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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致使性重動句和非致使性重動句小考

        이설화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구 국민대학교 중국문제연구소) 2019 中國學 論叢 Vol.35 No.-

        본고에서는 중국어 동사중복문의 유형에 대해서 주로 논의하였다. 중국어 동사중복문은 크게 사동성동사중복문, 비사동성동사중복문으로 나눌 수 있으며 동사 뒤에 오는 보어의 유형에 따라 9가지로 세분 할 수 있다. 보어가 “得+VP/AP/NP”인 경우, VO와 C가 모두 각각의 사건을 가리키며 C가 나타내는 사건이 VO로 인해 발생되었으며 “S+C是VOV得’’ 또는 “C是SVOV得” 구조로 변환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사동성동사 중복문이나 비사동성동사중복문으로 나눌 수 있다. 보어가 “得+小句”인 경우, VO와 C는 사동관계를 맺으며 따라서 이 유형의 동사중복문은 모두 사동성 동사중복문으로 취급할 수 있다. 보어가 없이 ‘V得’로 끝나는 문장의 경우, VO와 C는 사동관계를 맺으며 따라서 이 유형의 동사중복문은 모두 사동성 동사중복문으로 취급할 수 있다. 보어 뒤에 목적어가 위치하는 경우, VO와 C사이에 새로운 사건이 생겼다면 양자사이에 사동성이 있으므로 사동성 동사중복문으로 간주하고 그렇지 않다면 비사동성 동사중복문으로 봐야 한다. 보어가 VP/AP/NP인 경우, VO와 C가 모두 각각의 사건을 가리키며 C가 나타내는 사건이 VO로 인해 발생되었으며 “S+C是VOV得’’ 또는 “C是SVOV得’’ 구조로 변환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사동성동사중복문이나 비사동성동사중복문으로 나눌 수 있다. 보어가 “到” 자구인 경우, VO와 C가 모두 각각의 사건을 가리키며 C가 나타내는 사건이 VO로 인해 발생되었으며 “S+C是VOV得’’ 또는 “C是SVOV得” 구조로 변환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사동성동사중복문이나 비사동성동사중복문으로 나눌 수 있다. 보어가 수량구인 경우, C가 나타내는 사건이 VO로 인해 발생되었다고 간주할 수 없으며 “S+C是VOV得’’ 또는 “C是SVOV得’’ 구조로 변환할 수 없기 때문에 비사동성동사중복문으로 분류해야 한다. 보어가 “보어의 가능형’’인 경우, 마찬가지로 C가 나타내는 사건이 VO로 인해 발생되었다고 간주할 수 없으며 “S+C是VOV得’’ 또는 “C是SVOV得’’ 구조로 변환할 수 없기 때문에 비사동성동사중복문으로 분류 해야 한다. 보어의 생략 또는 보어가 “得+想么樣”의 경우, 보어가 생략되거나 명확하지 않은 관계로 인해 VO와 C사이에 사동관게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언어환경에 의해 판단해야 하며 예외의 경우로 봐야 한다.

      • KCI등재

        중국의 대외전략과 아프리카 화교의 전망

        신은영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2019 중국지식네트워크 Vol.14 No.-

        전 세계 화교화인이 4,500만 명으로 집계되는 가운데 아프리카에도 100만 명 이상의 중국인 화교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최근 20년 동안 아프리카로 이주한 ‘신화교’들로 이들의 이동 배경에는 후진타오 시기 해외진출 전략과 에너지 자원 전략이 있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에너지 자원이 절실했던 중국이 아프리카 자원부국들이 필요로 하는 사회기반 시설을 지어주면서 대형국유기업에서 일하게 된 건설 근로자들, 그리고 개인 투자자들과 영세 상인들이 대거 아프리카로 몰려갔던 것이다. 이들 이주자들 가운데 건설 근로자들은 정해진 기한 동안 일을 하면 중국으로 돌아오지만 정부의 저리 융자를 이용하여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사업을 시작한 중국인들은 정착을 하여 아프리카의 ‘화교’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개혁개방 이후 선진국으로 이주한 다른 신화교들처럼 이들 대부분은 현지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중국국적을 유지하고 있고 중국표준어를 구사하며 중국인으로서의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2013년에는 시진핑 지도부의 새로운 외교 전략인 ‘일대일로 기획’이 나왔을 때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에너지 자원의 필요성은 줄었지만 중국은 아프리카 대륙을 이 기획에 포함시켰고 전보다 더 많은 사회기반 시설을 지어주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아프리카로 가는 중국인들을 더 늘어나게 하고 이로 인해 아프리카에 정착하는 더 많은 화교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중국인들이 아프리카 곳곳에 스며들어 개인 사업을 하고 장사를 하게 되면 이들이 일대일로 기획이 목적으로 하는 ‘무역확대’와 ‘민심교류’를 실행하는 주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More than 1 million Chinese are also living in Africa, with 45 million ethnic Chinese around the world counted. They are the new 'Overseas Chinese' who have moved to Africa in the last two decades, and behind the shift is the Hu Jintao-era energy resources diplomacy. China, which was in dire need of energy resources to continue economic development, has built infrastructure needed by Africa's resource-rich countries, prompting construction workers as well as private investors and small merchants to flock to Africa. Among these migrants, construction workers return to China if they work for a set period of time, but the Chinese, who started their business across the African continent using low-interest loans from the government, have settled down and become new 'Overseas Chinese' of Africa. In 2013, when the Xi Jinping started new diplomatic strategy of "one road one belt strategy" came out, the global economic recession reduced the need for energy resources, but China has included the African continent in the project and decided to build more social infrastructure than before. This will create more African Chinese, and if more Chinese enter into Africa and do their own business and trade, they will be the main drivers of the booming Chinese export market and people-to-people exchanges.

      • KCI등재

        ‘자유주의의 중국화’: 쉬지린(许纪霖) 사례를 중심으로

        유은하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2020 중국지식네트워크 Vol.16 No.-

        본 논문의 목적은 현대 중국의 대표적 자유주의 지식인 중 한 명인 쉬지린(许纪霖)의 사례를 통해 반(反)유가에서 친(親)유가로의 전환을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개혁개방 이후 소위 자유주의의 중국화에 대하여 실증적으로 규명하는 데에 있다. 1980-90년대에 유가와 현대 중국사회의 역사적 맥락은 단절되었다고 비교적 강한 어조로 반(反)유가를 설파했던 쉬지린은 2000년대 중반 무렵 이후 유가를 포용하는 논조로 전환하였다. 즉 유가를 전면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지만 현대 사회에서 유가가 독자적으로 회생되기는 어렵고, 자유주의도 자체의 불완정성으로 인해 중국에서 독자 생존이 어렵기 때문에 양자의 ‘제휴’가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이를 자유주의의 중국화 혹은 유가의 자유주의화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쉬지린이 유가를 핵심 문화코드로 하였던 전통사회의 가치 질서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부정적 인식을 보였다가 상당히 긍정적으로 돌아선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자유주의의 중국화에 대해서는 거의 하나의 ‘현상’으로 접근하여 일부 자유주의 지식인들의 최근 논의를 병렬식으로 제시한 경우가 많은데, 본 연구는 대표 학자의 논의에 대해 개혁개방 초기부터 통시적(通 時的)으로 살펴봄으로써 시대의 흐름에 따른 중국 현대 자유주의 사조의 변화를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밝히는 의의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empirically investigate so-called localization of liberalism in China by revealing specifically the conversion process from anti-Confucianism to pro-Confucianism through the case of Xujilin who one of a representative liberal intellectual in contemporary China. Xujilin who had an anti-Confucian view, advocating quite strongly that the historical context between Confucianism and modern China was cut off during 1980s-1990s has turned his view to embracing Confucianism since the mid-2000s. In other words, although Xujilin did not fully embrace Confucianism, he said that a partnership between the two―Liberalism and Confucianism―was necessary because it is difficult for Confucianism to revive independently in modern society and liberalism is also difficult to survive independently in China because of its own imperfections.

      • KCI등재

        다문화교육을 통한 대만인 정체성 구축 : 족군 관계를 중심으로

        강병환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2022 중국지식네트워크 Vol.19 No.-

        본 논문은 대만의 족군(ethenic group)에 초점을 맞추어 대만의 다문화교육을 논한다. 다문화 족군 정치에서 태동한 대만의 다문화교육이 제도적으로 안착되어, 30여 년의 교육을 시행한 결과 대만인의 정체성은 중국과 구별되는 정체성으로 나아갔다고 파악한다. 본문은 첫째, 대만의 다문화 사회가 형성된 역사적 맥락과 발전을 고찰, 둘째, 다문화 족군 정치 운동으로부터 태동한 다문화교육이 제도적으로 고착되는 과정과 셋째, 대만의 다문화 교육이 어떻게 대만인의 정체성 변화에 영향을 주었는가를 살피고자 한다.

      • KCI등재

        1989년 천안문 운동의 성격과 그 역사적 의미

        이홍규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2019 중국지식네트워크 Vol.14 No.-

        This article insists that Tiananmen movement in 1989 was not rebellious to CCP, even if the Chinese Communist Party and the Western medias all had regarded as an dissident movement. This paper claims that it means pro-democracy movement within the socialist regime to realize 'the socialist democracy'. I proved this claim objectively by Utilizing as much primary data as possible, such as opinion polls in China and newspaper articles around the period of 1989 Tiananmen movement. In conclusion, the strong interpretation of the current CCP leadership, which defines the 1989 Tiananmen Movement as an anti-regime movement, means that the possibility of political reform for the realization of "socialist democracy" has decreased. 본고는 1989년에 발발한 천안문 운동이 중국 공산당이나 서구 언론이 공히 간주한 것처럼 공산당에 대항한 반체제 운동은 아니었음을 주장한다. 본고는 1989 천안문 운동이 '사회주의민주'를 실현하려는 체제 내 민주화 개혁 운동이었음을 주장한다. 본고는 이를 위해 1989년 천안문 운동 전후의 중국 내의 여론조사나 국내외 신문기사 등 1차 자료를 최대한 수집, 해석하여 이러한 주장을 증명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1989년 천안문 운동을 반체제 운동으로 규정하는 중국공산당의 강경한 해석은 ‘사회주의민주’ 구현을 위한 정치개혁의 가능성이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 KCI등재

        중국 개혁개방 이후 농민공 개념의 형성과 변용

        윤종석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2020 중국지식네트워크 Vol.15 No.-

        본 연구는 개혁개방 이후 형성된 중국 농민공이 국가와 사회 모두로부터 타자화되고 배제되어온 사회적 구조를 특히 담론 측면에서 분석한다. 농민공은 중국식 체제전환의 과도기적 존재로서, 국가와 사회 모두에게 낯선 존재이자 타자로부터 규정된 이질적인 집단이다. 2000년대 초중반 이후, 농민공은 비가시화된 개체로부터 집단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지만, 농민공 문제로서 대상화되고 국가와 사회적으로 타자화되고 활용되면서 주체이자 객체인 모호한 지위로 거듭나왔다. 국가의 새로운 농민공 개념은 농민공을 자신의 공론장 내로 편입·포섭하는 동시에, 농민공을 타자화·대상화하고 주체로부터 배제하는 효과도 갖는다. 그 과정 속에서 농민공은 불법적이고 모호한 대상으로부터, 보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대상으로 변화되어왔고, 담론적·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주체적인 지위의 결핍은 농민공 자신의 문제해결에 근본적인 한계를 낳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s the changes in social and discursive status experienced by Nongmingong, informal rural-to-urban migrant workers. After the reform and opening-up, they have been constantly typified and excluded from both the state and the society, despite their huge scale. Nongmingong is a transitional entity of the Chinese-characteristic social transformation, an unfamiliar one to both the state and the society, and a heterogeneous group prescribed by the others. Since the early and mid-2000s, they have begun to collectively become visible from non-visible individuals, but have been subject to the 'Nongmingong problem', and have been reborn as a vague status as both subject and object, with various national and social utilities. The state's new concept of Nongmingong has the effect of incorporating and recruiting them into its own public sphere, while also otherized and excluded them from their subject status. In the process, they has been transformed from illegal and ambiguous objects to more complex and diverse objects, and the lack of discursive and ideological status as a subject has underlied fundamental limitation in solving problems of Nongmingong itself.

      • KCI등재

        在朝鮮 ‘中國專管租界’ 공간과 화상조직

        김희신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2022 중국지식네트워크 Vol.20 No.-

        조선이 개항한 직후 중국이 조선에 ‘중국전관조계(中國專管租界)’ 공간을 별도로 설정한 것은 조선으로의 중국인 이주 및 화교사회의 형성에 유리한 점이 있었다. 중국전관조계에는 별도의 관리 조직을 두지 않았고, 각지 주한사관의 관리 감독 하에서 각지 화상 회관(공회, 공소)에서 동사를 선출하고 조계 관리를 도왔다. 조계는 화상들이 상업 경쟁에서 위축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었고 화교사회가 정체성을 유지, 강화하는데도 의미가 있었다. 1910년 한일병합으로 중국전관조계는 1914년 다른 각국의 조계지와 함께 폐지되었고, ‘잡거’의 열린 공간이 되었다. 조계폐지를 둘러싼 중·일 교섭과정에서 사실상 조계내 중국인 소유의 토지 및 건축물에 대한 기득 권리를 보장받았다. 적어도 일상의 삶을 영위해 왔던 장소로서 조계지가 파편화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각지 회관은 조계 철폐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중·일 양국의 조계폐지 논의가 한창이던 시기 각지 회관은 ‘상회’로 재편되어 갔다. ‘상회’ 조직이 회원집단의 상업이익과 편의를 제공하는 경제조직이었지만 ‘집거’ 공간의 위생 관리 및 공동묘지 관리 등 회관의 기능을 이어나갔던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중화회관과 중화상회의 업무가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은 점은 한국화교사회의 특징이며, 조선 이주 초기부터 존재했던 ‘집거’ 공간의 존재와 그 관리 운영구조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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