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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國宮廷舞蹈發展的歷史軌迹及其深遠影響

        王克芬 ( Wang Ke-fen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4 민족무용 Vol.6 No.-

        본 논문에서 언급하는 궁정무용은 궁정에서 연출되거나 창작된 모든 무용을 말한다. 궁정무용은 의식과 제사에 사용된 것, 감상과 오락에 사용된 것, 그리고 이 두 기능을 겸비한 것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중국 주 왕조 시대는 노예제 사회에서 봉건 영주제로 향하는 과도기로, 이 때 예악제도 제정을 위해 아악이 탄생하였다. 아악의 형성은 궁중무용의 정식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아악은 고려 뿐 아니라 주변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지나치게 경화된 아악보다는 생동적이고 활발한 민간의 악무가 대대적으로 생겨났다. 그리고 이 새로운 무용은 감상을 위한 예술무용이었다. 한대에는 잡기, 음악, 무용, 무술 등 다양한 기예를 포함하는 ‘백희’가 유행하였다. 이 ‘백희’는 당시 민간에 널리퍼졌을 뿐 아니라 외국사절과 소수민족 수령을 영접하는 궁정 연회석에서도 공연되었다. 이것은 오락과 관람을 위한 것이었다. 한대의 아악에는 백성들의 생활에서 유래한 영성무(靈星舞) 와 파투무(巴渝舞) 가 출현했다. 영성무 는 16명의 남자 아이들이 농사 활동을 모방하여 추는 춤이다. 원래 파투무 는 파산과 유수 사이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판순만이(板循蠻夷)’ 민족의 무용이었는데, 한 고조가 이것을 악부에 편입시켰다. 위, 진, 남북조 시대에는 무용의 오락성이 크게 강조되었고, 청상악(淸商樂) 이 형성되어 장안, 낙양부터 강남 일대까지 널리 퍼졌다. 당대에는 무용예술이 고도로 발달하였고, 구부악(九部樂) , 십부악(十部樂) , 좌부기(坐部伎) , 입부기(立部伎) 등의 궁정연악이 창조되었다. 이들은 소수민족의 악무를 하찮게 여기던 앞 시대와는 반대로 외국 각 민족의 민간 악무를 당당하게 궁정연악의 악부에 포함시켰다. 당대 궁정연악은 감상하기 위한 것으로 예술성이 높고, 형식이 화려하며, 주제가 선명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당대 무용 가운데 건무, 연무, 대곡, 가무희 는 기예수준이 높고 널리, 그리고 오래 전승된 무용이다. 송대의 궁정대무는 이런 당대의 일부 악무를 계승하였다. 당대의 궁정무용은 일본 및 조선에 전파되었다. 오늘날 일본의 아악 무용 가운데는 아직도 춘앵전(春鶯囀), 난릉왕(蘭陵王) , 발두(拔頭) 등이 보존되고 있다. 12세기 남송 시대에는 독립된 공연예술로서의 무용이 점차 쇠퇴하고, 희곡 안에서의 무용이 점차 발전하였다. 희곡은 당대의 무용이 공연예술분야에서 누리던 정통의 지위를 대신하게 되었다. 청대의 통치자는 만주족으로 그들의 궁정연악은 만주족의 색채를 선명하게 띠고 있다. 만주족의 활 쏘고, 말 타는 생활을 반영하였다. 청대 말년에는 裕容齡(1882~1973)이라는 걸출한 무용가가 배출되었다. 그녀는 구미 무용을 최초로 학습한 무용가로 이사도라 던컨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유일한 중국인이었다. 만주족의 귀족 출신인 그녀는 다년간 외국에서 무용을 배우고, 귀국 후에는 민족무용을 공부하여 중국 춤을 소재로 공연하였다. 궁정무용의 흥망성쇠는 국력의 강성 여부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중국의 봉건제도가 해체됨에 따라 ‘궁정무용’도 사라졌으나, 현재 일본과 한국에서는 중국 당, 송 시기에 전래된 악무를 ‘당악’이라 통칭하면서 보존하고 있다. The court dance refered in this dessertation is all dances which were produced or created in court. Court dance can be divided into three types; one for ceremonies and sacrificial rites, one for appreciation and entertainment, and one that has those two functions. The Chu Dynasty is a transitional period from slavery society to a feudal system. In this age, ceremonial music(A-ak) has been created to invent 'Li Yue' system. Formation of ceremonial music signified formal advent of court dance. Ceremonial music had a great effect on states around China as well as Koryo. In the age of Ch'un ch'iu and civil wars, lively and vigorous music-dance(Akmu), entertained by the popular, appeared instead of ceremonial music which was extremly formal. This new type of dance, music-dance was an artistic dance for appreciation. In Han Dynasty, 'Bai Xi' which included miscellaneous skill, music, dance, and martial arts, was popular. Not only was it widespread to the people, but also it was performed at court banquets welcoming foreign missions. This was for entertaining and appreciating. < Ling Xing Wu > and < Ba Yu Wu > appeared in ceremonial music at this period. These two dances were originated from people's life. < Ling Xing Wu > is a dance for 16 boys imitating farming activity. < Ba Yu Wu > was originally a dance of the ethnic 'Bansoonmani' who dwelled between Pasan and Yusu. Then Kao Tsu in Han Dynasty classed this in Akbu. In Wei, Chin, and the period of North and South dynasties, the charicteristic of entertainment in dance was strongly emphasized, and < Qing Shang Yue >, formed in this age, was widespread Ch'ang-an, Loyang, and all over the south part of a river. Dance as an art was highly developed in T'ang Dynasty. Also, court musics such as < Jiu Bu Yue >, < Shi Bu Yue >, < Zuo Bu Ji > and < Lo Bu Ji > were created. In contrast with former times when ethnic music-dance had been neglected, in T'ang Dynasty, even foreign ethnic music-dance were included in Akbu for court music-dance. This music-dance in the age of T'ang was only for appreciation, which was highly artistic, and which had sophisticated form as well as clear motif. Among dances in this age, < Jian Wu >, < Ruan Wu >, < Da Qu > and < Ge Wu Xi > had advanced technique. They especially spreaded extensively and lasted long. Those music-dance was partly passed down to the Sung Dynasty, also to Japan and Chosun. < Chun Ying Zhuan >, < Lan Ling Wang > and < Bo Tou > still remain in Japanese ceremonial music and dance. Neverthless, in 12th century(south Sung period), dance as an independent performing art eventually declined, whereas dance in play developed. Plays gradually took the place of the orthodox position of dances. Court music-dane in Ch'ing Dynasty was extremely Manchurian since it was reigned by the Manchurian ethnic. Hence, these art form reflect horse riding and shooting arrows which were the life style of the Manchurian. A talented dancer, Yu, Rong-Ling(1882~1973) appeared at the last years of Ch'ing. She was the first Chinese dancer who leared European and American dance. Also she was the only Chinese who learned from Isadora Duncan. Born in a Manchurian noble family, she trained dance abroad for several years. After coming back to China, she studied ethnic dance and performed Chinese dances. The rise and fall of court dance have much to do with power of the nation. As Chinese feudal system dissolved, 'court dance' also disappeared. Nonetheless, music-dance from T'ang and Sung Dynasty is still preserved under the title of 'Tang Ak' in Japan and Korea.

      • 琉球宮廷舞踊の形成と変遷 : 18世紀の冠船芸能を中心に

        當間一郎 ( 도마이치로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6 민족무용 Vol.9 No.-

        류큐궁중무용은 1404년부터 1866년까지 22회에 걸친 류큐왕국의 봉책식전을 위한 만들어진 예능이었다. 류큐무용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1719년 쇼케이왕 봉책식전에서부터이다. 이후, 류큐국왕은 1872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류큐번이 되었으며, 1879년에는 페번치현이 공표됨에 따라 오키나와현이 되었다. 왕국이 멸망함에 따라 궁정무용 또한 상당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데, 새롭게 일반인을 상대로 한 흥행이 이루어짐으로 인해 류큐궁중 무용은 오늘날과 같은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琉球宮廷舞踊は1404年から1866年までの22回に渡る琉球王国の冊封式典のためにつくられた芸能であるといえる。琉球舞踊が本格的に発展したのは1719年の尙敬王冊封式典の演芸からである。以後、琉球王国は1872年明治政府により琉球藩になり、1879年には廃藩置県が公表され沖縄県になってしまった。王国の滅亡とともに宮廷舞踊も厳しい状況に陥ってしまうが、一般人を相手とした新しい興行が行われ、琉球宮廷舞踊は今日のような継承と発展を遂げるようになった。

      • 한국 궁중 정재의 전승과정과 유희성(遊戱性)에 관한 연구

        허영일 ( Hur Young-il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6 민족무용 Vol.10 No.-

        한국 궁중 무용은 정재(呈才)라고 불리며, 글자 그대로 “봉헌 재능”을 의미한다. 정재는 왕의 시민 업적을 찬미하기 위해서 그리고 유생의 정신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명상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의식처럼 취급되는 경향도 있다. 이제까지의 한국 궁중 무용 연구는 주로 이러한 점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하지만, 한국 궁중 무용은 왕에 대한 찬미를 표하고 화합과 평화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무용 레퍼토리의 해석을 통해 궁정의 오락으로서 공연되었다. 전형적인 예는 ‘포구락(抛毬樂)’ 일 것이다. 고려(高麗) 시대부터 여러 종류의 연회에서 공연되었던 유명한 궁중무용의 하나로, 무용수는 한명씩 문 모양을 한 소품인 포구문(抛毬門)의 작은 구멍에 공을 던진다. 만약 무용수가 구멍에 공 던지기를 성공시키면 상으로 꽃을 받고, 실패하면 벌로 얼굴에 먹물을 칠한다. 무용뿐 만 아니라 오락까지 두 가지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고려 시기에, 이 연회는 연희의 흥겨움과 어울려져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그것의 오락성은 조선시대 금욕주의 신유생들에 의해 혹독하게 비판 받았다. 비록 유생들이 이 작품에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조선시대에도 이 작품은 인기를 끌었다. 포구락은 그것이 전해주는 즐거움과 유쾌함으로 인해 대중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으며, 이 후 아무런 장애 없이 전승될 수 있었다. 한국 궁중 무용은 의식으로서나 오락으로서나 아주 훌륭한 공연물이다. 포구락은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공연되면서, 원래의 형태가 상황과 환경에 따라 약간 변형되었다. 그 결과 한국 궁중무용은 시류에 뒤떨어지지 않게 변화, 보존될 수 있었다. Korean court dances is called Jeongjae(呈才) literally meaning "offering talent". Jeongjae, which is conceived as a symbol of a universe, was made to praise civil achievements of the kings and to show the Confucian spirit. Therefore it seems to be contemplative, and the performance tends to be treated as a ceremony. In many cases of the study about Korean court dances are focused on this point. But, it is found that Korean court dances had been not only presented for the praise of the kings and showed for the spirit of harmony and peace but also performed for amusement in the court through the analysis of the repertory of the dances. A typical example of the cases should be 'Pogurak(抛毬樂)'. It has been one of the popular court dances performed since the Goryeo(高麗) period at various banquets. In this dance the performers, one after another, throw a ball into the small hole of the Pogumun(抛毬門) which is a gate-shaped dance property. If a dancer succeeds in throwing the ball into the hole, she receives a flower for a reward, otherwise, her face is smeared with ink for punishment. Both the dance movements as well as the game can be enjoyed. In Goryeo period, for its entertainment went well with the fuss and feathers of banquets, it was quite popular. However, the entertainment of it had been sternly criticized by abstinent neo-Confucian in Joseon(朝鮮) period. Although Confucian had assumed a critical attitude toward it, it had acquired popularity during Joseon period. Then it can be transmitted without any break that is only because the aspects of its fun and enjoyment had strongly appealed to people. Korean court dances are excellent performances either as the ceremony or as the entertainment. Moreover, it was performed the provinces as well as Seoul and the original form has been slightly altered by the situations and the circumstances. The Korean court dances, therefore, has been changing and keeping abreast with the times.

      • 내가 무용을 사랑하는 이유

        홍준철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2 민족무용 Vol.- No.2

        무용과 거리가 멀게 살았다. 음악을 전공하고 합창을 했지만 인접예술인 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무용은 특별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언제나 했다. 숏 다리 숏 팔에다가 머리의 무게가 엄청 나가는 나로서는 도시 무용은 보통명사가 되질 못했다. 그러나 인생이 만들어 내는 운명은 무용과 뗄 수 없는 사이로 만들어 놓고야 말았으니 한국예술종합학교 발전기금 재단사무국이 서초동 교사로 옮기면서 무용원이 위치한 2층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였다. 사람은 환경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는 다윗의 진화론은 맞다. 매일 보는 것이 무용수요 인근 무용원 교수님들을 한 분 씩 알게되면서 공연이 있을 때면 눈 도장이라도 찍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산학협동이나 학교 일을 같이 하거나 하다못해 마실을 가는 일이 자주 있게 되면서 무용에 대한 이해는 늘어만 갔다. 또한 무용과학실에서 퇴근후에 살을 좀 빼볼 요량으로 시작하게된 헬스 때에는 늦게 까지 남아 연습에 몰두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으며 그들이 만들어 내는 안무를 아무도 없는 곳에서 따라하면서 비록 자세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팔을 뻗고 다리를 올리면서 무용수들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더더욱 세계민족무용연구소가 설립되고 행정지원을 맡게 되면서 이제는 무용은 매우 가까운 일상의 숨과 같이 되어 버렸다.

      • 무용의 학문정립에 관한 고찰

        나경아 ( Na Kyung-ah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5 민족무용 Vol.7 No.-

        본 논문은 무용의 학문적 연구와 관련된 몇 가지 질문에서 시작된다. 무용에 관한 연구가 어려운 핵심적 이유는 무엇인가? 무용에 관한 연구는 어디에서 출발되어야 하는가? 진정한 무용학 연구는 어떠한 방향에서 진행되어야 하는가? 무용 매체의 복잡성과 일시성 때문에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따라서 무용학 연구를 위해 무용을 대상화시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학문적 관점에서는 첫째, 미학적 관점에서 학문의 기초 논점들을 세워야 한다. 둘째,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무용의 맥락들이 밝혀져야 한다. 셋째, 동작 자체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무용학의 정립을 위해서는 학제간 연구를 넘어서 복합학문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제시하였다. This thesis begins with several questions related to academic research in dance studies. What is theproblem in dance studies? What is the main focus on dance studies? What is the direction of dance studies? Dance has complex and temporal media. For this reason, we must consider about objective description and multidisciplinary approach on dance. ance studies, Esthetics, Socio-cultural context, Empirical, Multidisciplinary, Dance media, Dance notation

      • 무용수행 후 회복 형태가 피로요인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

        김리나 ( Kim Ree-na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6 민족무용 Vol.10 No.-

        본 연구는 효과적인 무용수행능력 향상을 위한 보다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적정회복형태 도출을 위해 무용수행 후의 회복 형태의 차이가 피로요인인 젖산, 암모니아, 무기인산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화학 기전을 통해 규명하고, 이에 대한 과학적인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본 연구의 대상자는 하루 평균 4시간의 발레 수업을 받는 발레전공 남자 대학생 7명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세 가지 회복 형태(정적 회복, 스트레칭 회복, 동적 회복)에 따라 무용수행 전 안정시 채혈, 무용수행 후 종료 시 채혈, 회복 15분, 회복 30분, 회복 60분 채혈을 실시하였다. 무기인산의 경우 회복 시간이 진행됨에 따라 스트레칭 회복, 정적 회복, 동적 회복 순으로 낮은 농도를 보이기는 하였으나, 각 회복 형태에 따른 젖산, 암모니아, 무기인산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없었다(p<.05). 무기인산의 경우를 제외한 젖산과 암모니아의 경우, 모든 회복 형태에서 안정시부터 종료시까지 증가하여 무용수행 종료후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으며, 회복 시간이 진행됨에 따라 감소하여 안정시로 돌아가려는 형태를 보였다. 동적인 회복에서 회복이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스트레칭 회복과 정적 회복에서 동적 회복보다 젖산과 무기인산의 제거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비록 회복 형태 별 피로요인의 통계적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무기인산의 경우를 볼 때 무용수행 후 회복 형태가 피로요인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발레수업 후 과연 어떤 회복 형태가 가장 빠른 회복을 가져올 지에 대해 규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유산소성과 무산소성의 혼합형태인 발레수업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앞으로의 무용수행 후 회복 형태가 피로요인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이러한 발레수업의 특성을 고려하여 스트레칭 회복의 좀 더 다양한 부위의 선별과 활동적인 회복 형태를 여러 가지 강도로 실행하는 연구가 계속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무용수행 후의 효율적인 피로요인제거를 제시해주는 연구들은 과도한 수업량을 소화해 내야하는 발레전공자들에게 빠른 회복을 위한 방안의 제시가 필수적인 만큼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무용 수행을 위한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This purpose of this experiment was to find out an effect when the different elements of lactate, ammonia and phosphorus were changed after ballet class. It is to establish the scientific sources required for assuming the level of accumulated fatigue according to the tape and intensity of dance exercise. The subjects of the study were 7 male dancer from studying ballet at the Korean National University of Art. They do ballet training generally 4 hours for everyday. According to recuperation of configuration (static recovery, stretching recovery, dynamic recovery), 5 blood simples were collected - before ballet training, final time of ballet training, after 15 min recovery, after 30 min recovery, after 60 min recovery. The order of phosphorus accumulation change was static recovery, stretching recovery, dynamic recovery in low concentration in process of recovery time. Each recovery forms were not distinguished statistically lactate, ammonia, phosphorus by a difference. With the of exception of phosphorus accumulation was found that recovery forms increased in the lactate and ammonia levels most rapidly during recovery time. And, there decreased for the reduction recovery time. In order dynamic recovery was expected to increase most rapidly in the lactate and ammonia levels, however, static recovery, stretching recovery were faster than dynamic recovery. Although, this study do not show that the during the resting form following fatigue factors - lactate, ammonia do not have differences between the various methods of recovery, however, it was found that the various methods of recovery were influenced by phosphorus. The result of this study showed the beneficial effect of recovery forms, in regards to ballet training with understanding aerobic and anaerobic having the greater overall effect. Further study is need to examine supplementation conditions and various exercise forms, intensity and duration of exercise. This will become useful and important information in the study of recovery after ballet training.

      • 인도전통무용 <바라타나티얌>에 나타난 신화의 상징적 표현체계

        임미희 ( Lim Mee-hee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5 민족무용 Vol.7 No.-

        인도의 모든 춤의 양식은 『나티아 샤스트라』에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으며 남인도의 타밀나두 지역에 전승되어 온 바라타나티얌은 이러한 원형질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무용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인도예술의 공통적인 현상인바 인도의 전통무용 역시 우선 신에게 바쳐 그를 즐겁게 하는 공물로서의 성격을 지니며, 대부분의 경우 양대 종교서사시나 설화 등에 묘사된 신화적 사건을 상징적 행위를 통해 현실 내에 재구축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제의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신화적 줄거리의 형상화에 있어서 가창, 무용, 마임, 음악, 분장, 의상 등의 제반 표현요소들이 양식적으로 추출, 조화됨으로써 총체적인 표현효과를 구현하고 있다. 본 논고는 무용의 교전서인 『나티아 샤스트라』에 기술되어 있는 인도무용의 구성원리를 알아보고, 바라타나티얌에 내재되어 있는 신화의 상징적 표현체계를 통하여 인도무용의 신화적 서술 구조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인도무용 기원에 관계된 신화는 종교적 바탕의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많은 제스쳐인 신화적 상징 표현체계를 만들어 내었다. 그중 바라타나티얌은 우아하고 관능적인 라시아 양식의 여성적 표현 무용으로 느리티야의 대표적 무용이라 할 수 있으며, 고도로 양식화된 신체 각 부위의 언어체계들이 풍부하게 적용될 뿐 아니라 그 치밀성과 세련미는 인도무용 중에서 가장 탁월하다 할 수 있다. 특히 신화의 상징적 표현체계로서 느리타의 아다브와 아삼유타 하스타, 느리티아의 삼유타 하스타, 나티아의 아비나야 등은 신화적 소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인도 전통무용에서 세밀한 극적 효과는 신화적 서술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인도 현지조사 및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민족무용워크샵 수업을 통해 바라타나티얌의 기본동작 및 인도무용의 역사를 배울 수는 있었으나, 단편적인 지식과 문헌만으로는 인도의 무용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동양무용의 한 원류를 찾는 데에는 미흡한 느낌이 없지 않다. 특히 많은 무용들이 크고 작은 종교 축제 및 민간행사와 연계되어 있고 체계적이고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인도무용의 특성을 고려할 때 장기간에 걸친 현장조사와 실천적 학습이 필요하다 할 것이며, 동양무용의 한 원형질을 이해하기 위한 차후의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Natya Shastra』 is the origin of every Indian dance style, and the oldest dance < Bharatanatyam > which has been handed down in Tamil Nadu, South India, is the prototype of it. Like any other Indian Arts, Indian traditional dances are a kind of contribution to their gods to please them. Most of the dances essentially imply ritual characters in the point that they reconstruct the real world with mythical incidents described in Indian both major religious epics or tales by some symbolic behaviors. In addition, extracting and harmonizing every factors to express such as singing, dance, mime, music, make-up, costumes in the process of embodying mythical stories make the overall expressive effects come true. This treatise looks into the organizational principles described in the classic dance 『Natya Shastra』 and examines the mythological descriptive structure of Indian dances with the symbolic expressions underlined in < Bharatanatyam >. As a result, it can be found that the myth-related origins of Indian dances have made many gestures, mythological symbolic representation systems so as to express them within the religious boundaries. Among them, < Bharatanatyam > is very elegant, sensual, femine expressive dance in Lasya mode. Highly formatted communication systems using each body parts are applied in < Bharatanatyam >, and the elaborateness and refinement of this dance are the best among many Indian dances. Hasta (hand gestures) and facial expressions with centering Adavu (feet gestures) make dramatic effects in many Indian traditional dances. In spite of learning many things about the basic movements of < Bharatanatyam > and the history of many Indian dances through the ethnic dance workshops by KNUA, it is insufficient to introduce the Indian dance systematically and to appreciate the Indian traditional dances (underlying oriental dances) with fragmental knowledge and references by some limited workshops. Because many Indian traditional dances are connected with big or small religious festivals and private events, and because Indian dances require organized, skilled techniques, long-term field studies and many following studies are needed to understand an Indian traditional dance as a prototype of many oriental dances.

      • 러시아 고려인들의 민족예술단 : 아리랑예술단

        김발레리아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2 민족무용 Vol.- No.2

        우리는 ‘아리랑’이라는 명칭을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아리랑’은 한민족을 대표하는 노래로서 아마 세계 어디에 사는 한민족이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남북은 다 같은 조국으로서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이념이 담긴 명칭도 아니고 순수 한민족의 전통성과 민족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연해주 고려인들은 자기의 민족예술단을 가지고 있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긴다. 해마다 4월이면 연해주 각 민족축제가 진행되는데 이 축제에서 각 민족은 자기의 전통과 문화를 소개한다. 다른 민족들은 자기의 예술단이 없으니 러시아예술단에 자기의 춤을 추어달라고 부탁을 하곤 한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자기의 민족예술단을 가지고 있고 민족춤을 추니 다른 민족들은 아리랑예술단을 부러워하고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 한일 궁중무용의 전승과정 비교 연구

        허영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6 민족무용 Vol.9 No.-

        본고(本考)의 목적은 라 메리(La Meri)의 민속무용(民俗舞踊)의 분류법(分類法)인 ‘전통적(傳統的)인 것’, ‘토착적(土着的)인 것’, ‘창조적(創造的)인 신고전(新古典) 또는 부흥(復興)’, ‘창조적(創造的) 분리’, ‘응용(應用)된 기법(技法)’ 등의 다섯 가지 관점을 토대로 한일간의 궁중무용의 전승 양상과 흐름을 파악해 보는데 있다. 라 메리의 분류법을 양국의 궁중 무용 전승 양상에 적용하여 보면 일본궁중 무용은 ‘전통적(傳統的)인 것’의 범주에 포함되는 반면 한국의 궁중 무용은 ‘창조적(創造的)인 신고전(新古典) 또는 부흥(復興)’, 또는 ‘창조적(創造的) 분리’, ‘응용(應用)된 기법(技法)’ 등의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가가쿠(雅樂)는 아시아의 음악과 무용이 동양의 종합 예술의 원형(原形)으로서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향후 무용사(舞踊史) 연구에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하겠으며 이러한 추가적인 연구가 한국의 전통에 대한 창조적 정신과 융합될 때 아시아 춤 발전에 큰 지평을 열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 本考の目的はラーメリーの民族舞踊の分類法である伝統的なもの、到着的なもの、創造的である新復興、創造的な分離、応用された技法などの五つの観点をもとに韓日の宮中舞踊の伝承と流れを把握することにある。 ラーメリーの理論を両国の宮中舞踊に適用してみると、日本の宮中舞踊は伝統的なものに属する反面、韓国の宮中舞踊は創造的な新古典または復興、そして、創造的な分離、応用された技法などの傾向が強い。 更に、日本の雅楽にはアジアの総合的な音楽と舞踊がそのまま保存され、舞楽などに関する追加的な研究は高い価値を持っている。よって、以上のような研究が韓国の伝統に対する創造的な思想と融合するとき、アジアの舞踊はさらなる発展を遂げることが出来ると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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