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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미술사와 인문학적 가치

          권영필(Kwon Young-pil), 이인범) 한국미술사학회 2010 美術史學硏究 Vol.- No.268

          이 글은 한국미술사학회 50주년 기념에 즈음하여 한국미술사에서의 방법론의 문제를 인문학의 관점에서 관찰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여기에서의 "한국미술사"는 한국의 전통미술을 의미한다. 또한 분석 대상의 논문들은 한국미술사학회에서 발표된 것을 줄거리로 잡되. 필요에 따라 그 외의 것들도 포함시켰다. 문명대가 방법론을 강조한 것을 필두로 지난 50년 동안 방법론 자체가 지속적으로 연구되었음을 확인하는 일면, 그 동안 발표된 논문에서, 예컨대 70년대의 안휘준의 논문을 비롯하여 "양식론" 적용이 보편화되었으며,90년대 이후부터는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이 강세를 보이며 등장한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최성은, 김정희의 논문에서 보듯, 도상해석학은 불교미술에서 이용도가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특히 이 논문에서는 미술사의 인문학적 특성을 피력하기 위해 파노프스키의 인문학적 미술사론을 끌어들였다. 이 국면에서는 미국 미술사학계에서의 파노프스키의 영향을 아울러 검토하였다. 또한 미국의 마이너(V.H.Minor)는그의 90년대의 저서에서 양식론의 위력이 아직도 건재함을 입증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나가히로 도시오(長廣敏雄) 등에서 보듯이 동양미술사 연구자들이 유럽의 양식론을 비롯한 서구 방법론에 주력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미술이 시대를 표현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시대에 내용을 부여하려고 존재한다"는 뢰어(M.Loehr)의 명제는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의 입장을 더 깊이 있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겸재 회화의 평가도 이런 각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인문학으로서의 "한국미술사는 "한국미"와 "한국미학"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는 데에도 효용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한국미는 인문학적 가치를 지닌 주제로서 무엇보다도 미술작품에서 그것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필자는 미술사와 미학의 관계를 상보관계로 본다. 알려져 있듯이 미술사의 방법론 정립은 근세 이래 미학으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한편 "한국미학‘은 근세 이전의 경우 문헌사료가 영성하여 미술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다. 방법론의 전망에 대해서는 서양미술사에 나타난 현상을 차용하여 풀어 보았다. 예컨대 다빈치의 "스프마토"를 "불확실성에 대한 포용력"으로 해석한다든가, 미술이 문명사에서 "화해자(和解者)의 역할을 한다는 등의 관점을 제시하였다. 또한 한국미술사 해석을 위한 기초로서는, 예컨대 "수용미학"같은 서양미학이 어느 정도 값어치를 발휘할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도 한국미술사의 고유성을 지키면서 세계미술사 속에 자리매김 되는 방법론을 찾아야 할 것이다. This paper, written for the occasion of the 50th anniversary of the Association of Korean Art History, is a review of major methodological issues in Korean art history from the perspective of humanities. "Korean art history; here, should be understood as the history of traditional Korean art. Meanwhile, the papers examined here are mainly those that were presented at the Association of Korean Art History, but, in some cases, papers from other fields were considered as well. This essay discusses how, pioneered by Mun Myeong-dae who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methodology in art historical studies, methodology has been continuously discussed over the past fifty years, as an area of research in its own rights, and how the application of stylistic analysis has become common since the 1970s, championed by An Hwi-jun. The discussion of methodological evolutions also includes iconology, popularized by Erwin Panofsky"s works. Iconology has been prominent in the field of Korean art history since the 1990s. Iconology is particularly widely applied in the study of Buddhist art, as can be seen in papers by Choe Seong-eun and Kim Ieong-hui. To draw attention to the overlapping characteristics between art history and other disciplines in humanities, I quote extensively from Panofsky"s discussion of humanistic art history, examining also the influence that Panofsky has had on American art history. I, then, turn to works by the US art historian V. H. Minor, published in the 1990s, proving that the influence of stylistic analysis in the field of art history remains undiminished. Examples from japan, such as research by Nagahiro Toshio, attesting to the dominance of stylistic analysis and formalism and other European methodologies among researchers of Asian art, are cited as well. As Max Loehr famously said that "art exists not to express its time but to give content to its time;" art cannot be properly assessed without considering its humanistic roots, Interpreting and assessing paintings by Jeong Seon(1676-1759), to take an example of a Joseon painter, cannot be accomplished meaningfully without considering their humanistic context and subtext. Korean art history as a humanistic discipline could be especially useful for building a theoretical foundation for what we can call "Korean beauty or "Korean aesthetics," Korean aesthetics, as a subject with humanistic values, can be mostly readily understood in art works, Art history and aesthetics, in my opinion, are two inseparable and mutually-complementary fields, As is well-known, the methodological framework of art history in Europe is greatly indebted to modern aesthetics, Meanwhile, due to the dearth of historical records dating from before modern times, one is forced to rely on art history in order to study Korean aesthetics. Finally, to predict future methodological directions, I turn to related phenomena in Western art history, For example, I value the viewpoint that Da Vinci"s sfumato is interpreted as an inclusive gesture toward uncertainty and argue that art plays a reconciliatory role in the history of civilization, I also argue that Western aesthetics such as the aesthetics of reception have proved useful to an extent as a basis for Korean art historical interpretations, The guiding principle, as we search for a new methodology, should be finding a place for Korean art history in the history of world art, while not sacrificing its specific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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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樹黙 秦弘燮 박사 학문세계와 한국미술사에 남긴 업적

          강경숙(Kang, Kyung sook) 한국미술사학회 2018 美術史學硏究 Vol.299 No.299

          한국미술사학회는 1960년에 시작한 고고미술동인 다섯 선생님들로부터 시작했다. 이 중에 진홍섭과 황수영 두 분 선생은 2018년 탄생 100년을 맞게 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한국미술사학회에서는 학술대회를 개최했으니 그 의의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두 분 선생은 같은 해 개성에서 태어나고 일본에 유학하여 경영학을 전공했다. 전공 분야와는 연관이 없는 미술사 연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개성박물관 관장인 우현 고유섭의 영향이다. 두 분 선생은 평생 한국미술사학을 연구하여 학계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고 한국미술사학회를 이끈 주역이다. 수묵 진홍섭 선생은 우현 고유섭의 뒤를 이어 개성박물관장이 되었고, 1950년 6·25 한국전쟁 이후에는 경주박물관장을 거쳐 잠깐 문화재관리국 문화재과장을 역임했지만, 바로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되면서 박물관장의 보직을 받아 20년을 재직했다. 선생은 경주박물관장 시절 ‘경주 어린이 박물관 학교'를 개설했고 지금까지 수 천명의 어린이들이 이곳을 거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는 미술사전공 제자를 많이 배출했는데 이들은 대학교수를 비롯하여 각계에서 중진역할을 하고 있다. 제자들은 선생이 지어준 ‘여여회' 이름으로 경주 어린이박물관에 매년 어린이 책을 기증하고 있으며, ‘수묵문고'가 있는 도서실은 경주박물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것은 선생의 무언의 가르침이었고 온누리에 아름다운 향기를 내고 있다. 1899년에 개성에서 개교한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가 폐교에 직면했을 때 선생은 선뜻 큰 재산을 희사해 살려낸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경주시내를 관통하게 될 고속철도의 건설을 막기 위해 1995년 3월 「경주는 중환자이다」라는 것을 발표했고 이때 달걀세례를 받았다.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서울 시민회관에서의 일은 선생의 문화재 사랑의 일면을 보여준다. 선생은 단행본 25권, 논문 147편, 보고서 6권, 전집 및 도록 6권으로 놀랄만한 연구의 흔적을 남겼다. 특히 『한국미술사자료집성』 9권은 미술사 연구의 문헌적인 기초 자료를 제공했고 오랫동안 묵묵히 자료를 모았던 수묵 선생의 땀의 결실이다. 디지털 시대라고 하지만 책으로 엮은 자료는 수 십 세기가 지나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 한 눈에 한국미술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한국미술사연표』는 수차례 수정 보완을 거친 책으로 전공자뿐만 아니라 비전공자들에게도 많은 참고가 된다. 선생은 2010년 11월 타계하기 1년 전까지도 책의 수정 보완을 게을리하지 않고 늘 책을 옆에 두었다. 제자들이 본받을 수도 없는 열정을 끝까지 가지고 계셨다. 선생의 평생을 돌이켜보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던 삶이었다. 중앙국립박물관 관장의 제의가 있을 때 이를 양보한 일이라던지, 또 문화재 훼손에서는 주저함 없이 앞장에 섰던 것은 정의를 위해 굽히지 않았던 선생의 면모이다. 어려운 고비마다 한국미술사학회의 대표직을 수행했던 것은 학회 사랑의 모습이다. 선생의 이러한 면모가 ‘명리를 멀리한 군자'로 칭송받는 이유이다. The Art History Association of Korea was established with the five scholars in the Coterie of Antiquarians, which had been founded in 1960. The year of 2018 marks the centennial of the birth of two of the five scholars, Chin Hong-sup and Hwang Su-young. To celebrate the centennial anniversary, the Art History Association of Korea organized a conference, which has a special meaning in the field of Korean art history. Both of the two scholars were born in Gaeseong in the same year, and studied business administration in Japan. The reason why they became scholars in art history, which was unrelated to their major, was because of the director of the Gaeseong Museum, Uhyeon Ko Yu-seop's influence on them. The two scholars devoted their entire life to the study of Korean art history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scholarship in the field and founded the Art History Association of Korea. Of the two scholars, Soomuk Chin Hong-sup succeeded Uhyeon Ko Yu-seop as the director of the Gaeseong Museum. After the Korean War, Chin was appointed the director of the Gyeongju Museum and then the chief official in the Office of Culture Properties. Shortly after the appointment he was hired as a professor at the Ewha Womans University, with which he held the position of the director of the Ewha Womans University Museum concurrently for twenty years. During his term in office at the Gyeongju Museum, Chin established the Gyeongju Children's Museum School, which has served thousands of children thus far. At the Ewha Womans University, he trained numerous students in art history, who are now playing important roles in various fields. His students in the group called Yeoyeohoe, whose name was given by Chin, donate books to the Gyeongju Children's Museum School every year, and a library with a collection of Chin's books, named “Soomuk mungo,” has been run by the Gyeongju Museum. These activities embody his teachings and exert positive influence throughout the country. In 1899 when the Hosudon Girls' High School in Gaeseong was about to be closed down, he willingly donated a large fortune to continue the school, demonstrating his exceptional virtue. To prevent the construction of KTX, which would pass through Gyeongju, he published his article titled “Gyeongju is a Critical Patient.” in conference at the Seoul Civic Center he became the victim of egging. Nonetheless, he kept his seat until the end of the conference, showing his strong affection for cultural heritages. Chin made outstanding academic achievement as illustrated in his publications encompassing 25 books, 147 articles, 6 reports, and 6 catalogues. Of these publications the ninth volume of the Compilation of Primary Sources in Korean Art History provides textual sources for art history research, and represents his persistent scholarly endeavor. Although digitized materials are being extensively utilized in the field, the materials collected in this book will be invaluable for centuries. Furthermore, the Chronology of Korean Art History has been useful for both specialists and non-specialists in Korean art history, having been revised by the author several times. Up until he passed away in November of 2010, Chin had kept revising and supplementing the publication, demonstrating his enormous enthusiasm about art history that cannot be surpassed by any of his students. He did not seek fame and profit throughout his entire life, as illustrated in the fact that he declined the post of the director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Showing his strong will and sense of justice, he always took initiative without hesitation in stopping damages on cultural heritages. He also assumed the leadership, whenever the Art History Association of Korea was faced with a crisis, as he cherished the association. Because of these characteristics, Soomuk Chin Hongsup well deserves the admiration as “a man of noble character standing aloof from fame and prof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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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와 인문학적 가치 -한국미술사의 ‘20세기 구미 미술사 이론'의 수용과 전개-

          권영필 한국미술사학회 2010 美術史學硏究 Vol.268 No.268

          This paper, written for the occasion of the 50th anniversary of the Association of Korean Art History, is a review of major methodological issues in Korean art history from the perspective of humanities‘. Korean art history,'here, should be understood as the history of traditional Korean art. Meanwhile, the papers examined here are mainly those that were presented at the Association of Korean Art History, but, in some cases, papers from other fields were considered as well. This essay discusses how, pioneered by Mun Myeong-dae who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methodology in art historical studies, methodology has been continuously discussed over the past fifty years, as an area of research in its own rights, and how the application of stylistic analysis has become common since the 1970s,championed by An Hwi-jun. The discussion of methodological evolutions also includes iconology, popularized by Erwin Panofsky's works. Iconology has been prominent in the field of Korean art history since the 1990s. Iconology is particularly widely applied in the study of Buddhist art, as can be seen in papers by Choe Seong-eun and Kim Jeong-hui. To draw attention to the overlapping characteristics between art history and other disciplines in humanities, I quote extensively from Panofsky's discussion of humanistic art history, examining also the influence that Panofsky has had on American art history. I, then,turn to works by the US art historian V. H. Minor, published in the 1990s, proving that the influence of stylistic analysis in the field of art history remains undiminished. Examples from Japan, such as research by Nagahiro Toshio, attesting to the dominance of stylistic analysis and formalism and other European methodologies among researchers of Asian art,are cited as well. As Max Loehr famously said tha“t art exists not to express its time but to give content to its time,”art cannot be properly assessed without considering its humanistic roots. Interpreting and assessing paintings by Jeong Seon(1676-1759), to take an example of a Joseon painter, cannot be accomplished meaningfully without considering their humanistic context and subtext. Korean art history as a humanistic discipline could be especially useful for building a theoretical foundation for what we can call“Korean beauty or“Korean aesthetics.”Korean aesthetics, as a subject with humanistic values, can be mostly readily understood in art works. Art history and aesthetics, in my opinion, are two inseparable and mutuallycomplementary fields. As is well-known, the methodological framework of art history in Europe is greatly indebted to modern aesthetics. Meanwhile, due to the dearth of historical records dating from before modern times, one is forced to rely on art history in order to study Korean aesthetics. Finally, to predict future methodological directions, I turn to related phenomena in Western art history. For example, I value the viewpoint that Da Vinci's sfumato is interpreted as an inclusive gesture toward uncertainty and argue that art plays a reconciliatory role in the history of civilization. I also argue that Western aesthetics such as the aesthetics of reception have proved useful to an extent as a basis for Korean art historical interpretations. The guiding principle, as we search for a new methodology, should be finding a place for Korean art history in the history of world art, while not sacrificing its specific nature. 이 글은 한국미술사학회 50주년 기념에 즈음하여 한국미술사에서의 방법론의 문제를 인문학의 관점에서관찰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여기에서의 ‘한국미술사'는 한국의 전통미술을 의미한다. 또한 분석 대상의 논문들은 한국미술사학회에서 발표된 것을 줄거리로 잡되, 필요에 따라 그 외의 것들도 포함시켰다. 문명대가 방법론을 강조한 것을 필두로 지난 50년 동안 방법론 자체가 지속적으로 연구되었음을 확인하는일면, 그 동안 발표된 논문에서, 예컨대 70년대의 안휘준의 논문을 비롯하여 ‘양식론' 적용이 보편화되었으며, 90년대 이후부터는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이 강세를 보이며 등장한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최성은,김정희의 논문에서 보듯, 도상해석학은 불교미술에서 이용도가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특히 이 논문에서는 미술사의 인문학적 특성을 피력하기 위해 파노프스키의 인문학적 미술사론을끌어들였다. 이 국면에서는 미국 미술사학계에서의 파노프스키의 영향을 아울러 검토하였다. 또한 미국의마이너(V.H.Minor)는 그의 90년대의 저서에서 양식론의 위력이 아직도 건재함을 입증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나가히로 도시오(長廣敏雄) 등에서 보듯이 동양미술사 연구자들이 유럽의 양식론을 비롯한 서구 방법론에 주력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미술이 시대를 표현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시대에 내용을 부여하려고 존재한다”는 뢰어(M.Loehr)의 명제는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의 입장을 더 깊이 있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겸재 회화의 평가도 이런 각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인문학으로서의 ‘한국미술사'는 ‘한국미'와 ‘한국미학'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는 데에도 효용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한국미는 인문학적 가치를 지닌 주제로서 무엇보다도 미술작품에서 그것의 본질을 발견할 수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필자는 미술사와 미학의 관계를 상보관계로 본다. 알려져 있듯이 미술사의 방법론 정립은 근세 이래 미학으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한편 ‘한국미학'은 근세 이전의 경우 문헌사료가 영성하여 미술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다. 방법론의 전망에 대해서는 서양미술사에 나타난 현상을 차용하여 풀어 보았다. 예컨대 다빈치의 ‘스프마토'를 ‘불확실성에 대한 포용력'으로 해석한다든가, 미술이 문명사에서 ‘화해자(和解者)의 역할을 한다는 등의 관점을 제시하였다. 또한 한국미술사 해석을 위한 기초로서는, 예컨대 ‘수용미학' 같은 서양미학이어느 정도 값어치를 발휘할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도 한국미술사의 고유성을 지키면서 세계미술사 속에 자리매김 되는 방법론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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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蕉雨와 樹黙의 石造美術史 연구와 의의

          엄기표(Eom, Gi pyo) 한국미술사학회 2018 美術史學硏究 Vol.299 No.299

          초우 황수영(1918~2011)과 수묵 진홍섭(1918~2010) 선생은 한국미술사 연구의 선각자이자 태두이신 우현 고유섭(1905~1944) 선생의 제자로 한국미술사의 기반을 다진 대표적인 한국의 초기 미술사학자이다. 우현 선생은 인천 출신이었지만 개성박물관장을 오랫동안 역임하였으며, 초우와 수묵 선생은 개성 출신으로 죽마고우였다. 이들 세 분은 개성에서 한국미술사와 관련된 조사를 함께 진행하고 연구 기반을 다져, 오늘날 한국미술사를 하나의 학문 분야로 자리매김하게 하였기 때문에 ‘개성삼걸'이라 부르기도 한다. 개성에서 세분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초우 선생은 우현 선생과 함께 유적지를 조사하면서 미술사의 필요성을 느꼈고, 특히 우현 선생이 갑자기 타계하고 나서 추도사를 준비하고 읽으면서 미술사 연구를 굳게 다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수묵 선생은 우현 선생과 함께 개성 인근의 유적을 답사하거나 박물관에서 우현 선생으로부터 한국 역사와 미술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깊은 감명을 받아 자연스럽게 관심이 미술사로 기울게 되었고, 대학 졸업후에 미술사 연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초우와 수묵 선생은 스승의 유훈을 계승한 한국미술사 연구의 선구자였다. 그리고 한국미술사 분야중에서 석조미술사를 중점적으로 연구하여 연구의 토대를 구축하였으며, 오늘날 중요한 학문 분야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초우와 수묵 선생은 스승과 마찬가지로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석조미술품 중에서 석탑과 석불에 대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진행하였다. 두 분은 석조미술사 연구에 있어 기본적으로 실증적인 연구 방법론은 견지하였으며, 거기에 양식과 기록 등 석조미술품의 이해와 연구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간과하지 않았다.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한국 석조미술품에 대한 시대별 편년 설정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그러한 성과를 통하여 양식적인 발전 과정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 한국 석조미술의 양식사를 체계적으로 정립시켰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오늘날까지 석조미술사 연구의 출발점이자 기초 자료가 되고 있어 미술사적으로 의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Chowoo Hwang Su-young(1918~2011) and Soomuk Chin Hong-sup(1918~2010) both learned from Woohyun Ko Yu-seop, a pioneer and an early luminary of Korean art history. They were scholars who laid the groundwork for art history of today. Ko Yu-seop was from Incheon, but worked as the director of the Museum at Gaeseong, where Hwang and Chin were friends from childhood. The researches they made from Gaeseong helped to establish Korean art history as an academic field, and for this, they are often referred to as “Gaeseong Samgeol (Three Heroes of Gaeseong).” Their friendship that started at Gaeseong could be described as fortuitous. Hwang first understood the value of art history when on field research with Ko, and decided firmly to pursue the subject as he prepared and read the eulogy for Ko after his sudden death. As for Chin, he was much impressed by monuments around Gaeseong when on surveys with Ko and by what he learned about Korean history and art from him at the Gaeseong Museum. It was only natural that Chin took interest in art history and deeply felt the need for art historical research after finishing college. Hwang and Chin were pioneers of Korean art history who followed in the footsteps Ko, their teacher. They were mainly concerned with stone sculptures, forming the basis of art history today, and securing its position as an important part of Korean art history. Both Hwang and Chin's main areas of interest were stone stupas and Buddhist sculptures from Three Kingdoms Dynasty, Unified Silla, and Goryeo, the same as Ko. Their method was fundamentally empirical but they did not disregard artistic style and written documents that were necessary for understanding and studying Stone sculptures. The two scholars' achievements made it possible to determine the dates of stone sculptures and to understand the stylistic development and changes that set up a systematic method for stylistic analysis. Their achievements are significant as the basis and the fundamentals of Korean ar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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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미술사연구의 과제와 방법론

          문명대(Moon Myung-dae) 한국미술사학회 2004 美術史學硏究 Vol.- No.241

          We now have 50 years of accumulation in the study of Korean art history. The number of students and scholars doing research in the university has also increased greatly. Researches are actively going on and noticeable achievements are being made in the field. But there is still a way to go until the standard of the study of Korean art history reaches one of the top levels in the world. More enhanced understanding and in-depth discussion is required in the tasks and methodology of the study of Korean art history and in the connoisseurship and art historical point of view. In this article, I would like to examine the accomplishments so far and make a suggestion for the future direction. The Art History circle today has a lot of tasks to fulfill. In this chapter, discussion will be confined to fundamental and theoretical aspects to evade redundancy. We will talk about the tasks in each field. The tasks pending in the study of the History of sculpture may be listed differently according to scholars. First. the most important task is to eliminate any misunderstanding that might arise due to a lack of understanding in the basic concepts such as 'form', 'style' and 'iconology'. Second, further study needs to be done regarding the introduction of foreign styles and the establishment of new styles. Third, further studies must be made with the iconographic and iconological approach. Fourth, more discussions should ensue in the sculpture of pre-historic ages including the rock carved patterns, the sculptural relics retrieved from tombs, and the portrait sculpture of kings and officials. We look forward to having more intensive study and discussions made on those issues. Fifth, posts in universities and museums have recently been filled up mostly by those who specialize in the history of painting, resulting in a fewer number of students wanting to study the history of sculpture. It is, thus, one of the practical tasks to be solved. The history of painting has been the most actively investigated field. One of the problems regarding the history of painting is that the relics are concentrated largely in the Joseon period. Such efforts have already been made but more systematic and activated studies should follow. Second, in-depth and elaborate analysis have been made in the background and the inclinations of the painters by searching the family-tree registers and the private anthologies of the related artists and people, resulting in an encouraging outcome. However, more efforts can be made in combining the socio-philosophical approach, for example, searching for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nsumer group and the cost paid for the painting. Third, while active studies have been made in the stylistic development and the school of art, iconological analysis of the landscape or figure paintings has rather been neglected. The crafts comprise various kinds of objects. Among them all, however, the most actively studied field is the ceramics along with the metallic arts. Rarely any study has been made in the rest of the objects. It is absolutely necessary the scope of study be expanded. Also, those who are alrwady involved in this field should expand their boundary of interest. Second, a stylistic approach will have to be boldly initiated in the study of the history of crafts: the studies so far confined in that of the ceramics and metallic arts' history have been made with a formalist approach. Third, an iconological approach also needs to be applied in the study of history of crafts. Architecture is basically an engineering structure, and the history of architecture cannot be understood fully without the knowledge of architectural engineering techniques It is, thus, hard for the art historians to make an easy access to the field. However, the history of architecture also comprises that of the art historical architecture. The task now is to focus on the history of the art historical architecture based on the studies made on

        • KCI등재

          최순우 선생의 회화사 연구

          이원복 ( Lee Won Bok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18 강좌미술사 Vol.51 No.-

          국립중앙박물관 4 대 관장을 역임한 崔淳雨(1916-1984)는 국립박물관에 40 년 넘게 봉직한 博物館人으로 문화예술 행정가이자, 큰 美術史學者이다. 그의 繪畵史 연구업적은 ‘한국미술 5 천년전' 국외전시, 1972 년과 1977 년 개최한 ‘한국회화 5 백년전'과 ‘국립박물관소장비장회화특별전' 등 수많은 전시기획, 資料發掘調査, 발표한 논고, 그 나름의 독자적으로 개척한 문화재관련 수필 등을 통해 확인된다. 회화사는 陶磁史와 함께 그의 연구에서 비중이 크다. 첫째, 현존하는 조선시대 그림 전체에 대한 聚合에 각별한 관심과 이에 대한 일련의 사업들을 들게 된다. 연구에서 가장 긴요한 기초 작업으로 개인소장 서화와 寺刹 내 佛畵照査 두 사업을 각기 5년씩 연차적으로 기획했다. 둘째, 조선시대 회화사적 비중이 큰 조선중기 화풍을 연 金禔(1524-1593)와 李慶胤(1545-1611)의 작품발굴이 주목된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인 보물 제 783 호 <童子牽驢圖>와 호림박물관 소장 20점으로 된 화첩 내 9 점에 화가와 동시대를 산 선배 崔笠(1539-1612)이 1598 과 1599 년에 직접 쓴 跋文과 讚詩가 있다. 화적이 드문 李楨(1578-1607)의 실경과 관념의 두 산수화첩,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문인화가 鄭遂榮(1743-1831)이 금강산을 그린『海山帖』등 한둘이 아니다. 조선 말 김수철과 洪世燮(1832-1884), 李喜秀(1836-1909)의 발굴은 새로운 감각으로 이異色畵風으로 지칭되는 전통회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시사점이 큰 화가들이다. 이들 작가에 대해선 박물관 내 李泰浩, 李源福 등 후학에 의해 본격적인 논고로 발표되었다. 작품발굴은 국외까지 이어져 미국 필라델피아 박물관 소장 李巖(1507-1566) 계열의 <狗子圖>, 영국 대영박물관의 肖像畵 草本과 불화도 있다. 셋째, 그는 우리나라 회화 전반에 대해 통시대적으로 살피되 일반회화 외에 불화와 民畵, 현대회화 평론까지 참여했습니다. 한국동란으로 부산 피난 중에 ‘제 1 회 현대작가 초대전'(1953.5.1-5.31)과 ‘한국현대회화 특별전'(1954.1.1-1.31)을 열기도 했다. 이들 그림을 함께 살필 때 우리 옛 그림의 眞面目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고대 한국회화 발달의 요람이 초기 불교회화에 바탕을 두었고 고대회화인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조선초기부터 말기까지 화가를 망라해 시대별, 화가별 화풍의 특징을 추출했다. 넷째, 공예분야의 연구와 더불어 도자가 문양의 繪畵性을 일찍이 간파했다. 그림의 전래가 드문 고려와 조선 초기에 있어 이들을 工藝文樣을 회화사의 補完資料로 원용한 점을 들게 된다. 다섯째, 국립박물관을 비롯해 사립박물관과 수많은 개인 소장품 등, 매 작품마다 오랜 세월 장기간에 보고 또 본 후 주도면밀하고 철저한 분석과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과 작가를 간결하고 길지 아니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정리했다. 일견 짧은 에세이이나 그 안에 쉽고 아름다운 文體로 서술하여 읽는 이에게 美感의 본질에 도달케 한다. 우리 조형예술 전반에의 따듯하며 예리한 시선으로 찾은 공통분모는 같은 한자문화권의 동질성을 전제로 살펴 편협하지 않은 國際的 시각이 아니다. 風土와 미감의 차이에서 빚어진 미적 差別性까지 살폈다. 결국 우리 회화의 독자성과 특징 나아가 韓國美의 특징의 추출로 귀결된다. As a fourth Director of National Museum of Korea, Choi Sunu(崔淳雨,1916-1984) had been dedicated himself to the museum over 40 years and now known as a diligent Museum Man, Culture and Art Administrator and great Art Historian. His achievements on Art History are remarkable from international exhibition ‘Korean Arts in 5000 years', domestic renowned exhibitions such as ‘Masterpieces of 500 Years of Korean Painting', ‘Korean Paintings selected from collection of the National M useum - to be shown for the first time to the public-' in 1972 and 1977. Apart from those results, his personal researches on art histories, documentations and research essays show his great interest on museum and its material cultures. Art History is one of his main research areas as much as history of Celadon. First of all, Director Choi did gather all exist paintings of Joseon and had been organised several works for these paintings. As a pivotal base works for his research, personal collections of Joseon Paintings and paintings that owned by temples were thoroughly studied in five years terms. Second, Choi focused on painters Kim Si(金禔,1524-1593) and Lee Kyeong Yoon(李慶胤,1545-1611) who both are crucial to understand intermediate term of Joseon Period. To a certain extent, Director Choi also uncovered Choi Rip(崔笠,1539-1612) who directly wrote poet on painting in Horim Museum and Leeum, Samsung Museum of Art and Lee Jeong(李楨,1578-1607) whose writings are rarely found and Jeong Soo Young(鄭遂榮,1743-1831) who draw Mount. Geumgang. Painters such as Kim Soo Chul, Hong Se Sup(洪世燮,1832-1884), and Lee Hee Su(李喜秀,1836-1909) whose works were mainly found in late Joseon are all famous for unique style which suggest the provision of traditional paintings. Those painters are all highlighted by younger researchers Lee Tae Ho, Lee Won Bok from National Museums. Third, Choi rigorously overviews not only traditional paintings of Korea but also Buddhist, Folk, and Modern paintings. ‘The First Invitation Exhibition of Korean Modern Paintings(1953.5.1-5.31)' and ‘Special Exhibition of Korean Modern Arts(1954.1.1-1.31)' had been organised in Busan even during the Korean War. Fourth, with the research on crafts, Choi comprehended the artistic perspectives of Celadon. As of its uniqueness of paintings in Goryeo and Joseon, it is hard to be descended for long time and so Choi tried to use the craft arts to understand the paintings. Finally, Choi's summaries on paintings from national, private museums and even from personal collections are simply made based on thorough researches on them that helps readers comprehend real value of paintings. His researches on Korean paintings are well shown its traditionality and distinctiveness of original but unique Korean styles, not just like other Asian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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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又玄 高裕燮의 ‘朝鮮建築美術史草稿'에 대한 연구

          이강근(Lee Kangkun) 한국미술사학회 2006 美術史學硏究 Vol.- No.249

          이 논문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건축사 연구에 몰두했던 又玄 高裕燮의 遺稿 ‘朝鮮建築美術史草稿'(이하 문맥에 따라 『草稿』혹은 ‘草稿』'로 줄여서 표기함)의 연구사적 의의를 밝힐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일본인들의 독무대였던 유적 조사, 미술사, 건축사 분야에서 고군분투한 끝에 독보적인 업적을 이룩한 又玄의 업적 가운데에서 젊은 날의 초기 저작인 ‘草稿'가 차지하는 위상을 네가지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즉, 집필동기, 서술체재와 내용, 건축미술사의 지향점, 우현이 찾아낸 조선건축의 특색 등이 그것이다. 먼저 ‘草稿'의 집필동기가 關野 貞의 『朝鮮美術史』(1932)와 藤島亥治郞의 『朝鮮建築史論』 (1930)을 극복하고 조선인에 의한 조선건축사를 쓰기 위해서였음을 밝혔다. 이 가운데서도 식민지배 시기에 충실하게 제국주의 문화정책의 앞잡이 노릇을 한 關野 貞이야말로 又玄이 가장 먼저 說破하지 않으면 안 될 대상이었다. 둘째, ‘草稿'의 서술체재와 내용이 關野 貞의 『韓國建築調査報告』와 『朝鮮美術史』, 藤島亥治郞의 『朝鮮建築史論』 등을 의식하여 쓰여졌으며 목차도 그러했다. 又玄은 두 일본인 학자의 저서를 모두 읽고 전자에게서는 시기구분, 후자에게서는 총론을 쓰는 데 도움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又玄은 시기구분에서 樂浪時代를 빼고 大韓時代를 넣음으로써 植民史觀을 벗어났으며, 총론에서는 환경결정론적 논리를 벗어던졌다. 藤島亥治郞 ‘朝鮮建築史의 地位'를 ‘일본건축사 연구의 보조물'로 치부한 데 대항하여, ‘朝鮮建築의 地位'와 ‘朝鮮建築의 特徵'을 새롭게 편성하기도 하였다. 셋째, 又玄은 미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건축만을 서술하되 건축 유물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라도 후대 건축의 계통과 관련해서는 간단하게 서술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집필에 임하였는데, 그의 건축미술사가 목표로 삼은 지향점은 ‘조선건축의 특색'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넷째, 又玄은 조선건축의 미적 특색을 서술하기 위하여 건축을 ‘미적 대상'으로 삼고 ‘미적 가치', ‘미적 효과', ‘미적 관계', ‘미적 구상', ‘미적 생명' 등을 읽어내려고 노력하였다. 작품의 미적 효과를 ‘맛'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주목되는데, 맛깔을 묘사한 형용사를 일회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특징을 다양하게 형용해 보려는 노력의 산물일 뿐 아직 조선건축의 미적 범주를 가리키는 말로 개념화된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찾아내고 규정한 朝鮮建築의 特色을 ‘朝鮮心', ‘朝鮮趣味', ‘朝鮮民族의 心理'에서 나온 ‘朝鮮色'이라고 말하고 있다. 건축미술의 연구를 통하여 조선미술의 특색을 찾아나간 又玄은 難攻不落의 城砦로 보였던 關野 貞과 藤島亥治郞의 저술을 어느 정도 격파하였다. ‘朝鮮建築美術史草稿'의 집필을 통하여 植民 史觀에 입각한 實證主義的 朝鮮建築史(又玄의 표현에 따르면 ‘古物調査臺帳')를 극복할 ‘美學的 基礎'를 마련한 又玄은 훗날 塔婆硏究에서 보듯 樣式論으로도 그들을 극복하였다. 광복 60돌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한국건축사 연구자는 ‘日本人의 朝鮮建築史'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朝鮮建築美術史草稿'에서 싹을 티운 ‘韓國建築美術史'의 완성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This essay attempts to explore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Draft of the Architectural History as Art History in Korea by Go Yuseop, the only Korean who devoted himself to research on Korean architectural histor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In this essay, I examine the significance of the draft in terms of four aspects, including his motive to write the Draft, his style of writing and the contents of the Draft, the goal of the study on the Korean history of architecture, and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architecture from Koh's point of view. The Draft is one of Go Yuseop's early works among many achievements he accomplished without peers as a result of hard work in areas that tended to be monopolized by japanese scholars. such as research on historical ruins. art history, and architectural history. Above all, an investigation into to the motive of the Draft shows that Go Yuseop intended to write a book on Korean architectural history as a Korean. rather than relying on writings by Japanese, such as Korean Art History by Sekino Tadashi (關野 貞) (1932) and A Theory on Korean Architectural History by Fujishima Kaiziro (藤島亥治郞) (1930). Between the two japanese scholars, Sekino Tadashi was the very person who, as one of those who faithfully played a key role in implementing imperialistic cultural polic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was the first person he had to overcome. Go Yuseop was conscious of Report on an Investigation into Korean Architecture and Korean An History by Sekino Tadashi and A Theory on Korean Architectural History by Fujishima Kaiziro while writing the Draft, which is manifest in the table of the contents of his work, Having read the writings by the two Japanese scholars, Go Yuseop apparently borrowed the periodization from Sekino Tadashi and the introduction from Fujishima Kaiziro However, he replaced the Nangnang period with the Daehan period, transcending me imperialistic historical point of view, and cast me theory of environmental determinism in me introduction, In resistance to Fujishima Kaiziro's dismissal of the status of Korean architectural history as a mere auxiliary to studies on Japanese architectural history. Go Yuseop reorganized the section on me "Status of Korean Architecture" and "Characteristics of Korean Architecture." Go Yuseop was determined to write, if briefly, about architectural pieces that were related to architecture of the later periods, even if the relics did not exist any more, while only selecting architectural pieces mat could be artistic enough to be treated as works of art. His aim was to find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architecture" by writing the Draft. Finally, Go Yuseop regarded architecture as an "aesthetic object" and attempted to interpret it in terms of its "aesthetic value," "aesthetic effect," "aesthetic relationship," "aesthetic structure," and "aesthetic life." His expression of the "aesthetic effect" with me word "emotional taste (맛)" attracts the readers' attention, which, however, may be viewed as the outcome of his effort to describe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architecturein various expressions, not as aconceptualized word included in the aesthetic category. He refers to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architecture he thus found as "Korean color" that comes from "Korean mind," "Korean taste," 'Korean mentality." Through his research on Korean architecture and an and his endeavor to articulate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architecture. Go Yuseop overcame Sekino Tadashi's and Fujishima Kaiziro's writings, to some degree, that acted as animpregnable fortress to Korean scholars at that time. Having established the "aesthetic foundation" of Korean architecture mat could replace the positivistic viewpoints of Korean Architectural History ("the Survey of Worn-out Objects" according to the expression by Go) based on imperialistic perspectives, Go Yuseop attempted to overcome the imperialistic theory on style as well in his Draft, w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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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수영 박사의 생애와 학문세계

          문명대 ( Myeogn Dae Moon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14 강좌미술사 Vol.43 No.-

          현대 한국미술사연구의 대가인 황수영박사의 생애와 학문세계를 체계적으로 논의한 글이다. 첫째 황수영 박사의 생애는 평생을 학문위주로 살았기 때문에 학문적 생애만 논의했다. 그 결과 4 단계로 나눌 수 있었는데, 수학기, 성장기, 완성기, 마무리기 등이다. 수학기는 29 년간이고, 성장기는 23년간이며 완성기는 15 년간이고, 마무리기는 25 년간이어서 학문을 왕성하게 연구한 시기는 약 38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근 40 여 년간 학문 활동에 전념했거나 학문연구를 지원하는 활동에 열성적이었던 관계로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둘째 업적은 첫째 고유섭 선생의 유고정리와 간행하는 업적, 둘째 고고미술동인회의 창립과 고고미술지를 간행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점, 셋째 불교미술학과와 대학원 미술사학과 등 문화재 내지미술사 관계 2 개 학과를 설립하는 업적, 넷째 불교미술 조사와 불교미술사(불상, 불탑, 불구, 금석문, 사경)연구를 개척하고 정립한 업적, 다섯째 석굴암의 중수와 국내외 석굴사원의 조사연구에 공헌한 업적 등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This study discussed systematically the life and academic world of Dr. Hwang Soo-yeong, themaster of contemporary studies of Korean art history. First, because Dr. Hwang Soo-yeong's entire life was committed to academic activities, this study was confined to his academic life. According to the findings of this study, his life is largely divided into the periods of learning, growth, maturity, and completion. The period of learning is 29 years, the period of growth 23 years, the period of mature 19 years, and the period of completion 25 years. Therefore, it is for about 38 years that he was active in academic research. Naturally as he was committed to academic activities or supported academic researches for nearly 40 years, he made considerable achievements in different areas. Second, his major achievements are grouped largely into five areas: firstly, the organization and publication of Dr. Ko Yoo-seop's posthumous manuscripts; secondly, remarkable contributions to the foundation of the Archaeology and Arts Club and the publishing of the Journal of Archaeology and Arts; thirdly, launching two academic departments related to culturalheritages and art history including the Department and Graduate School of Buddhist Arts and the Department of Art History; fourthly, pioneering and establishing research on Buddhist arts and Buddhist art history (Buddhist statues, stupas, Buddhist articles, epigraphy, and Sutra duplication); and fifthly, contributions to the restoration of the Seokguram Grotto and the surveys of stone cave temples in Korea and other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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