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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리마시대(1956~1972)의 북한 교육교양에 대한 연구

          김경욱(Kim, Gyung Wook) 북한대학원대학교 2018 현대북한연구 Vol.21 No.1

          천리마시대(1956~1972)에 김일성은 농업국가를 사회주의 산업국가로 만들기 위한 생산력발전은 ‘공산주의 새 인간’으로 개조되고 양성된 북한주민들이 지도자인 자신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데 달려 있다고 생각하였다. 김일성은 이와 같은 자신의 생각을 구현하기 위해 주체확립과 혁명적 군중노선에 입각한 천리마작업반운동을 일으켰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은 공업, 농업, 교육 등 모든 사회분야에서 사상혁명, 문화혁명, 기술혁명을 일으켜 북한의 모든 주민들을 ‘공산주의적 새 인간’으로 개조하면서 생산력도 발전시키기 위한 군중운동이었다. 이로써 북한은 스탈린주의체제와는 다른 북한 나름의 특수한 유형의 사회주의체제를 만들어갔다. 스탈린주의체제와 다른 점은 교육적 인간상에서도 나타난다. ‘공산주의적 새 인간’은 사회주의 교육학에서 요구하는 ‘교육적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교육적 인간상의 모델은 천리마기수였다. 스탈린체제에서의 교육적 인간상은 스타하노프형 기술자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천리마기수는 작업반에서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이끌 수 있을 만큼 리더십이 있어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도 공산주의사상에 신념을 가져야 하고 기술능력, 문화적 소양을 갖춰야 했다. 천리마기수들은 북한주민들의 성공 모델이었으며, 천리마작업반운동은 사회주의체제에 살게 된 북한주민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주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북한에는 한국인과 다른 북조선인이 탄생하였다. In the era of Chollima(1956-1972), the development of productive power to transform the agricultural country into the socialist industrial country was contingent upon reforming North Koreans to be ‘communist new people’ who would be unified and centered around the leader himself, Kim Il-sung thought. To embody these thoughts, he promoted the Chollima Work Team Movement, which stressed establishing Juche and the revolutionary mass line. The Chollima Work Team Movement was a mass movement which sought to increase the productive power and to reform all of North Koreans to becoming ‘communist new people’ through thought, cultural and technological revolutions in all sectors of society, including engineering, agriculture and education. Likewise, North Korea made their own socialist system different from Stalin’s. It’s also an educated person what makes difference between North Korean social system and Stalin’s. ‘communist new people’ is the ‘educated person’ that socialist pedagogy requires. The Chollima rider was the model of North Korean educated person. Stalin’s educated person is an efficient technician of Stakhanov type. On the other hand, the Chollima Work Team leader rider had to be capable of leading thought, cultural and technological revolution of team crew members. For that, he should have a belief in the communism and master technics as well as enhance cultural attainment. The Chollima Work Team leaders were the successful model of the ‘North Koreans’ and the Chollima Work Team Movement was the practice to make a new identity for ‘North Koreans’, who became living in Social system. ‘North Koreans’ different from the South Korean was generated in North Korea through the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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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1960년대 북한의 ‘핵잠재력 확보전략’에 관한 연구

          정현숙(Jung, Hyun Sook) 북한대학원대학교 2018 현대북한연구 Vol.21 No.2

          1950~1960년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정책’은 북한의 핵심적인 경제성장 전략 중의 하나였다. 1950년대 북한은 계획경제 차원에서 원자력에 대한 연구와 과학자 및 기술자 양성, 연구소 및 교육기관 설립 등 인적·물적 인프라 구축에 주력하였다. 1960년대 북한은 경제전략의 연속선상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정책’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동시에 모색하였다. 핵은 국가의 목적에 따라 경제적인 용도와 더불어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 원자력의 군사적 전용은 핵기술력 확보를 전제로 한 개념이다. 1960년대 북한은 기술력, 경제력 측면에서 3각핵전력체계를 구축하지 못했다. 따라서 1960년대 북한의 원자력 정책은 군사적 전용의 개념보다는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 핵기술력의 고도화를 추진하는 수준에서 분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논문은 1960년대 북한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정책을 ‘핵잠재력 확보전략’이라는 개념으로 분석한다. ‘핵잠재력 확보전략’은 명목상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정책’을 중심으로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미래의 핵’에 대한 야망과 의지를 은밀하게 병행하는 잠재적인 핵개발 전략이라는 개념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1960년대 북한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정책’이 1950년대의 연속선상에 존재하면서도, 그 목적과 용도가 상당 부분 변화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지속과 변화의 측면을 분석하는 것이다. In the 1950s and 1960s, North Korea’s “peaceful use of nuclear energy” strategy was one of its core economic growth strategies. In the 1950s, North Korea focused on the construction of human and physical infrastructure, including research on nuclear power, training scientists and engineers, and establishing institutes and educational institutions. In the 1960s, North Korea pursued the strategy of “peaceful use of nuclear energy” in the continuation of economic strategy, while at the same time searched for measures to be used for military purposes. Nuclei can be militarily dedicated to economic purposes, depending on the purpose of the state. Military exclusivity of nuclear power is a premise of securing nuclear technology. In the 1960s, North Korea failed to build a nuclear power system in terms of technology and economic power. Therefore, it is realistic to analyze North Korea’s nuclear policy in the 1960s at the level of promoting the advancement of nuclear technology for military purposes rather than the concept of military exclusivity. This paper analyzes North Korea’s peaceful use of nuclear energy in the 1960s as a concept of “nuclear potential strategy”. The Nuclear Potential Strategy is a nuclear development strategy that implies the ambition of the nuclear future and the will to develop nuclear weapons.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aspects of sustainability and change based on the assumption that North Korea’s peaceful use of nuclear energy in the 1960s existed as a further going process of the 195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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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관광자원의 변화에 관한 연구

          김한규(Kim, Han Gyu) 북한대학원대학교 2017 현대북한연구 Vol.20 No.1

          본 연구는 북한 평양지역 관광자원의 변화를 고찰하고 그 변화 배경을 북한 사회 전반의 변화와 연계하여 분석하고 있다. 우선 일반적인 관광자원 유형과 북한 학계의 관광자원 유형을 참고하여, 본 논문에 적용하고자 하는 관광자원 유형을 설정하였다. 자연 관광자원, 문화 관광자원, 체제선전 관광자원, 사회시스템 관광자원, 예술 및 기타 사회관광자원, 쇼핑 및 식도락 관광자원, 기타 산업관광자원, 위락 관광자원으로 구분한 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평양 관광자원을 위 유형에 따라 분류하여 각 시기별 변화를 고찰하였다. 그 결과, 평양지역 관광자원은 기본적으로 체제선전 관광자원이 어느 시기에서나 핵심적인 관광자원으로 활용되었으며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내세우는 평양지역 관광자원은 고정불변은 아니었다. 점차적으로 쇼핑 및 식도락 관광자원과 위락 관광자원의 활용도가 증가했으며 사회시스템 관광자원 또한 증가추세를 보였다. 특히 2010년대에는 이러한 변화가 눈에 띄게 확연히 증가했는데 그러한 변화의 배경으로는 무엇보다도 김정은 체제 등장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체제 정당성과 당위성을 보여주어 권력의 안정화를 도모해야 하는 ‘젊은 지도자’ 김정은은 자신만의 미래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애민정치, 친서민적 이미지 구축을 시도했고 그 일환으로 위락관광자원과 쇼핑 및 식도락 관광자원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섰다. 또한 이러한 인프라를 외래관광객 유치에 활용함으로써 ‘평양 시내를 돌아다니는’ 외국인은 다시 김정은 체제 안정에 기여하는 효과를 불러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북한과 같은 통제사회에서 외래관광객 유치는 양날의 칼일 수 있지만 김정은 체제에서는 이러한 상황은 다소 옅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쇼핑 및 식도락 관광자원과 위락 관광자원은 같은 관광자원 중에서도 더 많은 외화수입 창출이 가능하기에 다른 관광자원보다 강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흥계층의 등장으로 이들을,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받아 안기 위한 수단으로 이러한 관광자원이 적극 구축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 관광자원의 변화는 주의 깊게 관찰해야 보이는 것일 수 있지만 단순히 관광차원에서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와 같이 북한 사회의 변화를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This research aims to study changes in tourism resources in the Pyeongyang region of North Korea and to analyze the ground of the changes in connection with the transition of the North Korean society. First, the categories of tourism resources are being identified which could indicate changes of it. Tourism resources are being classified into natural resources, cultural resources, resources with propaganda system, society system, art and other social resources, shopping and epicurism resources, industrial and recreational resources. Changes in each decade starting from 80s to 2010s are also being studied. The result of the study suggests that tourism resources with propaganda system has been used as core regardless of time period taking up the greatest portion of all other resources. However, the North Korea gradually started to make more use of shopping and epicurism resources and recreational ones as well as the social system resources. In 2010, changes became more visible which is assumingly resulted by Kim Jeong Eun’s regime. In need of legitimacy of the power, the regime has been trying to show its future vision through politics for people and common people friendly images. In line with it, the regime initiated the building of the infrastructures of recreational and shopping and epicurism tourism resources which was aimed to lure foreign tourists to Pyeongyang. Foreign tourists walking in Pyeongyang could surely make contributions to the regime stability. In a closed society like the North Korea, attracting of foreign tourists could be a double wedged weapon. However, disadvantages seem to have been minor in the Kim’s regime. Foreign currency brought up by shopping, epicurism and recreational resources could be one the of reasons why they are being put more emphasis on. Changes in tourism resources could be revealed through inspective observation and the study of it no longer has significance just in the field of tourism resources but in understanding of changes in the country’s changes them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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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시장화와 계층구조의 변화

          김병로(Kim, Philo) 북한대학원대학교 2013 현대북한연구 Vol.16 No.1

          이 논문의 목적은 시장화의 진전에 따라 북한의 계층구조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시장체제 도입 이전 북한의 계층구조는 초기 사회주의 계급구조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쟁의 참여와 피해를 기준으로 재편되었다. 이러한 성분 중심의 계층구조는 시장화가 진행된 10~15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탈북자 면접조사를 토대로 볼 때, 북한 주민의 70~80%가 시장에 의존하고 있고 장사를 전업으로 하는 주민이 10% 정도로 추정되는 바, 북한 내 신흥자본가를 포함한 상인 집단이 새로운 사회계급을 형성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적으로 아직 사유화가 제한된 상황에서 상인계급은 국가기관과의 긴밀한 결탁을 통해 사용권과 운영권 등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며 자본을 축적하고 있다. 새로 성장한 상인계급과 국가 관료집단 간에는 협력과 갈등이 공존하며 대체로 공생적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최근 화폐개혁에서 드러났듯이 이들간의 긴장과 갈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또한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 전사자·피살자 출신 성분 가족에 대해 외화벌이 기회를 부여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성분 중심의 기존 계층구조가 시장화로 충격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복잡 군중에 대한 북한의 정책 변화와 대외 교류 및 개방 확대로 인해 아래로부터의 변화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결국 전쟁의 피해 보상을 기준으로 서열화된 계층 질서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은 북한의 성분 구조를 와해시키는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시장화의 결과로 기존 계층구조를 허무는 균열과 파열은 이미 진행 중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impact of maketization on social stratification in North Korea. Class structure before the introduction of the market system in North Korea had been reorganized based on the degree of sacrifice and suffering from the Korean War. Significant change in the social structure has been undergone over the past ten to fifteen years since the adoption of market system. Based on the survey of North Korean refugees, it is estimated that 70 to 80 percent of North Koreans are living relying on the market and around 10% is doing the business as a full time job, and it seems that the merchants including emerging capitalist has formed a new social class in North Korea. In spite of the limitation of privatization by law, the merchant class is growing with accumulation of the capital by exerting license and operating rights from national authorities. The emerging merchant class has generally maintained a symbiotic relationship with the state bureaucracy, but the tensions and conflicts between these classes are also growing as revealed in the recent currency reform. The recent measure of Kim Jong Eun regime to offer an opportunity of earning foreign currency to the families of the fallen soldiers and civilian victims from the Korean War shows that the existing class structure is being impacted by the growth of the market. And also, due to the expansion of external exchanges and openness, the change in class structure, especially in so-called complex class, is underway from the bottom of the society. All of these show that the existing hierarchical order which had been classified based upon the damage from the war has been seriously challenged by the recent market development. It seems that the crack and erosion in existing class structure is already underway as a result of marketization, although it did not develop into a serious dismantlement y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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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공군의 베트남전쟁 참전

          이신재(Lee, Sin Jae) 북한대학원대학교 2016 현대북한연구 Vol.19 No.3

          북한군의 베트남전쟁 참전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북한군 참전이 지니는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북한연구의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이 연구는 북한군의 베트남전쟁 참전사항 중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실질적인 전투부대였던 공군의 참전을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이를 통해 북한 공군의 참전배경과 결정과정, 참전의 구체적 실태, 그리고 참전이 북한 공군에 미친 영향과 북한의 참전경험 활용에 대해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는 기존 연구와 관련 자료의 접근이 제한된 상황에서 연구결과에 일정한 한계는 있을 수 있겠지만, 북한의 베트남전쟁 참전에 대한 개척적인 시도로서 향후 추가연구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It is an obvious historical fact that North Korean military’s participation on Vietnam War. But It is hardly studied until nowadays despite the historical importance. As a result, North Korean military’s participation on Vietnam War remain blank in the North Korean study. This study focus on North Korean Air Force’s participation on Vietnam War. The reason is below. Air Forces’s participation is the most known than other military, and it is really combat forces. Especially, this study seek to find that participation’s background, decision-making process, participation’s contents and impact. This study has a certain limitations to find related document. However, this study have a meaning as a pioneering attempt about North Koreans participate on Vietnam War. It is expected to be a stepping stone for future further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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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간 위성사진을 이용한 북한 경제 관찰방법론 연구

          황일도(Hwang, Il-do) 북한대학원대학교 2011 현대북한연구 Vol.14 No.3

          본 논문은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매년 촬영하는 야간 위성사진의 불빛 개수(SOL, Sum of Lights) 추이를 분석해 북한의 경제상황 변화를 가늠하는 새로운 관찰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제3세계 국가의 SOL과 경제총량 지표 추이가 가진 상관관계는 다수의 해외 선행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으며, 더욱이 이 방법론은 북한의 경제통계가 부실한 상황에서 상당수의 거시경제 추이 분석 연구가 주관성이 강한 탈북자 진술을 활용하거나 가정 혹은 전제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한계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실제로 수집된 1992년부터 2009년까지의 북한 SOL 분석결과를 보면,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인 1990년대 중반 꾸준히 성장하던 불빛 개수는 대기근 시기인 1997년 기록적인 하락세를 나타냈다가 국제사회의 지원이 이어진 1998년 이후 회복되기 시작했고,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안정세를 보이다가 2008년과 2009년 연속으로 하락하면서 1997년보다 더 낮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추이는 한국은행이 그간 발표해온 북한 GNI 추정치 증감 추이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특히 2008년과 2009년 경제상황에 대해서는 완전히 엇갈린 해석을 보여준다. 이 불일치를 한국은행 추정치의 오류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해외 선행연구에서 제시하는 SOL-경제총량 사이의 높은 상관계수를 감안하면 그간 반복적으로 제기되어온 한국은행 데이터 신뢰성에 대한 문제의식에 무게를 싣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article suggests new methodology for observing economic progress of North Korea using an analysis of SOL(Sum of Lights) from night satellite imagery taken by the US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NOAA) from 1992. The correlation between SOL and economic gross index in the third world countries has been proven by numerous precedented studies conducted outside Korea. This methodology has some advantages in that it is relatively free from limitations of other studies regarding macro-economic progress of North Korea based on the comments and opinions of North Korean refugees or other unproven assumptions. The result of SOL analysis shows it had steadily increased from the lowest on the collapse of the Socialistic Bloc of 1992, but decreased sharply in 1997 during the Great Famine. SOL increased slightly from 1998 again and retained a stable status in the beginning of 2000s; however, it collapsed in an unprecedented manner in 2007 and 2008. This progress presents a significant difference from the estimation released by the Bank of Korea. It might be a premature conviction that this difference proves some errors contained in the BOK data. However, considering the high corelation coefficient between SOL and macro-economic index shown by many precedented studies abroad, we can say that it is putting weight on repeated criticism raised on the credibility of the BOK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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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ㆍ25전쟁 이전 북한군 정치훈련의 특징과 의미

          장성진(Jang, Sung-Jin) 북한대학원대학교 2011 현대북한연구 Vol.14 No.2

          전쟁 수행에 있어서 물적 요소만큼이나 인적 요소가 중요하며, 이 인적요소인 정신전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북한군은 6?25전쟁 이전부터 정치훈련을 진행하였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연설문과 탈북자 증언 등을 통해 정치훈련의 중요성이 확인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정치훈련 연구는 부족한 편이었다. 따라서 군사적 시각에서 정치훈련에 대한 내용, 과정에 대한 실체적 접근을 통하여 6ㆍ25전쟁 이전 북한군 정치훈련의 특징과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북한군 정치훈련의 내용은 건군, 건당의 역사와 함께 발전되어 왔으며,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에 의한 국가관, 스탈린 우상화와 친소반미의 안보관, 그리고 규율 준수를 통한 군인정신 함양 등의 특성을 지닌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문화훈련국에서 중앙 통제하여 계획하되, 다양한 교재와 방법으로 교육하였으며, 대상 및 시기별 내용도 달리하여 정치훈련이 진행되었다. 북한군 정치훈련은 정치적 목적보다 전쟁의 승리, 전투훈련의 제고, 정신전력의 강화 등 군사적 목적을 추구하였다. 또한 소련의 제도를 토대로 중국의 교리를 수용하고, 북한 고유의 역사를 유지하는 복합적인 성격을 지녔다. 이후 국제관계의 변화로 인해 빨치산 전통은 전술 교리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와 같이 6ㆍ25전쟁 이전 북한군 정치훈련은 군사적 의미를 지닌 산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se distinguished features and military implications of the NKPA’s political training from 1945 till the breakout of Korean War. The main reason for starting the political training of North Korean soldiers was to reinforce the combat spirit during the war. I find justification for this research in the fact that existing study is rather narrow in its spectrum although NKPA’s political training is essential part of their military training. And this paper adopts more of the military viewpoint, seen through systematic and holistic approach that are geared towards looking into the context and process of NKPA’s training. The context of this training is fashioned after the founding history of the armed forces of NKPA and its party with its connection to the anti-Japanese sentiment and military struggle of Kim Ilsung in Man churi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the national history of its ideal envisioned on the founding of the country. And NKPA has formed the security concept close to that of the Soviet Union including Stalin heroism and Anti-Americanism and fostered the military spirit through making the participants obey imposed disciplines. Within this contexts, the NKPA’s political training has progressed into centralization of the planing, various training methods and teaching materials and different train by the class and circumstances. This paper concludes that the objective of this training was not only political-as to the founding party and the armed forces, but also military-as to achieve victory on the Korean War and to reinforce combat spirit of NKPA. And this paper contends that the structure of this training was of complex system having its rudimentary roots in the Soviet’s political training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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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서 전시(展示)적 도시의 건설과 한계에 관한 연구

          정일영(Jeong, Il-Young) 북한대학원대학교 2016 현대북한연구 Vol.19 No.1

          이 논문의 연구 목적은 북한에서의 전시(展示)적 도시건설과 그 한계를 김정은 시대에 강조되고 있는 유희오락시설의 건설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북한은 평양을 중심으로 유희오락시설을 건설함으로써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에 대한 ‘전시(展示)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당국의 의도와는 달리 북한주민, 특히 지방의 주민들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 북한은 주요 유희오락시설을 평양에 집중시키고 이를 지방으로 확산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재정의 한계로 인하여 평양과 평양 이외의 지방(도시)이라는 이원적 구조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로, 북한은 유희오락시설 등의 건설에 있어 사회동원의 메커니즘을 활용하고 있다. 이들 사업에 대한 참여를 애국심의 척도로 강조하며 원호사업을 추동하고 있다. 그러나 건설사업에 다수의 주민이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그 수혜는 일부 집권층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층부 주민들에게 귀속됨에 따라 사회적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This paper gives analyses on the objectives and its limitations of urban construction in North Korea. This paper try to find what makes the changes about Kim Jung Eun regime`s policy of urban planing. Especially This paper focus on amusement facilities on the city in North Korea. Kim Jung Eun has continued to promote building the amusement facilities in Pyongyang. From the 2000s, North Korea declared itself to be a ‘Strong and Prosperous Nation’ in the near future. Because of the promise, unlike Kim Jong Il regime, Kim Jung Eun focused on people’s happiness. From the year of 2012, North Korean government declared that the powerful socialist nation just began. Now the people’s happiness is the biggest issue in North Korea. Although their economic condition is still weak and confused, North Korean government has tried to show the people’s happiness and improvement of economic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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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이전 소련의 북한 공군지원 고찰(1945∼1950)

          이신재(Lee, Sin Jae) 북한대학원대학교 2016 현대북한연구 Vol.19 No.1

          한국전쟁 당시 북한공군은 개전 3개월도 못 되어 완전히 궤멸되었다. 이것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미 공군의 조기참전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광복이후부터 소련의 지원으로 양성된 북한공군의 전력이 왜 그토록 미약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서 본 연구는 개전 초기 북한공군의 궤멸원인을 1945∼1950년 소련의 북한 공군지원에서 찾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이 시기 소련의 공군지원을 시기와 분야별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1949년 3월 김일성과 스탈린의 모스크바 회담 이전까지 소련의 지원은 대단히 미약했으며, 전쟁발발 시점에 임박해서야 양적증가를 보이지만, 이 또한 매우 소극적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전 초기 북한공군은 남한공군과 비교할 때 10배의 양적 우위에 있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매우 불완전한 상태였으며, 미 공군의 조기참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궤멸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소극적이었던 소련의 북한공군 지원에 따른 예견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북한 공군에 대한 소련의 지원이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당시의 민감했던 국제정치 상황, 북한의 낮은 전략적 가치, 독일과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남한공군 전력과 비교할 때 전쟁의 낙관적 전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During the Korean War, North Korea Air Force(NKAF) was collapsed within three months after war beginning. It was caused mainly by U.S air force. But real combat power of NKAF which was made by USSR so weak. How could understand about NKAF’s weak power. It is a big question to me. This study’s purposes is find the cause of NKAF’s early collapses. Especially, this study try to find at the very passive support of USSR. To this purpose, this study researched USSR’s support against NKAF dividedly by period and section. Based on this evaluation, USSR’s support against NKAF is very passive and weakly until Kim il sung visit Moscow, and meet Stalin March 1949. Active support from USSR was only one year before the outbreak of Korean war. But this support is not proceed smoothly. Also USSR not acted normally by weapon supply agreement between North Korea and USSR. At the beginning time, NKAF is absolute superior than South Korean AF in the point of quantity and quality of combat power. But in the side of quality power – pilot number and skill - is not perfect. And so NKAF was not repose properly to US Air Force early take part in Korean war. As a result, NKAF was collapsed early. Between USSR’s passive support against NKAF and early collapses of NKAF is a causal relationship to each other. There is four reason that USSR’s passive support against NKAF. First, there is sensitive of the international political situation at that time. Second, there is North Korea’s low strategic value for the USSR. Third, USSR’s economic difficulties because of USSR-Germany war, fourth, optimistic prospects of war because South Korea Air force is low. This study confirmed once again that NKAF’s development in five years after the liberation war is the USSR’s support. And so NKAF’s has a enough air power to cause the attack against South Korea. But, USSR’s support against NKAF was very passive. The result was the NKAF has collapsed war in three months. And so USSR’s 64th combat air force corps attend to the Korean war instead of NK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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