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齊藤明美(사이토아케미) 동아시아일본학회 2010 일본문화연구 Vol.33 No.-
일본에 있어서 1944년 봄에 결성된 「국어학회」가 60해를 맞이한 2004년 1월1일에 「일본어학회」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또 「국어학회」설립 후, 조금 뒤인 1948년 10월에는 「국어학회」의 기관지로 『국어학』이 간행되었고, 이것은 통권 220호 (2005년 1월)부터는 『일본어의 연구』라는 이름으로 간행되고 있다. 학회명을 「국어학회」에서 「일본어학회」로 변경하고, 학회지명을 『국어학』에서 『일본어의 연구』로 변경한 것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그 논의를 통하여 일본에 있어서, 일본어 연구의 실상과 문제점이 밝혀짐과 동시에, 현대 일본에 있어서 「국어학」과 「일본어학」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가 밝혀졌다고 생각된다. 본고는 일본에 있어서 「국어학」과 「일본어학」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와 개념에 대해서, 그리고 국어학회의 결성 및 학회명 변경에 따라 행해진 논의를 중심으로 언급한 것이다.
임우경(Im, WooKyung) 동아시아일본학회 2022 일본문화연구 Vol.- No.81
본 논문은 전후 일본, 한국, 대만에서 잇달아 설립됐던 군 위안소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2차 대전 후 유독 동아시아에서 성매매근절이라는 국제적 흐름을 거스르는 군대 성매매업소가 등장하게 된 역사적 맥락을 분석한다.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군 ‘위안소’의 연쇄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소’ 제도의 부활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일본의 패망 이후에도 철저한 일제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더 중요한 원인은 전후 동아시아 냉전질서 구축과정에서 찾아볼수 있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중국의 국공내전과 국민당의 대만 패퇴 등 한반도와 중국 양안의 분단 및 전쟁이야말로 전후 동아시아 군 위안소의 연쇄를 발생시킨 가장 직접적인 배경이었다. 일본군 ‘위안소’는 전후 일본의 미군 특수위안시설협회로, 한국의 한국군특수위안대와 연합군위안소로, 대만의 국군특약다실로, 그리고 아시아 각지의 미군기지촌으로 부활했다. 그렇게 보면 20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는 한 편으로 군 위안소 연쇄의 역사였다고 할 만하다. 군 위안소 연쇄의 역사는 동아시아에서 식민주의 및 제국주의 전쟁이 전후로도 이어졌다는 것, 즉 서구에서 ‘긴 평화의 시대’로 일컫는 냉전시대에도 전쟁이 끊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아직도 오키나와나 한국 등에 남아 있는 기지촌은 그 전쟁이 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일본군 ‘위안소’ 문제를 어느 일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차원에서, 그리고 식민주의 문제만이 아니라 냉전의 문제로도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This paper briefly examined the series of contexts in which the Japanese military"s “comfort center” did not disappear and revived even after the war.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center” was revived as Japan"s US military special comfort facility association after the war, Korea"s Korean military special comfort zone and allied comfort center, Taiwan"s military special contract tea room, and U.S. military base villages in various parts of Asia. In that sense, it can be said that the history of East Asia in the 20th century was, on the one hand, the history of the military comfort center chain. The history of the military comfort center chain is a disproving that the war continued before and after the colonial and imperialist wars in East Asia, that is, even in the Cold War era, referred to as the “era of long peace” in the West. Base villages that still remain in Okinawa and Korea show that the war has not ended until now in the 21st century. This is why the Japanese military"s “comfort center” problem should be viewed as a historical problem at the regional level in East Asia, not at any one-national level.
경성제대 예과 학생들의 1930년대 ‘조선(朝鮮)’상 연구
김욱(Kim, Wook) 동아시아일본학회 2017 일본문화연구 Vol.0 No.62
본고는 잡지 경성제국대학 예과 일본어 문예잡지 『청량(清凉)』을 중심으로 1930년대 초기의 경성제대 예과 학생들이 공유하던 식민지 ‘조선’에 대한 언설들을 살펴보는 글이다. 1931년에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고 야마다 사부로(山田三良)가 경성제국대학 총장으로 오면서, 제대 안에서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제국의 일원으로서의 ‘조선’의 역할이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의도는 ‘대일본제국’을 위한 신민으로서의 조선상(朝鮮像)이었지만, 경성제대 예과 일본어잡지 안에서 투영된 조선상은 그들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재조일본인과 조선인 학생들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조선상을 창작물안에 있는 그대로 투영하였다. 재조일본인 필자는 일본의 정책에 의해 급속한 변혁을 거치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조망하며 근대화와 자본주의화에서 유리되어 있는 ‘조선’ 고유의 모습을 감지하였다면, 조선인 필자는 ‘농민’이나 ‘사회적 약자’ 혹은 갑작스러운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희생당한 민중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변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조선’ 혹은 조선인의 모습 그 자체에 주목하였다. 이와 같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비판이 담겨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지’에서는 사회주의 언설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기에 경성제국대학 예과 잡지인 청량에서 일본어를 사용해 비판 혹은 풍자의 방식으로 제국 일본이 이루어낸 식민지의 자본주의사회를 묘사한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examine how progressive literature spread in Keijo Imperial University in the 1930s. One textual object of focus is a Japanese-language magazine that Korean and Japanese students played an active part in producing, as editors and writing staff. The Cheong-ryang served as the official, all-round magazine for Keijo Imperial University, reporting intramural news besides publishing a literary section. However, as Kazushige Ugaki took over as the new governor-general of Chosun in the 1930s, and as Saburo Yamda became the president of Keijo Imperial University, the role of Chosun was emphasized. Hence, the Japanese in colonial Chosun, as well as Koreans themselves, appropriated views of Chosun and adapted them in literature according to necessity. Socialism, the predominant ideology of that era, was espoused by prose writers, and several novels having a proletarian tendency. The Japanese in colonial Chosun mirrored mainland tendencies, and Koreans paid attention to peasant or disenfranchised experiences, borrowing the form of the socialist novel to honestly reveal the situation in Chosun. This thesis concludes that there was a demonstrable change in political perception through the 1930s among Keijo Imperial University’s Korean students, and among Japanese students living in Korea.
朴英淑(박영숙) 동아시아일본학회 2012 일본문화연구 Vol.41 No.-
통감부시대의 교육정책과『일어독본』(학부편찬1907~1908년전8권)분석을 통해 동시대 일본어교육의 실태를 규명하고자 시도하였다. 일본은 군사적 압력을 배경으로 한일협약을 체결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한국에 대한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여러 교육제도의 정비를 전개하였다. 보통학교령에 근거한 보통학교용 『일어독본』은 1907년4월부터 사용할 수 있게 편찬되었고 동년 俵孫一는 학부차관이 되어 한국 교육행정의 주도권을 쥐고, 보통학교를 중심으로 한 초등교육제도의 학제를 개혁하였다. 각 학교에 일본인교사를 배치하고 학교감독권을 부여하여 일본어보급에 힘을 쏟았다. 본 연구는 이시기에 초등학교 일본어교육을 위해 편찬되어, 보통학교에서 사용된『일어독본』의 내용과 한자를 분석을 하였다.『일어독본』에 등장하는 일본인등장인물 총수(46명)는, 조선인(15명)등장인물보다 3배가 많고, 출현빈도수로는 조선인56회에 비해 일본인227회로 4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합병 후의 국어교과서와 비교해 보면 더 큰 차이를 보여준다.『일어독본』은 권1제1과부터 가나학습이 아닌 한자학습부터 시작되고, 한자에 익숙한 조선아동이라는 인식에 기초하였다 (서당에서 어느 정도의 한자학습을 습득하였다)는 전제하에 편찬되었다고 사료된다. 한자분석에서 전8권을 통해 초출한자의 총수는 1,017자이다. 일본제1기 국정국어교과서에서 사용한 초출한자는 873자 (소학교 시행령에 의해 지정한자500자) 이다. 조선의 보통학교에서 시행된 일본어교과서의 학습한자가 일본국어교과서보다 많은 것은 주목할 만한 수치이다. 『일어독본』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 과정인 보호기에 신설된 보통학교에서 4년간 필수과목으로 사용된 최초의 제2외국어 교과서로서 일제의 일본어교육의 구체적 목표와 그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정효운(Jung, Hyo Oon) 동아시아일본학회 2016 일본문화연구 Vol.0 No.60
일본인의 종교적 특징의 하나는 인구보다 종교인구가 많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2014년 일본 문화청 종교법인의 종교 통계조사에서도 종교 신자가 총인구의 1.5배로 나타났다. 이것은 일본인의 이중적 종교관과 사생관에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고에서는 역사적 관점에서 일본인의 이중적 종교관의 원인과 기원 문제를 일본 최초의 관찬 사서인 『日本書紀』의 분석을 통해 접근하고자 하였다. 연구방법으로는 사생관을 영혼관과 타계관으로 나누고, 이와 관련된 용례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고대 일본인의 영혼관에는 영혼을 ‘靈’과 ‘魂’, ‘鬼’와 ‘神’ 등으로 구별하는 사고가 있으며, 타계관에는 ‘黃泉’과 같은 신도적 타계관과 ‘常世’와 같은 도교적 타계관 그리고 ‘淨土’와 같은 불교적 내세관이 상호 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런 혼재된 사생관은 민간신앙인 神道의 바탕 위에 유교, 불교, 도교와 같은 외래 종교의 사생관이 영향을 미친 결과이며, 현대 일본인의 중층적 종교관의 기원은 불교 수용기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고, 그 유래는 『일본서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I think that it is characteristic of Japanese religion that the number of people adhering to various religions is greater than the population of Japan. It is thought that this is connected with Japanese duality of religious views and view of life and death. In this study, I examine the cause of Japanese duality of religious views and the problem of its origin through analysis of the Nihonshoki, which is the first history book published by the Japanese state, from a historical point of view. As a result, I understood that the ideas of Taoism and Buddhism coexisted with Shintoism in the ancient Japanese outlook on death. Such a cause is the result that foreign religion such as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had an influence on Shintoism. The origin of modern Japanese double religious view can be seen from Nihonshoki.
?柳?子(아오야기 에쓰코) 동아시아일본학회 2010 일본문화연구 Vol.36 No.-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일본에서 일본 문학?문화를 연구하고 있고, 한국은 일본연구 전반에 걸쳐 상당한 수준에 올라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글로벌 시점에서 일본연구를 개척해 나가야 할 때이다. 전통적인 문학연구는 각 국가별로 나누어져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대학의 문학부는 중국문학, 영문학, 불문학, 러시아 문학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종합문학’ 전공자들은 각 국가별 문학연구자의 ‘아류’나 ‘이류’ 연구자로 간주될 우려가 있다. 여기서 잠깐 작년에 간행된 본인의 저작 『데리다로 읽는 『천일야화』』(新曜社) 내용을 잠깐 소개하려고 한다. 여기에서 본인은 세계적 시야의 문학연구, 사회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 기반과 직결되는 논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저작의 전반부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론인데, 그의 다양한 저작 중에 「범례성」이라는 개념을 추출하여 ‘문학’ 일반의 의의를 고찰했다. 후반부는 「범례성」의 개념을 체현하고 있는 문학작품으로서『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를 새로이 조명했다. 『천일야화』는 ‘범용성’을 보이면서도 경계를 넘어가는 ‘월경성’(越境性)이 가장 뛰어난 텍스트라 볼 수 있다. 다시 일본연구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일본의 사례에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범례’로 삼고, 여기에서 널리 인류 전반을 생각하는 자세야말로 지금 현재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 활발해지고 있는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 연구자들의 공동연구에 크게 기대를 하고 있다. 일본이라는 한 나라에 갇힌 연구가 아니라 아시아연구, 혹은 동아시아연구라는 틀 안에서 새롭게 고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