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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경기 한문교육의 실태와 해결 방안 모색

        원용석(Won Yongseok)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13 동양한문학연구 Vol.37 No.-

        Almost every document and national literature were historically recorded in Chinese until the late Joseon Dynasty era in this country, and they remain as a massive amount of data to us currently. In addition, since absolute majority of vocabulary of our language is composed of Sino-Korean words, it is essential in language life as well. Although the Sino-Korean subject positioned itself officially in schools in 1972, its status became too low and now its existence in itself has got uncertain as it turns into 'the 7th Educational Curriculum', 'the revised 2007 Educational Curriculum' and 'the revised 2009 Educational Curriculum' after it became an optional course in middle schools in the 6th Educational Curriculum. Gyeonggido Office of Education did not expanded chinese character teachers for the last ten years, and as a result, around more than 200 Sino-Korean teachers decreased for the past ten years. It is a result that middle schools did not select Sino-Korean, and they are fiercely competing to survive with other subjects in every school. Sino-Korean teachers are suffering from pressure due to TO reduction and it's true that their appointment is not amicable. Naksaeng High School in Bundang encouraging as it has made a case that the number of class hours increases by means of teachers' efforts, but it is uncertain when it will face a crisis without political consideration from the nation or local education offices. What should be done in established institutions in order to solve this is to put pressure on governmental organs and the person in charge for the policy to implement language planning stressing Chinese characters and Classics first of all and secondly it should be acknowledged that Sino-Korean education has two axes of 'language life' and 'Sino-Korean' to compose consequent curriculum, and thirdly, it's necessary for Sino-Korean teachers to be promoted more to professional and management positions. For solutions other than established institutions, Chinese characters and Chinese Classics should be exposed more socially to expand opportunities for the public to access to them easily, and a variety of efforts need to be provided so that people can increase interest in and curiosity about Sino-Korean. Solidarity and efforts of parties concerned are urgent including pressure on the government for studies on fundamental and concrete policy and language education, exposure of chinese characters to the eyes of the people etc. 우리나라는 역사 이래 조선 말까지 거의 모든 문서와 국서가 한문으로 기록되었으며, 현재 방대한 양의 자료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또한 우리말 어휘의 절대 다수가 한자어이기 때문에 언어생활에서도 필수불가결하다. 1972년에 한문교과는 학교 안에 정식으로 자리했지만 제6차 교육과정에서 중학교가 선택과목이 된 이후 '제7차 교육과정'과 '개정 2007 교육과정' 그리고 '개정 2009 교육과정'으로 변화하면서 그 위상이 너무 낮아져 이제 한문교육은 존재 자체가 불확실하게 되었다.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 10년 동안 한문교사를 확충하지 않았으며, 현재는 2003년에 비하여 200여 명의 한문교사가 줄었다. 이는 중등학교들이 한문을 선택하지 않은 결과이며 다른 교과와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문교사들은 TO감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내신 발령 또한 원만치 않은 상황이다. 분당의 낙생고는 교사들의 노력으로 시수가 증가하는 경우를 만들어 고무적이지만, 국가나 시ㆍ도 교육청의 정책적인 배려가 없이는 이 또한 언제 위기를 맞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도권 내에서 해야 할 일은 우선 국가 기관과 편수 담당자에 대하여 한자ㆍ한문을 중시한 어문정책을 실시하도록 압박해야 하며 둘째, 한문과교육이 '언어생활'과 '한문 고전'이라는 두 개의 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교육과정을 구성해야 하며 셋째, 한문교사들이 전문직과 관리직으로 더 많은 승진을 할 필요가 있다. 제도권 외적인 해결 방안으로는 범사회적으로 한자ㆍ한문이 더 많이 노출되어 국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여야 하며, 국민들이 한문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제고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이 제공되어야 한다. 정리하면 한문과교육이 정상화되려면 근본적이고도 구체적인 정책론의 연구와 어문교육에 대한 대정부 압박, 국민들의 시야에 한자를 노출하는 등 관계자들의 결집과 노력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 KCI등재후보

        한문학과 미시사의 풍요로운 만남

        백승종(Paik Sungjong)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07 동양한문학연구 Vol.24 No.-

          이 논문은 1990년대 이후 한문학의 신경향이 미시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양자의 성숙한 만남을 위해 해결되어야 할 한두 가지 과제를 언급한다.<BR>  20세기 후반 한문학자들은 학문적 관심영역을 확대시키는 과정에서 미시사/신문화사라는 역사학계의 새로운 조류와 조우했다. 미시사와 신문화사는 국가와 민족의 일직선적 발전을 강조해온 근대 역사학적 태도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흐름으로, 역사 속에 숨어있던 익명의 개인에 대한 발견을 의미한다. 본질적으로 구래의 각종 문헌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인간 보편성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지녀온 한문학자들은, 역사학자들보다 한 발앞서 근대 역사학에서 망각된 소수자의 일상과 그들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데 앞장섰다. 그런 점에서 한문학은 독서 대중을 미시사의 세계로 안내하는 서구적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정민, 강명관 및 고미숙의 저작이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하다.<BR>  그러나 한문학과 미시사의 만남은 앞으로 더욱 풍요로워질 여지를 남기고 있다. 한문학의 글쓰기는 사물의 중층성을 탐구하는 쪽으로 진행될 수 있고, 무료한 일상에 담긴 생존 전략의 다양함을 캐는 작업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 이로써 한문학과 미시사의 학제간 유대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한문학의 발전은 미시사의 이론과 실제를 더욱 살찌우는 계기가 될 수 도 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가 있다.   This article aims at discovering the link between micro history and some recent publications by Korean scholars in Korean literature written in classical Chinese. In my view, the Koreans share theories and some research- methods with micro historians in the West. They are keen on various life styles of social minority and their strategies for survival; writings of Chong Min, Kang Myonggwan and Ko Misuk are outstanding instances.<BR>  This encourages our hopes that the fusion of the two different disciplines, Korean literature and micro history, leads to the prosperous future. The Korean scholars would describe everyday life of their old people in depth and find out complexity of the historical events and personality; it would enrich micro history in both of theory and practice.

      • 東洋漢文學會 제107차 춘계학술발표대회 발표집

        동양한문학회 동양한문학회 2012 동양한문학회 학술발표대회 Vol.2012 No.-

        일 시 : 2012년 4월 14일(토) 13:30 ~ 18:00 장 소 : 경성대학교 문과대학 122호 영상강의실 주 관 : 동양한문학회 주 최 : 경성대학교 인문대학 한문학과

      • KCI등재

        『朝鮮新報』 한문기사의 계몽적 역할과 의미

        권정원(Jung-won Kwon)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22 동양한문학연구 Vol.62 No.-

        『조선신보』는 1881년 12월 10일, 부산에서 간행된 최초의 근대식 신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이라 불리는 『한성순보』보다 1년 10개월 정도 먼저 창간되었지만, 일본인에 의해 간행되었기에 한국 최초의 신문이라 불리는 것에는 여전히 유보적이다. 메이지 시대 일본인은 해외로 이주하는 경우가 빈번하였고, 거주하는 곳곳에서 일본어로 된 신문을 발간하였다. 조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876년 한일수호조약으로 부산항이 개항되었고, 일본인들이 부산에 대거 이주하자 일본인에 의해 신문이 발간되었다. 일본인 상인이 중심이 된 재부산항 상법회의소에서 旬間으로 간행한 『조선신보』가 그것이다. 『조선신보』는 1건의 한글 기사를 제외하고는 일본어 기사와 한문 기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해외 거주 일본인이 일본어로 신문을 발간하였고, 재조선 일본인이 발간한 초기 신문의 대부분이 일본어 신문이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결국 일본인에 의해 발간된 『조선신보』에 한문 기사가 존재한다는 것은 뚜렷한 목적성을 전제한 것인데, 한문 기사는 조선인 식자층을 계몽하고자 한 것이었다 하겠다. 『조선신보』의 지면은 ‘<표지>-<예언>-<목차>-<영사관록사>-<조선신보>-<잡보>-<부산상황>-<원산통신>-<기서>-<물가표>-<광고>’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한문 기사는 전체 기사의 약 36% 정도를 차지하며, <조선신보>와 <기서>에 집중적으로 실려 있다. <조선신보>와 <기서>는 오늘날 사설과 독자투고란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시사적이고 논리적 주장의 글이 대부분이다. 한문 기사의 실제 내용 역시 부국강병과 국민 계몽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미개하고 야만적인 존재로 인식하였기에, 계몽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았다. 따라서 『조선신보』라는 신문 매체를 통해 조선인을 계몽하고자 했던 것이다. 『조선신보』는 일본인에 의해 창간되었지만, 조선에서 간행된 최초의 신문이다. 조선에 신문이라는 근대 매체가 全無한 시기에 간행된 것이기에, 여러 역할과 성격을 포괄적으로 담을 수밖에 없었다. 부산에서 간행되었지만 전국을 포괄하는 전국지의 역할을 했고, 상법회의소에서 발간되었지만 경제 기사는 물론 정치 문화 사회의 잡사도 실렸다. 일본인이 발간했지만 일본인은 물론 조선인도 독자 대상으로 삼았으며, 정보와 오락거리 제공의 역할도 했지만 계몽의 역할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한문 기사는 조선인 지식층을 독자 대상으로 삼아 ‘계몽’하고자 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고 하겠다. 결과적으로, 『조선신보』는 조선에서 간행된 최초의 신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일본이 조선에서 주도권을 잡게 된 청일전쟁 이전의 대조선 일본인의 인식을 살필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특히 본고에서는 『조선신보』의 한문 기사가 조선인을 독자 대상으로 삼아 계몽하고자 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계몽의 노력은 조선 침략을 위한 일본의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Chosun Sinbo(朝鮮新報)』 was published by Japanese in Busan in December 10, 1881, Korea’s first newspaper. Busan Port was opened in 1876 under the Korea-Japan Protective Treaty, and newspapers were published by the Japanese when a large number of Japanese immigrated to Busan. 『Chosun Sinbo』 consists of Japanese articles and the Chinese character article, except for one Korean article. The existence of Chinese literature articles in newspapers published by Japanese people in Joseon means that Koreans were targeted as readers. And this is the result of a purpose to enlighten Koreans. In the 『Chosun Sinbo』, the Chinese character article account for about 36% of the total, and are intensively published in the <Chosun Sinbo(朝鮮新報)> and <Giseo(寄書)>. Most of the articles of <Joseon Shinbo> and <Giseo> are current events and an editorial articles. Most of the Chinese character articles are also related to the strengthening of the rich country and the enlightenment of the people.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the Chinese character article clearly shows that it contains the intention to enlighten Koreans by targeting them as readers. 『Chosun Sinbo』 is significant in that it is the first newspaper published in the Republic of Korea. In addition, it is very important in that it can examine Japan's position on the Republic of Korea before the Sino-Japanese War, which served as an opportunity for Japan to take the initiative in Joseon.

      • 東洋漢文學會 제111차 춘계학술발표대회

        동양한문학회 동양한문학회 2013 동양한문학회 학술발표대회 Vol.2013 No.-

        일 시 : 2013년 4월 25일 토요일 14:00 ~ 18:30 장 소 : 경성대학교 문과대학 122호 영상강의실 주 관 : 동양한문학회 주 최 : 경성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 KCI등재

        조선시대 여성글쓰기에 대한 사대부남성의 인식과 표기방식

        권정원(Kwon, Jung Won)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15 동양한문학연구 Vol.41 No.-

        조선시대 여성의 글쓰기[문학창작활동]에 대한 사대부남성들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여성의 글쓰기, 즉 문자를 통한 욕망의 표출에 대한 부정이라면, 그것이 한문이든 언문이든 표기방식과 무관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의 경우는 다르다. 여성의 한문글쓰기가 ‘문학 활동 자체가 여성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강력하게 비난받은 것과는 달리, 여성의 언문글쓰기에 대한 제재는 거의 없었다. 이는 사대부 남성들의 한문과 언문이라는 표기방식에 대한 인식에 기인한 것이다. 한문은 중세보편문화의 상징이자, 상층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사대부 남성들은 이를 통해 유교적 사상과 학문을 專有하였고, 이러한 문자사용 능력은 사회적 권위와 신분을 보장하는 상징이 되었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문과 언문이라는 이중 문자를 사용해야 했지만, 사대부남성들의 세계를 유지시키는 문자는 한문이었다. 사대부남성에게 언문은 ‘여항의 비속한 말’, ‘야비하고 상스러운 무익한 글자’이며 ‘한낱 신기한 기예’에 불과했다. 사대부남성에게 한문은 상층의 문화를 대변하는 우월한 것이었고, 언문은 하층의 문화를 드러내는 열등한 것이었다. 이러한 표기방식에 대한 인식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남성:여성=상:하=한문:언문=우월:열등’이라는 인식을 가져왔다. 따라서 여성이 언문을 사용하여 문학 활동을 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었지만, 여성이 상층 남성의 전유물인 한문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대한 불편함이 여성의 한문글쓰기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여성의 한문글쓰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여성의 글쓰기 활동 자체를 제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여성들은 한문을 안다는 사실을 드러내길 꺼렸고, 시문 창작을 하거나 문집을 발간하더라도 죽기 전에 스스로 불태우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결국 사대부 남성의 여성 한문글쓰기에 대한 경계와 비판은 여성 스스로가 언문이라는 표기방식을 채택하도록 하는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Gentry men's evaluation of women's writing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was negative in general. If the negative evaluation is the negation of women's writing, that is, the expression of desires through letters, women's writing should have been evaluated regardless of transcriptional methods, that is, Chinese classics or Hangul. However, it was not the case in the reality. Unlike women's Chinese classics writing that was severly criticized for the reason that ‘Literature activities per se are none of women's business’, women's Hangul writing was hardly restrained. This is due to gentry men's perception of the transcriptional methods; Chinese classics and Hangul. Chinese classics was the symbol of medieval universal culture and an exclusive property of upper class men. Gentry men exclusively owned Confucian ideas and learning through Chinese classics and the ability to use these characters became a symbol that guaranteed social authority and status. Although they had to use two characters; Chinese classics and Hangul after the creation of the Hangul by king Sejong, the characters that maintained gentry men's world were Chinese classics. To gentry men, the Hangul was just ‘an abusive language in the country’, ‘indecent words of middle class communities’ and ‘a novel art.’ To gentry men, Chinese classics was a superior thing that represented upper class' culture and Hangul was an inferior thing that revealed lower class' culture. This perception of transcriptional methods interlocked with neo-Confucian ideology to bring about the perception that men:women=top:bottom=Chinese classics:Hangul=superior:inferior. Therefore, although there was no repulsion against women's literature activities using Hangul, gentry men's inconvenience about the fact that women shared Chinese classics that was an exclusive property of upper class men appeared as negative views of women's writing in Chinese classics. These negative views of women's writing in Chinese classics acted as a factor that restrained women's writing activities perse. Women were unwilling to reveal the fact that they knew Chinese classics and even if they created poetry and prose or published a collection of works, they were unserved in burning it before they died. Eventually, gentry men's vigilance and criticism against women's writing in Chinese classics acted as a factor that made women adopt the transcriptional method termed Hangul by themselves.

      • KCI등재

        儒家 아비투스의 상대화와 근대적 문장관의 출현

        한영규(Han, Younggyu)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12 동양한문학연구 Vol.35 No.-

        1934년대 김태준의 『조선한문학사』가 출간되면서 이건창ㆍ황현ㆍ김택영 이후로 한문학은 완전히 종말을 고했다고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식민지시기에 창작된 한문문장은 여전히 문학사와 연구자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식민지 근대 내부에서 여전히 자기의 생존공간을 지닌 채 활발히 한문문장을 산출하는 문사들이 존재했다. 1924~25년에 김택영과 성순영이 변영만의 문장을 놓고 쓴 상이한 비평문에는, 이 시기 한문문장의 지향과 관련하여 여러 의제가 각축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논문은 1920년대에 한문글쓰기의 지향을 놓고 벌어진 제 문제 가운데, 특히 유가 아비투스를 놓고 벌어진 조긍섭과 변영만의 논쟁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였다. 한문 문장이 근대와 대면하여, 어떻게 당대성을 획득해 나가는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다. 심재와 산강이 주고받은 편지를 살펴보면, 두 문장가 사이에 적지 않은 갈등과 불일치가 발견된다. 이는 당대의 한문 문장을 지향을 놓고 벌어진 매우 중요한 노선 투쟁이기도 했다. 산강은 심재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양의 崇美 高華한 문장과 沈博 壯麗한 작품이 결국 동양의 深味 奧趣가 있는 글에는 못 미친다고 하면서, 동서를 회통한 시각에서의 새로운 한문문장을 지으려고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산강은 이를 ‘한학을 새롭게 해석하여 세상에 널리 펴고자 한다.’는 말로 요약했다. 그러나 심재는 이런 제안에 반대하였다. 심재가 동의할 수 없었던 이유 중의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묵자에 대한 산강의 경도에 있었다. 심재는 묵자를 ‘성인’으로 이해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으며, 이를 양계초ㆍ장병린의 견해를 묵수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산강의 묵자 이해는 동양의 전통을 동서양 회통적 사유 속에서 재발견하자는 의미를 지녔다. 산강은 묵자가 지닌 박애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측면을 매우 높이 인정하였고, 이 점을 활용해 새로운 한문 글쓰기를 시도하고자 하였다. 한문으로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하려면 무엇보다 유가적 아비투스를 상대화 시켜야 했다. 산강은 공자를 ‘유일한 聖人’이 아니라 ‘하나의 聖人’으로 인식해야 했다. 이 지점에서 심재와 산강은 충돌했다. 산강이 “진정한 문인이란 부유한 無家者라야 한다.”고 선언했듯이, 동양적 전통과 서양의 신지식을 이해하고 이를 다시 異化하고 상대화하는 無家者의 길을 가고자 했다. 이 지점에서 근대적 질서에 대응한 새로운 근대적 문장관이 탄생했다고 판단된다. 1920년대에는 한문 문장과 지향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논쟁이 벌어졌다. 김택영은 윤희구와 정인보의 문장에 기대를 걸었으며, 조긍섭은 유가적 전통을 고집하는 소위 동성파 글쓰기의 조선적 구현을 여전히 염두에 두고 있었다. 변영만은 유가적 전통을 상대화하면서 동서를 회통하는 새로운 한문글쓰기를 주장하고 추구하였다. 변영만의 동서 회통의 한문글쓰기와 정인보의 實心實學의 한문글쓰기는 1920년대 이후에 근대적 한문글 쓰기로 나름의 생존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요컨대 유구한 전통을 지닌 한문글쓰기는 근대적 충격과 근대적 질서 속에서 내부 경쟁과 자기 갱신을 통해 근대적 글쓰기로서 차츰 전환하고 있었던 것이다. This paper intensively explores the debate between Geung-seop Jo and Yeongman Byeon aboutadhering to Confucian Habitus, among other issues addressed with respect to the orientation of writing in Chinese classic. Considerable conflicts and disagreement are found from the letters between the two writers. These also constituted a very important line struggle around the orientation of the contemporary sentences in Chinese classic. In a letter to Jo, Byeon even a splendid Western text does not parallel a profound Oriental writing. Thus, Byeon revealed his ambition to compose Chinese classic sentences in novel forms from a thorough view of Oriental and Western literature. He summarizes this into a sentence ‘I would like to unfold Chinese classic studies for the world by newly interpreting them.’ Then, he asked Jo to join him with his plan. However, Jo opposed to this proposal. The core reason why Jo did not agree lay in Byeon’s bias toward Mozi. Byeon tried to relativize Confucian Habitus. He recognized Confucius not as the ‘only saint,’ but ‘one saint.’ At this point was born a new early modern view of sentences. Chinese classic writing, with a long tradition, was progressively shifting to early modern writing via competition and self-reforms among internal powers in the early modern shock and modern order.

      • 東洋漢文學會 제112차 하계학술발표대회

        동양한문학회 동양한문학회 2013 동양한문학회 학술발표대회 Vol.2013 No.-

        일 시 : 2013년 7월 20일 토요일 14:00 ~ 18:30 장 소 :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사회대 BA907강의실 주 관 : 동양한문학회 주 최 : 동아대학교

      • KCI등재

        선교사 기일[James Scarth Gale]의 한문 교과서 집필 배경과 교과서의 특징

        남궁원(Namgung Won)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07 동양한문학연구 Vol.25 No.-

        奇一[J. S. Gale]은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이다. 그는 1888년 12월 15일에 조선에 도착하여 선교 활동을 시작하면서 한국의 언어와 문자 및 교육 등에 깊은 관심을 갖고 많은 저술 활동을 하였다. 한국의 현실 정황과 학문적 전통으로 보아 한문 학습이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알게 된 기일은 한문 교육에도 주의를 쏟았다. 그러나 기일은 기록 수단에 불과한 한문 그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웠으며, 결국 한문이 숭배 받는 이유가 한문과 유교가 동일체로 인식되기 때문임을 간파하였다. 궁극적 목적인 기독교 선교를 위해서는 유교의 약화 또는 배제가 필요했고, 한문과 유교를 한꺼번에 둘 다 버릴 수 없었으므로, 마침내 한문과 유교의 분리를 도모하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 하에 탄생한 한문과 교과서가『유몽천자』시리즈이다. 아울러 한국의 전통 교육이 한문을 학습하되 중국의 인물, 역사, 작품등에 치우쳐 있는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여 『유몽속편』을 기획하고 한국의인물, 작품만을 교과서에 담았다. 또한 낱낱의 한자 학습을 강조하여 정확한 읽기를 강조하였다. 『유몽천자』는 시리즈로 기획하여 권차별로 단계를 높여가도록 내용을 구성하였다. 제1권은 한자어 중심, 제2권은 한자어, 한문, 제3권은 한문 중심이다.『유몽속편』은 선인들의 한문 작품을 그대로 실은 것이다.『유몽천자』의 내용은 다양하다. 서양 문물 소개가 중심인 반면, 중국의 전통 작품이나 유교 경전은 배제되어 있다. 본격적인 단원 학습에 앞서 신습 한자를 익히게 배치한 것이라든지 책의 말미에 자전을 둔 것은 한자 학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시도였다. 기일의 한문 교육은 ‘한문’을 가르치는 것이긴 하지만 전통 교육 방식과 내용은 모두 부정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한문 교과서에서 유교 경전이 매우 미약한 분량으로 들어있고, 우리나라의 글들이 중국의 글보다 더 많은 점, 그리고 단원 구성시 한자 소개를 본문과 병행하여 제시하는 등 형식적인 면에서 기일의『유몽천자』는 한문 교육의 방향을 새롭게 바꾸었다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J. S. Gale was a missionary who came from Canada. In 1888, he left for Joseon to preach gospel. He was fully taken up literary work concerning Joseon"s culture, education and language. According to the current of the times, he also paid attention to Chinese education because Chinese learning was essential in those days. Yet he didn"t understand that Joseon"s situation of making an idol of Chinese classics. he carried out separation of Chinese classics and Confucianism. Korean Reader: the thousand character series published with fulfilling above these aims. To improve a biased view concentrating on figure, history, and literature of China mostly, issued Korean Reader: Number Ⅳ too. Korean Reader: Number Ⅳ listed figure and literature of Joseon only. He emphasized right reading and learning of Chinese character. Korean Reader: the thousand character series was made in series. This series leveled up step by step. The first volume contained Chinese characters. The second mixed Chinese character with Chinese writings. The last also covered Chinese writing. It put an Chinese writings of foregoer in a Korean Reader: Number Ⅳ. Korean Reader: the thousand character series contained a wide variety. To the exclusion of traditional Chinese writings and the Confucianism scriptures, it was based on western cultures. Before starting learning units, it was placed now Chinese characters to practice ahead. Furthermore dictionary at the end of the book. Regarding Chinese education, he taught Chinese writings by not a traditional style and contents of education but a new form and contents. Thus what is important is groping direction of Chinese education about contents and forms in Chinese writings.

      • 東洋漢文學會 제115차 춘계학술대회

        동양한문학회 동양한문학회 2014 동양한문학회 학술발표대회 Vol.2014 No.-

        일 시 : 2014년 4월 26일 (토) 14:00 ~ 18:30 장 소 : 신라대학교 사범관 325호 원형강의실 주 관 : 동양한문학회 주 최 : 신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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