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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본 한국유학생 잡지 <창간사, 발간사> 연구

        안남일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18 한국학연구 Vol.64 No.-

        This research is the roundup of ‘A Study on Korean Students Studying Magazines(First Publication) in Japan’ and the follow-up study of ‘A Study on Korean Students Studying Magazines in Japan’(“Jouranl of Korean Studies”55, Center for Korean Studies, Korea Univ. 2015) and ‘A Study on Korean Students Studying Magazines in Japan Before 1910’(“Jouranl of Korean Studies”58, Center for Korean Studies, Korea Univ. 2016). This research takes its subjects of following volumes: 5 volumes of Hakwoo(Classmate), which is the magazine of Korean students in Japan university, Hoebo(Chosun student alumni bulletin in Meiji University), Hoeji(Woori alumni bulletin in Chuo University), Hoebo(Chosun student alumni bulletin in Kyoto Imperial University), Dongchanghoehoeji(Woori alumni bulletin in Waseda University), and 10 volumes of Nakdongchinmokhoe-Hakbo(Bulletin of Nakdong-Chinmokhoe, Daehanhakhoe-Wuelbo(Bulletin of The Korean Society), Daehanhung-Hakbo(Belletin of Daehan-Hung), THE HAK KIE BO(Bulletin of Academic World), Geundae-Sajo(Modern Trend), Hakjigwang, Yeojagye(Women’s World), Samkwang(Three Light), Hyundai(Modern Times), Geumgangjeo(Vajra), Hakjo, THE KAICHUCK, Hakhae except 8 volumes of Chinmokhoe-Hoebo(Bulletin of Chinmokhoe), Taegeuk-hakbo(Bulletin of Tae Geuk), Gongsu-Hakbo(Bulletin of Gongsu), Daehanyuhaksaeghoe-Hakbo(Bulletin of the Association of Korean Students in Japan), Dongin=Hakbo(Bulletin of Dongin), published before 1910. The ‘First Publication’, which is focused on this research, is essential data for guessing the direction of the magazine, since it contains the purpose, intention and the way of publication. Especially, through the research of the ‘First Publication’ of the magazine, representative keyword of each magazine is identified and the meaning inside is presented. The research of the contemporary magazine has its meaning on that it is the outcome of exploring how Korean international student recognized the reality and overcame it under the specific circumstance of Japanese colonial era. 본 연구는 「재일본 한국유학생 잡지 연구」(『한국학연구』,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5.12)와 「1910년 이전의 재일본 한국유학생 잡지 연구」(『한국학연구』,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6.12)의 후속 연구로, ‘재일본 한국유학생 잡지 <창간사 및 발간사>’ 연구의 종합편이다. 본 연구에서는 재일본 대학 소속 한국유학생 잡지인 <학우>, <회보>(명치대학조선유학생동지회회보), <회지>(일본중앙Chuo대학우리동창회회지), <회보>(경도제국대학조선유학생동창회회보), <동창회회지>(조도전대학우리동창회회지)의 5종 잡지와 1910년 이전에 발행된 <친목회회보>, <태극학보>, <공수학보>, <대한유학생회학보>, <동인학보>, <낙동친목회학보>, <대한학회월보>, <대한흥학보>의 8종 잡지를 제외한 나머지 10종(<학계보>, <근대사조>, <학지광>, <여자계>, <삼광>, <현대>, <금강저>, <학조>, <개척>, <학해>)의 ‘창간사 및 발간사’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연구를 수행하였다. 본 연구에서 주목하고 있는 ‘창간사’와 ‘발간사’는 잡지 간행의 목적 및 의도, 방법이 녹아있는 만큼 잡지 전체의 방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특히 연구 대상 잡지의 <창간사 및 발간사> 연구를 통해서 각 잡지의 대표적 키워드를 확인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였다. 이 시기 잡지에 대한 연구는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 아래 놓여있던 한국유학생들이 어떻게 현실을 인식하고 극복하려 했는가에 대한 모색과 탐색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를 갖는다.

      • KCI등재

        세종대 동아시아 예악론의 인식 양상과 의례음악 정비

        송혜진(Song, Hye-jin)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14 한국학연구 Vol.51 No.-

        본 연구에서는 세종대의 국가 음악 정비 과정에서 노정된 동아시아 예악에 대한 인식을 주요 쟁점별로 정리하고 이를 세종대에 간행된 악보를 통해 재검토하였다. 세종대에는 국가 의례음악 정비과정에서 예악의 불균형, 예악 전거(典據)의 선별과 습용(襲用) 범위, 아악전용과 향악겸용 문제, 조종의 공덕을 기리는 악무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예에 비해 소홀히 취급된 악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현실 인식에서 촉발된 예악정비는 고제(古制)를 전형으로 삼고 경전과 역대의 주요 역사서와 사전류를 참고하되, 중국의 예악 전승도 ‘순정’하지 않으므로 ‘고례(古禮)’와 ‘시의(時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귀결되었다. 아울러 세종 전반기에는 고제의 예악론에 따라 속악을 버리고 아악만을 전용하자는 논의가 우세하였지만, 점차 ‘조선의 음악이 중국과 다르다’는 인식하에 향악 겸용론이 정착되었다. 세종 후반기에는 조종의 공덕을 기리는 교화 목적의 대규모의 악무 제정이 새롭게 추진되는데 이 과정에서는 전통적인 예악론에서 기피하는 속악을 과감히 채용함으로써 중국과 다른 국가의례음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세종대의 예악론의 인식과 국가예악 정비의 성과는 세종대에 세 종류의 악보로 완성되어 『세종실록』 권 136부터 권147권에 부록되어 전한다. 『세종실록악보』의 아악보는 군·신·민·사·물의 질서를 악률론으로 구현한 『율려신서』의 이론 중 일부를 채택하여 논리적 체계를 세우고 이를 활용하여 조회아악과 제사아악을 완성하여 악보화하였다. 이 악보는 중국의 원전을 조선의 방식대로 재편한 것이며, 중국과 다른 기보체계인 ‘궁상자보’를 새로 만들어 쓴 것이다. 신악보는 향악과 고취악에 기하여 조종의 공덕을 기리는 악가를 수록한 것이다. <봉래의>·<정대업>·<보태평>·<발상>의 42곡이며, 중국악보에서도 활용된 적이 있는 네모칸 악보를 응용하여 가사와 악기선율, 음높이를 적고, 여기에 중국과 달리 음의 시가를 표기할 수 있는 유량악보, 즉 정간보를 탄생시켰다. 세종대에는 아악 외에 전래의 속악을 정비하는데도 힘을 기울였다. 세종대에 속악 23곡을 수록한 『시용속악보』가 간행되었고, 이 중 두곡이 『세종실록악보』말미에 수록되었다. 이상과 같은 세종시대의 음악정비는 동아시아 유교의 근간을 이루는 보편적 예악론의 구현에서 출발하여 고제에 맞는 아악을 완성한데 이어, 예악론의 자율적 해석을 통해 조선 고유의 독창적인 신악을 창조하였다는 점에서 유례없는 음악사의 업적으로 평가된다.

      • KCI등재후보

        ????고려사?????에 나타난 팔관회의 음악양상 및 그 사상적 배경에 관한 고찰

        한흥섭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06 한국학연구 Vol.24 No.-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study a music aspect and thought background of the Palgwan-hwae Ceremony on the Koryosa. A-ak(Chinese music of the royal court religious ceremonies), Dang-ak(Chinese music of royal court party ceremonies), and Sok-ak(Korean popular music)had been performed at the Palgwan-hwae Ceremony. Among them, A-ak had been played for showing the strict manner at a place and impressive ornamentation of salutation in accordance with Yae-ak Sasang. Various music performance of neighboring nations, which expressed a view of Koryeo-centralism would be an important repertory with 'Baekhee' public performance at that day. Dang-ak and Sok-ak also had been performed at a regular party of the palace. They can be distinguished by their contents of performance. Dang-ak was thick Taoistic disposition and Sok-ak was dense to Confucian disposition. However there is no historical evidence what exact title of Dang-ak and Sok-ak had been played at the regular party, we can say that three of Dang-ak, 'Dang-ak Jungjae' had been palyed at a concert as it had been represented Taoism very much. As I mentioned above, lots of Koyreo's music(and the music of neighboring nations) had been performed at Palgwan-hwae Ceremony. By contents or thought, various of culture had been represented at Palgwan-hwae Ceremony, like Confucianism ceremonies which was from Yae-ak Sasang, Taoism, Buddhism, and 'Backhee' plays, showing a faithful of local gods at Palgwan-hwae Ceremony. Therefore, Palgwan-hwae Ceremony was symbol as a national ceremony that had expressed diversity of Koryoe's culture. 이 논문에서는 고려사에 나타난 팔관회의 음악양상과 그 사상적 배경을 탐구하였다. 팔관회의 의례절차를 분석한 결과 아악, 당악, 속악이 연주되었음은 물론, 고려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여러 주변국의 음악과, 토속신에 복을 비는 백희가무가 이날 행사의 매우 중요한 하이라이트였음을 확인하였다. 아악은 예악사상에 따라 왕을 중심으로 한 예의 엄격한 절차와 장엄한 수식을 위해 주악되었다. 그리고 이때의 아악 가운데 고려 태조 원년(981) 이후 송에서 ‘대성아악’이 들어오기 전에는, 삼국(사국)시대 혹은 통일신라시대 이래의 “궁중에서의 제사활동이나 조회의례에서 사용하는 음악”이라는 의미의 아악이 사용되었다. 또한 고려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여러 주변국의 음악이 매우 중요한 의례절차로 주악되었으며, 신라유풍인 백희공연에서 가무를 통해 토속신에 복을 기원하는 의례절차 역시 팔관회의 본질적 의식임도 확인하였다.그리고 본격적인 연회에서는 당악과 속악이 연주되었는데, 내용상 당악은 도교적 성향이, 속악은 유교적 성향이 농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곡들이 주악되었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없어 단언할 수는 없으나, 당시 궁중의 도교 취향 이외에도, 신선이나 장생불사(長生不死)와 같은 도교사상의 색채와 궁궐의 성대한 연회를 노래한 내용을 감안하면, 당악은 도교 취향의 ‘당악정재’ 가운데 ‘오양선’, ‘포구락’, ‘연화대’가 공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악곡이 연주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속악 가운데서는 속악정재인 ‘무고’, ‘동동’, ‘무애’가 공연되었으며, 노래는 ‘풍입송’이 연회 끝 무렵에 연주되었고, 삼국속악은 거의 불리지 않았다. 이처럼 팔관회 행사 때에는 고려시대의 아악, 당악, 속악은 물론 여러 주변국의 음악이 주악되었고, 사상적으로는 예악사상에 따른 유교적 의례, 도교적 신선 취향, 사찰 방문이라는 불교적 행사, 그리고 백희가무 공연에서의 토속신에 대한 신앙 등이 총체적으로 연출되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팔관회는 고려국의 드높은 위상과 고려문화의 다양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국가제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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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피랍도공 沈壽官家와 도자 연구

        방병선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17 한국학연구 Vol.63 No.-

        Joseon potter Shim Soo Gwan was kidnapp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from 1592 to 1599 and first lived in Gorai-cho and then moved to Naeshirogawa. The 12th Shim Soo Gwan(1835-1906) established the personal pottery kiln of Kyokugozan[玉光山] in 1871 and a pottery painting studio in 1888. From 1878 to 1897, he opened a Tokyo branch office and exported Satsuma ware under the supervision of his brother Shim Soo Sung[沈壽誠]. In the early years, Shim Soo Gwan family maintained Joseon style of pottery but from the 5th generation, the Satsuma style was fully explored. The 12th generation established his own style of Kinrande and over glazed ware and also black glazed bowls. 본고는 임진왜란 당시 피랍 도공 심수관가의 기원과 전개, 도자 양식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심수관가는 일본 납치 초기 사쓰마 고라이쵸에서 지내다 지금의 나에시로가와로 이주하여 대대로 藩窯에서 작업하였다. 廢藩 직후 12대 심수관(1835-1906)은 1871년 나에시로가와 도기회사에서 일하면서 국내외 박람회 등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직접 玉光山陶器製造場과 陶器畵硏究所를 차렸으며, 동경 지점에서는 동생 沈壽誠 감독하에 수출용 사쓰마 도자기를 제작하였다. 심수관요는 사쓰마 인근의 백토와 天草 도석을 원료로, 유약은 균열유를 기본으로 백유와 흑유, 갈유 등을, 가마는 연방식 등요를 사용하였다. 심수관요 초창기는 조선 도기 양식이 주를 이루었으나 5대부터는 사쓰마 도자양식을 따랐다. 특히 12대 沈壽官은 白薩摩를 바탕으로 한 금채자기, 상형백자 등을 제작하여 사쓰마 자기의 典範으로 자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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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학십도(聖學十圖)』에 나타난 인성덕목의 교육적 의의

        장병희,이경자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18 한국학연구 Vol.67 No.-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value of humanity education through the virtue of personality in the 『Ten Diagrams on Sage』written by Toegye(退溪) Lee Hwang(李滉) for the monarch. 『Ten Diagrams on Sage』 is a system of Sacred Learning of Confucianism and composed of with Ten Diagrams. This system includes virtues that a monarch should have as a monarch. The personality virtues that can be seen in the 『Ten Diagrams on Sage』are mainly Ren(仁), filial piety, empathy and reverence. Through this personality virtue, we can understand the meaning and method of cultivating personality. First is the acquisition and practice of the Ren(仁) through “Giving up the desire and going back to the mind”. By doing this, you will be able to cultivate your own insight. The second is the practice of filial piety. We can achieve social relations by honoring our parents, being friendly with our brothers, and practicing the spirit of a empathy that loves others. Thirdly, it is the cultivation through reverence. With the reverence as the core of fostering social and emotional ability can be cultivated. You can control your emotions through the cultivation of reverence, which can help resolve conflicts with people. 본 연구는 퇴계 이황이 군주를 위해 집필한 『성학십도』에 나타난 인성덕목을 통해 인성교육의 가치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성학십도』는 10개의 도상으로 ‘성학(聖學)’의 체계를 담고 있다. 이러한 체계에는 군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 포함되어 있다. 『성학십도』에서 볼 수 있는 인성덕목은 주로 인, 효제, 서, 경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인성덕목을 통해 인성을 함양할 수 있는 방법과 의미를 알 수 있다. 첫째 극기복례를 통한 인의 체득과 실천이다. 이를 통해 자기 통찰력을 함양시킬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효제와 서의 실천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며 다른 사람을 헤아릴 줄 아는 서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으로 사회관계를 원만하게 이룰 수 있다. 셋째 경을 통한 수양이다. 경은 수양의 핵심으로 사회‧정서적 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 경의 수양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고 이는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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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기 중학교 국어 교과서 내용 및 체계 연구 - 실제 활용 양상을 중심으로 -

        주현희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22 한국학연구 Vol.80 No.-

        본 연구에서는 한국전쟁기 간행된 중학교 국어 교과서의 내용 구성 및 활용 양상을 살펴보고 피란수도 부산에서 국어 교육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먼저 전시 상황에서 운영된 교수요목 및 교육과정을 살펴보고 이러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편찬된 국어 교과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교육 자료가 전쟁 상황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당시 피란학교의 교무일지 등의 학교사 자료와 아울러 살펴보았다. 전시 상황에서 피란수도 부산의 학교 교육은 문교부가 공포한 「전시하 교육 특별 조치 요강」에 맞춰 긴급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시 상황에서 피란학교에서는 교사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규교과 과정을 운영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므로 전시 상황에 맞추어 정규교과 과정은 군 위문 활동 등의 특별 활동으로 대체하였으며 국어 교육 또한 이러한 상황에 맞춰 이루어졌다. 국어 교과서도 국군의 승리를 기원하는 글이나 위문편지 등을 학습 내용으로 구성하여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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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자본 <옥포동기완록> 연구

        여봉수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22 한국학연구 Vol.81 No.-

        This paper examines the current status of the copy of <Okpodonggiwannok>, the narrative method of the work, and the character of the main character. Until now, scholars in North and South Korea have studied only Chinese manuscripts. In this paper, the following results were derived by paying attention to the narrative characteristics of the printed book <Okpodonggiwannok> and the newly created character. First, the printed book <Okpodonggiwannok> expanded the narrative width through the expansion of characters and episodes. Second, the printed book <Okpodonggiwannok> has a complete frame structure, so it approached popularity, and it was not bound by 'educational' or 'ideological' like the Chinese text by processing the ending through the sijo(時調). Third, the main character of the printed book <Okpodonggiwannok> was born as a new toad character with excellent resourcefulness, martial arts protecting the community, and excellent judgment. 본고는 활자본 <옥포동기완록>의 이본 현황, 작품의 서사 방식, 주인공의 성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동안 남북한의 학자들은 한문 필사본만을 대상으로 연구해 왔다. 본고에서는 활자본 <옥포동기완록>이 갖는 서사적 특성과 새롭게 창출된 인물 성격에 주목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첫째, 활자본 <옥포동기완록>은 인물과 에피소드의 확장을 통하여 서사의 편폭을 확대해 나갔다. 둘째, 활자본 <옥포동기완록>은 액자구조를 온전히 갖추고 있어 대중성에 접근했으며 시조를 통한 결말처리를 통해 한문본과 같은 ‘교술성’이나 ‘이념성’에 얽매이지 않았다. 셋째, 활자본 <옥포동기완록>의 주인공은 뛰어난 지략, 공동체를 지키는 무공, 뛰어난 판단력을 갖춘 새로운 두꺼비 캐릭터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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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란 전후 피랍 도공 연구- 가고시마 나에시로가와지역을 중심으로

        방병선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18 한국학연구 Vol.67 No.-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trace and suggest a new perspective on the Naeshirogawa potters in the Kagoshima area, who were taken from Joseo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and where the change of the work is known until today. Among these potters, Park Pyeong-eui discovered white clay and glaze materials, made white ceramics and was ordered to inherit the name of the pottery industry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His work earned him a position to oversee ceramics production and his son succeeded him. However, after the Meiji Restoration, Park's descendants renamed themselves "Dogo" and even became World War II war criminals. Furthermore, Shimdang-gil, who is the ancestors of Shim Soo-gwan was also recognized his technique from the feudal lord after his settlement in Naeshirogawa. Shim Soo-gwan, a descendant of the 12th generation in the late 19th century, was recognized worldwide for his excellent skills and became a major potter of Satsuma pottery. The art of making pottery by descendants after the 12th generation is highly regarded in that it is still a constant success. In the end, it is necessary to try to evaluate the pottery making ability of the abducted person, the activities of the descendants, including assimilation into Japan. In this respect, this article suggests that the emotional evaluation of the act of the kidnapping should be refrained but thoroughly reviewed through literature review and evaluation of the work. 본 논문은 임진왜란 전후 피랍된 도공 가운데 가고시마 사쓰마 나에시로가와 지역 도공들의 행적을 고찰하여 그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먼저 박평의는 백토와 유약 원료 등을 발견해서 백도기를 만들어 번주로부터 대대로 도자 제작업을 세습하고 이름을 계승하도록 명받는다. 이러한 그의 업적으로 도자 제작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그의 아들도 이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후 박평의 후손들은 일본식 개명을 단행하여 ‘도고’씨로 이름을 바꾸고 심지어 2차대전 전범이 되기까지 하였다. 다음 심당길, 즉 심수관의 선조 역시 나에시로가와 정착 후 번주로부터 기술을 인정받아 그 업을 세습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12대 후손인 심수관이 탁월한 실력으로 세계적으로 기술을 인정받아 사쓰마 도자기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12대 이후 후손들의 도자 제작 기술은 심수관만 못하나 지금까지도 꾸준히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결국 일본 피랍 조선 도공에 대한 평가는 피랍 당사자의 도자제작 능력과 행적, 후손들의 활동과 일본 동화 등을 분리해서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면에서 본고는 피랍 혹은 망명 예술가의 행적과 그 후손들에 대한 감정적 평가를 자제하고 철저한 문헌 조사와 작품 평가 등을 통해 새롭게 보아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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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관찰부공립소학교의 설립과 운영

        손병철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19 한국학연구 Vol.69 No.-

        Gyeongsangbuk-do Province Public Basic School was the first school in Daegu, which was established in 1896 as the result of Gap-o Reform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About the location of the basic school, the first record was in the Gyeongsang Gamyoung Gonghaedo, which specified the location of the school as the right side of Sunhwa-dang. Teachers of Gyeongsangbuk-do Province Public Basic School were 2 kinds. Some were appointed from Hansung Teachers School graduates, and others were teacher-assistants who were recommended from local scholars and approved from Hakbu. Finance of the school was supported 360 won annually from Basic School subsidiary regulation. There were not many students. There were students who were above 15 years, unlike today, and some students were already married. Before the basic school changed into primary school, the existence of Gyeongsangbuk-do Province Public Basic School for 10 years, was the result of the effort of our people, who were trying to make the legitimate and institutional foundation of contemporary education. 경상북도관찰부공립소학교는 구한말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1896년 대구에 세워진 최초의 근대학교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경상북도관찰부공립소학교의 존재는 부정되었지만 경상감영 관아 공해도의 선화당 우측 편 전 장관청 자리에 공립소학교가 나와 있다. 경상북도관찰부공립소학교의 교원은 한성사범학교 졸업생 중 학부에서 발령을 받은 교원과 지방 유림의 천거로 학부가 인정한 부교원 제도가 있었다. 재정은 소학교보조규칙에 의해 연간 360원의 지원금액이 확정되었지만 당시 외획이라는 세금조달방식으로 인해 지방에서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학생들은 오륜의 유교적인 내용과 개명진보를 위한 내용을 배웠고 15세 이상의 학생들은 자율적인 개진협회 활동도 하였다. 경상북도관찰부공립소학교는 1906년 학부령 제27호에 의해 보통학교로 개편되기까지 설립 이후 10년 동안 부족한 여건에서 제도적, 법적으로 체계를 마련해가는 과정이었다. 경상북도관찰부공립소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연구가 대구 근대교육의 재검토로 이어져 대구근대교육의 시작이 일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노력이었음을 밝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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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음식』연구 - 전체 구성과 표기의 특징을 중심으로 -

        이현희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22 한국학연구 Vol.80 No.-

        『우리음식』은 1948년 손정규가 지은 조리서로 조선 요리 380여 가지의 조리법을 소개한 책이다. 조리법과 함께 반상 차림과 반찬 일람표, 식기의 명칭과 용도, 그림 등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특히 『우리음식』 전체에 걸쳐 조선 요리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드러나 있는데 손정규는 조선 요리의 계량화, 과학화, 단체화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시기 다른 조리서들과 달리 그림이나 표, 사진 등을 추가하여 조리법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기술되었고 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우리 음식을 다루고 있다. 대학에서의 수업을 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조리법을 소개하는 형식이나 표기도 매우 정연하게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재료를 소개할 때 ‘메틀법’에 따라 ‘그람’이나 ‘릿틀’ 등으로 표시하였고 조리법의 순서를 ‘,’(쉼표)를 통해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띄어쓰기나 문장의 구조 등이 현대국어와 같이 매우 규칙적으로 지켜지고 있으나 ‘와를/과를’, ‘이나를’과 같이 중세국어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또 현재는 단어로 쓰이는 예들이 통사적 구성 형식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둘에 쪼개다’, ‘셋에 자르다’와 같이 부사격조사 ‘에’가 쓰인 예가 보이는데 이 시기 다른 조리서에도 이런 표현이 사용되었다. 아울러 피동이나 사동이 잘못 쓰인 경우나 부사의 수식이나 호응이 어색한 경우도 있다. 한편 『우리음식』은 이 시기 다른 조리서들에 비해 재료나 음식의 상태나 모양을 나타내는 표현이 다채롭다는 점인데 논의의 분량상 이에 대한 논의는 후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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