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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朱子의 本體觀에 대한 硏究

        박종하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2010 국내석사

        RANK : 249647

        东洋的有机体的世界观可以概括为万物一体. 比起西欧的自然观, 只被看成人类之外的存在所需的人类道具的价值所在而言, 东洋的价值尺度和仰望宇宙的视觉是儒学思想得以实现的根本. 儒学的万物一体的存在观念, 成就了人类所必须具备的道德的必然性, 成为了纠正人类和万物存在的规则这类学问的基础. 世间万物的存在, 在必然的因果规律中毫无例外. 所以这不仅是因果的物理事实, 也是寻找因果规律的儒学的方向, 即儒学的道. 在儒学的万物一体存在原理中, 本体是宇宙的原理, 上天的意思称为天理. 在儒学中, 本体的存在规则并不是以时间的先后为前提的因果论, 而是以时间的循环性为前提的圆运动, 是两个方向的对等因果关系, 关于万物存在规则的本体思维, 是有关道德反省的儒学论争的出发点. 先秦儒学的本体思维体系, 是对直观的本质的把握和表现宣言命题化的构造. 相比之下, 宋朝的理学的本体思维体系是运用理和气的概念, 而成立的具有体系的伦理. 本论文的核心是朱子哲学本体的有关论述. 在文章中, 以太极论和理气论为基础, 以二元论的伦理为线索, 考察万物一体的存在规则. 在朱子的本体观中, 太极是万物一体的存在原理. 太极中涉及的万物的作用关系, 不仅是单纯的物理概念中的条件关系, 而且是理气关系中颇有价值的主宰原理. 太极的原理不是单纯的自然规则中的物理因果, 而是以人类存在的问题为中心, 引出有价值的内容. 由此, 太极的原理是哀多益寡, 消息盈虚, 称物平施的自然规则, 依照无情意, 无计度, 无造作的绝对原理的神妙的价值主宰. 朱子哲学中, 太极具有依据理气玄妙的存在原理的主宰原理的实质性. 朱子的本体既是形而上原理, 又是包括了形而下的实体的无形或实在理. 因此停留在单纯的观念中, 追求道德的当为性是不妥的. 以实际性为根据, 主宰宇宙万物一体的太极所具有的神妙存在原理, 是现代物理学的法兰克常数原理中, 所包含的未知数中, 可以类推出的原理. 朱子哲学中, 太极原理主宰人类和万物的一体, 起到生生不已的神妙作用, 成为了要求人类道德当为性的根据. 所以对太极的理解, 是迈向人类道德实践的研究基础. 这是始于万物一体的必然性自然规则, 从人类的道德生活的价值原理出发, 与格物致知的论议相关联. 所以《大学》中, “格物致知”的对象是对本体的天理的存在性的理解, 这是万物一体的二元性因果规则和其作用下的神妙的存在主宰原理的相关真理. 人性本善, 是认为追求善意义非凡. 但是受到气质制约的现实中的人们, 追求不符本性的私利或小利益. 所以人类致知天理的存在的主宰性, 是为克服气质限制的出发点. 朱子哲学是对目标是以现实中的人类称为君子的本体的理解, 以及以此为基础的人间本性的回复. 人类虽受到气质的制约, 但真知天理的太极, 相信用善的追求来实现本性的利是能够得以实践的. 因此人类为了克服本然的性, “积善之家必有余庆, 积不善之家必有余殃”的天理的运行秩序让所有人向道德当为性靠近, 这需要具备契机和理论. 不仅是让人放心的君子, 大众也可以揭示成为成为君子的修养论的可能性, 儒学价值实现真正意义的大同世界, 并不是过去和未来的一幅画, 而是向人们展示了当今. 東洋의 有機體的 世界觀은 한마디로 萬物一體的이라 할 수 있다. 西歐의 自然觀이 人間 外의 存在를 인간을 위한 道具的 價値로만 보는 데 비하여, 동양적 價値尺度와 宇宙를 바라보는 이러한 視覺은 儒學的 理想의 實現을 可能케 하는 바탕이다.유학의 만물일체적 存在觀念은 인간에게 요구되는 道德的 當爲의 必然性과 인간과 萬物의 存在法則을 糾明하려는 學問的 定礎가 된다. 존재하는 만물은 필연적으로 인과법칙에서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인과의 物理的 事實 뿐 아니라 價値的 因果法則을 찾아 가는 것은 유학의 지향점이며 儒學의 道이다. 유학의 만물일체적 존재원리에서 本體는 우주의 원리이고 하늘의 의미인 天理이다. 유학에서 본체의 존재법칙은 時間的 先後를 전제로 하는 直線的 因果論이 아니라 時間의 循環性을 전제로 하는 圓運動的이며 雙方向의 對待的 因果關係이다. 이러한 만물의 존재법칙인 本體에 대한 思惟는 인간의 도덕적 성찰에 대한 유학적 논의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先秦유학의 本體的 사유체계는 直觀에 의한 本質 파악과 宣言的 命題化로 표현되는 구조이다. 이에 비해 宋의 理學의 本體的 사유체계는 理와 氣의 槪念을 도입하여 體系的으로 論理를 정립하고 있다. 본 논문의 핵심적 탐구인 朱子哲學의 本體에 關한 논의에서는 太極論과 理氣論을 바탕으로 한 二元論的 논리의 틀로 萬物一體的 存在法則을 고찰하고 있다. 주자의 本體觀에서 太極은 萬物一體的 存在原理로 作用한다. 태극에 의한 만물의 作用關係는 단순한 物理的 槪念의 條件關係的 事實일 뿐 아니라 理氣關係에 의해 價値的으로 主宰되는 원리이다. 즉 태극의 원리는 단순 自然法則의 物理的 因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문제에 중심을 둔 價値의 內容을 導出하는 것이 그 본질이다. 이러한 태극의 원리는 裒多益寡(부다익과), 消息盈虛(소식영허), 稱物平施(칭물평시)의 自然法則的이면서, 無情意, 無計度, 無造作인 絶對理에 의한 神妙한 價値主宰的인 것이다. 주자철학에서 太極은 理氣의 玄妙한 存在原理에 의한 主宰原理는 實在性을 지닌 것이다. 이처럼 주자의 본체는 形而上의 原理이면서 形而下의 實體를 포함하는 無形이나 實在理이므로 단순히 관념론적 세계에 머무르면서 도덕적 당위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실재성에 근거하여 우주만물을 일체적으로 주재하고 있는 태극의 신묘한 존재원리는 현대 物理學의 프랑크상수 원리 속에 내포된 미지수에서도 그 원리성을 유추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자철학에서 태극원리는 인간과 만물의 일체적 작용을 주재하는 生生不已의 神妙한 作用으로서 인간의 道德的 當爲性을 요구하는 根據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체인 태극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도덕적 실천을 향한 학문적 토대이다. 이는 본체에 의한 萬物一體的 必然의 自然法則으로부터 인간의 道德的 삶의 價値原理를 도출하여 이를 본받고자 하는 格物致知의 논의와 연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大學』에서 ‘格物致知’의 對象은 本體인 天理의 存在性에 대한 이해이며, 그것은 萬物一體의 二元的 因果法則과 그 作用의 神妙한 實在的 主宰 原理에 대한 眞知인 것이다. 人間은 本性이 善하므로 善을 追求하는 것을 이롭게 여긴다. 그러나 氣質의 제약을 받는 현실의 인간은 本性에 바탕하지 않는 私利나 小利를 追求하는 慾心에 치우치게 된다. 그러므로 人間이 天理의 實在的 主宰性을 致知하는 것은 氣質的 限界의 극복을 위한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주자철학이 目標하는 現實的 人間의 군자화는 본체에 대한 이해와 이에 바탕한 인간 本性의 回復에 달려 있다. 인간이 氣質의 제약을 받지만 天理인 太極을 眞知하면 善의 추구를 利로운 것으로 여기는 本性의 利를 실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本然의 性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積善之家必有餘慶, 積不善之家必有餘殃’의 天理의 運行秩序가 모두에게 도덕적 당위성으로 다가올 수 있는 계기와 理論的 首肯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安人하는 군자만이 아니라 利仁하는 대중도 군자화 될 수 있다는 修養論的 可能性을 제시하는 것은 유학적 가치가 실현된 진정한 의미의 대동세계는 미래나 과거의 그림이 아니라 오늘의 시대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동학사상의 유학적 해석에 관한 연구

        박은정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49647

        The Eastern Learning is evaluated to have synthesized or integrated not only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but also Christianity with one another. It seeks relevance to Confucianism in that it asserts the Great Absolute, natural laws and God's will, attaches importance to morality, sincerity and respect and argues a ghost. It discovers relevance to the Western Learning in that it believes in and serves the Lord of Heaven or God or Hanwoolnim. It also maintains relevance to shamanism in that it argues a spiritual symbol received from Hanwoolnim, an incantation or experience of having God descend. What is more important than the synthesis or integration, however, is the question of what fundamental spirit the Eastern Learning enabling such integration has. The political structure of the Josun dynasty consisted of Sung Confucian governing structure from the beginning of its foundation. Its Confucian scholars developed the Primary Movement for practicing Confucian ethics in the 15th century. By the Justice Movement in the 17th century they had monopolized all powers of the ruling class called yangban. Sung Confucianism could have a great effect on the dynasty like it because politics was not separated from religion. Since such views of religion and politics in East Asia lasted until the 19th century, the Confucian scholars of the Pro-Confucian Anti-Foreign school did not change in traditional structure of consciousness. Thus, the dynasty at that time reached the peak of corruption by in-laws government for more than 60 years. Also, it continued to rule cruelly and plunder its people. By imperialist foreign invasion, it could no longer expect a Sung Confucian view of ethics to play the role as a spiritual support. Instead of the Sung Confucianism at that time which kept the thought that religion coincided with politics, a movement for forming a new national order happened in general popular society. It is just the Eastern Learning advocated by Jewoo Choi. Later, it developed a religious movement combined with a political movement in various forms meeting the demands of the times. It had progressively made its doctrine social thought timely. Believing that Hanwoolnim is always in mind - that one should also respect man as one respects Hanwoolnim - that man is, that is, heaven, it had gradually changed into a religious philosophy of uniting religion and politics with philosophy. It propagated the religion with the idea that Hanwoolnim is always in mind, developed a peasant movement of the Eastern Learning with the idea that one should also respect man as one respects Hanwoolnim, and developed the 1919 Independence Movement on a pan-national scale with the idea that man is, that is, heaven. As the ideas were systematized in the form of ideological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caused by the division of the religious body, the Eastern Learning Movement also changed in character and aspect. It is the fundamental goal intrinsic to it that it should permanently continue as the demands of the times change. But recently the society has ambiguously recognized the Eastern Learning and the Religion of the Heavenly Way. It can not clearly tell whether they are religions or social ideas, nor clearly know even their existences. Further, even academic circles has very negatively evaluated the ideological role of the religion opposed to its division since the 1930s. It is, however, necessary to think over what meaning the Eastern Learning gives to us simply beyond affirmation/negation. In modern times of the 21st century, each of the countries on the earth is advocating globalization. Every country not only attaches importance to its own culture in the direction but also introduces the culture positively to foreign countries. I think how it will be that also Korea of today should advocate the idea that man is, that is, heaven, one of the ideas of the Eastern Learning, with Korean modern original thought. In such a sense, centering on its initial ideas this thesis has examined Suwoon's, Haewol's and Euiam's ideas that Hanwoolnim is always in mind - that one should also respect man as one respects Hanwoolnim - that man is, that is, heaven focusing on their Confucian interpretations and thought what message the Eastern Learning and the Religion of the Heavenly Way indeed gave to us. 東學思想은 儒ㆍ佛ㆍ道 3교의 종합이며 기독교 사상까지도 흡수한 통합적 사상이라고 평가된다. 太極과 天理와 天命을 주장하고 道德과 誠과 敬을 중시하며 鬼神을 논한다는 점에서 儒學과의 연관성을 찾는다. 天主나 上帝나 한울님을 믿고 모신다는 점에서 西學과의 연관성을 발견한다.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靈符나 주문, 降神의 체험을 논한다는 점에서 巫敎와의 연관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綜合이나 統合의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동학의 根本精神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정치구조는 건국 초기부터 性理學的 통치 구조로 되어있었다. 조선조의 사림들은 15세기에 儒學倫理를 생활화 하는 소학운동을 펼쳤다. 17세기에 의리운동으로 양반 지배 계층의 일체 권한을 독점해 왔다. 이처럼 性理學이 조선조에 막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政治와 宗敎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아시아의 이러한 宗敎觀, 政治觀은 19세기까지도 지속되고 있었으므로 衛正斥邪파 유림들의 전통적 의식구조는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 무렵 조선왕조는 60여년간의 勢道政治로 인하여 부패가 절정에 이르렀다. 또한, 민중들에 대한 虐政과 收奪이 그치지 않았다. 帝國主義의 외세 침투로 조선조는 性理學的 倫理觀에 精神的 支柱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敎政一致의 사상이 여전했던 당시 性理學을 대체하여 새로운 국가 질서를 이루고자 하는 운동이 일반 민중사회에서 일어났다. 최제우의 東學 창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후 東學은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 부응해서 여러 가지 형태로 政治運動을 겸한 宗敎運動을 전개하였다. 東學은 시의 적절하게 敎理를 점진적으로 社會思想화 하였다. 侍天主 - 事人如天 - 人乃天으로 점차 宗敎와 政治 그리고 哲學을 아우르는 宗敎哲學으로 탈바꿈을 하였다. 侍天主思想으로 포교 활동을, 事人如天思想으로 동학농민운동을, 人乃天思想으로 범국민적 3.1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교단이 분열되면서 야기된 이념적 민족독립운동의 형태로 사상의 체계화에 따라서 동학운동의 성격과 양상도 달라졌다. 이와 같은 운동은 시대적 요구가 변하는 대로 영구히 계속한다는 것이 東學 본래의 근본 목표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東學․天道敎에 대한 社會認識은 애매모호한 상태다. 종교인지, 사회사상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東學․天道敎의 존재마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더구나 학계에서 조차 1930년대 이후 天道敎의 분열과 상반된 이념적 역할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긍정/부정의 차원을 떠나 東學思想이 주는 意味가 무엇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1세기 오늘은 지구상의 여러 나라가 각기 世界化를 제창하고 있다. 저마다 그 방향으로 自國의 文化를 중시하는 한편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대외에 소개하기도 한다. 이즈음에 이르러 대한민국도 韓國 近代의 獨創的 思想으로 東學의 人乃天思想을 標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고는 초기 東學思想을 중심으로 水雲, 海月, 義菴의, 侍天主-事人如天-人乃天思想을 儒學的 解釋을 중심으로 검토하여 과연 東學․天道敎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 茶山 丁若鏞『大學公議』의 經學的 硏究

        왕효하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2010 국내석사

        RANK : 249647

        本文通過 對丁茶山的『大學公議』 硏究來解讀茶山丁若鏞的經學思想. 朝鮮朝的儒學思想是韓國儒學思想史上的重要時期, 特別是受當時社會政治經濟的影響而出現的朝鮮後期實學思想.丁茶山作为星湖派(经世致用派)的一员,综合经世致用派和利用后生派的特点成为實學集大成者.他的實學思想的代表著術有 『六經四書』和『一表二書』. 本论文从丁茶山对「大学」的注释,即『大学公议』经学上的特征进行分析来了解丁茶山的经学思想。 朝鲜朝在经历了壬辰倭乱和丙子胡乱后社会矛盾急剧尖锐,政治上百姓对统治者失去信任,国家共同体意识陷于崩溃,经济上农民的生活日剧困苦,爆发农民战争的火焰一触即发,西学的传入与传统的性理学相互冲突不断。面对这样的社会现状,统治阶层却仍只埋头于理论研究和自身修养。社会矛盾急剧恶化。一部分儒学者试图通过制度改革来解决当时的社会矛盾,他们主张从理念的实际出发,面对现实积极的寻求救国之策,这就是形成了朝鲜朝的实学思想。丁茶山作为实学的集大成者,他反对当时的学者只注重于理的研究而回避现实的民生问题。他主张寻求真正的孔孟精神,对经书的注解忠实先秦时代经典的原义。他通过对「大学」的注释提出了自己的见解。他反对朱子的大学观和虚龄不昧的明德说以及豁然贯通的格物致知说, 主张太学说,提出作为孝弟慈的明德说和实践的格致六条说。 「大学」原为『礼记』中的第42篇.「大学」篇由于和其他篇有很大的不同点,所以自西汉刘向开始就一直受到学者的关注.特别是宋代朱熹根据大学写成了大学章句,分为经一章传十章提出传统纲性理学条目.茶山根据古本大学写成了『大学公议』,提出了太学说,明德孝弟慈说和格致六目说.笔者通过茶山对大学,明德,格物致知的解释进行分析,同时和朱子的注释作以比较,进一步寻查到在实践伦理方面所体现出的茶山思想的经学特征和实践伦理性的性格.即,茶山主张的太学之道是通过太学所教授的 ‘老老·长长·恤孤’的礼揭示了它是先王教化百姓的道。明明德通过 ‘仁’的德目 孝弟慈来实现的。格致六条说通过实践的要目诚意来实现成己成物的实践伦理的性格。 笔者试图通过大学公议来探求和明析茶山的经学思想,由于实力有限,不足甚多,贻笑大方,恳请不吝赐教. 茶山 丁若鏞(1762-1836)은 조선 후기의 實學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茶山은 經學뿐만 아니라 政治·經濟·文學 등의 분야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學問분야에 걸쳐서 약 500卷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러므로 茶山學問의 진면목을 밝히려면 茶山의 모든 분야를 연구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哲學사상에는 모든 사상의 본질과 핵심이 집약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茶山 사상을 연구하려면 먼저 그의 철학사상을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茶山의 철학사상은 그 뿌리를 儒學에 두고 있으며, 儒學의 哲學사상은 본래부터 經學 (經書에 관한 해석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儒學의 철학적 본질과 유학자들의 입장 차이는 바로 經學에 관한 견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茶山의 經學, 특히 儒學 經典의 기본이 되는 「大學」을 통하여 朱子의 『大學章句』와 비교 고찰함으로써 茶山의 經學思想에 대해 연구해 보기로 한다. 茶山 丁若鏞의 생존 시기(1762-1836)는 모순과 혼란이 아주 심하던 시기였다. 政治社會的으로 보면 壬辰倭亂과 丙子胡亂으로 인해서 왕과 집권층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가 무너지고 국가공동체의식도 붕괴되었다. 경제적으로 보면 農民들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져서 전국적인 민란으로 나타날 조짐이 커지고 있었다. 사상적으로 보면 西學이 전래되어서 기존의 性理學的 세계관과 충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상황에 대해 집권지배층의 지배이념이던 性理學은 조선사회 전반적 모순을 적극적으로 응대하지 않고 실질보다 지나치게 이론탐닉과 수양론으로 치우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儒學者들은 당시의 현실적 모순을 타개하고 제도의 정비를 통한 이념의 실현화를 주장하였고, 이에 실학사상은 형성되었다. 茶山은 실학 집대성 자로써, 당시 선비들이 마음안의 이치탐구에만 몰두하고, 실천과 민생의 문제는 소홀히 하는 점에 큰 불만을 가졌다. 茶山은 孔孟의 정신을 찾기 위해 “洙泗學으로 돌아가자.”라는 구호아래 先秦시대의 경전 그 자체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大學」에 대한 해석서 『大學公議』를 통해 朱子의 大學觀과 虛靈不昧한 明德說과 豁然貫通하는 格物致知說을 반대하고, 太學說과 孝弟慈로서의 明德說과 실천적인 格致六條說을 주장하였다. 茶山의 『大學公議』에 관한 논문들을 보면 대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茶山은 明德說과 格致六條說등을 주장하면서 朱子의 『大學章句』를 거부하여 心性論的인 性則理의 朱子學을 탈피하고 현실과 실천을 중시하는 倫理觀을 제시함으로써 經學에서 실질적인 治人의 經世學까지 연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茶山은 明德과 格物致知에 대한 해석에 대해 朱子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는데, 이 점에 대하여 필자는 茶山이 『大學公議』를 통해 진심으로 피력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연구해 보고자 하였다. 茶山에 있어서「大學」은 太學이란 國學으로서 天子의 冑子를 가르치는 특수교육기관이라고 해석하였고, 明明德과 親民은 孝·弟·慈의 人倫의 실천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므로 茶山에 있어서 太學之道로서의 明明德과 親民은 治者의 孝·弟·慈의 실천이 중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茶山의 太學觀은 당시 약화된 왕권을 강화하고 현실에 응대하는 의지도 담겨 있다. 결국 이러한 茶山의 太學觀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太學之道는 太學에서 ‘老老 長長 恤孤’의 禮를 통해서 백성을 敎化하는 道이고, 明明德은 仁으로 孝弟慈로서의 德을 밝히는 것이며, 格致六條說은 人倫을 실천하는 要目인 誠意를 통해 成己成物이 이루어지는 實踐 論理的 性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朱子와 茶山의 四書 註釋에 나타난 ‘命’ 槪念의 比較 硏究

        송만선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2011 국내석사

        RANK : 249647

        &#23545;儒家哲&#23398;&#35768;多重要命&#39064; ― 天, 命, 性, 道, 太極, &#38452;&#38451;, 理, &#27668;, 心, 性, 情, 誠, 敬 等 ― 的&#30740;究非常活&#36291;。不能&#35828;&#23545;‘命’&#27010;念的&#30740;究完全&#27809;有,但有&#20851;天和人之&#38388;的&#20851;系、天命、天道等的&#30740;究非常&#24222;大多&#26679;,&#19982;此相反,&#23545;儒家&#32463;典里出&#29616;‘命’字&#27010;念的直接&#30740;究不太活&#36291;。本&#35770;文&#20889;的目的&#21017;以朱子&#19982;茶山的四&#20070;注解&#20026;中心,比&#36739;&#30740;究儒家哲&#23398;最核心的命&#39064;之中‘命’&#27010;念,&#20174;先奏儒家&#32463;&#36807;宋代朱子以至朝&#40092;后期茶山丁若&#38235;如何&#21464;&#36801;、如何解&#37322;。 &#20026;了挑出、索引‘命’字的正&#30830;性,&#20174;&#38889;&#22269;古典&#32763;&#35793;院的《&#38889;&#22269;古典&#32508;合&#25968;据&#24211;》下&#36733;了原文本。此&#35770;文首先在第二章第一&#33410;&#26816;&#35752;‘命’的字&#20041;,&#21017;‘命’字在一般情&#20917;下的意味和字面上的意味;第二節以先秦儒&#23398;、&#27721;唐儒&#23398;以及北宋儒&#23398;&#20026;&#21010;分&#26102;代,大略的看朱子以前&#26102;代‘命’的&#27010;念;第三章&#20026;了分析在四&#20070;集注上&#20307;&#29616;‘命’的&#27010;念,在《大&#23398;章句》、《&#35770;&#35821;集注》、《孟子集注》&#19982;《中庸章句》中的‘命’字分每&#33410;&#21035;全部索引,&#20174;中&#23545;具有哲&#23398;含&#20041;的句子分析其中‘命’&#27010;念;第四章&#20026;分析在茶山四&#20070;注解&#20070;里&#20307;&#29616;的‘命’&#27010;念,索引《大&#23398;公&#35758;》、《大&#23398;&#35762;&#20041;》、《&#35770;&#35821;古今注》、《孟子要&#20041;》、《中庸自箴》&#19982;《中庸&#35762;&#20041;&#34917;》中的‘命’字索引且分析其&#27010;念;第五章&#20026;朱子&#19982;茶山的‘命’&#27010;念比&#36739;分析,&#24212;掌握能成&#20026;比&#36739;分析&#23545;象的句子之&#38388;的&#36830;&#36143;性和容易性,&#20026;此制作&#23545;照表;最后第六章做出&#32467;&#35770;;附加〈附表-1〉有&#20851;茶山&#32463;&#23398;著述目&#24405;,〈附表-2〉&#20026;四&#20070;&#19982;朱子的四&#20070;集注以及茶山的四&#20070;注解&#20070;中出&#29616;所有‘命’字的索引表。 在《四&#20070;》里含有哲&#23398;性的‘命’&#27010;念大部分立足于天人合一思想,&#23558;&#25311;人化的天&#24403;成命令者、主宰者,可&#32763;&#35793;成“天命”或“天意”。可&#30830;&#35748;朱子和茶山&#23545;此解&#37322;也是大&#20307;上忠于&#32463;文的本旨,&#25191;意&#38416;明‘命’字本身的意&#20041;也解&#37322;&#20026;天命或命令,此‘命令’也可&#35793;&#20026;“老天的命令”或是“老天的意思”,&#32456;究是意味着天命。 &#23558;此&#35770;文分析的&#32467;果&#24635;&#32467;起&#26469;,&#32467;&#35770;是在四&#20070;&#32463;文中含有哲&#23398;意&#20041;的‘命’字&#21017;意味着天命。可&#35265;&#36825;&#31181;‘命’&#27010;念在朱子的四&#20070;集注&#19982;茶山丁若&#38235;的四&#20070;注&#35793;&#20070;里也具有同&#26679;的意味。而且在&#36825;&#31181;情&#20917;下所&#35859;天命 不但在先秦儒家而且在以朱子&#20026;代表的宋代理&#23398;也意味着“天命,&#21363;天道流行而&#36171;予万物也,乃事物所以&#24403;然只故也”。可&#35265;在五百年前朝&#40092;&#26102;代无&#25968;的&#23398;者&#24403;中,&#29420;一无二的著述六&#32463;四&#20070;注解&#20070;的朝&#40092;后期巨儒茶山丁若&#38235;也是如此。 儒家哲學의 중요한 여러 명제 ― 天, 命, 性, 道, 太極, &#38452;&#38451;, 理, &#27668;, 心, 性, 情, 誠, 敬 等等 ― 들에 대한 연구는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命’ 槪念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天人關係나 天命 또는 天道 등과 관련한 연구는 매우 방대하고 다양한 반면에, 유가경전에 나오는 ‘命’字에 대한 직접적인 槪念 연구는 그리 활발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논문은 儒家哲學의 가장 핵심적인 명제의 하나인 ‘命’ 槪念이 先秦儒家로부터 宋代 朱子를 거쳐서 朝鮮後期의 茶山 丁若鏞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천하였고 또 어떻게 해석되었는가를 朱子와 茶山의 四書 註釋書를 중심으로 비교 검토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命’字의 적출과 색인은 그 정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韓國古典飜譯院에서 제공하는 '한국고전종합DB'의 원문을 내려 받아서 활용하였다. 이 논문은 먼저 제2장 제1절에서 ‘命’의 字義에 대하여 ‘命’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意味와 辭典的 字義에 대하여 검토하였고, 제2절에서는 朱子 이전 시대의 ‘命’ 槪念을 先秦儒學과 漢唐儒學 및 北宋儒學으로 시대를 구분하여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제3장에서는 朱子의 四書集註에 나타난 ‘命’ 槪念을 분석하기 위하여 각 절별로 &#985172;大學章句&#985173;, &#985172;論語集註&#985173;, &#985172;孟子集註&#985173; 및 &#985172;中庸章句&#985173;에 나오는 ‘命’字를 모두 색인하여 이들 중에서 철학적 함의를 지닌 구절에 대하여 ‘命’의 槪念을 분석하였다. 제4장에서는 茶山의 四書 註釋書에 나타난 ‘命’ 槪念을 분석하기 위하여 &#985172;大學公議&#985173;와 &#985172;大學講義&#985173;, &#985172;論語古今註&#985173;, &#985172;孟子要義&#985173;, &#985172;中庸自箴&#985173;과 &#985172;中庸講義補&#985173;에 나오는 ‘命’字를 색인하고 이에 대한 槪念을 분석하였다. 제5장에서 朱子와 茶山의 ‘命’ 槪念을 比較 分析하기 위해서는 상호 비교분석의 대상이 될 만한 구절에 대하여 상호 연관성이나 비교분석의 용이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대비표를 작성하였다. 마지막으로 제6장에 결론을 지었으며, 附錄으로 <別表-1>에는 茶山의 經學 관련 著述 目錄을 붙였고, <別表-2>에는 四書와 朱子의 四書集註 및 茶山의 四書 註釋書에 나오는 ‘命’字를 총망라한 ‘命’字 索引表를 작성하였다. 四書에서 철학적 함의를 지닌 것으로 검색된 ‘命’의 개념은 대부분 天人合一的인 사고에 입각하여 의인화된 하늘(天)을 命令者&#8231;主宰者로 파악함으로써 ‘하늘의 명령’ 또는 ‘하늘의 뜻’이라고 번역이 가능한 天命을 의미하는 경우로 파악되었다. 이에 대하여 朱子나 茶山의 해석도 대체적으로는 經文의 本旨에 충실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굳이 ‘命’의 字義를 밝혀야 하는 경우에도 天命이나 命令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나, 여기서 命令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하늘의 명령’이나 ‘하늘의 뜻’이라고 번역이 가능한 경우이므로 결국 天命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이 논문에서 분석한 결과를 종합해 보면 四書의 經文에서 철학적 함의를 지닌 ‘命’자는 곧 天命을 의미한다. 이러한 ‘命’의 개념은 朱子의 四書集註와 茶山 丁若鏞의 四書 註釋書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경우의 天命이란 先秦儒家는 물론이거니와 朱子로 대표되는 宋代 性理學에 있어서도 ‘天道가 流行하여 인간과 事物에 부여한 것으로서 그렇게 함이 없음에도 저절로 그렇게 되고 이르게 함이 없는데도 저절로 이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이는 朝鮮의 수많은 유학자들 중에서도 六經四書에 대한 註釋書를 저술한 대표적인 학자인 朝鮮後期의 巨儒 茶山 丁若鏞의 경우에도 다른 바가 없다는 사실 또한 확인되었다.

      • 중국 고대의 유학적 인간관 연구

        김규순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49647

        이 논문은 유학적 인간관의 연원을 파악하면서, 유학을 집대성한 공자의 인간론을 살펴보았다. 중국 고대 사상에 근원한 유학사상은 현재까지도 동아시아 문화사상의 주류이다. 이러한 사상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우주 자연과 어떠한 정신적인 교류를 하고 왔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사상의 실체를 파악하여 무엇이 인간의 존재가치의 기준이 되고 있는가를 알아보고자한다. 하&#65381;은&#65381;주 삼대를 거치면서 느슨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인간 존재가치에 대한 관심은 인간이 문화적인 존재라는 커다란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라의 자연주의를 기반으로 한 인본주의를 거쳐, 은나라는 초월주의로 강성한 대국을 이루었고, 주나라는 도덕적인 인문주의를 내세우면서 종법제와 봉건주의를 시스템으로 한 국가 형성은 중국의 역사의 주류를 이루는 모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의 과정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러한 시기를 춘추시대라고 한다. 춘추시대에 天命은 한 번 주어지면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다. 역사적으로 삼대의 혼란과 붕괴를 경험하면서 天命靡常이라는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하늘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길흉이 따른다고 인식하게 된다.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실로 새로운 관점이다. 인간이 주체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발로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학적으로 집대성한 분이 바로 공자이다. 溫故而知新의 정신을 바탕으로 춘추시대의 禮 思想을 바탕으로 仁 사상을 새롭게 주창하였다. 공자는 天命의 피동체로 생활했던 인간을 天이 內在化된 인간으로 규정하여天과 대등한 관계로 만든 것이다. 이로써 통치자가 백성들을 피지배자로 인식하기보다는 天의 대변자이자 감시자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통치자는 백성을 위한 정치에 힘쓰게 된다. 그것이 어버이로써의 책임이다. 정치인은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양을 통하여 자기를 알아야 한다. 修己安人은 유학이 던져준 화두이다. 자기를 닦아서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한다는 교화론이다. &#985172;대학&#985173;의 格物致知 正心誠意 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八條目은 유학에서 자신을 수양하는 커다란 목표를 말해주고 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私慾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간다는 克己復禮는 天에서 부여 받은 본연적인 자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수행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인간과 함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이에 유학적 인간관은 인간이 자신과 함께 타인을 인식하고자는 본질적인 관심이다. 유학적 인간관은 인간의 사회적인 활동으로써의 인간관계를 올바르게 형성하도록 이끌어 준다. 유학적 인간관은 인간 자신이 수양을 통하여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견지하고자 하는데 있다. 외재적인 존재에 대한 의타적인 사고방식을 탈피하여 우주 자연의 일원으로써 스스로 깨달아 타인에 의한 삶이 아닌 자기가 주체가 된 가장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면 혼자서 삼가는 생활태도(愼獨)를 견지할 수 있게 된다. 이 때 天地人의 三才에 있어 진정한 인간의 존재가치가 성립되는 것이다. Originated from the thoughts of ancient China, Confucianism has been a backbone of culture and thoughts in East Asia. This study is an attempt to understand how our ancestors in East Asia got spiritual interchanges with the nature or the universe and to find what were origins of our thoughts and what were fundamental value in human existence. Through the periods of Xia(夏), Yin(殷), and Zhou(周) in ancient China, the concerns on the value of human existence had been loosely escalating and suggesting that a human is a cultural existence. The virtue of Xia(夏) was a humanism based on a naturalism. A transcendentalism enabled Yin(殷) to unify a country. The moral humanism of Zhou(周), based on the framework of Zongfa(宗法) and the system of feudalism, was the matrix of the main stream in Chinese history. The Chinqui period(春秋時代) provided the historical stream of the thought with a turning point. The idea that Tien's Will(天命) would never change was replaced with a new idea that Tien's Will is subject to change(天命靡常) in the Chinqui Period(春秋時代). They had come to the recognition that it was not Tien(天, God) that decided fortune or misfortune of a human but that the efforts of a man himself was responsible for the good or ill of a self. The thought one's efforts could restructure his life is a new point of view. Confucius(孔子) synthesized Confucianism from the thoughts of Xia(夏), Yin(殷), and Zhou(周). Confucius(孔子) asserted to bring up to date the Ren(仁, perfct virtue) thought based on the Li(禮, Etiquette) idea of the Chinqui period(春秋時代). Confucius(孔子) prescribed the internalization of Tien(天) within man and put the Man to the equal status with Tien(天). This was a revolutionary change in human view. This revolutionary change required rulers to place themselves under the people and regard the people not as objects to be ruled but as objects to be guarded. As a result, rulers got more interested in politics for a better management of the people. A ruler was now obliged to cultivate his mind to recognize his existence. To improve himself is the core of Confuciaism. A person is educated by cultivating his mind. The eight articles in the Great Learning(大學) is the Goal of Confucianism in the spiritual culture. To recover Li(禮, Etiquette) though self-denial is to find his substance in the allowance from Tien(天) A human is a social animal. The human view of Confucianism is to cultivate his mind to get an honest relationship with other people in his social activity. When a human subjectively pursues his virtuous life to get out of the way of thought to depend on external absoluteness existence, he is circumspect in behavior himself whenever he is alone. And then human is to acquire the real value of hunman existence.

      • 유학의 공동체 정신에 관한 연구

        우문희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2021 국내석사

        RANK : 249647

        본 논문의 목적은 유학의 공동체 정신을 연구하는 데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적 혼란을 경험하면서, 그 주된 원인 중 하나가 현대인에게 부족한 공동체 의식이라고 판단하여 연구 주제로 삼고자 한다. 유학의 공동체 정신을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仁)과 배움(學)과 익힘(習)에서 찾았다. 仁은 사랑, 양보, 겸손, 배려, 존중, 탐구심, 실천력, 공손함, 너그러움, 은혜로움, 부지런함, 일관성, 참을성, 끈기 같은 현대의 긍정적 가치단어로 변환할 수 있다. 공자는 타고난 본성은 모든 사람이 서로 같고, 습(習)에 따라 서로 달라진다고 하였다. 평소에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방향이 다른 삶이 된다는 의미다. 공자의 공동체 정신은 도(道), 인(仁), 예(禮), 덕(德), 문(文=學과 習, 배움과 익힘), 행(行, 실천), 충(忠, 진정성), 신(信)안에 담겨있다. 그 중 공자가 강조한 것은 학(學)과 습(習)이다. 세상을 향한 적극성과 열린 마음을 가져야 배움이 가능하고 일상적인 노력과 성실이 수반될 때만 제대로 익힐 수 있다. 공자가 제시한 긍정의 가치를 실천하며 사는 것이 바로 道이다. 맹자의 공동체 정신에서 가장 큰 통찰은 인간을 선한 존재로 인식한 성선(性善)이다. 인간을 선한 존재로 보느냐 불선한 존재로 보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사상과 철학, 제도와 법, 문화와 예술의 내용이 만들어진다. 맹자의 성선은 사적인 욕심을 위해서가 아닌, 그냥 저절로 나오는 계산 없는 선한 마음이고 선한 마음은 곧 양심(良心)이다. 양심은 사태를 긍정적으로 해결하는 힘이다. 선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태가 좋은 방향으로 해결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한 마음으로 자신을 회복하는 연습이다. 세상을 좋게 바꾸는 것은 사람의 선한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정치는 선한 사람이 해야 한다. 선한 사람이 하는 정치는 공동체를 좋게 하는 일인가를 판단기준으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적인 이익을 우선에 두는 사람은 공동체의 지도자로 맞지 않다. 혼자 잘 살겠다고 타인을 내 이익의 수단으로 여기는 불선(不善)함으로는 공동체가 제대로 유지될 수 없다. 인간은 사랑, 우정, 믿음, 정의, 평화, 행복 같은 추상적 가치로 서로 연결하여 협력해왔고 이러한 연결과 협력이 없다면 공동체는 존재 자체가 허구가 되어버린다. 인류에게 연결하려는 마음과 협력이 없었다면 우리의 문화와 문명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정치는 실천적 지혜와 시민적 덕성을 필요로 한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은 모두 제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회적 가치기여도에 따라 보상을 정상화하고 이를 공론화과정을 통해 합의하고 제도화해야 한다. 돈의 논리가 우선하는 시장의 가치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공공성과 공동선에 대한 철학이 없는 공동체는 무너져 내리고 만다. COVID-19라는 전지구적 질병으로 인해 우리는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이 필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의 공동선, 공공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당위도 생겼다. 평화로운 미래, 아름다운 세상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노력 속에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유학은 인간다움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함께 잘 사는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나의 본성을 선하게 발현시켜 나와 공동체에 도움이 되게 하는 ’실천 철학‘으로 개인의 존엄성과 자율성, 상호존중과 협력의 가치를 모두 품고 있는 철학이다. 선한 본성을 타고난 인간이 점점 불선해지는 이유는 말과 행동이 괴리되는 이중적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깊숙이 들어있는 선한 마음을 꺼내어 잘 닦아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는 사람이 되도록 자기를 수양하는 것, 이것이 유학이 찾은 공동체의 해법이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study the community spirit of Confucianism. As I experiences the global chaos caused by the corona pandemic, I believe one of the main causes is a sense of community lacking in modern people, so I would like to make it a research topic. Confucius found the community spirit of Confucianism from loving people, Ren(仁, goodness), learning(學), and practicing(習). Ren(仁, goodness) can be converted into modern value words such as love, concession, humility, consideration, respect, inquisitiveness, practicality, politeness, generosity, graciousness, diligence, consistency, patience, and persistence. Confucius said that the innate nature is the same for everyone and depends on their habits. It means that the direction of life varies depending on what attitude you usually live in. It is the Tao(道) to live by practicing the positive values suggested by Confucius. The community spirit of Confucius is contained in Tao(道), Ren(仁, goodness), Yei(禮), virtue(德), learning and practicing(文=學 and 習), practice(行), loyalty(忠), and faith(信). Among them, Confucius emphasized learning(學) and practicing(習). Learning is possible only with activeness and an open mind toward the world, and it can only be practiced with daily effort and sincerity. The greatest insight of Mencius' community spirit is good nature(性善) that recognizes humans as good beings. Depending on whether you view humans as good or evil being, community’s contents are created such as ideas and philosophy, institutions and laws, culture and art. Mencius' good nature is not for humans' private greed, but a good mind without calculation that comes out by itself, so a good mind is a conscience. Conscience is the power to solve a situation positively. The more good people there are, the better situations will be resolved. Therefore, all we have to do is practice restoring ourselves with a good mind. Changing the world for the better comes from a good mind. Therefore, politics must be done by good person. Because a good person will judge whether it is a good thing for a community. A person who puts personal profit first does not appropriate as a community leader. The community cannot be maintained by evilness(不善), which regards others as a means of my own interests to live well alone. Humans have been connected and cooperated with each other through abstract values ​​such as love, friendship, faith, justice, peace, and happiness. Without these connections and cooperation, the community itself becomes a fiction. Without the mind and cooperation to connect with humanity, our culture and civilization would not have been created. Good politics requires practical wisdom and civic virtue. All the people who make up the community should acknowledge that they have their own values, normalize compensation for social value contributions. It should be agreed upon and institutionalized through the process of social public discussion. The community that judges everything by the value of the market without a philosophy of publicness and common good, that is collapses. Due to the global disease called COVID-19, we have learned that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cooperation are essential. There is also a justification for considering the common good and publicness of the community before individual freedom. A peaceful future and a beautiful world do not come by themselves. It can be achieved through the efforts of all of us. Confucianism is a 'practical philosophy' that helps me and the community by manifesting my nature in a good way to realize humanity, love for the neighborhood, and community that lives well together. And it is a philosophy that embraces the values of individual dignity, autonomy, mutual respect and cooperation. The reason why humans who are born with good nature are becoming more and more evilness comes from the dual attitude of life, in which words and actions are separated. To look into my own mind, to bring out a good mind deep inside, to clean it well, and to cultivate myself to become a person who is in harmony with the inside and outside, this is the solution of the community found by Confucianism.

      • 儒學의 心理體系와 周易의 構造

        이창식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49631

        Heaven orders to conduct the world. A essential reason for human life is same. All human lives depend on heaven's order. However, human takes away heaven's orders for their greed. It is important to live a true life that having bright mind. When you ask yourself about who you are and how you live, honest answer will appear. There is distance between people, so they live their life showing themselves with behaviors and words. They can live their lives happy if frank life is with thoughts and behaviors when they are alone. It is really sad that living a life talking and doing things against the heart. Hypocritical life brings nothingness and solitude. It would be uncomfortable to you and others. A method of living a frank life is learning honesty purpose of Confucianism. Psychological security depends on clearness and brightness. Positive thoughts directs a hopeful life. Honest belief changes impossibility to become possibility. Besides, human is able to know heaven's order from their sense. `Tiredness', `sleepiness' and `hungriness' are brought from heaven's order. If human follows heaven's order, they become mighty about duties under the heaven while their lives keep changing. human realizes heaven's order from their sense. Nowadays, we lives a stopped life although we should be mighty with that sense. Due to their greeds, human has little pieces of that sense than being quietly strong and steady. Confucius brought that sense back. It is that heaven and human become the one. Heaven's order is the nature and the nature is heaven's order. Heaven is inside of me. If my nature inside me expands to nature in relation between you and me, everyone lives their lives following Cheon-myung-ji-wi-sung(天命之謂性) of Jung-yong(中庸). Then heaven's order becomes ordinary thing. It is the reason that everything has nature inside. Heaven's order is the nature and the Great Absolute is the reason. Cheon-myung-ji-sung(天命至性) is the Great Absolute and the reason. Accordingly the nature is the reason. Because my nature is everything's reason, things and oneself become the one. In heaven's point of view, the reason sees everything differently as the structure of the Great Absolute(太極)=Li(理)=Cheon-myung(天命:mandate from Heaven). but everything is the one. It all seems different that the reason comes through from each thing. Like water, ice, iceberg, fog, cloud and dew seem unlike. As a result, those are the one. When we see things, forms and ways, it has same principle that various forms, two ways and the Great Absolute seeming like the cosmic dual forces. the Great Absolute(太極) → Um-yang(陰陽:the cosmic dual forces) → Sa-sang(四象) → Pal-gwae(八卦). This process is the Great Absolute's way. Image reflected on path of life is inside changing structure like the Great Absolute's way. Our state of mind keeps dividing. At the same time, we go through the changes appeared in real life. A tree is cut many pieces to be planted. Each piece seems unlike. But all pieces are same tree beyond the form. You and me look different. but we are the one as a result. If you live like a river flowing against greed, you can aware everyone has the original nature. If your mind goes toward the ethical doc-trine that man’s inborn nature is good, you can live ideal life being like gentleman who is against the greed. Modern people's thoughts are coming from individuals. And Individualism which makes many evil practices grows up. Person's duplex structure of character grows up between goodness and badness like differentiation of Gwae-hyo(卦爻). Sa-dan(四端) and Gun-ja(君子) is not-changed quality thing from original nature. On the contrary, the greed becomes Chil-jung(七情:the seven passions). A person who is dragged to greed and losing Sa-dan(四端) becomes So-in(小人). The pure reason which human lives for is following pure mind like falling asleep when that person sleepy. However, When the greed which become badness grows up, you can change it to goodness If you include your thought in it. The pain comes from pursuing greeds. Desire makes an individual called `me'. If you become an individual, you start fighting against others. And if you want greeds unlimited, all your lives would be painful. All divination signs, getting acquainted and words have the power of guiding all human's lives. The method which guides human who lives individual life become to live for everyone is leading purpose of Gwae-hyo-sa(卦爻辭). Heaven's purpose is the thought of all human. That is leading human. If human lives on own intention, it is like being against the order that makes Gil-hyung-hoi-ryn(吉凶悔吝). It is promoting to follow heaven's purpose. To live for all human is knowing a thing or two about your divination sign of 64. If you keep picking out a Chinese classic on divination deeper and deeper, you will be able to know how to live although you don't pick out divination sign. I want to suggest the method that rescues human's real nature. And I hope the virtue which means that you and I both are the one who is changing everyday and following heaven's order. 天이 이 世上을 이끌고 가는 것이 命이다. 人間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本質的인 삶의 이치는 똑 같다. 人間은 모두 기본적으로 天命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人間은 慾心에 가려서 天命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참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선 밝은 마음을 갖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내 자신은 어떤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자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솔직한 답이 나오게 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 間에 생활은 자연히 거리가 있기 마련이라서 행동으로 말로서 보여주고 살아가는 것이다. 홀로 있을 때 생각과 행동이 자신에게 솔직한 삶이라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행복함을 느끼고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말과 행동이 자신의 속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고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위선적인 삶은 결국 허무함과 고독을 가져온다. 자신 스스로에게는 물론 타인에게도 결국은 편치 못한 생활이 되고 마는 것이다. 참 내 자신(本性)을 찾는다면 儒學의 참 뜻을 알고 살아가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心理的인 安定은 맑음과 밝음에 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희망의 삶을 연출하여 준다.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순수한 믿음에 있다. 또한 사람이란 느낌으로 天命을 알 수 있다. ‘피곤하다’, ‘졸리다’, ‘배고프다’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하늘의 뜻을 느낌으로 아는 것이다. 변화하는 삶의 과정 중에 人間이 하늘의 뜻을 느껴서 그대로 실천하면 天下의 모든 일에 通하게 된다. 우리 인간은 느낌으로 天命을 자각한다. 오늘날 우리는 그 느낌으로 천하의 모든 일에 통해야 하는데 막혀있는 삶을 살고 있다.『周易』「繫辭傳 10章」에서 “易은 无思也며 无爲也하여 寂然不動이라”고 했다. 사람은 욕심이 끓어서 적연부동이 안 되고 일부분 밖에 느낌이 남아 있지 않다. 孔子는 그 느낌을 되돌렸다. 그것이 天人合一이다. 天命이 性이고 性이 곧 天命이다. 내 속에 하늘이 있다. 내 속에 ‘나’의 ‘性’을 ‘너’와 ‘나’의 관계의 ‘性’으로 확대 시키면 모두가『中庸』의 “天命之謂性” 에 따라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로서 천명(太極)이 일반화가 된다. 모든 만물 존재에는 性이 들어 있는데 이것이 理이다. 天命은 性이오 太極은 理이다. 天命至性이 太極과 理이다. 이렇게 보면 ‘性’은 곧 ‘理’이다. 나의 ‘性’이 만물의 ‘理’이니까 物我一體가 된다.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太極=理=天命의 구조로서 理의 입장에서는 萬物이 다 달라 보이지만 모두 하나일 뿐이다. 각 개체에서 理가 통과되어 나올 때 모두 다른 것처럼 보인다. 마치 물의 입장에서는 얼음과 빙산, 안개, 구름, 이슬 등 개체는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理인 것이다. 우리가 사물과 형태를 볼 때나 길을 바라볼 때 여러 가지 자태나 두 개의 길로 나누어 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太極이 陰陽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陰陽의 理致는 64卦의 성립에 있다. 太極과 → 陰陽 → 四象 → 八卦로 분화되는 과정이 太極의 道이다. 인생의 행로에 비추어진 모습은 太極의 길과 같은 變化 構造 속에 있다. 내 마음의 상태가 여러 가지 감정으로 분화되어 생활을 해나가면서 실생활에 나타나는 변화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여러 가지로 잘라서 묘목을 심었을 경우 다르게 보이는 나무이지만 형이상학적 동질성으로 보면 같은 것이 된다. 너와 나는 다르게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인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내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慾心의 안목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물 흘러가듯 살아가게 되면, 性의 입장에서 모두가 같은 本性을 지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 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이 性善을 향하여 나아가면 그 마음에서 심리적 요인(생각·분별계산… 등)이 개입되어 욕심 때문에 발생을 하는 분리현상으로부터 벗어나 君子의 삶을 닮아가는 이상적이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대인의 思考는 개체에서 일어나고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그로 인하여 많은 病廢(병폐)가 自明하게 드러나게 된다. 善함과 惡함의 사이에서 인간의 이중적 성격 구조가 卦爻의의 분화처럼 일어나게 된다. 本性에서 변질 되지 않은 것이 四端이고 君子이다. 반대로 욕심이 七情이 된다. 四端을 잃고 욕심에 끌려가는 사람은 小人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順理는 졸릴 때 자는 것처럼 순수한 마음과 행동으로 따르는데 있다. 그러나 욕심이 생겨나올 때 그대로 나오면 惡이 되는 것이고 이 때 생각이 개입되면 善으로 변화를 한다. 고통은 항상 욕심을 추구하는데서 나온다. ‘慾心’ 때문에 ‘나’라는 개체가 생긴다. 개체가 되면 他人과 싸우게 되고 욕심을 무한하게 추구하다 보면 個體인 내가 生老病死 중에 모든 삶의 생활들이 고통스럽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체적 마음이 卦와 爻의 1/64 개체가 각각의 이중적 성격에서 하나의 象인 전체로서의 차원에서 움직여지도록 설명을 하여주는 것이 卦辭와 爻辭이다. 모든 卦爻辭는 인간의 생활을 선도하는 힘이 있다. 개체로 사는 인간들에게 전체적 입장에서 살도록 인도하는 방법이 卦爻辭의 先導的 의미이다. 하늘의 뜻은 전체의 생각이다. 즉 사람을 인도하는 의미인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 뜻 데로 따라 살아간다면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되어 버려서 吉凶悔吝의 변화를 겪게 된다. 하늘의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개체가 아닌 전체의 삶을 살아가려면 64卦 中 내 상황을 알아야한다. 周易을 계속 深化되어 뽑다가 보면 나중에는 卦를 뽑지 않아도 저절로 느낌을 알아서 살아가는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論者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人間 本然의 마음 回復의 方法에 있다. 變化 가운데 人間은 늘 새롭게 태어나고 天命을 認識하며, 너와 내가 모두 하나라고 하는 大同 天人合一의 德을 구하며 살자는데 뜻을 두었다.

      • 眉叟 許穆 書藝의 道家美學的 硏究

        이형용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49631

        This paper analyzes the Taoistic aesthetics apparent in the works of the great confucius scholar and calligrapher Misu Heo Mok (眉&#21471; 許穆). Misu is a scholar of Confucius studies and Yeahak (禮學: Studies on Proprieties). Yet he has the scholarly inclination of anti-Zhuxi that basically makes him reject Sunglihak. His admiration for the Seonjinyuhak (先秦儒學: Confucius Studies before the Jin Dynasty) makes him consider Zhuxi Studies (朱子學) or Jusohak (注疏學) a subfield of Confucius studies. This sentiment that dismisses Jusohak appeared in the collection of his works. This attitude, with his circumstances, gives him Taoistic inclination, which is obvious in his principles and outlooks of life and in turn influenced his calligraphic works. At the time, Jeong and Zhuhak showed an extreme tendency of idealization and formalization and the situation got worsened by men of no virtue and no talent. Under this kind of corruption and Zhuxi Studies' empty theorization, Chosun had suffered many crises such as two wars of Yimjin and Jeongyuwaeran, Injo Banjeong, The Upheaval of Lee Kwal to have been shaken from its roots. On the other hand, China at the time lost the Junghwa (中華: Sinocentrism) culture based on Han ethnic group by the demise of Myung by the Chung Dynasty. This made Chosun transform itself as the leader of Junghwa thoughts. That is, at this crisis where there was no country like Myung to inherit the culture of three Han dynasties, Chosun, which inherited the culture, could solely claim to be its inheritor, thus the independent center of the ancient culture. This gave more independent identity to Chosun scholars and challenged them to tackle with fundamental problems. This tendency especially thrived among Namin scholars. They recognized the limits of previous Sunglihak and emphasized Yukgyunggohak (六經古學) in claiming the importance of the foundation. In this intellectual milieu, was there the great leader of Namin scholars Heo Mok.. Misu had no will to serve the state. He spent half of his life traveling beautiful mountains and rivers. He was not only forbidden to take the exam to become an officer when he was young but also he had lost any interests in the wealth and honor of the world. Misu learned from Jeong Gu (鄭逑) at first but it didn't last long to make a great influence on Misu's thoughts. Rather Misu emphasized his learning from Chongsan (&#33905;山) who taught him Yeagi (禮記: Records of Proprietaries) and Dangungpyeon (檀弓篇) at his age of 21 and from his cousin Heo Hu (許厚), who had taught him when he was younger. Misu says, "When how one humbles himself and frees himself fits the recommended ways, even the saint acknowledges it. So I write the Cheongsayeoljeon (淸士列傳, Collected Biographies of Scholars of Integrity and humility)," in the preface of his Cheonsayeoljeon. He calls those who live highly Taoistic life "Cheongsa" and praised their achievements. He acknowledges that kind of attitude towards life and seeks to live like them. His Taoistic attitude influences on his unique calligraphic style of Mijeon (眉篆). Misu's Taoistic tendency, from the Seoyeogiin (書如其人: One's writing is like one's person) perspective, shows in his Mijeon. That he pursues and lives the life of a Taoistic hermit exudes in his calligraphy as beauty of natural liveliness. That he loves liberal calligraphic styles of Bongrae (蓬萊) or Hwang Giro(黃耆老) also shows that. Also Misu emphasizes that there remain ancient spirits of the three dynasties in calligrapy and writing. He values strange violation, remarkable uniqueness and embedded tradition. Due to his thought valuing the writings of the Three Dynasties, his calligraphy shows the beauty of embedded tradition. For he thinks it important to restore the tradition of the Three Dynasties. In addition to this emphasis on restoration, he admires the Seonjinyuhak, which is the foundation of Confucius studies. Thus he proposes to return to Seonjin old-style studies by adopting the sense of returning from Lao-tsu thoughts. Misu's free approach to various traditions enables this integration that takes strong points both from Daoism and Confucius philosophy without any prejudice or bias. This freedom of thoughts and critical acceptance of the idea of returning came to be the foundation and characteristic of his philosophy. Consequently, his philosophy influences on his calligraphy as well to create a special style of Mijeon (眉篆). Hence, this paper considers how his Taoistic attitude in his philosophy may have influenced on his style of Mijeon. 본고는 17세기 대유학자이자 서예가인 眉&#21471; 許穆의 書藝에 나타나는 道家美를 연구한 논문이다. 미수는 유학자이자 예학자이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성리학을 부정하는 반주자학적 학문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선진유학을 숭상하여 朱子學, 注疏學을 유학의 지엽적인 학문으로 여기고 있는데, 그의 문집에서 주소학을 부정하는 글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반주자학적 성향과 미수의 주변 환경은 그에게 도가적 성향을 가지게 하였다. 또한 그의 處世觀이나 人物觀, 그리고 서예작품에까지 도가적 색깔을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당시 程·朱學은 觀念化·形式化로 인한 폐단이 극에 이르렀으며, 不德하고 無能한 人士들이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이러한 부정부패, 그리고 주자학이 空理的으로 흐르는 가운데 조선은 壬辰&#8228;丁酉倭亂, 仁祖反正, 李适의亂을 겪었고 이는 국가의 체제를 뿌리 채 흔들어 놓았다. 당시 중국은 한족국가인 明이 淸에 의해 멸망하고 한족 중심의 中華文化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의 中華의식은 조선제일주의로 변화하기 시작 했다. 이는 三代의 문화사상을 이은 明이 사라진 지금 삼대를 계승하고 있는 ‘조선만이 유일하게 문화의 중심에 서있다.’라고 하여 점차적으로 조선은 주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주체성을 갖기 위해 당시 학자들은 근본의 문제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당시 南人들을 중심으로 하여 그 기조를 더해 갔다. 그들은 기존성리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六經古學을 강조하며 근본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 하였다. 이러한 사상적 정치적 변화 가운데 南人계열의 巨頭인 허목이 있었다. 미수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아 반평생동안 山川大澤을 유람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젊은 시절 과거정지령을 받고 현실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좌절감으로 인해 산천을 유람하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으며, 그의 주변 인물들에 의한 영향으로 인해 벼슬이나 속세의 榮辱또한 관심이 없었다. 미수는 鄭逑에게 師事를 받았으나 그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미수의 사상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하였으며, 오히려 21세 때에 &#33905;山에게서『禮記』「檀弓篇」을 배웠고 젊은 시절에는 從兄 許厚로부터 학문하는 법을 배웠다고 하면서 그의 학문적 배경이 이들에게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미수는『淸士列傳』에서 나오는 인물들에 대해 “몸가짐을 조촐히 하는 것과 방종함이 권도에 맞을 때 이는 성인도 허여한다. 그래서 『淸士列傳』을 짓는다.”라고 하여 도가적 處世觀의 인물들을 ‘淸士’라고 지칭하면서 그들의 행적을 높이고 있다. 이는 그 역시 이러한 處世觀을 인정하며 또 그들의 삶을 希求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미수의 도가적 성향은 그의 眉篆에 영향을 주었다. 미수의 道家的 性向은 書如其人的 입장에서 본다면 그의 眉篆에도 道家의 색깔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仙趣的삶을 희구하고 또 그러한 삶을 살았던 면모는 天然而然한 超逸美를 드러내고 있는데 蓬萊나 黃耆老의 自由奔放한 글씨를 좋아 하였던 면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미수는 文章과 글씨에 삼대의 古氣가 남아 있음과 奇詭함과 傑特한 古奧함을 중요시 하였으며, 삼대의 書를 중시하는 사유로 인해서 그의 글씨에 古奧美가 드러나고 있다. 고오미를 중시여기는 것은 그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삼대로의 歸依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삼대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동시에 유학의 本이 되는 선진유학을 숭상한다. 이러한 그의 사상관은 노·장의 회귀사상을 그의 사상에 차용하여 선진고학으로의 복고를 주장 하고 있다. 이는 미수의 자유로운 사상으로 인하여 어떠한 선입관이나 편견이 없이 儒·道의 장점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수의 사상적 자유로움과 復古의 비판적 수용은 그의 학문사상을 이루는 바탕이자 큰 특징이다. 결국 이와 같은 학문사상은 그의 서예에까지 영향을 주었으며, 眉篆이라는 독특한 서체를 이루는 근원이 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그의 사상에 나타나는 도가적 성향과 이러한 영향이 미전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하였다.

      • 荀子 禮思想 硏究

        안을화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202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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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회는 ‘禮’가 사라졌다 말한다. 그러나 고금을 막론하고 아직도 우리는 유가적 禮 문화속에 존재한다. 순자는 전국시대 말기 戰亂시대를 살다간 마지막 유학자였다. 그가 목도한 사회적 혼란은 순자로 하여금 인간의 惡한 면에 눈 뜨게 하였고, 선으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禮治’를 주장한다. 이 논문은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儒學의 예사상을 돌아보고 그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쓰여졌다. 인간관계 맺음에 있어 예의 역할은, 인간을 자립적인 한 인간으로 독립할 수 있게 하는것이라 공자는 말했다. 순자가 말한 예의 기능은 모든 삼라만상에 영향을 미치고 그 원칙이 되는 인간의 도리의 기준이다. 순자는 기존의 天觀을 이어 받지 않고 天人分離 개념을 부각시키면서 인간의 하늘로부터의 독립 및 인간의 능동적인 운명개척을 주문하였으며, 맹자의 성선설을 비난하며 자신의 성악설을 등장시켰다. 그의 성악설은 인간의 사회성에 기인한 것으로 순자에게 善이란 正理平治한 안정된 사회이다. 그러나 전국 말기는 孔子 . 孟子 시대보다도 훨씬 극심한 전란시대였으므로 그의 선의 기준인 正理平治와는 거리가 멀었다. 순자는 그러한 혼란이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지 않고 방치해서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 성인이 禮를 만들었다는 聖人制禮說이 나온다. 또한 인간의 악한 本性을 바로 잡는 방법은 積習과 化性起僞로 인간의 善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순자가 주장한 예의 기능에는 욕망의 적절한 충족과 사회적 구분 즉 名分使君 기능이 있다. 그는 특히 分개념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순자 예 사상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천인분리 개념부터 分으로 시작하여 인간의 역할과 하늘의 기능을 잘 분간하는 것을 至人의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 순자는 인간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인간의 내적 동기로 긍정하였다.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순자가 주장한 예의 養과 分의 기능은 ‘물질’에 의해 대체되었다고 보여진다. 그 예로 사회적 분배기능에 있어 현대사회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君子나 小人처럼 예가 개개인을 평가하고 배분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자가 말한 禮義之統 개념처럼 예는 기천년을 이어서 내려온 인간세상의 전통이자 미덕이다. 게다가 禮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관계맺음에 잦대가 되곤한다. 유학에서 禮는 핵심가치라 할 수 있다. 공자는 仁을 통해 禮의 실현을 주문하였고, 맹자는 仁義禮智를 통한 禮의 내면화를 꿈꾸었으며, 순자는 더 나아가 예를 최고 가치로 삼는 예치를 주장하였으며, 예야말로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고 적절히 조절하여 正理平治한 안정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유학의 모든 것의 첫째 가치는 修己治人이다. 修己가 되어야 남의 本이 될수 있고 정치가 가능해진다. 비록 순자가 주장한 禮治는 실현이 요원하지만 유학의 전통가치인 ‘禮’의 價値와 실현 방법과 수양방법은 앞으로도 연구되고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对现代社会来说“礼”已经崩溃。但是,无论任何时代,我们仍然活在儒家意识当中。 荀子是经历战国末期战乱时期的最后的儒学家。他当时所看的社会混乱使他总结对人的性恶。 因此,为了纠正这种社会混乱,他提出了礼治思想。 本文旨在反思唯物主义盛行的现代社会上的儒家思想之礼,并回顾其价值。 据孔子说礼在建立人际关系中的作用是使人成为独立的一个人。 荀子所主张的礼的功能是涉及到人间所有领域并成为人类道理原则的标准。荀子并不继承现有的天观而独立提出把人和天要分开的新的天概念。 他提倡人类要脱离有意志的天,积极发展人类的命运。他谴责孟子的性善论,并突出了自己的性恶理论。荀子的性恶论理归因于人类的社会性,在荀子这里,善良的标准是一个稳定的社会,但是,战国时期是一个战争时代,社会混乱比孔子孟子时期严重得多,因此他的标准与性善理论不符。荀子认为这种混乱起因于人类欲望缺少控制。于是为了纠正这种社会混乱,需要圣人制造礼。而且改正人类人类邪恶本质的方法是通过经验的累计和学习而可以达到化性起伪。 就是说把人的性从恶化成善。 他所提倡的概念中‘养’和‘分’的理论尤其区别于之前对礼的概念。 荀子认为‘礼’有让人满意或促使人和人和解的功能,还有‘分’的作用。 本人认为这两个功能如今已被纯粹的‘物质’所替代。 不过这两个功能成为了荀子所提倡的‘礼治社会’的理论上的根据。 荀子并不否认人的欲望,他肯定欲望使人推动前进。 虽然在如今社会中‘礼’已没有荀子说的养和分的作用,但至少它本身的重要价值仍然离不开我们。 人们建立人际关系时‘礼’依然占着很大一部分。 在儒学思想里‘礼’是确实的核心价值。 孔子提倡通过礼来实现‘仁’,孟子追求以仁义礼智来表达在人心里内在的道德性。 而荀子主张以礼作为最高价值的‘礼治’。 可惜现在我们难得目睹礼的存在。 可是本人还是认为我们得坚持追求儒家核心价值‘礼’并更努力研究‘礼’的实践办法和它的修养方法。这样才能到来更稳定美好的人间社会。

      • 石濤의 繪畵創作論에 關한 硏究 : 『畵語錄』을 中心으로

        이광희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200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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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關於石濤的繪畵創作論硏究 -以『畵語錄』&#28858;中心- 成均館大學校儒學大學院 東洋思想文化學科 書藝學專攻 李 光 熙 石濤(1630&#12316;1707, 姓朱名字若極)是明王朝的後孫,明末、&#28165;初時活動的書法家。石濤是在儒&#65381;佛&#65381;道 思想總網羅 哲學的理論背景來創作的原理和方法等,著述以『畵語錄』&#28858;中心。『畵語錄』是從第一章「一&#30059;章」開始 到 第十八 章「資任章」。一&#30059;的法則組成的全十八章都是一貫構成的中心思想,通過第十七「兼字章」而提出書、&#30059;都是同源的創作理論的書籍。本論文是『畵語錄』中心,通過他留下來的&#30059;題來考察繪畵創作論 。 從明末&#28165;初時代的狀況來看,石濤肯定了當時流行的三&#25945;合一思想,也肯定了當時的陽明學。之後,若從繪畵的方面來說,董其昌的南北分宗說和擬古主義 書壇等的批判的視覺來看。石濤 是從佛敎 的神綜到當時的主流思想的儒家的《周易》和老莊 的道理解開始來提倡一&#30059;論的。 石濤 的一&#30059;論是『周易』的“易有太極”裏包含了‘太極 是一,從一開始形成萬物二變化’,還有也包含『老子』二十八章的“樸散則&#28858;器”和『老子』四十二章 的“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的思維 。 石濤說的一&#30059;裏有宇宙自然的原理。可是通過一&#30059;的藝術來創作時,那一&#30059;裏包含的宇宙自然的原理得體會到道德意義。道是無&#28858;的,而且無&#28858;又是無不&#28858;的。這裏說的無&#28858;就是虛靜。&#28858;這樣的道體得創作主體者的虛靜之心才有可能。虛靜指的是沒有物,也沒有我的無知無欲的心理狀態。這是超城老莊所提倡的功利不求知的審美的態度。也就是說,虛靜是創作主體是根據外在的條件來不接受童謠,&#20006;對於對象事物專心的審美觀照態度 來構想藝術的而創造的心理的前提條件。天地的心和宇宙的精神化作我自身的精神,成一體化的精神&#21363;是作家的精神,這也是&#30495;正意義上的虛靜的心。虛靜的心才是石濤 說的一&#30059;的思想.這是藝術創作的形而上學的最初根據。 石濤提起一&#30059;的問題是&#28858;了興起當時書壇的支配風潮來克服南北分宗說的弊病。石濤的繪畵論和認識論是關於受和識在認識中的差異,受只是“受指”的意思,也是“接受”的可見的見解,受的意思若從“感受作用”或者“感性認識”來看,識的意思就是“認識作用“理性認識”來看的見解。可是本&#30740;究裏看“受”是創作主體者的心的繪畵 對“支配作用和“創造力”來理解,“識”是對繪畵傳統的“學識”和“修養 ”的見解來進行選擇分析. 創作主體者&#28858;了達到一&#30059;的理性境地,不要有世俗的雜念而必須維持虛靜淡泊的心。&#28858;了這個需要達到莊子的心齋, 坐忘, 解衣盤&#31028;一樣的狀態才可以,石濤的「遠塵章」和 「脫俗章」中表明從世俗的 是非, 善惡, 美醜, 富貴 等一切的名利開始到&#25291;棄這一切達到平靜&#27745;垢的心境狀態才可以做到上述狀態。那&#40636;,如果精神的活動更活潑才能&#22816;把握好自然對象的本質,然後達到&#28165;&#26224;的理性的狀態,而且&#25291;棄俗的愚鈍的思想狀態&#20006;且不受外物的左右才能達到正確的主題者的理性狀態。這裏和石濤的所說的脫俗的虛靜之心和莊子所說的心齋、坐忘有非常關係,然後因&#28858;創作者心理狀態 和解衣盤&#31028;有一定的關聯,所以由此可以確認石濤一&#30059;論的其他表現又和脫俗的境界相通。 繪&#30059;的本質以從天地萬物的形體&#28858;本質暴露造型的行&#28858;。石濤的藝術創造以傳統&#28858;背景,對技術和技巧熟悉以後不受法則和傳統的約束從而上升到了無法境地。也&#21363;是創作主題者通過熟練基本技巧,達到忘記虛靜的技巧,同性虛靜的心靈狀態,最後與天地自然的變化以及無形之道相融合的境地。 石濤說,人雖然明白自然的法則,而由於不&#28165;楚的明白自然的理智和形式是依賴法的原則遭受模&#20223;和傳統的束縛。這個可以從老子的話“大巧若拙”中&#25214;到答案。大巧&#21363;是順應天道的意思,而拙則不是一般意義上的拙,而是道家高境界的拙。莊子的 “養生主”中的“&#24214;丁解牛”講了&#25291;棄人&#28858;的技巧才能達到道家的最高境地的技巧。拙的境地是維持虛靜的心靈和安靜的思 想狀態,進而實行到最終可以達到無&#28858;而不無&#28858;的道家的最高修養的拙的境地。這是通過一&#30059;的創作主題者的虛靜之心而通向宇宙的自然原理而體會道的深刻意味。藝術作品不是刻板的把自然的圖像描繪出來而是集中表現自然的內在精神這與對自然的對象體的外形一寫&#30495;的模式表現出來完全沒有關係只是內在本質的相同而已,形似是以 美的外在形態而表示內在的美,神似是表現作家的內在感情的精神美。這就是石濤所主張的形似和神似的問題中的不似之似論。 以上所說的這和石濤所主張的不似之似論背景的形似論達成了一致,自然的變化放入形似和形式中調諧統一組合而成。石濤說作品可以完全形似,但是通過創作主題者的虛靜的心靈,從而可以在明白天地和山川的本質山水&#30059;的筆墨法度中體現後可以表現&#30495;是山水的內在屬性,從而&#24375;調不似之似的重要性。石濤活動的時期是進入尼姑主義的傳統觀念支配時期,此時的石濤在“變化章”中以“借古以開今”&#28858;主旨來與當時的風 &#30059;壇的思潮相抗衡,因&#28858;與此相關石濤也表達了“至人無法,非無法也,無法而法乃爲至法”、“凡事有經必有權,有法必有化”這兩種想法。對古法熟練必須進行創新,還需要規定法和化相同的關係。因而石濤對&#22271;于傳統而不能進行新的創造的泥古不化的&#30059;家們作了深刻的批判。 石濤說是這樣主題創造者虛精神美狀態以後,任何外物的印象都要維持脫俗的境界。熟練的表現技巧是要最終達到忘記技巧的境界,進而已無法執法的方法來&#24375;調萬物的重要性天地自然得道德存在性和對自然景物本質形態河內在性的表現的要求。石濤在當時對風靡&#30059;壇的泥古主義的&#24375;烈的反抗,他通過經權論以借古以開今&#28858;手段要求以我&#28858;中心的主題的創造的藝術精神。 通過上面所說的石濤的&#30059;論我們可以看出繪&#30059;創作論的原則。這樣的結論是石濤對&#30059;論中創作主體者提示了藝術哲學的基本理論,創作主體者的心態和&#30495;情的創作方法對於任何創作都無疑是重要的理論指導。這樣一來,石濤的&#30059;論已經僅僅是簡單意義上的繪&#30059;藝術創作理論了,還有&#28858;東洋藝術創作理論提供了哲學背景的重要意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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