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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가톨릭교회 “교구장 대리제도”에 관한 교회법적 고찰 : 대리구제도를 중심으로

        이형민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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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빠르게 변화하는 사목환경 안에서 가톨릭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 나라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 울여 왔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 안에서 한국 가톨릭교회 역시 각 교구를 중심으로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급격한 경제 발전과 함께 성장한 한국 가톨릭교회는 1984년 한국 천주교 회 창립 200주년을 기점으로 1990년대까지 양적, 질적인 성장을 거듭하였 다. 그러나 그 이후 한국교회는 선교 의식의 약화, 교회의 대형화로 인한 공동체 의식 약화, 사목자와 신자들 사이의 직접적 접촉기회의 어려움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현대 교회가 직면하게 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교회 내 몇몇 대형교구들은(서울, 대구, 수원, 부산) 교회법 제476-481조에서 언급 하고 있는 ‘교구장 대리’에 관한 내용을 토대로 각 교구의 환경과 실정에 맞추어 제도로 적용시킨 ‘교구장 대리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 다. 그러나 각 교구의 실정에 맞추어 제도로 정착된 대리구제도는 기대했던 장밋빛 미래와 달리 사목환경에 적용되어 시행의 과정을 거치면서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 되었고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제들 안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져만 갔다. 이처럼 ‘대리구제도가 꼭 필요한가?’ 하는 목소리는 논자에게 대리구제도 의 필요성에 대한 재인식과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반증으로 들려왔 다.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여 ‘대리구제도는 어떠한 목적에서 설정되었으 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연구의 과정은 대리구제도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 이해를 시작으로 현행 교회법전 제476-481조에서 언급하고 있는 ‘교구장 대리’에 관한 내용이 한국 교회 안에서 어떻게 제도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는지, 그리고 제도가 시행되면서 발생하게 되는 문제점들과 이에 대한 해결책 및 대안은 무엇 인지 연구함으로써 대리구제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필요성에 대한 재인 식, 그리고 더 나은 교회의 모습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함을 목적으로 하 고 있다. 제1장은 ‘대리구제도’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 이해를 시도하였다. 먼저, 대 리구제도 시행 주체인 ‘교구장 대리’에 관한 개념 이해를 통해 교구장 대 리는 주교들의 품위를 유지시켜 주기 위한 방안으로 시작되었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목 환경 안에서 교구장 주교 혼자 담당할 수 없는 여러 분야를 대리함으로써 사목의 효율성을 높이고 더 나아가 하느님 나라 백 성의 영적 선익을 위해서 마련되었음을 살펴보았다. 두 번째로 ‘대리구’는 교구장 대리가 교구장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일정한 지역을 의미하고 있음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대리구제도’는 ‘교구장 대리’와 그가 위임받은 지역인 ‘대리 구’ 그리고 ‘대리구제도 시행 교령’의 시스템을 갖추어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교회의 제도임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그 형태로 교구의 전체적인 부분을 대리구로 이관한 ‘지역적 대리구제도’와 교구의 사목적인 부분만을 대리구로 이관한 ‘사목 적 대리구제도’로 구분할 수 있음도 살펴보았다. 제2장은 대리구제도 시행 주체이며 교구장 주교의 대리직권자인 ‘교구장 대리’에 관한 교회법적 이해를 위해 교회법 제476-481조를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이를 통해 교구장 대리는 ‘교구의 올바른 통치’를 위해 선임되며 자신의 권한으로 일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교구장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 안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자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따라서 교구장 대리는 자신의 권한을 사용함에 있어 자신의 생각, 판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구장 주교의 정신과 일치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야하며 교구장 주교 와의 친교를 통해 일치를 이루어 나가야 함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제3장은 교회법에서 언급하고 있는 교구장 대리에 관한 내용들을 토대로 각 지역 교회의 사목 환경에 맞추어 제도로써의 모습으로 적용시킨 ‘교구 장 대리구제도’의 모습에 대해 바라보았다. 이에 관한 세부적인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현재 한국 교회 안에서 대리 구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4개의 대형교구(서울, 대구, 수원, 부산)의 시행교 령을 비교․분석함으로써 깊이 있는 이해를 시도하였다. 먼저, 한국 교회 안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대리구제도의 시행을 시도하였 던 서울대교구는 교구장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지역인 ‘대리구’ 안에서 교 구장 주교를 대신하여 권한을 행사하는 ‘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비록 대리구제도 시행 교령 안에서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서는 언급하 고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부분들은 제도를 시행해 나감으로써 수정․보완 해 내갈 것임을 천명하였다. 서울대교구에 이어 대리구제도를 시행하였던 대구대교구는 서울대교구의 제도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교구 상황과 환경에 맞춘 제도의 모습을 갖춰 나갔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대구대교구는 대리구제도 두 가지 유형 중 ‘지역적 대리구제도’의 대표적인 모델로 ‘작은 교구’의 모습을 지향하는 유형의 특성상 대리구에 교구의 모든 부분을 이관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대구대교구에 이어 수원교구는 서울대교구와 대구대교구의 대리구제도의 진척상황을 바라보며 준비한 만큼 교구의 환경에 맞춘 세부적인 내용들이 교령 안에 잘 정리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수원교구의 대리구제도는 대리구에 교구의 모든 부분을 이관하는 ‘지역 적 대리구제도’와는 달리 교구의 사목적인 부분만 대리구에 이관하는 ‘사 목적 대리구제도’의 대표적인 모델로 교령 안에 그 모습이 잘 드러나 있 음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부산교구의 대리구제도는 앞선 세 교구와는 달리 교구의 전 지역이 아니라 지역의 일부분(울산지역)만을 분리시켜 지역담당 교구장 대리에게 위임하는 형태를 갖추었으며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리구제 도의 모습은 대부분 수원교구의 모습과 유사하였다. 제4장은 지역 교회 안에서 제도로 정착된 대리구제도가 현실에 적용되면 서 발생하게 되는 문제점을 살펴보기 위해 대리구제도의 두 가지 유형 ‘지역적 대리구제도’와 ‘사목적 대리구제도’의 대표적 모델인 ‘대구대교구’ 와 ‘수원교구’의 대리구제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객관적인 문제점 도출을 위해 대리구제도의 문제점에 관한 본당 사목구 사제들과 교구청, 대리구청 소속 사제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분석 하였고 이를 통해 두 가지 유형의 대리구제도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문제 들이 대부분 일치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의 문제들은 한국 가톨릭교회 대리구제도의 문제점이라고 판단되었다. 따라서 이의 해결을 위해 논자는 도출된 문제점들에 대한 보완의 필요성 을 언급하였고 더 나아가 앞으로 대리구제도를 시행하고자 하는 교구들이 과거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더 진일보할 수 있도록 새로운 대리구제도 의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총 4장에 걸쳐 진행된 대리구제도에 관한 연구를 통해 대리구제 도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는 변화와 쇄신의 과정을 거쳐 야 하는 제도임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교구장 대리 뿐만 아니라 제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교회 구성원들의 노력과 희 생이 필요함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교회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교회 공동체가 대리구제 도를 통해 교회 본연의 목적으로 더 잘 이끌어지기를 바라며 부족한 논자 의 연구물이 이러한 노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희망한다.

      • 신학생 인성교육에 관한 교회법적 고찰

        최광호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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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오늘날 ‘신학생 인성 교육’은 여러 교육 분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오늘날의 시대 상황을 들여다보면, 사회가 외형적으로 급격히 발전함에도, 인간의 정신적 삶은 오히려 더 각박해지고, 불평등과 소외현상이 깊어져가고 있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은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환경 등으로, 인성이 올바르게 성숙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제를 지망하는 신학생들에게, 올바른 인성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요청은 여러 설문조사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08년에 대구대교구가 실시한 신앙생활 실태 설문결과를 보면, 본당 운영을 위해 필요한 교육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가장 높은 비율인 69.5%의 신자들이 ‘인성 교육과 대인 관계 기술’이라 응답한 바가 있다. 그리고 ‘갓등 2020 프로젝트 자료집’에서 교구 사제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살펴보면, 신학생 인성 교육의 필요도에 대한 질문에, 가장 높은 비율인 75.36%의 사제들이 매우 필요하다고 응답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논자는 ‘오늘날 신학생 인성 교육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고, 신학생 인성 교육을 위해 어떠한 내용을 가르쳐야 하며, 이를 어떠한 방법으로 교육 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논자로 하여금, 오늘날 요청되는 신학생 인성 교육의 목표·내용·방법에 대하여 교회법적 연구를 하도록 이끌었다. 논자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본 논문을 통하여, 신학생 인성 교육에 대한 1983년 현행 교회법전의 법원(Fontes)들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을 비롯한 현대의 교회문헌들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현재 수원 가톨릭 대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성 교육을 조명해보고, 오늘날 교회와 사회가 요구하는 인성을 갖춘 ‘영혼의 참된 목자’를 길러내기 위한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제1장에서는, 신학생 인성 교육의 개념에 대하여 고찰해 봄으로써, 교회법에서 언급하고 있는 ‘신학생 인성 교육’이라는 용어를 명확히 규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formatio’는 피교육자들이 특정한 자격에 합당한 능력을 갖추어나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이고, ‘humana’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공동체 안에서 성숙되어가는 인간,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된 용어이다. 특별히 ‘humana’는 교회법적인 개념 이해에서 몇 가지 특징들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먼저 ‘humana’는 각 개인마다 다르기에 그 차이가 인정되긴 하지만, 성직자로 양성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humana’의 성숙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humana’의 성숙은 영성 · 지성 교육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하고, ‘humana’는 끊임없이 완성되어가는 실재이기에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이러한 ‘formatio humana’의 개념 이해를 바탕으로 ‘신학생 인성 교육’에 대한 교회법적 개념을 살펴보았다. 이는 현행 교회법을 중심으로 목표·내용·방법으로 구분하여 간략히 살펴보았다. 우선 신학생 인성 교육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닮은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신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교육 내용으로는, ‘기본적인 인간적 품성 교육’, ‘올바른 인간관계 형성 능력 교육’, ‘독신 생활에 대한 교육’ 등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인성 교육 내용을 신학생들에게 올바로 교육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올바른 규율이 적용된 공동생활을 통한 교육’, ‘영성· 지성 교육과 함께 이뤄지는 교육’ 등이 있다. 이상의 ‘신학생 인성 교육에 관한 개념이해’는, 이어질 법원과 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한 토대가 된다. 제2장에서는 신학생 인성 교육과 관련한 현행 교회법 조항들의 법원 이해가 시도되었다. 즉 오늘날 신학생 인성 교육에 관한 교회법 조항들의 근본이 되는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들과, 현대의 가르침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며 수용되었는지 연구하였다. 간접적인 법원 연구는 성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비록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미 성경과 교부문헌에서부터 신학생 인성 교육의 방향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 특별히 서간과 교부들의 문헌을 통해, 초기 교회의 성직자들은 신자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올바른 인성을 갖추어야 함이 명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학생 교육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라테란 공의회와 트렌토 공의회 때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트렌토 공의회 제23차 회기 때에 신학교 교령이 반포되고, 본격적으로 신학교가 설립되기 시작하며 신학교 교육의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 시기의 교육은 성직자의 직무 수행에 주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즉 사제 직무 수행에 문제가 되지 않는 인성을 갖춘 사제를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주된 목표였던 것이다. 이처럼 사제의 직무 수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신학생 인성 교육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사제직 본질에 바탕을 두게 된다. 즉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신학생들의 교육을 바라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제 양성 교령』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 교령은, 합당한 직무 수행을 위한 교육의 차원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로 교육하는 것’이 신학생 교육임을 명시한 것이다. 하지만 『사제 양성 교령』은 신학생 인성 교육이 영성 교육 과정 안에서 이뤄져야 함을 가르치며, 인성 교육을 영성 교육의 하나로서 언급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제3장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발표된 교회 문헌들을 통해, 현대 사회에 가까워질수록 신학생들의 인성 교육이 더욱 강조되어가고, 결국 독립적인 분야로서 명시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신학생 인성 교육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문헌들을 살펴보며, 신학생 인성 교육의 목표와 내용, 그리고 방법이 어떻게 제시되어 가는지 연구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먼저 신학생 인성 교육은 『독신 생활 양성 지침』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약 20년 후에 발표된『현대의 사제 양성』에서는, 인성 교육이 가장 중요한 교육으로서 명시되기에 이른다. 한국 가톨릭교회 역시 이러한 『현대의 사제 양성』의 가르침에 따라, 『한국 사제 양성 지침』을 통해 인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독립적인 교육 분야로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인성 교육을 독립적으로 부각시키며, 교회는 인성 교육의 목표를 더욱 심화시켜 나갔다. 인성 교육의 목표는, 영성적인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사람들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제가 되는 것’까지도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성 교육의 내용과 방법 역시, 영성적인 차원의 교육과 더불어 인간관계 형성 능력에 관련한 교육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4장은 앞선 연구들의 결과를 근거로, 신학생 인성 교육에 대한 실천적 제언을 하였다. 특별히 수원 가톨릭 대학교의 인성 교육 현실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도출한 후, 법원과 교회의 가르침에서 발견한 법 정신을 바탕으로 실천적인 제언을 하였다. 우선 현재 수원 가톨릭 대학교의 신학생 인성 교육 목표가 독립적인 형태로 명시되어야 함을 밝혔다. 그리고 인성 교육 내용은 재정리 및 보완의 필요가 있었기에, 앞선 연구를 근거로 일곱 가지 교육 내용을 제시하였다. 또한 인성 교육 방법은 5가지 분야, 즉 공동체 생활을 통한 교육, 성교육, 영성 교육과 함께 이뤄지는 교육, 지성 교육과 함께 이뤄지는 교육, 세상과의 접촉을 통한 교육으로 구분하여 제언을 하였다. 논문을 마치며, 신학생 인성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인성 교육 지도자와 신학생 각자의 적극적인 노력과, 양자간의 ‘상호 신뢰 및 협력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과 관계 형성이 올바로 이뤄질 때, 다른 교육 방법들이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인성 교육의 내용들이 신학생들의 삶에서 체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신학생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완전함을 닮아, 세상 모든 이들과 올바른 사랑의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는 ‘영혼의 참된 목자’로서 성숙되어 나갈 것이다.

      • 말씀 나눔의 공동체에 관한 사목신학적 고찰 : 가톨릭의 "소공동체"와 개신교의 "셀 그룹" 비교분석

        윤장호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0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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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쇄신 정신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에 입각하여 현대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획기적인 쇄신을 위해 ‘복음화’와 ‘친교의 공동체’를 구현 하고자 한국 교회에서는 소공동체라는 공동체관을 도입하였다. 그 동안 소공동체는 주교회의에 위원회가 생길 정도로 활성화되며 진보되어 왔다. 하지만 현재 소공동체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심단체처럼 신자들이 손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점을 발견하게 된다. 소공동체 활성화 방안으로 “복음 나누기 7단계”가 제시되었지만, 성경의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 나이가 많은 어르신 등 여러 집단이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또한 친교만이 강조되는 소공동체에서는 "말씀 나눔"의 시간이 신변잡기식의 대화로 인식되며, 교회 안에 존재하는 친목 도모의 도구로 평가 절하되는 한계도 발생하였다. 소공동체가 신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은 아마도 토착화가 덜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논자는 소공동체가 진정한 “복음화의 도구”이자 “친교의 공동체”로 바로 설 수 있는 방향을 찾고자 하였다. 소공동체의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해 논자는 동시대에 공동체 쇄신의 일환으로 개신교에서 제시된 ‘셀 그룹’을 살펴보았다. ‘셀 그룹’은 '4Ws'를 통해 말씀을 나누고,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말씀을 실천할 방향을 제시 해주며, 말씀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이는 신앙전파를 급속도록 성장하게 하고, 대형화된 교회 구성원들의 소외 현상을 줄여 주었으며, 구성원들 간에 서로의 아픔과 슬픔, 기쁨과 행복을 나눔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따라서 논자는 ‘소공동체’보다 앞서 한국에 도입되어 “복음화와 친교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정착되고 있는 개신교의 ‘셀 그룹’과 가톨릭의 ‘소공동체’를 비교분석하여 ‘소공동체’가 비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소공동체’와 ‘셀 그룹’을 비교분석한 결과 근본 신학과 기본 원리는 매우 흡사했다. 두 소그룹 공동체는 공동체 원리에 부합하고 있어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복음을 나누고, 이웃을 섬기며, 전례와 결합하고, 친교를 이루고 있었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학적 원리를 바탕으로한 ‘구원관의 차이’와 ‘이웃 섬김의 차이’에서 도출되는데, 이는 연구 범위가 방대하여 한계성이 따르므로 논자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장점을 바탕으로 소공동체가 나아갈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교회는 교회의 구성원들을 하느님의 모상이자, 교회 자체라고 정의 한다. 각각의 구성원들이 교회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구성원들의 모임인 소공동체 역시 교회이다. 그러므로 방안 제시는 소공동체를 교회로 바라보며 교회가 지니고 있는 공동체 4대 원리를 토대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말씀” 방안은 단계적인 말씀 나눔과 성경공부의 필요성, 그리고 속지주의에서 벗어나 속인주의가 되어야 하는 것에 있다. '단계적인 말씀 나눔'은 처음부터 ‘복음나누기 7단계’를 적용하는 것과 비교하여 신자들의 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 특히 기초적인 “향심기도”는 말씀에 맛을 들일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말씀에 맛을 들이게 되면 스스로 복음에서 하루의 양식을 찾고, 체험을 통해 얻은 하느님의 은총을 나눌 수 있다. 또한 '성경공부'를 함으로써 기초적인 성경 지식을 습득하게 되어 삶과는 무관한 역사 속의 예수가 아니라 현재의 예수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울러 ‘속인주의’는 복음 나눔을 하는데 있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구성원들 간의 만남을 통해 신앙의 나눔을 자유롭게 한다. 둘째, “전례” 방안은 소공동체가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영적인 나눔’을 지향하는 공간이기에 전례적인 요소를 더 도입할 필요가 있다. 비교분석 결과 가톨릭의 소공동체는 시작기도와 마침기도 그리고 자신을 위한 기도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개신교의 셀 그룹은 각 시간마다 찬양과 중보기도 그리고 나눔 시간에는 간증이라는 전례 요소를 도입하고 있었다. 가톨릭의 소공동체가 개신교의 셀 그룹에 비해 전례 신심 행위가 부족하므로 소공동체에 화살기도와 구성원 간의 공통적인 기도지향, 성가 부르기 등을 삽입하여 좀 더 전례적인 요소를 가미해 풍요로운 시간이 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소공동체가 신앙의 핵심인 미사와 결합하여 모든 소공동체원들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섬김” 방안은 말씀의 생활화를 위해 교구와 본당에 기획팀이 구성 되는 것을 필요로 한다. 기획팀 구성은 각각의 소공동체의 특색을 인정하면서 보편교회와 일치하기 위한 방법이며, 말씀을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이렇게 구성된 기획팀은 모든 신앙인들에게 각자의 삶 안에서 신앙을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친교” 방안은 위에서 제시한 3가지 방안을 통해 자연히 발생된다. ‘말씀’, ‘전례’, ‘섬김’이라는 방안들은 “친교”를 통해 더욱 극대화되어 나타나게 된다. 현대인들은 ‘영적 친교의 공동체’를 원하고 있다. 급속도로 변화하며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신앙인들은 19세기 교회가 그러했듯 하느님 안에서 가치관을 확립하길 요청하고 있다. 서울 대 교구에서 공동체 쇄신을 위해 제시한 ‘소공동체’는 이 땅에 하느님이 섭리하심을 드러내었다. 소공동체를 통하여 개신교의 ‘셀 그룹’이 보여준 것처럼 말씀 나눔과 이웃을 섬기는 노력으로 자연스럽게 이 땅에 “복음화와 친교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소공동체가 활성화되기 위해서 사목자는 각 교회의 공동체가 지닌 특징과 상황을 파악하여, 활성화되고 있지 못한 부분에 대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최소치의 원리와 최대치의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소공동체가 하나의 교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신앙인들은 말씀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영적인 노력과 이웃 섬김 그리고 전례와의 일치를 이루려는 적극적인 참여에 대한 노력을 함으로써 하느님과의 친교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본 논문의 한계점을 언급한다면, “말씀 나눔의 공동체에 관한 사목 신학적 고찰”이기에 소공동체의 문제점을 “말씀 나눔”으로부터 도출하여 영성과 전례, 교회론적인 시각으로 다루고자 하였지만 심도 있게 고찰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보다는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기존에 제시되어 있는 방안들을 취합하였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논자가 취합한 방안들은 소공동체 활성화 방안들 중 좋은 방안들의 취합이기에 긍정적 효과를 초래하리라 예상된다.

      •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의 가톨릭 교회사 : 2009 개정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중심으로

        송준호 수원가톨릭대학교 202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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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발표한 2017년 통계에 의하면 총인구 대비 신자 비율(복음화율)은 약 11.0% 정도이며 교적 상의 신자 수는 581만 3770명으로 집계됐다. 반면 신앙생활의 내실을 보여주는 지표인 주일미사 참여율은 19.4%로 전년보다 0.1%p 떨어졌다. 주일미사 참여율은 2010년 이후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여오는 추세이다. 이 통계가 말해주는 것은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가톨릭 신앙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과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지만 이내 신앙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냉담하는 교우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을 적시하며 본 연구자가 주목한 부분은 “성당 주위에 사는 사람들이나 천주교 신자인 지인이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국민의 상당수는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중학교 역사 수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된다.”는 가설과 “학습을 통해 얻게 된 첫인상은 이후의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교육학 이론이다. 상기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당수는 가톨릭을 중학교 역사 수업을 통해 처음 접한다. 이때 정립된 인식은 ‘초두효과’로써 학습자에게 내제되기에 이후 가톨릭을 접하게 될 때의 반응과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개신교계와는 달리 이제까지 가톨릭 내에서 공교육 현장에서의 역사교과서를 소재로 연구를 진행한 것은 거의 전무하다. 이에 따라 빈번히 교육과정 및 교과서가 개정되는 상황 안에서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매번 개신교 편향성을 지닌 교회사 서술이 반영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본 연구자가 2019년 현재 중학교 현장에서 사용 중인 역사교과서들을 전수조사하게 되었다. 본고의 제1장에서는 교육과정의 변천과 역사교과서의 현황에 대하여 알아보며 그 안에서의 교회사 관련 지침에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역사 수업은 학생이 역사적 지식을 습득하고 역사의식을 형성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대 교육사 안에서 역사교육은 일관성을 지니지 못한 채 국가의 주도 하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심지어는 정부가 주도하여 역사적 사실을 곡해하고 편향된 기술을 하여 시민의식을 좌우하기까지 하였음을 통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이때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의 교회사 서술은 시대사, 정치사와 흐름을 같이하며 그리스도교가 인류의 역사에 미친 영향력을 드러내었다. 문제는 역사교과서가 집필의도에 따라 서술 방향이 바뀌는 것처럼 교회사 관련 내용 역시 편찬자의 의도에 따라 편향성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한편 ‘2009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성취기준’에서는 교회사에 대한 비중을 그다지 높게 두고 있지 않다는 점도 이어지는 본문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이에 추후 교육과정이 개정될 때에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고 지침을 좀 더 상세하게 제시할 것을 제언하였다. 제2장에서는 중학교 역사교과서 및 지도서에 수록된 세계 교회사 관련 서술을 탐구하고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였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을 반영하여 출판된 중학교 역사교과서들은 지중해 연안의 문명사부터 시작하여 중세 후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역사와 그리스도교를 접목하여 많은 교회사적 사건들을 기술하였다. 각 교과서는 ‘2009 개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 의거하여 그리스도교의 형성과 발전을 서술하였는데, 용어 선택 및 서술, 그리고 자료 제시에 있어서 개신교적인 편향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상당함을 본문 안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실제로 신문기사나 방송매체의 자막 등을 비롯하여 ‘한글과 컴퓨터’에서 제작한 워드 프로그램의 맞춤법 교정에 이르기까지 교회 관련 용어는 거의 대부분이 개신교식이다. 기자 혹은 프로그램 제작자가 모두 개신교 신자이기 때문은 결코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 교육을 통해 학습된 용어와 서술이 개신교 편향적이기에 자연스럽게 정립된 인식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에 따라 본 연구자는 각 주제들을 분석하며 개신교적 편향성 및 서술상의 오류들을 지적하고 추후 교과서를 개정할 때 시정할 점들에 대하여 제언하였다. 또한 ‘크리스트교’, ‘로마 카톨릭’, ‘천주교’ 등의 용어가 본문 안에 혼재되어 있는데 이 역시 표준 국어 용례에 따라 통일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제3장에서는 중학교 역사교과서 및 지도서 안에 수록된 한국 천주교회사 관련 서술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특별히 ‘2009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천주교의 확산’과 관련된 기술을 해야 한다는 세칙을 생략한 이유 때문인지 ‘금성(김)’, ‘천재(김)’ 교과서의 경우 천주교 관련 서술을 아주 간략하게 한 문장으로만 정리하였거나 아예 서술 자체를 생략해버린 상황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천주교의 수용과 확산에 대하여 기술한 일곱 가지의 교과서에서는 큰 편차 없이 주요 논점들에 대하여 충실히 일목요연하게 기술하였다고 평가하는 바이다. 본 논문이 지금까지 분석한 것들이 추후 교육과정 및 역사교과서가 개정될 때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중립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기술함에 일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오는 2020년부터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출판되어 본격적으로 교육 현장 안에서 활용될 예정이다. 지난 2013년부터 7년 동안 사용되었던 2009 개정 역사교과서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번 연구를 통해 가시적으로 드러난 부분들이 2015 개정 교과서에서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교과서 출판 관련자들에게 꾸준히 가톨릭의 입장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하며 연구도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 儒家의 君子之道와 가톨릭 司祭 靈性 比較

        김진범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1996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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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儒敎의 君子之道와 가톨릭 司祭 靈性의 比較 本 논문은 儒家의 이상적이며 현실적인 인간상인 君子와 가톨릭의 司祭를 比較宗敎學的인 觀點에서 비교하여 현대의 이상적 인간상의 思想的 根據를 마련해 보고자 시도해 보았다. 이 시도의 목적은 미래의 가톨릭 司祭로서, 그리고 東洋人의 한 사람으로서 현대의 바람직한 人間像을 구현하고 재정립하는데 있고, 도한 東洋的 司祭像에 一助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본고는 먼저 君子와 司祭의 신원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이들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먼저 살펴본 후, 그들이 자신의 신원을 완성해 가는 수양 방법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그리고 그 수양의 완성인 安人과 司牧 활동을 비교 고찰해 보았다. 먼저 군자와 사제의의 신원을 고찰해 보았고, 이들의 정체성의 공통된 완성인 성인을 비교하였다. 첫째, 누구나 다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면에서 서로 같다. 유교나 가톨릭이나 성인은 자신의 하느님 또는 하늘로부터 받은 기질을 최대한으로 성장시키고 완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둘째, 孔子의 仁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완성은 같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이는 인이 사랑과 대치되는 개념이 아닌 비슷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제나 군자가 인과 사랑을 완성 시키는 것은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에서 같다고 보았다. 셋째, 사제는 성인이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구자는 유교에서 가장 중신되는 인물인 孔子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孔子는 사실 겸손하여 자신을 성인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공자를 그 제자들이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 사실이기에 현대의 군자는 공자를 사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사제가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과 군자가 공자를 사표로 삼는 다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를 닮는 다는 것은 그야말로 그리스도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공자를 사표로 삼는 다는 것은 공자를 본받을 뿐 자기 나름의 성인을 만들어 간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유교나 가톨릭이나 성인은 만 백성을 하느님 또는 하늘이 내려준 그대로를 성장시키고 仁과 사랑의 완성을 통해서 大同社會와 하느님 나라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임은 같다. 즉 군자와 사제의 궁극 목표는 바로 이것이고 여기에서 그 신원이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군자와 사제의 수양에 중심이 되는 德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수양과정을 고찰하였다. 먼저 智仁勇 三達德과 信望愛 向主三德을 비교해 보았다. 먼저 ‘知’와 ‘信’을 비교해 보았는데, 한마디로 信德이 知보다는 넓은 개념이라고 불 수 있다. 즉 信德은 知를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다. 다라서 알고 行하는 것을 뛰어넘어 온전한 信賴를 요구하는 德이 信德이라고 볼 수 있다. 君子의 ‘知’가 天命을 알고 人間을 알아 迷惑됨이 없는 것을 뜻한다면, 司祭가 갖는 信德은 사제의 온 삶안에서 하느님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인 동시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으로써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함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볼 수 있다. 다음으로 ‘勇’과 ‘望’을 비교해 보면, 이것은 望이 勇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거의 비슷하지만 望德이 보다 종교적이라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勇의 특징을 두가지로 보아 부끄러움이 없음과 强하게 끝까지 항구함이라 볼 수 있다면, 망덕 역시 ‘하느님을 바람’이라는 것에서 양심의 가책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뜻하며 過望과 切望없이 항구함이라는 것에서 强한 것이며 끝까지 항구한 것이다. 이와 같이 勇과 望은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君子의 勇이 인간적 사회에서의 성공을 의미한다면, 司祭의 望德은 인간적 사회적 성공보다는 내세에 대한 바람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희망이라는 데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군자와 사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인 仁과 사랑을 비교해 보았다. 仁과 사랑은 거의 비슷한 개념이라고 위에서 보았다. 仁이 知와 勇응 포괄하는 개념이라면, 사랑 역시 믿음과 희망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볼 수 있고, 君子의 仁이 克己復禮와 忠恕라는 행동에서 體得된다면 사제의 사랑 역시 자신의 직무수행 속에서 體得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君子의 仁이 자기 사랑과 타인에 대한 사랑, 더 나아가서는 인류전체에 대한 사랑을 포괄하고 있다면, 司祭의 愛德 역시 인간 사랑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君子의 仁이 司祭의 愛德보다 자기 사랑에 대한 비중을 좀 더 크게 갖는다면 사제의 애덕은 자기 사랑보다 자기포기에 더 큰 비중을 두며 한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 사랑이라는 더 큰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즉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형제자매들인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대명제가 있는 것이다. 즉 유교의 인이 윤리적인 사랑을 나타낸다면 사제의 사랑은 더 크게 종교성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類似點과 相異點에도 불구하고, 君子의 智仁勇 三達德의 修己와 司祭의 信望愛 向主三德의 修德이 갖는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것이 행하지 않고는 體得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양 방법 중 두 번째로 君子三戒와 福音三德을 비교해 보았다. 먼저 戒之在色과 貞潔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君子에게 있어서 色을 경계한다는 말은 女色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즉 獨身을 권고하는 말은 아니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그러나 司祭에게 있어서 貞潔의 德은 獨身으로 대표되는 德이며 獨身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제의 독신생활이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상태, 또는 금욕 생활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 가지 자연적 경향, 즉 생식 기능, 부부애, 자연적인 父性을 하늘나라의 사랑을 위하여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군자의 戒之在色이 갖는 인간적 본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제가 선택하는 독신은 바로 사제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것은 군자가 求色보다는 道에 전력을 다하듯,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갈림 없는 마음의 온전한 투신이 내재된 정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음 戒之在鬪와 順命에 대해 비교해 보았다. 君子에게 있어서 戒之在鬪는 忠, 恭敬, 禮, 孝悌의 德들을 包括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한마디로 윗사람 공경과 아랫사람 공경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司祭의 順命 역시 윗사람인 主敎와 동료 사제들, 신자들과의 화합을 내포한다. 이러한 화합의 근저에는 겸손의 덕이 밑받침되어 있고, 君子가 偏黨하지 아니하고 화합하듯이, 사제 역시 하느님의 뜻을 쫓으려는 온전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 안에서 화합한다. 이러한 司祭의 順命이 君子의 戒之在鬪와 다른 점은, 司祭의 順命은 양떼에게 언제나 자신을 내어 줄 준비가 된 순명이라는 점이다. 즉 군자의 鬪를 경계함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언제나 平等關係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제의 순명은 군자의 戒之在鬪에 비교해 兼愛의 마음을 더 갖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 戒之在得과 淸貧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君子의 得을 경계함이나 사제의 淸貧은 모두 물질에 있어서의 超脫을 포괄한다. 또한 물질에서의 초탈 뿐 아니라 자기중심주의에서의 초탈 역시 같은 맥락을 갖는다. 즉 君子는 安貧樂道함으로써 富貴를 草芥와 같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며, 사제 청빈 역시 하느님께 모든 것을 從屬시키기 위해 자기에게 자유로워지고 초탈해야 한다는 것이다. 君子에게 있어서 戒之在得은 바로 德을 本으로 삼고 財貨를 末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君子의 戒之在得은 의로운 부귀에 대해서 인정하는 편이다. 즉 君子의 得은 義로운 것이 아니면 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司祭의 淸貧은 의로운 재화까지도 포기하는 靈性을 추구하게 만든다. 이는 사제 자신이 가난하게 됨으로써 가난한 이들을 쉽게 우선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司牧的 측면에서의 청빈을 의미한다. 君子의 戒之在得과 司祭의 淸貧의 차이점은 의로운 재화를 인정하는가, 아니면 그것가지도 포기하는 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君子三畏와 하느님 말씀의 연구에 대해 살펴보았다. 君子三畏는 畏天命으로 集約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君子의 畏天命을 중심으로 司祭의 하느님 말씀의 硏究와 比較해 보았다. 君子에게 있어서 인간에게 내재된, 득 天이 稟賦한 德을 밝히는 것이 畏天命의 길이다. 따라서 君子가 해야 할 일 중에 제일 첫 번째의 것이 天命을 아는 일일 것이다. 이와 같이 사제가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한다는 것 역시 사제에게 있어서 첫 번째 任務인 것이다. 또한 君子의 畏天命의 길이 天命을 아는 것에 있다면, 그것은 바로 依於仁으로 그 방법을 삼는 다는 것이다. 사제 역시 하나님 말씀의 연구에 있어서 말씀 선포의 열의와 함께 실생활에서의 사랑의 영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君子의 畏天命과 사제의 하느님 말씀 연구는 그 방법이 동일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만 儒家의 畏天命의 실현 방법이 孔子가 이야기하듯 下學而上達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면, 사제의 하느님 말씀 연구는 이미 계시되어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익히고 실생활의 삶으로 이어진다는 면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즉 儒家의 방법이 上向的 性格을 가지고 있다면, 司祭 靈性에 있어서 하느님 말씀 연구는 下向的인 性格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에서 다르다. 이것은 바로 啓示宗敎인 가톨릭과 上帝崇拜 보다는 人事를 중시 여기는 儒敎의 큰 차이점을 克明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다. 다음은 君子의 安人과 司祭의 司牧이라는 면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수양을 세상에 펴 나가는지 살펴보았다. 첫째로 君子의 德治나 司祭의 司牧에 있어서 똑같이 중용한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군자는 契矩之道로써 백성들에게 솔선수범하여 백성이 본받게 만드는 정치를 해야 하며, 사제는 자신이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목자적 권한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봉사적 권한으로 받아들여 목자적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군자의 덕치가 백성들의 修身을 돕는 정치라면 사제의 사목은 신자들의 聖化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구자의 덕치나 사제의 사목은 본질적으로 거의 같은 맥락에서 고찰된다 하겠다. 왜냐하면 군자의 덕치가 仁愛를 실행하는 것이고 사제의 사목이 사랑을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君子의 正人心과 司祭의 靈性指導 역시 거의 같은 맥락에서 통찰 되었다. 먼저 군자가 正心을 통해 正人心에로 나아가는 爲己之學을 指向하고 있다면, 사제 역시 자신이 먼저 진실의 상태와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있지 않으면 영성지도를 할 수 없다는 논리는 서로 상충한다. 또한 군자의 정인심이나 사제의 영성지도는 모든 사람이 본래 하느님 또는 하늘로부터 받은 마음의 손상된 부분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말하는 것에서 같다. 이처럼 군자나 사제의지향점이 모두 같음을 볼 수 있다 하겠다. 그런데 다른 점은 군자의 정인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선하게 하는 인간적 관계에 주안점을 둔다면, 사제의 영성지도는 인간관계 보다는 하느님과 피지도자의 관계에 주안점을 둔다는 것이다. 즉 사제가 피지도자와 인간적 관계를 돈독히 하기 보다는 그 일차적 관심사가 하느님과 피지도자의 관계에 있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인간적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군자의 정인심은 군자가 주체가 되어 범인들의 마음을 바르게 하지만, 사제는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협력자에 불과하고 객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성지도의 주체는 하느님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인심과 영성지도의 주체가 다르다는 면에서 큰 차이점이 있다고 하겠다. 셋째로 儒家의 大同社會나 가톨릭의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과 모든 인간 또는 天人이 合一된 社會이며 하느님과 一致된 사회이다. 여기서 고찰하고 비교해 본 것은 이러한 이상 사회에 도달하는 과정 중 君子와 司祭의 役割이다. 먼저 군자가 대동사회의 건설을 위해 大公을 실행하고 만민을 사랑한다면, 사제는 구원이신 예수를 선포하고 하느님의 샘솟는 사랑(Amor fountains)을 전하는 것이다. 또한 군자가 대 사회적으로 경제적인 면에서의 人間愛를 실현해 모두의 平等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사제 역시 경제 정의의 증진을 통해 구조적 모순에 대한 총체적 변형을 이루고자 한다. 즉 모두 세계의 평화와 복지사회의 구현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면에서 군자와 사제의 이상사회 건설은 같은 맥락을 띠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군자의 대동사회 건설은 이 지상의 이상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반면, 사제의 하느님 나라 구현은 천상의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키는 것이지만 궁극적인 지향점은 천상의 하느님 나라에 있다는 것이 크게 다른 측면이다. 즉 이상사회 건설의 시점이 차이가 있는 것이다. 군자는 그 시점을 현시대를 지향하는 것이고 사제의 하느님 나라 구현은 그 시점이 세상의 완성인 종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사제는 세상의 완성인 하느님 나라의 도래로써만 이상적인 사회가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것은 군자와 사제의 종교적인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아주 큰 차이점인 것이다. 지금까지 東洋의 理想的 人間像인 君子之道와 가톨릭의 理想的 人間像인 司祭의 靈性에 대해 비교해 본 결과 君子之道나 司祭靈性은 큰 차이점이 없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바라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結論的으로 儒家와 가톨릭의 제일 큰 차이점은 儒家는 下學以上達해 깨달아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고 그리스도교는 啓示 宗敎로써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照明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君子之道와 司祭 靈性이 참인가성 회복에 갖는 意義는 사람이 자신의 본성인 착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사랑으로 인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窮極的인 目標는 하느님 또는 天과 인간이 合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야만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회복할 수 있고 大同社會 또는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수원교구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위한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의 활용 가능성 연구 : 폴 리쾨르의 성서 텍스트 해석 이론을 중심으로

        박상일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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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 부흥 이후, 근대의 교리교육은 이성적 합리주의의 영향 아래 정식화(定式化)된 교의와 규범, 교리의 형식으로 대상자에게 제시되었다. 이 때문에 '위로부터 내려오는'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계시의 성격에 따라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강압적인 교리교육이 이루어졌다. 이에 20세기부터 교리교육의 부흥운동 안에서 시대 징표적인 반성으로 교리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쇄신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교리교육은 내용에 있어, "구원의 역사를 살아있는 실재처럼" 전해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이는 교리교육 안에서 성서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고, 교리교육 방법론적 측면에서 "생활의 궁극 의미를 다루며, 복음의 빛으로 삶 전체를 비추어 삶에 영감을 주고, 삶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계시와 이것이 전달되는 매개로서의 성서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를 자극하였다. 이에 따라 본 논문에서는 수원교구 청소년 교리교육에 대한 쇄신의 노력으로 제시된 성서 중심 교리교육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수원교구 시노두스 이후의 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교리교육 대상자들의 부정적 평가가 밝혀준 바와 같이, 교리교육 신학은 근본적으로 하느님 계시의 체험을 유발시키는 새로운 교리교육 방법론으로 시대의 징표를 해석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고 있다. 여기에 교회의 교리교육 문헌들은 거룩한 독서를 통한 하느님의 계시와 개별 인간의 직접적인 만남으로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성서를 매개로 개현되는 계시, 계시와 대면한 독자의 체험을 논리적으로 규명하는 폴리쾨르의 성서 텍스트 해석 이론에 의해 그 가치가 재조명될 수 있다. 이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거룩한 독서가 현대의 청소년에게 갖는 탁월함을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에서 강조한 바 있다. "여러분을 위한 본인의 소망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한 '성장'입니다. 자연과의 접촉과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하느님과의 만남을 간접적으로 도와 줄 수 있지만, 하느님과 만나는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방법은 기도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여러분 자신보다 여러분을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에게,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의 양심을 열어 제치십시오. 그분과 대화를 하십시오! 성서를 읽고 묵상함으로써,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깨치십시오. 이것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 그분과 만나는 수단이요 방법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개인의 주관과 감성이 우선시 되고 있는 현대의 청소년에게, 하느님 계시의 매개이자 직접적인 체험의 장이 되는 성서의 탁월함을 드러내준다. 거룩한 독서는 개별 주체의 능동적인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얻는 신비체험이 이성에 의한 이해라기보다는 감성적인 느낌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기도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다양한 형태로 다가가는 부르심 안에서 고유한 신앙으로 응답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상을 지닌 청소년에게 적절한 교리교육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실제의 청소년 교리교육 현장에서 거룩한 독서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제시될 수 있겠는가?"라는 실천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의 연구가 지금까지의 교리교육 방법에 대한 연구들의 한계를 답습하지 않기 위하여, 먼저 교리교육이 근본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성령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즉 앞선 연구들은 교리교육의 현장에서 교육자를 위한 기술(skill, technic)에 대한 새로움을 전해주는 것으로 일관되어 왔다. 이에 따라 또 다른 새로움에 대한 유능함을 가진 교사를 양성하는 과제를 남겨, 교리교육이 대상자가 아닌 교육자를 중심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역설적 상황이 초래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교리교육 신학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숙고함으로써, 이제 교리교육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리교육을 완성시키는 성령의 이끄심에 대한 연구로 집중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본고에서 전개한 폴 리쾨르의 성서 해석학을 중심으로 교리교육 안에서의 성령의 작용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폴 리쾨르의 성서 해석학은 교리교육 문헌이 신비체험의 과정으로 제시한 귀납과 연역의 방법으로 거룩한 독서의 수행을 설명해 준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성서 텍스트 세계의 의도에 따라 주체의 자아가 투영되고, 이를 자기화 함으로써 새로운 자기 이해인 신앙으로 나아가게 된다. 여기에서 자아가 투영되는 힘은 주체의 단절과 비판에 의한 개방으로 제시되지만, 투영시키는 텍스트 세계의 의도가 갖는 힘에 대한 설명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성서의 언어가 표지로 작용하여 텍스트의 세계를 지시하고, 독자는 이를 따라감으로써 텍스트의 세계인 계시와 대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주체에게 작용하는 성령의 이끄심은 성서의 언어를 통하여 주체의 실존에 대한 부르심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바, 실존에 대한 부르심과 성령의 이끄심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리쾨르의 거리두기에 의해 성서 텍스트는 저자, 상황으로부터 의미적 자율성을 갖으며, 이러한 차원에서 거룩한 독서를 수행하는 주체는 성서의 저자,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성서 자체의 의미로 현재의 자아에 대한 성령의 이끄심을 감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교회의 전통 안에서 낭만주의 해석학에 의해 전개된 양식 비평, 편집 비평, 사회학적 비평 등의 성서 연구 방법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생산적인 기능을 초월하는 기능이 리쾨르의 거리두기 개념에 의해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위의 비평 방법들을 초월하여 성령의 이끄심을 감지하게 하는 이러한 기능에 대한 연구가 과제로 남는다.

      • 전례집전 사제의 임무에 관한 교회법적 고찰 : 교회법 제835조 2항을 중심으로

        구영생 수원가톨릭대학교 200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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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교회는 '사제의 신원과 임무'에 대하여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논의해 왔다. 특별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후로, 현대의 사회와 문화적 상황에 더 알맞은 시각에서 '사제의 신원과 역할'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요청은 한국 교회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례로 서울대교구 시노드에서 밝히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신자들이 사제들의 전례집전임무에 관하여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자들이 사제들의 '안일하고 형식적인 미사 거행'과 '직무유기에 따른 기능주의의 위험'을 경고하고 나셨다. 이에 신자들은 사제들에게 '미사 거행을 성실히 해줄 것'을 희망하면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사제들이 본연의 직무에 충실해 줄 것을 시노드를 통해 요청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접하면서 논자는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서, 미래의 사제직을 준비하는 신학생으로서, '나는 과연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가?'라는 내적 고민을 가지게 되었고, 미래의 '나의 사제상'을 '전례집전 사제의 임무'를 통해 그려보고 싶었다. 논자가 문제를 제기한 본 논고를 쓰려고 하는 것은, 바로 '현재의 신학생인 나'와 '미래의 사제인 나' 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첫째, 문제는 올바른 교육을 통하여 전례집전자를 준비하는 사제양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례집전 사제로서의 신원의식이 결여된다는 점이다. 세속화는 교회와 사제 자신을 '업적주의, 기능주의 경향'에 편승하도록 유혹한다. 자칫 외적으로 신자들 앞에 드러나는 기능적 직무 수행에만 몰두하고, 정작 그리스도의 전례집전 사제로서 신원의식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전례집전 사제의 신원인식 결여는 사제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희생제사인 하느님 경배 안에서 그리스도를 현현할 수 없게 된다. 전례집전 사제의 임무와 교회법의 최종목적인 영혼구원을 이루지 못한다. 논자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로 "전례집전 사제의 임무에 관한 교회법적 이해"를 선택하였다. 왜냐하면 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그리스도 사제직의 임무가 하느님 백성의 성화를 위한 그리스도의 구현이라고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을 법제화 한 현행 교회법 제835조 2항은 그러한 교회의 뜻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사제임무의 목적이 하느님 백성의 성화에 있으며, 구체적 실천방법으로 하느님 경배의 거행을 통한 영혼의 구원(Salus Animarun)이라는 교회의 최종 목적에 부합하고 있다. 논자는 '전례집전 사제의 임무'의 중요성을 고찰하여, 미래의 사제인 '나의 신원'을 준비하고자 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전례집전 사제의 임무에 관한 교회법적 고찰"이라는 맥락에서 "하느님 경배와 하느님 백성의 성화"를 위해 사제가 지향하고 숙고해야하는 바에 대하여, 사제 신원에 관한 부분 중 '전례집전 사제'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무엇보다도 전례집전 사제의 임무 목적이 하느님 백성의 성화와 사제 성화에 있다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교회법 제835조 2항에 담긴 법정신을 고찰함으로써 사제의 신원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리스도의 사제들과 미래의 사제들인 신학생들이 인식해야 할 교육적 지침과 방안에 대하여 살펴보는데 의의를 두었다. 논문 전반부에서는 전례집전 사제의 임무를 명시한 현행 교회법 제835조 2항을 중심으로, 법원과 관련된 보편 교회의 문헌을 살펴봄으로써, 법의 교회법적 의미와 성격, 목적과 전례집전 사제임무에 관한 교도권의 가르침을 이해하였다. 또한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형성되고 발전되어온 전례집전 사제의 임무와 신원 및 역할에 대하여 알 수 있다. 논문 후반부에서는 교도권의 가르침에 따라 보편 교회법이 개별 교회에 적용되는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현실적 문제를 파악한 후, 전례집전 사제의 임무에 관한 본질적인 요소를 성찰해보았다. 특히 한국 천주교회가 '역사 안에서 사제임무를 어떻게 이해하였는가?'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최초 한국 교회의 사목서한과 사목지침서를 비롯한 몇몇 교구들의 지침서의 규정과, 오늘날 지역 교회에 적용되고 있는 지침서와 전례 규정집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전례집전 사제들의 신원과 임무 수행 방법을 통하여 드러난 문제점과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해 보았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도출한 내용은 제언을 통하여 "하느님 경배와 하느님 백성의 성화"를 위해 사제가 실천해야하는 바를 전례집전 사제를 준비하는 자로서 다시금 숙고하게 하였다. 전례집전자인 사제들의 신원인식 부족과 직무유기, 잘못된 전례거행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사제들이 보편교회의 가르침과 개별교회의 지침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았기에 초래한 현상이다. 따라서 좀 더 올바르고 정확한 전례집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양성교육'으로 귀결되었다. 사제서품을 받으면 모든 것이 완성되고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존재'인 사제의 신원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전례집전을 준비하는 신학생 양성 시기부터 꾸준한 교육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신학생 양성시기의 교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품을 받은 후에도 연계가 되어 꾸준한 양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하여 논자는 미래의 사제직을 준비하는 신학생으로서, '나는 과연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가?'라는 내적 고민을 가지고, 시대적 요청에 근거하여 "전례집전 사제의 임무"를 통해 미래의 '나의 사제상'을 그려보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전례집전 사제직 준비자로서, 논자가 제기한 두 가지 성찰에 관한 물음에 대하여 답을 주었다. 먼저, 양성자의 피양성교육 소홀과 피양성자의 수동적인 자세는 전례집전자인 사제의 정체성에 대한 신원의식의 결여로 이어져, '현재 신학생인 나'가 전례집전 준비에 소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은 '미래의 사제인 나'가 사제로서의 삶을 올바르게 살지 못한다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면 전례집전 사제의 임무 목적인 하느님 경배와 하느님 백성의 성화, 더 나아가 사제 자신의 성화는 이루어지지 못하며, "영혼의 구원"이라는 교회의 최종 목적에도 부합하지 못하게 된다. 사제는 성사를 집전하는 사람이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미사성제를 집전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제의 역할을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하늘나라의 천사들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자가 사제이다. 사제의 삶은 더욱더 전례집전 안에서, 특히 성찬례를 중심으로 그리스도를 현현하는 삶이 되며, 자신을 성화로 이끌게 된다. 전례집전을 준비하는 신학생과,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제대에서 성대히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가 외우는 성찬 제정문은 축성문 이상의 것, 곧 '생명의 조문'이 되어야 할 것이며, '영혼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영광과 찬미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논자는 본고를 마무리하면서 논문의 한계와 연구를 통하여 얻게 된 열매를 도식을 통하여 제시해보고자 한다. 본 논문의 한계는 교회법적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고찰이기에, 다른 신학 방법론에 따른 전례집전 사제의 신원과 임무에 대하여 심도 있게 다루지 못한다는 점이다. 첫째, 전례집전 사제임무의 지평에 관한 안목의 한계이다. 논자는 아직 전례집전 사제를 준비하는 양성의 단계에 있기에 현실적 경험의 부족이 한계점으로 인식된다. 둘째, 전례집전 사제임무에 관한 연구과정에 대한 한계이다. 전례집전 사제의 임무에 관한 가르침을 전개하고, 현실적인 요청에서 그 문제를 찾고, 대안을 찾아 교육을 통하여 해결하는 방법 자체에서 한계성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실천적 제안이 '교육을 통한 삶의 실천적 적용'이라 내용이 포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론에 치우쳐 실질적인 깊이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셋째, 전례집전 사제임무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관한 대안의 한계이다. 이것은 교회의 한계이다. 그러므로 시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도와 관심의 대상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기에 새로운 인식전환을 숙제로 간직하고 지속적인 연구를 다짐해 본다. 이러한 연구의 한계 속에서 얻게 된 열매는 다음의 도식과 같다. 【도식-1】 “전례집전 사제의 임무”의 교회법적 목적 ◁그림 삽입▷ (원문을 참조하세요)

      • 선교학 관점에서 바라본 가톨릭 다문화 학교의 인성교육 재고

        김선헌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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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기관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지난 2012년 10월 한 달 동안 ‘다문화 가정 자녀’ 와 관련해서 보도된 국내 신문기사의 수는 약 800개로 집계된다. 물론 같은 내용의 기사를 다양한 언론매체들 이 동시에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숫자는 다소 과장되어 보일 수 있 다. 그럼에도 800개의 기사가 ‘다문화 가정 자녀’라는 하나의 소재를 초점으로 다루었음을 통해, ‘다문화 가정 자녀’가 우리 사회의 주요 관심 이슈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도되는 기사 대부분은 ‘다문화 가정 자녀의 저조한 취학률’과 이 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어려움’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이에 정부를 포함한 대부분 기관에서 다양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 는데, 운영되고 있는 다수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은 일회적이고 교착 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결국, 다수 프로그램은 다문화 가정 자녀가 정체성을 형성함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다문화 가정 자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운영될 가톨릭 다문화 학교의 설립과 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함에 목적을 둔다. 특별히 다종교의 상황 안에서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될 다문화 학교 설립의 방향을 제안함에 목적이 있다. 위의 연구 문제를 위해 본 연구는 질적 연구 방법을 활용하였다. 각 세 곳의 개신교 다문화 학교와 가톨릭 학교를 선별하여 이루어 졌으며, 각 학교의 교사들과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대부분 개신교 학교는 면담에 응하지 않아 충분한 연구를 함에 한계가 있었다. 본 연구의 결과, 대부분의 종립학교가 인성교육을 함에 크게 몇 가지의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학교유형에 서 ‘인가’와 ‘비인가’에 따라 서로 다른 부분에서의 한계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례로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세 곳의 가톨릭 학교는 ‘교사들의 역량 부족’을 비인가로 운영 중인 두 곳의 개신교 종립 학교는 학교를 운영함에서 ‘재정적 어려움’을 한계로 지적했다. 둘째, 교내에서 이루어지는 주된 인성교육은 직·간접적으로 특정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데, 이는 종립학교 설립의 목적인 ‘선 교’와 연관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례로 개신교 종립 다문 화 학교를 포함한 일반 개신교 종립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성 교육은 교리교육과 채플, 성경연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 며, 가톨릭 학교 역시 직·간접적 방법을 통해 교내에서 행해지는 공 동체 미사와 다양한 신심행사 그리고 종교수업의 참석을 학생들에 게 부추기고 있었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운영될 가톨릭 다문화 학교 설립의 당위성과 선교학적 입장에서 가톨릭 다 문화 학교의 운영방안을 제언하였다. 주요어: 가톨릭, 다문화 가정 자녀, 다문화학교, 인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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