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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곤의 ‘한국적 연극’ 지향과 극작술의 상관관계 연구

          김숙경(Kim Suk-kyung) 한국극예술학회 2008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27

          본 논문은 ‘한국적 연극’을 지향했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영곤의 초기 작품을 대상으로 ‘한국적 연극’을 지향하는 그의 연극관이 극작술에 어떻게 반영되고 실현되는가를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대상 작품은 〈갑오세 가보세>, <점아 점아 콩점아〉, <격정만리〉이다. 김명곤은 마당극의 무대화를 통해 ‘한국적 연극’을 추구한다. 주로 동학농민혁명, 광주항쟁, 6.25 전쟁, 분단과 통일, 한국연극사와 같은 당면한 사회문제나 민족수난사에서 극의 소재를 취해 리얼리즘적 현실 깨닫기를 지향한다. 김명곤은 민중 지향적이고 진보적인 시각에서 주제의식을 부각시키고 있다. 작품의 구성에 있어 연구 대상 작품들은 상호 공통된 특성들을 보여주고 있다. 해설자를 등장시키는 서사극적 구조나 앞품이-각 장-뒤풀이 식의 마당극적인 구조, 그리고 연대기적 구성은 두 작품 이상이 갖고 있는 공통된 구성 방식이다. 마당극과 무대극 모두를 개방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창작의 방향을 표방하지만, 초기 극작품에서는 마당극의 영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며, 이는 이후까지도 김명곤의 극작술의 한 특성으로 지속된다. 초기 작품에서는 마당극의 구생원리와 무대극의 구성원리가 적절하지 않은 지점에서 충돌하기도 한다. 해설자 진행 방식이 극을 상투적이고 평범하게 만드는가 하면, 총체적 접근이라는 목적 하에 다수의 짧은 장면들을 연대기적으로 나열시켜 극의 효과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또한 내용과 구성방식이 유기적으로 관련 맺지 못하는 측면도 발견된다. 이러한 구성의 문제는 일정 부분 ‘연극적 방식’의 활용으로 공연에서 보완될 가능성을 마련하고 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연극적 방식’은 대부분 한국의 전통연희나 전통극, 판소리와 민요, 한국의 전통춤(몸짓), 한국 고유의 오브제나 의상 등 ‘한국적 연극’ 지향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한국적’이고 ‘연극적’인 방식의 활용은 구성의 밋밋함이나 느슨함을 보완해주고, 대중적인 친근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지나치게 잦은 삽입으로 표면상 ‘한국적’ 분위기를 내는 데에 그치기도 한다. 이런 경우 ‘한국적 연극’을 만드는 정형화되고 안이한 연출 방식에 기대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크다. ‘마당극의 무대화’, 또는 ‘마당극과 무대극의 절충적 계승’은 김명곤의 ‘한국적 연극’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자, 김명곤의 연극미학을 결정짓는 주요 개념이다. Many directors and play writers have pursued 'Korean style theater' since 1970's.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Myung Kon Kim who has pursued 'Korean style theater'. Myung Kon Kim is a playwriter and director and one of the representative writers who have created 'Korean style theater' since 1980's. I make, his early works, "Kabose Kabose", "Jum-a Jum-a Konjum-a", "Kyek-jung-man-ri" an objects of this study. His initial interests of 'Korean style' originated in the Ma-Dang-Kuek Movement. Ma-Dang-Kuek was handed down by the success of Tal-Chum(Mask play). He transformed Ma-Dang-Kuek into the style on the stage theater. The materials of his plays are basically focused to social subjects and historical matters of Korea like Dong-Hak revolution, Gyang-Ju demonstration, The Korean War, the division of Korean and unification of North and South, and Korean theater history. He often applies the plot of epic theater and Ma-Dang-Kuek. In the aspects of plots, the quality is not so excellent, because the principles of theater on the stage and Ma-Dang-Kuek clashsed in his works. Moreover he intends to put too many materials, stories, and characters into a play. Therefore it is not easy to communicate the message of the play. He cares much for 'theatrical ways' in writing and directing, which are movement, song and dance, the participation of the audience, play within the play, masks and dress, and spectacle. He takes good ideas on theatrical ways from traditional drama and culture like the technique of traditional theater and play, Pan-So-ri and Korean folk songs, traditional dance, original korean objects and dress. The theatrical ways cover the problems of the writing in the performance and make the audience feel easy. However the misapplication and frequent insertion of theatrical ways make a paly worse and complicated. In this case, Myung Kon Kim may cause misunderstanding that he intends to depend on the formal and easygoing way in creating 'Korean style 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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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한운사의 광복절 특집드라마 <기다려도 기다려도> 해제

          정현경 한국극예술학회 2015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49

          한운사(본명은 한간남(韓看南), 1922~2009)의 방송극은 선택된 사실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인간의 삶과 역사의 속내를 허구라는 틀 속에 담아 그려내며 시청자로 하여금 가려진 역사 속 진실과 대면하게 한다. 정현경,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24~26면 참조. 일제의 강점으로 시작된 20세기를 산 한국인들 모두가 그러하였듯이 한운사는 파란만장한 한국사를 그의 인생에서 현재로 살아왔다. 80여 편에 달하는 한운사의 방송극은 그의 인생 여정인 동시에 그가 살아온 질곡의 역사에 대한 미메시스(mimesis)라고 할 수 있다. 극작가로서의 한운사가 추동해내는 상상력의 구심점이 그가 살아온 ‘한국사’에 맞닿아 있는 것은 그의 문학관과 관련이 깊다. 그는 문학이나 영화를 자기가 살아본 세상에 있었던 일, 그때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였느냐는 이야기, 그런 것을 재현해 내일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가를 상의해 보는 장으로 인식하였다. 한운사, 『구름의 역사』, 민음사, 2006, 112면. 더불어 그는 식민과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 트라우마(trauma)를 ‘소화’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건강도, 개인의 건강도 유지할 수 없다고 보았다 위의 책, 126면. . 한운사에게 있어 ‘악몽’과도 같았던 민족사는 같은 역사를 공유한 민족의 ‘트라우마’이자 반드시 치유되어야 할 ‘독소’와도 같은 것이었다. 한운사가 끊임없이 ‘한국사’를 소환하고 있는 이유는 문학이 독자/시청자로 하여금 불행했던 역사로서의 민족적 ‘트라우마’를 직면하도록 하여 그것을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한운사의 극작은 일제강점기와 8.15광복, 한국전쟁 그리고 4.19혁명과 5.16쿠데타로 대표되는 정치적 갈등과 모순의 1960~1970년대로 이어지는 질곡의 한국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한운사의 작품 중, 「기다려도 기다려도」는 광복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향한 노모(老母)의 기다림과 죽음을 통해 민족의 수난과 비극을 극화한 ‘광복절 특집드라마’이다. 1970년대에 8.15광복을 기념하는 특집극으로 방영된 한운사의 TV 방송극은 모두 4편이다. 광복 30주년 기념 특집극으로 방영된 「미싯가루」(TBC, 1975)를 비롯하여 「기다려도 기다려도」(MBC, 1977)와 같은 해인 1977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3부작으로 제작되어 미니시리즈의 가능성을 보여준 「나루터 3대」(KBS, 1977) 그리고 「파도여 말하라」(TBC, 1978)가 그것이다. 1970년대에는 계몽과 선전선동의 목적극이 주류를 형성하였는데, 이들 특집극을 통해서 목적극의 실상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억압과 통제의 방송 현실에서도 소극적이나마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견지하고자 했던 작가 정신도 발견할 수 있다. 윤석진, 「광복 30주년 기념 특집극 <미싯가루> 해제」, 『한국극예술연구』 제37집, 한국극예술학회, 2012, 231면 참조. 한운사는 광복 기념 특집극들을 통해 일제강점으로 인한 민족의 수난을 극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주력하였던 것이다. 「기다려도 기다려도」는 광복 이후 30여 년이 흐른 서울의 종로를 극적 배경으로 설정하여 197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 어딘가에서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강조해 동시대성과 리얼리티(reality)를 획득하고 있다. 극의 전개는 교회의 교육관을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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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철의 『하믈레트』번역과 그 의의

          윤민주(尹珉珠) 한국극예술학회 2014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46

          현철의 번역희곡『하믈레트』는 한국의 셰익스피어극 수용사 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위치를 점한다. 우선 1920년대에 수용된 여타의 셰익스피어극과는 그 번역 양상과 번역의 목적이 가장 이질적이라는 점에서 시대적 특이성을 보인다. 1920년대에 이루어졌던 셰익스피어극 수용 과정을 일별해 보면 크게 두 가지 경향을 띠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한 가지는 ‘소설적 수용’이고 한 가지는 ‘연극적 수용’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적 수용’은 주로 찰스 램(Charles Lamb)의 『셰익스피어 이야기(Tales from Shakespeare)』를 저본으로 하여 독서용으로 번역한 것이다. 찰스 램의 저작물 자체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원작의 대사를 살린 산문체 형식으로 바꾸고 복잡한 구성을 간결하게 추림으로써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번역의 저본으로 삼은 가장 큰 목적은 셰익스피어극에 대한 한국인 독자들의 접근과 이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데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연극적 수용’은 현철의 『하믈레트』 에서 나타나는 경향으로 당시의 주류적 경향이었던 ‘소설적 수용’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현철의 『하믈레트』 는 실질적인 공연을 의식한 공연용 대본으로서, 희곡이라는 장르 자체가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상황에서 희곡을 문학의 하위 장르로서뿐만 아니라, 나아가 연극의 하위 장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는 실제적인 실례로 제공되었다. 이는 희곡 장르의 번역과 더불어 연극 대본으로서의 지위를 분명하게 표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번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소설적 수용’이 셰익스피어극의 내용에 대한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현철의 하믈레트 가 보여주는 ‘연극적 수용’은 희곡의 번역을 한국의 근대극 수립을 위한 근대극 운동의 일환과 관련시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현철의『하믈레트』가 갖는 시대적 가치는 일본의 셰익스피어극 수용 과정과 비교해 볼 때 보다 선명해 진다. 1920년대까지 일본 내에서 진행된 셰익스피어극 수용 과정은 크게 네 단계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는데, 가부키적 수용에서 신파극적 수용으로, 그리고 다시 신극적 수용을 거쳐 대학 강단의 학문적 수용으로 변모되어 나갔다. 그리고 1911년에 쓰보우치 쇼요의 ‘후기 문예협회’가 공연했던 <하무렛토(햄릿)>(1911.5)를 기점으로 셰익스피어극은 사실상 더 이상 공연되지 않게 되었다. 셰익스피어극이 더 이상 공연되지 않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11년에 공연되었던 <하무렛토>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그 배경에는 서구식 근대극의 연극적 성공과 일본 내에서의 영문학 위상의 제고 등과 같은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함으로써 1920년대가 되면 일본 내에서 셰익스피어극이 근대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고전극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현철의『하믈레트』 는 바로 일본 내에서 셰익스피어극이 근대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시점에서, 그리고 마치 일본의 전통 연극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옛날의 연극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던 쓰보우치 쇼요의 <하무렛토>공연에 사용되었던 번역본『하무렛토』를 번역의 저본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의아함을 불러일으킨다. 1920년대는 한국의 근대극이 본격적으로 태동하는 시기로, 한국의 근대극이 일본의 근대극을 모범적인 선례로 내면화하여 추수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철 역시 한편으로는 일본의 근대극이 서구식 근대극 수용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에 편승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서구식 근대극의 주변으로 밀려나 있던 셰익스피어극에 대한 관심을 피력했다는 것은, 일본식 근대극을 그대로 모방해서 뒤따르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 문학계의 상황과 연극계에 대한 명확한 현실 진단의 결과를 거쳐 나온 작가적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근대 연극인으로서의 그의 면모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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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기 유치진의 역사소재극과 민족극 구상

          이정숙(李貞淑) 한국극예술학회 2011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34

          한국전쟁기에 유치진은 반공극과 함께 역사소재극 두 편을 집필한다. <처용의 노래>와 <가야금>은 처용과 우륵이라는 예술가를 소재로 선택하여 이를 삼각관계의 멜로드라마로 풀어내고 있으며, 모든 갈등이 해결하는 것으로 예술의 힘을 배치하여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기존의 대사 위주의 화극에서 벗어나 춤과 노래를 활용하였고, 창극과 같은 전통극의 기법을 도입하여 극의 표현기법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전쟁기의 유치진 희곡은 국립극장 재개관에 대한 요구와 국립극장에 적합한 민족극 구상의 일환으로 창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립극장은 유치진의 오랜 바람이 실현된 형태였다. 그러나 전쟁으로 국립극장의 기능이 정지되었고, 재개관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유치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의 힘을 보여주어 국립극장 재개관의 당위성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전쟁기의 역사소재극은 국립극장에 적합한 민족극에 대한 모색의 결과였다. 유치진의 민족극 구상에서 전통극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기존의 사실주의극의 기법이 우리의 생활이라는 내용만 가져온 것이라면 전통극의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우리의 그릇에 우리의 생활을 담는 민족극 모색이 가능해지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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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현대극’으로서 사실주의 연극의 양상

          이영석(Lee Youngseok) 한국극예술학회 2015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47

          이 글에서는 차범석의 희곡과 제작극회의 공연 내용을 통해서 1950년대 사실주의 연극의 한 양상을 점검한다. 1950년대 후반 한국 연극계에서는 현대극 수립의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차범석과 제작극회는 ‘현대적 감각’에 맞는 연극 활동을 표방하였다. 그것이 극작과 공연에서 어떻게 드러났는가를 고찰하는 것은 현대극 수립을 위한 모색의 양상을 점검한다는 의미가 있다. 차범석과 제작극회는 감정을 발산하는 연기에 반대하였고, 사실에 부합하는 생활상을 무대화하려 했다. 차범석은 감정의 토로를 통해 현실의 비참함을 폭로하는 방식에 반대하고 현실에 문제점을 객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현실과 거리를 두며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인물을 통해 시도된다. 차범석의 장막극 <불모지>, <공상도시>, <껍질이 째지는 아픔 없이는>에는 객관적 극중 세계에 포괄되지 못하는 주관적 내면의 영역을 지닌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들은 자신을 둘러싼 극 중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임으로써 작품이 반영하고자 하는 현실에 대해 사회 비평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은 1950년대 현실에 대한 차범석 희곡의 연극적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제작극회에서도 사실적 재현을 중심 미학으로 삼아 공연을 전개한다. 이들은 연기에서 감정의 절제를 추구했으며, 무대장치에서는 시대적 생활상에 부합하는 환경을 조성하려 노력했다. 차범석의 텍스트와 그 무대화에서는 때로 인물의 심리적 정황을 무대장치에 반영하거나 현재의 심적 상태를 암시하기 위해 과거 회상 장면이 도입되지만, 작품의 전체 양식은 사실적 재현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 등장인물들의 주관적 정당성은 구체적인 사건 안에서 형상화되지 않고 광기나 분노로 직접 표출되는 양상을 띤다. 이것은 절제된 행동으로 인물의 심리 변화를 암시하고자 한 제작극회의 연기 노선과 모순되는 것이며, 관객에게 거부감을 사거나 무대-객석 간에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를 가져오기 쉬운 것이었다. 비록 텍스트와 공연에서 이들이 추구한 절제의 미학이 온전히 실천되지는 못했으나, 연기에서 감정보다는 정확한 극 행동을 추구하고 현실에 부합하는 재현의 충실성을 기하는 이들의 노력은 이후 사실주의 성취의 토대가 되었다. <산불>의 공연은 이점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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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세덕의 번안 희곡 〈산적〉 연구

          김남석(Kim, Nam-seok) 한국극예술학회 2012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38

          이 연구는 낙랑극회의 공연 대본인 <산적>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낙랑극회는 1945년에 발족하여 1947년까지 활동한 대중극단으로, 한국 역사에서 이 시기는 흔히 해방공간으로 불린다. 이 연구는 낙랑극회가 창립하여 <산적>을 공연하고, 그와 동시에 함세덕이 <기미년 3월 1일>을 집필 준비하는 기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자연스럽게 낙랑극회의 1945년부터 1946년까지의 공연사와, 해방공간에서 함세덕의 활동이 다루어질 것이다. 그 결과 낙랑극회의 의의뿐만 아니라, 극작가 함세덕의 특성 또한 분석될 것이다. 당시 낙랑극회는 신극과 신파극, 우익극과 좌익극, 지성 연극인과 전문 연극인의 틈바구니에서 활동하였고, 어떤 면에서는 양자의 특성을 지니는 극단이었다. 그로 인해 1945년부터 1950년에 이르는 해방공간에서 한국연극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극단으로 평가될 수 있다. This paper reviews the Nacklang-kuckhoi(Nacklang theater company)"s play, The Robber. Nacklang-kuckhoi was organized in 1945 and worked Until 1947. In Korea history, This period is a part of the Liberation period. This paper arranges the aspect of Nacklang-kuckhoi‘s plays in 1945 to 1946 and finds out the special feature of it. This dissertation has been written with a purpose to examine and to understand the Nacklang-kuckhoi in 1945 and playwright intent of Hamsedeok in second half of 1940s. In conclusion, this paper checks the meaning and significance of The Robber in Nacklang-kuckhoi"s palys and as Hamsedeok"s masterpiece. Nacklang-kuckhoi was a dramatic company that was compositively coexisted with Sinkuck and Sinpakuck, the Right and the Leftism, an Intellectual player and a professional actor. This aspect is particular instance of the varied appearance and characteristic of Korean play in 1945 to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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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오영진의 좌표와 음악극 실험

          최승연(Choi Seungyoun) 한국극예술학회 2016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51

          이 논문은 해방 후 오영진의 좌표 아래에서 창작된 음악극 <오곡타령>에 주목하고 그 특징을 밝혔다. 이를 동시대 음악극의 장 안에서 살피고 같은 시기에 창작되었던 유치진의 <처용의 노래> 와 비교함으로써, 한국의 뮤지컬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 오영진의 뮤지컬 실험을 어떻게 포지셔닝할 수 있을지 관찰했다. 오영진의 음악극은 정치와 예술의 경계에서 길을 잃거나, 아예 음악극의 정전이 되었다. 오영진의 음악극이 보여준 행보는 가난한 제3세계 국가였던 한국에서 뮤지컬이 어떠한 조건 아래에서 시작되고 진화되었는지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정치와 예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사이에서 꽤 오랫동안 경계에 놓여 있던 한국 창작뮤지컬의 ‘애매한’ 정체성은 오영진의 작업에서부터 발견되는 셈이다. This article analyzes the music drama “Ogok taryeong” made by Oh Youngjin in comparison with his contemporary Yu Ch’ijin’s “Ch’eoyong ga” in order to position Oh Youngjin in the history of music drama in Korea. Oh’s works reveals conditions of music drama when it started in the beginning, and has since evolved in Korea. This article concludes that his drama reflects the ambiguous character in Korean musical, which has long been straddled between politics and art, and between elite and popular cul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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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예술연구회 제2기의 번역극 공연에 대한 연구

          김재석(Kim, Jae-seok) 한국극예술학회 2014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46

          극예술연구회 제2기는 1935년 11월의 제8회 공연부터 시작된다. 번역극 공연으로 식민지조선 근대극의 전범을 제시하려 했으나 목표에 이르지 못했던 제1기의 후유증을 안고 출발했다. 극예술연구회는 창작극에 공연 기회를 많이 주는 ‘실천행동의 기관’으로 변화를 꾀했다. 번역극은 서양의 유명 작품 위주였던 제1기적 경향을 벗어나 동시대성이 강한 작품을 주로 공연했다. 1936년에 실천부원들의 탈퇴 사건이 발생하면서, 공연의 대중성 획득은 극예술연구회의 당면 과제로 떠오른다. 제2기의 창작극 공연에서는 대중성을 강화하려는 유치진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으나, 번역극 공연에서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번역극 공연에서는 유치진의 “리알리즘을 토대로 한 로만틔시즘”이 제대로 관철되지 못하였으며, ‘명쾌한 불란서극’을 선호했던 유치진의 의도와 달리 ‘침통한 희곡’의 공연이 계속되었다. 1937년에 <포-기>는 흥행에 실패하였으나, <부활>이 성공을 거두면서 유치진은 번역극 공연에서 자신의 주장을 계속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 무렵의 극예술연구회 번역극 공연에서는 관객의 취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해진 반면, ‘연구와 실험’ 정신은 거의 사라진다. 그 결과 극예술연구회 제2기 번역극 공연에서는 식민지조선의 현실과 연관성 있는 내용이면서, 슬픔의 정조가 지배적인 사실적 표현의 무대극이 대세를 이루었다. 제2기 극예술연구회의 번역극이 도달한 지점은 <김영일의사> 이후 식민지조선의 창작 근대극이 나아간 곳과 동일했다. The second stage of Geugyesulyeonguhoe, the theatrical company started from the 8th performance of November in 1935. The performance perception of centripetal translated drama in its first stage tried to make the model of modern drama in colonized Joseon, only to fail, so the second stage had to start with its aftermath. Yu Chijin insisted that Geugyesulyeonguhoe should be changed into "the institution of practical action" In the performance of creative works, his insistence that pursued the popularity was accepted, but in the performance of translated drama it wasn"t. It"s because he preferred "explicit French drama" and unlike his intention, the performances of "grave drama" continued The members of practice withdrew from the Geugyesulyeonguhoe in 1936, when the acquisition of popularity in performance came to the front as the matter in hand. But his "romanticism on the basis of realism" was not well expressed in the performance of translated drama. Porgy failed in performance and Resurrection succeeded and as the result, it was difficult for Yu Chijin to continue his insistence. At this time, the Geugyesulyeonguhoe didn"t try experimental dramas and its differentiation from the other theatrical companies which made much of the audience"s tastes almost disappeared. After that they performed mostly realistic stage dramas which the mood of sadness rested over. The performance of translated drama of Geugyesulyeonguhoe brought the same result that the modern drama of colonized Joseon had reac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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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중간극’ 이념의 생성과 역사적 전개에 관한 연구

          김남석(Kim Namseok) 한국극예술학회 2015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48

          1930년대 중반을 넘어서자, 朝鮮 演劇界에는 ‘中間劇’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일어났다. 그 기폭제가 된 사건은 ‘中央舞臺’의 창립과 中間劇 이념의 제창이었다. 이후 中間劇은 朝鮮 演劇界의 화두가 되었고, 1930년대 후반 朝鮮 演劇界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상정되었다. 비록 中間劇이 최초에는 다소 우발적으로 도입되었지만, 점차 新劇 陣營과 大衆劇 陣營 모두가 관심을 두는 장르로 발전했던 것이다. 비록 中間劇이라는 장르 명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을지라도, 관객의 확대를 꾀했던 新劇 陣營과 작품의 질적 수준 향상을 염원한 大衆劇 陣營 양자에게 中間劇은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1940년대에 근접하면, 新劇 陣營은 그 위세가 위축되면서 大衆劇의 特徵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大衆劇 陣營의 演技 方式과 大衆性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大衆劇 陣營 역시 ‘高協’으로 대표되는 中間劇 양식의 일차적 완성을 실현하게 되었다. 이러한 양자의 중간자적 혼류 양상은, 1940년대 연극의 원류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이후 1940년대 朝鮮 演劇界는, 관객의 성향을 충족하면서도 작품의 질적 향상을 꾀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도모하였고, 中間劇은 그 대안으로 인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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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어문』제재 수록 양상 연구

          윤금선(Yeun, Keum-sun) 한국극예술학회 2014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45

          이 연구에서는 조선족의 국어교육 교재인『조선어문』을 대상으로 극문학 제재 수록 양상 및 학습 활동을 고찰였다. 실제 분석에서는 극문학의 성격상 1. 민족극, 2. 해외극, 3. 기타 중국극 등 유형별로 고찰하였다. 분석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일종의 예비고찰로서『조선어문』교재의 특징에 대해 살피고 극문학 제재의 유형을 정리하였으며, 둘째, 위의 교재의 특징 및 제재의 유형을 토대로『조선어문』의 극문학 내용 및 학습 활동을 분석하였다. 분석의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2007년에 조선족의 조선어 교육 과정인〈조선어문과정표준〉이 개정되었다. 개정 교육과정에서 는 변화된 사회 환경과 조선어 교육의 현실을 반영하였으며, 특히 한국의 제7차 국어교육과정을 참고로 하여 편찬되었다. 이에 따라 민족교육의 단일 교재인 『조선어문』도 새로운 교육과정을 반영하며 개편되었다. 극문학 수록 양상 및 학습 활동을 보면, 1. 민족극은 장르상 희곡, 방송극, 뮤지컬, 가극 등으로 대별된다. 희곡의 경우, 국내 국어 교과서 극본과 학습 문제를 그대로 차용한 단원들이 보이는데, 이는 한국의 7차 교육과정과의 영향 관계를 보여준다. 2. 방송극, 뮤지컬 및 가극 등의 음악극은 각각 1편씩 소수에 불과한데 각각 조선족, 한국, 북한 등에서 창작된 대표작을 수록하고 있다. 학습 활동은 장르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3. 해외극 및 중국극의 경우, 해외극은 전체 극본 유형 중에서 가장 빈도수가 높으며, 영미 희곡이 지배적이다. 또한 감상 위주의 ‘선택 과정’ 교과서에서 다루어지고 있어 감상을 위한 간단한 학습 활동만을 보인다. This research examines tendency of how the dramas are included on Chosun-Eomun which is Korean textbook of Chosun-jok and its learning activity. The purpose of the research is investigating how the drama is learned in Korean education of Chosun-jok. The revised edition of Chosun-Eomun in 2007 is analyzed in the research, and textbooks of every grade are aimed. The analysis can be divided into two ways. The first one describes a character of Chosun-Eomun and types of the dramas on the book, and the next one actual situation in the text book and learning activities of the textbook. Chosun-Eomun, unitary textbook of the national education has been changed as the information-oriented age has arrived in 21st Century. Especially, It is interesting that revised edition of Chosun-Eomun in 2007 refers to ‘The Standard of Literary Education of Chosun’ and 7th Curriculum Period of Korea. The dramas is divided into national play, foreign play, and Chinese play. National play is composed of plays, broadcast plays, musicals, operas. In the case of plays in textbook, it can be seen that several chapters borrow scripts and questions from textbooks of Korea. This is because they followed Korean education curriculum of Korea. Musical plays such as broadcast plays, musicals, operas are major works which are written by Chosun-jok or i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The number of these plays is only one of each genre. British and American dramas account for most of foreign plays, and they occupy the highest proportion of the whole of scripts. It is distinguishing feature that most of foreign plays are included in selective curricu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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