in their twenties and thirties. To study the image on Russia, the theoretical grounds to qualitatively define ethnic culture were proposed for the purpose of identifying the categories of responses that enable respondents to differentiate a nation`s exclusive image: 5 categories based on brand theories (history, language, society, family and religion); another 5 categories based on Hofstede (friendship, submissiveness, masculinity, toughness and collectivism); 3 basic categories for the image of a government (foreign policy, government operation and communication with the public). In general, Russia has negative national image. It is believed to have the history riddled with wars and socialism, and socialism projects oppressive and heartless cold image. The history of oppressiveness and coldness is overlapped with the outdated image of the traditional Russian society to make Russia be deeply engraved in the minds of Korean women as a society that is cynical and cold, and has the legacy of socialism. In the eyes of Korean women, the people of Russia are not submissive, but have a masculine and even collective image. The high rate of aggressiveness, adventurousness and toughness did not create the image of a strong and reliable man, but the one that is similar to men`s ruggedness. At this time when the Russian government celebrates its 20th anniversary of its establishment, it is still viewed by Korean women as a non-democratic, unequal and hierarchic government. According to the principle that a government represents its people in a modern society, the Russian government represents 50% percent of the image of its people held by Korean women, but suspicion remains on the representativeness. A nation`s image is not defined by its people and government, but by the others. In other words, it is the image reflected in the eyes of the others. By studying Russia as a model, this paper explores how a country develops ``identity as its image`` to make itself known in a specific market. Russia`s national image, and the image of its people and the government have almost failed to communicate and promote the history, tradition, ideology, friendship, family and social values, democracy and equality that Russians have desired to guard and protect. They need to be better communicated for due recognition outside the nation.

      • KCI등재

        카바르디노-발카르공화국의 카바르다인의 민족-언어상황 연구

        정경택 ( Chung Kyung Taek )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러시아연구소 2020 슬라브연구 Vol.36 No.4

        북캅카스의 카바르디노-발카르공화국은 아드그민족의 한 그룹인 카바르다인들과 투르크계의 발카르인들이 토착주도민족인 공화국이다. 비록 두 민족이 토착주도민족이기는 하지만 카바르다인의수가 절반을 넘어, 아드그민족이 토착주도민족인 아드게야공화국, 카라차이-체르케스공화국 중에서 가장 아드그민족의 정체성과 언어를 잘 보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연방의 모든 민족공화국처럼 토착주도민족의 언어가 공화국의 국어이지만 연방의 국어인 러시아어의 지위는 견고하고 사용영역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소련 당시 인위적인 경계 설정으로 인한 아드그민족의 분할과 이에 따른 서로 다른 민족 명칭의 탄생, 그리고 민족과 언어가 다른 민족과 한 공화국에서의 공존, 여전한 러시아어의 압도적 지배는 북캅카스 지역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 연구에서는 연구자의 앞선 연구에서 본 아드게야와는 다른 카바르다-발카리야의 민족-언어상황이 소련 당시 인위적인 민족 명칭 부여 및 두 다른 민족이 토착주도민족이 된 공화국 형성과정을 통해서 나타난 공화국만의 고유한 특징임을 밝혔다. 카바르다인은 대부분 지방에 거주하면서 카바르다어 단일언어사용자이지만, 젊은이들은 교육과 매스컴을 통해 러시아어를 구사하고, 그리고 도시에서는 다른 소수민족들과의 의사소통에서 링구아 프랑카로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사용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앞으로 러시아연방 정부의 러시아어 지위 확립과 사용확장 정책의 강화로 아드게야처럼 빠르지는 않겠지만 카바르다-발카리야에서도 민족-언어의 러시아화가 계속 진행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카바르다-발카리야의 민족-언어연구는 또 다른 토착주도민족인 발카르인들과 이들의 언어 연구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들도 인접 카라차이-체르케시야의 카라차이인과 같은 민족으로서 카바르다인, 아드게이인, 체르케스인과 거의 같은 민족-언어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The Kabardino-Balkar Republic of North Caucasus is a republic of indigenous ethnic groups, Kabardians and Balkars. Although the two ethnic groups are indigenous, the number of Kavardians exceeds half, and the Adyghe people show the best preservation of the identity and language of the Adyghe people among the indigenous leading peoples, the Republic of Adygea and the Karachai-Cherkessia. However, like all title nation republics of the Russian Federation, the language of indigenous peoples is the State language of the Republic, but the status of Russian, the State language of the Federation, is solid and the use area is continuously expanding. The division of the Adyghe people due to the artificial boundary setting at the time of the Soviet Union, the birth of different national names, the coexistence of ethnic and language in different nations and a republic, and the overwhelming dominance of Russian is a general phenomenon in the North Caucasus region. In this study, I have found that the national-language situation of Kabarda-Balkaria, which is different from Adygea, is unique to the Republic, which was shown through the process of artificial naming and republic formation during the Soviet Union. Most of the Kabardians live in the provinces and are single-language users of Kabardian, but young people are bilingual users who speak Russian as lingua franca in communication with other minorities through education and media and in cities. Also, it was found that the Russianization of ethnic-language will not be as fast as Adgeya due to the establishment of Russian status and the strengthening of the expansion policy of use by the Russian federal government in the future, but also in Kabarda-Balkaria. Finally, the study of ethnic-language in Kabarda-Balkaria must be done by the study of Balkars, another indigenous ethnic group, because they are in the same ethnic-language situation as the Karachai people of neighboring Karachai-Cherkessia, such as Kabardian, Adygea and Cherkess.

      • KCI등재

        Between East Asia and Russia: Il`ya Levitov`s Conception of “Yellow Russia” (Zheltaya Rossiya) at the Turn of the Twentieth Century

        ( Jeong Sook Hahn )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2015 슬라브연구 Vol.31 No.4

        일리야 레비토프(1850~1918)는 러시아의 민속지학자이자 동아시아 전문가였다. 그는 ‘황인종’, ‘황러시아’, ‘황색 보스포루스’, ‘완충 식민지로서의 황러시아’ 등의 책자들을 집필하였다. ‘황색’은 동아시아인들과 관련된 말이다. 그는 1896~97년, 동청 철도 건설 이후 수많은 중국 노동자들이 동시베리아(우수리 강 유역, 아무르 강 유역, 바이칼 호수 이동지역)로 이동해 오는 것을 목격했다. 그가 보기에 이들은 낮은 임금만으로도 만족하는 탁월한 노동력이었으므로 러시아 노동자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동아시아인들의 큰 이주물결은 ‘황화’(黃禍)를 뜻하는 것으로 보였다. 동아시아인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되 이들이 유럽 러시아인들에게 악영향을 미치지는않게끔 하기 위해 레비토프는 시베리아를 자연경계에 따라 분할할 것을 제안하였다. 우수리 강에서 바이칼 호수에 이르는 동시베리아는 ‘황러시아’로서 동아시아인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자유경제지역이 되어야 하며 그 대신 동아시아인들은 바이칼 호수 서쪽으로는 이주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었다. 러일전쟁 후 레비토프는 황인종이 러시아를 공격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완충지대로서의 황러시아’를 건설해야 한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의 제안은 동시베리아라는 변경지대를 무대로 삼아 인종주의에 바탕을 두고 러시아 제국주의와 동아시아 주민이주의 물결 사이에서 타협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제국주의적, 인종주의적 시도였다. Il`ya Levitov(1850~1918) was a Russian ethnographer and East Asia specialist. He wrote pamphlets with the titles Yellow Race, Yellow Russia, Yellow Bosporus and Yellow Russia as a Buffer Colony. ‘Yellow’ refers to the skin color of East Asian peoples. Levitov watched in Eastern Siberia (the regions of the Amur Basin and Ussuri Basin) countless Chinese workers immigrating since 1896-97, after the construction of the East Chinese Railroad as the extension of Trans-Siberian Railroad. For Levitov they were excellent labor force demanding low wages, and thus a threat to Russian workers. The great tide of East Asians seemed to be "yellow peril". Wanting to use the cheap labor force of East Asians but to prevent their influence on European Russians, he proposed to divide Siberia along natural borderlines. The Eastern Siberia from Ussuri Region to the Lake Baikal would become "Yellow Russia", a Free Economic Zone using the labor force of East Asians. Instead their immigration into the regions west of Baikal would be blocked up. After the Russo-Japanese War, Levitov developed the idea of ‘Yellow Russia as a buffer zone’ including Manchuria to restraint the attack of the yellow people against Russia. He thought that Yellow Russia would serve Russian imperialist, racist and industrialist dreams at the same time.

      • KCI등재

        러시아 방송산업 현황과 전망: 방송 디지털화와 TV 시청 방식 변화를 중심으로

        송정수,김세일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러시아연구소 2019 슬라브연구 Vol.35 No.1

        The modernization of the Russian broadcasting network and the infrastructure in preparation for the digital broadcast transmission was initiated by the action of the Federal Special Program called “The development of broadcasting in the Russian Federation: 2009~2018”. According to the data of the ‘Digital TV Research’, in 2017 the Global Pay TV market’s revenues amounted to $ 254 billion. In the same year, revenues in the Russia Pay TV market amounted to $ 1,285.6 million, which increased 8.8% from the previous year. Currently, there are 42.7 million subscribers to Pay TV in Russia, and the service penetration rate exceeds 75%. In view of the population and audience situation of Russia, which can be switched to viewers at any time, the Russian broadcasting market is evaluated as more likely to grow than decline. In Russia, on the other hand, traditional TV screen viewers are getting more and more older, and the younger generation is showing a tendency to prefer a “second screen”. This is a driver for the restructuring of the Russian broadcasting market and the construction of new infrastructures. In this article, we will outline the process and current status of the Russian broadcasting market since 2010, when the modernization of Russian broadcasting started in real earnest. At the same time, we will roughly evaluate the characteristics of the Russian broadcasting market and future directions of its development and will suggest some points to consider when Korean broadcasting companies enter the Russian market. 디지털 방송 송출에 따른 러시아 방송 네트워크 및 인프라 구조의 현대화는 ‘러시아연방 내 방송 발전: 2009~2018’이라는 연방 특별프로그램의 조치로 본격화되었다. ‘Digital TV Research’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전 세계 유료 TV 시장 수익은 2540억 달러에 달하며, 당해연도 러시아 유료 TV 시장 수익은 약 12억 5860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전년 대비 8.8%가 증가한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러시아 내 유료 TV 구독자 수는 4270만 명이며, 서비스 보급률은 75%를 넘어선 상태이다. 시청자로 상시 전환이 가능한 러시아의 인구수와 시청률 상황을 감안해 볼 때, 러시아 방송시장은 쇠퇴보다는 성장 가능성이 더 많은 쪽으로 평가된다. 한편 러시아 내에서 전통적인 TV 스크린 시청자는 점점 더 고령층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젊은 세대는 ‘세컨드 스크린’을 선호하는 TV 시청방식의 변화가 감지된다. 이는 러시아 방송시장 내 구조 개편의 필요성과 새로운 인프라 구축에 대한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본 고에서는 러시아 방송의 현대화 작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러시아 방송시장의 형성과정 및 현주소를 개괄해보고자 한다. 이와 동시에 러시아 방송시장의 특성과 향후 발전 방향을 대략적으로 가늠해봄으로써, 추후 우리나라 방송기업이 러시아 시장에 진출할 때 고려할 사항들을 제언해보고자 한다.

      • KCI등재

        19세기 후반 타슈켄트의 근대화 과정 -러시아식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일고찰-

        박태성 ( Tae Sung Park )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2012 슬라브연구 Vol.28 No.4

        본 논문의 목적은 19세기 후반 타슈켄트의 근대화 과정을 통해 러시아식 오리엔탈리즘이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를 살펴보는 데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당시 러시아 사회에 만연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도처에 나타난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우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특이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러시아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이론적 고찰을 살펴본 뒤, 1865~1890년대 초 타슈켄트에서 이루어진 러시아의 근대화 작업을 구체적으로 규명한다. 그 후 1892년 발생한 콜레라 폭동에 의해 도시의 경계가 허물 어지고 동서 문화의 혼재 속에 러시아 제국이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고찰해볼 것이다.러시아 정복자들은 전통적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에서 타슈켄트를 유럽적으로 만들기 위해 식민지 공동체를 관리했다고 하겠다. 하지만 불안정한 통치 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은 강압적·약탈적이 아닌 유화적·점진적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적 간극을 극복하지 못한 러시아 지배층은 교육과 문화적 수단을 동원하여 러시아화 정책을 추구했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 전통적인 오리엔탈리스트였던 러시아 지배층이 콜레라 폭동사건을 맞아 겪은 정신적 충격은 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변모시켰다. 무시해왔던 무슬림의 전통과 기술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러시아인의 식민정책은 이율배반적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사회적 안정이 회복되자 ``타자``에 대한 인위적 이미지가 되살아나면서 정복자로서의 권위를 복구하려는 모습이 나타났다. 타슈켄트에서 보여준 러시아의 오리엔탈리즘은 대체로 ``문화적``이고 ``소극적``이었다. 지식과 인간성, 보편성과 협력을 통해 제국을 건설하려 했던 오리엔탈리스트는 점진적인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궁극적인 성공은 유럽과 아시아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동화를 이루어야 했으나, 러시아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타슈켄트를 양분하여 다스렸던 그들의 시스템은 여전히 동방민족에 대한 멸시와 공포가 혼재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러시아의 문화적-소극적 정책은 타슈켄트의 근대화에 크게 효율적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clarifying the effectiveness of Russian Orientalism through the modernization of Tashkent in the second half of the 19th century. The Orientalism of E. W. Said -Orientalism as a Western style of dominating, restructuring, and having authority over the Orient- was prevalent in Russian society at that time, showing that the evidence is everywhere. But it must be noted that should not fall into the trap of generalization of Orientalism in the case of Russia for specificity. We first look the theories of Russian Orientalism, and then the civilizing work of the Russians in Tashkent from 1865 to the early 1890s. Finally, will be investigated what the boundaries of the city was destroyed by cholera riots that occurred in 1892, and how the Russian Empire reacted in the confusion of the East-West culture. Russian conquerors managed to Tashkent colonial community to make European society from the perspective of traditional Orientalism. But the methods for stabilizing unstable governing system were forced to take not coercive-predatory route but appeasement-gradual policy. Russian ruling class did not overcome the gap between religious conflict and pursued a policy of Russification through the educational and cultural means, but was not so effective. Traditional Orientalists transformed their Orientalism by the cholera riots. Because of admitting the reality of Muslims` ignored tradition and technology, the colonial policy of the Russians became contradictory. However, as soon as restoring of the social stability, artificial image for ``other`` was appeared and Russian settlers tried to recover authorities as the conqueror.Russian Orientalism shown in Tashkent was generally ``cultural`` and ``passive``. While Orientalists were trying to build an empire through knowledge and humanity, universality and cooperation, they had chosen a gradual method. Even so, the ultimate success is to knock down the walls of Europe and Asia and must assimilate truly, but Russia did not have the ability to do so. Their system ruled by bisecting Tashkent still showed Eastern nationalities with contempt and fear. Eventually, it seems that Russia`s cultural-passive policy would not be greatly effective to the modernization of Tashkent.

      • KCI등재

        알렉산드르 2세 개혁기 러시아 인쇄산업의 발전 양상에 대한 소고

        김용환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러시아연구소 2019 슬라브연구 Vol.35 No.4

        The development of Russia's printing industry in the late 19th century is closely linked to the so-called ‘grand reform’ implemented during the reign of Alexander II. It is well known that changes across Russian society were being driven by reform policies of Russian autocrats. In this paper, we will consider the pattern of changes in the Russian printing industry during the reform period based on this context, and we will examine the impact of the ‘proliferation of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in Russia at the time. The whole society's enlightenment movement and the government's reform policy had greatly increased the demand for printed materials. As a result, the number of printing facilities in Russia had increased significantly, followed by the introduction of new technologies and machinery in the printing sector. As capitalistic production relations progressed along with the abolition of serfdom, employment replaced traditional forms of labor in the printing industry. The mechanization process of Russia's printing industry was not fast, but it continued. Advances in printing technology and facilities had led to the centralization of the Russian printing industry. Small print shops that failed to ride on technological innovation were out of the race. Large printing companies that secured competitiveness, the so-called ‘typolithography’ had expanded their businesses into book publishing and book distribution. Small book distributors were kicked out of the publishing market, and independent survival of distribution capital was stopped. The centralization of Russia's printing industry during the reform period also played a major role in the Government policy. The government wanted to consolidate its pro-government foundation in society and enhance the competitiveness of Russia's printing industry by fostering large print companies. A series of ‘typolithography’, which grew through fierce competition in the market and with government support, had established a virtuous circle in Russia's printing industry. Their growth process was no different from the modern meaning of ‘industrial concentration’, and it can be said that it was a clear example of the ‘proliferation of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in Russia. 19세기 후반 러시아 인쇄산업의 발전은 알렉산드르 2세 통치기에 시행된 이른바 ‘대개혁’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전제정부의 개혁 정책으로 러시아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가 추동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개혁기 러시아 인쇄산업의 변화 양상을 고찰하고, 이를 통해 당대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확산’ 여부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 시기에는 전사회적 계몽운동과 정부의 개혁정책으로 인쇄물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러시아 내 인쇄시설의 수가 대폭 증가했고, 인쇄분야에서 신기술과 기계 도입이 뒤따랐다. 농노제 폐지로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인쇄산업 분야에서도 고용노동이 기존의 노동 형태를 대체해 나갔다. 러시아 인쇄산업의 기계화 과정은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부단히 진행됐다. 인쇄 기술과 설비의 진보는 러시아 인쇄산업의 집중화를 가져왔다. 기술 혁신에 편승하지 못한 소규모 인쇄소는 경쟁에서 도태됐다. 경쟁력을 확보한 대형 인쇄기업, 이른바 ‘티폴리토그라피야’는 도서 출판과 유통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출판시장에서 소규모 도서 유통업자들이 퇴출되고, 유통 자본의 독자적 생존은 중단됐다. 개혁기 러시아 인쇄산업의 집중화에는 정부의 역할도 크게 작용했다. 정부는 대형 인쇄기업 육성을 통해 사회 내 친정부적 토대를 공고히 하고, 러시아 인쇄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했다. 시장 내 치열한 경쟁과 정부 지원을 통해 성장한 일련의 ‘티폴리토그라피야’는 러시아 인쇄산업의 선순환구조를 구축했다. 이들의 성장 과정은 ‘산업 집중화’에 다름 아니며, 러시아 사회의 ‘자본주의적 변화’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 KCI등재

        야쿠티아 영화감독 드미트리 다브이도프 작품 연구 - 올롱호 서사시의 ‘치병과 기복’ 및 정교와 전통문화의 모티프를 중심으로 -

        홍상우 ( Hong Sangwoo ),문준일 ( Moon Joonil )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러시아연구소 2021 슬라브연구 Vol.37 No.1

        러시아 지역 영화가 현재 러시아 영화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에서 지역 영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최근까지 소개되는 러시아 영화들은 거의 전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영화인들이 제작한 작품들이었다. 러시아에서 지역 영화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그것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의 주류 영화계의 외면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영화 부흥을 위한 행사가 꾸준히 개최되었다. 추바쉬 공화국의 체복사르국제영화제와 타타르스탄 공화국의 카잔국제이슬람영화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두 영화제에서는 지역 영화 경쟁부문을 별도로 마련하여 러시아의 지역 영화만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러시아 국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러시아 지역 영화는 야쿠티아 영화이다. 이 지역의 영화인들은 자기 지역의 문화적 전통에 뿌리를 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지역적인 소재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글로벌한 내용과 형식으로 묘사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공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야쿠티아 영화감독인 드미트리 다브이도프 작품에 나타난 올롱호 서사시의 모티프와 전통문화에 대해 고찰하면서, 해당 작품의 영화 미학적인 측면에 대한 분석도 시도했다. Russian regional cinema is currently a hot topic in the Russian film industry. It may seem natural that regional films exist in Russia, a multi-ethnic country, but most of the Russian films introduced until recently were produced by filmmakers from Moscow and St. Petersburg. Although regional cinema has existed in Russia for a long time, it is true that it has been turned away from the mainstream film industry centered on Moscow and St. Petersburg. Nevertheless, events for local film revival were held consistently in some regions of Russia. The Cheboksar International Film Festival in the Chuvash Republic and the Kazan International Islamic Film Festival in the Republic of Tatarstan are representative examples. In these two film festivals, regional film competitions are organized separately, focusing on local films from Russia. But above all, the local film in Russia, which has been recognized for its operability in and outside Russia, is a Yakutia film. In the period when the film movement was actively progressed, there was inevitably the risk of arbitrary application to some extent when studying films in connection with myths, legends, or historical events of a specific region. In addition, there is a possibility that the concentration on the analysis of the most important aspect of cinematic aesthetics may weaken. In this paper, I will try to analyze the aesthetic aspect of the film while examining the influence of the epic and traditional culture of the Olonkho in the works of Yakutia film director Dmitry Davydov.

      • KCI등재

        19세기 1/4분기 해외무역으로 본 러시아의 경제 상황

        박지배 ( Ji Bae Park )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2015 슬라브연구 Vol.31 No.1

        본 연구의 목적은 경제적으로 격변의 시기였던 19세기 1/4분기 러시아 해외무역의 상황을 구체적인 통계 수치들을 통해 수출과 수입 모두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이는 당시 러시아의 사회ㆍ경제적 모습이 어떠했는지, 특히 산업부르주아와 지주귀족의 입장이 대외부분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나아가 러시아 국가의 대외무역정책은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전개되었는지 살펴보는 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19세기 1/4분기 러시아 수출은 원료 및 반제품이 압도적이었고, 제조품의 비중은 오히려 감소했다. 즉 러시아는 여전히 대마, 아마, 목재, 수지 등 산업원료를 서유럽에 공급했고, 새롭게 개발한 수출품 역시 대표적인 농산물인 곡물이었다. 곡물 수출의 중요성은 갈수록 증가하여 1846년에 영국의 곡물법이 폐지된 이후에 러시아는 수출무역의 상당부분을 곡물에 의존할 정도였다. 이러한 농산물 수출은 명백히 지주귀족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반면에 대륙봉쇄기에 러시아는 위기 극복의 일환으로 동방에 관심을 갖게 되어 대동방 직물 수출을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전체 해외무역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서 아직 해외무역 전체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했다. 새롭게 성장하는 러시아 기업가들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원했으나, 정부의 입장은 보호 관세율과 자유관세율을 오가면서 갈팡질팡했다. 19세기 1/4분기 러시아 수입 구조에서 역시 러시아 지주귀족의 취향이 분명히 드러난다. 러시아 수입품의 상당 부분은 주류, 설탕, 과일, 직물 등 사치품이었다. 대다수 귀족들은 농노노동을 통해 생산한 농산물을 비싼 가격에 팔아 서유럽의 유행을 쫓아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기를 원했다. 한편 러시아의 산업원료 수입은 아직은 미약하지만 러시아 직물업의 발전을 반영하고 있다. 염료 수입의 증가는 러시아가 자체적으로 날염하여 완제품 생산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특히 면화 수입의 증가는 러시아 면직물 산업의 발전을 보여 주고 있다. 러시아는 19세기 전반에 이미 동방의 면화와 양모 등을 수입한 후 이를 가공하여, 다시 판매하면서 19세기 후반 공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한편으로는 서유럽에 1차 산업에 기반을 둔 산업원료를 공급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유럽의 2차 산업이 생산한 제조품, 사치품들을 소비했다. 19세기 1/4분기 동안 러시아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기업가들은 보호무역을 통해 산업분야를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18세기에 형성된 러시아 지주귀족의 특권은 너무나 강했고, 일부 관료귀족들을 제외한 대다수 지주귀족은 러시아의 산업화를 위한 보호무역 정책에 배치되는 자유무역의 입장을 고수했다. 러시아 정부는 지주귀족들과 산업부르주아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고, 이러한 상황은 러시아의 공업 발전에 상당한 지장을 주었을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analyze the export and import of Russia and illuminate its economic aspects in 1802-1825. ``Statistical yearbook of Russian foreign trade`` is an main source for this study. Russian exports to Western Europe were concentrated in vital raw materials for European industries and the bulk of Russian imports from Western Europe consisted of European manufactured goods and colonial products. But there was a noticeable increase in imports of raw materials to Russia for its textiles industries after the Continental blockade 1807-1811. Russia became a part of the international division of labor in the first quarter of nineteenth century, serving as a supplier of agricultural products and an importer of industrial good. Russia was able to meet Western European demand for agricultural raw materials, forest products, and grain. Russia``s response to this demand was facilitated by the low level of agricultural wages and the resulting low prices of agricultural products. Meanwhile, Russian exports were stimulated by a rise in Russian demand for foreign imports, especially on the part of the social elite and the government. The westernized life-style of Russian aristocracy and gentry emphasized the consumption of foreign goods. In this situation Russian government had to carry out the protective trade policies, but Russian gentry stood up for free trade. In the first quarter of nineteenth century Russian government was at a loss between the free trade and the protective trade.

      • KCI등재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에너지 자원에 대한 영향력: 현상유지와 변화 요인

        이지은 ( Ji-eon Lee )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2018 슬라브연구 Vol.34 No.2

        1990년대 러시아는 소비에트 시기 구축된 유, 가스 수송관을 통해 중앙아시아 에너지 교역에서 독점적 위상을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카자흐스탄 원유와 투르크메니스탄 천연가스를 주요 소비국으로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는 러시아였기 때문에 중앙아시아 에너지 자원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실로 막대했다. 러시아-중앙아시아 간 두 차례에 걸친 경제통합 경험과 사회, 문화적 친화성을 바탕으로 추진된 러시아의 구성주의적 접근은 대 중앙아시아 에너지 레버리지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에너지 자원에 대한 러시아아의 영향력은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전반적으로 약화되는 추세다. 국가 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러시아가 더 이상 과거처럼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에너지 교류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서있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일방적으로 러시아에 유리한 에너지 교역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에너지 레버리지는 과거에 비해 약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러시아 이외의 국가들과 에너지 수출선을 다각화하려는 시도, 서방과 중국의 중앙아시아 에너지 시장 진출로 그동안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에너지 교역에서 누렸던 독점적 위상을 크게 뒤흔든 점 등이 자리한다. 물론 카자흐스탄의 경우 지리적인 위치, 경제적 연계성(특히 유,가스 수송관), 인구 구성(카자흐인, 러시아인 혼재)등의 이유로 러시아의 카자흐 에너지 자원에 대한 영향력은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러시아와 국경을 공유하지 않고 인구 구성도 비교적 단일(투르크멘인 85% 이상)한 중립국 투르크메니스탄은 에너지 수출선 다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러시아의 영향력을 크게 감소시켰다. 오늘날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에너지 시장에서의 자국의 변화된 위상과 영향력에 대해 인지하고 기존 전략을 수정하거나 대체 시장 모색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중앙아시아 국내 정치와 다양한 역내 행위자들의 중앙아시아 에너지 부문으로의 진출은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에너지 레버리지를 견제, 약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현재로서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In the 1990s, Russia was able to secure its monopolistic status in the Central Asian energy trade through the oil and gas pipelines constructed during the Soviet era. During those time, Russia was the only access of connecting Kazakhstan’s oil and Turkmenistan’s natural gas to major consumers, like the Europe, so the influence of Russia on energy resources was literally enormous. Russia's constructivist approach, based on the two times experiences of economic integration between Russia and Central Asia throughout the history and social and cultural affinity are also the major elements strengthening the Russia’s energy leverage over Central Asia. However, the influence of Russia on energy resources in Central Asia appeared to be gradually weakening from the mid-2000s. Attempts by Central Asian countries to diversify energy trade routes with countries other than Russia and Western/ Chinese entry into the Central Asian energy market have consequences to greatly shaking Russia's monopolistic position so far. Of course, in case of Kazakhstan, Russia's influence on Kazakh energy resources is still dominant because of its geographical location(sharing the border with Russia), economic linkages (especially oil and gas pipelines) and its population composition (Kazakhs and Russians mixed). However, Turkmenistan, a neutral country with a relatively single population composition (85% or more of Turkmen) without sharing borders with Russia, actively promoted the diversification of energy export countries and consequently reduced Russian influence quite greatly. Today, Russia appears to be aware of its changing status and diminished influence in the Central Asian energy sector and is trying to modify its strategy or focus on finding alternative targets. Therefore, it is more persuasive to prospect the Russia's energy leverage over Central Asia is likely to be checked and weakened due to the Central Asian domestic politics and various actors playing into the Central Asian energy sector.

      • KCI등재

        현대 러시아어 형태론의 변화 양상 - 활용 체계에서 분석성 -

        표상용 ( Sangyong Pyo )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러시아연구소 2021 슬라브연구 Vol.37 No.3

        동사에서 발생하는 분석적 구조의 한 단면으로 본 논문은 상 중립 동사, 돌발형 동사, 동사 미정형, 동사 미래시제, 동사의 [대동사 + 추상명사]구문으로의 전이 등을 다루고 있다. 러시아어 동사에서 분석적 구조에 대한 연구가 미흡했던 만큼 의미 있는 연구이다. ① 동사 자립미정형 사용은 점차 활발해지고 있으며 활용체계의 굴절어미가 발현하지 않는 점에서 분석적 경향의 취지에 부합한다. 명사 대용에서는 문법표지가 없지만 성, 수 범주는 내재하며 활용형의 대용에서는 양상적 의미, 뉘앙스 등이 발현하지 않는다. ② 미래시제는 분석적 구조와 종합적 구조가 경쟁관계이다. 남슬라브어에서 종합적 구조는 소멸, 연사 быть를 통한 분석적구조로만 발현하지만 러시아어에서는 종합적 구조의 발현 빈도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즉, 미래시제에서 분석적 경향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종합적 구조(완료상 미래)와 분석적 구조(불완료상 미래)가 지시하는 시간대 차이로 인해 분석적 구조로의 전이가 용이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③ 양상(двувидовые)동사는 신조 동사의 30% - 40%를 차지할 정도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현대 러시아어에서 상 기능이 약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학계는 이러한 견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신조 동사만 분석 대상으로 하면 러시아어 상 체계는 완료상, 불완료상의 2원 체제가 아니라 완료상, 불완료상, 양상의 3원 체계이다. 양상동사의 양적 증가는 분석적 경향에 합치한다: 문법범주의 약화, 소멸은 그 대체 수단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한 언어 전체적으로 보면 분석적 구조로 나가는 것이다. ④ 돌발형 동사는 시제, 성, 인칭 등이 문법 표지로 전혀 발현하지 않는 특이한 형태이다. 굴절어미가 발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석적 구조로의 전이에 해당되며 향후 범위를 넓힐 경우 다른 유럽어, 이를테면 영어나 독일어보다 이 형태에서만은 가장 분석적인 형태이다. ⑤ 하나의 동사를 [동사 + 명사]구로 표현하는 분석적 구조는 단일 동사와 동의관계이다. 구어와 대중매체에서 [동사+명사]의 분석적 구문이 더 선호되고 있으며 양적으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매스미디어 언어에서 자동사의 대동사로 идти(혹은 пройти), 타동사의 대동사로 вести(혹은 провести)의 분석적 구문이 아무런 제약 없이 발현하고 있으며 러시아어의 분석적 경향에 중요한 항목으로 간주된다. It was recognized that analytic properties in the conjugation system rarely occur compared to the inflection system, but the analytic structures expressed in verbs are in the verb future tense (буду писать), in the subjunctive [бы+ verb past tense], and in the imperative form [пусть (пускай, пускай, пущай)+ 3rd person singular/plural], [давай(давайте)+ infinitive(or 1st person plural)], passive verbs past/future tense (построен, был построен, будет построен). This paper deals with bi-aspectual verbs, interjection-verb words, verbs bare infinitive forms, verb future tenses, and transitions of verbs to the [verb+ abstract noun] construction as a cross section of the analytic structure that occurs in verbs. It is a meaningful study as there has been little research on the analytical structure of verbs in Russian, regardless of synchronic or diachronic morphology. ① In the past, the verbal infinitive expressed command, justification, condition, question, resentment, etc. but now it appears on the same level as the noun or instead of the verb conjugation rather than the use to express these modal meanings. ② In the future tense, the analytic structure and the synthetic structure are in competition. In Russian, the analytic structure is insignificant and the frequency of expression of the synthetic structure is overwhelmingly dominant. In other words, there is no analytical trend in the future tense, and it is judged that the transition to the analytical structure is not easy due to the time difference indicated by the synthetic structure (perfect future) and the analytical structure (imperfect future). ③ Bi-aspect (двувидовые) verbs are increasing rapidly, accounting for 30%-40% of new verbs. This can be seen as a weakening of the aspectual meaning in modern Russian, but the academic community does not accept this view. When only the neologism verbs were analyzed, the Russian Aspect category changed to a ternary system of perfect, imperfect, and bi-aspect rather than a binary system of perfect and imperfect. Also, if there is no lack of expression of grammatical meaning in dialogue even in the absence of a counterpart, the increase in the quantity of bi-aspectual verbs is consistent with the analytical trend: the weakening and disappearance of the grammatical category is the analytic tendency of the language as a whole, even if the alternative means does not appear at all. ④ Interjection-verb words are a unique form in which tense, gender, and person do not appear as grammatical markers at all. Previously they focused on the expressive meaning, but now they are being coined without any restrictions and without any expressive meaning. In the sense that inflectional endings are not expressed, it corresponds to a transition to an analytic structure, and when expanding the scope in the future, it is the most analytical form (without any inflectional endings) in this form than in other European languages. ⑤ The analytic construction of [verb+noun] is rather preferred in spoken language and mass media, and the quantity is rapidly increasing. In mass media languages, the analytic construction of идти (or пройти) as an intransitive verb and вести (or провести) as a transitive verb is expressed without any restrictions, and is considered as an important item in the analytical trend of Russian.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