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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들뢰즈 철학에 나타난 성(性)과 신체의 문제

        정익순 중앙대학교부설 중앙철학연구소 2004 철학탐구 Vol.16 No.-

        들뢰즈 철학에는 많은 명령어와 용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들뢰즈의 철학은 서구 전통 형이상학에 기본 토대를 두고 다양한 학문적 분야를 두루 섭렵한 결과의 산물이다. 이 논문은 들뢰즈가 철학적 재현의 문제를 다룬 여러 가지 분야 중에서 성과 신체에 대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과 신체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들뢰즈의 주요 저작인 『의미의 논리』와 『앙티 오이디푸스』에 대한언급이 필수적이다. 『의미의 논리』에서 들뢰즈는 기본적으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건이 던져주는 심층적인 즐거움은 의미와 무의미의 놀이와 사건을 통한 다양한 만남이다. 사건은 서구 철학의 형이상학이 어떻게 특이한 방식으로 전개되는가와 역설의 계열로 구성되는가에 달려 있다. 들뢰즈는 사건과 의미를 동시에 사유함으로써 서양철학을 한 차원 높이 끌어 올린다. 『앙티 오이디프스』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독자적인 철학적 견지에서 현대 문명을 비판하고 정신분석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비판하면서 인간의 성적 충동의 원인과 욕망하는 기계 그리고 유목민적 주체에 대해 분석함으로써 사유에 대한'탈주의 선'을 보여주고 있다. 들뢰즈 읽기는 우회의 논리와 새로운 지형의 확립에 대한 철학을 배우는 것이다. 과거의 철학을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 하는 것과 그것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것은 새로운 사회의 장을 만들어 보려는 들뢰즈의 욕망이며 철학이다.우리는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탐색하고 언어의 장으로 사유의 선을 그리게 된다. In Deleuze's philosophy there are a lot of decrees and terms existed. The philosophy in Deleuze is based on the traditionally western metaphysics and it is derived from the production of various studying fields that he devoted himself to. This thesis is focused on the sexuality and body that Deleuze studied for the representation of problems in philosophy. In order to deal with them, we must discuss his major works, The Logic of Sense and Anti-Eedipus. In The Logic of Sense, Deleuze basically treats the event The deep pleasure the event gave is an encounter through sense and nonsense of game and event And the event depends on the way how metaphysics is singularly developed in the western philosophy and how the structure of it is made up in the series of paradox. Deleuze had in mind the event and sense at the same time so that he drew the western philosophy up in its scale. In Anti-0deipus, Deleuze and Guattari, with their particular point of view, criticized modem civilization and newly opened the horizon for the psychology. Especially, criticizing Freud's psychology, they taught us the line of flight to analyze the cause of human's sexual motivation, desiring machine and nomadic subject The reading of Deleuze means to learn about the logic of detour and establishing new territory of philosophy. It is Deleuze's philosophy and desire that we can reinterpret the past philosophy into modem sense and open new field where we make new locus of society. Therefore, we can explore the human mind inside and outside and map the line of thought.

      • KCI등재

        셸링의 동일성철학과 유한성의 문제

        박영선 중앙대학교부설 중앙철학연구소 2009 철학탐구 Vol.25 No.-

        셸링은 동일성철학 단계에서 비로소 자연과 자유, 무의식적 행위와 의식적 행위, 자연철학과 선험철학의 이분을 통일한다. 객관적 주체-객체로서의 자연과 주관적 주체-객체로서의 정신은 절대자의 차별적인 현상방식일 뿐이다. 자연과 정신은 내면적으로 절대자와 동일한 것이며, 그 결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절대적 동일성 자체이다. 따라서 비존재는 영원히 불가능하며, 존재는 필연적이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신과 함께 필연적으로 주어진 사물은 그 자체로 고찰해 보면 유한적이 아니다. 모든 것은 본질에 따라 보면 하나Eins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도 그 자체로 자율적이 아니며, 인간을 고유한 삶에 따라 보면 필연성과 운명에 귀속된다. 이는 우리가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필연성이 우리 내부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필연성에 따라 우리는 목적을 설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유한적 사물과 인간의 자유 뿐 아니라 불완전성 및 악이 세계로부터 제거되었다. 불완전성과 악은 본질을 상실한 그림자에 불과하며 참된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일성철학은 나름의 장점을 지니는데, 이는 오직 세계와 삶이 지닌 어두움, 비합리성, 유한적 사물로부터 눈을 돌릴 때이다. 그러나 1806년 이후 셸링은 동일성철학을 포기하는데, 왜냐하면 유한적 사물의 현존은 그에게 거부하지 못할 정도로 자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헤겔의 ‘모든 소가 검게 보이는 밤’의 비유에서 드러나듯이 유한적 사물의 부정은 곧 무세계주의(Akosmismus)를 의미한다. 이제, 유한적 세계 및 악의 존재는 존재의 결핍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세계는 근원원천에서 나온 것(유출설)이 아니며, 신에 의해 자유롭게 창조된 것(창조설)도 아니다. 셸링에 의하면 절대자에서 현실세계에 이르는 어떠한 항구적인 과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한적 세계, 물질, 악의 존재는 단지 절대성으로부터의 완전한 단절로서만, 즉 비약에 의해서만 생각되어 질 수 있다. 절대자로부터의 이탈(타락) 가운데 존재하는 유한적 사물의 근원은 신이 아니라 비약이다. 따라서 유한적 사물의 참된 근거는 “오직 타락(탈락, 이탈)한 존재 자체에서만(einzig im Abgefallenen selbst)” 찾아져야 하며, 신에게서 발견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으로부터는 어떠한 유한적인 것도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Schelling versucht erst in der Phase der Identitätsphilosophie, die Unterscheidung zwischen Natur und Freiheit, Naturphilosophie und Transzendentalphilosophie, unbewußter und bewußter Handlung aufzuheben. Natur als objektitives Subjekt-Objektiv und Geist als subjektives Subjekt-Objekt sind jetzt bloß als die unterschiedlichen Erscheinungsweisen ein und desselben Absoluten. Beide sind im Innersten mit dem Absoluten identisch, woraus folgt nun, daß Alles, was ist, die absolute Identität selbst sein muß. Die mit Gott notwendig gegebenen Dinge sind nicht nur unentstanden und unvergänglich, sondern auch nicht endlich. Die verschieden uns erscheinenden Dingen sind nicht wahrhaft verschieden, sondern wirklich Eins. Daraus folgt nun, daß der Mensch nicht für sich selbst frei ist, sondern er der Notwendigket des Universum fällt. Dies bedeutet weiter, daß nicht wir hadeln, sondern eine göttliche Notwendigkeit in uns handelt. Damit sind die endlichen Dinge, die menschliche Freiheit, das Unvollkommene und das Böse aus der Welt verschwunden. In der Identitätsphilosophie kann sich die Tugend finden nur so lange, daß man den Blick aus der dunkeln Seite der Welt abwendet. Seit 1806 verläßt Schelling die Identitätsphilosophie, weil die Existenz der endlichen Welt ihm offensichtlich zu sein scheint. Wie Hegel in der Phänomenologie des Geistes die Identätsphilosophie Schellings verspottet, bedeutet die Negation des Endlichen einen Akosmismus. Die Existenz der endlichen Dingen und des Bösen bedeutet also nicht mehr einen Mangel des Seins. Die Welt fließt weder aus dem Göttlichen, noch wird sie von einem Gott in Freiheit erschaffen. Nach Schelling führt keine Brücke von dem Absoluten zu den endlichen Dingen. Dies bedeutet nun sowohl, daß es keinen stetigen Übergang vom Absoluten zum Wirklichen, als auch daß der Ursprung der Sinnenwelt nur als ein vollkommenes Abbrechen von der Absolutheit, durch einen Sprung denkbar ist. Der wahre Grund der endlichen Welt ist also einzig im Abgefallen zu suchen, weil aus Gott nichts Endliches hervorgehen kann.

      • KCI등재후보

        문화철학과 문화학

        신응철 중앙대학교부설 중앙철학연구소 2005 철학탐구 Vol.17 No.-

        이 글의 목적은 서구의 문화철학과 문화학의 관련성을 해명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문화철학과 문화학의 연구 경향 및 연구 방법론을 토대로 특히 문화철학이 문화학 연구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를 전개함에 있어서 필자는 우리에게 가장 대표적인 문화철학자로 알려진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의 입장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글은 현재까지 진행된 서구의 문화학 연구의 대체적인 경향을 읽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게 될 것이며, 또한 문화철학과 문화학 연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심에 따라 2장에서는 서구 문화학 연구의 범위, 문화철학과 문화학의 관련성에 대해 고찰하도록 한다. 3장에서는 서구 문화학의 연구 경향과 연구 방법론에 대해서 논의하도록 한다. 그리고 4장은 이 글 전체의 핵심 부분으로서, 문화학의 측면에서 본 카시러 문화철학의 업적과 영향을 다루도록 한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문화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카시러의 논의들 가운데 ‘문화와 상징의 관련성’, ‘문화적 기억’, ‘상모적 세계관’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문화철학과 문화학 연구를 수행하는 국내의 환경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할 측면에 대해 고려해 보면서 논의를 마무리하도록 한다. This thesis aims to show the research and methodology of the western Cultural Science in terms of the tradition of the Philosophy of Culture. Especially, in the study of Cultural Science, we will deal with the research and method of the Philosophy of Culture in Ernst Cassirer. Therefore this study will provide the current inclination in the Cultural Science to us, and supply us with the preliminary data for East Asia Cultural Science. In this concerning, firstly we will discuss the scope of the Cultural Science in the relation to the Philosophy of Culture and the Cultural Science. Secondly, we will show the research and methodology of the Western Cultural Science. Thirdly, we will deal with the importance of the Cassirer's Philosophy of Culture in terms of Cultural Science. In this part, we will concentrate on this point, that is, relation of Culture and Symbol, Cultural Memory, namely, Mnemosyne, the Physiognomical viewpoint. Finally, I will suggest some ideas for the sake of research and methodology of East Asia Cultural Science.

      • KCI등재

        블루멘베르크(H. Blumenberg)의 은유의 해석학 : 「은유학의 범형들」을 중심으로

        최성환 중앙대학교부설 중앙철학연구소 2008 철학탐구 Vol.23 No.-

        본 연구는 수사학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 병행해서 철학적 글쓰기에 대한 전망을 확보하기 위해서 은유를 통해 철학적 개념의 확장을 도모했던 블루멘베르크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철학적 글쓰기는 철학적 사유의 반영이며, 철학적 사유는 현실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급격히 변화하는 현실세계를 고려할 때 새로운 사유와 그에 상응하는 글쓰기의 형식에 대한 물음은 매우 중요한 철학적 주제이다. 전통적으로 이성중심주의(Logozentrismus)의 개념적-논리적 사고를 강조해온 철학에서도 다양한 글쓰기에 대한 요구와 함께 철학의 표현방식에 대한 입장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이 연구는 철학적 개념과 언어에서 ‘은유’가 차지하는 위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장식기’(裝飾期)에서 ‘본질기’(本質期)로의 이행 즉 ‘수사학의 르네상스’와 함께 특히 은유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는 은유가 가진 엄청난 ‘영향사’와 그와 연관된 적용 범위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가장 탁월한 수사법을 간주된 은유는 그러나 철학의 전통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은유는 현실의 다양한 층위를 드러내주는 매체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획득하게 된다. 이 연구에서는 특히 개념적-논리적 사유의 한계와 이와 연관된 은유의 불가피성을 블루멘베르크의 관점을 빌려 살펴보고, 그러한 은유의 정당성 근거를 규명하고자 한다. 그는 은유는 대체될 수 없으며, 심지어 철학적 개념을 포함한 과학의 모든 핵심적 용어들의 근거에 은유가 놓여 있다는 테제를 제시한다. 그런 배경에서 ‘절대적 은유’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개념적-논리적 사고에 숙달된 오성의 입장에서는 접근 불가능한 영역을 주제로 다루고자 할 때, 그 주제에 관한 내용을 인간에게 (이미지로서) 전달하고 사유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길이 필요하며, 이러한 매체가 바로 ‘은유’라는 것이다. 은유는 인간 현존재의 근거로부터 던져지는 ‘답할 수 없는 물음’에 답하고자한다. 물론 이 연구가 직접적으로 ‘철학적 글쓰기’의 물음을 다루지는 않지만, 은유에 대한 이런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럽게 철학적 글쓰기의 방향설정에 대한 이론적 기초도 새롭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Zur Zeit hat die Rhetorik Konjuntur. Wenn man sich die Herabwurdigung der Rhetorik in der Neuzeit vorstellt, ist die heutige Stellung der Rhetorik ein bewundernswurdiges Ereignis. In der Rhetotik spielt die Methapher eine große Rolle. Was eine Metapher mitteilen will, hat nicht mit einem begrifflich-logischen Gedanken zu tun. Nach Blumenberg sind Metaphern keine Restbestande, die sich im Verlauf der Wissensentwicklung durch logische Begriffe ersetzen und verdrangen lassen, sondern Grundbestande der philosophischen Sprache. Dies bedeutet, daß durch die Metaphern der Umfang des philosophischen Denkens erweitert werden kann. Blumenberg fragt bemerkenswerterweise nicht nach dem Hintersinn, sondern nach der Funktion von Metaphern. Diese besteht fuh ihn darin, Sinnerwartungen, Orientierungen und Sichtweisen von der Welt und dem Menschen zu charakterisieren. Metaphern sind absoult, wenn sie sich nicht durch Begriffe ersetzen lassen. Absolute Metaphern erfassen umgreifende Zusammenhange und geschichtliche Sinnhorizonte, die dem wissenschaftlichen und begrifflichen Denken unzuganglich sind. So sehr Blumenberg in seiner Metaphoroligie auch einen eigenstandigen Standpunkt vertritt, so wenig kommt doch bereits hier sein eigentlicher Grundgedanke zum Durchbruch.

      • KCI등재

        W. 딜타이와 G. 짐멜의 삶의 개념과 이해 개념 : 삶의 철학의 복권을 위한 시론

        최성환 중앙대학교부설 중앙철학연구소 2009 철학탐구 Vol.25 No.-

        이 연구의 일차적인 목적은 딜타이와 짐멜의 삶의 개념과 이해 개념을 비교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삶의 철학의 복권을 위한 출발점을 마련하는 것이 이 연구의 궁극적 목적이다. 이와는 별도로 짐멜에 대한 관심이 다양한 관점에서 제기된다는 점에서 짐멜 철학에 대한 소개는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짐멜의 사상이 철학보다는 사회학에서 많이 연구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철학적 탐구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사회학적 논구의 뿌리가 바로 인간, 사회 그리고 세계에 대한 철학적 이해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가 추구하는 삶의 철학에의 길은 유행에 민감한 오늘날의 철학적 사유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에서 시작한다. 시대를 선도하는 사상이 분명 존재하며, 그런 사상의 눈으로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려는 것도 분명히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철학의 본질은 시대 속에 안주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문제점을 부각하여 새로운 좌표를 제시하는 반시대적 고찰에 놓여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 삶의 철학은 주지하다시피 통일과학을 지향하는 실증주의에 반하여 등장하게 된다. 오늘날 과학주의(혹은 자연주의)의 위력이 더 강해졌고, 여전히 과학적 세계관의 폐해에 관해 담론이 쏟아지면서도 삶에 대한 철학적 논구가 중심적 주제로 등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철학의 직무유기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좀 더 적절하고 충실하게 삶의 이해를 제공할 수 있을 때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에 대한 외면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삶속에 뿌리내리는 철학이 정립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Lebensphilosophie hat zur Zeit kein Konjunktur. Aber dies beduetet nicht, daß das Leben nicht mehr einen Gegenstand der philosophischen Reflexion sei. Im Leben versuchen wir zu philosophieren, nicht umgekehrt. Daher ist das Leben ein permanenter Ausgangspunkt, wo sich alle allta¨glichen und wissenschftlichen Bemu¨hungen stattfinden. Es geht in diesem Artikel um eine Selbstbesinnung der Philosophie, die immer zu neuer Mode tendiert. Einer neuen Mode zu folgen, ist an sich problemlos. Aber Philosophie ist ein Versuch, eine Distanz von dem Zeitgeist zu nehmen, und immer kritisch zu sein. Aus diesem Distanz-Nehmen wird es klar, was im menschen Leben bleben soll, d.h. wesentlich ist, und was u¨berwunden werden muß, d,h, oberfla¨chlich ist. Die beide zeitgeno¨ssischen Philosophen, Dilthey und Simmel waren fast gleichzeitig in Berlin ta¨tig gewesen. Aber die Denkfiguren von beiden sind verschieden, aber die beiden sind berhu¨mt als der Philosoph, der das Leben im Mittelpunkt seines Philosophierens stellt. Daher wird heir zunächst der Begriff des Lebens und des Verstehens von beiden miteinander vergleichen. Von da aus wird einen Konvergenzpunkt als eine Lebesphilosophie feststellen, die im heutigen Denken eine neue Aktualita¨t darbieten kann.

      • KCI등재

        배제의 미학’으로서의 모더니즘과 전통의 회복

        박영선 중앙대학교부설 중앙철학연구소 2005 철학탐구 Vol.17 No.-

        현대예술은 난해하다. 그 이유는 현대예술이 혁신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통의 맥락을 거부하는 가운데 조형성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조형성의 상실은 헤겔이 진단한 것처럼 예술의 존재론적 기반을 거부하는 것과 다름없다. 주지하듯이 헤겔은 예술의 존재 방식을 ‘이념의 감각적 현현’으로 정의하였다. 즉 예술은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든지 간에 직관에 의존한다. 하지만 현대예술, 특히 현대미술은 개념미술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직관을 거부하고 언어를 지향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시 말해 ‘작품의 빈곤’을 ‘철학의 과잉’으로 치장한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40년대 이후 미술계의 지배적인 담론이었던 모더니즘이 미술의 주류로 간주되면서 선언문, 비평, 예술이론을 쏟아내었고, 예술가들은 이론 추종적인 작품을 양산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현대미술의 세계 상실이라 불릴 수 있는 이러한 ‘철학의 과잉’ 현상은 결국에 예술이 그림 밖의 세계에 대한 지시기능을 완전히 소멸시켜 순수한 형식으로 남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언급’의 차원으로 해소되었음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모더니즘에서 선언문 혹은 예술이론이 ‘작품이 무엇에 관한 것인가’를 해석하는 것에서 ‘작품이란 무엇인가’를 기술하는 것으로 전환됨으로써 작품이 의미론적 접근을 차단하였음을 의미한다. 특히 그린버그는 모더니즘의 ‘자기 비판’적 성향을 철학적으로 근거짓기 위해서 칸트에 의지한다. 그린버그에 의하면 칸트가 순수이성 개념에 따라 ‘비판의 방법을 비판한’ 최초의 철학자였듯이, 모더니즘 회화는 모던한 것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매체를 선택해야 한다. 그의 비평적 선언에 따라 ‘순수성’을 추구했던 예술이 이른바 추상예술이다. 그러나 모노크롬을 지향한 현대미술은 세계와 의미론적 관계를 상실하였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원성의 기치 아래 배제되었던 전통의 회복을 추구한다. 물론 이때 전통의 수용은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옛 것을 새롭게 파악하고, 옛 것으로부터 배운다는 전용을 의미한다. Die Idee des Modernismus besteht darin, die klare normative Definition sowohl in dem erkenntnistheoretischen und moralischen als auch in dem künstlerischen Bereich dadurch zu erreichen, daß man die distinktiv dem jeglichem Bereich gehörige Wesenheit findet. Im künstlerischen Bereich ist im Kantischen Sinne von Selbst-Kritik zu versuchen, was die Kunst ist. Greenberg selber ist derjenige, der nach der Idee der Modernität die Kategorie der Wesenheit der Malerei zu definieren und die der Kategorie nicht angehörig zu scheinende Kunst aus dem künstlerischen Bereich zu vertreiben versucht. Die Kunsttheorie spielt im Modernismus wichtige Rolle, indem sie im Schafen der Kunst nicht als einen Hintergrund, sondern als eine transzendentale Maxime ausmacht. Jedoch bezicht sich der Wert irgendeiner Kunsttheorie, die bestimmte theoretische Position zu verteidigen, nicht auf die Herstellung der Kunstwerke, sondern auf die sich innerhalb des kunsttheoretischen Diskurses behaupteten Argumente, die die Kunsttheorie selbst verteidigen. Also ist die Kunsttheorie in der Produktion moderner Kunstwerke wichtig geworden, indem sich die ästhetische Modernität durch das Narrative behaupt. Angesichts der Theorizierung der Kunst stellt sich nun die Frage, wie der ‘Überfluß der Philosophie’ überwunden werden kann. Also befasse ich mich damit, erst zu zeigen, daß die moderne Malerei wegen der Verlust der Sinnhaftigkeit in der Gefahr steht, die ontologische Grundlage der Kunst zu verlieren scheint. Darüberhinaus versuche ich zweitens zu zeigen, wie die ‘Mangelhaftigkeit der Kunstwerke’ mit Hilfe der Übertragung der Tradition ersatz werden kann. Um solche Fragestellung entgegenzutreten, wird zuerst über die Kunsttheorie Clement Greenbergs diskutiert. Dabei wird vor allem gezeigt, daß sich der formalen Modernismus im Sinne von Greenberg von der Tradition fernzuhalten versucht. Danach wird in Hinsicht des Postmodernismus über die Pluralität der Kunst diskuti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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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레즈 파스칼의 행복론

        장성민 중앙대학교부설 중앙철학연구소 2004 철학탐구 Vol.16 No.-

        본 논문은 블레즈 파스칼의 행복론을 그의 변증론적 관점에서 다룬 것이다. 『팡세』의 구조가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비침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간의 행복으로 되어있듯이 그의 행복론은 변종론적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변증론의 성격상 사람들에게 그가 믿는 종교를 변증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과 가장 밀접한 주제를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복론은 단순히 이론적이고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것이며, 특히 그가 1654년에 경험한 영적 사건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행복론이 영적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그것은 행복의 근원을 하나님의 은총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두 철학자는 변증론 안에서 이성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선적으로 파스칼은 인간의 조건 혹은 상황을 통해 행복론을 전개해 나간다. 파스칼이 말하는 인간상은 비참하면서도 위대한 존재라는 이중성을 갖는다. 여기서 위대함이란 변증법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비참을 아는 위대함이다. 파스칼이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인간실존을 비참 앞에 직면하게 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향해 눈을 돌리도록 하고자 하는 변증론적 목적 때문이다. 이런 의도 하에 그는 세속적 삶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의 허구성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보여준다. 즉 자아 안에서의 행복의 추구와 자아 밖에서의 행복의 추구이다. 전자는 기만적 세력인상 상력과 기분전환을 통해서 행복의 허구를, 후자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 에픽테토스의 철학과 몽테뉴의 철학 안에 나타난 행복의 허상을 보여준다. 파스칼은 이들 철학의 부분적 진리성은 인정하지만 스스로 넘어 설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철학 안에서는 진정한 행복의 길에 이를 수 없다고 보고, 인간의 행복은 단순히 철학이나 인간학 안에서가 아니라 신적 진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을 주장한다. Ce me´moire traite d´une conception du bonheur chez Blaise Pascal clans son apologe´tique. Cela doit e^tre conside´re´ an niveau de 1'apologe´tique clans la n sure of son plan de Pense´es s'est forme´ en deux parties: ;mise`re de 1'homme sans Dieu; et ;felicite´ de 1'homme avec Dieu.; Ⅱ est naturel qu´il a choisi le sujet tre`s e´troitement lie´s aver une vie humaine, parce que 1'apologe´tique a pour objet de faire connai^tre aux gens son veritable religion. C'est pour cela que sa conception du bonheur n'est pas the´orique, conceptuelle, mais factuelle, pratique. Particulierement, elle est fondee sur son experience spirituel qui s'est passee en 1654. Ainsi, ce que Pascal lie `bonheur' et 'vie spirituelle,' c'est de refleter la pensee de Saint Augustin, c'est-a-dire de chercher la source du bonheur clans la grace divine. Toutefois, les deux philosophes reconnaissent un certain role de la raison humaine pour 1'apologetique. D'abord, Pascal de´veloppe la conception du bonheur par la condition de 1'homnne. L'honHie de Pascal a une dualite, c'est-a-dire que la grandeur de 1'honme est grande en ce qu'il se connait miserable. La raison pour laquelle it met 1'accent sur cela, est pour le but apologetique qui s'efforce de nous rapprocher du veritable bonheur en placant 1'existence de 1'homme en face de son misere. Sous cet intention, it denonce a la fois la recherche du bonheur hors de soi et celle du bonheur en soi. La premiere se reduit a une course vaine clans 1'imagination et le divertissement; la derriere, clans Epictecte and Montaigne dont les dew( routes sont deux impasses. C'est ni dans le monde ni en nous-nnexne, que l'on pourrait trouver le veritable bonheur. Pascal pretend donc qu'il faut le chercher non pas clans la philosophie et 1'anthropologie, mais dans la verite divine.

      • KCI등재

        멜랑콜리 - 이미지 창작의 원동력 :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제들』을 중심으로

        김동규 중앙대학교부설 중앙철학연구소 2009 철학탐구 Vol.25 No.-

        본 논문은 이미지에 대한 어원적이고 신화적인 선이해를 바탕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제들』에 등장하는 멜랑콜리와 이미지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밝히고, 그럼으로써 멜랑콜리가 이미지 창작의 원동력일 수 있는가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작업을 통해서 1) 멜랑콜리 담론의 효시가 되는 텍스트의 내용을 검토하고, 2) 멜랑콜리와 (예술적) 이미지의 내적 관계를 고찰하며, 3) 그럼으로써 이전의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서 해명되지 못한 부분, 즉 은유적 이미지 제작론에 대한 미진했던 해석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과 예술 방면의 비범한 사람들이 모두 멜랑콜리커였다고 증언하면서, 고대 의학의 4 체액설을 인문학적 관심 영역과 연결시킨다. 그가 보기에, 멜랑콜리 곧 검은 담즙의 과잉(페리토스)은 문화창조의 비범한 천재를 만드는 필요조건이다(물론 충분조건은 아니다). 포도주가 일으키는 심신의 변화를 통해 유비적으로 멜랑콜리 현상을 설명하면서, 그는 포도주, 디오니소스, 아프로디테, 열기 등의 모티브로써 멜랑콜리가 사랑의 열정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부재하는 사랑 대상에 대한 과도한 열정이 이미지 창작을 추동하며, 더욱이 범상한 눈으로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이미지의 연쇄와 결합을 설명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은유는 타고난 능력의 표시이다. 다시 말해서 은유적 이미지 창작은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멜랑콜리 담론과 접속시켜 말하자면, 여기에서 타고난 능력이란 검은 담즙이 과도하게 흐르는 멜랑콜리 체질이자 과도함의 절묘한 균형 상태를 뜻하고 이 경우 멜랑콜리는 사랑의 어두운 열정을 뜻한다. 독창적인 예술적 이미지는 이런 멜랑콜리 과잉을 창조적으로 전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광적인 사랑, 치명적인 고통이 불러오는 정념의 비정상적인 과잉이 독창적인 이미지, 진리를 드러내는 이미지 제작의 원동력인 셈이다. This paper will reveal which relations are there between image and melancholy, which was described in Aristotle's Problems Ⅱ, Book ⅩⅩⅩ, on the ground of the etymological previous-understanding about image. Thus I would like to demonstrate how melancholy can become the power of (artistic) image creation. First of all, we will examine the text, which was the origin of melancholy-discussion. Thus we can consider the intrinsic relations between melancholy and artistic image. Finally, we can compensate with this study the incomplete interpretation about metaphorical image creation, which was unable to be explained until now in the Aristotle's Poetics. Aristotle argued that all outstanding philosophers and artists were melancholic. According to him, the excess of melancholy(black bile, atra bilis, μέλαινα χολή, μελαγχολία) is a necessary condition for the culture making genius(of course it is not a sufficient condition). He explained the melancholy phenomenon by analogy with wine, and suggested that melancholy was a passion of love, referring to motifs i.e. wine, dionysus, aphrodite, heat etc. Excessive affection toward the lost loved-object gives rise to make image in order to substitute for it and it brings a long image chain that normal mind state can not reach. Well-knownly is for Aristotle the metaphor a sign of the genius. Through our study is interpreted the genius a melancholic temperament, which flow the excessive black bile in body and it is a well-mixed condition of the abnormality of black bile and it is the black passion of love. The original artistic image is a good example to use excessive melancholy creatively. Therefore the dark shadow of enthusiastic love, that the melancholy symbolized, is the power of the image cre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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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적 문제로서의 권위

        최성환 중앙대학교부설 중앙철학연구소 2005 철학탐구 Vol.17 No.-

        이 논문은 ‘탈권위’라는 구호와 함께 진행되고 있는 ‘변화와 개혁’의 방향에서 진정한 권위의 조건을 묻는 작업이다. ‘권위주의 시대’가 양산했던 제반 분야의 많은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바람직한 공동체의 기틀을 다지고자 하는 ‘탈권위주의’의 노력은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경제적 영역’에서 주도적으로 형성된 권위는 공동체의 모든 생활영역에 확산됨으로써 한편으로는 사회발전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부정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하버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체제 유지적’ 기능의 권위가 ‘진정한 권위’의 원천인 생활세계를 식민지화함으로써 더 이상 용인가능한 권위의 창출이 불가능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이 논문은 권위가 비록 부정적인 개념이지만 사회의 안정과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개념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필자는 권위의 부재에 따른 한국사회의 심각한 혼란상황, 대립과 갈등을 주목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란 지금 극복의 대상으로 전락한 집단들이 한때 ‘변화와 개혁의 슬로건’을 내걸고 한국의 현대사를 이끌어 왔다는 사실이다. 결국 ‘변화와 개혁이라는 슬로건’이 아니라, 어떤 주장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당성을 인정받는 ‘권위’의 회복이 관건인 것이다. 이런 기본 논지에서 이 논문은 진정한 권위의 조건을 형성하는 리더십을 살펴봄으로써 논문의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Thema dieser Arbeit ist Autorität als ein philosophisches Problem. Autorität als ein philosophisches Problem beinhaltet die Frage nach der Bedingungen der authentischen Autorität. Ausgehend von der Auffassung, daß die Autorität für das menschliche Leben unentbehrlich ist, versucht diese Arbeit, Rahmenbedingungen der Autoritätsfrage deutlich zu machen. Zunächst wird es versucht, begriffgeschichtlich die positiven Bedeutungen der Autorität darzustellen. Daraus wird es deutlich, daß die Autorität trotz der inhaltlichen Veränderungen in der menschlichen Geschichte eine notwendige Bedingungen für einen stabilen Zusamennhalt der Menschen ist. Als sich die Grundzüge der heutigen Gesellschaft herausbildeten, stand die Legimität der traditionellen Autorität Mittelpunkt der sozialphilosophischen Überlegungen. In diesem Sinne hat sich Horkheimer mit dem Problem ‘Familie und Autirotät’ beschäftigt. Offenbar hat es in der Gesellschaft immer die Streit zwischen neuen Traditionen und alten Traditionen gegeben. Aber Autorität ist immer ein wesentlicher Bestandteil des Zusammenhaltes von den verschiedenen geselllschaftlichen Schichten gewesen. Autorität ist ursprünglich ein negativer Begriff. Aber Autorität ist unentbehrlich, sofern die Menschen auf ein Zusammenleben abzielt. In der modernen Gesellschaft wird es aufgefordert, die traditionelle Autorität zu überwinden. Dies besagt, daß eine neue Autorität die alte Autorität ersetzen muß. Dennoch muß man einräumen, daß die Autorität trotzt ihrer historischen Bedingtheit ein der wesentlichen Bestandteile für die Sicherung der Gesellschaft ist. Zum Schluß wird hier betrachtet, welche Rolle einer leitende Persönlichkeit (leadership) in der Gesellschaft spielt. Als ein Modell der leitenden Persönlichkeit hat diese Arbeit ‘Noblesse Oblige’ hervorgeho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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