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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인과 타자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유럽중심주의

        홍길표 ( Kil Pyo Hong ) 연세대학교 유럽사회문화연구소 2012 유럽사회문화 Vol.8 No.-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토마스 만에 의하면 그의 전체 작품에서 중요한 ``전환기``를 의미하며 한 시기의 끝에 위치하는데, 이 시기를 지배하는 열쇠말은 데카당스와 예술가 문제라고 한다. 즉『베니스에서의 죽음』은 그의 첫 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래 그가 천착해온 이 문제의 완결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단편소설의 ``대립작품``으로 구상된 『마의 산』을"개인적 아픔의 세계로부터 사회적이며 인간적인 도덕성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라 칭하며 ``베니스-소설``을 아직 치명적인 "죽음의 매혹"이, "도취적 무질서의 승리"가 지배하는 비극적인 소설로 읽을 것을 요구한다. 그의 정치적 의식의 변화 및 발전은 - 무엇보다도 토마스 만의 자기이해에 의하면 -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19년에 가서야 이루어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베니스-소설은 ``비정치적`` 작가의 ``위험한`` 시기의 결과물인 셈이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이 자기이해와 자기해석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작품을 분명히 자기비판 혹은 자아성찰의 차원에서 나온결과물로 본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하는 두 가지 점은 작가는 이 작품의 비정치성과 성찰성을 동시에 강조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 또한 이것을 작품해석의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이 비정치적이고자 하는 작품을 작가의 자전적 시각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럽의 전통적인 신화적시각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본고의 목표는 이 베니스-소설의 비정치성 안에 내재되어있는 정치성을, 성찰성 안에 내재되어있는 맹목을 읽어내는 것이다. 이 소설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유럽과 비유럽/타자의 구별에 기초하는, 결코 비정치적이지 않은 유럽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전형적인 예술가를 재현한다기보다는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만들어진 ``영웅``이라할 수 있다. 본고는 작가 토마스 만이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에서 이 주인공/영웅을 통해 만들어내고자 하는 유럽인의 정체성을 살펴보며 작가가 비유럽을 재현하기위해 유럽의 남부 베니스를 어떻게 타자화하는지 고찰하고자한다.

      • KCI등재

        유럽연합의 경제 가치관과 18세기 영국 사상가들: 일치와 차이

        윤혜준 ( Hye Joon Yoon ) 연세대학교 유럽사회문화연구소 2010 유럽사회문화 Vol.5 No.-

        본 논문은 유럽연합의 헌법적 문서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인권 및 기본 자유 보호 조약(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 1950), 유럽연합 기본권 헌장(Charter of Fundamental Rights of the European Union, 2000), 유럽연합헌법 조약(Treaty Establishing a Constitution for Europe, 2004)에 나타난 경제관련 조항 및 가치관 중, 자유무역(free trade)과 소유권(property)과 관련된 부분들을 살펴보고, 이를 근대자유주의 사상의 원조인 18세기 영국 사상가들인 흄(David Hume)과로크(John Locke)와 연관시켜, 그 이념적 색채와 특징을 고찰하였다. 연구의 방법으로 주요 문서에 대한 비판적 독서법을 택하였고 인권법 분야의 논저들을 참고하였다. 유럽연합은 유럽경제공동체가 그 모체가 된다는 점에서, 또한 유럽경제공동체는 자유무역지대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자유무역에 의한 상호이득을 일찍이 강조한 흄의 사상과는 직접적 연관성을 띤다. 하지만 개인 사업가의 자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유럽자유시장 안에서의 임금노동자의 피고용권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점은 흄의 사상이나 그 시대와는 먼 거리에 있는 20세기적 사회민주주의의 유산이다. 또한 유럽연합의 헌장들이 강조하는 기본권의 핵심은 인권이고, 인권은 개인의 권리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사적 소유권의 논리로 개인의 권리를 주장한 근대 사상과의 인권에 대한 논의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배타적인 사유 재산권을 강조하고 이러한 소유권의 보호를 정치공동체의 존재이유로 규정한 로크의 사상과 일반적으로 ``인권``이 연상시키는, 그리고 유럽연합이 명시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진보적, 사회적, 공동체적 입장과의 연관성을 살펴봐야 할 이유가 제기된다. 유럽연합의 핵심 문서들은 소유권을 부인하지 않지만, 이를 우선순위에 있어서 부차적인 지위에 두거나, 이에 대한 다양한 제약의 여지를 명시하므로 사유재산권의 폐해를 예방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이 유럽연합의 핵심적인 문서들은 자유시장경제의 기본 전제를 이루는 사유재산, 또한 유럽연합의 태동 및 존립의 토대가 되는 자유무역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흄과 로크의 사상과 일맥상통 하지만 이를 우리 시대의 사회경제적 가치관에 맞게 조정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러한 노력은 조항 문구 및 논리상의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영미권의 신자유주의적 경제관에 대한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KCI등재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에서의 영화와 사진

        프리트헬름마르크스 ( Friedhelm Marx ) 연세대학교 유럽사회문화연구소 2011 유럽사회문화 Vol.7 No.-

        바이마르 공화국은 토마스 만의 작품세계에 있어 여러 관점에서 전환 기를 의미한다. 1914년부터 위험한 정치적 논쟁이 진행되었고, 1차 세계대 전 직후 당대의 새로운 매체들에 대한 심도있는 관심과 작업이 시작되어 이것들이 1920년대의 에세이와 문학작품들에서 결과물로 나타난다. 토마스 만의 영화와 사진에 대한 관심과 작업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문학에서 전형적인 것으로, 이것은 -당대의 많은 작가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그 의 문학관이나 글쓰기 작업에 대한 검토와 성찰로 이어진다.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매체들에 대한 관심, 그것들과의 싸움은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불가피한 것이었다. 토마스 만에게 사진과 영 화는 정치의 영역과 가까운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데, 그는 이 매체들을 우 선은 예술과는 거리가 먼, 민주(주의)적인 매체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은 1923년의 한 에세이에서 영화는 "엄청난 민주(주의)적인 힘"이 라고 하는데, 그것은 그가 작업하기에는 그의 본성과는 너무 거리가 먼 매 체를 의미한다. 그는 비록 여기서 영화의 "교육적이고 예술적-정신적 가능성"을 인정은 하지만, 한동안 이 "민주(주의)적인 매체에 대해 예술적인 의미에서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 거리두기는 얼핏 보면 『마의 산』에서도 표현되는바, 이 소설에서 영 화와 사진은 예술의 형식들이 아니라 시간 때우기에나 사용가능한 것들일 뿐이다. 소설의 주인공 Hans Castorp의 다보스에서의 영화관가기나 "전염 병"으로 칭해지는 취미용 사진찍기는 ``문화``로 간주될 수는 없는, 기껏해 야 ``문명적인`` 개혁에나 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와 사진은 소설 속에 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데, 이것은 다른 식으로는 시간을 때울 줄 모르는 대중들을 위한 매체인 것이다. 하지만 『마의 산』은 이런 자리매김과는 별개로 단순히 거리취하기의 제스쳐를 뛰어넘는 이 매체들에 대한 세심한 성찰을 하고 있다. 1. 영화: 시간과 공간의 해체 영화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문학에게는 가장 강력한 매체적 도전을 의 미한다. 이것은 이를테면 1920년대 초에 절정을 이루었던 ``영화-논쟁``에 서 보여 진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작가로서 활동하는 자는 누구나 좋든 싫든 이 새로운 매체의 사회적 가치나 문화적 기능, 미학적 특징을 평가해 야만 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이 영화-논쟁의 문학사적 의미는 매우 크 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매체인 영화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환점이후 문학영역에서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것들 중의 하나이다. 토마스 만은 이 와 같은 현상을 정확하게 감지했다. 토마스 만의 반어적인 유보적 자세에도 불구하고 이 인용문에서는 1920 년대에 영화가 갖고있던 엄청난 영향력이 읽혀진다. [이것은 이를테면 1920 년대 초에 절정을 이루었던 `` 영화( 관)-논쟁`` 에서 보여 진다. 바이마 르 공화국에서 작가로서 활동하는 자는 누구나 좋든 싫든 이 새로운 매체 의 사회적 가치나 문화적 기능, 미학적 특징을 평가해야만 했다.] Yvan Goll은 1920년 그의 에세이 Das Kinodram 에서 "다가오는 모든 새로운 예술의 토대는 영화이다."라고 쓰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이 새로운 운동/움직임 없이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와 는 다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매체에 대한 이 열광적인 반응에는 속도와 빠름, 가속도의 새로운 미학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느린 매체로서의 (전통적인) 문학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 다. Goll은 연극과 문학이 영화의 도전에 생산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면, 영화관이 국립극장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 실 영화의 매체적 도전을 제일먼저 받는 것은 연극이었고, 연극은 또한 당 시 시민계급의 오락의 이 새로운 형식의 성공에 공격적으로 반응을 하게 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연극이 점차 시민관객을 끌어들이는 영화에 대 해 반응하는 정도로 (전통적인)문학은 매체로서의 영화와 씨름을 하게 된다. 새로운 매체 영화에 대한 문학 쪽의 반응은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형성 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거의 모든 유명한 작가들은 영화에 관한 에세이 작업들을 한다. 나아가 유명한 작가들은 영화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가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매체를 귀족화하는데/고상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영화산업 쪽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다. 새로운 매체와의 씨름은 문학영역으로도 파고든다. 새로운 매체는 영화 기술적인 서술의 형식들을 강화시켜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것은 물론 영 화기술의 발명 이전에도 이미 있기는 한 것이었다. 새로운 도시적 미학의 맥락에서, ``신즉물주의``의 맥락에서 영화처럼 삶의 새로운, 가속화된 속도 를 고려하는 새로운 양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미 동시대인들은 이것을 감지했다. 극장감독들에 대한 Alfred DOblin 의 요구가 이것을 말해준다: "영화의 극작법인 간결성을 배우시오. 당신들 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장면들(Bilder)에 불꽃이 튀는 확실한 틀을 주시 오. 새로운 미학이 그것을 지지할 것이오." 그는 3년 뒤 소설작가들과 비 평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추천한다: "재현/표현은 (형식을 갖게 된 것의 엄청난 양에도 불구하고) 영화기술적인 스타일/양식을 요구한다. ``이 야기의 충만함/강렬함``은 극도로 간결하고 간명하게 흘러가야만 한다. [...] 매우 빠른 진행, 단순한 표제어들로 이루어진 뒤범벅". 일종의 영화양식을 정착시키려고 애쓰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많은 소설들이 이것을 대변하 며 빠르고 간결하며 시각적으로 구상된 서술을 실험해본다. 토마스 만은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에 처음부터 회의적인 자세를 보인 다. 이런 식으로 영화에 접근하는 Jacob Wassermann의 한 소설에 대해 그 는 일기(1919년 1월 11일)에서 "아주 웃기는 서술양식"이라고 힐난한다. 몇 달 후 『마의 산』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할 때, 그는 그런 종류의 양식적 인 실험을 전반적으로 배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마의 산』 작업이 당대와 바이마르 공화 국의 매체를 매우 주시하고 있음은 이 소설이 이야기의 차원에서 영화와 씨름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즉 이 소설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다 른 많은 소설들처럼 영화관장면을 하나 보여주고 있다. 1920년대에 영화 관방문을 집어넣지 않는 소설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것의 원 인이 문화비판적인 코멘트를 도발하는 이 새로운 매체의 문화적 성공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관은 바이마르공화국에서 거대도시 거주자의 ``자 연스러운`` 체험공간에 속하는 것이다. 이 체험공간이 이를테면 신즉물주 의의 맥락에서 문학적으로 조명되는 곳이면 어디서나 영화관은 불가불 등 장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문학에서 늘 등장하는 영화관 방문이 다 설명되 는 것은 아니다. 영화관은 오늘날까지도 대도시(그리고 소도시)적 체험공 간으로서 그 의미를 전혀 잃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문학 에서 그 당시처럼 다채롭게 서술된 영화관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주제는 그 매력을 잃어버린듯하다. 토마스 만이라면 이 주제는 이야기차원에서는 끝났다라고 할 것이다. 그에 반해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이 새로운 매체 의 언제 끝날 줄 모르는 폭발적인 성공담으로 인해 (전통적인)문학세계가, 특히 소설이 매체경쟁을 주제차원에서 받아들였던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 국의 소설에서 영화관방문이 보통 문학적 자기성찰의 핵심적인 장면을 차 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화관 장면에서는 영화라는 아주 다른 매체 의 문제가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매체적 가능성에 관한 성찰이 중심이 된다. 이 소설들이 영화(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은 자 기자신의 매체가 반영되고 영화와의 매체경쟁에서 주장되는 것이다. 이로써 이제 나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소설을 살펴보고자 한다. 주 인공 Hans Castorp가 마의 산이라는 표면상 무시간적인 세계에서 영화관 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의 사촌과 죽어가는 Karen Karsted와 함께 이 영화관을 방문한다는 사실은 첫눈에는 놀랍다. 다보스 광장의 극장에 서 이 세사람은 우선 "격앙된 사랑과 살인이야기"를 보게 된다. "동양의 어느 폭군의 궁정에서 전개되는 무성의 드라마, 호화로움과 나 체, 지배욕과 광신적인 비굴함, 잔혹과 욕망과 무서운 애욕의 사건들, 목 을 자르는 망나니의 팔의 그 힘찬 근육을 스크린 가득히 천천히 사실적으 로 나타냈으나, 그 밖에는 모두가 성급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요컨대 세 계의 문명국에서 모인 관객들의 은밀한 희망을 알아서 그것에 적합하도록 제작된 것이었다. [...] 폭군은 칼에 찔려 입을 벌리고 끔찍한 비명을 지르 며 죽어갔다."(5.1, 480) Hans Castorp가 마의 산에서 지내는 첫해인 1908년도 초에 이런 종류의 영화는 그 어느 곳에서도 아직 볼 수 없었다. 이 장면은 1988년 Christoph Schmidt가 이미 밝혔듯이, 토마스 만이 1920년 9월 Sendlinger Tor영화관에 서 보게된 Ernst Lubitsch (무성)영화 Sumurun을 통해 자극을 받고 쓰여진 것이다. 소설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이어지는 상영물인 세계 각국의 주간 뉴스도 매체사적으로 볼 때 1차 세계 대전 전이 아니라 그 이후에나 만들 어지는 것이다. "이어서 사람들은 세계각국에서 온 장면들을 보았다. 프랑스 공화국 대 통령이 실크햍과 수장을 달고 개폐식 자동차에 앉아 환영에 답하는 장면, 인도 왕의 결혼식에 참석한 인도 총독, 포츠담의 연병장에 나타난 독일 황 태자, 노이메클렌부르크의 토인부락의 생활상, 보르네오의 싸움닭, 콧구멍 으로 피리를 부는 야만인, 야생코끼리사냥, [...]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의 현장에 있었다. 공간은 폐기되었고 시간은 해체 되었다. 저 공간과 과거의 시간은 스쳐지나가는 기만적인, 음악이 감도는 이곳과 현재로 변해버렸다. [...] 이윽고 환영은 사라지고 스크린에 흰 빛이 비치면서 ``끝``이란 글자가 나와 1회 분의 프로그램이 끝났다. 새로운 관객들이 같은 프로그램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기 위하여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가운데 모두들 묵묵 히 밖으로 나갔다."(5.1, 481f.) 이 묘사 또한 시대착오적인 것이지만 토마스 만은 그것을 감수하고 있 다. 상영물의 묘사 또한 영화양식을 시도해보는 것이어서 소설의 전체 틀 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이 실험적인 영화 양식은 다시 한 번 소설의 끝 세 계대전 묘사에서 사용된다. (1차 세계) 전쟁 이전의 세계를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토마스 만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나 속하는 매체 체험을 자신의 이 소설에 투입하고 있다. 이것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요양원에서 계속 체류하다가 발견하게 되고 병적으로 빠져 듣게 되는 축 음기 또한 1920년대에나 속하는 것이다. 이로써 이 소설은 축음기와 영화 그리고 책 사이의 매체경쟁의 각축장이 되는데, 이것은 분명 문학 쪽이 유 리하게 흘러간다. 어쨌건 이 영화(관)에피소드는 1920년대 초 토마스 만의 몇 년간 중지시켜놓았던 소설콘셉트에 대한 검토가 당시현재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관 방문의 맥락은 또한 소설세계로 1920년대의 특징에 속하는 체 험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죽어가는 Karen Karstedt를 위해 한스 카스토르 프와 요아힘 찜센은 처음에는 빙상시합, 그다음에는 봅슬레이경기, 마지 막으로 영화관과 카페를 찾아가게 되는데, 이 카페는 이곳 요양소의 상류 사회풍의 방문객들이 희귀한 음료수들을 마시면서 춤을 추기 위해 가는 곳이다. 이 스포츠와 영화, 춤을 통해 소설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오락문화 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들은 이 소설에서 엄밀한 의미에서는 등 장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곳에서 마의 산의 반대세계가 문학적으로 만회 되고 있는 셈이다: 즉 마의 산 세계의 멈추어 서있는 현재 에 행사프로그 램은 빠른 속도를 지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가벼운, 음악이 곁들인 대중들을 위한 오락을 제공하며 그 중심에 온 세계 에서 유래하는 번쩍거리는, 영화에 의해 매개된, 기술을 통해 마술처럼 불러온 삶을 제공하고 있다. 세명의 방문객들에게 이 환상의 형식은 소화할 수 없는, 의식을 혼미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감각적인 것을 과도하게 제공하는 것이고 감각을 과도하게 요 구하는 것으로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영화라는 매체는 우선은 이것의 영향을 통해 묘사되고 평가된다. "만약 판단력의 소유자인 세템브리니라면 이러한 인간성에 역행하는 작품을 단호히 거부하면서, 저 명쾌하고 고전적인 반어를 사용하여 인간 의 기술을 이따위 인간모욕적인 관념을 뒷받침하는데 악용한 것을 통렬히 비난했을 것이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이런 생각을 사촌에게 나지막한 소 리로 얘기했다. 한편 이들과 별로 떨어지지 않은 좌석에 슈퇴어 부인이 앉 아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완전히 영화에 열중한 듯, 그 무 지하고 붉은 얼굴이 흥분으로 일그러져 보였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한결 같이 황홀해 보였다." (5.1, 480) 소설은 이런 식의 부정적인 효과에 대한 묘사와 함께 매체로서의 영화 로부터 거리를 취한다. 화자에 의해 중개된 온 세상의 각종 다채로운 장면 들에 대한 욕망에도 불구하고 독자라면 영화관 방문 후에 곧바로 달콤한 독주를 퍼마시는 슈퇴어 부인의 세계에 속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욕망 과 도취, 마취는 소설 『마의 산』에 내재되어있는 매체미학의 관점에서 영 화의 효과들이다: 영화는 성찰의 매체는 결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소설에서 시간과 공간의 지각을 중단시키고 일시적으로 해체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그만큼 이야기의 차원에서는 매우 진지하게 받 아들여지고 있다.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의 현장에 있었다. 공간은 폐기되 었고 시간은 해체되었다. 저 공간과 과거의 시간은 스쳐지나가는 기만적 인, 음악이 감도는 이곳과 현재로 변해버렸다."(5.1, 481) 한스 카스토르프 가 이런 식의 체험을 하는 것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다: 이와 같 은 것은 프리비스라프 히페에게 그가 연필을 빌리는 학교교정에서의 한장면이 떠오르는 갑작스러운 회상에서도 일어난다. 이 회상의 환영에 내 재해 있는 근원적인 기만효과는 이미 마의 산에서의 체류 첫 주에 일어나 는데 이것은 매우 유사한 표현으로 묘사된다: "그는 너무도 강렬하게, 남 김없이, 시간과 공간의 해체에 이를 정도로 그곳과 그 공간으로 빠져들어 가서, 우리는 본래의 한스 카스토르프가 아주 멀리 과거의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동안, 이곳에는 죽은 육신만이 냇가 옆의 벤취 위에 누워있 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5.1, 183) 영화체험 후에는 한편으로는 "하모니의 향연"이, 다른 한편에서는 강신 술 회합이 아주 유사한 방식으로 도취와 시간과 공간의 해체체험을 강화 시킨다. 소설은 이 체험들 모두를 즐거우면서도 위험한 모험들로 보여준 다: 이것들에는 에로틱과 죽음에 대한 동경이 깃들어있다. 소설의 모티브 구조 차원에서 영화관 에피소드는 이물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설 『마의 산』은 영화의 ``문제적인prekar`` 효과를 선보이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의 오락문화의 대표자로서의 영화와 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로써 소설은 더 훌륭한 영화는 소설 안에서 상연됨을 알리려고 하는 것이다. 2. 사진: 예술과 빛을 통과시켜 비추기 예술형식으로서의 사진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공개적인 논쟁에서 1920 년대가 흘러가면서 중요성을 획득한다. 무엇보다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 는 신즉물주의 운동의 맥락에서 1925년 이후에. 이것은 유명한 사진작가 들의 사진첩 출판과 초기의 문학적인 통합실험들(사진을 문학적으로 받아 들여 통합시키려는 실험)에서 보여지는데, 이를테면 Kurt Tucholsky는 "모 든 것 위의 독일 Deutschland, Deutschland uber alles"이라는 그의 사진첩에 서 이것을 시도한다. 신즉물주의의 작가들과는 차별적으로 토마스 만은 1925년에 뮌헨의 도서주간의 개막을 맞이하여 작가와 사진작가의 작업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시인, 작가란 대상으로부터, 시대의 거친 문제들로부터 그의 뿌리에 이 르기까지 충격을 받는 인간이다, 그는 단순한 기수 Bannerschwinger가 될 수는 없다. 그의 자기규율과 엄정한 조각가정신을 사진기의 렌즈가 갖는 무관심과 혼동하는 것은 크나큰 실수이다. 그의 열정은 문제들을 (빛을 통 과시켜) 비추고, 양심을 일깨우고, 비판적인 정화작업과 내적인 해방작업을 하는 것이다." (15.1, 1050f.) 토마스 만이 여기서 작가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지도에 그리고 동시 에 사진과 같은 무관심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 바이마르 공화국에서의 작 가존재를 공개적으로, 강령적으로 조명해보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과 제에 대한 두개의 상이한 생각이 마주하고 있다. 즉 한편으로는 혼란한 시 대에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신즉물주의의 맥락에서 관찰하고 중립을 지키고 사물들에 사진적인 시선을 던지는 것. 토마스 만이 문제들의 비추기Durchleuchtung와 양심 일깨우기, 비판적인 정화작업 및 내적 해방작업을 작가의 열정으로 간주한다면, 그는 위의 두 입장을 중개하는 쪽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사진기 렌즈의 무관심으로부 터 거리를 취하기는 하나, 자신의 작가상에 (빛을 통과시켜) ``비추기``라는 사진의 코드를 가지고 있는 개념을 부가한다. 3년 뒤 토마스 만은 예술형식으로서의 사진에 대한 "문화보수적인" 저 항을 포기한다. 그는 1928년 12월 23일 Albert Renger-Patzsch의 『세계는 아름답다』라는 사진첩에 대한 그의 열광적인 "Berliner Illustrierten Zeitung" 평론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사진-나는 이 단어를 들으면 생기는 근엄한 인문주의적 저항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함께하지 않는다. 나는 정신적-예술적 영 역으로 사진작업을 포함시키려는 것에 대한 문화-보수적인, 반기술적인 저항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동참하지 않는다. 나는 사진과 관련하여 그 어떤 편견도 갖지 않을 것이다. 사진(술)의 진보는 그것에 저 항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X, 902) 바이마르 공화국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사진첩 중의 하나가 이 평론의 대상이었다. 토마스 만은 뤼벡의 박물관장 Carl Georg Heise를 통 해 Albert Renger-Patzsch의 사진들에 주목하게 되는데 그것들은 식물과 동물, 인간, 그리고 특히 오브제들, 기계세부분들, 건축물들을 다루는 것들 이다. 즉물성이나, 구조와 형식에 대한 반표현주의적인 옹호에서 이 사진 들은 토마스 만의 시학과 일치한다. 그는 Albert Renger-Patzsch를 그의 평론에서 "예술가라는 칭호를 들을만한" 세계의 사진가들에 포함시킨다. 이 사진첩에 대한 옹호는 사진에 대한 옹호로 발전한다. 토마스 만의 짧은 평론은 사진가의 정의로 끝을 맺는데, 그것은 작가의 정의와 완전히 일치 한다: "개별적인 것, 객관적인 것을 현상계의 물결에서 인지하고 고립시키 고 높이 올리고 강화시키고 중요하게 만들고 혼을 불어넣는 것, 예술, 예 술가가 하는 일이 이것 말고 무엇이겠는가?"(X, 904) 하지만 『마의 산』에서 사진이라는 것은 첫 눈에는 영화처럼 오락의 단 순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탁자에서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옥 외계단에서 사진을 찍었다. 다른 사람들은 우표들을 교환했다 [...]."(5.1, 171): 이것이 한스 카스토르프의 눈에 들어온 마의 산 사람들이 시간을 죽 이는 형식들이다. 처음에는 어는 멕시코인 곱추 만이 쉬지 않고 사진을 찍 어대는데, 그에게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다른 형식이 주어지지 않는다: 사진은 여기서 언어가 없는 자들을 위한 매체처럼 보인다. 비로소 한스가 마의 산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기에 이르러서 사진은 (거대한 둔감상태의 일부로서) "하나의 전염병"으로 발전한다: "사진(찍기)에 심취한 사람들; 사진 속에서 사람들은 살해된 시체처럼 보인다."(5.1, 952) 사진전시는 그것이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의 죽음을 선취한다는 점에서 마의 산에서 벌어지는 그로테스크한 오락중의 하나를 의미한다. 사진이 매체로서 이룩하는 것은 영화에서처럼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것, ``정지해 있 는 현재 nunc stans``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신체의 죽음에 대한 사진적인 선취라는 점에서 아마츄어사진은 방사선촬영 사진과 유사하다. 한스는 자 기자신에 대한 마지막 확신을 위해 처음에는 자기 손을, 다음에는 폐를 방 사선 촬영하도록 한다. 그가 처음으로 자기 손의 방사선 촬영 사진을 보게 되었을 때, "그는 그의 무덤 속을 보았다."라고 소설에서 서술된다. 이로써 일련의 빛을 통과해 비추기/방사선촬영이 시작되고 이것을 수집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것은 자기정체성을 확인해주는데 도움을 주어야하지만 오 히려 그것을 계속해서 거부한다. 소설 안에서 사진은 빛을 통과해 비추는(Durchleuchtung) 매체이다. 뢴트겐 촬영공간은 한스에게 곧바로 "사진작가의 작업실"(5.1, 326)을 연상시킨다. 요양원장 Behrens는 마치 카메라 앞의 사진작가처럼 움직인다. Behrens의 뢴 트겐 촬영은 정신분석학자 Krokowski박사의 수상한 분석(Durchleuchtung)작 업의 호위를 받는다. 그의 헤진 자켙은 이미 한스 카스토르프로 하여금 곧 바로 단찌히의 어느 사진작가를 떠오르게 한다. 크로코브스키가 분석을 통해 무의식을 비추려고 시도하는 반면, 베렌스는 뢴트겐기구의 도움을 받아 Durchleuchtung을 하려고 한다. 이 두 작업의 유사성은 이 두 작업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방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공간적으로 암시된다. "진찰실의 양 옆에 뢴트겐촬영실과 정신분석실이 마주보고 있다." (5.1, 555) 두 작업은 소설 안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병 원장의 뢴트겐촬영도 크로코브스키 박사의 분석적 노력도 한스 카스토르 프에게 그의 정체성에 관한 마지막 확신을 매개하지는 못 한다. 뢴트겐촬 영을 통한 유기적 분석Durchleuchtung과 사진찍힌 사람들이 살해된자의 시 체처럼 보이는 아마츄어 사진들은 인생에 관한 궁극의 해명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그려내 주는 것이다. 소설은 정신분석과 뢴트겐 의학, 사진술의 Durchleuchtung작업을 서로 결합시키고 서 로 경쟁을 시키는 것을 통해서, 소설이야말로 "문제들을 Durchleuchtung"하 기위한 본래 매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매체 경쟁이라는 차원에서 소설 『마의 산』은 자신 을 사진 및 영화와의 인접성과 차이에 관해 성찰하는 매체로서 연출하고 있다. 매체의 역사에서 볼 때 이와같은 것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이것은 근현대 소설의 특징에 속하는 바, 근현대 소설의 역사가 매체경쟁을 문학 적으로 시도하는 것이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비로소 시작하는 것은 아니 다. 18세기 말에는 연극과 소설이 영향에 대해 소설 안에서 비판적으로 논 의된다. 그리고 족히 150년 뒤 영화 및 사진과 함께 다른 경쟁매체들이 등 장한다, 이것들은 소설이라는 매체 안에서 다루어지며 그 영향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논의되는 것이다.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은 바이마르 공 화국의 이 새로운 매체들과의 대결을 본래 전쟁전사로서 구상된 소설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매체적 자기주장이라는 이 전형적으로 문학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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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저널리즘, 그리고 1830년대 파리의 출판문화 - 알프레드 드 뮈세를 중심으로

        김미성 ( Kim Mi Sung ) 연세대학교 유럽사회문화연구소 2017 유럽사회문화 Vol.0 No.18

        La France est entree, sous la Monarchie de Juillet, dans l`ere du capitalisme industriel et culturel. Dans cette situation, la nouvelle relation entre la litterature et le journalisme se forme dans les annees 1830, a Paris. Les deux revues qui ont joues un role important dans l`histoire litteraire, Revue des Deux Mondes et Revue de Paris, sont fondees en 1830. Avec La Presse, lancee par Emile de Girardin en 1836, commence le roman-feuilleton. Depuis lors, l`imprime periodique a change la culture d`edition parisien. Pour les ecrivains, l`imprime periodique etait le seul moyen de se faire connaitre et de vendre. “Les generations parvenant a l`age adulte en 1820 et en 1830 sont donc les premieres, dans l`histoire des lettres francaises, ou tous les ecrivains marquants vivent reellement de leur plume.” Alfred de Musset abhorre l`etat materiel de la litterature parisienne, le travail force pour les nouveaux medias. Pour lui, “c`est le plus degoutant marche qu`on puisse voir, ou chacun apporte sa denree, la marchande, en recoit le prix et s`en va le manger”. Malgre son aversion pour la litterature dite industrielle, il n`a pas pu se dispenser d`accepter la situation. Depuis l`annee 1837 jusqu`a l`annee 1845 il a ecrit onze nouvelles et contes qui sont parus dans les medias periodiques comme le journal et la revue. Il etait aussi `journaliste`. Son `carriere journalistique` commence avec Le Tableau d`eglise dans Le Temps, en 1830. Aussi, il a ecrit deux revues sur l`Exposition du Luxembourg en octobre 1830 et au janvier 1831. Apres, il a ete un membre d`equipe de redaction de la Chronique de la quinzaine depuis l`octobre 1832 jusqu`au fevrier 1833. Il a publie dix-neuf Revues fantastiques dans Le Temps. Le titre montre bien son intention de voir la societe de son temps non seulement avec les yeux de `diplomate` mais aussi avec ceux de `Figaro`. Malgre son aversion pour le travail force, il a ressenti l`importance du public. Il a su qu`il fallait chercher a attirer la foule, a etre compris et nomme par elle, car c`est par elle qu`on est de son tem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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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아시아 교류와 충돌, 혼종문화의 접점 사할린

        이은경 ( Yi Eun-kyung ) 연세대학교 유럽사회문화연구소 2021 유럽사회문화 Vol.- No.27

        This paper examines the unique culture formed as a result of intercultural exchange and conflicts in Northeast Asia by looking back on the history of Sakhalin Island. For this purpose, first of all it deals with sharp conflicts and confrontations between Russia and Japan. At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Sakhalin became an arena for competition of various ethnic groups flowed into this area. As a result, it became a specific cultural topography, where the cultures of the Ainu people and the Nivkh people, as well as the cultures of Russia, Japan, China, Mongolia, and Korea coexist. In the same context Sakhalin was able to serve as a place of cultural encounter in Northeast Asia, where various cultures could meet each other. Today Sakhalin has value of cultural center, which is as important as its geographical and economic usefulness. Sakhalin, which used to be a place of sharp confrontation between Russia and Japan, has become a space with an advantage of multicultural diversity. The coexistence of these diverse cultures has transformed this island into an open space. With a new era Sakhalin, which was isolated from the central culture(Russia's metropolitan culture) could create various cultures due to its receptiveness, created by its unique history and the isolated environment of an Island. Thanks to the culture of Korean diaspora in the previous years today korean culture naturally dominates Sakhalin and enjoys great popularity. Sakhalin, which was a victim of imperialism in the 20th century, is still playing a role as the center of hybrid culture, and it becomes a new arena of cultural imperialism in the 21st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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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의 글쓰기 주체의 양상들 - 보들레르의 시세계를 중심으로

        곽민석 ( Kwak Minseok ) 연세대학교 유럽사회문화연구소 2019 유럽사회문화 Vol.0 No.22

        본 논문에서 우리는 현대성의 시인 보들레르가 과학과 진보 그리고 주된 공간인 대도시로 상징되는 19세기 중반 이후의 ‘모더니티’ 시대를 자신의 시 세계에서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시인은 19세기 근(현)대를 미래를 향해 가는 진보와 희망이라는 ‘낙관적 국면’으로 파악하는 대신에, 근대적 삶에 대하여 근본적인 권태, 무기력, 허무감, 슬픔 등을 내포하는 현대적 주체의 존재론적 우울과 불안 그리고 반동과 멜랑콜리라는 감정을 그의 작품 세계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 보들레르는 그의 모더니티 개념 정의에서도 보여주듯, 현대의 대도시와 군중의 등장에 매료되면서도 동시에 자기가 살던 시대의 현대성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갈등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준다. 상호보완적이면서도 동시에 모순적인 시인의 이런 관점 자체가 바로 모더니티의 본질이라는 새롭고 진보적인 성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 세계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그 상징인 도시화에 따른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의 급격한 변화, 산업과 기술 그리고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그에 따른 무한한 낙관주의의 시대를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지식의 진보와 발전이 야기하는 실존적 위기를 넘어 현대의 대중들과 예술가들이 본질적으로 느끼는 존재의 상실을 보여주고 있다. 보들레르의 이러한 세계관은 주체, 세계 그리고 주체와 세계에 대한 시적 글쓰기를 통해 현대 세계를 재해석한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자신의 시대를 비판하고 부정하면서도, 그 시대가 내포하고 있는 진정한 현존의 가치를 파악함으로써 현대적 주체-자아가 겪는 본질적인 갈등과 모순을 깊이 있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보들레르의 현대성은 시인이 자신을 글쓰기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본원적 관계를 다시금 고찰하게 만드는 문학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In this article, we aim to highlight the identity and attitude of the modern subject in the face of the modern society - the big cities and the various inhabitants - in the ‘so-called’ modern poet, Baudelaire. In the Baudelairian poetic universe, particularly in Les Fleurs du Mal, we can see the instability and revolt of the poet-subject in the face of the progress of modernity and the replacement of spiritualism by materialism, which has led modern man to the fragmentation of the subject; in other words, crisis of his own identity. To understand well what causes the unstable and troubled state of mind in a man like Baudelaire, we analyze the poems by accessing the essential notions: modern subject and modernity, as contemporary and essential terms used by the poet. Thus, it is clear that in his poetic universe, Baudelaire describes the various aspects, sometimes coherent, sometimes contradictory, of the modern man lost in the middle of his time, having different identities in order to overcome the existential crisis of his be. Today this modern subject is just a wanderer in the life of uncertainty. He is situated in the midst of unstable society in an increasingly vast and ambiguous circle of modern life; not only at the level of everyday life, but also of human existence.

      • 집으로 돌아온 탕아? -독일 뮌스터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문화기획-

        남덕현 ( Duk Hyun Nam ) 연세대학교 유럽사회문화연구소 2008 유럽사회문화 Vol.1 No.-

        In der Kulturgeschichte war es ein Sonderfall, ein gutes Verhaltnis eines Kunstlers zur Gesellschaft zu halten. Manchmal hat sich der Kunstler als ``einer mit einem besonderen Zeichen an der Stirne``, ``Outsider``, ``ein verlorener Sohn`` oder ``ein verirrter Burger`` erkannt. In diesem Kontext haben die ``Skulptur-Projekte Munster`` einen Sinn, der darin liegt, dass sie ein neues Verhaltnis zwischen Kunstler und Gesellschaft aufzubauen versuchen. Die Projekte stellen eine Herausforderung an den Burger von Munster, ihr vermeintliches Verstandnis fur die zeitgenossischen Kunst neu zu besinnen. Und sie bieten den Kunstler eine Gelegenheit dafur, ihre Kunst im geselleschaftlichen Kontext neu zu gestalten. Diesem Versuch hat es inzwischen m.E. gelingt, nicht nur im Sinne von einer Kultur-Marketing, sondern auch von dem kunstgeschichtlichen Versuch. Das Gelingen der Projekte verdanken vor allem fur die Planung, die von Klaus Bussmann und Kasper KOnig gefuhrt wird. Seit 70er Jahren haben sie viele Muhe dafur gegeben, Burger und Kunstler fur den eigentlichen kunstlerischen Sinn von ``Public Art`` zu gewinnen. Dadurch haben sie einen andern Weg als Massenkultur verwiesen, Kultur und Gesellschaft zu vermitteln.

      • KCI등재후보

        다문화사회의 통합을 위한 패러다임으로서의 유럽 상호문화주의에 대한 이론적 탐색

        김태원 ( Tae Won Kim ) 연세대학교 유럽사회문화연구소 2012 유럽사회문화 Vol.9 No.-

        A discourse of the multiculture was opened since 1990`s in Korea much later than in western europe. After the beginning of the social discussion, the multicultural studies were mainly focused on the theoretical review of the multiculturalism. However, the governmental policies for the immigrants were oriented to the assimilation policy. Therefore, there was huge gap between multiculture policy and social realities. Taking various values and the efforts of integration to make better society would be a desirable direction which a multicultural society should take. This study aims to explore a new research paradigm for Korean multicultural studies instead of existing multicultural perspectives. European experiences of Immigration policy would be worthy of notice for Korean multiculture society, because political viewpoints of the european societies are changing from multiculturalism to interculturalism. Therefore, this study analyzed multiculturalism critically and explored the possibility of the interculturalism as a new alternative perspective for integration policy in Korea.

      • KCI등재

        에벤키족 음식문화의 특성 분석 - 인문지형학, 인문경제학, 민속학적 관점에서

        엄순천 ( Eom Soon-cheon ) 연세대학교 유럽사회문화연구소 2017 유럽사회문화 Vol.0 No.19

        The food culture of the Evenki can be approached from a human-geomorphological, human-economical, a folkloristic perspective and a historical-cultural perspective point of view. From a historical-cultural point of view, food culture is very closely connected with the magical world view. This paper deals with the food culture of the Evenki only from a geomorphological perspective, folkloristic perspective point of view. From the geomorphological point of view, the food culture of the Evenki can be divided into the Illimpaiya River, the Yenisei River, the Nizhnaya Tunguska River and the Ford Kamenaya Tunguska River region. From folkloristic perspective point of view, the focus is on changes in the food culture due to the influence of the surrounding environment, especially neighboring races. From a folklore perspective, Yakut's food culture reflects the culture of livestock breeding, and the Evenki's food culture reflects the hunting and reindeer breeding culture. Overall, the food culture of the Evenki is meat-oriented. The most important thing in the Evenki's food culture is the reindeer, but in modern times, flour is very important, which is the influence of Russians. The Evenki drinks a lot of tea, and the reindeer milk has a very important place in the Evenki's food culture.

      • KCI등재

        `없는 자들`의 상상의 공동체 - 유럽 실업자들의 트렌스내셔널(transnational) 집단행동

        김승연 ( Kim Seung-yeon ) 연세대학교 유럽사회문화연구소 2016 유럽사회문화 Vol.0 No.17

        Today, European left-wing activists, confronting to the European Union`s contractionary politics, are leading transnational movements for rights of the Unemployed people and the Poor. This article observes an European transnational movement of the Unemployed people, Euromarches, as one of the movements of Have-nots(les sans). Euromarches has organized since 1990 European transnational movement of the Unemployed people on the base of each country`s movement. This transnational collective action tends to construct a communal base beyond different languages and cultures, in claiming their proper identity and rights. But its hopeful construction of `have-nots` identity and its idealistic demands for a social and democratic Europe are not sufficient conditions to construct an activists` transnational community, because they have inside several distinctions and differences. It is the practice of marching that can make specific experiences of imagined community. Through the ritual of resistance of eating, sleeping, marching, and shouting together, this transnational community becomes, as saw Anderson, something strongly shared in very specific symbols and experi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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