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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용성 대각사상의 생사관 연구

        문현공 대각사상연구원 2019 大覺思想 Vol.31 No.-

        Yongseong(龍城), one of the representative Seon(禪) masters of modern Buddhism, emphasized Daegak(大覺) thought and established the theory and practiced it in reality. Daegak means beopseong(法性), jeonggak(正覺), and the Buddha. In this article, I focused on Beopseong and searched for life and death perspectives of Daegak Thought. First, I looked at Daegak's definition of death. In Daegak Thought, death is defined as the separation of the hun-p'o(魂魄) by a view of Confucianism, including the halting of the physical function of breathing arrest and the collapse of sadae(四大). However, Yongseong defines death as taking the two dimensions of saengmyeolsim(生滅心) and jinmyeongsim(眞明心) and denies both of annihilationism(uccheda-vādin) and eternalism(śāśvata-vāda) so that the body is born or disappears but jinmyeongsim is not. Second, I looked at the background of life and death by looking at Daegak Thought's reincarnation, and the inheritance process after birth. Yongseong says that reincarnation occurs because of karma, and that the endogenous life can be understood through the action of body temperature and vijñāna. He explains that if body temperature goes down and disappears, it is born in evil destinies, when body temperature rises and disappears, it is born in good destinies, but vijñāna acts in the flow of body temperature. He said, when the body is destroyed in the process of inheriting life after death, jeongmyosaekgeun(淨妙色根) becomes the foundation of inheritance, and based on ālayavijñāna, the seed of good and evil is ripe and antarā-bhava inherits with seeds. However, Yongseong emphasizes that such processes are vanity in the ultimate view of Daegak and ultimately the function of avidyā. Finally, I searched Daegak thought's perspective on the solution of death in theory and practice. Yongseong points out that the cause of birth and death is karma caused by habits, and the power of karma arises from avidyā. He explains the working principle of avidyā through Dasheng qixinlun(大乘起信論), and says that he must go beyond avidyā and into the world of Daegak without death. The practical aspect is centered on Yongseong's book, Imjonggyeol(臨終訣), which says that everyday practices exert their power when dying. Also, Yongseong said that through karma's power of practices, we could get nirvāna from life and death if we faced the causes of various appearances at the moment of dying. Lastly, he said that even if one did not achieve enlightenment before one’s death, the power of practices will be manifested at the time of dying, and it is also the driving force behind achieving enlightenment after death. 근대불교의 대표적 선사인 용성은 대각사상을 강조하며 이론을 정립함과 동시에 현실 속에서 실천했다. 대각(大覺)은 도처에 편재하는 법성(法性), 정각, 석가모니불 등을 의미하는데 본 글에서는 법성에 초점을 두고 대각사상의 생사관을 탐색했다. 본문에서는 먼저 대각의 죽음정의를 알아보았다. 대각사상에서 죽음은 호흡정지 및 사대(四大)의 붕괴라는 육체적 기능의 정지를 포함해 유가의 관점을 빌려 혼백(魂魄)의 분리라 정의된다. 그러나 용성은 생멸심과 진명심(眞明心)의 두 차원을 들면서 단멸론과 상주론을 부정하고 육체는 생멸하나 진명심은 생멸하지 않는다고 죽음을 정의한다. 둘째로, 대각사상의 윤회설과 사후생의 상속과정을 보면서 생사발생의 배경을 살펴보았다. 용성은 윤회가 업력으로 인해 일어나는데 내생처는 사망시의 체온의 이동을 관찰하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체온의 흐름이면에는 식의 작용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사후생이 상속되는 과정에서 육신이 소멸하면 정묘색근(淨妙色根)이 상속의 의지처가 되고 아뢰야식의 토대위에 선악의 종자가 이숙되고, 중음신이 종자들을 품고 상속이 진행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용성은 이러한 과정들은 결국 무명의 작용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대각의 생사해결에 대한 관점을 이론과 실천적 측면에서 탐색했다. 용성은 생사의 원인이 습관으로 인한 업력 때문이며 이는 무명에서 연유한다고 언급한다. 그는 무명의 작동원리를 기신론 사상을 통해 설명하면서 무명을 넘어 생사가 없는 대각본연성(大覺本然性)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실천적 측면은 「임종결」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용성은 평상시의 수행이 임종시에 그 힘을 발휘한다고 강조한다. 수행한 습기(習氣)의 힘을 통해 임종시 일어나는 여러 상들의 원인을 직시하면 생사해탈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생전에 깨달음을 얻지 못했어도 수행했던 힘은 임종시에 발현되며 또한 임종 이후 깨침에 이르게 할 동력이 될 것이라 말한다.

      • KCI등재

        백용성의 사상과 화과원에서의 저술활동

        이수창(마성) 대각사상연구원 2017 大覺思想 Vol.28 No.-

        백용성의 사상은 한마디로 ‘大覺思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터득한 ‘깨달음(覺)’을 세상에 널리 펼치기 위해 ‘大覺敎’라는 새로운 교단을 창립했다. 그가 말한 ‘大覺’이란 곧 本覺, 始覺, 究竟覺을 일컫는다. 본각이란 佛과 祖師가 나기 전부터의 본래 깨달음 자체를 말하고, 시각이란 일체중생의 성품은 본래 깨달음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며, 구경각이란 본각과 시각이 둘이 아닌 하나로 완성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이 백용성의 大覺思想이다. 백용성은 자신이 터득한 이 대각사상을 전파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화과원은 농장이나 과수원이라기보다 수행도량, 즉 ‘수도원’이나 총림의 성격에 가깝다. 백용성이 꿈꾸었던 화과원은 禪․敎․律을 兼修하는 청정한 수행도량, 즉 叢林이었다. 실제로 이곳에 禪院이 개설되어 운영되었다. 조선불교선종총림 종주 백용성이 1938년에 발급한 安居證書가 남아있다. 이러한 증거을 통해 볼 때 화과원은 외부와 차단된 ‘수도원’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용성이 입적한 이후에도 화과원은 그 제자들이 치열하게 수행하고 佛學을 연찬했던 수행도량이었다. 백용성이 만년에 저술한 세 가지 종류의 책을 통해 그의 불교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晴空圓日』에서 자신이 창립한 대각교의 핵심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吾道의 眞理』와 『吾道는 道』라는 소책자는 대각교에서 말하는 大覺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보다 쉽게 서술한 것이다. 특히 『오도의 진리』와 『오도는 각』은 대각교가 해체된 이후에 저술되었다. 대각교는 1936년 경 해체되었고, 1938년 朝鮮佛敎禪宗에 편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용성은 병든 몸으로 자신의 대각사상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오도의 진리』와 『오도는 각』을 저술했다. 이를 통해 백용성이 비록 당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대각교』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지만, 끝까지 대각사상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Baek Yongseong's thoughts can be described ultimately as 'Daegaksasang(Supreme Enlightenment)'. He established a new Buddhist order 'Daegakgyo(Supreme Enlightenment Foundation)' for the purpose of propagating 'enlightenment' he had reached. 'Supreme Enlightenment' he mentioned contains bongak(本覺), sigak(始覺) and gugyeonggak(究竟覺). Bongak means the original enlightenment itself before Buddha and the buddhist master were born. Sigak indicates we have grasped that the nature of all sattva(sentient beings) is originally enlightenment. And gugyeonggak signifies that bongak and sigak are not two but one complete state. Baek Yongseong dedicated his whole life to the propagation of Daegaksasang he had mastered. Hwagwawon is rather similar to a 'Buddhist monastery' or monastic teaching center than to a farm or orchard in its nature. Hwagwawon Back Yongseong dreamed of was a pure and immaculate practice hall, a monastic teaching center in which zen meditation, doctrines and vinaya(orders) were trained and taught all together. In fact, a meditation hall was opened and operated there. A retreat certificate issued in the year of 1938 by Baek Yongseaong, the supreme patriarch of Seonjong Chonglim of Joseon Buddhism, has been handed down to date. With these evidential documents, it seems that Hwagwawon played a role of 'monastery' secluded from the outside. Even after Baek Yongseong passed away, Hwagwawon was a practice hall where his disciples intensely cultivated and pursued Buddhist studies. His view of Buddhism can be grasped through the three books Baek Yongseong wrote in his late years. He put systematically in order the core doctrines of Daegakgyo he had established in Cheonggongwonil(Pure Sky and Round Sun). And in booklets The Truth of Odo and Odo Is Do, he plainly described the meaning of Supreme Enlightenment preached in Daegakgyo. It is needless to say these were written to propagate the idea of Supreme Enlightenment widely. The Truth of Odo and Odo Is Do were especially written after Daegakgyo had been dissolved. Daegakgyo was disbanded around the year 1936 and incorporated in Joseon Buddhism Seonjong in 1938. Nevertheless, Baek Yongseong created The Truth of Odo and Odo Is Do on his sickbed in order to spread the idea of Supreme Enlightenment. We understand from these facts that though Daegakgyo had to be dissolved due to various unfavorable circumstances, Baek Yongseong didn't give up his belief in Supreme Enlightenment to the end.

      • KCI등재후보

        『각해일륜』분석 - 동북아사아불교의 전통과 관련하여 -

        신규탁 대각사상연구원 2008 大覺思想 Vol.11 No.-

        이 논문은 용성스님이 쓴 『覺海日輪』의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이 분석을 시도함에 있어 필자는 동아시의 불교의 전통이라는 시야를 적용하였다. 이 책은 모두 4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권과 제2권에서는 인간 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교리적으로 설명했고, 제3권에서는 참선 수행에 필요한 실천적인 방법을 설명했고, 제4권은 『육조단경』의 요점을 추려서 한글 번역하고 해설했다. 이 책의 제1권과 제2권에서 사용한 교리는『화엄경』속에 나오는 ‘一心 緣起’ 철학과, 『기신론』에 나오는 ‘一心二門’ 철학과, 『능엄경』및『원각경』에 나오는 ‘圓覺妙心’철학이다. 이 철학을 하나의 용어로 표시하면 ‘法性의 철학’이다. 그리고 3권과 4권에서는 간화선 수행에 필요한 ‘의심’ 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용성의 이런 사상은 동북아시아 특히 중국과 한국의 전통적인 불교 역사와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는 그의 이런 사상을 이런 전통 위에서 사상사적 위치를 분명하게 했다. 용성스님이 동아시적인 법성의 철학을 수용하게 된 출발점은 자신의 선불교적인 체험에서 시작한다. 이런 선불교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용성스 님은 당시 한국에 유행하는 법성의 철학 체계로 구축된 전통 강원의 이력을 본다. 이렇게 이력을 보면서 터득한 자신의 철학을 그는 ‘大覺思想’ 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하여 그는 일생을 통하여 이 ‘大覺思想’을 보급 하는 운동을 펼쳤다. The thesis which is the analysis of The Kak-hie-il-ryun; 覺海日 輪by Bek, yiong-sung; 白龍城(1864-1940) who were a monk. As the practice through the analysis, it is used traditional sight of East-Asia Buddhism. The book is consist of 4 volumes, the first and second volume: explain about "What is the human-bing?" through Buddhist doctrine method, the third volume: explain about practical method of Zen-meditation, the forth volume: translate and interpretation of The yuzutuanjing; 六祖壇經from the focus. The using theory of the first and second volume that 'The philosophy of 'Yixinyuanqi; 一心緣起'of The Huayanjing; 華嚴經and 'The philosophy of One mind's two dimension; 一心二門' of The Qixinlun; 起信論, also 'The philosophy of Pure Mind; 圓覺妙心'of The lengyanjing; 楞嚴經and The yuanjiaojing; 圓覺經. These philosophy indicate of the one term which is called 'The dharmatā philosophy; 法 性哲學'. And the third and forth volume that emphasize 'doubt' of the needs to 'The kanhua-meditation; 看話禪' ptactice. The idea of Bek, yiong-sung is equally blows East-North Asia especially China and Korea traditional Buddhism history. The thesis tried that his idea located over above tradition clearly. The start of accommodation about East-Asiatic 'The dharmatā philosophy; 法性哲學' by Bek, yiong-sung which is following personal experience of Zen-Buddhism, he had finished the traditional buddhist academy's curriculum at that time in korea. As the getting theory of finishing master, he is called 'Dai-kag-sa-sang; 大覺思想'. Therefore he was come into spread all over that sang throughout his whole life.

      • KCI등재

        김성숙의 불교사상과 그 變容

        차차석 대각사상연구원 2011 大覺思想 Vol.16 No.-

        운암 김성숙의 정치관 속에 투영된 불교사상과 그 변용은 어떠한 양상 일까. 김성숙은 출가하여 전통적인 불교교육을 받고, 중국으로 유학을 떠 난다. 이후 현대적인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사회주의 운동, 독립운동, 그리고 해방 이후 통일운동을 통해 일생을 국가와 민족에게 헌신하며, 동시에 일생을 통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정치사상에 불교적 영향이 다양하게 투영되어 있다. 자료 적인 근거를 가지고 특정한 불교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논할 수는 없지 만 그의 정치사상에 불교적 가치가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다양한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추구한 것은 민본과 무저항 비폭력의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는 것 이었다. 그러한 국가 건설의 전제조건이 민족의 독립과 자존이며, 해방 이후에는 민족적 정치적 통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김성숙의 사상 속에 서 불교의 자비사상에 입각한 정치관, 사회관을 살펴볼 수 있었으며, 다 른 한편으로 화엄사상이나 선사상에서 중시하는 원융사상의 영향도 살펴 볼 수 있다. 그것은 대립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회통을 지향하는 것이었 다. 그의 정치사상에 투영된 불교적 영향은 순수한 불교, 그 자체라 말할 수는 없다. 서구에서 들어온 현대적인 학문 내지 정치철학과 불교가 결 합한 것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불교사상이 현대사회에 필요한 만큼 변 용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상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훈고학적 전통 에 묶여 있는 것보다는 실용적으로 변용되는 것이 필요하며, 그것이 대 중의 요구와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오히려 그것이 부처님의 가 르침에 한 발자욱 더 다가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김성숙의 일생은 다사다난했지만 불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고 평가하더라도 결코 손색이 없는 훌륭한 불교운동가였다고 평 가할 수 있다. I tried to look into about the Buddhism thought reflected in the politics of Unam Kim seong suk and the metamorphosis. He became entering the priesthood and took traditional Buddhism education and then he left to study abroad to China. After studying modern politics, economics, socialist movement, and the independence movement, then He devoted himself to a nation and race through the unity movement after the liberation. At same time, He showed the thought of various spectrum through the all his life. But Buddhism influence is reflected at his politics thought variously. I can not discuss with the basis to be the data in that he took the influence of specific Buddhism thought. His politics thought is inhered Buddhism value strongly and I can confirm the point through various analysis. His politics thought might have been erected at the foundation of Buddhism thought and whether it is possible to be a pointless argument. His pursuit was to build a democratic republic of democracy and non-violent and non-resistance. The prerequisite condition of such nation construction is the self-respect with the independence of the race. It was a national and political unity after the liberation. In the thought of such Kim-seong suk, I could look into a political and social view which bases on at the mercy thought of Buddhism. On the other side, I could look into the part of a complete fusion with considering the value of The Avatamska sutra or Zen thought. It was to intend the unity and fusion over opposition and trouble. Buddhism influence which is reflected at his politics thought was genuine Buddhism but it could not say itself. Modern study in Western Europe or political philosophy may be combined Buddhism and either the Buddhism thought can be the metamorphosis as much necessary to the modern society. but considering evanescent actuality, it need to become the metamorphosis practically than in binding exhortation tradition. If it is to need for masses's requirement and salvation, Rather it is considered to approach one step more for teaching of Buddha. In that sense, the life of Kim-seong suk was eventful, but he devoted to realize Buddhism value through his lifetime. I can evaluate that he was ever great Buddhist activist and it would never be inferior to evaluate.

      • KCI등재

        『백용성 대종사 총서』 발간 경위와 성격

        이재수 대각사상연구원 2017 大覺思想 Vol.27 No.-

        본 논의는 근대시기의 불교계의 고승인 백용성이 남긴 자료를 조사 수집하여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백용성 대종사 총서』 발간을 수행한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아울러 총서의 성격과 향후의 과제는 무엇인지를 규명할 것이다. 백용성의 사상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재)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의 활동과 실천적 토대 위에서 『백용성 대종사 총서』가 발간되었다. 이는 1991년 도문스님이 주도한 『용성대종사 전집(18책)의 출간과 1998년 대각사상연구원의 연구사업이 토대가 되었다. 2012년 2월 한보광에 의해서 『용성 대종사 전집』을 전면 재조사 및 번역을 통하여 『백용성 대종사 총서』 발간 및 전산화 사업은 시작되었고, 대각사상연구원과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의 협력사업으로 추진되었다. 2013년부터 관련 연구자들이 백용성의 저술을 번역하고, 총서편찬위원회에서는 원고를 증의하고 교정하였다. 2년 동안 증의와 윤문을 통해 원고를 정비하였다. 31종의 문헌과 20,533.6매와 신발굴자료 2,705매, 총 23,238.6매의 원고를 가지고 발간 작업을 수행하였다. 2016년 10월 말에 『백용성 대종사 총서 Ⅰ그룹은 8권, 4,898쪽, Ⅱ그룹은 12권 9,222쪽, 총 20권 14,120쪽의 총서를 출간하였다. 논자는 『백용성 대종사 총서』의 성격과 가치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백용성 대종사 총서』는 백용성의 업적을 선양하고 그의 사상을 실천하려는 공동체의 협력 사업으로 발간이 진행되었다. (재)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가 주관하고 대각사상연구원,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 동국대출판부가 4년간 정성을 기울인 조직적, 협력작업의 성과이다. 둘째, 현재 한국불교가 나아가야할 좌표를 담았다. 과거 근대시기에 불교개혁, 대중화와 대각교 운동을 펼친 백용성의 가치를 발견하고, 현재에 이를 계승하고, 미래에 전승하기 위한 사상을 담았다. 이를 위해 전문가에게 우리말로 풀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을 맡기고, 총서의 통일을 기하기 위하여 증의 및 윤문을 하였다. 셋째, 기존의 자료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신발굴자료를 집대성하여 기 고문을 비롯한 9항목 163종 339건을 발굴하여 수록하였다. 여기에 백용성 관련 연구의 권위자인 김광식의 연구역량이 발휘되었다. 넷째, 『백용성 대종사 총서』의 발간에 그치지 않고 총서의 가치를 배가하고 확산하기 위해 전산화 사업과 함께 하였다. 색인, 총목차, 해제, 연보와 참고문헌 등 관련 정보를 제공하여 백용성 관련 연구를 총망라하였다. 다섯째, 『백용성 대종사 총서』는 불교학 연구의 새로운 기반을 구축하였다. 백용성 관련 원전연구 및 번역본을 통한 사상의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근대불교 및 한국불교 고승의 수행과 관련 인물 및 사건 정보 등 다양한 분야로 연구를 확산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였다. 향후 총서에 담긴 신발굴자료는 백용성 관련 연구 및 근대불교연구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데 이바지 할 것이다. 총서의 결과를 아카이브로 구축해 인터넷 서비스를 하여 총서의 활용도를 극대화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백용성과 불교고승 및 근대불교는 물론 관련 인문학 연구의 확산에 기여할 것이다. 본 논의를 통해 『백용성 대종사 총서』 발간의 과정과 성격에 대해 이해하고 관련 연구와 다양한 활용에 이바지하기를 기원한다. 앞으로 전산화 사업을 통해 백용성의 가치가 불교계를 넘어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하는데 함께 하고자 한다. This paper presents an arrangement of processes involved in the publication of A Collection of the Great Master Baek Yong-Seong, which was published through the investigation, collection, identification, and systematic arrangement of the materials left by him, who was a high Buddhist priest during the modern time. This study further set out to examine its nature and future tasks. The Series was published based on the activities and practical foundation of Daegakhoi under the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 which was formed to inherit and practice Baek's ideas. Its publication was on the basis of The Complete Collection of Grand Master Yong-Seong(18 volumes), whose publication was led by Buddhist Priest Domun in 1991, and the research project of Institute of Maha Bodhi Thought in 1998. In February, 2012, the project of publishing and computerizing A Collection of the Great Master Baek Yong-Seong began as Han Bo-gwang conducted a full-scale re-investigation into The Complete Collection of Grand Master Yong-Seong and translated it. The project was carried out as a joint project with Institute of Maha Bodhi Thought and Institute of Electronic Buddhist Texts & Culture Content. In 2013, the researchers involved in Baek's works started to translate them with the publication committee of the Series reviewing and proofreading the manuscripts, which were sorted out through reviewing and embellishment for two years. The publication work was based on total 23,238.6 pages of manuscripts including 20,533.6 pages of literature in 31 kinds and 2,705 pages of newly identified materials. It was in late October, 2016 that A Collection of the Great Master Baek Yong-Seong was published in total 20 volumes of 14,120 pages, which include eight volumes of 4,898 pages in Group I and 12 volumes of 9,222 pages in Group II. The investigator further delved into the nature and value of the Series, and the findings were as follows: First, the Series was published through a joint project among communities that tried to enhance Baek's achievements and practice his ideas. It was the fruit of devoted and organized collaborations among Institute of Maha Bodhi Thought, Institute of Electronic Buddhist Texts & Culture Content under International Journal of Buddhist Thought and Culture at Dongguk University, and Dongguk University Press over four years under the supervision of Daegakhoi. Second, it proposed the coordinates where the current Korean Buddhism should be oriented toward and contained the ideas to discover the values of Baek Yong-seong, who promoted the reform and popularization of Buddhism and developed the Daegakgyo movement during the modern days, inherit them in the contemporary times, and transmit them to the future generations. They thus asked some experts to translate his works into Korean so that the readers could easily understand them and made it sure that the Series would go through the stages of reviewing and embellishment for its unity. Third, they put together newly identified materials to overcome the old material limitation and identified and included 339 new materials of 163 types across nine categories including contributions in the Series. It was in this area that Kim Gwang-sik, an authority on the research of Baek Yong-seong, exerted his research capabilities. Fourth, the publication of the Series was accompanied by the computerization project to multiply and spread its values. The computerization project provided concerned information including the index, total table of contents, Haeje, chronology of his life, and reference, covering all the researches about him. Finally, the Series built a new foundation for the research of Buddhist studies. Not only did it broaden the horizon of understanding his ideas through the research and translation of original texts about him, but it also established a basis to expand his research to more diverse areas including the asceticism of high priests, related figures, and event information in the modern Buddhism and Korean Buddhism. In the future, the newly identified materials included in the Series will contribute to the exploration of new routes in the research of Baek and modern Buddhism. They also plan to build an archive of the results of the Series, provide the service on the Internet, and maximize the utilization of the Series, thus making a contribution to the spread of research on the related humanities as well as high Buddhist priests and modern Buddhism. The discussions in the present study will hopefully contribute to the understanding of the publication process and nature of A Collection of the Great Master Baek Yong-Seong, the related researches, and the various uses of the Series. In the future, its computerization project will help the values of Baek Yong-seong contribute to the creation of national culture beyond the Buddhist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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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용성과 대각사 연구

        허정선 대각사상연구원 2020 大覺思想 Vol.34 No.-

        백용성(1864∼1940)은 19세기 말 일본의 한반도 강점기에 활동했던 불교의 선수행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백용성은 전법의 땅이며 3․1 독립운동의 성지인 대각사를 창건했다. 백용성은 그 암울했던 시대에 한국 전통불교의 중흥과 독립을 위해 크게 노력했다. 당시 조선 사회는 동학 민란 및 유교의 쇠퇴로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사회였다. 불교 또한 조선왕조 초기부터 억불숭유 정책으로 극심한 탄압을 받아 왔으며 그 결과 겨우 법통을 이으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출가한 백용성은 전국의 여러 사찰과 선원에서 수행한 후 1911년 서울로 상경하여 한국 전통불교의 중흥과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1916년 백용성은 그의 대각사상과 민족의 독립을 위한 활동 그리고 대중포교 활동의 거점이 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봉익동 1번지에 위치한 대각사를 창건하였다. 또한 백용성은 삼장역회를 출범시켜 수많은 역경 사업, 한글 대각교 의식집을 포함한 활발한 저술 활동 등 불교 포교 활동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백용성과 대각사 연구를 위해 필자는 세 시기로 구분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다. 백용성이 상경한 1911년부터 백용성이 3․1 독립운동 민족대표로 옥고를 치르게 되는 1920년까지를 첫 번째 단계로 구분하였다. 1기에서는 대각사의 창건과 불교계 독립운동의 중심지로서 대각사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백용성이 경성 감옥에서 출옥한 해이면서 삼장역회를 출범시킨 해인 1921년부터 대각사의 소유권이 범어사로 인계되는 1936년 전해인 1935년까지를 두 번째 시기로 구분하였다. 2기에서는 역경사업과 저술사업의 장, 저항으로서의 대각교 선포의 장, 그리고 대중 포교를 위한 중심이 되는 場으로서 대각사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36년부터 백용성이 입적하는 1940년까지를 마지막 세 번째 시기로 구분하였다. 3기에서는 대각사의 범어사로 소유권 인계, 계속된 번역과 저술사업의 場, 그리고 대각사의 조선불교 선종 총림으로의 전환을 다루었다. 백용성이 한국 불교사에 길이길이 기념되듯이 대각사가 한국불교발전에 끼친 영향도 백용성과 더불어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Rev. Yongseong Baek(1864∼1940) was a Buddhist monk and independence activist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in the early 20th century. The great master built Daegaksa Temple, which would become a mecca for Buddhist teaching and a fulcrum of the March 1st Liberation Movement. In that gloomy period, Yongseong tirelessly strove for the independence and the revival of traditional Korean Buddhism. At that time, Joseon society was in a chaotic and disordered state, largely because of the Donghak Civil War and the decline of Confucianism. Buddhism was also severely oppressed by hegemonic dynastic rule; nevertheless, the religion was strong enough to prevail for monks like Yongseong to succeed to the abbacy. In this social atmosphere, Rev. Yongseong, who had been ordained as a Buddhist monk, moved to Seoul in 1911 after practicing in various temples and meditation halls across the country. It was here in the capital where he devoted himself to the revival of traditional Korean Buddhism and its growing popularization. In 1916, he established Daegaksa Temple, which would not only act as the intellectual hive for his Daegak ideas but also as the center for his national independence and mass proselytization activities. In addition, in 1921, Rev. Yongseong organized the Samjang Translation Society, thus initiating a fully∼fledged translation project that would translate and publish in earnest Buddhist scriptures. The first period was between 1911 and 1920. The great master Yongseong was sentenced to prison for signing the famous March 1st 1919 Declaration of Independence. He was released from Gyeongseong Prison in 1921. The first phase examines the founding of Daegaksa Temple as well as the role the temple would play as center for the Buddhist independence movement. The second period was between 1921, the year in which the Samjang Translation Society was launched, and 1935 when the ownership of Daegaksa Temple was transferred to Beomeosa Temple. In the second phase, I examine the role Daegaksa Temple played as the center of public mission; for instance, as loci of translation and writing projects, of resistance (vis a vis the declaration of Daegakgyo), and of mass proselytization. Finally, the third was between 1936 and 1940 (Rev. Yongseong passed away in 1940). The last phase covers the ownership of Beomeosa Temple, wherefrom he continued his translation and writing projects, including the transition to the Chongrim (a comprehensive monastic training system) promulgated by the Joseon Buddhist seon order. Just as Yongseong is justly celebrated in the annals of Korean Buddhist history, people will likewise remember Daegaksa Temple for its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Korean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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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용성의 『금강경』 이해와 공관 - 사상과 사견을 중심으로 -

        김호귀 대각사상연구원 2017 大覺思想 Vol.27 No.-

        용성은 『금강경』에 대하여 3회에 걸쳐 번역을 하였다. 용성은 수보리의 의심을 바탕으로 경문을 구분지으면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제1회 번역본인『신역대장경금강경강의』에서는 보시, 불국토장엄, 복덕의 32상, 형상의 32상, 법신의 상, 법신의 진아, 32상의 유무 등 7가지로 파악하였다. 제2회 번역본인 『신역대장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는 전체적인 의심을 형상, 보리상, 보시, 복덕, 응화신, 법신상, 실아, 삼신상의 8가지로 파악하였다. 제3회 번역본인 『상역과해금강경』에서는 설법의 주체인 사람과 설해진 교법과 교법을 수용하는 사람 등 3가지로 파악하였다. 이들 세 가지 번역본의 공통점은 의심의 해결에 대하여 의문의 내용을 相으로 회통하여 거기에 집착하지 않도록 해준다는 점이었다. 또한 용성이 저술한 것으로 경전의 대의에 해당하는 『윤관』에서는 경문의 내용을 四相과 四見을 바탕으로 하여 먼저 2종의 추혹을 제시하고, 다음으로 1종의 세혹을 제시하여 차제적이고 중층적인 구조로 이해하였다. 또한 경문의 前半에서는 추혹의 사상과 추혹의 사견을 극복하였고, 後半에서는 세혹의 사견을 극복함으로써 전반으로부터 후반에 이르는 단계를 차제적이고 중층적인 번뇌의 타파라는 견해로 해석하였다. 용성의 『금강경』 이해는 천친의 27단의 구성에 닿아 있고, 차제적이고 중층적인 설법의 구조는 길장의 이주설법에 닿아 있다. 그러면서도 공관에 대해서는 삼공으로 이해하고 있다. 곧 용성은 경문의 대의에 따라서 전반에 보이는 四相과 四見의 2종 추혹과 후반에 보이는 四見의 1종 세혹에 대한 타파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The Backyongsung was zen master of 19c-20c. He translated Vajra cchedikā prajňāpāramitā sūtra, i.e. Chinese character into korean Korean alphabet for three times. First translation and second translation were 1922 year, in addition to that third translation was 1926 year. First name is Shinyukdaejanggyung-Gumganggyung-Gangyi(新譯大藏經金剛經講義), second name is Shinyukdaejang-Gumgangmahabanyabaramilgyung(新譯大藏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 and third is Sangyuk-Gwahae-Gumganggyung(詳譯科解金剛經). In the first translation, Backyongsung presented that seven doubts from Subhūti. And the second translation, presented that eight doubts from Subhūti. And the third translation, presented that three doubts from Subhūti, i.e. the person who lecture Buddhist sermon, the person who attended the Buddhist lecture meeting, and the contents of Buddhist sermon. There are three translation have something in common with samjňā(相: conseption and ideas). Backyongsung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free from the samjňā. The conquest of samjňā is that acquirement of śūnyatā I.e. non-substance or non-attachment. On the one hand, Backyongsung presented both side about the method for eliminate of attachment. One is that the conquest of four samjňā(四相) and four discriminating thought(四見) through the Gumgangmahabanyabaramil gyung–Junbudaeyi–Yungwan(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全部大義綸貫). The other are the conquest of two loose-confusion the first half and one fineness-confusion the latter half through the three translations of Vajra cchedikā prajňāpāramitā sū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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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각교의 조선불교 선종총림으로의 전환 과정 고찰

        김광식 대각사상연구원 2013 大覺思想 Vol.20 No.-

        본 고찰은 근대불교 공간에서 다양한 행적을 남긴 고승인 백용성의 대각교 문제를 천착하려는 논고이다. 백용성의 활동, 운동, 개혁 등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은 大覺敎였다. 그래서 지금껏 이 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 이후에 전개된 대각교의 자진 해체, 朝鮮佛敎 禪宗 叢林으로 개편, 용성 입적후의 변화상 등에 대해서는 보편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였다. 이는 그런 내용을 설명할 수 있 는 관련 자료, 증언이 부재하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측면에 대한 문제의식을 수년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이 문제에 대한 단서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발굴할 수 있었다. 그는 선 학원에서 생산된 1차 자료이다. 그는 朝鮮佛敎 禪宗 首座大會錄, 조선불교 선종의 禪會 會錄 등 이었다. 이와 같은 전제, 배경하에서 필자는 본고에서 대각교가 조선불교 선종 총림으로 전환된 배경, 전 후사정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필자는 용성비문에 나타난 대각교, 대각교의 자진 해소 와 변천, 조선불교 선종 총림으로 변모, 선학원과의 여러 관련 내용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하여 용성의 후반기 삶, 대각교의 변화, 용성과 선학원과의 연결성 등에 대하 여 새로운 조명을 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필자의 이 고찰이 백용성, 대각교, 선학원 등의 연구에 일정한 촉매가 되기를 기대한다. This consideration is to study about Daegakgyo's problems Yongseong Baek had, who was a highest priest remaining a variety of whereabouts in the space of modern Buddhism. Daegakgyo, the teaching of great enlightenment, was the most important subject among the activity, movement, and reformation of Yongseong Baek. So, there has not been less interests of researchers about it so far. But, they couldn't give acceptable general explanations about dissolution of Daegakgyo developed by themselves since the mid-1930, the switch to Seonjong Chonglim of Joseon Buddhism, and the transition after Yongseong's attainment of Nirvana. As related materials and testimonies which could prove the facts did not exist. I have kept critical mind against such facts for years. Meanwhile, I could find the source recently which could be used as the clue of this matter. It is the 1st material produced by Zen Academy. It holds information about the record of Seonjong Zen practitioners' meeting of Joseon Buddhism, the convention record of Seonjong association of Joseon Buddhism etc. On such conditions, I wanted to reveal the background of Daegakgyo's switch to Seonjong Chonglinm of Joseon Buddhism and the circumstances in this dissertation. For it, I tried to analyze intensively Daegakgyo shown on Yongseong epitaph, dissolution of Daegakgyo and transition, switch to Seonjong Chonglim of Joseon Buddhism, and the related facts with Seon association etc. Through this dissertation, I believed to give a new sight about the latter half of Yongsoeng's life, the change of Daegakgyo, and the connection between Yongseong and Seon association etc. I look forward to having this consideration to be a catalyst for the study of Yongseong Baek, Daegakgyo, and Soen association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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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산의 생애와 사상

        김광식 대각사상연구원 2019 大覺思想 Vol.32 No.-

        This review is an article that summarizes the life and thoughts of Wolsan (월산, 1913∼1997), a Korean Buddhist monk who left an important mark in Korean modern Buddhist history, in a historical context. Wolsan was active in Gyeongju Buddhism and Bulguksa dioceses in the latter half of his life, serving as the master of Bulguksa Temple. And he served as the head of the Jogye Order's important headquarters, its chief executive officer, and the head of the Wonro, but there has been little research on him so far. So this article has the nature of the introduction to his research. So in this review, I tried to describe the following aspects. First, the process and nature of the performance of Wolsan were organized. described on the basis of literary evidence and reliable testimony Second, I organized my role in the Buddhist purification movement. Wolsan, along with his benefactor, Geum-oh(금오), was at the forefront of the purification movement, which he was a working-level official. Third, the entire contents of the duties of the Jogye Order were compiled. He served as the head of Beopju Temple, Donghwa Temple, Shinheungsa Temple, and Bulguksa Temple. He served as the president of the General Affairs Office and the president of the Wonro Office, and was involved in various activities, including the creation of the newspaper. Fourth, I came up with the Buddhist idea of Wolsan. I saw prehistoric and centrist thought as the focal point of his thought. However, I hope this review will serve as a reference to the understanding of Wolsan's life and thoughts, the history of Bulguksa in modern times, and the history of Wolsan Mundo. 이 글은 한국 현대불교사에서 중요한 행적을 남긴 고승인 월산(1913∼1997)의 생애와 사상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정리한 논고이다. 월산은 생애 후반부는 불국사 주지를 하면서 경주불교와 불국사 교구에서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조계종단의 중요 본사의 주지, 총무원장, 원로의장 등을 역임하였으나 지금껏 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 글은 그의 연구에 대한 서론의 성격이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측면을 서술하고자 하였다. 첫째, 월산의 수행의 과정 및 성격을 정리하였다. 문헌적 근거와 신뢰할 수 있는 증언에 의지하여 서술하였다. 둘째, 불교정화운동에서의 역할을 정리하였다. 월산은 그의 은사인 금오와 함께 정화운동 최일선에서 활동하였는데, 그는 실무자이었다. 셋째, 조계종단에서 담당한 직무에 대한 내용을 총체적으로 정리하였다. 그는 법주사, 동화사, 신흥사, 불국사의 주지를 역임하였다. 그는 총무원장, 원로의장을 역임하였고 법보신문을 창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넷째, 월산의 불교사상을 도출하였다. 필자는 선사상과 중도사상을 그의 사상의 초점으로 보았다. 여하튼 이 글이 월산의 생애와 사상, 현대기의 불국사의 역사, 월산문도의 역사 등의 이해에 참고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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