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후보

        불교사학 입문서 간행의 현황과 분석 ― 관점(觀點)과 그 거리(距離)를 중심(中心)으로 ―

        이성운 ( Lee Seong-woon ) 한국불교사연구소 2019 한국불교사연구 Vol.16 No.-

        이 글은 근대 이후 현재까지 한국불교사학 관련 입문서에 대해 불교사료의 집성기, 불교사학의 정초기, 불교사화의 만발기로 분류하였고, 저자의 관점을 불교 내부자의 관점, 유행자적 관점, 외부인의 관점으로 분류하고 그것을 세 가지 측면으로 그 특징을 분석해본 글이다. 첫 번째 측면 사화 선정과 그 거리를 보면, 내부자 관점자들은 지나칠 정도로 역사 사료의 액면 그대로와 교학 사상과 고승들의 활동이 주라고 할 수 있고, 유행자의 유추가 설득력이 있었고 다양한 민중의 역사를 복원하려고 하는 편이었으며, 외부인의 관점은 유행자의 관점과 근사했다고 보인다. 내부자의 관점은 긍정적인 측면 위주이고 그림자의 역사는 다루지 않는 경향이다. 이에 비해 유행자의 관점 사서는 어용승려니 무위도식이니 하는 표현을 아끼지 않고 있고, 외부인의 관점을 견지하는 사서는 사실적인 서술로 일관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측면 주체 복원과 그 거리를 보면 내부자 관점의 사서는 지나칠 정도로 고승 위주여서 여성 불자나 민중의 문제는 눈 돌리지 않고 있고, 유행자의 관점은 전직 승려출신과 순수 유행자의 관점과 차이가 있다고 보였으며, 외부인은 비교적 균형감각을 가지고 배불을 바라보고 있다고 보인다. 세 번째 측면 통사 추구와 그 거리를 보면 사서들의 차례를 통해서 보면 사화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 한국불교사가 왕조를 뛰어넘어 관통하는 역사로 기술되고 있다고 보이며, 전체 사서들이 국가불교 호국불교로 해석하나 한국불교통사만이 민중불교로 서술하고 있을 뿐인데 대체로 진정한 불교의 유지는 일재와 같은 불교 신앙인들의 신앙행위라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불교사 주체들의 역할을 복원하여 온전한 불교사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고승 대덕의 학문과 선법활동과 같은 거시 담론에 갇혀 있어서는 어려울 것이다. 이 땅에서 불교 하는 이들의 삶-신앙의 방식이 다뤄져야 한국불교의 성격에 걸맞은 인식의 전환이 실제로 이뤄져야 온전한 불교통사는 기술될 수 있을 것이다. This writing considers the characteristics of the introductions to the Buddhist history from modern times to the present. These writtings are classified into the agglomeration period of the Buddhist materials, the foundation period of the Buddhist historical studies and its full blossom period. The views of the authors are also further classified into those of the insider, the bystander and the outsider. Firstly, when it comes to the selection of the materials of the Buddhist history and its distance, the viewpoint of the insider is positive, with the authors taking the materials at face value and mainly dealing with the activities of illustrious monks. The view of the bystander is persuasive. The bystander authors tend to restore a variety of histories of the public Buddhist, while criticizing government-patronized monks and their idle life. It seems that the viewpoint of the outsider is close to that of the bystander and consistent in the factual description. Secondly, in regarding to restoring its main agent and its distance, the insiders only focus on illustrious monks and are not interested in the female Buddhist and the issue of the public Buddhist. The viewpoint of the original bystanders is different from that of the former monks. The view of the outsiders are relatively objective to anti-Buddhism. Thirdly, as for Buddhist synoptic history and its distance, the historical story of Korean Buddhism has been narrated throughout history not just during the Joseon Dynasty. Korean Buddhism is characterized as Buddhism for national protection and the synoptic history of Korean Buddhism is as Korean public Buddhism. It passes unnoticed that the act of faith of Japanese Buddhists maintained authentic Buddhism under Japanese imperialism. The whole history of Korean Buddhism should not be restricted to the studies of illustrious monks and their activities but include the religious life of the public Buddhist in Korea.

      • KCI등재후보

        유가 유식사상 교재의 구성과 내용

        안환기 ( Ahn¸ Hwan-ki ) 한국불교사연구소 2020 한국불교사연구 Vol.18 No.-

        본 논문은 한국불교사연구소에서 기획한 ‘인문학 불교학 전공교재 간행의 구성목차와 수록내용-기존 역서와 저서의 비판적 검토를 통하여’라는 주제에 맞추어 유식학에 초점을 두고 논한 것이다. 우선, 현재 출판된 유식학 서적을 크게 번역서와 국내학자의 저술서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 번역서는 유식학 원전[경전과 논서]의 번역서와 외국학자의 저서를 번역한 책으로 나누고, 국내학자의 저술서는 개론서, 유식사상을 응용한 저서로 분류했다. 이를 검토한 후, 필자는 목차를 크게 3단원 즉, 유식학 입문[유식의 의미, 유식사상사], 유식학 심화[핵심개념의 기원, 원전의 근거제시], 유식학 응용[현대사상과 비교, 명상 및 상담치료에 응용]으로 구성한 후 각 단원에 담을 내용을 간략하게 제안했다. This paper focuses on Yogācāra thought in line with the theme of ‘a composition of table of contents of Buddhist textbooks through critical review of existing translation and books’ organized by the Korea Buddhist History Institute. First of all, I looked at the published books of Yogācāra thought, which were largely divided into translations and writings by domestic scholars. Specifically, the former was divided into translations of the Yogācāra scriptures and a work translated from the books of foreign scholars. And the latter was classified into introductory and applied books. After reviewing this, I composed the table of contents largely into three sections: entrance into Yogācāra thought(meaning of Yogācāra, the history of Yogācāra thought), deepening of that (origin of key concepts, presenting a scriptural source of a concept), and application of that (comparing with modern thought, applied to meditation and counseling therapy). And the contents to be contained in each table of contents were briefly proposed.

      • KCI등재후보

        효성 조명기의 불교사상사 연구 -"총화론"과 "화쟁론"을 중심으로-

        고영섭 ( Young Seop Ko ) 한국불교사연구소 2013 한국불교사연구 Vol.3 No.-

        한국의 대표적인 인문학자이자 불교학자였던 효성 조명기(曉城趙明基, 1905~1988)는 평생을 한국의 인문학 불교학 발전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 그는 원효 저술의 발굴과 『원효전집』의 편집 출간, 『고려대장경』의 영인 간행과 『한글대장경』의 기획 편찬 등 불교연구의 기초자료인 서지류(書誌類)와 금석문(金石文) 발굴과 집성을 위해 생평을 보냈다. 효성은 신라불교와 고려불교에 대한 깊이 있는 논저를 출간하여 이 분야 연구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원효학 연구의 기반을 다졌고, 의천학 연구의 저변을 넓혔다. 아울러 효성은 불교사상사와 불교문화사 연구의 지평을 확장하여 한국불교사상사 정립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불교의 유신과 민족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던 만해의 글들을 집대성하여 『한용운전집』을 편찬하였다. 효성은 불교의 중도론을 화(和)와 쟁(諍)의 연동적(連動的) 인식에 의한 ‘총화사상’ 또는 ‘통화사상’으로 파악하고 원효의 화쟁에 상응시킨다. 그는 붓다의 중도법문을 ‘총화론’과 ‘화쟁론’을 통해 한국불교사상사를 탐구하면서 한국불교를 ‘대소승을 초월한 통불교’로 파악하였다. 효성은 육당의 ‘결론적 불교론’을 심화 확장하여 통불교론으로 더욱 발전시켰다. 그의 통불교론은 이후 한국불교의 성격 규명에서 주요 담론으로 자리하게 되었으며, 김동화, 이기영, 안계현, 김영태 등으로 계승되었다. 효성의 총화론 또는 화쟁론은 역동적인 개념이며 진행형의 개념이다. 그는 원효의 화쟁론을 총화론 혹은 통화사상으로 재해석하여 불교 즉 한국불교의 성격 혹은 한국불교사상의 특질로 규정하였다. 그리하여 효성은 한국불교사상사를 총화론 혹은 화쟁론의 시각에서 조망하고 있다. 효성은 해방직후 경봉, 용담, 석주 선사를 비롯해 이종익, 장상곤 거사 등과 함께 불교혁신운동에 동참하였다. 그는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 왜색화 된 한국불교 개혁에도 앞장섰다. 그 뿐만 아니라 효성은 동국대학교의 남산 교사 이전에 결정적 물꼬를 열었다. 이어 그는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며 동국사상연구회의 발족, 불교문화연구소의 개소, 한국불교 학회의 창설 등 불교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또 효성은 경기대학교의 전신인 조양 사범전문학교를 개교하여 행정과 경영에 참여하였으며 연구와 교육 및 행정과 경영 모두에서 역량을 보여주었다. 만년에 효성은 사단법인 한국불교문화연구원을 개원하여 저술에 매진하였으며 『한국불교사학대사전』과 『불교학대사전』 편찬을 위해 노심초사 하였다. 그는 장경호 거사가 설립한 불교계 최초의 교양대학인 대원불교 대학 학장을 맡아 재가불자 교육에도 일익을 담당하는 등 불교대중화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다. 효성은 이러한 불교 대중화뿐만 아니라 『불교학대요』와 『불교학사략』 등을 저술하고 간행하여 마지막까지도 한국불교학 발전을 위한 정진의 고삐를 내려놓지 않은 대학자였으며 사상가였다고 할 수 있다. The representative human science scholar and Buddhist scholar, Hyoseong Jo Myeong-Gi (1905~1988) devoted his entire life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Buddhist Study. He spent his whole life to discover the book of Wonhyo, edit & publish 『Wonhyo Collection』, photoprint & publish 『Goryeodaejanggyeong』 and plan & compile 『Korean Daejanggyeong』. He devoted his entire life to the discovery and collection of bobliography class(書誌類) and epigraphy sentence(金石文), which are basic data for Buddhist study. Hyoseong published in-depth thesis about Sinra Buddhism and Goryeo Buddhism to prepare the foundation of the field study. In this way, he firmed the foundation of Wonhyo Science Study and enlarged the base of Uicheon Science. Furthermore, Hyoseong enlarged the horizon of the study on Buddhist philosophy history and Buddhist culture history to play the pivotal role for establishing Korean Buddhist philosophy history. He compiled 『Han Yong-Un Collection』 by collecting the books of Manhae who devoted himself to the reformation of Buddhism and people`s independence. Hyoseong interlocked control harmony theory the middle way control harmony theory the middle of Buddhism with harmony(和) and controversy(諍) and grasped it as ‘total harmony theory’(總和論) or ‘control harmony thoweory’(統和思想) and matched it with Wonhyo`s harmony controversy. He researched Korean Buddhist philosophy history through ‘total harmony theory’ and ‘harmony controversy theory`` which are Buddha`s the middle way embrace Buddhism(中道法門) and grasped Korean Buddhism as ‘integration Buddhism(通佛敎) transcending Mahayana and Hinayana doctrine``. Hyoseong deepened and expanded ``concluding Buddhism theory`` of Yukdang` and developed it into integration Buddhism theory. His integration Buddhism theory became the main discussion in the process to clarify the characteristic of Korean Buddhism in the future and it was succeeded to Kim Dong-Hwa, Lee Ki-Young, Ahn Gye-Hyun, Kim Young-Tae, etc. Hyoseong`s total harmony theory or harmony controversy theory is a dynamic and on-going concept. He reinterpreted Wonhyo`s harmony controversy theory as total harmony theory or integration harmony thought(統和思想) and regulated it as the characteristic of Korean Buddhism or Korean Buddhist thought. Therefore, Hyoseong considered Korean Buddhist philosophy history from the viewpoint of total harmony theory or harmony controversy theory. Right after liberation, Hyoseong participated in Buddhism Reformation Movement along with Priest Gyeongbong, Yongdam and Seokju and Layman Lee Jong-Ik and Jang Sang-Gon. While passing through Japanese colonial era, he led the reformation of Korean Buddhism that was changed into Japanese style. In addition, he triggered the movement of Namsan school building of Dongguk University. After that, he became the principal of Dongguk University and devoted himself to the development of Buddhism by beginning Dongguk Thought Research Institution, opening Buddhist Culture Research Institute and founding the Korean Association for Buddhist Studies. In addition, Hyoseong founded Joyang Teacher`s School, which was a former body of Kyonggi University, participated in administration and management and showed his ability in study, education, administration and business administration. In his later life, he opened Korean Association for Buddhist Studies to devote himself to writing. He made his best to compile 『Korean Buddhist History Dictionary』 and 『Buddhist Science Dictionary』. Hyoseong was a principal of Daewon Buddhist College, which was the first Buddhist college founded by Layman Jang Gyeong-Ho and played the partial role in the education of lay disciples. In this way, he paid attention to Buddhism Popularization Movement. Besides the effort for Buddhism popularization, he wrote and published 『Bulgyohakdaeyo』and 『Bulgyohaksaryak』 and he made constant effort for the development of Korean Buddhist Study.

      • KCI등재후보

        아비달마 교재의 편성 방향, 구성 목차와 수록 내용

        최경아 한국불교사연구소 2021 한국불교사연구 Vol.20 No.-

        This is an article that explores the publication of Abhidharma textbooks in the ‘Table of Contents and Contents of Publication of Humanities and Buddhist Studies Major Textbooks’ planned by the Korean Buddhist Research Institute. In this paper, we will present the direction of the organization of the Abidharma textbook, the introduction of domestic and foreign research materials published so far, and finally, a specific table of contents. While the previously announced sects such as Madhyamaka, Yogacara Tientai and Huayan have distinct sectarian characteristics and have a certain genealogy, Abhidharma is ambiguous in its scope and identity. Abhidharma was denigrated as Hinayana Buddhism even though it was the gateway to Mahayana Buddhism. Abhidharma, also called Bidam sect, Gusa sect, and sometimes Beopsang sect, was an important sect in East Asian Buddhism such as China and Japan, but its presence in the Korean Buddhist tradition was relatively insignificant. In the 20th century, as a Sanskrit version of the Abhidharmakośabhāṣya was discovered, research on ‘Gusa Studies’ in neighboring Japan also drew attention. Since the existing Abhidharma literatures were almost Chinese translated, Japan’s competence in the world Buddhist academia was powerful in a state where the study of Buddhism in communist China almost ceased to exist. In Korea, Gusahak was introduced as a systematic Buddhist study in 1971 by Kim Dong-hwa studied in Japan, and was used as a textbook at Dongguk University. After that, Philosophy of Abhidharma and Abhidharma Buddhism translated from Japanese by Kwon Oh-Min were used as textbooks at the university. These translations were delivered in a more modern style compared to Gusahak of Donghwa Kim. However, it was difficult to understand because the philosophy of Abhidharma itself was established in Chinese characters. It is a method of resolving Buddhist terminology familiar only to established Buddhist scholars in a language that can be communicated, and drastically reducing the metaphysical cosmology and the practice, which is difficult to empathize with and implement in the real world, or separate them into two books. I think the method of constructing it should be considered. 본 논문은 한국불교사연구소에서 기획한 ‘인문학 불교학 전공교재간행의 구성목차와 수록내용’에서 아비달마 교재의 간행에 대해 모색한 글이다. 본고에서는 아비달마 교재의 편성 방향과 현재까지출간된 국내외 연구물의 소개, 마지막으로 구체적인 목차를 제시해보도록 한다. 기존에 발표된 중관, 유식, 천태, 화엄 등은 종파로서의특색이 분명하고 일정 계보가 있는 반면, 아비달마는 그 범위도 정체도 모호하다. 아비달마는 대승불교에 이르는 관문이었음에도 소승불교라 폄하되었다. 비담종, 구사종, 때로는 법상종 등으로도 불렸던아비달마는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불교사에서 비중 있는 종파였던것이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한국불교 전통에서는 그 존재감이 미미했다. 20세기에 이르러 구사론 범어본이 발견되면서 이웃 일본에서의 구사학 연구도 주목받게 된다. 현존하는 아비달마 문헌이 거의한역본이었으며, 공산화된 중국에서 불교학 연구가 맥이 끊긴 상태 에서 세계 불교학계에서의 일본의 역량은 막강했다. 우리나라에도일본 유학파인 뇌허 김동화에 의해 1971년에 구사학 이 체계적인불교학으로 소개되었고, 동국대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다. 이후, 역서인 아비달마의 철학 과 권오민의 아비달마불교 등이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다. 이들 저역서는 김동화의 구사학 에 비해보다 현대적인 문체로 전달되었으나, 아비달마 철학 자체가 오랫동안 한자어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이해가 쉽지 않았다. 기성 불교학자들에게나 익숙한 불교전문용어들을 소통 가능한 언어로 풀어쓰고, 형이상학적인 우주론과, 현실세계에서 공감하기도 실행하기도 힘든수행관 등은 과감하게 축소하는 방법이나, 또는 분리하여 2권의 단행본으로 교재를 구성하는 방법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KCI등재후보

        연구논문 : 연등회의 무형문화유산 콘텐츠 강화 방안 연구

        고상현 ( Sang Hyun Ko ) 한국불교사연구소 2014 한국불교사연구 Vol.5 No.-

        연등회는 지난 2012년 4월 6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현대 연등회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콘텐츠들 가운데 역사성과 전통성을 지닌 무형문화유산 콘텐츠의 강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므로 시대별 전통무형문화유산 콘텐츠를 살펴보고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연등회의 무형문화유산 콘텐츠를 시대별로 살펴보면, 신라시대에는 간등과 사찰에서 잔치 및 탑돌이 등이 이루어졌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연등회로 인해 궁중에서 펼쳐진 소회일과 알조진의, 대회일 등에서 답사행가무, 왕모대가무, 등석치어 등과 노부시의 헌선도, 처용무, 무고정을 비롯하여 민간에서의 만석승희, 호기놀이 등 각종 백희가 연행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관등이나 연회 등은 계속 이어졌으며, 양주별산대놀이, 은율탈춤, 그네뛰기, 수부희 등의 연희를 비롯하여 소밥 등 음식문화에 대한 기록들도 전해지고 있다. 현대에는 현대에 맞는 청소년 댄스페스티벌이나 B-boy이 공연을 비롯하여 관불, 승무, 사찰학춤 등이 행해 지고 있다. 연등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현대 이전에 행해졌던 무형문화유산 콘텐츠를 계승하여 설행하고, 사라진 것들은 복원해야 한다. 우선 오늘날에도 설행되고 있는 헌선도, 처용무를 비롯하여 탑돌이, 은율탈춤, 양주별산대놀이 등을 연등회에서 설행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조선시대에 왜곡된 불교관이 반영된 민중적 연희들도 터부시할 까닭이 없다. 오히려 이들을 당시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21세기적인 불교 내용에 맞게 새롭게 재창조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현재 사라진 고려시대의 소회일과 대회일 연등회 등 문헌상으로만 남아있는 백희 등에 대한 복원 노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연등제작 장인의 기예능 보유자 인정 등을 추진해야 하며, 관불의식의 복원이나 꽃일의 확산 등도 이루어져야 한다. The Yeondeunghoe(Lightening Lantern Festival/Lotus Lantern Festival) was designated as one of the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No. 122) on April 6, 2012. After that, there has been an increasing demand for strengthening the traditiona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having their own history in the midst of various contents unfolded in the modern Yeondeunghoe. Examining the contents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contained in the Lightening Lantern Festival per period, first, during the Silla Dynasty there was an event of gandeung (看燈, lighting the mind through seeing a lantern), a feast and Tapdolyi (walking around a pagoda) in a temple. During the Goryeo Dynasty, since the Yeondeunghoe was held at the state level, in the palace on the day of sohoe-il (小會日, 14th day of a month for) aljojinui (worshipping the portraits of ancestors) was performed; on the day of daehoi-il (大會日, 15th day of a month for Yeondeunghoe), dapsahaeng-gamu (踏沙行歌舞, one of the Korean court dances accompanied by Tang music), wangmodae-gamu (one of the Korean court dances for a king and a nation), deungseokchi-eo (燈夕致語, Giving words to a king in admiration of the Lotus Lantern Festival) and the other events were performed; at the time of a king``s procession not only heonseon-do (獻仙桃, one of dances and songs passed down from Song China performed for the benefit of a king``s long life), cheoyong-mu (處容舞, a court dance for eliminating evil spirits), mugojeong (舞鼓鉦, one of drum and jing dances) but also all sorts of baekhui (百戱, popular entertainments) such as manseokseunghee (萬石僧戱, one of puppet shows), hoginoli (an event performed with flags for meeting the cost of the festival), and the others were performed. During the Joseon Dynasty, gandeung and a feast continued; yangjubyeolsandaenori (Byeolsandae mask dance-drama of Yangju), eunyultalchum (mask dance drama of Eunyul), a run swing, subuhui (one of children``s games) and the like were performed; and according to records, there was a special food culture like sobab (plain meal without meat). In modern times, a dance festival for adolescent and B-boy performance are being held, and pouring perfume on Buddah``s statue, seungmu (one of secularized Buddhist dances), sachalhakchum (a temple crane dance) and the others are being performed. For the Yeondeunghoe to be sustainable, we should succeed and perform the contents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that were activated before modern times, and should restore lost heritages. First of all, heonseon-do, cheoyong-mu, tapdolyi, eunyultalchum and yangjubyeolsandaenori, all of which are preserved, should be performed. Among these performances, there are some that have been influenced by distorted viewpoint of Buddhism in the Joseon period, but there is no reason to put them under taboo. We should rather accept them as just what belongs to the past; then, we should recreate them in accordance with 21st century``s Buddhism. Besides, with regard to the lost adornments at the time of the procession of a royal carriage made during the Goryeo Dynasty, we should make an endeavor to restore them. Moreover, the designation of the artisans who make lotus lanterns as the holders of special techniques and arts should be considered; the ceremony for pouring perfume on Buddah``s statue should be restored; and the work of making paper-flowers for lotus lanterns and Buddhist ceremonies should be expanded.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