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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가 지니는 의미

        박유희(PARK Yuhee) 한국영화학회 2018 영화연구 Vol.0 No.77

        본고는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가 지니는 의미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1980년대 한국영화의 역사, 나아가 한국영화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탐색이기도 하다. 1980년대는 해방과 한국전쟁, 4.19 혁명과 5.16 쿠데타에 이어 한국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이었다. 이는 한국영화사의 변곡 내지 변환에도 직결되는 격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는 현재 한국영화의 패러다임으로 이행하는 시발점으로서 주목할 만한 의의를 지닌다. 이에 이 글에서는 기존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의 역사를 서술하는 방법과 내용에 대해 살펴보는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 영화 사료에 대한 분석과 재구성을 통해 1980년대가 지니는 ‘전환’의 함의를 천착하고자 했다. 1980년대 한국영화는 다각적인 변화의 국면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한마디로 술어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조적으로 서술하기 어려운 난맥을 보여준다. 또한 1980년대 안에서의 변화 또한 다기하기에 ‘한국영화사를 1980년대라는 단위로 보는 것이 유효한가?’라는 의문을 유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1980 년대 한국영화사’를 총체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이 왜 어려운지를 생각해보는 가운데 1980년대 한국영화가 처했던 맥락과 그것을 바라보는 기존 영화사 서술의 시각들을 살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가 지니는 의미를 점검하면서 1980년대 한국영화의 역사, 나아가 한국영화사를 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부분들을 밝혔다. 이는 기본적으로 ‘1980년대 한국영화의 역사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궤를 함께 하며 궁극적으로 그 해법에 대한 고민을 심화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기존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를 ‘전환’ 내지 ‘이행’의 시기로 보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는 1980년대에 이르러 괄목할 만하게 변수가 많아지고 맥락이 다원화되는 것과 직결된다. 첫째,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서 미디어의 확산과 다원화 또한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 대중문화와 함께 성장한 전후(戰後) 베이비부머 세대가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의 주도층이 되어갔다. 둘째, 박정희 정권이 영화법을 제정한 이래 영화정책에 속박되어왔던 영화 장르가 통제로부터 벗어나며 시장경쟁 속에서 재편성되었다. 셋째, 자본주의의 세계화에 따른 자유화에 동승하게 되면서 이분법으로는 제어할 수도 해명할 수도 없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환의 맥락에 놓여있는 1980년대 한국영화사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시대 구분 면에서 볼 때 1980년대는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전반기는 1970년대와 후반기는 1990년대와 묶어 논의하는 것이 보다 적실하다. 둘째, 총체적인 역사 서술을 논하기에 앞서 다양한 갈래 별 주제 별 통사가 활발하게 연구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다른 매체와의 관계사를 통해 영화를 둘러싼 다기한 맥락과 변수들이 다각도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한국영화의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결국 한국영화사를 서술한다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이영일의 한국영화전사와 같은 통사는 서술되기도 어렵거니와 새로운 역사 서술이 되기도 힘들다. 한국영화전사가 이영일 일인의 성과이기에 앞서 이영일에 의해 집필된 당시 한국영화사 사료와 역량의 총화였듯이, 한국영화사는 다양한 연구 성과의 축적을 통해 구성되어 가는 것이다. 1980년대 영화사 또한 1980년대 영화에 대한 복수(複數)의 서술을 통해 한국영화사를 구성하는 복수(複數)의 일환으로 축적되며 새롭게 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the significance of the 1980’s in Korean Film History. It is also an exploratory study to reconstruct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through the 1980s. In the 1980s, South Korean film faced a situation of multifaceted changes, which makes it difficult to sum up in a predicate and describe it sequentially. In addition, its changes within the time frame of the 1980s were various, which raises a question, "Is it valid to look at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as a unit of the 1980s?" Thinking of the difficulties of describing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in the 1980s" in an overall manner, this study set out to examine the context in which South Korean movies were in the 1980s and their viewpoints in the existing descriptions about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This study aimed to test the meanings of the 1980s in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and identify what would be needed to reorganize the history of the 1980s and further throughout the time. This is an attempt to trace the same orbit of "how to describe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in the 1980s," ultimately reinforcing contemplations over its answers. There are no differing opinions about viewing the 1980s as a period of "transition" or "shift" in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and it is directly related to the considerable increase of variables and diversification of context during the period. First, the acceleration of economic growth enabled the fast expansion and pluralization of media, in the middle of which the post-war baby boom generation, who grew with the popular culture of South Korea, became the leading force in culture as well as in politics. Secondly, the film genre, which had been bound to movie policies since the Film Act during the Park Chung-hee regime, was emancipated from control and reorganized for market competition. Thirdly, there were fundamental changes that could not be controlled or explained with dichotomy in the South Korean film as it rode along with liberalization according to the globalization of capitalism. Then how can one reorganize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in the 1980s under this context of transition? First, it would be proper to divide the period into the former and latter half and discuss them with the 1970s and the 1990s, respectively. Secondly, there should be active research on syntax according to various parts and topics before discussing the overall descriptions of the history. Thirdly, there is a need to discuss various types of context and variables surrounding movies in many different angles through the history of its relationship with other media. Describing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in the 1980s is to describe the entir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At this point, such syntax as Lee Yeong-il’s Whol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is difficult to be described and has become a new description of history. It was a combination of historical materials and capabilities in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during those days compiled by him before an individual’s personal achievement. It demonstrates that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is organized by the accumulation of various research achievements. The film history of the 1980s can also be organized anew, being accumulated as part of multiple descriptions comprising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through multiple descriptions about the movies during th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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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사에서 서양의 문예(文藝)는 무엇이었는가?

        박유희(Park Yuhee) 한국영화학회 2020 영화연구 Vol.- No.86

        본고에서는 서양문학을 원저(原著)로 하여 제작된 한국영화들을 대상으로 한국영화사에서 ‘서양의 문예’가 어떻게 활용되고 작용하였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한국 문예영화사에서 서양의 문예가 수행했던 역할과 그 의미를 밝힌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치중했던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문예영화란 무엇이었는가?’라는 물음을 다시 던져봄으로써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풍미했던 문예영화의 함의를 새로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본고에서 서양문학에 주목한 이유는 외국문학 중에서 서양문학을 원작으로 내세웠을 때 영화가 ‘문예’의 자격을 쉽게 부여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문학이야말로 선진문화의 본령이자 한국영화가 성취해야 할 예술성의 정전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러므로 서양문학을 원저로 하는 영화들이 문예를 표방하고 원작을 홍보하는 방식에서 한국영화가 선망했던 예술과 이를 투영했던 문예영화의 함의가 드러날 수 있다. 영화로 제작된 서양문학은 대부분 식민지시기부터 번안·번역되어 잘 알려진 익숙한 이야기들이었다. 원작은 서유럽문학 위주였고 그 중에서도 프랑스 문학의 비중이 가장 컸다. 이 원작들이 영화화되었을 때 대부분은 멜로드라마였다. 그런데 추리나 모험의 요소가 강한 소설을 영화화했을 경우에는 장르물로 수용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에 비해 ‘신파조’로 폄하되었던 관습에서 벗어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멜로드라마는 문예영화로 인정되곤 했다. 이는 멜로드라마 장르와 문예영화의 친연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멜로드라마로 만들기 용이한 원작들이 선호되었음을 말해준다. 한국영화사에서 서양의 문예는 우리가 성취해야 할 문화예술의 전범이자 작품성을 보장하는 원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경제적 가치로 환산될 때 의미있는 것이었다. 1960년대 전반까지는 영화계에서도 예술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원작의 영화화가 시도되었다. 그러나 문예영화가 우수영화 보상의 대상이 되는 1960년대 후반부터는 경제적 보상이 가능할 때 예술성이 성립할 수 있다는 인식이 오히려 분명해진다. 이에 따라 <춘희>와 같이 대중성이 검증되고 저작권에서도 자유로운 원작들이 멜로드라마로 제작되는 경향이 강화된다. 1970년대에는 영화산업의 불황으로 정부 지원에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국산영화는 외화 쿼터를 따기 위한 명분으로 도구화된다. 그러면서 오히려 문예영화에서는 검열이 허용하는 제한된 범주 안에서 작가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1960년에 흥행에 실패했던 『전원교향곡』이나 일본소설 『설국』이 영화화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아이러니의 소산이었다. 이와 같이 문예영화의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며 이를 통해 드러나는 문예영화의 정체성은 다층적 역설로 이루어져 있다. 요컨대 한국영화사에서 문예영화는 상업/장르 영화와 반대 축에 놓을 수 없는 함의로 이루어져 있다. 오히려 흥행과 장르 관습의 기반 위에서 예술로 보일 수 있는 길을 모색했던 영화가 주류였다. 이 과정에서 서양문예는 이권과 명분에서 효율적인 저본이자 의장일 수 있었다. 그래서 서양문예를 통해 문예영화의 전개와 함의를 들여다보면 그 아이러니한 정체성이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the ways Western literature was utilized and worked in the history of Korean cinema by examining Korean films whose the original work was Western literature, thus shedding light on the roles and meanings of Western literature i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ry film. The study attempts to look into the implications of Korean literary films from a new angle by raising the question, What were literary films?, at a different level from the old inclination toward Korean literary films whose original work was Korean literature. The study focused on Western literature because it was easier for Korean films to get qualified as literary films when their original work was Western literature of world literature. This derived from the perception that Western literature was the true province of advanced culture and the Canon of artistry that Korean films should work to achieve. Implications of art sought after by Korean films and of literary films that projected it can be found in the ways that Korean films whose the original work was Western literature claimed to support literature and promoted their original work. Works of Western literature produced as films in Korea were mostly familiar stories well-known to the people as they had been adapted and translated since the colonial days. Their original work was mainly from western European literature, and a majority of it was from French literature. When this literature was made into films, most of it became melodramas, which has something to do with the fact that in the history of Korean cinema, melodrama was the mainstream genre until the 1980s. When novels with strong elements of inference or adventure were made into films, there was a strong tendency that they were accepted as genre movies. Unlike these movies, sophisticated high-class melodramas that escaped the old custom of being disparaged as tear-jerking’Sinpa’ would be recognized as literary films, which reveals an affinity between the melodrama genre and literary films and, at the same time, indicates that original work that could easily be made into melodrama was preferred. In the history of Korean cinema, Western literature provided examples of culture and art that people should achieve and original work that guaranteed artistic values of films. They were, however, meaningful only when they were thoroughly converted into economic value. Since the film community had an attitude of prioritizing art until the former half of the 1960s, they made attempts at turning new original work into art films. Entering the latter half of the 1960s, when literary films became the objects of Outstanding Film Reward Policy, however, t hey had a clear i dea that there w ould b e no a rt w ithout e conomic compensation. They made melodrama based on the original work that had their popular appeal tested and was free from copyright disputes such as La Dame aux camélias. In the 1970s, the trend became stronger and the film industry became dependent on government grants due to the recession, which made Korean films fall as a means of obtaining a quota for overseas films. It was during this period that literary films were in pursuit of auteurism within the limited scope allowed by the censorship. This period witnessed La Symphonie Pastorale that failed at the box office in the 1960s and Snow Country, the origianl Japanese novel, which were made into films, and it was an outcome of this irony. The history of literary films was the continuance of ironies, which revealed that the identity of literary films was comprised of multi-layered paradoxes. In short, In the history of Korean cinema, Literary films were not a concept contrary to ‘commercial/genre’ films. Korean literary films were films that sought after entertainment that could be packed as art rather than films oriented toward pure artistry instead of entertainment. In this process, Western literature could be efficient package material in terms of 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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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실험영화 장르형성 및 존재방식 연구

        최종한(Choi, Jong-Han) 한국영화학회 2018 영화연구 Vol.0 No.78

        본 연구는 한국에서 실험영화 장르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장르 존재방식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서 시작한다. 그 중 관련 선행연구들이 공통적으로 한국 실험영화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1960년대에 초점을 맞춘다. 유현목과 김구림의 실험영화로 대표되는 1960년대는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기라고 칭해질 만큼 질적, 양적으로 영화적 성장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 실험적 영화 작업을 수행하던 작가들은 누구였으며 또 그 실험의 유형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작업들은 서구 실험영화 장르이론으로 어떻게 호명될 수 있는지를 규명해보고자 한다. 곧, 당대 실험적 영상 작업들의 진행 모습을 살펴 궁극적으로 한국 실험영화 장르 태동의 모습을 형상화하려는 노력이다. 주 연구문제는 1960년대 한국 실험영화 지형도 그리기로 압축된다. 구체적으로 유현목, 김구림, 하길종 등 당시 실험성 짙은 영화를 발표했던 작가들의 실험 궤적을 따라가 본다. 이들이 당시 실험영화라는 장르개념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그렇다면 그 경로와 전파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어떤 실험을 했는지 등을 탐색한다. 동시에 위 작가들 외에 1960년대 잊혀진 다른 실험적 영화 작업은 없었는지 발굴해 본다. 결과적으로 1960년대 한국실험영화는 그 작업의 수가 많지 않고 국내와 해외 등 창작 거점이 다양했다. 아울러 어느 한 배경의 작가 층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닌 순수 예술인과 전문 영화인 그리고 영화전공 학생들과 영상업계 종사자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주도, 진행되었다. 이러한 창작 주체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점으로 부인할 수 없는 점은 본 논문에서 언급된 모든 작업들이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보아도 매우 현대적이고 실험적이며 전위적이라는 것이다. This study starts with the questions of how the genre of experimental films started in Korea and how it has existed. Among them, this research mainly focus on the 1960s, the beginning of Korean experimental films, which is commonly claimed by related prior studies. During the 1960s, represented by experimental films of Yoo Hyun-Mok and Kim Gu-Rim, there was explosive film growth, both in quality and quantity and that period is called by the renaissance of Korean cinema. Through this research, I want to identify which artists were active in the experimental genre and what types of experiments they were and how these works can be classified by the western experimental film genre theories. In other words, the work is trying to refine the Korean experimental films’ beginning by studying how the genre of experimental film works of that time had proceeded. The main thesis narrows down to how the topographical map of the Korea’s experimental films looked like in the 1960s. In particular, this research will follow the experimental traces of the artists who released the experimental films, like Yoo Hyun-Mok, Kim Gu-Rim, and Ha Gil-Jong. It will look into whether these artists were aware of the concept of experimental film genre at that time; if so, in what ways the genre was spreaded and what kinds of experiments they conducted. At the same time, it will discover whether there are any other forgotten experimental film artists in the 1960s than those mentioned above. In a nutshell, there were not many Korean experimental film works in 1960s and its creative bases (e.g., Korea and abroad) vary. In addition, it was not led by a group of people with a certain background, but by a variety of people, such as fine artists, professional filmmakers, film majors and film industry workers. Despite the heterogeneity, one thing in common that is undeniable is that all the work mentioned in this paper is very modern, experimental, and radical even from our perspectiv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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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이후, 한국 ‘분단영화’에 재현된 ‘역사적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

        김경욱(Kim KyoungWook) 한국영화학회 2015 영화연구 Vol.0 No.63

        1953년 7월 27일의 휴전협정으로 한국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그로 인한 남북의 분단은 전쟁의 후유증과 더불어 지난 60여 년 동안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전쟁과 분단은 집단적으로 경험한 역사적 트라우마였으며, 이후 한국사회의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했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한국전쟁의 경험자들뿐만 아니라 현재의 모든 생존자들에게 의식 또는 무의식 차원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핵심에는 이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의 사례들,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연구 그리고 역사학자 도미니크 라카프라의 ‘역사적 트라우마’ 개념을 근거로, 한국전쟁과 분단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분단영화를 통해 어떻게 재현되어 왔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주요 텍스트는 〈짝코〉 〈최후의 증인〉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길소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공동경비구역 JSA〉 〈풍산개〉 등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 먼저 한국전쟁과 분단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오랜 시간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현존하고 있는 양상을 고찰했다. 그런 다음, 역사적 트라우마의 증후를 분석했다. 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를 직, 간접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후를 드러낸다는 점을 분단영화에 적용해보았다. 본 논문에서 살펴본 분단영화에서는 주요 인물들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와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펼쳐지는 굿은 그 죽음들에 대한 애도작업이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시급한 과제는 수많은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분단 상황에서 애도는 불가능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영화를 넘어 현실에서 역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것이다. 애도 작업을 충실하게 수행해 한국전쟁과 분단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유함으로써, 더이상 대물림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In 1953, the Korean war ended in a cease fire. But the war and division of Korea has had a profound impact on almost every area of South Korea for the past 60 years. The war and the division of Korea was the experience of collective historical trauma. It has formed an important part of the national identity. It has influenced deeply all Koreans. Therefore, the core of the phenomenon happening in South Korea today, it can be said that the historical trauma is the most important problem. In this paper, I studied ‘the historical trauma’ represented in Korean cinema since the 1980s. It was based on a historian, Dominick LaCapra’s concepts. I researched 〈Jjagko〉 〈The Last Witness〉 〈Warm It Was That Winter〉 〈Gilsotteum〉 〈The Man with Three Coffins〉 〈To the Starry Island〉 〈Joint Security Area〉 〈Poongsan〉. Through these films, the two themes were investigated. They were ‘the presence of historical trauma’ and ‘symptoms of historical trauma’. The contents of the former are witnesses of trauma, space of trauma and transference of trauma. The contents of the latter are guilt, memory and oblivion, helplessness and fear. There are repeated death in these films. We saw Guts(it is Korean exorcism) in 〈The Man with Three Coffins〉 and 〈To the Starry Island〉. They were a kind of work of mourning. We should have performed work of mourning for war victims after the Korean war. Now, we must do it. Therefore we must heal historical trauma and no longer transmit it to next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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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독립영화 2세대의 영화미학론

        이효인(Yi, Hyoin) 한국영화학회 2018 영화연구 Vol.0 No.77

        한국 독립영화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특정한 활동을 하였다. 당시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연대하는 한편 새로운 영화 비평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이를 1970년대 독립영화 활동과 구분하기 위하여 독립영화 2세대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 시기 활동은 영화운동론과 영화미학론으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전자는 영화 ‘운동’으로 후자는 ‘영화’운동으로 부르면서, 이러한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을 이 글에서는 편의상 운동진영과 비평진영으로 부르기로 한다. 하지만 이 글은 영화운동론을 거의 다루지 않을 것이며, 영화미학론을 주로 다룰 것이다. 독립영화 2세대의 활동은 『프레임 1/24』, 『열린영화』, 『레디고』, 『민족영화』, 『영화언어』 등의 잡지와 『새로운 영화를 위하여』 등의 번역서를 통하여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영화미학론은 15호까지 발간된 『영화언어』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운동진영과 비평진영은 서로 경쟁하거나 협력하면서 이 시기 한국영화의 개혁을 위해 활동하였다. 영화언어는 영화학과 영화비평 영역에서 작가주의, 신형식주의, 스타일 비평 등을 추구하였다. 반면 민족영화 등은 리얼리즘 비평을 추구하였다. 하지만 리얼리즘과 관습적인 영화에 대한 두 진영의 생각은 서로 달랐다. 이러한 이 시기의 활동은, 이후 『영화언어』 리더들이 부산국제영화제 창설 활동에 집중하게 되고, 민족영화 주도 인물들 또한 활동의 변화를 보이면서, 1990년대 초반 한국영화계의 변화와 함께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 세대 비평가들이 대중영화와 장르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비평의 축을 옮기면서 한국 영화비평계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Korean independent films have had specific activities from the mid 1980s to the early 1990s. At the time, it was pursuing a new film criticism while being in solidarity with the Korean democratization movement. It is called the second generation of independent film in order to distinguish it from independent movie activity in the 1970s. This period can be divided into film movement theory and film aesthetics. In addition, the former refers to the ‘movement’ of the film and the latter to the movement of the ‘film’, and those who have led these movements are referred to as the movement group and the criticism group for convenience. This article, however, will hardly deal with the theory of film motion, and will deal mainly with film aesthetics. The activities of the second generation of independent film can be grasped through magazines such as Frame 1/24, Yeolrin Younghwa(Open Cinema), Ready Go, MinJock Younghwa(National Cinema), (A Film Quarterly of Theory & Practice, Film Language). In particular, film aesthetics should be analyzed for Younghwa Eoneo. The Movement group and the criticism group competed or cooperated with each other and worked for the reform of Korean films during this period. Younghwa Eoneo pursued new formalism, Authorism and style criticism in the fields of film and film criticism. On the other hand, the MinJock Younghwa pursued realism criticism. But the two group’ thoughts on realism and conventional narrative and style were different. Since 1992, the leaders of Younghwa Eoneo have focused on the organization of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leaders of MinJock Younghwa quit their activities. Their activities ended in the mid-1990s with changes in the film industry. And as the next generation of critics shift their focus to the attention of popular films and genre films, Korean film critics are entering a new s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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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ederholte filmische Motive zur Erinnerung der Vergangenheit und ihre Bedeutung als kultursemiotischer Code im koreanischen Film

        Sung, Kyoung-Suk(성경숙) 한국영화학회 2014 영화연구 Vol.0 No.61

        특정 영화장르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모티브 또한 사회를 비추는 거울역할을 하는 영화를 소비하는 대중의 욕망과 긴밀한 관계 속에 놓여있다. 특히 과거에 해당하는 사실 또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모티브들은 개인 또는 대중의 기억과도 밀접히 닿아 있다. 영화 속에서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전달되는 내용보다는 더욱 은밀하게, 그리고 상징적으로 “전달자”의 역할을 하는 이들 영화모티브들은 문화 의미론적인 코드로서 그 영화가 소비되는 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연구에서는 역사 속 개인 또는 집단의 기억을 재현하는 분단문제를 다룬 한국영화들을 대상으로 삼고 이들 영화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진과 대중가요들을 현상학적인 접근법과 상호미디어 연구방법에 근거해 문화 의미론적 관점에서 조명해 보았다. 각자 다른 영화 속에서 사용된 이들 모티브들의 문화적 및 사회적 의미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해당 영화들이 영화 속에서 전달하고자하는 “기억과 과거”재현방식에 주목했다. 전통적으로 “제 3의 증인”또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인 사진은 한국영화 속에서 “되돌아갈 수 없는 행복한 과거 <겨울나비>”, “부인할수 없는 사실 <공동경비구역 JSA, 수취인불명 등>”또는 “역사의 증언 <포화속으로 등 대부분의 전쟁영화>” 등 다양한 의미로 등장해 왔다. 이 와 더불어 한국의 대중가요 또한 중요한 “영화 속 서사자”로서 기억을 재현하고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내거나 영화의 중요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음악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물에 대한 관객의 감정이입 역할은 말할 것도 없이 한국영화 속 대중가요와 “과거에 대한 회상과 기억”은 멜로디뿐만 아니라 가사를 통해서 더욱 강력하게 발연된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속 배경음악으로 등장한 김광석의 노래는 영화 전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영화 <고지전>에서는 “남과 북의 군사들이 처한 동일한 입장”을 함께 부르는 노래를 통해 잘 전달하고 있다. 또한 영화 <디어 평양>과 <요덕이야기> 속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들은 주인공의 자아정체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해내는 강력한 영화언어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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