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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國敎會의 更新과 平信徒 運動

        나기성 韓國神學大學 宣敎神學大學院 1976 국내석사

        RANK : 235343

        平信徒 運動은 今世紀에 있어서 손곱히는 敎會 運動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運動이 어떤 獨立性을 지닌 것은 결코 아니었다. 敎會가 敎會 되게 하자는 更新運動의 일환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 運動은 世界敎會의 自意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敎會」란 도대체 무엇이냐? 그것이 무엇 때문에 存在하는 기관인가? 이런 문제에 대한 聖書的이고 神學的인 추구에서 世界敎會가 發見한 것은 「敎會」는 곧 「하나님의 百姓」이요 이 百姓은 곧 「宣敎的인 使命」을 위해서 存在한다는 事實이다. 이 百姓이 바로 「平信徒」라는 敎會의 本質을 再認識한 것이다. 平信徒가 하나님의 百姓이고 그틀은 곧 宣敎的인 使命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는 事實을 意識化하는 과정을 소위 「平信徒 運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平信徒 運動의 바람이 韓國敎會에도 불어왔다. 이런 말을 들은 지는 벌써 30年이나 되어가는데 아직도 韓國敎會엔 平信徒 運動다운 運動이 불붙지 못한 것같다. 그러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 本人은 序論에서 두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提起한 바 있다. 韓國敎會에서 平信徒 運動이 안되는 것을 平信徒들의 神學的인 소양의 不足으로 그것은 곧 敎役者의 위치를 점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誤解와, 다른 한 面에서는 모든 것을 敎役者에 依存해 버리고 자기들의 權利와 義務를 포기해 버리는 데 그 原因이 있다는 事實이다. 이런 문제를 지닌 우리의 現實에서 平信徒 運動다운 運動을 전개해서 韓國敎會 更新에 이받이할 길은 없겠는가? 이런 方向에서 本論을 시도해 본 것이다. 第2章 "世界敎會 平信徒 運動의 理解"는 그 運動이 지닌 神學的인 意味를 誤解하고 있는 韓國敎會의_문제에 대한 解答을 추구하기 위한 시도였다. 聖書的 歷史的 神學的 考察에서 平信徒 運動은 하나님의 百姓으로서의 敎會의 本質을 再發見하려는데 力点이 있는 것이지 결코 敎役者의 배척운동이나 助役으로서의 運動이 아니라는 点을 發見했다. 모든 敎人의 全體性과 그들의 宣敎的 使命을 강조하는 運動이라는 点이다. 平信徒에게 주어진 은사를 開發해서 하나님의 宣敎를 위해서 이바지하자는 움직임이다. 韓國敎會는 平信徒 運動의 이런 本質을 誤解하고 있다. 이것을 바로 깨우치고 意識化할 때 平信徒 運動이 당면하고 있는 하나의 문제점은 극복될 可能性이 있다. 第3章, "韓國敎會 平信徒 運動의 問題点"은 自己들의 權利와 義務를 포기해 버리고 依他的이고 受動的인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平信徒들의 문제를 肉容으로 한 것이다. 韓國의 平信徒들이 이렇게 되어버린 要因이 어디에 있는가? 勿論 平信徒 밖에서 영향을 끼친 外的 要因도 없지 않으나 여기서는 主로 平信徒 自身들의 內的인 要因을 찾아보려 한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信仰的인 자세에 있다고 보고 信仰狀態를 調査 硏究해 본 것이다. 資料에 나타난 韓國敎人의 信仰的인 傾向은 확실히 무당종교적인 경향이 있고, 염세적이고 他界的이며, 靈과 肉을 二元論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点이다. 이런 信仰的인 傾向때문에 韓國敎會의 平信徒들은 自己 本然의 信徒로서의 權利와 義務를 포기해 버리고 "福받고 天堂 가는데"에만 열중하는 敎人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依他的이고 受動的이며 또 他界的인 立場에 놓여 있다. 第4章, "韓國敎會 平信徒 運動의 課題"는 以上과 같은 韓國敎會 平信徒 運動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平信徒 運動다운 運動을 전개하려면 어떤 과제가 시급히 요청되느냐는 물음에 대한 答을 시도해 본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平信徒 運動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되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본 것이다. 本人은 여기서 3가지 重要한 課題를 제시했다. 韓國敎會 平信徒들은 그리스도敎 信仰을 生活化해야 되겠고, 그것을 歷史化해야 하며, 또한 그것을 神學化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런 중차대한 과제는 平信徒 自身들의 課題만은 아니다. 平信徒가 平信徒답게 될때 그것은 平信徒 個個人의 信仰的인 成長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나아가서 個敎會의 發展과 全體敎會의 宣敎的인 使命 완수를 뜻하기도 한다. 먼저 이 歷史的인 使命 완수를 위해서 平信徒 自身들이 해야 할 本分의 일이 있다. 먼저는 그리스도人으로서의 自意識을 갖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은 敎會에 와서 福받고 天國가기 만을 위할 것이 아니라 오늘 이 歷史의 現 時点에서 하나님께서 要求하시는 일을 위해서도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부르심을 起点으로 할때 그들은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부름은 또한 敎會 共同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르심이다.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 몸의 선교적인 사명을 위해서 상호 협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点에서 敎役者와의 유대나 협력도 당위성을 지닌 것이다. 그리고 平信徒 運動의 이 課題 수행을 위해서는 敎役者의 役割이 아주 重要하다. 平信徒들을 自已의 날개 밑에서 解放시켜야 한다. 그들을 神學的으로 계몽하고 意識化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敎役者의 자리가 위태로울 것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自己의 不足과 제한성 때문에 平信徒들 마저 그 限界 상황에 머물게 만드는 것은 "게으른 종"의 처사이다. 敎役者는 平信徒들을 훈련시켜 宣敎의 戰線에 보내는 그 使命에 충실해야 한다. 오늘날 平信徒 運動이 當面한 歷史的인 課題 遂行은 平信徒 自身과 個敎會의 敎役者의 힘으로 만은 不可能하다. 거교단적으로 共同 努力이 必要하다. 平信徒가 살면 敎會가 살고, 敎會가 살면 敎團이 산다.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更新의 作業은 바로 이 平信徒 運動에서 시작되지 않으면 안된다. 평신도를 위한 기구와 조직, 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時急하다. 그리고 앞날의 敎會를 위해서는 새로운 形態의 신학교육이 要請된다. 敎役者 養成만을 위한 敎育이 아니라 「하나님의 百姓」을 위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한 이 운동에 全體 교회가 총력을 기우려야 하겠다.

      • 韓國敎會의 祈福信仰에 關한 硏究

        이원우 韓國神學大學 宣敎神學大學院 1976 국내석사

        RANK : 235311

        韓國民의 心性의 深底에는 祈福信仰이 자리잡고 있다. 이 祈福信仰은 歷史도 길다. 그리고 敎理나 敎團을 갖지 아니한 모든 宗敎現象을 포함하고 있는 넓은 개념이다. 또 祈福信仰의 樣相은 극히 다양하여 韓國의 傳統的 生活風習인 歲時風習의 宗敎的인 側面을 가진 各種 行事를 비롯하여 무당의 굿에 이르기 까지 넓은 영역에 걸처있다. 봄·가을로 山神에게 마을의 平安과 祝福을 비는 部落祭와 동리 굿이 있고, 各種 吉凶占卜과 除災招福을 위한 개인의 祈福祭가 進行되고 있다. 곳곳에 보이는 城隍堂과 장승은 祈福信仰의 傳承的인 상징으로 남아있다. 이 땅에 다른 宗敎가 傳來되기 이전부터 祈福信仰은 存在했으며 오늘날은 많은 外來高等宗敎의 要素들이 混合되어 있다. 또 外來宗敎들이 이 祈福信仰에게 침식을 당했다. 오늘날 지식층의 사람에게서 겉으로 보기에 迷信이라 불리우는 祈福信仰과 무관해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깊은 意識世界에는 무관하지 않다. 개인적으로나 社會的으로 일단 위기에 부닥치게 되면 그들의 行動樣式을 결정하는 重要한 要因의 하나가 祈福信仰이다. 이 祈福信仰에는 오랜 역사성을 거니고 있으면서도 변하지도 않고 쇄하지도 않는 一定한 構造가 흐르고 있다. 그것은 人間의 變하지 않는 本能에 뿌리를 내린 宗敎현상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祈福信仰이란 精靈崇拜에 基礎를 두고 무당인 神人인 中心이 되어 人間諸事의 重要問題를 神靈의 힘을 빙자하여 解決코자 한 原始宗敎形態다. 이 祈福信仰은 古朝鮮의 建國神話와 穢, 夫餘, 新羅의 始祖神話를 낳게 했고 韓國民의 心性과 精神的 바탕이 되어 왔다. 人生問題 生存自體도 모두 神明에 依하여 解決하려 하였다. 이같은 오랜 祈福信仰의 影響으로 韓民族의 骨體에 배어 自己桎桔에 빠져 發展을 모르는 生活風土를 形成하였다. 祈福信仰의 中心內容은 神明의 힘을 빌어 穰災招福과 安心立命을 얻는데 있다. 人間諸事는 神明이 支配함으로 이들 神明을 賽神祭行과 歌舞로 달래어 安逸하게 共存하자는 것이다. 祈福信仰이 모든 面에 걸처 功, 過에 끼친 영향은 대단히 큰 것이다. 儒佛仙 三敎를 混合하여 花郞道를 創造했으며 高麗朝에 와서는 佛敎와 習合하여 燃燈祭와 八關會를 出顯케 하였고 佛敎를 護國佛敎로 만들었으며, 風水地里 纖思想을 露出시켰다. 李朝에 와서는 極甚한 彈壓을 받았으나 祈福信仰의 持久力은 庶民層과 婦女層을 通하여 生活을 支配하였고 祈福信仰이 꽃이 피게 되었다. 그리고 俗節祭의 變質과 儒敎마져도 質的으로 變化시켜 버렸다. 李朝末에는 東學思想의 뿌리가 되어 儒佛道 三敎를 混合 作用하여 宗敎政治運動으로 展開하였다. 오늘날은 數많은 新興宗敎의 發生과 類似宗敎나 似而非宗敎의 出顯을 보게 하였다. 現代文明을 위시로 宗敎가 韓國人에게 사람됨과 人生觀을 바꾸어 주려고 桃戰할 때 이는 반드시 祈福信仰과 一端은 대결해야 한다. 基督敎는 이것을 타파하려고 안간힘을 다해왔다. 그러나 실은 基督敎 역시 이 祈福信仰의 뿌리깊은 世界觀에 말려들고 있다. 祈福信仰의 世界觀은 人間關係 또는 社會關係에 대한 關心이 결여되어 있다._다만 神靈과 自己와의 수직적이요 個人的인 關係가 있을 뿐이다. 神靈에게 祈願하며 富貴와 수명과 平安을 풍족히 얻으면 이로써 족한 것이다. 거기에는 제3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고 자기를 客觀化할 共同社會 關念이 없다. 따라서 倫理的인 價値가 결여되어 있다. 祈福信仰의 世界에서 價値基準은 社會的인 善惡이 아니라 所有의 많고 적은데 있다. 卽 質的인 것이 아니고 量的인 것이다. 오늘날 韓國敎會는 福音의 껍데기를 쓰고 祈福信仰의 자리에 앉아 있다. 祈福信仰의 意識構造가 그대로 敎會 안으로 옮겨진 것이다. 韓國敎會는 個人主義的이며 自己中心的이고 공리주의적인 宗敎的 이기주의로 빠지고 있다. 우리 이웃의 문제 우리 共同體의 고민, 우리사회, 國家의 문제, 우리 역사의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없이 되었다. 이같은 問題를 놓고 本 硏究는 韓國敎會의 更新과 發展이 이루어질 수 있는 方法에 대한 단편적인 考察이다. 祈福信仰은 韓國人의 生命이 되는 構造를 갖고 있다. 이 生命力이야 말로 어떠한 난관속에서도 韓國人의 삶을 가능케 하였다. 이 生命力이 韓國人의 삶의 고뇌에서 해방한다는 점에서 福音과 관계되어질 可能性을 가지고 있다. 敎會는 韓國人의 이 生命力을 福音으로 승화시켜서 선교하는 敎會로 更新해 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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