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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東洋學硏究院 50년의 성과와 과제

        김철웅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21 東洋學 Vol.0 No.82

        The Academy of Asian Studies succeeds the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which was founded in September 28, 1970. The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was reorganized into the Academy of Asian Studies in September 2011 and is now continuing. This year is the 50th anniversary of the opening of the Academy of Asian Studies. This paper traces back the Academy’s 50-year activities and achievements, and suggests tasks for the future developments. The greatest accomplishment of the Academy is the completion of the Dictionary of Korean-Chinese Characters and the Great Chinese-Korean Dictionary. At the end of the 30 some years of efforts, the Academy completed the compilation of the Dictionary of Korean-Chinese Characters and the Great Chinese-Korean Dictionary. After the completion of these dictionaries, the Academy is planning to continuously compile dictionaries, such as the Yidu Dictionary and the Korean-origin Chinese Character Dictionary, which the academic world requires. The Academy has contributed to oriental studies’ developments by publishing the Oriental Studies that is a journal listed in the Korea Citation Index, hosting annually the Academic Conference for Asian Studies, publishing “Asian Studies Series”, and so on. For the future, the Academy should contribute to academic advancements by consistently publishing the Oriental Studies and “Asian Studies Series”, and continuously hosting the academically highly valuable Academic Conference for Asian Studies. The Academy under itself has Institute of History & Culture, Institute of East Asian Traditional Culture, and Institute of East Asian Interchanges as its subsidiary institutes. The Academy should search for the methodologies to invigorate its subsidiary institutes which are the bases of the academy system. The Academy of Asian Studies renewedly professed for Asian studies within its systemic reorganization. The Academy should establish its research areas and goals as much as it professes Asian studies. Also, the expansion of researcher pool and the budget support are necessary to back it up. In order to expand and reinvigorate research activities, stabler budget should be supported. Currently, the Humanities including Asian studies goes through the era pursuing usefulness and economic feasibility. In such a circumstance, it is predictable that the Academy of Asian Studies shall face a lot of difficulties in its future. I hope that the Academy of Asian Studies will make remarkable progress so that it can become a central institution for Asian studies at home and abroad beyond Dankook University’s central research institute around the time of the next 60th or 70th anniversary. 동양학연구원의 전신은 東洋學硏究所로 1970년 9월 28일에 설립되었다. 동양학연구소는 2011년 9월에 동양학연구원으로 개편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올해로 동양학연구원은 開院 50주년을 맞이하였다. 동양학연구원 50년의 활동과 성과를 되짚어보면서 향후 발전을 위한 과제들을 제시해보았다. 동양학연구원의 가장 큰 업적은 『韓國漢字語辭典』과 『漢韓大辭典』의 완간일 것이다. 동양학연구원은 30여 년간의 노력 끝에 『한국한자어사전』과 『한한대사전』 편찬을 완성하였다. 이들 사전을 완간한 이후, 『이두사전』, 『한국고유한자자전』 등 학계가 필요로 하는 각종 사전을 지속적으로 편찬할 예정이다. 동양학연구원은 등재학 술지 『東洋學』 발간, 동양학학술회의의 개최, 동양학총서 간행 등을 통해 동양학 발전에 기여해 왔다. 앞으로 도 『東洋學』과 동양학총서의 지속적인 간행, 학술 가치가 높은 동양학학술회의 개최 등을 통해 학문 발전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동양학연구원은 역사문화연구소,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소, 동아시아교류연구소 등의 산하 연구소를 두고 있다. 앞으로 동양학연구원은 연구원 체제의 근간인 산하 연구소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 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동양학연구원은 체제 개편과 함께 새롭게 아시아학을 표방하였다. 이제 아시아학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이에 걸맞은 연구 영역과 목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자확충과 예산 지원도 필요하다. 연구 활동의 확장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좀 더 안정적인 예산이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동양학을 비롯한 인문학은 효용성과 경제성을 추구하는 시대와 함께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양학연구원의 앞날에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60년, 70주년에 즈음해서는 동양학연구원이 단국대학교의 중추 연구기관을 넘어 국내외 아시아학의 중심 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괄목상대한 발전이있기를 기대해본다.

      • KCI등재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단국대학교

        한시준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0 東洋學 Vol.47 No.-

        Since 1945, many powers of Korean Independent movement including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PGRK) were participated in the foundation of a university (or a college). Just after returning home from abroad, PGRK set up ‘A Group of Political Underground Activities’and ‘A Committee of Administration Research’. And PGRK, under the responsibility of Sin, Ik-hee,put the foundation of a university in charge of ‘A Committee of Administration Research’. Sin Ik-hee, under the aim for founding a people’s university, organized ‘An Association for the Realization of a Plan (ARP) to founding Kookmin University. ARP invited Kimkoo and Kim Kyu-sik as advisors, Tjo, So-yang as an honorary chairman, 40 society personages of the interior as directors, and Sin Ik-hee became Chairman of ARP. Sin Ik-hee as Chairman and Chang Hyoung as one of directors fully led Practical business affairs of early ARP. Chang Hyoung was a leader of an independence movement who was acted for collect war funds in the western Gando region. Since 1945, when he met Kim Hong-il on SimYang, Kim suggested him to help Kimkoo. Then he returned to Seoul and joined ARP. ARP had a plan for the foundation of the university with 50 million won as fund-raising, but the plan is not easy to be achieved. At that time, Cho Huijae, who was Park Ki-hong’s widow, donated 5 thousand pyeong(=6.013㎥) to ARP through Chang Hyoung who was a close friend of Park Ki-hong. By basic of this property, Kookmin University was founded on September 1946. Kookmin University was founded by PGRK and was managed by Sin Ik-hee as the president and Chan Hyoung as the chair director. However, Sin Ik-hee left PGRK and the Korean Independence Party and joined to the side of Rhee Syngman and Korean Democratic Party. Chang Hyoung thought that Sin’s political movement was a betrayal against Kimkoo and Kookmin University could not success the spirit of PGRK. Chang Hyoung left from managing Kookmin University, and decided to found a new university which success Kimkoo’s spirit. At the time, Cho Huijae positively agreed and donated her property(about 80 thousand pyeong) to Chang Hyoung again. Chang Hyoung tried to set up a new university within a basis of the property, and founded Dankook University on November 1947. Therefore, the foundation of Dankook University was a proof to the contrary by failure of Kookmin University as the succession of the spirit of PGRK. 해방 후 대학을 설립한 주체의 하나는 독립운동 세력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도 환국 후, 국내에서대학을 설립하고자 하였다. 임시정부는 환국 직후 내무부 산하에 정치공작대와 행정연구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행정연구위회에 대학설립을 맡겼다. 신익희가 내무부장으로 그 책임을 맡았다. 신익희는 임시정부 요인들과 협의하여 ‘국민의 대학’을 설립한다는 취지아래 국민대학설립기성회를 조직하였다. 기성회는 주석 김구와 부주석 김규식을 고문, 외무부장 조소앙을 명예회장으로 하고, 회장은신익희가 맡았다. 국내의 각계 인사 40명이 이사진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기성회 중심으로 대학설립을추진해 나갔다. 기성회에서 실무를 주도한 것은 회장 신익희와 이사 장형이었다. 장형은 군자금을 모집하며 서간도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심양에서 김홍일을 만나 ‘국내에 들어가 김구를 도우라’는 말을 듣고 귀국하여 이사에 참여하였다. 기성회는 5천만원의 대학설립 기금을 모집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때 장형이 독립운동 시기의 동지였던 박기홍의 미망인 조희재로부터 5만평의토지를 기증받았다. 그리고 이를 기본 재산으로 하여 1946년 9월 1일 국민대학을 설립하였다. 국민대학은 임시정부가 세운 대학이었다. 신익희가 학장, 장형이 이사장으로 대학을 운영하였다. 그런데 신익희가 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을 떠나 이승만측과 한국민주당에 참여하는 일이 일어났다. 장형은 이를 임시정부와 김구에 대한 ‘배신’으로 여겼고, 국민대학은 임시정부의 정신을 잇기가 어렵다고 보았다. 장형은 국민대학과 결별하였다. 그리고 임시정부와 김구의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대학을 별도로 설립키로 했다. 조희재가 이에 적극 찬동하고, 80만평의 토지를 기증하였다. 장형은 이를 기반으로 대학설립을추진, 1947년 11월 단국대학을 설립하였다. 단국대학을 설립하게 된 것은 국민대학이 임시정부의 정신을이을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고, 이를 계승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 단국대학이었다. 여기에는 김구와의 관계도 작용하였다. 장형은 김구와 각별한 관계에 있었고, 김구의 노선을 지지하고있었다. 그리고 김구가 설립한 건국실천원양성소의 이사장을 맡아, 소장 김구와 함께 이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단국’이란 교명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장형은 임시정부와 김구가 추진하는 통일국가수립을 지지하였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야 하는데, 남북이 모두 받들 수 있는 것은 단군의 건국정신이라 보고, 교명을 ‘단국’이라고 정한 것이다.

      • KCI등재

        단국대학의 설립정신과 정체성

        한시준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3 東洋學 Vol.53 No.-

        현재 한국에는 2백개가 넘는 4년제 대학들이 있다. 각 대학들마다 설립자가 다르고, 설립한 정신이나 취지도 다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대학들이 자신의 대학이 어떠한 대학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단국대학은 어떠한 대학인지를 살펴보려는데 목적이 있다. 단국대학은 독립운동과 밀접한 관련속에서 설립되었다. 우선 설립자인 범정 장형이 독립운동가였다. 장형은 일제식민지시기에 서간도와 국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만주지역의 독립군과 연계되어 활동한 인물이다. 단국대학을 설립한 것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백범 김구의 독립정신과 관련이 있다. 장형은 해방 후 환국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추진하는 대학설립에 참여하여 국민대학을 설립하고, 임시정부 내무부장 신익희와 함께 이사장으로 국민대학을 운영하였다. 이후 1947년 신익희가 임시정부를 떠나자 국민대학과 결별하였다. 신익희의 행동을 임시정부와 김구에 대한 배신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임시정부와 김구의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대학의 설립을 추진, 1947년 11월 단국대학을 설립하였다. 단국대학은 설립주체나 과정으로 보면, 그 설립정신은 독립정신이었다. 설립자가 독립운동가였고, 또 임시정부와 김구의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대학으로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단국대학은 다른 대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단국대학만이 갖고 있는 정체성이 있다. 우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김구의 독립정신을 계승한 대학이라는 점이다. 설립자 장형은 독립운동가였고, 임시정부가 추진하는 대학설립에 참여하여 국민대학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김구가 설립한 건국실천원양성소에서 이사장을 맡는 등 김구와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후 신익희가 임시정부를 떠난 것을 계기로, 임시정부와 김구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국민대학과 결별하고 단국대학을 설립한 것이다. 둘째는 독립운동가가 세운 대학으로, 독립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유일한 대학이라는 점이다.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국민대학·국학대학·신흥대학 등이 설립되었지만, 이들 대학은 모두 없어지거나 재단이 바뀌었다. 독립운동가에 의해 설립되고 독립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대학은 단국대학이 유일하다. 셋째는 민족통일을 대비하는 대학이라는 점이다. 장형은 대학을 설립하면서 남북통일과 통일정부 수립에 기여하기를 염원하였고, 학교의 이름에 그 뜻을 담고자 하였다. ‘통일국가를 수립하려면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 민족은 단군의 자손이 아니냐’라는 생각에서 교명을 ‘단국’으로 결정하였다. ‘단국’이란 교명은남북통일과 통일정부 수립을 염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 KCI등재

        漢字辭典의 현재적 의미와 개선 방안

        심경호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8 東洋學 Vol.71 No.-

        In modern Sinosphere, comprehensive Chinese character dictionaries with the function of encyclopedia were competitively compiled and published. What follows are the notable dictionaries: the Dai Kan-Wa Jiten (大漢和辞典, The Great Chinese–Japanese Dictionary) compiled by Tetsuji Morohashi in 1960, the Zhongwen Da Cidian (中文大辭典, the Encyclopaedic Dictionary of the Chinese Language) published by the Institute for advanced Chinese studies of Taiwan in 1962, the Hanyu Da Cidian (漢語大詞典, Comprehensive Chinese Word Dictionary) published by Hanyudacidian bianjiweiyuanhui (漢語大詞典編輯委員會) and Hanyudacidian bianzuanchu (漢語大詞 典編纂處) of China in 1993, Han-Han Dae Sajeon published by the academy of Asian studies at Dankook university of Korea in 2008. Among them, Han-Han Dae Sajeon is estimated to be the most comprehensive work at the present time. However, it also needs improvement in some respects. (1) Chinese character dictionaries for modern readers should not only preserve the traditional functions they had, but also respond to the changes of environment of reading. a. each character should be explained by its meaning, form and pronunciation, and meaning with sources cited. b. the major concepts of culture, history and natural science should be dealt with. c. the function of rhyme dictionary should be included. d. the Sinic culture peculiar to Korea should be considered in selecting entries and defining the words. e. It should be designed to be a reference book as well as a reading material for pleasure for the readers of present day. (2) It should aim to be an idealistic Chinese character dictionary with its micro- and macro-structure designed reasonably. a. the selection of a radical system should be considered carefully. b. each character should be explained by its definition not by Xun (訓) style interpretation. c. the genealogy of each character should be explained with its genealogical tree. d. the improvement of the way of citing sources should be considered with deliberation. (3) In case of revising entries, the following issues should be considered. a. the entries suggested by various dictionaries in present time should be referred. b. Korean Literature in Literary Chinese including poetry and prose, Chinese character dictionaries, rhyme dictionaries, category books (類書), scholarly essays (雜考) should be referred. c. Saeokpyeon published by Sahoe Kwahagwŏn Kojŏn Yŏnʾguso of North Korea in 1963 should be referred while improving its standard of selection of meaning, form and pronunciation of Chinese characters, its adoption of “clerical reading” (idu, 吏讀) as entry word. (4) Chinese character dictionaries newly edited for the information age should consider the following two aspects. a. the common vocabularies in classical Chinese in Sinosphere should be researched. b. Sino-Korean vocabularies should be researched as a part of investigation and restoration of the national cultural heritage. It is needed to change the editorial policy of Chinese character dictionaries epochally including entry selection, the content of definition, the systematization of entries etc. under highly developed internet environment. 한자문화권에서는 현대에 들어와 백과사전의 기능을 겸한 사전(辭典, 詞典)을 경쟁적으로 편찬, 간행해 왔다. 현대 거질의 한자어 사전의 편찬은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가 1960년 완간한 『대한화사전(大漢和辞典)』, 중화민국(대만) 중국학술원이 1962년 간행한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 인민중국의 중국한어대사전편찬위원회와 한어대사전편찬처가 1993년 완간한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에 이어, 한국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이2008년 완간한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을 꼽을 수 있다. 현재로서는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의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이 가장 방대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사전은 개선되어야 할 점도 있다. (1) 현대 사회의 한자사전은 종래의 한자사전이 지향하던 목표를 계승하면서 독서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새로운 목표도 함께 설정해야 한다. ⓐ 형·음·의 세 방면을 모두 해설하고 자의는 출전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 문화와 역사, 자연과학의 주요 개념들을 망라해야 한다. ⓒ 운서(韻書)의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 한국 한자문화의 특성을 고려하여 표제항을 선정하고 훈석을 해야 한다. ⓔ 새로운 인식의 참조준거가 되면서 독서물로서 완상될 수 있게 구성해야 한다(2) 이상적 한자사전은 대구조와 소구조가 합리적이어야 한다. ⓐ 부수법(部首法)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 정의식(定義式) 훈석(訓釋)을 지향해야 한다. ⓒ 자의(字義)의 파생(派生) 내력을 망라하는 보계수(譜系樹)식 구성을 취해야 한다. ⓓ 인용 원문의 제시 방식 개선에 주의해야 한다. (3) 한자사전의 표제항을 새로 선정할 때는 다음 사안들을 검토해야 한다. ⓐ 현대의 다양한 사전들이 제시한 표제항을 참고해야 한다. ⓑ 한국의 시문, 자전, 운서, 유서(類書), 잡고(雜考)를 함께 참고해야 한다. ⓒ 북한 과학원 고전연구소의 새옥편(1963년)을 참고로 하면서 한자의 자형을 심사한 방식, 한자음을 심정한 방식, 이두자를 올림자로 채택한 방식을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4) 웹 시대 동아시아의 새로운 한자사전은 다음 두 방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공통의 고전 한자 어휘를 재정리해야 한다. ⓑ 국고(國故) 정리의 일환으로서 한국한자문화내의 독특한 용례를 지닌 어휘들을 정리해야 한다. 앞으로 한자사전을 편찬할 때에는 웹의 발달에 대응하여 항목의 선정과 서술 내용, 항목의 체계화 등과 관련하여 획기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 KCI등재

        「漢韓大辭典」의 편찬과정과 향후 계획

        윤승준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2 東洋學 Vol.52 No.-

        I wrote this paper to achieve twin objectives. At first, I want to share the trials and errors,know-hows, information concerned with a dictionary compilation based on the compilation process of Han-Han-Dae-Sajeon. Also I purposed to prepare the white paper of Han-Han-Dae-Sajeon compilation. According to the President Chang Chungsik’s require,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established the compilation office of the Han-Han-Dae-Sajeon and pushed ahead the great project in 1977. Since 1977, the plan for the compilation and publishing the Han-Han-Dae-Sajeon was changed twice, and the special commission on Han-Han-Dae-Sajeon compilation was organized in 2004. At last the Han-Han-Dae-Sajeon (16 volumes) was completed 28 October 2008. During the 31 years,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held several meetings for reading research papers, published a news letter Bulletin of Oriental Studies semiannually, as well as running the reference room. And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introduced the 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 and developed the Chinese character fonts. Now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is undertaking the integrating and digitalizing project of the Han-Han-Dae-Sajeon (16 volumes) and Dictionary of Korean Chinese Characters (4 volumes). Completing this project,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will carry out the projects as following ;on-line service of Han-Han-Dae-Sajeon, compilation of the essence dictionary for student or compilation of the disciplinary expert dictionaries, research for the lexicography, cooperation with the related organizations such as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s Classics, Academy of Korean Studies etc. 본고는 30여 년에 걸친 「漢韓大辭典」 편찬 과정에서 축적한 사전 편찬에 대한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는 한편, 「≪한한대사전≫ 편찬 백서」(가칭) 발간을 위한 기초 자료를 정리하기 위하여 기필되었다. 특히 이 글에서는 「한한대사전」의 편찬과정과 향후 계획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동양학연구소에서는 1977년 漢韓辭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張忠植 전 총장의 요청에 따라 편찬계획안을 수립하고 「한한대사전편찬실」을 신설하였다. 편찬실에서는 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실무를 담당할 편찬원을 선발하여 사전 편찬을 위한 지침을마련하는 한편, 어휘 채록과 주석 작업에 착수하였다. 사전 편찬 과정에서 본래 ‘전문 인력 20명에 14억 원의예산으로 15년에 걸쳐 편찬한다.’는 계획안은 2차례 수정을 거쳤고, 마침내 ‘한한대사전 편찬 특별대책위원회’까지 구성되어 사전 발간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2008년 10월 28일 「漢韓大辭典」 16책의 완간을볼 수 있었다. 이보다 앞선 1996년 11월, 동양학연구소는 우리나라 고유의 한자와 한자어를 수록한 「韓國漢字語辭典」 4책을 완간한 바 있다. 동양학연구소에서는 30여 년에 걸친 편찬 기간 동안 月例硏究討議會, 「東洋學簡報」의 발간, 동양학연구소 도서실 운영, 편찬원의 해외 시찰, 전산 조판 시스템의 도입과 한자 폰트 개발 등다양한 활동을 통해 「漢韓大辭典」 편찬을 위한 토대를 구축하여 왔다. 아울러 ‘통합디지털 한한대사전’ 편찬작업을 진행 중인 동양학연구원에서는 향후 ‘「한한대사전」의 웹 서비스를 통한 사회 기여’, ‘학습용 한자사전및 전문 갈래 사전의 편찬’, ‘사전학의 세계적 메카를 향한 학술 연구’, 국사편찬위원회·한국고전번역원·한국학중앙연구원 등 ‘유관 기관과의 긴밀한 협력 사업’을 계획 추진 중에 있다.

      • KCI등재

        『통합디지털한한대사전』의 DB구축과 온라인 사전편집기

        김지영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3 東洋學 Vol.54 No.-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은 1996년 『한국한자어사전』, 2008년 『한한대사전』을 완간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한자사전을 보유하게 되었다. 『한국한자어사전』과 『한한대사전』은 한국학을 비롯한 인문학 공구서로서 가치가 크지만, 종이사전이 지니는 한계로 말미암아 그 활용도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동양학연구원에서는 두 사전을 하나의 사전으로 통합하고 어휘 및 예문을 증보하여 독자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자 『통합디지털한한대사전』을 기획하였다. 본고에서는 동양학연구원에서 현재 진행 중인 『통합디지털한한대사전』의 편찬 기획, DB 구축, 온라인사전 편집기 제작, 웹 폰트 정비, 『한국한자어사전』과 『한한대사전』의 통합 및 증보의 과정과 쓰임새에 대한 소개와 논의를 통하여 인문학 분야에서 『통합디지털한한대사전』의 활용 가치를 조명하고자 한다.

      • KCI등재

        慶州 李中久家 五代 古文書 資料의 정리와 성과

        이재령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21 東洋學 Vol.- No.83

        The goal of this study is to construct a database for history of civilian daily lives based on epistles from the second half of to the late period of Joseon. The materials for the research object are about 8-thousand manuscripts of the five generations of Lee Jung-gu’s family in Gyeongju owned by Dankook University. The manuscripts are highly valuable as they are the inner records of a Yeongnam Namin(南人)-line family living through chaotic epochs and as characteristics and periods of the materials are clear. Macroscopically, feudal rural aristocrats(‘Yangban’: 兩班)’s perceptions and reactions regarding domestic issues such as Donghak, Wijeongcheoksa(衛正斥邪), Eulmi incident, the ordinance prohibiting topknots(斷髮令), and Korea royal refuge at the Russian legation(俄館播遷), and regarding international issues such as Boxer Rebellion(Yihetuan Movement (義和團運動)), Sino-Japanese War, and Russo-Japanese War can be clarified. Microscopically, the images and thoughts of lives accumulated in everyday life, such as public sector activities, seowon and individual academic activities, traditional culture and customs, coming-of-age·wedding· funeral·rite(冠婚喪祭) systems, medical and health, aspirations for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and successful career, love between relatives, interest and consideration of acquaintances, literary activities and artistic excitement are directly revealed so that their bare faces can be seen without hesitation. For example, through worry and anger toward harmfulness of fundraising for building Gammogung and toward Japanese empire’s pillage after Russo-Japanese War, reactions toward new civilization, and adaptation of new science system, it can be clarified that the literati in the late-Joseon were neither antiquated nor exclusive. Also, Lee Jung-gu’s various activities in his hometown after his retirement very well show his role as a leader of local opinion. King Sunjong’s restoring independence movement needs to be scrutinized for the existence of execution and the authenticity of the document. However, the documents included in the paleographs provides a glimpse of the patriotism of the falling feudal era, through the desperate efforts of the monarch who lost his country and the extreme devotion of his servant who supported it. There are many letters revealing the worry about family members’ safety and the doleful feelings in daily lives. The letters which father-in-law Kim Jin-hyeong sent to son-in-law Lee Neung-deok show familiarity and kinship as deep as those between today’s in-laws’ through worrying about Neungdeok’s wife facing delivery, comforting son-in-law experiencing the deaths of grandmother and father, asking for matchmaking for Kim’s second daughter, and new year greeting. Moreover, Kim express his sorrow in a letter as only his son-in-law came without his daughter on the day of seeing her daughter-in-law. Kim as a grandfather reflects the sorrow of her granddaughter in another letter. Other letters show the tension facing delivery and a sigh of an 85-year-old man. These letters verify that love in a family of the time were quite different from strict custom system and superfacial phenomena. If documentation, commentary, and digitization of the letters and other paleographs of Lee Jung-gu’s family are completed, and if systematic sorting and analysis on them are progressed, the social reality, the rural daily lives, the literati’s agony and respondence can be more practically clarified. Also, the boundary and objects of studying Korean modern history can be expanded toward understanding East Asian modern history. 본 연구는 ‘서간문에 기초한 조선 후기부터 구한말까지의 민간생활사 자료’ 구축을 위해 탈초, 해제된 결과를 정리, 소개하는데 목표를 둔다. 연구대상으로 삼은 자료는 단국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경주 이중구가의5대 고문서’ 8천여 건이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회재 이언적의 후손이라는 높은 긍지를 지녔을 영남 남인계의가문이 혼돈의 근대이행기를 살아낸 내면의 기록들로 자료의 성격과 시대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거시적으로는 향촌에 거주한 양반들의 동학, 위정척사, 을미사변, 단발령, 아관파천 등의 국내문제와 의화단사건,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대외문제에 관한 봉건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과 대응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미시적으로는 향촌의 공공영역 활동, 서원 및 개인의 학문 활동, 전통문화와 관습, 관혼상제, 의료·보건, 과거 급제와 출세의 열망, 친인척간 사랑, 지인들의 관심과 배려, 문학 활동과 예술적 흥취 등 일상 속에서 쌓여온 삶의 모습과 생각들이 그대로 드러나 이들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볼 수 있다. 예컨대 감모궁 건립 모금의 폐해, 러일전쟁 전후 일제 침탈에 대한 우려와 분노, 신문명에 대한 반응과 신지식체계의 수용 등을 통해 구한말 지식인들이 고루하거나 폐쇄적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이중구가 관직 생활을 마치고 낙향한 후 펼친 다양한 활동은 향론의 주도자요, 향촌 지도자로서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종의 복국 운동은 실행 유무와 문건의 진위 여부를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고문서에포함된 등본자료를 통해 나라를 잃은 군주의 절실한 노력과 이를 뒷받침했던 신하의 지극한 모습을 통해 저물어가는 봉건시대 충의 잔영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일상생활 속에서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절한 정을 드러낸 편지를 많이 볼 수 있다. 며느리를보는 날, 딸은 오지 않고 사위만 오자, 딸 사돈이 사돈에게 보낸 아쉬움이 절절하게 배어난 편지나 손녀딸에애태우는 친정 할아버지의 애달픔을 살필 수 있는 편지, 출산을 앞둔 긴장감을 전한 편지 등은 동시대 가족사랑이 엄격한 예교 질서나 표피적 현상과 많이 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중구가의 편지와 기타 고문서에 대한 탈초, 해제 및 기본정보 등의 연구가 마무리되고, 체계적인 정리, 분석작업이 진행되면 조선 후기부터 구한말까지 사회상과 향촌의 일상, 지식인의 현실적 고뇌와 대응을 보다 실질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한국 근대사의 연구범위와 대상을 확장시켜 동아시아 근대사의 이해로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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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엔탈리즘인가 프래그머티즘인가? 영국군의 장에서 아일랜드다움 그리고 식민 대립

        러글린스위니 ( Loughlin Sweeney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2017 東洋學 Vol.69 No.-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분석은 식민 셰계의 지배자로서 제국(empire)에 대한 연구의 시선을 대도시(metropolis)와 주변부(periphery)의 이항 대립적 담론, 식민 지배자들이 가졌던 태도와, 그리고 그들이 식민지의 토착문화의 해석에 사용된 문화적 편견으로 옮겨놓음으로서 식민지 역사 연구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남겼다. 그 이후로, 사이드의 연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끈 다수의 해석이 식민지 역사 연구에서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식민지의 행위성(agency)과 직간접적인 식민지 규율의 현실 적합성에 대한 강조라든가, 식민 지배자와 피지배자사이의 대면을 중재함에 있어서의 ‘하위주체’(subaltern)의 역할에 대한 연구들이 있었다.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연구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모호했던 제국주의의 첨병에서 실제로는 실용적이고 ‘상호적인’ 특성을 가졌던 식민 관계가 오히려 오리엔탈리스트(orientalist)적인 선입견을 얼마나 무녀뜨렸었는가에 대한 연구이다. 이와 더불어 ‘4민족’적 - 민족과 제국의 개념에 대한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4개국의 차이를 인식하는 - 접근법으로 인하여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대도시 식민지배자(metropolitan)들의 태도에 대한 연구는 더 큰 복잡성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상기된 새로운 방법론적 틀들을 검토하고, 이 방법론들이 아시아 내 여러 지역에 식민시대 군대의 장(sphere) 장교, 특파원, 행정직으로 투입되었던 아일랜드인의 예시에 타당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또한, 서신과 회고록에서 찾을 수 있는 아일랜드인들의 제국에 대한 태도를 인용하고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을 상호성과 토착 행위성을 강조하는 역사적 접근법을 결합함으로써, 식민지 규율의 복잡성에 대한 새로운 연구 영역을 제시한다. Edward Said’s concept of ‘Orientalism’ has been instrumental in refocusing colonial history towards the attitudes of colonizers at the metropolis and periphery, and the cultural preconceptions that mediated colonial encounter. Historians have taken Said’s work in many innovative directions: a greater emphasis on indigenous agency and the practicalities of direct and indirect colonial rule; the role of the ‘subaltern’ in mediating encounter between colonizers and the colonized; and, crucially, the extent to which orientalist preconceptions were eroded by the pragmatic, ‘transactional’ nature of colonial relations at an imperial frontier that was contested and ambiguous. Metropolitan attitudes toward empire have been given further complexity with the recognition of the differences between the ‘four nations’ constituting the Union. This paper reviews these new methodological frameworks and examines their relevance to the study of ‘imperial Irishmen’ in multiple Asian localities, all of whom were inculcated in the colonial military sphere, as officers, correspondents, and administrators. It cites new indicative examples of Irish attitudes to empire derived from correspondence and memoirs, and proposes new avenues of research into the complexities of colonial rule which marry the lens of orientalism with historical approaches emphasizing transaction and indigenous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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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쓰쿠바 대학[筑波大學]의 조선(朝鮮) 관련 서적과 오카쿠라 요시사부로(岡倉由三郎)의 장서(藏書)

        유춘동 ( Yoo Choondong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2017 東洋學 Vol.69 No.-

        이 글은 일본 쓰쿠바 대학[筑波大學] 중앙도서관에 있는 조선(朝鮮)시대 전적, 조선 관련 서적과 오카쿠라 요시사부로(岡倉由三郎, 1868~1936)의 장서(藏書)를 살펴본 것이다.일본 이바라키 현[茨城縣] 쓰쿠바 시에 있는 쓰쿠바 대학은 ‘일본 동경교육대학(東京敎育大學)’을 개명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 이 대학에는 총 60종의 조선시대 전적(典籍)이 있다. 이 사실은 1976년 후지모토 유키오(藤本幸夫) 교수를 통해서 알려졌다.그러나 이곳에 “누가, 어떤 이유로 이 책을 수집했는지, 그리고 총량은 어느 정도인지”는 보론(補論)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이 대학의 전신(前身)이었던 ‘동경교육대학’ 시절에 작성되었던 『도서원부(圖書原簿)』와 『괘도목록(掛圖目錄)』를 보면 지금보다 더 많은 조선시대 전적, 조선 관련 서적들의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아울러 함께 밝힐 문제는 “이 책의 수집가”이다. 이 책들은 대부분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서 대학으로 보낸 것도 있지만 오카쿠라 요시사부로가 수집했던 것도 포함되어 있다.오카쿠라 요시사부로는 현재 일본의 유명한 영문학자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1891년 조선에 한성일어학당(漢城日語學堂)이 처음 만들어지자 이곳에 부임했던 최초의 일본어 교사였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조선의 책들을 틈틈이 수집했고, 1893년 『철학잡지(哲學雜誌)』에다가 한글로 쓴 서적의 의미와 조선의 대중문학(大衆文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이 과정에서 세책(貰冊) 고소설과 조선시대 대표적 대중가요집인 『남훈태평가』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가 썼던 글은 이후 모리스쿠랑(Maurice Courant)의 『한국서지(Bibliographie Coreenne)』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글을 발표하기까지 오카쿠라 요시사부로는 조선시대 책들을 착실히 수집했고, 이후 그의 책은 이 대학의 장서(藏書)가 되었다.이 글은 이처럼 그동안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쓰쿠바 대학의 있는 조선시대 전적과 관련 서적에 대한 부분, 오카쿠라 요시사부로가 수집했던 장서(藏書)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books related to the Joseon Dynasty at the University of Tsukuba and discusses the collection of the books of Yoshisaburo Okakura (1868~1936).It is already known that there are a total of 60 kinds of Joseon Dynasty Rare Books in this university. However, there is a need for a supplementary argument in this university about “who collected books through which path, and how much the total is.”The reason is that I can see more books of Korea and books related to Joseon in the view of the books and documents that were written in the days of Tokyo University of Education.In addition, we need to look at this issue with “The person who collected this book”. These books were collected and sent by the Chosun Governor-General’s Office, but included a book by Saburo Okakura.He was a researcher of Joseon scholarship who came to the Joseon Dynasty and studied various aspects of the Joseon dynasty and book culture. In 1893, he introduced the popular literature of Chosun, the Rental book of Joseon(sechaek), and the poetry of Namhuntaepyongga through philosophical magazines. This was reflected in Maurice Courant’s Bibliographie Coreenne (Korean Bibliography).The books collected by Okakura Yoshisaburo became collections of this university. In this article, we looked at things related to this in 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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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異體字字典≫的應用與未來

        이첨부 ( Li Tien-fu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2018 東洋學 Vol.71 No.-

        台灣敎育主管當局自1970年代初,開始有關標準字體的整理工作,前後公布了≪常用國字標準字體表≫、≪次常用國字標準字體表≫、≪罕用字體表≫等三個標準字體表, 同時也初步整理了≪異體字表≫。後來更據以撰成 ≪異體字字典≫。≪異體字字典≫引用古今字書62種,實際用例參考文獻1242種,收錄正字29924字,異體字76469字,全書總計106333字,堪稱是一部大型的中文字形彙典。在字音與字義面,≪異體字字典≫居於歷史語言辭典的編纂立場,詳贍(仔細)的考察每一個字的音、義根源與發展,幷視文獻保存狀況,作應有而詳盡的保存。2013年起,我們啓動了≪異體字字典≫形、音、義內容的修檢工作,更在系統上作了許多擴充,期盼?能爲學者提供更爲充實的內容、便捷的利用。 Ministry of Education initiated the programme of compiling standard characters by 70s, and having issued The List of Commonly-used Characters, The List of Less-commonly-used Characters and The list of Rarely-used Characters. Ministry of Education started the project of The List of Variant sequentially, and this list eventually turned into The Dictionary of Chinese Characters Variants.The Dictionary of Chinese Characters Variants, compiled by Ministry of Education, has cited 62 philology books and 1,242 practical literatures to collect 29,892 standard characters and 76,469 variant characters, 106,333 characters in total. It is absolutely a large-scale work of Chinese characters. When it comes to characters’ phonetic and meaning, The Dictionary of Chinese Characters Variants holds a historical perspective. It reviews every single word’s phonetic and meaning deliberately, and goes to their roots and developments. Furthermore, The Dictionary of Chinese Characters Variants tries to preserve literatures as proper as possible.Since 2013, we have initiated the revising project of The Dictionary of Chinese Characters Variants, and tried to expand its system .We hope this dictionary provides profound information for researchers, and facilitates the work of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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