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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退溪의 拾遺詩

          鄭錫胎 영남퇴계학연구원 2008 퇴계학논집 Vol.1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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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退溪의 拾遺詩48제 69수(이 글 맨 끝의 「題武夷九曲 圖次櫂歌韻」 1제 10수는 제외함)를 모아서 엮은 것이다. 저작 연 월이 밝혀지는 작품들부터 순서대로 일련번호를 붙여서 먼저 엮 은 다음, 그 뒤에 저작 연대 미상인 작품들을 소재 문헌 등을 기 준으로 분류해서 이어 붙였다. 수록한 작품들은 『退溪集』 草本, 『韓國文集叢刊』과 『退溪學資料叢書』 등에 수록된 退溪와 유관한 인물들의 문집과 연보, 退溪관련 자료, 서화 관련 도록과 읍지 등 문헌 자료와 누정의 시판 등을 조사해서 찾아내었고, 그런 다 음 그 하나하나에 대한 습유 여부와 저작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저작 연월이 밝혀지는 작품들은 대부분 편자의 『退溪先生年表月日條錄』 1∼4(퇴계학연구원, 2001∼2006)를 통 해 이미 소개한 적이 있지만, 나머지 저작 연대 미상인 작품들 은 이번에 처음 소개하는 것이다. 이 글을 엮은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각 작품은 제목을 먼저 들고, 그 옆에 저작 연월과 저작 장소, 그리고 연작시의 경우는 작품 편수를 밝혔다. 2. 작품 원문은 연작시 경우만 매 작품마다 행을 달리해서 기록 하고, 한 편일 경우에는 그대로 이어서 기록하였다. 3. 작품 원문은 각 구가 나누어지는 곳에 한 칸씩만 띄어 놓았 고, 현대식 부호를 사용한 별도의 표점은 하지 않았다. 4. 각 작품에는 자료 관련 사항, 연월 고증 내용, 편집 관련 사항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해설을 붙였다. 이 글에 수록한 退溪의 拾遺詩48제 69수는 현전하는 退溪詩 2,300여수(이 글에 수록한 拾遺詩를 포함함. 하동)를 두고 본다 면, 실상 그리 많은 작품을 수집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退溪詩의 경우 『退溪集』 편집 당시만 해도 4,000수에 이를 것으 로 추정되는 2,000여제가 수집되었다가, 그 중 2,243수만 문집에 실리고 나머지는 유실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拾遺詩 는 이 글에서 찾아 수록한 48제 69수 외에도 앞으로 작품이 더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은 평상적으로 조사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곳에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가령 개 인 소장 유묵 등의 형태로 말이다. 이번에 자료를 소개하는 것을 계기로, 詩뿐만 아니라 退溪의 다른 저작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데 주변의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이것은 편자뿐만 아니라, 편자가 작업자로 참여하고 있는 퇴계학연구원 정본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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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집(退溪集)』 산문(散文) 편성(編成)의 체제(體制)와 『정본(定本) 퇴계전서(退溪全書)』의 산문(散文) 편성(編成)

          윤상수 ( Youn Sang-soo ) 퇴계학연구원 2017 退溪學報 Vol.142 No.-

          퇴계학연구원에서는 기존의 退溪 李滉의 문집 편성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오늘날 학계 내외의 학문적 수요에 부응하기 위하여 2018년 완성을 목표로 『정본 퇴계전서』 편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글은 『정본 퇴계전서』의 편성을 위하여 서간을 제외한 산문의 목록을 제시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정본 퇴계전서』는 산문의 경우, 기존 『퇴계집』의 문장 유형별 편집을 지키되 그 내부에서 고증을 거쳐 年月日順으로 편집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장 유형별 분류→저작 연대순 배열’이라는 산문의 편성 원칙을 실제 편성 작업 과정에서 일관되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퇴계집』의 편성 체제 및 그 산문 편성에 대해 살펴보고 나서, 『정본 퇴계전서』의 산문 편성 과정에서 부딪히는 세부적인 문제들에 대해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산문 목록(안)을 제시하였다. Compiling The Critical Edition of the Collected Works of Toegye(定本 退溪全書) is in progress with the aim of completion in 2018 by the Toegye Studies Institute, to meet today’s academic needs.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present a table of contents for the prose, except for the letters. In case of the prose, it is the editorial principle to keep the classi-fication by literary genre of the existing Toegyejip(退溪集), and then as-certain the time when the articles were written and modify the contents accordingly. However, in order to apply the principles in the actual edit-ing process, many problems must be solved. After reviewing these prob-lems in detail, it will propose a table of contents for the p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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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의 행적과 일화의 여러 양상

          김언종 퇴계학연구원 2015 退溪學報 Vol.138 No.-

          일화는 인물의 사적 영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의 기록이며 공식 기록을 보완하는 기능이 있다. 사실일 경우 어떤 일화는 공식 기록보다 인물 이해에 더 기여하기도 한다. 따라서 일화는 설화가 아니라 실사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화가 그렇듯이 퇴계선생에 관한 일화도 구전되던 일화가 문헌에 수록되거나 문헌에 수록된 일화가 구전되면서 설화로 재편된 것이 많다. 본래 기능을 상실한 일화는 해당인물의 삶을 왜곡하며 후세 사람들의 이목을 어지럽히고 역사의 영역에서 불신을 초래한다. 일화가 아무리 여분의 이야기이며 사랑방의 담화라고 하더라도 해당 인물의 이미지에 그 자체로 분리하기 어려운 영향을 미치기에 전기의 견지에서 한번은 검증이 필요한 장르인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지금까지 퇴계의 일화 중 7가지에 대해 사실 여부를 검토해 보았는데,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一. 정인홍(鄭仁弘)이 정구(鄭逑)와 함께 제자가 되기 위해 도산서 당으로 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인홍은 한 번도 퇴계를 뵌 적이 없고 정구가 집지(執贄)하러 온 것도 여름이 아니라 봄이었다. 一. 권철(權轍)이 퇴계를 방문한 것은 도산이 아니라 서울에서였고 당시 전직 영의정이 아니었다. 권철이 아직 정승의 반열에 오르기 전의 일이었다. 一. 대장장이 배순(裵純)은 퇴계와 동향인 예안 사람으로 퇴계를 존앙하여 심상(心喪)을 입고 퇴계의 철상(鐵像)을 만들기도 했으나 퇴계에게 소수서원에서 글을 배운 적이 없고 퇴계의 제자일 수도 없었다. 一. 둘째 며느리는 류씨(柳氏)가 개가(改嫁)한 것이 사실이다. 그녀가 개가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퇴계는 아들 이준을 보내어 만류한적이 있다. 개가를 권했다거나 그 후에 길 잃은 퇴계가 그녀의 집에 일숙(一宿) 했다는 것은 허구이다. 一. 퇴계는 남명과 만난 적이 없다. 남명과는 과거에 한번 함께 응시한 적은 있으나 수인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一. ‘퇴계호색설’ 일화는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一. 단양기생 두향(杜香)과 퇴계의 로맨스가 갈수록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그녀의 기명(妓名)은 두양(杜陽), 퇴계 이후의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나이 스물에 죽었고 유언에 따라 강선대 건너편에 묻힌것은 사실이다. 퇴계와의 로맨스는 18세기의 호사가들이 꾸며낸 허구이다. 逸話是人物在私領域中實際發生過的事件記錄,具有補充正式文獻史料的機能。事實上逸話比正式文獻史料更能詳實地載錄人物性格,因而逸話幷不是傳說或是故事,而是事實。但誠如所有的逸話般,與退溪先生相關的逸話有經由口傳後收錄於文獻者,或者文獻裡收錄的內容在口傳過程中,經由傳述再編成者亦不少。因喪失原本詳實載錄人物性格的機能,而歪曲其內容混淆視聽,使得後世人們對該段歷史的不信任。盡管吾人皆知逸話有別於傳記,但要嚴格區分其與該當人物本身的形象是有壹定的困難度,考量到逸話與傳記對該人物的形象具有的壹定程度的影響,必須再次審視其內容,不應因其體裁而忽視其影響力。因而本文檢討有關退溪先生的七個逸話中,載錄內容與實際事實契合與否,總結整理如下。壹. 鄭仁弘與鄭逑爲求成爲退溪的弟子而炎熱的夏天壹起來到陶山書堂,此內容幷非事實。鄭仁弘未曾與退溪見過面,而鄭逑爲了奉上束脩前往的時間點發生在暖和的春天。壹. 權轍訪問退溪的地點幷非陶山而是漢陽,且當時他幷未當位極人臣的領議政。此事發生是在權轍列於政丞班列之前。壹. 水鐵匠裵純因與退溪同爲禮安人而尊仰退溪,在服心喪時鑄造退溪鐵像供奉退溪是屬實,但世傳在紹修書院拜退溪爲師,是未曾發生過的謬傳,從年齡看來裵純不可能成爲退溪的弟子。壹. 次식柳氏確實曾經改嫁。因二兒子早逝,次식曾欲改嫁,而退溪使長子李寯去挽留,但幷不能如意,子婦改嫁事, 使他非常難爲。命次식改嫁之後在此女家中留宿壹宿者,皆爲虛構之事。壹. 退溪從未與南冥相遇。雖曾與南冥慘加過同場科擧應試,但彼此應無因此而結識壹事。壹. ‘退溪好色說’是毫無根據的傳聞일事。壹. 丹陽妓女杜香與退溪是同時代人物的證據幷不存在。杜香可能是退溪逝世之後的人物,此女芳齡二十便早逝,依其遺言將其葬在降仙臺的對面雖是確有其事,然而其與退溪間的愛情傳聞是後世好事者虛構杜撰,幷非事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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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의 「心無體用辯」에 대한 분석-形과 象 개념을 중심으로-

          고승환 영남퇴계학연구원 2017 퇴계학논집 Vol.- N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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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퇴계의 태극론 내지 체용론을 다루고 있지만, 퇴계의 서경덕 학파의 비판 뿐 아니라, 그들에 대한 율곡의 비판을 함께 다루면서 그 특징을 보다 선명하게 분별하고자 한다. 따라서 먼저 제2장에서는, 퇴계의 체용론의 특징을 알아보기 전에 그에 대한 예비적 작업으로 서화담 학파와 율곡의 논변을 살펴볼 것이다. 이 때 ‘沖漠無眹’이라는 개념, 나아가 ‘象’ 개념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 개념에 대한 분석이 퇴계의 「心無體用辯」에서 연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3장에서는 퇴계의 「心無體用辯」의 구조를 간단히 분석·정리한다. 연로의 세 가지 주장을 열거하고, 그에 대한 퇴계의 비판을 순서대로 살펴볼 것이다. 제4장에서는 퇴계의 「心無體用辯」에서 연로를 비판하는 퇴계의 주장을 통해 그의 체용론의 특징을 추론해보는 작업을 할 것이다. 기존 연구와 다른 점은 성리학의 ‘沖漠無眹, 萬象森然已具’이라는 명제와 관련하여 앞서 분석한 ‘象’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心無體用辯」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분석한 데에 있다. 제5장에서는 앞선 논의를 바탕으로 퇴계의 체용론의 특징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This paper deals with Toegye Yi Hwang(退溪 李滉, 1501-1570)’s Taiji(太極) and Essence-Function(體用, tiyong) theory. Especially, Toegye’s criticism of Hwadam school as well as Yulgok’s criticism of them will be discussed to clarify its characteristics more distinctly. Therefore, in Chapter 2, we first look at the Hwadam school and Yulgok’s argument as a preliminary work on the characteristics of Toegye’s Essence-Function theory. At this time, I will focus on the difference between understandings on the concepts of 沖漠無眹 and xiang(象). It is because the analysis of these concepts help to understand the position of Yeonlo(蓮老) who is another disciple of Hwadam, in Toegye’s Critique on the Position That Does not Have Essence and Function. In Chapter 3, we briefly analyze the structure of Toegyo’s Critique on the Position That Does Not Have Essence and Function. I enumerate the three claims of Yeonlo and examine Toegye’s criticism in order. In Chapter 4, I discuss the criticism of Toegye about Yeonlo in the above writings, and deduce the characteristics of Toegye’s Theory of Essence-Function. In this paper, the concept of xiang(象) is suggested as a key word to interpretate the proposition of Neo-Confuciansm, “沖漠無眹, 萬象森然已具.” In Chapter 5, I will present some characteristics of Toegye’s theory based on the above discu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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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에 나타난 퇴계(退溪)의 주자사상(朱子思想)에 대한 이해

          양조한 ( Yang Cho Han ) 퇴계학연구원 2019 退溪學報 Vol.145 No.-

          이퇴계의 『朱子書節要』는 주자 書信의 선집일 뿐이지만, 이 책이 한국과 일본의 儒學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朱子書節要序」에서 논한 바를 보면 퇴계가 주자 서신을 撰錄하면서 염두에 둔 곳을 알 수 있다. 퇴계는 주자의 서신을 통해 주자가 문인에게 친절하게 가르친 점과 어떻게 자질에 따라 가르쳤는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학문을 논한 서신의 특색과 가치는 徐復觀의 견해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또한 『朱子書節要』에서 選錄한 서신의 내용을 분석하여, 이 책이 주자 사상에 대한 이퇴계의 독특한 관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Yi Toegye devoted himself to select, annotate, combine Zhu Xi’s important Philosophical letters to accomplish the Anthology of Zhu Xi’s Philosophical Correspondence. This book has great influenced on the development of Korean and Japanese Confucianism. We can see Yi’s effort based on the preface of the Anthology of Zhu Xi’s Philosophical Correspondence. Yi indicated that to investigate Zhu Xi’s philosophical and debating letters to his disciples helps us grasp Zhu’s teaching enthusiasm and how he taught his students in accordance with their aptitudes. Mr. Xu Fuguan discussed and gave his explanations of the characteristic and significance of this form of article. In this paper, I will provide my analyses of this book to show that we can know Yi’s special understanding of Zhu Xi’s philosophy by exploring the Anthology of Zhu Xi’s Philosophical Correspo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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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寒岡의 退溪 禮學 繼承과 進展 - 『五先生禮說分類』를 중심으로 -

          한재훈 퇴계학연구원 2019 退溪學報 Vol.146 No.-

          The Study of Rites (lixue 禮學) of the Joseon Dynasty was on track in the mid 16th century, using Toegye 退溪 Yi Hwang 李滉 (1501~1570) as the leader. And in the late 16th and early 17th centuries, Toegye’s Study of Rites is inherited and developed by his disciple Hankang 寒岡 Jeong Gu 鄭逑 (1543~1620). Hankang first visited Toegye in 1563, and became a disciple. Of course, he had considerable knowledge in the field of Study of Rites before meeting Toegye. But after his meeting with Toegye, he wrote a list of various questions about Rites (Li 禮) and asked enough questions, and he learned a lot from this process. Looking at his Study of Rites based on his works on Li left behind by Hankang, one finds that his Study of Rites is largely divided into two periods, one before the age of 40 and the other after the age of 61. Before the age of 40, he focused on the faithful understanding and devout practice of the Garye (jiali 家禮), and after the age of 61, he attempted to secure a wide range of arguments to deal with Li on abnormal conditions (bianli 變禮), while tracking the archetype of Li with a sense of the Garye (jiali 家禮)’s imperfections. Hankang’s most dedicated work on art is Classification of Five Scholarly Theories of Rites (woseonsaeng yeoseolbunryu 五先生禮說分類). The book was first made in 1603, but was re-created in 1618 because it was destroyed by fire. The book is compiled to provide a good understanding of how the five scholars developed and applied their discussions about the Li on abnormal situations, and to prepare them to respond quickly and accurately to the abnormal situations that he will face. And this book was later read by many juniors, regardless of their academic background, which made a great contribution to the development of Joseon’s Study of Rites. 조선시대 예학은 16세기 중반 退溪 李滉(1501~1570)을 先河로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했다. 그리고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 걸쳐 退溪의 禮學을 계승ㆍ발전시킨 사람이 寒岡 鄭逑(1543~1620)이다. 寒岡은 1563년 退溪를 처음 배알했다. 물론 그는 退溪를 배알하기 이전부터 禮學 분야에서 상당한 공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退溪와의 만남 이후 禮에 관한 다양한 問目들을 작성하여 충분한 질의를 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寒岡이 남긴 禮書들을 바탕으로 그의 禮學 硏究를 추적하다보면, 그의 禮學은 크게 40세 이전과 60세 이후 두 시기로 대별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40세 이전에 그는 『家禮』에 충실한 이해와 독실한 준행에 집중했고, 60세 이후에는 『家禮』의 불완전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禮의 원형을 추적하는 한 편, 다양한 變禮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논거들을 폭 넓게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寒岡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편찬한 禮書는 『五先生禮說分類』이다. 이 책은 1603년에 初撰 되었으나 燒失되는 바람에 1618년 다시 改撰되었다. 이 책은 다양한 變禮적 상황에서 五先生이 禮를 어떻게 논의하고 적용했는지를 熟知함으로써 자신이 맞닥뜨리게 될 變禮적 상황에 신속하고 정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편찬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이후 학파를 불문하고 많은 후학들에게 읽힘으로써 조선의 禮學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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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退溪의 次韻詩에 나타난 詩的 疏通의 樣相

          윤재환(Yoon, Jae-hwan) 영남퇴계학연구원 2021 퇴계학논집 Vol.- No.28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글은 퇴계의 본질이 학자였다는 점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퇴계의 시가 지니는 특성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으로, 논의의 대상을 퇴계가 당대 우리나라 사람의 시에 쓴 次韻詩 중 원운시가 확인되는 시로 한정한다. 퇴계의 차운시는 창작 동기에 따라 구분된 차운시의 세 유형인 學習과 交遊 그리고 消興의 양상을 모두 보이지만, 내용으로 보아 가장 많은 것이 학습 중 학문의 수련과 교유 중 훈화에 해당하는 것으로, 차운시 대부분이 학문과 수양을 내용상의 공통점으로 한다. 퇴계가 원운시의 작자와 일정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때 퇴계의 차운시는 원운시의 작자와 소통하는 외적 소통 구조와 함께 자기 스스로와 소통하는 내적 소통 구조를 동시에 보이거나 이 중 하나만 보이기도 하지만, 그가 원운시의 작자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지 않았을 때는 원운시의 운자와 형식, 배경을 차용하여 자기 스스로와 소통하는 내적 소통 구조만 보인다. 또 퇴계의 차운시가 자기 스스로와 소통하는 내적 소통 구조만 형성할 때 소통의 내용은 대부분 학문과 수양의 의지 표출이지만, 원운시의 작자와 소통하는 구조를 형성할 때는 원운시의 내용과 원운시 작자의 학문적 수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원운시의 작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학문적 성취를 이루고 시에 그 내용이 담겨 있을 때는 勸戒와 격려의 뜻을 드러내는 단선적 소통 구조를 형성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는 중의적 해석이 가능한 이중의 소통 구조를 통해 자신의 뜻을 드러내고 원운시의 작자를 感發한다. 이중의 소통 구조를 지닌 퇴계의 차운시는 중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원운시에서 독립된 시로 해석되는 경우로, 원운시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읽어도 의미의 錯亂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경우 퇴계의 차운시는 자기 스스로와 소통하는 내적 소통 구조를 보이면서 학문과 수양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는 시가 된다. 두 번째는 원운시와 연계된 시로 해석되는 경우로, 원운시의 작자와 소통하는 소통 구조를 지닌다. 이 경우의 차운시들은 대부분 원운시 작자의 물음에 답하거나 원운시의 작자를 高揚하여 더 높은 경지에 나아갈 수 있도록 유도하며 원운시의 의미를 확장하거나 심화한다. 이런 점들로 볼 때 퇴계를 학자로 간주한다고 하더라도 퇴계의 차운시는 문학적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 문학성 높은 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퇴계의 문학적 위상을 보다 선명히 하기 위해서는 퇴계의 시문학에 대한 심도 깊은 접근과 해명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This study is to find out the characteristics of Toegye s poems on the premise that Toegye s essence was a scholar, and the subject of discussion is limited to poem written along a rhythming character of Toegye. Toegye s poem written along a rhythming character shows all three types of poem written along a rhythming character, which are classified according to the motivation for creation, but the most common aspect is the tools of admonition during the social intercourse and the training process of learning, and most of the poem written along a rhythming characters have a common point in learning and training. When Toegye is forming a certain relationship with the author of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me, poem written along a rhythming character of Toegye shows the structure of communication with the author of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me and the internal communication structure that communicates with oneself at the same time, and only one of them shows the internal communication structure that communicates with oneself by borrowing the verse, form and background of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me when no relationship is formed with the author of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me. In addition, when poem written along a rhythming character of Toegye forms an internal communication structure that communicates with himself, most of the contents of communication are expressed by the will to study and cultivate, but when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me forms a structure that communicates with the author, it shows different aspects according to the contents of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me the academic level of the author. When the author of a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thm achieves a certain level of academic achievement and the poem contains its contents, poem written along a rhythming character of Toegye forms a single communication structure that reveals vigilance and encouragement, but author of a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thm if a person has not yet achieved a certain level of academic achievement or has not fully contained academic content in the poem, the poem written along a rhythming character of Toegye encourages the author of a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me by forming a dual communication structure capable of ambiguity interpretation. Poem written along a rhythming character of Toegye with dual communication structure can be used for ambiguity interaction. The first is the case where the poem is interpreted as an independent poem in a original rhythm, and even if the relationship with the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thm is not considered, the confusion of meaning does not occur. In this case, poem written along a rhythming character of Toegye is a poem that expresses his will for learning and training while showing an internal communication structure that communicates with himself. The second is the case of being interpreted as a poem connected with a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me, it has a communication structure that communicates with the author of a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me. In this case, most of the poem written along a rhythming characters answer the question of the author of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thm or promote the author of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thm to advance to a higher level, and encourage the author to go to a higher level and expand or deepen the meaning of the poem written along a original rhythm. In this regard, even if Toegye is regarded as a scholar, Poem written along a rhythming character of Toegye is a literary poem with literary value. Therefore, in order to clarify the literary status of Toegye, more in-depth approach and explanation of Toegye s poetry should be m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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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退溪-高峰 四七論辨의 근본 문제

          이상익 퇴계학연구원 2019 退溪學報 Vol.146 No.-

          The key issue of the Toegye-Gobong argument was the issue of “the origin of Chiljung (七情, Seven Feelings).” Toegye (退溪 李滉) defined the origin of Chiljung as a “physical instinct,” while Gobong (高峰 奇大升) defined a “moral nature.” It can be summed up in two reasons why they have different views on the origin of Chiljung. First, it was because Toegye and Gobong had different understanding of Chiljung. Toegye understood Chiljung in the context of Li Ji 禮記’s heavenly principle (tianli 天理) and human desires (renyu 人欲), while Gobong understood Chiljung in the context of Zhong Yong 中庸’s the great root (daiben 大本) and the universal path (dadao 達道). Second, they were different about the “structure of mind.” Toegye saw that our mind contains a combination of moral nature and physical instinct, but Gobong saw that our mind has only a moral nature. The Toegye-Gobong argument was basically developed in the same structure as above, so it was difficult for the two to easily find an interface. At the last minute, however, Gobong accepted some of Toegye’s views on the separation between the Sadan (四端, Four Beginnings) and Chiljung nominally, Toegye also settled the argument by accepting Gobong’s revised opinion. But the Toegye-Gobong argument did not reach a unified conclusion, but was only temporarily sealed. 퇴계-고봉 논변의 핵심 쟁점은 ‘七情의 所從來’에 관한 문제였다. 퇴계는 七情의 근원을 ‘육체적 본능[食色之性]’으로 규정했고, 고봉은 七情의 근원을 ‘도덕적 본성[仁義之性]’으로 규정했다. 퇴계-고봉 논변의 근본 문제는 다음의 넷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퇴계와 고봉은 七情에 대한 이해 자체가 달랐다. 퇴계는 『禮記』의 天理人欲論의 맥락에서 七情을 이해했고, 고봉은 『中庸』의 大本達道論의 맥락에서 七情을 이해했다. 둘째, 퇴계와 고봉은 ‘理ㆍ氣의 개념’도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퇴계는 理ㆍ氣를 ‘본성과 본능’으로 이해하여 理氣互發論을 주장한 것이나, 고봉은 理ㆍ氣를 ‘본성과 마음’으로 이해하여 이에 반대한 것이다. 셋째, 퇴계와 고봉은 ‘發’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퇴계가 말하는 理氣互發은 ‘所發’의 맥락이었으나, 고봉은 ‘能發’의 맥락에서 理氣互發論에 반대한 것이다. 넷째, 퇴계와 고봉은 ‘마음의 구조’에 대해서도 다르게 이해했다. 퇴계는 ‘인간의 마음에는 도덕적 본성과 육체적 본능이 함께 담겨 있다’고 보았으나, 고봉은 ‘인간의 마음에는 도덕적 본성이 담겨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퇴계-고봉 논변은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구도 속에서 전개되었고, 따라서 두 사람은 쉽사리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막판에 고봉이 퇴계의 七情觀을 일정 부분 수용함으로써 명목상으로나마 ‘사단과 칠정의 分開’를 승인하게 된 것이요, 퇴계 역시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논변이 매듭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퇴계-고봉 논변은 ‘歸一’된 것이 아니라 ‘彌縫’된 것일 뿐이다.

        • KCI등재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의 퇴계관

          권순철 영남퇴계학연구원 2018 퇴계학논집 Vol.- No.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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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aims to look at Takahashi Toru's Viewpoint on Toegye, focusing on his lecture note of the History of Joseon Confucianism. Takahashi's lecture notes are generally consistent with his academic quest for the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under the premise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regionalism.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Takahashi's interest in Toegye was absolute. Takahashi Toru's understanding Toegye has the following characteristics. Firstly, he exposes that there was the change from induction to deduction, the change in learning and performance(學修法) by Toegye. And he emphasizes the orthodox completion of Joseon Confucianism by Toegye as a framework of Pasa(破邪) and Hyunjeong(顯正). In other words, the building of Toegye’s study as the orthodoxy of Joseon Neo-confucianism was the first task in Takahashi's history of Joseon Confucianism, and as a result the descriptions of scholars before and after Toegye were collected in the process of building orthodox Neo-confucianism by Toegye. Secondly, the explanation, which forms Yeungnam School follows Hoeje Lee Eon-jeok, constitutes the regional development of the study of Neo-confucianism along with the Hwadam's Kaeseong School(事功派), while the distinction between the School of SaGong, the School of Taoist Teacher(道學先生), the School of Kyeongje(經濟派) based on the academic characteristics are presented. Soon, it develops into the school of Zuri(主理派), and the the school of Zuki(主氣派), and ultimately the school of Compromise. Such an academic development of Joseon Confucianism history was first established by Takahashi. Thirdly, it is an evaluation of Toegye's study that faithfully conveys the theory of Chu Hsi and thus succeeded in purifying(醇化) it. This is sometimes cited as an example of proving Joseon's dependence on China, and is also noted as a characteristic of Joseon Confucianism. The quest for the subject matters of the theory of Chu Hsi, which are launched by Toegye, is continued by a later scholar, and this is also an axis of Takahashi's description of the history of Joseon Confucianism. 이 논문은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의 『조선유학사(朝鮮儒學史) 강의록』을 중심으로, 그의 퇴계관을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카하시의 강의록은 전체적으로 대일본제국의 식민지라는 시대성 및 지역성을 전제로 한 조선유학사에 대한 학술적 탐구에 일관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 보이는 퇴계에 대한 다카하시의 관심은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카하시 도오루의 퇴계 이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퇴계에 의하여 귀납법에서 연역법에로의 학수법(學修法. 학문과 수행) 변화가 있었다고 밝히고 있는 점과, 파사(破邪. 삿됨을 타파함)와 현정(顯正. 올바름을 드러냄)이란 설명틀로 퇴계에 의한 조선 주자학의 정통 완성을 강조한다. 즉 퇴계 학문을 조선주자학의 정통으로 구축함이 다카하시의 조선유학사의 첫째 과제였으며, 퇴계 이전 및 동시대 학자에 대한 서술은 결과적으로 퇴계에 의한 정통주자학 구축과정에 수렴된다. 둘째로, 회재 이언적을 이어 영남학파를 형성한다는 설명은 화담의 개성학파와 함께 주자학 연구의 지역적 전개를 구성하며, 다른 한편, 학문의 성격에 입각한 사공파(事功派. 사회·정치적 문제를 주요 관심사로 삼는 학파), 도학선생(道學先生. 도학의 이론만 중시하여 세상 물정에 어두운 학자 학자)파 및 경제파(經濟派.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한다는 학파)의 구분도 제시되고, 이윽고 학리적 특성에 의한 주리파(主理派)와 주기파(主氣派), 그리고 절충파에로 심화 발전된다. 이렇게 조선유학사의 학파적 전개는 다카하시에 의해 처음 그 뜰이 마련되었다. 셋째로, 주자 학설에 충실하여 이를 순화(醇化)시켰다는 퇴계의 학문에 대한 평가이다. 이는 중국에 대한 종속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거론되기도 하는 한편, 조선적 특징으로 주목하기도 한다. 퇴계에 의해 본격화되는 주자 학설의 제문제 탐구는 후대 학자에 의해 계속되며, 이 역시 다카하시의 조선유학사 서술의 축을 이루고 있다.

        • KCI등재

          「陶山十二曲」을 통해 본 退溪의 音樂觀 - 「도산십이곡발문」과 「도산십이곡」 <언지>의 노래를 중심으로-

          박정련 영남퇴계학연구원 2008 퇴계학논집 Vol.2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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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퇴계(退溪)가 창작한 노래인 「도산십이곡」 (陶山十二曲) 을 바탕으로 그의 음악관을 검토한 것이다. 이를 위해 「도산십이 곡발문」과 퇴계의 뜻을 노래한 「도산십이곡」 <언지>(言志)를 중 심으로 그가 지향하는 노래관을 중점으로 살펴보았다. 퇴계가 지 향하는 노래관은 첫째,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고, 춤으로 표현할 수 있는 흥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인간으 로서의 풍격(風格)을 표현해 내어야 한다는 점인데, 여기서 그의 풍격은 ①자연을 좋아함이 고질병이 되다시피 한 ‘천석고황’(泉石 膏?)’에서 찾을 수 있고, ②퇴계가 노년기를 맞이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남은 생애를 허물없이 살기를 바란다는 자성(自省)과 겸허함에서 그의 정신적 고상함과 아름다운 면모를 읽을 수 있다. ③그의 풍격은 고아한 언어를 사용함으로서 드러나는데, 어느 한 구절 가벼이 쓴 말이나 현란한 것이 없고, 일상의 말이면서 참된 의미전달에 충실한 용어의 활용에서 느낄 수 있다. 계속해서 퇴계 가 지향하는 노래관 세 번째는 타인과 사회, 만물과의 융화와 화 해를 위한 것이며, 네 번째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 퇴계가 지향하는 노래관이다. 퇴계는 그 스스로가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넉넉한 인정을 갖을 수 있는 노래’[溫柔敦厚]를 불렀으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이와 같이 변하기를 희망하였다. 퇴계의 삶의 행보는 철학적, 문학적, 정치적, 교육이라는 영역을 초월하여 어쩌면 음악이라는 대중의 예술체계에서 그의 학문적이고 인간적인 면모의 총체성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예술, 특히 음악관에 관한 연구는 앞으로 인류가 지향해야할 목표를 뚜렷이 제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뿐 만 아니라, 퇴계학의 세계화를 위한 우리의 자산이 될 것이라 확 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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