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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의 쟁점과 전망

          정한범 ( Hanbeom Jeong ) 평화문제연구소 2018 統一問題硏究 Vol.30 No.2

          불과 수개월 전 전쟁의 불안감이 엄습하던 한반도에 이제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과연 65년간 이어져 온 한반도의 정전체제는 새로운 평화체제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인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역사적 사명에도 불구하고 현재 체제의 전환은 많은 편견과 신뢰부족, 그리고 구조적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첫 번째 단계이자 입구라고 할 수 있는 ‘종전선언’을 두고 비핵화조치와의 선후문제와 선언 자체의 정치적, 법적 의미에 대해서 각 당사자들 사이에 다양한 견해와 불일치가 존재하고 있다. 종전선언에 대한 논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최초 북미정상회담의 결과, 이제 한반도에서 평화협정 당사자 문제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는 듯하다. 주한미군과 유엔사의 법적 지위문제도 북한 측의 전향적인 입장표명으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비핵화의 문제는 아직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선후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고 있지 않다. 결국, 한반도에서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대의를 거스를 수 없다면, 미국과 북한이 동시행동에 나서는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We are in the middle of the discussion on building peace regime on the Korean Peninsula where the terror of war hung around until just a few months ago. Can we really transfer the armistice regime lasted for last 65 years to peace regime in Korean Peninsula? In spite of our mission to build peace regime in the peninsula, the endeavor to transform the regime has faced with structural huddles such as diverse biases and lack of trusts. The first issue is about the order between the ‘declaration of the end of war’ and ‘denuclearization.’ There are also disagreements on the political and legal meanings of the declaration among the parties involved around the peninsula. Fortunately, it seems there is no controversy in that both Koreas are the right parties to sign the peace treaty as well as the US and China as a result of the three summits between the South and North and the North Korea-US summit. The status of the US Forces and the United Nations Command in Korea would not be a problem, either, considering the attitudes of the North during the series of dialogues this year. Then, the order between the ‘declaration of the end of war’ and ‘denuclearization’ is the only remaining huddle. To solve this problem, both parties should accept the principle of reciprocity.

        • KCI등재

          한반도 평화체제와 평화협정 -개념, 쟁점, 추진방향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2010 統一問題硏究 Vol.22 No.1

          The Korean War of early 1950s is not over.During the past 60 years South and North Korea have been atnegative peace depending on the Armistice Agreement despite of having sought positive peace since early 1990s.It means the Korean Peninsula is still at very unstable situation with occasionalarmed conflicts.This is the reason why we need peace regime to terminate the Korean War and make positive peace toward the 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The peace regime on the Korean Peninsula as the realization of positive peace has broad issues including NorthKorean nuclear problem as a major obstacle. In this regard this article suggests four interrelated directions of policy to establish the peace regime getting over nuclear problem: comprehensive approach including political and economic affairs as well as military affairs,phased approach especially consider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future-oriented approach and strengthening inter-Korean cooperations in parallel with making progress innuclearproblem totaketheinitiativeinthenegotiation. In the way to the peace regime a new agreement replacing the Armistice Agreement is also necessary to terminate the war and make a legalbasis forthe peace regime.Concerning the form of the new agreement,flexible approach is required and a basic agreement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the United States and China with necessary bilateral agreements is recommendable. Regarding the actual issues, directly related parties especially South and North Korea need to be oriented toward future with political and economic solutions on hard issues like NLL ofthe West Sea whichi is difficult to be solved from any legal points of view.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1990년대 초 이후 적극적 평화를 모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60년간 남북한은 정전협정에 의거한 소극적 평화를 유지해 왔다.이는 한반도가 우발적 무력충돌이 발생하는 가운데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고 한반도 통일을 향해 적극적 평화를 실현해 가기 위한 평화체제가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적극적 평화의 실현으로서 한반도 평화체제는 주요한 장애물인 북한 핵문제를 포함하여 광범위한 현안들을 갖고 있다.이와 관련이 글은 핵문제를 극복하면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상호 연관된 4가지 정책 방향으로 군사적현안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사안을 포함한 포괄적 접근,한반도 비핵화의 특성 등을 감안한 단계적 접근,미래지향적 접근 그리고 협상주도권 확보차원에서 북핵문제 진전과 병행한 남북 간 협력강화를 제시한다. 평화체제를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체제의 법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정전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협정의 체결 또한 필요하다. 새로운 협정의 형식과 관련하여 유연하게 접근할필요가 있으며 남북미중 간 기본협정 체결과 필요한 양자 간 협정 채결 방식이 바람직하다.실질적인 현안문제들과 관련하여 직접 관련된 당사국들 특히 남한과 북한은 법적 측면에서는 해결되기 어려운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같은 난제들에 대해서 정치적,경제적 해법을 모색함으로써 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KCI등재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과제와 전망 ; 한반도 평화체제: 정치,군사적 분야의 과제와 방안

          이철기 평화문제연구소 2001 統一問題硏究 Vol.13 No.1

          한반도 평화체제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대체와 한반도에서 냉전구조의 해체, 한반도 평화에 대해 국제적인 보장의 확보를 의미한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평화협정의 체결, 북한미사일 문제의 해결, 주한미군문제의 해결, 군사적 긴장완화와 군축의 추진이 과제로 주어진다. 평화협정과 관련해 당사자문제를 푸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4자간의 ‘2+2 협정’과 북미간 협정, 즉 2개의 협정을 동시에 체결하는 것이다. 북한 미사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안전보장에 대한 미국의 약속과 북한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필요하다. 또한 주한미군을 보다 중립적인 지위와 성격으로 개편해야 한다. 군사적 신뢰구축조치와 실질적인 상호 군축도 필요한데, 남북한의 군축은 상호 공격능력의 제거와 병력에 대한 대폭적인 감축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정치군사적 조치는 3단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행해 나간다. ‘평화체제단계;에서는 군축과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들이 이행된다. 또한 유엔사의 해체와 주한미군의 감축 및 후방으로의 이동이 이행되며, 비무장지대에 다국적 평화유지군이 주둔한다. ‘남북한연합단계’에서 남북한은 각기 보유한 군사력에서 다시 추가적으로 1/3씩 감축을 단행하며, 미해?공군력도 한국에서 완전 철수한다. ‘통일국가단계’에서 통일국가의 적정병력수는 24만~28만명으로 평가된다. 한국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들을 이어가기 위한 단기적이고 실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남북당사자중심원칙’에 입각하여, 당국회담의 상설화?정례화를 통한 사실상의 남북연합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둘째, ‘실용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선 평화선언, 후 평화협정”형태로 추진한다. 셋째, ‘다자주의 및 균형주의원칙’에 입각하여, 외교안보정책을 다변화하고 균형화 한다.

        • KCI등재

          북한 비핵화 딜레마의 평화적 전환 : 갈등전환이론의 검토와 적용

          김진주 ( Jinjoo Kim ) 평화문제연구소 2021 統一問題硏究 Vol.33 No.1

          본 논문은 갈등전환이론의 틀에서 북한의 핵과 비핵화 딜레마를 분석하고 갈등전환 유형에 따른 건설적 평화구축 방안을 모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갈등연구분야에서 가장 진보한 이론들 중 하나인 갈등전환이론은 갈등해결과 건설적 변화과정, 양쪽 모두로 확장되어 다양한 시각에서 새로운 갈등을 수용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설계하고, 현 상황에 적합한 갈등관리의 틀을 만들어 평화적 전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조명할 수 있도록 한다. 본 논문은 북미 간 상호양보, 신뢰와 지속적인 대화, 그리고 동북아 다자협력의 제도화를 통한 딜레마의 평화적 전환만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길임을 제시한다. 창조적인 갈등의 전환은 평화를 위해 어떻게 갈등의 에너지를 건설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렸다. This paper aims to analyze North Korea's nuclear and denuclearization dilemmas in the framework of conflict transformation theory and to seek constructive peace-building measures according to the type of conflict transformation. The theory of conflict transformation, one of the most advanced theories in the field of conflict research, sheds light on the process of peaceful transition by creating a framework for conflict management suitable for the current situation. Conflict transformation theory extends to both the process of conflict resolution, constructive change, and to design a foundation for accepting new conflicts and responding quickly from various perspectives. This paper suggests that a peaceful transition of the dilemma through mutual concessions, trust and continuous dialogue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and multilateral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is the way to move toward permanent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The creative transformation of conflict depends on how the energy of conflict can be constructively induced for peace.

        • Die Balkanpolitik RuBlands und Osterreichs vor dem ersten Weltkrieg

          Ri, Woo-Young 慶北大學校 平和問題硏究所 1976 평화연구 Vol.1 No.1

          恒時 「世界의 火藥庫」로 불려졌고 現在도 키프로스問題를 비롯, 여러 가지 紛爭點을 안고있는 Balkan 半島에서 76年初 Balkan 半島 5個國間의 地域協力 可能性을 摸索하는 Balkan 會議가 開催되었다. 오늘날 Balkan 半島에는 蘇聯圈의 불가리아, 新中共的인 알바니아, 非同盟의 유고, 獨自路線을 걷고있는 루마니아, 西方側의 그리스와 터키가 서로 도사리고있어 「世界의 縮圖」라고도 할만한 地域이다. 이러한 Balkan 地域에 最近 外交的動搖가 눈에 띄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特히 Balkan 諸國의 政治的接近과 結束으로 蘇聯等 外勢로 부터의 影響을 沮止시켜 보자는 Balkan 諸國의 努力이지만 戰後 東西의 政治·軍事블록이 再三再四 交替된 곳인 만큼 難航이 거듭 될 뿐이며, 더욱이 Balkan 諸國의 政治的意義를 읽고 있는 蘇聯은 Balkan 會議 開催初부터 黑海와 가스피海사이에서 陸空機動演習을 實施하여, Balkan 會議를 側面로부터 견제하는 인상을 주었고 蘇聯이 機動訓練에 그리스와 터키를 비롯 이들 5個國의 옵서버를 招請한 것은 Balkan 半島의 自由化 乃至 陣營化를 憂慮 壓力을 加해보자는 속셈을 들어낸 것이었다. 實로 蘇聯이 Balkan 半島에 憂慮하고 있는 背景에는 歷史的으로 數많은 Balkan 條約等의 先例가 있기 때문에 如何한 反蘇的인 움직임도 용서 할수없다는 强硬策이기도하다. 이러한 蘇聯의 最近 움직임은 「世界의 火藥庫」인 Balkan 半島의 政勢를 더욱 激化시키지나 않을지 憂慮되며, 國際緊張緩和로 因한 政情의 流動化와 未來에 對한 多角的인 選擇을 摸索하려는 Balkan 諸國은 새로운 局面에 부디쳐 事態의 進展이 注目된다. 이에 本稿는 今世紀初 露墺兩諸國의 Balkan 政策을 分析比較하므로서 第1次世界大戰의 火藥庫가 되어버린 Balkan 半島의 政情을 보다 正確하게 史的으로 究明하고저 한다. 20世紀 前後 淸日戰爭과 露日戰爭의 두차례에 걸친 戰爭에서 勝利한 日本은 極東에서의 地位가 强化되어 그 侵略政策을 더욱 活潑히 推進하게 되었으면 1905年 11月 에는 韓國에 保護條約을 强要하여 그 外交權을 빼앗고 1910年 8月에는 韓國의 全民族的인 反抗을 무릅쓰고 그 倂合을 强行하여 滿洲에의 戰略的 要地를 손에 넣게 되었다. 한편 露日戰爭에서 敗北한 露西亞帝國의 外交政策의 一大轉換은 유럽大陸의 國際關係에 對해 새로운 局面을 이룩하게 되었다. 露西亞外交가 極東에 있어서의 全面的인 挫折은 그 方向을 再三 Balkan 半島로 옮기게 했고 그 外交는 1906年以來 Iswolski 外相에 依해 構築되어 진 것이다. 그러나 Bulgaria 事件以來 暫定的인 露墺關係의 緩和는 다시 緊張이 高潮되고 當時 Balkan 半島에 있어서 露西亞의 威脅이 되었든 것은 墺國뿐이 아니었고, Bagdad 鐵道建設計劃을 推進中에 있는 獨逸帝國과 兩海峽을 重視하는 露西亞와의 關係도 매우 徵妙한 것이 되지 않을수 없었다. 따라서 英國은, 極東地域에서 露西亞勢力이 逐出된 뒤 獨逸과의 緊張化를 露日戰爭後 英國은 對露接近을 懸案으로 삼게 되고 露佛同盟과 英佛協商을 앞서 이룩시킨 佛蘭西 또한 英露接近을 爲해 盡力시킨 나머지 1907年 英露協商을 成立케 한 것이다. 英國이 유럽大陸에 있어서 兩陣營中 그 한陣營에 加擔하게 되었다는 事實은 유럽의 勢力均衡을 어지럽히는 結果가 되었고 그 以後 유럽의 平和는 不安定한 基礎위에 놓여진 것이다. 當時 獨逸은 唯一無二한 墺地利와의 友好關係를 重視치 않을 수 없게 되고 獨逸外交는 자연히 墺國의 Balkan 政策에 追從치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政勢속에 Balkan 半島는 露墺樹立의 樣相이 한層 激化되었고 Balkan의 危機는 유럽大陸의 危機라는 性格을 두텁게 한 것이다. 實로 20世紀에 들어서자 Balkan에서는 Serbia人, Slowenia人, Kroatia人, Bosnia人 等 南 Slav系 諸民族의 大 Serbia 主義運動이 深刻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이 運動의 目的은 土耳其와 墺地利의 支配下에 있는 Serbia人과 그外의 모든 Slav 族을 結合하여 大 Serbia 國을 建設하려는 것이며 1903年 6月 親墺地利的인 Alexander 國王과 그 閣僚의 暗殺을 契機로 이 運動은 反墺地利的인 色彩를 띠게 되었다. 이리하여 Serbia에는 Peter 1世가 王位에 올랐으며 그는 大 Serbia 主義의 領導者로서 大 Serbia 主義의 旗幟下에 王朝의 運命을 開拓하려고 하였든 것이다. 이리하여 Serbia는 漸次 露西亞에 接近하게 되었고 이에 墺地利는 큰 威脅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런데 1908年 1月 墺地利 Aehrenthal 外相이 土耳其로부터 Sandschak 鐵道開設權을 取得하고 이를 列國에 通告하게 되자 Balkan 半島에는 또 다시 큰風波가 일어나게 되고 墺露間에 締結된 1897年 協定은 事實上 깨어지게 되었다. 한편 露西亞外相 Iswolski는 Sandschak 鐵道事件의 憤怒를 抑制하고 英國王 Eduard 7世의 露西亞訪問을 契機로 海峽問題解決이라는 歷史的課題를 實現하려고 努力하며서, 墺露兩國間에도 Bosnia 問題와 海峽問題를 友好的으로 討議할 것을 希望한다고 通告하였다. 때 마침 靑年土耳其黨에 依한 土耳其革命과 Bosnia, Herzegowina 兩州의 法的地位를 明白히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 Aehrenthal 外相도 이에 同意하고 歷史的인 Buchlau 秘密會談이 開催되었다. 그러나 Buchlau 會談은 兩國外相間에 다만 友好的인 態度를 取해 보겠다는 約束이였으나 Aehrenhal 外相의 獨斷的인 兩州倂合宣言이 發表되므로서 Serbia는 激憤하여 戰爭準備에 着手되고 露西亞는 國際會議召集을 通해 再論할 것을 英國과 佛蘭西에 要請하게되었다. 그렇지만 露西亞는 國際會議에 列國이 應해 주지않고 土耳其와 墺地利는 兩州의 國有地에 對한 賠償과 經濟的利權을 約束하고 正式協定에 調印하였기 때문에 事實上 露西亞로서는 兩州倂合을 承認하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 이리하여 露西亞와 Serbia는 屈辱的인 誠意表示를 하게 되었다. 이로써 Bosnia의 危機는 墺地利의 勝利로 끝을 맺었지만 그 勝利는 向後重大한 戰爭의 씨앗을 남겨놓은 表面的인 勝利에 不過했고 墺露兩國間의 決定的인 段階에 이르게 되고 墺國과 Serbia는 宿敵이 되었든 것이다. 그리하여 Balkan 情勢는 露伊의 接近으로 急變되고 伊墺兩國間의 對立은 結局 1909年 露伊間의 Racconigi 協定의 締結로 進展되었다. 墺地利에 依한 Bosnia, Herzegowina 兩州의 倂合은 實際 Balkan 事態를 한層 激化시킨 것은 事實이지만 1911年 佛蘭西의 Marokko 政策推進은 直接的인 Balkan 半島의 不安定한 平和를 破壤하였으니 伊太利는 Tripoli 倂合을 爲해 伊土戰爭을 誘發시키고 만 것이다. 佛蘭西의 Marokko 政策, 伊太利의 Tripoli 政策에 依해 土耳其帝國이 崩壞되는 過程에 이르므로서 Balkan 半島는 1912年 드디어 유럽·土耳其의 分解作用으로서 Balkan 戰爭이 開始되었다. Balkan의 1次. 2次戰爭中 諸列强은 戰爭을 局地化시키기 爲해 努力은 했으나 積極的인 改善策이나 根本的인 平和政策을 購究하지 못한 結果 유럽의 不安要素는 增大 되었다. 當時 露西亞帝國의 兩海峽政策은 活潑하여 兩海峽을 支配해오든 土耳其를 無氣力化시켰으며 露西亞의 海上活動은 好機를 맞았든 것이다. 露西亞帝國의 兩海峽政策은 獨墺關係를 더욱 惡化시키는 것이되어 이와聯關된 情勢變化는 1914年 1月 露西亞와 佛蘭西間에 新融資協定을 締結하게되고 이 協定을 通해 露西亞는 西部國境地帶에 戰略的鐵道資金으로 使用될 수 있는 資力을 支援받게 된 셈이다. 그래서 露西亞의 兩海峽政策强化, 露와 墺獨對立의 惡化, 露佛關係의 結合은 大戰前夜의 유럽情勢를 不安狀態로 增大시킨 結果가 되었다. 한편 Serbia는 增加된 國力과 精力으로 Slav 民族運動을 强力히 推進하게 되고 事實土耳其는 Balkan 半島에서 無氣力해져 이時期에 벌써 Yugo-Slav 民族의 解放과 獨立運動은 거의 成就段階에 이르고 對墺感情은 極히 高潮된바 墺地利 또한 事態를 注視하여 强硬一邊策이 된 것이다. 따라서 墺地利領內에 殘在된 Slav 民族의 解放運動이 最極盛에 이르자 墺地利의 不安은 深刻化되고 機會를 보아 Serbia께 打擊을 주지 않을 수 없는 段階에 臨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情勢惡化와 不安에도 不拘하고 諸列强은 國際緊張緩和나 Balkan 半島의 平和定着을 爲한 講究보다 軍備擴充과 自國의 利益確保에 血眼이 되어 Balkan 事態의 局地化나 紛爭解決를 爲한 協調는 不可能한 것이 되었다. 이는 곧 1914年 6月末 Sarajevo 事件發生으로 墺地利의 强硬策은 對 Serbia 宣戰布告가 이룩되고 이로부터 第1次 世界大戰의 砲門은 全유럽과 全人類의 悲劇을 부르게 된 것이다.

        • KCI등재

          북한이탈주민이 생각하는 남,북한 정신건강문제에 대한 시급성(urgency)과 심각성(severity)

          박현춘 ( Hyun Chun Park ),김민지 ( Min Ji Kim ),권영대 ( Young Dae Kwong ),우종민 ( Jong Min Woo ),유시은 ( Shi Eun Yu ),노진원 ( Jin Won Noh ) 평화문제연구소 2015 統一問題硏究 Vol.27 No.1

          This study reviewed the emergency related to mental health status of North Koreans and South Koreans from the viewpoint of North Korean refugees who are currently living in South Korea, and analyzed the difference in recognition on severity regarding mental disorders. Through the findings, this study aims to identify the difference in recognition on the mental health issues between North Korean and South Korean perceived by North Korean refugees. As for the research method, snowball sampling was used with the assistance of professional consultants who are North Korean refugees. A questionnaire survey was conducted in Hana Center to the North Korean refugees by area and data of 152 respondents were used for final analysis. According to the research results, North Korean refugees thought that South Korean had more urgent mental health problems than North Korean in overall. But in terms of severity of each specific mental health disorder, they thought North Korean had more serious problems than South Korean. That is, in terms of recognition of North Korean refugees on mental health problems, it can be said that there is difference in recognition between North Korean and South Korean. 이 글은 남한에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생각하는 북한주민과 남한주민의 정신건강문제에 대한 시급성을 살펴보고 정신질환에 대한 심각성의 차이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북한이탈주민이 바라보는 남·북한 정신건강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밝히고자 한다. 연구방법은 북한이탈주민 전문 상담사의 도움을 받아 스노볼 샘플링(snowball sampling)을 사용하였다. 하나센터를 통해 지역별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으며, 152명의 자료가 최종분석에 활용되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이 생각하는 정신건강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시급성은 남한이 북한보다 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였으나, 각 질병별 구체적인 정신건강문제를 보면 많은 부분에서 북한의 정신건강문제가 남한보다 더 강도가 높게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정신건강문제에 관한 인식의 측면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이 생각하는 남한과 북한의 차이가 존재한고 할 수 있다.

        • KCI등재

          국군포로 문제의 해결 방안 모색 -인도적 인권적 관점

          조성환 평화문제연구소 2011 統一問題硏究 Vol.23 No.2

          The issue of South Korean prisoners of war(POW) captured alive by North Korean army during the Korean War is an inescapable problem that must be solved.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after the Korean War have failed to resolve the POW issue. Needless to say, North Korea do not acknowledge at all the existence of South Korean POW. And South Korean governments`` efforts were not sufficient. They had to openly demand to solve the POW issue to North Korea government in a humanitarianism and human rights perspective. As everyone knows, significant numbers of the aged POW have already died, even the survivors`` life has a few years. This is the reason why the POW issue must get solved in a humanitarian way, considering the pain of the interested parties and their families. Moreover, the POW are in a very poor human rights situation, because of the nature of the North Korean totalitarian regime. Therefore, passive action of the government about the POW issue is giving up national duties in a humanitarianism and human rights perspective. In future, the POW issue should be resolved in various ways, through sharing of roles by the government, civil society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Western developed countries including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re willing to pay expensive prices in order to rescue soldiers captured alive by the enemy. In one word, these countries know very well that such a national act has an enormous effect on the national unity. On the other hand, resolution of the POW issue is closely linked with the degree of North Korea``s changes. Therefore, South Korean government has to work hard to solve this issue. 국군포로 문제는 국가가 국군포로 송환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역대 정부로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 까지 우리 정부는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제대로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북한당국이 아예 국군포로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우리 정부의 노력도 미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정부는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해 인도적. 인권적 차원에서 북한당국에 요구할 것은 당당히 요구했어야 했다. 주지하다시피 고령의 국군포로 당사자들 가운데 이미 상당수가 사망하였으며, 생존자들도 수명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당사자와 가족의 고통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정부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이유이다. 더욱이 국군포로들은 북한체제의 전체주의적 속성으로 인해 인권적으로도 매우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계속 미온적으로 대처하는것은 인도주의적.인권적 관점에서 볼 때 국가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앞으로 국군포로 문제는 정부, 시민사회, 국제사회가 역할 분담을 통해 직접적 방법과 간접적 방법, 공개적 방법과 비공개적 방법을 유연하게 구사해 가며 해결되어야 한다. 만약 국군포로 문제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그 후과는 반드시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이 국가를 위해 공헌하다 억류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기꺼이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이러한 국가행위야말로 국민통합에 가장 효과적인 기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국군포로 문제의 해결은 북한의 변화, 즉 개혁.개방의 정도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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