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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진 다산문화의 활용 현황과 과제

        윤석호(Yoon, Suk-ho)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20 다산과현대 Vol.13 No.-

        다산에게 강진은 유배지이자 학문과 삶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강진에서 다산은 지역의 문화와 풍광, 사람, 아픔과 함께 호흡하는 이웃이었다. 서로가 동행했던 18년 동안 많은 성과와 자취, 그리고 스토리가 쌓여갔다. 또한 여기에는 다산이 ‘죄인’으로서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구조, 그리고 강진의 연혁과 사회경제적 위상이 배경으로 자리한다. 이로써 이들이 엮어낸 유·무형의 문화를 강진의 ‘다산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일찍부터 강진군과 다산박물관, 그리고 연세대학교 부설 강진다산실학연구원은 강진의 다산문화를 진작 및 활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해왔다. 유적지의 복원에서부터, 전시 및 체험의 강화, 컨텐츠의 개발, 교육 및 문화사업의 다변화 등이 그러하다. 이와 같은 성과를 토대로 하되, 앞으로의 강진 ‘다산문화’ 활용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환의 시기에 부응해야 한다. 기술적 진보가 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수록,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삶은 더욱 단절,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본다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공감과 치유는 우리 사회에 던져진 중요한 과제이다. For Dasan, Gangjin was a place of exile and also a place of study and life. For Gangjin, Dasan was a neighbor who breathed with local culture, scenery, people, and their pain. During the 18 years that they accompanied each other, many achievements, traces, and stories had been accumulated. It is also set in the background of the structure of the time when Dasan was forced to come down as a "sinner," and the history and socio-economic status of Gangjin. This allows us to define the tangible and intangible culture that they had woven as ‘Dasan culture’ in Gangjin. Gangjin-gun, Dasan Museum, and Gangjin Institute of Dasan Studies attached to Yonsei University have made great efforts to promote and utilize Dasan culture of Gangjin. This includes the restoration of historical sites, strengthening exhibitions and experience programs, development of contents, and diversification of educational and cultural projects. Based on such achievements, the future use of ‘Dasan Culture’ in Gangjin should meet the transition period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This is because the more technological advances overcome the physical limitations of space, ironically, human life is being cut off and alienated. In this regard, empathy and healing for humans and society is an important task for our society.

      • 위당 정인보의 양명학 연구와 다산 이해

        한정길(Han, Jeong-gil)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5 다산과현대 Vol.8 No.-

        이 글은 위당 정인보의 다산 이해의 특징과 의의를 규명하려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이 글의 주요 논지는 정인보의 양명학적 관점이 다산 이해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인보는 강화학파 양명학의 중심인물인 난곡 이건방으로부터 양명학의 대의(大義)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다. 그것은 양명학을 실심(實心)에 기반을 둔 실학(實學)으로 이해한 점, 양명학을 통하여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려고 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정인보는 이것을 지적 배경으로 하여 양명학의 관점에서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하게 된다. 정인보 양명학 이해의 특징은 우리의 본심이 타인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느끼는 ‘감통(感通)"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본 점이다. 정인보에 따르면 이 본심은 조선의 민중과 나라에 감통하여 그들을 애틋하게 여기는 데서 그 참모습이 나타난다. 어떤 학술이 실학인지의 여부는 본심이 민중과 나라에 감통하여 그들을 애틋하게 여기는지에 달려 있다. 정인보는 이러한 관점에서 정약용의 인물과 학설을 조명한다. 정인보는 다산의 학문 동기를 백성과 국가를 구제하고자 하는 정성스러운 마음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마음이 다산의 모든 저술에 표현되었다고 본다. 다산의 저술 속에 양명학의 정신인 ‘백성을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이 흐르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다산의 학문 목적을 국가와 민생의 실리 · 실익을 도모하였다는 점에서 찾는다. 이것은 다산 학문의 핵심을 백성과 국가를 구제하려는 경세사상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다산의 경학(經學)까지도 경세를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와 같이 정인보는 다산실학이 실심을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이것은 다산이 ‘국가와 민생의 실리실용’을 중시했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추어 다산 실학을 공리(功利)를 중시하는 실용실학(實用實學)으로 이해한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그동안의 실학 연구는 결과적인 공리를 중시하는 실용실학의 측면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정인보가 구상한 실심에 기반한 실학은 이제는 그 명맥을 찾아보기 어렵다. 앞으로의 과제 가운데 하나는 정인보가 제창했던 실심실학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This thesis aims at clarifying the characteristics and meaning of the understandings of Dasan accomplished by Jung In Bo. The main theme is that the standpoint of Jung In Bo’s Yang-ming Studies has become the basis of understanding Dasan Studies. Jung In Bo learned the grand idea of Yang-ming Studies from Lee Gun Bang who was the main figure of the Yang-ming Studies of Ganghwa school. That Yang-ming Studies could be understood as a Practical learning based on Sincere mind and that it is possible to heal the social issues through Yang-ming Studies. The main characteristic of understanding Jung In Bo’s Yang-ming Studies is that it is said that our Original mind has the ability of ‘being acted upon and penetrating things’ that feels the pain of others as one’s own pain. According to Jung In Bo, this original mind shows its true self by being acted upon and penetrating the people and country of Chosun and caring for them. Whether a certain academy is an authentic Practical learning or not totally depends on Sincere mind by which acts upon and penetrates the people and country. At such point, Jung In Bo looks into the character and academics of Jung Yak Yong. Jung In Bo finds the core motive of Dasan Studies in terms of the mind of sincerity to save the people and country. Also, that mind is said to be have been expressed in all books of Dasan, especially in his Confucian classical studies. It is said that in the books of Dasan, the ‘heart of caring people’ which is the spirit of Yang-ming studies flows within. He finds the purpose of Dasan’s studies in pursuing the true interest and welfare of the country and people. This means that the core of Dasan’s academics lies in the spirit of saving the world which saves its people and country. It is understood that he thinks Dasan’s Confucian classical studies pursues the spirit of ‘saving the world’. As such, Jung In Bo sees the Practical learning of Dasan as the basis of the Sincere mind. This shows its eminent difference among other Practical academies of Chosun dynasty in its standpoint of Practical learning based on Sincere mind. Owing to influence of Sincere mind inherited from Yang-ming studies, Dasan produced hundreds of books for Practical learning (실학) focused only on the ‘real interest and welfare of the country and people’

      • 근 · 현대 한국의 실학연구와 다산

        정호훈(Jeong, Ho-Hun)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5 다산과현대 Vol.8 No.-

        연희전문-연세대학은 오랫동안 한국에서의 실학과 정약용 연구의 중심 공간이었다. 해방 후 초창기 연구에서는 현실의 폐단을 해결하고자 그 방도를 적극 모색한 ‘정치경제학’으로서 실학을 이해했다. 정약용의 정치경제 사상을 다룬 홍이섭 교수는 정약용이 조선 사회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경세유표』와 『목민심서』와 같은 책을 저술했으며, 이 과정에서 정약용이 “민생을 중시하고 국법을 높이는” 개혁안을 마련했다고 파악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김용섭 교수는 근대적 · 농민적 사회개혁사상이자 한국형 근대화론으로서의 실학론을 제기했다. 이 시각은 주자학을 지주 · 양반층의 처지를 반영한 학문론으로 평가하고 또 주자학이 한말에 이르러서는 개화파의 개혁론으로 계승된다는 판단을 전제하며 이루어진 것으로, 학계의 일반적 이해와는 크게 달랐다. 이 같은 실학관은 정약용 이해와도 맞닿아 있었다. 김용섭 교수는 정약용의 농업경영론(農業經營論)에 보이는 정치경제적 사고가, 사회 제 계층의 평등화의 문제를 모색하는 초기의 농업론, 30대 후반의 공동농장(共同農場)적인 농업경영론, 유배기에 정립한 독립자영농(獨立自營農)적인 농업경영론 형태로 변화한다고 정리했다. 정약용의 구상이 단계적으로 변화했으며, 초기의 급진적인 방법론을 벗어나 온건하면서도 점진적인 방식을 택했다는 이해였다. 실학 연구의 역사는 끊임없이 연구의 시각이 확대되며 변화하는 과정이었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실학 연구는 분단 체제의 극복, 통일 국가의 실현을 전망하며 그에 필요한 지혜와 방법을 모색해 나가는 노력의 하나로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The research of Silhak(實學) in the department of korean history at Yonsei University has been developed by a professor Hong I-seop and Kim Yong-seop. Hong I-seop understood Silhak as a political economy to reform social reality, and confirms it more concretely through Jeong yak-yong’s thoughts. In the perspective of Hong I-seop, reformation proposal of Jeong Yak-yong(丁若鏞) aims to promote people’s life and reinforce the national law. Kim Yong-seop comprehends Silhak as modern social reform thoughts and also the theory of Korean style modernization. Professor Kim thought Silhak reflects class interest of the peasants, in contrast Neo-Confucianism reflects social interest of the landowners, or the gentries. On the thought of Jeong Yak-yong, Kim esteems Jeong Yak-yong has the egalitarian orientation representing the pesant but this radical egalitarian orientation at the early period turned into rather moderate perspective as time passed. The history of the study on Silhak has been a process with constant extension and variation of a perspective regarding the research. The study of Silhak is expected to be progressed toward an Unification of the nation in the twenty-first century of Korean society.

      • 강진의 학풍과 향리, 그리고 다산

        김덕진(Kim, Duk-jin)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8 다산과현대 Vol.11 No.-

        다산 정약용은 강진 유배 시절 두 그룹의 제자를 두었다. 하나는 유배 초기의 그룹으로, 읍내에 거주할 때의 제자이다. 그들은 대부분 강진 향리 자제들이다. 당시 향리 자제들은 관내 양반과 교유할 수 없었기에 유배인에게 가서 수학했다. 이런 상황에서 강진 향리 자제들은 유배인 정약용에게 가서 학업을 열심히 연마했고 갖가지 정보를 제공하는 등 스승을 정성으로 모셨다. 또 하나는 유배 후기의 그룹으로, 다산 초당에 거주할 때의 제자이다. 그들은 대부분 강진 양반 자제들이다. 당시 강진 양반들은 전통적인 성리학 외에 천문학, 수학, 수차 등 새로운 학문도 연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강진에 유배 온 정약용은 제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실학을 연구해 나갔다. 이처럼 당시 강진의 학풍은 정약용이 실학을 집대성하는 데에 학문적 자양분으로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다. Dasan Jeong Yak-yong had two groups of pupils during his exile in Gangjin. One was from the early days of his exile and consisted of his pupils that he taught while living in the town. Most of them were children of Hyangris in Gangjin. Since they were not allowed to have exchanges with noblemen in the community those days, they had to learn from noblemen in exile. In this situation, they studied hard under Jong in exile and served him with care by providing him with all kinds of information. The other group consisted of his pupils when he lived in his Chodang in the latter part of his exile. Most of them were children of noblemen in Gangjin. Those days, noblemen of Gangjin did research on new areas of study including astronomy, math and waterwheels in addition to traditional Neo-Confucianism. In this situation, Jeong did research on practical studies in collaboration with his pupils in his exile in Gangjin. The academic tradition of Gangjin those days must have made huge contributions as a cademic nutriments to his integration of practical studies.

      • 1950/60년대 ‘근대화’와 다산 호출

        정일균(Jeong, Il-gyun)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2 다산과현대 Vol.4,5 No.-

        본고에서는 1950/60년대 및 그 이후 남 ? 북한에서 각각 출현했던 ‘두 개의 다산 호출’의 구체적 내용과 특징을, 특히 당시 ‘실학 담론의 지형’과 ‘다산 연구의 동향’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개의 다산 호출’은 당시의 분단상황 하에서 남 ? 북한이 각자 지향했던바 ‘두 개의 근대화 기획’, 즉 ‘자본주의적 근대화 기획’과 ‘사회주의적 근대화 기획’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조응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다산 호출’은 해방 이후, 보다 소급해서는 1930년대의 ‘조선학 운동’ 이래 조선후기 사회변동 및 사상사 연구에 있어 실로 중요하고도 다대한 성과로 구체화되었다. 그럼에도 동시에 남 ? 북한의 ‘다산 호출’은 공히 각 체제에 봉사하는 ‘관학적 성격’을 다분히 내포하는 가운데, 일련의 문제점 또한 공통적으로 노정하였던바, 즉 ① ‘서구 중심주의’, ② 실학에 대한 ‘본질론’의 관점이 가진 약점, ③ 실학의 구성적 타자로서 조선주자학을 지목하는 인식틀이 내포한 난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끝으로 이를 토대로 ‘21세기의 다산 호출’, 즉 차후의 다산학 및 나아가 실학연구의 발전과 심화를 위해 요청되는 과제를 연구방법론의 측면에 유의하면서 몇 가지 단상을 제기해보았다. In this paper, I roughly survey the past trends of Practical learning(實學) studies and Tasan(茶山) studies achieved in the 1950"s and the 1960"s of Korea, especially focusing on the contents and the features of "the two different understandings of Tasan Ch?ng Yag-yong(丁若鏞)" developed in the South and the North of Korea respectively. The main arguments of this paper are as follows: ① "The two different understandings of Tasan Ch?ng Yag-yong" developed in south and north Korea at that time may be laid down as a general rule that they were really academic reflections and a sort of justification instrument of "the then two different modernization projects", i.e., the "capitalistic modernization project" of South Korea and the "socialist modernization project" of North Korea. ② On the other hand, each of these two different understandings of Tasan Ch?ng Yag-yong in south and north Korea had produced a great quantity of and very important academic achievements on the social conditions and changes and the world of thought in the late Chosun(朝鮮) dynasty consequently. ③ Nevertheless, these two different understandings of Tasan Ch?ng Yag-yong in south and north Korea involved some common theoretical deformities, that is, the shadow of Eurocentrism, the weaknesses of "a essence-centered viewpoint" of Practical learning, and some logical difficulties implied in the standpoint of Neo-Confucianism in the Chosun dynasty which recognized that as an unpractical learning and so forth.

      • [기조강연] 다산과 강진 - 다산학과 강진의 다산문화

        임형택(Lim, Hyung-taek)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20 다산과현대 Vol.13 No.-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를 가서 지내는 동안 제자들을 양성하며 저술작업을 하였다. 그리하여 강진 지역을 중심으로 다산학단이 형성되었고 이곳이 다산학의 산실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강진의 다산문화’를 고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 그것을 실천적 과제로 중시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고는 ‘다산과 강진’을 테마로 설정, 강진에서 다산의 삶과 만난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다산학단에서 실시했던 특유의 교육방법론을 ‘독서지도’와 ‘생활지도’의 양면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끝으로 다산문화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떠올려 다산학단에서 이강회란 존재를 언급하였다. In his exile in Gangjin, Dasan educates pupils and writes numerous researches. Since Dasan School is originated, centering Gangjin as the nursery home, Dasan culture in Gangjin can be regarded academically and practical matter. In this paper, I display his living and encountering specific individuals in it. Moreover, I present his educational methodology as learning guidance and life guidance and his pupil I Ganghoe as the creative successor of Dasan School.

      • ‘다산학 전승 연구’에 대한 회고와 전망

        홍유빈(Hong, you-bin)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9 다산과현대 Vol.12 No.-

        본고는 현재까지 이루어진 ‘다산학 전승 연구’에 대한 성과를 검토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전망하고자 작성되었다. ‘다산학 전승 연구’의 모체(母體)는 역시 ‘다산학(茶山學)’이라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다산학’연구는 근‧현대의 실학 연구의 일환으로 여러 선학들에 의해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가 심화 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다산의 학문적 업적의 조력자였던 그의 제자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산학 전승 연구에 대한 총론적인 연구 성과의 경우, 다산학단 구성원을 그 시기와 특징에 따라 분류함으로써 다산학단의 전모(全貌)를 파악하는데 용이한 밑그림을 그려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속 연구를 통해 이러한 시야 속에서 현재 다산학단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의 대강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정리를 마치면서 관찰되는 것은 다산학(茶山學)이 다산학단에 의해 줄기가 가지로 뻗어 나가듯이 계승 ‧ 발전되는 것과 같이, 이에 대한 연구 역시 다산학에 대한 연구에서 다산학단에 대한 연구로 지속적으로 연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다산학단 연구 전반에 대한 향후 방향의 차원에서의 제언으로는 그 이전에 ‘다산학(茶山學) 연구’로 해왔던 연구 및 자료정리 순서를 참조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다산학단 연구의 추동력이 더해진다면 다산학(茶山學)의 연장(延長)으로서의 다산학단(茶山學團)의 특징적 면모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이와 관련된 다양한 대중서도 함께 출간된다면 다산학단에 대한 관심을 대중들과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을 것으로 생각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outcome of “Dasan transmission studies” and prospect of the future directions for it. The beginning of “Dasan transmission studies” was also “Dasan studies.” As we all know, the research of “Dasan studies” have been actively conducted by various scholars as the part of Realism research in modern times and today. However, in the process of intensify the studies, there had been more interest by Dasan’s disciples who had been helpers of Dasan. In the case of the general outcome in “Dasan transmission studies”, the classification by the times and characteristics of Dasan school members was helpful for drawing rough sketch in terms of understanding of whole story. And we could scan the present Dasan studies by the continued following studies with given perspective. What we observe in the end of organization is Dasan studies have been continued from Dasan studies to Dasan school studies as Dasan studies have been transmitted and continued by Dasan school. On the other hand, the recommendation for future research direction of Dasan School studies is to refer to study of the Dasan studies research and material sequence. And if the impetus of the present Dasan school studies has been added to the given resources, it would show more characteristic features of Dasan school studies as the continuation of Dasan studies. And if the public books have been published, it would be so meaningful to share the interest about Dasan School studies with the public.

      • 조선학에 비친 다산

        김선희(Kim, Seonhee)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7 다산과현대 Vol.10 No.-

        다산의 사상은 자주 근대성의 맥락에서 해석된다. 서학을 일부 수용했음에도 다산이 자신의 사상적 작업에서 직접 서구적 근대성 혹은 근대화를 목표로 삼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다산이 우리 사회가 조선 후기 새로운 학풍으로서 실학에 기대하고 또 추구하고자 하는 모종의 근대성과 연결된 철학자라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다산과 근대성의 연결은 다산을 읽고 출판하고 지적으로 위상을 부여하던 20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지적 실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글은 다산의 사상이 조선학 운동을 통해 근대 지식장에 등록되던 상황과 맥락, 논리를 검토함으로써 다산에 연결된 근대성의 기원을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Dasan Jeong Yak-yong’s thoughts have often been interpreted in the context of modernity. Despite his acceptance of Western Learning of the Jesuits, it is certain that Dasan’s direct aim of his theoretical work was not Western modernity or modernization. At the same time, however, it is undeniable that Dasan is a philosopher who has been associated with a kind of modernity that is expected and pursued by practical learning(實學) as a new academic approach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connection between Dasan and modernity, which still exerts influence on our time, has come from the intellectual practice of the 20th century Joseon’s intellectuals who provided an intellectual status to Dasan while reading and publishing his thoughts and works. This article examines the origin of modernity connected with Dasan by examining the situation, context, and logic in which Dasan’s thoughts were registered in the modern knowledge field through the Joseon-hak(朝鮮學) movement.

      • 중앙과 지방의 학술 소통

        김용흠(Kim Yong-heum)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5 다산과현대 Vol.8 No.-

        다산이 강진에서 제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는 것은 중앙과 지방의 학술적 소통의 산물이기도 하였다. 다산은 이를 통해서 전근대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을 비판적으로 정리하고 조선왕조 국가의 혁신을 모색하였다. 그는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북 아시아에서 장구한 기간 발전해 온 학문을 계승 · 발전시켰으며, 서로 다른 당색으로 분열되어 있던 학문을 종합하여 독자적인 학문 체계를 형성하였다. 다산과 그가 강진에서 양성한 다산학단은 중앙과 지방이라는 지역적 한계, 사족과 이족이라는 신분적 한계, 유교와 불교라는 사상적 차이, 다산학과 추사학이라는 학파간의 간격을 넘어서 학술적으로 소통한 역사적 사례를 남겼다. 다산 제자들의 학문과 저술은 다산 이후 다산의 방대한 학문체계를 보완하는 의미를 띠었으므로, 우리가 다산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고자 할 경우 우선적으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After Dasan was exiled from central to Gangjin, he wrote huge amount of books with his disciples. This is scholarly product of communication between central and the region. In his written works, Dasan organized premodern East asian intellectual tradition critically, and sought the way to innovation of the Joseon dynasty. He promoted succession development of studies which had been advanced for ages in Northeast asia, including China and Korea. He also formed his own theory structure by integrating studies that had been divided by various factions. Dasan and his school, Dasakhandan, successfully overcame many difficulties such as regional limits between the central and the province, social discrimination between nobleman and commonner, ideology difference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and the gap between Dasan school and Chusa school. They also established a good historical precedent through communicating academically. Dasan school"s studies and written works supplied Dasan"s extensive system of studies, so we need to review these works first to interit Dasan"s thoughts.

      • 조선의 상업과 강진

        김덕진(Kim, Deok-Jin)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5 다산과현대 Vol.8 No.-

        조선 안에서 호남(湖南) 사람들의 해상활동이 활발했는데, 그 안에서도 강진(康津) 사람들이 가장 돋보였다. 그것은 좋은 조건의 포구, 제주도(濟州道)와의 가까운 거리, 부속 도서의 보유, 그리고 청해진(淸海鎭) 경영과 같은 역사적 경험 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강진의 포구는 서남해 도서를 오가는 유배객 · 지방관 · 사신이 거처 가는 곳이었다. 이들은 바람을 기다리느라 심지어 한 달 이상을 체류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연히 상품의 소비나 공급이 활발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남당포(南塘浦)는 제주도의 문호로써 제주 특산품의 집산지였다. 강진 상인은 제주에 없는 면포와 담배 및 누룩 등을 가지고 제주에 들어가서 양대(凉臺)와 귤 및 미역 등 제주 특산품을 사가지고 나왔다. 강진과 제주를 오가는 선박은 매일 줄을 잇고 있었다. 그래서 강진 상인들은 손쉽게 제주를 드나들며 제주 물건을 사와 강진에서 직접 팔거나 아니면 다시 각지로 다니며 판매하였다. 나오는 제주 상인에 의해서도 제주 특산품은 강진에 집산되었다. 이를 매입하기 위해 서울이나 개성(開城) 기타 지역 상인들이 강진에 운집했고, 그들 중에는 아예 제주로 들어가 매입해 나오기도 했다. 이래저래 강진땅에는 제주 물산뿐만 아니라 전국 특산품이 넘쳐났다. 이것을 강진 상인들은 다시 가지고 경상도 지역으로 나가서 팔고 대신 어물과 소금 등을 가지고 왔다. 결국 조선 상업에서 강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았다. 남북으로 제주와 서울을 연결하고, 동서로 서남해와 동남해를 연결하는 매개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In Joseon dynasty, merchants from Honam area were active in seaborne commerce, and particularly their commercial activities were most prominent at Gangjin, Honam. They could be active in commerce thanks to good conditions like ports suitable for commercial activities, geographical location near Jeju-do, annexed islands, and the historical experiences of operating Cheonghaejin. Exiles, local governors, and envoys could not help visiting a port at Gangjin to go to islands in the southwestern sea, and sometimes they stayed at Gangjin more than 30 days to wait till the wind calmed down. Accordingly, the consumption and supply of goods had increased at Gangjin. First of all, Namdangpo (a port at Gangjin) was a collecting and distributing center for Jeju-do"s local specialities, while it took a role in opening the door to Jeju-do. In Jeju-do, Gangjin merchants had sold cotton, tobacco, and Nuruk (Korean rice-wine starter), which were not produced in Jeju-do, and they had bought Jeju-do"s local specialities like Yangdae, tangerine, and sea mustard. Ships from Gangjin to Jeju-do were lined up everyday, so it was easy for Gangjin merchants to buy the goods in Jeju-do and then to sell them at Gangjin or in all parts of the country. Jeju-do"s local specialities were also collected at Gangjin by Jeju merchants. To buy Jeju-do"s local specialities, many merchants came to Gangjin from Seoul, Gaeseong, and other regions. Among them, some merchants went to Jeju-do to buy the goods directly there, and then came back to Gangjin. Anyway, Gangjing was full of the whole country"s specialities as well as Jeju-do"s goods. Gangjin merchants had sold the goods in Gyeongsang-do and had bought fishes and salt there. In conclusion, Gangjin had played a major role for commerce in Joseon dynasty, because it acted as an intermediary between Seoul and Jeju from north to south and the one between the southeastern sea and the southwestern sea from east to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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