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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國土着化神學 硏究 : 토착화에 있어 복음과 문화의 상관성에 대한 고찰

        강병권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대학원 1996 국내석사

        RANK : 249663

        이 논문은 어떻게 한국토착화신학이 복음과 문화의 상관성문제를 논의해왔는지에 관하여 연구하고자 하였다. 한국토착화신학을 이해하고자 할때, 이러한 상호 관계성문제는 매우 중요한 논의로서 작용할 것이다. 때문에, 본 논문은 한국토착화 신학자들의 신학 작업을 분석하면서 복음과 문화와의 상호 관계성 문제를 연구하였다. 과거 한국토착화신학(1960년대 윤성범과 유동식)은 "번역모델"과 "적응모델"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이 두모델을 따르는 한국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의 복음과 맥락(=문화, 종교전통과 역사적 맥락들)와의 상관성문제를 철저하게 담지 못하였다. 이 두모델에서 그리스도교 메시지는 지역의 문화와 역사적 현실을 제약할 뿐만 아니라, 일방적으로 번혁되어야 할 대상으로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본 논문은 지역의 문화와 역사적 맥락를 또다른 주체로서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성찰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본 논문은 해석학적 순판 공리를 사용하였다. 우선 제1부에서 다양한 토착화 개념들을 살펴보면서, 본 논문은 "Interculturation"이라는 개념을 소개하였다. 일반적으로 가톨릭 교회가 "Incultur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반면에, 이 용어는 복음과 문화의 상호관계 문제에 관련하여 해석학적 순환 공리를 담아내고 있다. 제2부에서 본 논문은 한국토착화신학의 두가지 신학적 근거를 진술하고자 하였다. 첫째로 이 논문은 이스라엘 역사와 문화(구약과 신약에서)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토착화에 주목하였다. 두 번째로 본 논문은 그리스도교 근본 교의과 관련하여, 한국토착화신학의 가능성을 전망하였다. 특히 본 논문은 스힐레벡스의 저서인 Interim Report on the Jesus & Christ, Christ과 Church에서 진술되어왔던 계시, 경험, 해석과 "해석의 틀"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필자는 계시안에서 "해석의 틀" 개념들에 관하여 고찰하면서, 한국적 상황에서 하느님의 자기 계시를 성찰하고자 하였다. 제3부에서 본 논문은 1960년대부터 1996년까지 해석학적 용어인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관계성 문제와 비교하여 한국토착화신학 안에서 나타난 복음과 문화(종교전통과 역사적 현실까지 포함하여)와의 상관성 문제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한국 개신의 경우에, 이 관계성문제는 복음이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측면에서 "독백적 관계 구조"로서의 "종자-밭"론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본 논문은 복음과 민족, 민중의 현실과 관련하여 "상호 비판적 관계 구조"로서 "접목"론을 진술하였다. 한편, 서남동의 전거론을 고찰하면서 한국의 민중의 삶의 자리가 신학의 중요한 주제로 전이하는 것을 고찰하였다. 두 번째로 한국가톨릭교회의 경우, 본 논문은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1984년)의 "육화"토착화론과 심상태 신부의 토착화론의 해석학적 구조를 고찰하였다. 사목회의의 "육화"토착화론은 복음이 문화를 성취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사목회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적응과 대화 정신에 입각하여 이러한 성취론적인 신학적 입장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사목회의의 복음과 문화의 상관성문제를 "창조적 긴장관계"로 보았다. 또한 이러한 "창조적 긴장관계"는 심상태 신부의 토착화론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끝으로 제4부에서 본 논문은 "독백적 관계구조"(윤성범과 유동식)를 취하는 "종자-밭"론, "접목"론의 "상호 비판적 관계구조"(박종천), "맥락"을 우선시하는 서남동의 전거론, 사목회의와 심상태 신부의 "창조적 긴장관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복음과 문화와의 상관성과 관하여 "상호 대화적(변증법적)관계 구조"를 제안하였다 특히 본 논문은 복음과 문화와의 상관성 문제와 관련하여 상호 대화적 관계 구조를 해석학적으로 진술하고자 하였다. 복음은 문화를 규정한다. 마찬가지로 문화(종교전통과 역사적 맥락을 포함하여)는 복음이 구체적으로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로 육화하기 위해서 초기 교회에서부터 복음을 규정하였다. 즉 복음과 문화의 상관성문제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규제하지 않고 "상호 대화적 관계 구조"을 통하여 전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성찰이 다양한 논의에 의해서 특히 혼합주의와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에 있어서 의문시되고 있기 때문에, 본 논문은 정당한 혼합주의에 관한 레오나르도 보프의 신학적 성찰을 수용하면서 복음과 문화의 대화적 관계성 문제를 제안하고자 하였다 이후 한국토착화신학에서 이러한 관계성을 철저하게 성찰하고자 한다면, 보다 풍요로운 "한국신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신학"은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과 보편교회와의 대화하고자 시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신학"은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과 보편교회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This paper tried to investigate how the Inculturation Theology in Korea had argued the correlativity of the Gospel and culture. This correlativity will operate as a very important point when we try to understand the Inculturation Theology in Korea. Therefore this paper investigated the correlativity of the Gospel and culture, analyzing Korean Incuturation theologians' theological works. Past Inculturation Theology in Korea(1960's Yun, Sŏng Bŏm and Yu Dong Sik) did not overcome "The translation model" and "The adaptation model". Korean theologians following both models did not completely included correlativity of the Christian message and contexts(=culture, religious traditions and historical contexts). The message of Christianity in both models did not only restricted a local culture and historical context, but also confined them as objects to be transformed one sidedly. But this paper see local culture and historical context as one other subject. To introduce this theologcial reflections, this paper used hermeneutical circle axiom. First, in Park 1, seeing several concepts of inculturation, this paper introduced the concept: of "Interculturation". This term imply hermeneutical circle axiom about correlation with the (ospel and culture, while Catholic Church is using generally conception of "Inculturation". In Part 2, this paper presented two theological foundations of Inculturation theology in Korea. First, this paper gave attention to God's Inculturation reveled in Israel's history and culture(the Old Testaments and the New Testaments). Second, this paper examined the tx)ssibility of Inculturation theology in Korea in relation with Christian fundamental dogma. This paper especially investigated C. Schillebeeckx's comcepts, revelation, experience, interpretation and "framework of interpretation" which have been explained by his works Interim Report on the Jesus & Christ, Christ and Church. Investigating "frameworks of interpretation" in revelation, I tried to reflect God' self-revelation in a Korean context. In Part 3, his paper tried to explain how correlativity of the Gospel and culture(including religious traditions and historical contextsfas compared with relationship of 'Text' and 'Context'-have appeared in Incultration Theology in Korea from the 1960's to 1996. First, in the case of Korean Protestant Chruchs, this relationship appeared in the "Seed-field(soil)" model as "Structure of monologue", in this models the Gospel was always considered superior to a culture. And this paper explained Park, Jong Chop's "Gfaft" model as "Mutual critical relational structure", in relation to the Good News and 'Nation', 'Minjung's context'. On the another hand, this paper investigated that. Korean minjung's life situation was transfered into important theological theme for this I studied So, Nam Dong's reference theory_ Secondly, in the case of Korean Catholic Church, this paper investigated the "Incarnation" models pastoral council of Bicentennial of Korean Catholic Church(1984) and hermeneutical structure of inculturation argument. of Sim, Sang The. The "Incarnation" model of pastoral council was in a position that the Gospel had to accomplish the culture. But in terms of the adaptation and ecumenical spirit. of Vat Ⅱ, pastoral council has moved from this postion of 'accomplishment. of a culture'. So this paper regarded the correlativity of the Good News and culture in pastoral coumcil as "Creative tension relation". This "Creative tension raletion" is also found in Sim, Sang Tae's inculturat.ion argument. Finally, in Part 4, this paper suggested "Correlation dialogical structure" in relation to the Good News and culture in order to overcome the "Seed-field(soil )" model as "The structure of monologue"(Yun, Sang BOm and Yu Ikmg Silc), "Mutual critical relation structure" as "Conference" model(Park, Jong Chen), Se, Nam Dong's reference theory putting first in "Context.", Pastoral Council and Sim, Sang Tae's "Creative tension relationship". Especially this paper tired to explain hermeneuticially "Correlative dialogical structure" in relation to the Gospel and culture. The Gospel have regulated culture. Likewise the culture(including religious traditions and historical context) also has regulated the Gospel from early church history, when the Gospel incarnated concretely into historical cultural contexts. In short relationaship of the Gospel and cultrue must be developded into "Correlative dialogical structure" subordinating each other as passive object. But since this reflection is questioned by several arguments, especially by the syncretism and Christianity identity, this paper tried to suggest dialogical relationship beteen the Gospel and culture, employing L. Hoff's theological reflection on valid syncretism. When we conataletely try to reflect this dialogical relationship in Korean Inculturation Theology, we can develop more abundar4t. "Korean Theology". Of course "Korean Theology" must be strive l.0 communicate with Catholic Christian Theology and the Universal Church. Because "Korean Theology" will form in harmony with Catholic Christianity Theology and the Universal Church.

      • 解釋學的 循環의 觀點에서 본 韓國 가톨릭 土着化 神學

        고형석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대학원 2001 국내석사

        RANK : 249663

        신학함은 해석과 이해, 그리고 적용의 과정이다. 이에 따라 한국인으로서 지금 여기서(hic et nunc) 신학함은 우리의 심성에 뿌리를 두고 복음의 시각으로 우리의 역사와 상황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교적 투신을 의미한다. 이에 본 논문은 토착화 작업이 지니는 상황과 본문의 상호호응관계를 드러내고, 한국 가톨릭 신학 토착화 작업을 평가하는 연구의 목적을 둔다. 이를 위해, 토착화의 근거로서, 해석학이 제시하는 이해의 순환구조와 상황과 본문의 상관관계를 정리하였다. 여기서는, 슐라이어마허와 딜타이, 하이데거와 가다머의 해석학에 전개된 해석학적 순환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해석학적 순환은 신학적인 성찰에 있어서, 문화와 복음 간의 상호작용과 조화가 지닌 중요성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본 연구는 이러한 해석학적 순환이 신학함의 작업에 적용된 예로서,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알로시우스 피어리스의 아시아 해방신학의 해석학적 구도를 정리하였다. 이들에게서 상황과 본문의 상관관계는 정교(orthodoxy)과 정행(orthopraxis)의 조화 안에 고찰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어서, 논자는 한국 가톨릭 토착화 신학의 신학적 기초를 정리하였다. 이때, 토착화 작업의 기본요소들로서, 강생과 창조 그리고 하느님 나라로서의 교회와 구세사적 차원에서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제시되었다. 한국 가톨릭 토착화 신학의 작업을 고찰하는 장에서는, 선교 200주년을 기념하여 소집된 사목회의 의안이 표명한 육화 토착화론이 정리되었다. 이 의안은 문화보다 복음을 절대적 기준으로 천명함으로써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토착화관을 잘 드러내주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한편, 그리스도 중심의 적응-대화 토착화론을 전개하는 심상태 신부의 토착화론은, 성취론적 한계를 지니지만 문화에 대한 신학적 사고를 심화시킨 점에서 의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본 논문은 해석학적 순환에 대한 적확한 이해가 토착화 작업의 관건이 되며, 특별히 토착화 작업에 있어서, 정행과 정교의 조화의 중요성을 유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문화중심과 상황중심의 토착화론의 조화는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의식에 기반하여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본 논문은 신학함의 주체로서 자인식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문화와 복음 또는 상황과 본문 중 어느 하나를 비주체적으로 다른 하나에 적용시키는 작업이 아니다. 신학의 토착화 작업은, 이 둘의 조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육화에 나타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작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Doing theology is an Hermaneutical process in which those steps of understanding, interpretation, and application are interwoven together. Then, we can say that "Doing theology here and now as Korean means interpreting our history and situation on the Gospel's viewpoint and then being involved with christian commitment." In this connection, the aim of this thesis is to newly recognize and lighten the importance of reciprocal relationship of the text and context on the task of inculturation of theology. And the object of this will be to evaluate the works of inculturation perfomed by Korean Catholic church and theologian. For this aim, the first part describe 'Hermaneutical Circulation' as the ground of inculturation. In this part, I've examined the circulation unfolded on the Herneneutics of Schleiermacher, Dilthey, Heidegger, and of Gadamer. Those circulation shows us the importance of achieving the harmonization between the culture and the gospel in doing theology. It is followed by the part that deals with the Liberation theology of Latin America and Asia- that of Aloysius Pieris'- as an example of application the Hermaneutical circulation on theology. In this process I've put the focus on the balance of orthodoxy and orthopraxis emphasized on their theology. The Second part of the study, entails approaches of Korean Church to inculturation theology, with noting the fundamental link between culture and Gospel and making fuller analysis of the various theological concept of inculturation. And I proposed four elements on which the task of inculturation should be developed; Incarnation, Creation, the Church as the Kingdom of God and finally the Exihibition of the Tirnitarian God on His work of Salvation. The final part of the study looks at the present prospects for inculturation in Catholic Church and the potential contributions of the two models of inculturation. The first one is the 'incarnation model' presented on the "Commentary of the Proposal of the National Pastoral Congress for Bicentenial Anniversary of the Evangelization of the Korean Catholic Church". This model, which elucidated the gospel as the absolute criteria superior to the culture, was evaluated as the typical viewpoint of inculturation. On the other hand, the second model, model of adaptation-dialogue, presented by Fr. Shim Sangtae has evaluated to have a great significance for it has deepen theological consideration for culture, although it has a limit of accomplishment. In the conclusion, it is argued that, the most important key on the task of inculturating theology is the precise understanding of hermaneutiacal circulation and we must pay lots of attention on achieving harmonization of orthodoxy and orthopraxis. We have to keep the balance between culture-centered theory and context- centered theory of inculturation with taking our roots on the self- subjective awareness. In this perspective, this paper claim the importance of having self-image as the Subject of doing theology. The problem what we are confronted today to solve is not just showing the way how to appilicate one elemenent of culture- gospel or one of context- text. It is harmonizing those two based on the balance of orthodoxy and orthopraxis, for Inculturation of Theology is nothing but searching the new paradigm by which we can realize the Kingdom of God shown to us in the incarnation of Trinitarian God on here and now.

      • 루카 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드러나는 ‘길’ὁδός에 대한 고찰

        문성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 2017 국내석사

        RANK : 249647

        인류의 문학 안에서 ‘길’이라는 단어와 표현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길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만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생을 의미하기도 하고, 삶의 가르침 또는 선택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색이 오직 인간의 문학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도 하느님의 말씀임과 동시에 일종의 문학 작품으로서 각 부분은 자신만의 문학 양식과 표현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성경 안에서 ‘길’이라는 단어는 신약 성서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많이 등장한다. 이 중에 다른 복음서와 달리 루카만이 자신의 속편인 사도행전을 가지고 있다. 각각 루카와 사도행전에서 약 20번의 ‘길’(ὁδός)이라는 단어들이 등장하고 있고, ‘여행하다’(πορεύεσθαι)가 루카복음에는 51번 사도행전에 38번 등장한다.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에 있어서 루카 저자가 신학적 의도를 가지고 또는 자신만의 문학적 표현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본 논문에서는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으로 이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역사에서 ‘길’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어떠한 신학적 의미가 있는 지를 밝히고자 한다. 길의 물리적인 이해와 각 부분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길’의 신학적인 의미 그리고 수식어와 같이 쓰이고 있는 표현들 이를테면 루카 복음서에서 등장하고 있는 ‘길을 준비하여라’, ‘주님의 길’, ‘하느님의 길’ 등의 단어들과, 사도행전에서 사용되고 있는 ‘생명의 길’, ‘주님의 길’, ‘새로운 길’ 등의 단어들에 대한 의미를 밝히고자 노력하였다. 루카는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길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마르코의 자료를 그대로 수집하는 경우도 있고, 마르코의 자료에서 길이라는 단어를 수정하여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루카는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예수의 공생활을 유다에 국한 시키려는 경향이 있으며, 사마리아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Q 문헌의 자료에 있어서도 루카는 그대로 자료를 수집하여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길’이라는 표현을 첨가 또는 삭제하여 기록하였다. 그리고 루카는 관사 ‘ή’를 길(ὁδός) 앞에 사용하여 단일한 길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루카의 이러한 노력은 세례자 요한이 준비하고 예수에게서 시작된 길이 사도행전의 제자들에 의하여 연장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루카는 비교적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가르침을 전하거나 교회가 걸아야 할 마음가짐을 가르치는 것에 집중되어 있으며, 루카의 본문들에서 보다 이방인 선교를 예고하는 의미가 강하고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 임박한 종말론의 모습이 축소되어 있다. 그리하여 루카와 사도행전의 본문들에서 길은 교회에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을 위한 삶의 방식을 알려주는 지시가 되기도 하고, 교회가 가지고 있는 선교와 박해의 숙명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사도들 또한 박해를 받으며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교회의 길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명령으로 주인이 손님을 초대하기 위해 종을 보내듯 사도들은 세상을 파견되어 나가는 선교의 길이다. 그리고 ‘길’은 교회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지하게 되면서 더 이상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교회를 지칭하는 호칭 ‘새로운 길’이 된다. 즉 루카 사도행전에서 길의 신학은 루카와 사도행전의 사건들을 단일한 길의 연장선 위에 올려놓는다. 따라서 루카의 구원론에서 길은 구원 경륜을 위해 나아가는 공간임과 동시에 구원을 향해하는 실천적인 노력이며, 종말론적으로는 구원으로 향하는 표지이자 다리로서 다가올 종말을 준비하는 교회의 노력으로 이해된다. 본 논문은 스스로를 순례자와 나그네로 이해하고 있는 교회의 이해가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 지를 연구하였다. 루카의 특수성에 집중하기 위하여 다른 공관복음과 서간들과의 관계보다는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본문에 집중하였고, 정확히는 ‘길’(ὁδός)이라는 단어의 사용에 집중하여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이 논문은 지상의 순례자로서의 교회가 가져야 할 태도를 알아보기 위한 바람을 위하여 작성되었다. In human Literature, the word ‘Way’ has several meanings. The way indicates not only a physical path but also the way of life and the wisdom of life. This kind of usage is not only in secular literature. The Bible is the word of God and is also a kind of literary work, Each part of the Bible has its own form of expression. God called the evangelists to be his instruments. Therefore the Holy Spirit leads us by using writers through languages and expressions. The word Way(ὁδός) is one of those linguistic expressions. Especially, the ‘Way’ appears many times in the Four Gospels and the Acts of the Apostles. The Gospel of Luke is linked to the Acts of the Apostles . The Acts of the Apostles was written as the sequel to the Gospel of Luke. The word ‘Way’(ὁδός) is used 20 times in the Gospel of Luke and Acts of the Apostles. Also ‘travel’(πορεύεσθαι) is used in the Gospel of Luke 51 times and in the Acts of the Apostles 38 times. It has the highest usage in all the New Testament. It is my opinion that Luke uses the word ‘Way’(ὁδός) as a literary expression for his purpose. In this thesis, I intend to explore how the use of the word ‘Way’(ὁδός) in Jesus’ lifetime and the history of the church in the Gospel of Luke and the Acts, according to our understanding of the word as a physical way and the use of the way as a theological description, I examined the Gospel of Luke and Acts to find out the different meanings and the many uses in different contexts, such as ‘the way of Lord’, ‘the way of life’, and ‘the way of God’. When Luke uses the ‘Way’ in the Gospel he sometimes accepts Mark’s source, but he revises materials for his theological purposes too. Luke does not intend Jesus’ ministry to focus on Judas and also is very favorably inclined to Samaria. Additionally when Luke uses materials of Q, he also deletes or inserts the word ‘Way’(ὁδός) on purpose. Luke always mentions the ‘Way’(ὁδός) with the definite article ‘ή’ to emphasize singleness. It indicates the Way for which John the Baptist prepared and is connected to Jesus’ way to Jerusalem and finally to the way to Rome by Apostles. So those contexts place a high importance on real history, practical wisdom and the problems of early Christians. Luke minimized eschatology comparatively. Luke’s main idea is the mission to the end of the world. The ‘Way’ is sometimes a direction for people who have entered the Christian community recently, so the Way instructs them how to live as followers of Jesus Christ. In addition, the Way gives advice for those under the stresses of persecution. The Way is to fulfill Jesus’ order to the Church to go out to the Gentiles like the servant who goes out to invite people to obey the Lord’s command. The Apostles try to spread ‘the Way of life’ and are rejected by some, just like some Israelites rejected Jesus. Finally the ‘Way’ is personified so the Church can regard herself as the new Way. The ‘Way’ reveals the identity of the Church. In the Gospel of Luke and in the Acts all Soteriological events of God’s providence are on the way. And the Way which was begun by John the Baptist- the last prophet- extends to Jesus’ way to Jerusalem and is further extended by the Apostles. So the Way is the bridge and the practical means for the fulfillment of salvation. Working on the Way the Church is preparing for the Eschaton. This thesis delves deeply into the Way as the identity of the pilgrim on earth for Christ. It is based on the Gospel of Luke and the Acts of the Apostles. It focuses on the use of the word ‘Way’(ὁδός). Consequently this thesis studies texts with a hope of showing the Way as the life of a pilgrim on mission.

      • 가톨릭 학교교육에 대한 교구장 주교의 역할에 관한 고찰

        조민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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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 문 초 록 가톨릭 학교교육에 대한 교구장 주교의 역할에 관한 고찰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실천신학 전공 <지도 : 이 경 상 교수> 조 민 환 제 삼천 년 기에 들어선 지금, 대한민국 공교육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입시라는 굴레와 사교육의 확대 속에 학교교육은 그 고유의 본질적 목적과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아울러 일부 사립학교의 교육 부조리나 재단 내의 경영상 횡포로 인한 사립학교법 개정은 가톨릭 학교와 같이 모범적인 사학의 건학이념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 안에서 본 소고는 가톨릭 학교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가톨릭교회의 노력을 고찰하고자 했다. 그런데 학교교육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노력은 교회 내 학교 당국 및 관계자들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지역교회 구성원 모두의 몫이고 결국 그 지역교회를 돌보는 교구장 주교의 의무이자 책임으로 이어진다고 하겠다. 필자가 “가톨릭 학교교육에 대한 교구장 주교의 역할에 관한 고찰”로 논제(論題)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본고는 ‘교회법’이라는 학문의 범주 아래에서 “가톨릭 학교교육과 교구장 주교의 역할”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으므로, 그 내용을 전개하기 위한 방식은 ‘교회법’이 지닌 3가지의 고유한 연구 방법론-연대적 분석(Chronological Analysis), 이론적 접근(Theoretical Approach), 사목적 제언(Pastoral Proposal)-을 택하였다. 본문은 Ⅰ부와 Ⅱ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Ⅰ부에서는 가톨릭 학교교육에 대한 법적 근거를 제시했다. 제1장에서는 『1917년도 교회법전』의 교육과 관련된 법령들을 ‘교육의 중요성’, ‘가톨릭 대학교와 학위’, ‘학교 감독에 관한 주교의 권리’라는 주제로 알아보았다. 제2장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의 「그리스도인 교육에 관한 선언」을 필자가 ‘교육의 원리와 목적’, ‘교육의 의무와 책임’, 그리고 ‘가톨릭 학교’라는 주제로 분류한 후, 공의회가 선언하는 교육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정리하였다. 제3장에서는 『1983년도 교회법전』을 ‘교육의 책임’과 ‘교육의 수단’이라는 주제로 나누어 ‘교육의 책임’에서는 <부모>와 <국가> 그리고 <교회>라는 소제목으로 살펴보았고, ‘교육의 수단’에서는 법전이 제시하는 학교에 대한 조항들을 알아보았다. 제4장에서는 가톨릭 교육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들 가운데 「가톨릭 학교에 관한 지침」, 「학교 내의 가톨릭 평신도 :신앙의 증인들」, 「제삼천년기의 문턱에 서 있는 가톨릭 학교」, 「가톨릭 대학교에 관한 교황령」을 살펴봄으로써, 가톨릭 학교교육과 관련된 교구장 주교의 역할들에 대해 고찰하였다. 제Ⅱ부의 제1장은 본격적으로 교구장 주교의 법적 책임과 권리에 대해 1983년도 법전을 근간으로 논하며, ‘학교의 설립’과 ‘감독과 시찰’ 그리고 ‘가톨릭 학교에 관한 명명권과 인재양성’이라는 주제에 따라 살펴보았다. 제2장에서는 미국과 독일의 가톨릭 학교교육 실황을 제시하면서, 외국의 선험 사례를 참고로 하여 가톨릭교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학교교육을 개선시켜야 되는지를 모색했다. 제3장에서는 가톨릭 학교교육의 사명에 위배되는 한국의 공교육 현실의 배경인 여러 사회적 문제들 중 중추적이고 대표적인 문제인 ‘사학법’에 대하여 살펴보고, 특히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사학의 공공성과 자주성’에 대하여 고찰했다. 그리고 사립학교법이 현장에서 어떠한 양태로 드러나는지 ‘사립학교법의 현실’에 관한 제목으로 ‘학교 운영권에 대한 제한’과 ‘종교교과목에 대한 제한’들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제4장에서는 가톨릭 학교교육을 위한 교회의 노력과 대응들에 대해서, 먼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교육에 대한 권리를 ‘천부적 권리’라는 제목으로 간략히 설명하고, 한국 교회의 대응책을 공시적 접근과 통시적 접근으로 강구해보았다. 이어서 한국에서 가톨릭교회가 시행하고 있는 몇 가지 노력들을 ‘한국 가톨릭 학교 교육 헌장’과 ‘가톨릭 학교교육 포럼’으로 제시하였다. 결론에서는 현실의 제도가 가톨릭 학교교육의 영성을 막고 있다면, 교구장 주교의 힘 있는 발언과 교회 내의 신자들이 힘을 모아, 그 제도를 가톨릭 학교교육의 영성을 실현하는 쪽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바로 제도적 투신으로 가톨릭적 입법들을 제시하고 그러한 법률들을 발판삼아 본질적 의미에서의 가톨릭 학교교육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장학금 제도”를 통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함’이라는 가톨릭 학교의 본질적 목적을 이행하고 귀족교육의 한정성을 경계하자고 언급하였다. 그 결과, 가톨릭 학교교육이 이 사회의 학교교육에 정향(正向)을 제시하고, 공교육의 모범적 사례로 본(本)을 보여줌으로써 이 사회에서 계속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의 극복에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A Study on the Role of a Diocesan Bishop in Catholic Schooling Cho, Min-Hwan Department of Practical Theology, Graduate School, 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Director : Prof. Lee, Kyung-Sang> At the entrance of the third millenium, people show a high degree of concern about Korean public education. The school education seems to be losing its own essential purpose and identity, with the pressure of entrance exams and increasing private education for students. Moreover, irregularities and injustice in running of some private schools has caused revision of the private schools law, which obstructs the establishment of exemplary private school with appropriate foundation including Catholic schools. Under such circumstances, this thesis studies the Catholic church's efforts to realize the ultimate goals of Catholic school education. Such efforts, however, are not a matter limited to the school authorities. These efforts should be responsibility of all members of a parish church and eventually, of the diocesan in charge of the diocese. This opinion has named this thesis as "the role of diocesan bishop in Catholic schooling." This thesis explores the Catholic schooling and a diocesan's role in it under the discipline of Canon Law. Therefore, three characteristic methodologies of Canon Law are used to develop the content: chronological analysis, theoretical approach, and pastoral proposal. The body of the text consists of Part I and II. In Part I, the legal foundation of Catholic schooling is presented. Chapter one examines the laws related to education in The code of Canon Law(BenedictⅩⅤ ) in terms of 'the importance of education' 'Catholic University and degree' and 'a bishop's right to supervise schools.' Chapter two studies Documents of the Vatican Council Ⅱ - Declaration on Christian Education, Gravissimum Educationos under the headings of 'the principle and purpose of education,' 'the duty and responsibility of education,' and 'the Catholic school' and points out the basic facts of education strategy declared by the Council. Chapter three explores The code of Canon Law (John PaulⅡ) under the two subjects: one is the 'responsibility of education,' where the discussion develops through the headings of 'parents,' 'nation,' and 'church'; the other is the 'means of education,' which examines legal articles from the Code mention Catholic schooling. Chapter four refers to such documents as The Catholic School, Lay Catholics in Schools : Witnesses to Faith, The Catholic School on the Threshold of the Third Millennium, and Apostolic Constitution of the Supreme Pontiff John PaulⅡ on Catholic Universities, among the various instructions of church on Catholic education, to learn the role of a diocesan bishop in Catholic schooling. Based on The code of Canon Law (BenedictⅩⅤ ), c hapter one of Part II discusses the legal responsibility and right of a diocesan in depth, under the subjects of 'foundation of a school,' 'supervision and inspection,' and 'right to name Catholic schools and nurturing of human resource.' Chapter two provides the reality of American and German Catholic school education and searches for the right direction for our Catholic church to improve school education through the precedents of other countries. Chapter three shows how the fundamentals of "private schools law" is against the mission of Catholic schooling, and how such laws generate various social problems within in the Korean educational system. In particular, this thesis focuses on both public and independent nature of private schools, sometimes referred to be a double-edged sword. In addition, this chapter examines restrictions on school administration and religious subjects under the subtitle of 'the reality of private schools law' in order to demonstrate how the current law reveals its weakness. Finally, chapter four discusses the church's effort and counterplan to improve Catholic school education. Chapter begins with brief explanation of the human rights to be educated as 'God-given rights' and deliberated the counterplan of Korean church through synchronic and diachronic approaches. Subsequently, it presents ‘Charter of The Korea Catholic school Education’ and ‘Catholic School Education Forum’ as examples of the efforts made by Korean Catholic church. In conclusion, the author argues that if the current education system hinders spirituality of Catholic school education, the system should be redirected to fulfill the spirituality through voicing enthusiastic opinions of the diocesan bishop and all church members. This effort can be done by offering Catholic legislation as institutional countermeasures and stepping-stone; such legislation will guide the church to accomplish the fundamental sense of Catholic education. Furthermore, the author suggests that Catholic schools should enlarge scholarship to persue its essential goal of 'offering educational opportunity to poor, neglected children' and stay wary of the limitations of aristocratic education. As a result, the author hopes Catholic school education would become a solution to alleviate the increasing socioeconomic polarization by providing the right direction of education and setting an outstanding example for public education in this society.

      • 그리스도인 정체성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 제2차 바티칸 공의회「교회헌장」2장과 공의회 이후 교회문헌을 중심으로

        조한규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대학원 200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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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신론의 위협, 종교 다원주의의 혼란, 신앙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해 있는 오늘날에 그리스도교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과학과 인간이성이 중심이 된 현대 산업사회에서 교회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감소하였고, 복음 선포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대인의 종교에 대한 갈망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면 인간은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는데, 사회가 산업화되고 대형화되어 갈수록 개인은 더욱 소외되고 있다. 인간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인들은 뉴에이지 운동이나 일부 정신세계운동(명상, 요가 등)에 심취해 보지만, 이 운동들은 패스트푸드처럼 일순간의 편리함과 쾌락을 가져다줄 뿐 근원적인 갈증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의 사람들 역시 근원적인 물음에 목말라하고 있고, 참된 진리를 간절하게 찾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참된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전할 수 만 있다면, 오히려 지금 이 시대가 가장 복음적인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현대세계의 이 위기상황을 복음선포의 좋은 기회로 전환시키기에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량이 부족한 듯 보인다.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조차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고 있으며,‘대조사회’로서의 교회 모습이나 복음의 가치를 세상에 증거해야 할 그리스도인들도 복잡하고 혼란한 세상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가장 절실한 문제는 교회 외부의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르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날‘믿는다’는 것과‘따른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개념과 실천은 모호하게 느껴지고 있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조차 교회의 가르침보다는 세속사회의 변화와 흐름이 더 깊게 영향을 주고 있다. 지금 절실한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답게 해주는 기준과 조건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출 수 있는가? 우선‘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신약성서에 3번 밖에 나오지 않고(사도 11,26;26,28;1베드 4,16), 이 단어가 2세기 초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에 의해 교회에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비슷한 의미로‘제자들’,‘하느님의 자녀’,‘하느님 백성’등의 단어가 사용되었다. 초기 교회 공동체의 신자들은 세례를 통해 공동체에 속하여‘서로 함께’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친교를 나누며 빵을 떼고 공동으로 재산을 소유하였는데(참조: 사도 2,42~47),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공동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의 성사를 통해 은총을 전달 받으며, 공동으로 신앙을 증거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단과의 투쟁, 계속되는 박해 과정을 거치면서 초기 교회 공동체는 교회일치와 정통 신앙을 존속시키기 위해 교계제도를 강화하고 정통신앙을 정립해가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갔다. 그리고 하느님 말씀을 따르고자 세속의 사람들과는 분명히 대조되는 철저한 삶을 살며 자신들의 신앙과 정체성을 지켜가고자 힘썼다. 그러나 대규모 박해가 지나간 후 그리스도교는 국가의 공인을 받게 되었고, 이후 많은 특권을 누리게 되었으며,‘대조사회’로서 교회의 모습도 희미해져 갔다. 그리스도교가 급속히 확산되어 신자들이 늘어나고, 교회 안에는 세례의 유효성이나 성사의 사효성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전체적으로 정체성이 해이해 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는 공의회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교의를 분명하게 정립하려고 노력했고,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세속화된 교회에 대한 회의감을 극복하고, 그리스도교의 완덕을 추구하고자 성인공경과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중세시대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에, 세례를 받고 교회에 속해 있다는 단순한 사실로 자신이 지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교회는 공의회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좀 더 개념적으로 분명히 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생활적인 측면에서 신자들은 본격적으로 수도생활에 참여하여 그리스도 신앙을 증거하고자 하였다.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으로 그리스도교 전체는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되어 신앙의 기반이 흔들렸고, 그리스도교는 분열되었다. 교회의 분열 이후 서로에 대한 반감으로 적대시하였고,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가톨릭교회의 신앙교리를 재정비하였다. 특히 벨라르미노는 종교개혁가들이 반대하던 가톨릭교회의 제도와 신학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첫째 그리스도 신앙교리를 고백하고, 둘째 합당한 성사를 받으며, 셋째 합법적으로 위임된 목자들과 결합된 사람들이기에, 그는 로마 가톨릭 신자들만이 '참으로' 교회 신비체의 지체라고 하였다. 벨라르미노가 제시한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종교개혁이라는 혼란의 와중에서 개신교의 논리를 배격하고, 무엇보다도 가톨릭 신자들에게 분명한 정체성을 제공하기위해 주장된 것이다. 이 기준에 따라 가톨릭교회 안에서 개신교 신자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준에서 제외되었고, 이후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이 되었으며, 이 기준은 1943년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그리스도의 신비체」(Mystici Corporis)에도 반영되었다. 이처럼 참된 그리스도인을 가톨릭 신자들로 규정한 교회의 입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계속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성서적 개념인‘하느님 백성’으로 이해하였고, 이 하느님 백성을 그리스도인이라고 규정하였다. 공의회는「교회헌장」에서 신앙고백과 성사, 교회조직과 일치된 가톨릭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와 온전히 결합되어 있다고 하였고, 동시에 내적인 자세, 즉 교회 안에‘마음’으로도 머물러서 그리스도와 일치해야 됨을 강조하고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교회가 제시한 기준을 갖추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공의회는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 백성에 포함시키면서 이들 역시 포괄적인 의미의 그리스도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신앙인과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을‘영적 인간’이라고 일컫는(1베드 2,5) 신약성서의 본래 의미를 되살려내어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도‘완전한 신앙을 고백하지 않거나 베드로의 후계자 안에서 친교의 일치를 보존하지는 못하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는‘여러 가지 이유로’이들과도‘결합되어’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공의회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비그리스도인들까지도 예비적 그리스도인 내지 넓은 의미의 하느님 백성으로 이해하면서, 이들도 역시 하느님 백성과‘관련되어’있다고 천명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조건과 기준에 관한 공의회의 규정은 공의회 이후에도 교회의 공식적인 문헌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공의회가 천명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교회가 규정하는 외적 기준과 조건을 갖추는 것은 물론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따라야 한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에게“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마르 8,34) 따를 것을 요구하였다. 십자가는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자기의 목숨을 내놓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수난과 죽음까지도 감내하며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고난의 삶, 숭고한 삶을 의미한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를 대신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기에, 예수를 믿고 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난과 죽음을 각오하는 철저한 삶의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의 존재이유가 바로 그리스도 때문이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예수의 부름을 받은 것이기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제자가 되어 하느님 나라 선포에 나름대로 참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즉 그리스도인의 참된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과 인간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형성과 유지를 위해서 중요한 또 한 가지 사실은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은 한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언제나 공동체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예수는 열 두 제자들을 불러서 하느님의 새 백성을 구성했고, 최후의 만찬에서는 이 제자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였다(요한 17,22). 또한 초기 교회 공동체의 신자들이‘서로 함께’기도하고 생활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공동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의 성사를 통해 은총을 전달 받으며, 공동으로 신앙을 증거함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하느님 백성인 교회 공동체를 통해 분명해지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은 항상 교회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인 교회 공동체 역시 세속사회와는 다른‘대조사회’로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유일한 구세주인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구원을 위한 보편적인 성사가 되어야 한다.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증거하고 만인에게 구원을 전달하기 위해서, 대조사회로서의 교회는 세상을 따라 변해서는 안 되고, 언제나 교회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Today, it gets too hard to live with christianism, in the context of overflowing threats of atheism, confusion owing to the Religious-Pluralism and the indifference toward belief. Influence of the church on the secular society is relatively on the decrease, and preaching the Gospel gets more difficult in this modern industrial society which is concentrating on the science and the human-rationality. But on the other hand, a thirst for religion of modern people seems to increase more and more. They believed that man could be happy if the science and the civilization were advanced, but in fact an individual person isolated more and more in the industrialized and modernized society. To overcome that isolation, they tend to admire New-Age movement or some spiritual life(ex. meditation, yoga etc.), but these movements, resulting in an instant convenience or pleasure just like a fast food, cannot resolve a fundamental thirst. Radically modern people long for fundamental questions, seek after faithfully truth. Therefore, if we can deliver the God's will which is the salvation of all mankind to modern people successfully, these days are the best time for evangelization. But the real world seems not so simple. The power of our christians doesn't seem to be sufficient enough for converting this crisis into the opportunity of evangelization. Truth of christianism seems to be ambiguous even for christians themselves, and a identity of church as 'Contra-Society' or christian-life, for being evidence of the worth of gospel to the world, doesn't yet free from the influence of the secularization. Surely, the most important matter is not the challenges or difficulties from outside, but how to settle our christian identity. According to the Bible and the teaching of the church, "christian" means a man who believe and follow Jesus as Christ. But it seems to be so ambiguous what 'Believe' and 'Follow' really means in these days, and even to the christians the social changes and the secularism gets more and more powerful effect than the teaching of church. So we christians need nothing but becoming faithfully christian. Then, we have to ask ourselves this question; What are the criteria and conditions which make christiana real christian, or how can a man get the identity as a christian. Who on earth is a christian? “christian" has been used only 3-times in the new testament(Act 11,26;26,28;1Pet 4,16). This expression has been used meaning "Disciples", "Children of God" or "People of God", before publicly accepted by Ignatius of Antioch to the church in the beginning of 2nd century. The christian in the new testament means people who believe and follow Christ in a community sharing the same baptism. People in the early christian communities devoted themselves to the teaching of the apostles and to the communal life, to the breaking of the bread and to the prayers. This shows that they confirmed their identity through confessing their faith together in the church community, receiving the grace through the sacraments of the church, and testimonying their faith together. They formed their identities as christians to keep the traditional faith and to unite the church in the strife with the heresies and the successive persecutions. They tried to keep their faith and identity by living severe lives which are contrasted to those earthly lives of secular people. The christian church has been authorized by the Roman-Empire after the grand-scale persecution time. On account of that authorization the church enjoyed an exclusive prerogative, and it resulted in an ambiguous attitude toward "Contra-Society". Christians could not simply confirm their identity from the baptism, for almost all people in the middle-age were christians. That's why the church tried to define their faith conceptually through the Councils, and to testimony christian faith through the revitalization of the religious life. With the Reformation of Lurthur, the whole church come to be split into different communities being plunged into the chaos. Those different communities became hostile to each other, and catholic church rearranged their faith through the council of Trent. Especially Bellarmin defended the system and the theology of the catholic church against the Reformists. According to Bellarmin, the criteria to be the true christian are confessing the christianity first of all, and receiving proper sacrament secondly, and thirdly, being united with the pastors who got a lawful commission. That's why, he emphasized that the Roman catholic is "truly" the only community which contains true members of the mystical body of Christ. The real intention of his presenting those criteria is rejecting the logic of the Reformists, and offering catholic christians. Following these criteria, Protestants were excluded from the boundary of "the true christians". These criteria were also accepted by the Pope Pius 12th in his encyclical "Mystici Corporis"(1943). Similar tendencies were kept until the Vatican council Ⅱ. The Vatican council Ⅱ understands "christians" as "People of God", which is the biblical notion. The council says that the catholic christian are united with the church of Christ by confessing the same faith, by participating in the sacraments, and by accepting the organization of the church. This council emphasizes that they have to be united with Christ within their hearts through the church life. Those who want to be true christians should fulfill the criteria which the catholic church presents, and believe and follow the Jesus Christ. At the same time, the Council defines the non-christians as christians in the comprehensively meaning, including in the community of the "People of God". Even people who do not yet receive the baptism are included in the "People of God". The regulations of the council on the qualifications of the christian are continuously confirmed through the public documents of the church after that Council. To be a christian, one should fulfill the conditions and qualifications in the regulations of the church and should believe and follow Jesus Christ. Jesus said to his disciples that "forget yourself, carry your cross and follow me"(Mk 8,34). The meaning of the cross is death, and that's why the meaning of the following Jesus is offering one's life. To be the disciple of Jesus is to proclaim the gospel, to request attitude of life which can offer to suffer and likewise. It's not easy to follow Jesus, however, the reason of the existence of the christian is because of Jesus, to be a christian is to receive the vocation from Jesus. That's why all christians have to proclaim the gospel as disciples of Jesus. The true identity of the christian is to be like Jesus Christ who loved God and human-beings all together. The other very important point of being a christian is that following Jesus Christ has not only individual dimensions but also social dimensions. Jesus consisted new People of God by calling 12 disciples, and prayed for the unity of Disciples in the last suffer(Jh 17,22). And just like the early church community who confirmed her identity as "the christian" by living and praying together, the modern christians confirm their identity by confessing the same faith together, by receiving the grace through the sacraments of the church, and by testimonying their faith together. The identity of the christian's completely fulfilled through the community life in the church who is the "People of God", and that's why christians have to be the ecclesial christians. At the same time, the christian community have to be the universal sacrament for the salvation of mankind, testimony the Christ and proclaim the gospel, as a "Contra-Society" which always keeps the original state of the church. And she should not be changed depending the secular society to actualize the salvation of the mankind and to testimony Jesus to the world.

      • 에제 36,16-32절에 나타난 새 마음에 대한 이해

        이창영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 201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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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제 36,16-32절은 바빌론 유배 시기 활동했던 에제키엘이 이해한 자신들의 처지와 하느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이끌어주시는가에 대한 신학이 담겨있다. 본문에서 새 마음은 시련의 상황 속에서 해방될 수 있는 근거로 나타난다. 또한 ‘새 마음’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오직 에제키엘서에만 언급되는 단어로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논문은 본문 연구, 본문 주석, 신학적 조명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1장 본문 연구에서는 본문 제한, 본문 제시와 번역, 본문 비평, 본문 구조에 대해서 다룬다. 특히 본문 비평에서는 BHS의 비평 사료와 그 밖의 다양한 사본들과의 대조를 통해 본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시도한다. 비교 분석한 이문들은 MT, LXX, Tg, LXXb, OL, Mss, LXX967, Wirceburgensis, Hexapla 등이다. MT와 LXX와는 다르게 LXX967과 Wirceburgensis에서는 에제 36,23b-38절의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이 같은 차이는 단순히 사본가에 의해 발생한 유사문미와 같은 실수가 아니라 신학적 목적을 두고 후대의 편집자가 편집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새 마음은 에제키엘서에서 부각되는 신학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의 구조는 본문에서 새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분명하게 부각한다. 본문은 역사적 설명(에제 36,17-21)과 구원신탁(에제 36,22-32)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해있는 시련의 상황 속에서 해방의 근거는 바로 이 구원신탁을 통해 나타난다. 구원신탁은 중앙집중 구조를 이루며(A-B-C-X-C`-B`-A`), 핵심 사상이 나타나고 있는 에제 36,26-27a(X)에서는 새 마음과 새 영에 대해 다루고 있다. 따라서 새 마음과 새 영은 구원 신탁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 행위의 근본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본문의 핵심 구절에서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은 바로 새 마음이다. 본문의 핵심 사상이 나타나고 있는 에제 36,26-27a절은 다시 한 번 중앙집중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며(A-B-B`-A`-X-A-B-B`-A`), 해결책인 새 마음에 대한 구체적인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중심 구절(X)에는 돌로 된 마음이 치워진다는 내용이 자리하고 있고, 살로 된 마음인 새 마음으로 대치되며, 이 마음에는 새 영, 곧 하느님의 영이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그 동안 저질러온 죄악의 근본 원인이었던 완고한 마음은 하느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 마음이었지만, 새 마음은 하느님의 영과 지속적으로 함께 하는 순종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즉 새 마음은 새 영과 함께하는 마음인 것이다. 이것은 병행 구절로서 이해할 수 있는 예레 31,31-34절의 새 계약과 마음에 대한 내용에서 더 발전된 것으로, 새 마음에 대한 에제키엘서의 신학적 깊이를 나타낸다. 3장 신학적 조명은 본문 연구와 주석을 통해 분석한 자료들에서 신학적 개념을 도출하고, 신약과의 연결을 통해 새 마음에 대한 더 구체적인 이해를 시도한다. 신학적 조명은 새 마음이 수여되는 배경과 새 마음의 의미에 대해 개진한다. 새 마음이 가지는 의미는 하느님과의 일치이며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새 마음이란 하느님을 따르지 않는 돌로 된 마음이 하느님을 따르는 살로 된 마음으로 변화된 상태이며, 하느님의 영과 함께하는 일치의 상태이다. 이것은 새 마음이 하느님의 뜻과 하나가 되는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구약 성경의 다른 구절들은 이미 한 마음을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상태이며, 하느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이해하고 있다(예레 32,39; 지혜 10,20). 새 마음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일치를 지향한다면, 신약에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간직하도록 권고하고 있다(필리 2,5). 이스라엘 백성의 변화에는 세 가지 상징이 사용되는데 물과 마음과 영이 그것이다. 마음이 악으로 기우는 것은 죄 중에 태어난 인간의 특성을 잘 나타내며(시편 51), 본문에서는 이 세 가지 상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변화의 중심에는 마음이 있으며, 바로 새 마음을 통해 완전히 변화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요한 3,5)은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In Ezekiel 36,16-32, Ezekiel who was in the time of Babylonian exile, his understanding of their situation and his theology about how God led Israelites is embedded. In this section, the New Heart is shown the source for liberation from the plights. And also the word ‘New Heart’ is shown only in Ezekiel among the old Testaments and had a special meaning. In this thesis, research of the context, textual commentary, and theological view are considered. In chapter 1, the limitation of the text, proposal and interpretation of the text, criticism of the text, and the structure of the text is being considered. Especially in criticism of the text, this thesis tries for correct understanding through comparison between critical resources of BHS and many other resources. The resources that have been used for this critical comparison were MT, LXX, Tg, LXXb, OL, Mss, LXX967, Wirceburgensis, Hexapla and etc. Not like MT and LXX, the text of Ezek 36,23b-38 was omitted in LXX967 and Wirceburgensis. This distinction is not a mistake like Homoioteleuton caused by copier, but we can assume that the editor compiled this on theological purpose. Therefore we can assume that the New Heart is an emerging theological concept. In the text, the structure of the text emphasizes clearly about the importance of the New Heart. The text has historical explanation (Ezek 36,17-21) and Oracle of Redemption(Ezek 36,22-32). This text shows that the source of liberation for Israelites who were in circumstances of trial is through this Oracle of Redemption. The Oracle of Redemption is centralized in the structure of the text (A-B-C-X-C`-B`-A`), and this text of Ezekiel 36,26-27a(X) is the key idea that dealt with New Heart and New Spirit. Therefore New Heart and New Spirit can be understood as a basic principle of God’s saving action through the Oracle of Redemption. In the core text, the proposed solution is this New Heart. Ezek 36,26-27a is the key idea of the text that is again centralized in the structure of the text (A-B-B`-A`-X-A-B-B`-A`), and considered as a specific feature of New Heart as a solution. In the central text, it shows that the heart of stone will be removed and a heart of flesh will be replaced as a new heart that has to be with the New Spirit that is God’s Spirit. This heart of stone that was the root of sins was not of the Spirit of God, but this New Heart is of the Spirit of God is the heart that obey spersistently. This New Heart and New Spirit are being with the heart. At same time we can see this with the new covenant and heart from Jer 31,31-34 that showed a developed idea of the New Heart as a theological depth of Ezekiel. In chapter 3, the theological perspective elicits the theological idea through the research of the text and cementation, and it attempts a specific understanding about the New Heart in connection with New Testament. The theological perspective is a background to give new heart and the meaning of the new heart to develop. The meaning of the New Heart is union with God and reborn with new life. The new heart is in a transformed state that the stony heart that did not remain in God has become the heart of flesh that remains in God and in a state of union with God. It can be understood that the new heart intends the state of union with God’s Will. Other Texts of Old Testaments states obedience to God’s will and to worship God with whole heart (Jer 32,39; Wis 10,20). The new heart attains unity by doing God’s will and the New Testament offers us to have Christ’s Heart as the image of God (Phil 2,5). There are three symbols; water, heart and spirit, for the transformation of Israelites(Ps 51). The heart that inclines toward the evil shows that humans are born in a state of sinfulness. Through these three symbols, the Israelites are being transformed. In the center of this transformation is the heart, the new heart. Through this new heart we can be transformed completely. The Words of Jesus can be understood in this way that we can acquire the Kingdom of God by being born again through the Holy Spirit(Jn 3,5).

      • 교회법과 한국 민법에 나타난 혼인 계약에 관한 비교 연구

        서정훈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 2011 국내석사

        RANK : 249647

        ABSTRACT A Comparative Study On the Covenant Marriage of Canon Law and Korean Civil Law Suh, Jung-Hoon Department of Practical Theology, Graduate School, 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Director : Prof. Rev. Lee, Kyung-Sang〉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and argue that for Catholic lay people who are subjected to the Civil law, fulfilling the covenant marriage in the Canon law is the beneficial safeguard for a happy family and the everlasting marriage bond. With the Canon law which aims for the salvation of souls, the law itself becomes a great tool to help the religious lives of the believers who are already subjected to the restrictions of the Civil law. Nevertheless, because of the lack of understanding of the Canon law, many problems have been arisen, causing unnecessary conflicts and misunderstanding not only for the person who is directly involved with the case, but also amongst Catholics or even between a lay person and a priest. It is especially so with the marriages. Focusing on this point, I attempted to reanalyze marriage in the spirit of the Canon law according to provisions in Korean Civil law which is frequently altered. By doing so, my research is aiming to correctly educate lay people from misconception on Marital Canon Law and to increase understanding of the priests on both Korean Civil law and the Canon law. Only when these goals are achieved, the thesis can become a practical study to help protecting the everlasting marital bond and peaceful marriage lives of the lay people. In this respect,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may be recognized. Specifically in detail, I focused on the methodology of 'legal service' for 'Roman Catholic Priest', who is devoted for 'Pastoral love', to pastorally care for the believers. The study was proceeded from contemplating the legislations of 'both law' related to 'contract marriage' of Korean Civil law and 'Covenant marriage' in the Canon law, and to 'method of investigating documents' to analyze similarities, commonalities, and differences. It also viewed the ways to practically increase the happiness of 'Catholic Holy Family' by using 'analytical method' in combination, through 'theological - pastoral' approaches for the everlasting marriage bond of the believers. In this process, the extent of this study was limited to the investigation of the provisions of the Canon law related to 'Covenant marriage' and the status of Korean Civil law, and the focus was especially on the Korean Civil law that are applied by the Canon law. However, the historical perspectives related to marriage related Canon law and 'enactment and promulgation' of the Civil law were excluded. The body of this study is composed of four chapters. Chapter 1 suggests the grounds for the essence of the Covenant marriage based on the Civil law and the Canon law, when chapter 2 analyzes practical requirements and formal requirements of the prerequisites of a marriage. Chapter 3 discusses the 'Dissolution' method for 'Marriage bond' and the differences between the Civil law and the Canon law, and chapter 4, studies the theological and pastoral approach to marriage. In the following paragraphs, I described each chapter in more detail. Chapter 1 states the essential element of a marriage. In the Canon law, the marriage is defined as "The matrimonial covenant, by which a man and a woman establish between themselves a partnership of the whole of life, is by its nature ordered toward the good of the spouses and the procreation and education of offspring; this covenant between baptized persons has been raised by Christ the Lord to the dignity of a sacrament." - Canon. 1055, provision 1. On the other hand, in Korean Civil law, there is no 'definition' of marriage, and the concept of husband and wife is also not clear. Because of this ambiguity, Korean Catholics are suffering the confusions between the opposite views of the marriage in the two different legal systems, and are socially exposed to the deviated form of marriage which contradicts the traditional understanding of Holy Matrimony. By discussing the responsibilities and the duties of husband and wife who are the main actors in a given marriage, and through the mutual comparison of the terminology of marriage as the contract marriage in Korean Civil law and the covenant marriage in the Canon law, I focused and reviewed the concept and definition of a marriage to find the real meaning of Holy Matrimony. The requirements of a marriage were discussed in chapter 2. With the examination of the provisions of Korean Civil law and the Canon law for the requirements of a marriage, it was studied by classifying practical requirements and formal requirements. The practical requirements were generally specified in the Canon law as the parts related to the agreement for marriage between the parties, and Korean Civil law specified 'concurrence' of 'intention', 'the marriageable age', and the consent of the parents, and not permitting 'consanguineous marriage' and 'bigamy'. Not like the Civil law, the Canon law requires not only 'agreement' of 'Covenant marriage' but also 'expression of the agreement', which is the proof of the agreement. And for the formal requirements of a marriage, it is the complying with the formality itself in the Canon law, but in Korean Civil law, the 'effect' of the contract marriage is established only by reporting the marriage. It was also studied that the Canon law pursues the formality of the marriage, but on the other hand, Korean Civil law pursues legal marriage. The dissolution method of contract marriage was discussed in chapter 3. There is a big difference in the dissolution of contract marriage between Korean Civil law and the Canon law. When Korean Civil law generally states 'divorce' as cancelation and invalidation of a marr 국 문 초 록 교회법과 한국 민법에 나타난 혼인 계약에 관한 비교 연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실천신학 전공 〈지도: 이 경 상 교수〉 서 정 훈 본 연구는 민법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가톨릭 신자가 교회법상 혼인 규정을 준수하며,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행복한 가정 공동체와 혼인 유대의 영속을 위한 유익한 안전 장치가 된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규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사회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을 위해 '영혼들의 구원'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교회법은 법률 자체가 신앙 생활에 도움을 주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법에 대해 이해가 깊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사자는 물론 신자들 사이 또는 신자와 사목자 사이에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적지 않다. 특히 혼인과 관련해서 그렇다. 본고는 이 점을 중시하여 수시로 변화하는 한국 민법의 혼인관련 조항을 교회법의 정신으로 재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자들은 혼인에 대해 갖는 교회법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되며, 사목자들에게는 한국 민법과 교회법에 대한 이해를 높여, 신자들의 혼인 유대 영속과 평화로운 혼인 생활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천적인 연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목자로서의 사랑'을 구현하는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가 신자들을 사목적으로 배려할 수 있는 '법률적 봉사'의 방법론에 그 중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 방법으로는 한국 민법상의 '혼인 계약'과 교회법의 '서약으로서의 혼인'과 관련된 양법의 법조문을 고찰한 후, 유사점이나 공통점 그리고 차이점에 대해 분석하는 '문헌 조사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아울러 신자들의 혼인 유대 영속을 위한 신학적․사목적인 접근을 통한 ‘해석학적 방법’을 병용하여 실질적인 가톨릭 성가정의 행복증진 방안을 전망하였다. 이 과정에서 본 연구의 범위는 혼인 계약과 관련된 교회법 규정과 한국 민법의 현황을 검토하는 것으로 한정하였고 특히, 교회법에서 준용하는 한국 민법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그러나 혼인관련 교회법 및 민법의 제정과 공포에 관련된 역사적인 측면은 배제하였다. 본문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혼인 계약 본질에 대한 민법과 교회법적 근거를 제시한 제1장에 이어 제2장에서는 혼인의 성립 요건을 실질적 요건과 형식적 요건으로 분류한 후 이를 분석, 종합하였다. 제3장에서는 혼인 유대의 해소 방법에 대한 민법과 교회법의 차이를, 마지막으로 제4장에서는 혼인에 대한 신학적․사목적 접근을 정리하는 순서로 진행하였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은 혼인의 본질적 요소를 다루고 있다. 교회법에서는 혼인을 정의하기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가 되어 사랑으로 일치하여 자녀 출산 및 교육을 목표로 하는 평생공동운명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민법에서는 혼인에 대한 정의가 없으며 부부개념 또한 불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이에 따라 한국국적의 가톨릭 신자들은 양법의 상반된 혼인관으로 말미암아 개념의 혼란을 겪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전통적 혼인관에서 벗어난 유사 혼인 형태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측면을 직시하고 혼인의 대상인 부부 쌍방 당사자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다루면서 한국 민법상 혼인 계약과 교회법상 서약으로서의 혼인에 대하여 상호 비교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혼인이 무엇인지 그 개념과 정의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제2장에서는 혼인의 성립 요건을 다루었다. 혼인이 성립하기 위한 한국 민법과 교회법 규정을 살펴보면서 실질적인 요건과 형식적인 요건으로 구분해 고찰하였다. 실질적 요건으로 교회법에서는 당사자들의 혼인 합의에 관련된 부분을 포괄적으로 규정하였고 한국 민법에서는 혼인 의사의 합치, 혼인 적령, 부모 등의 동의, 근친혼과 중혼이 아닐 것을 규정했다. 민법과는 달리 교회법은 혼인 계약의 합의뿐만이 아니라 합의했다는 증거인 '합의의 표명'까지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혼인의 형식적 요건은 법적 유효 요건으로서 교회법에서는 형식 그 자체의 준수인 반면 한국 민법은 혼인 신고를 함으로써 혼인 계약의 효력이 발생한다. 또한, 교회법은 의식혼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반면 한국 민법은 법률혼주의를 취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제3장에서는 혼인 계약의 해소에 관한 방법에 대해 다루었다. 혼인 계약의 해소에 관하여 한국 민법과 교회법의 차이는 크다. 한국 민법은 일반적으로 이혼, 혼인 계약의 취소와 무효를 들 수 있는데, 교회법은 원칙적으로 유효하고 합법적으로 맺어진 혼인은 어떠한 인간 권력으로도 풀릴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회법은 예외적으로 혼인 서약상의 하자로 인해 혼인이 무효가 되거나 취소 사유가 되는 경우, 또는 일방 당사자의 신앙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특전을 베푸는 혼인 해소 사유는 인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 민법은 유효하게 성립된 혼인일지라도 당사자 일방의 단독

      • 포시우스(Photius) 事件의 再考察 : 드보르닉(Fr.Dvornik) 硏究를 中心으로

        신기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대학원 1996 국내석사

        RANK : 249631

        Few names in the history of Christianity have inspired feelings so conflicting as that of the Greek Patriarch Photius. Saint and hero in the eyes of the Christian East, he is branded by the Christian West as the man who unbolted the safeguards of unity and let loose the disruptive forces of dissent and schism. Whilst the East invokes his name as one that carries weight with God, the West still quotes it as the symbol of pride and lust for ecclesiastical domination; hailed by all who ever claimed a larger share for nationalism in the life of the Church and a closer association between man and God, it is reprobated by others as the badge of disruption and an element destructive of Christian universality. Photius' name stands at the very center of the history of the ninth century, one of the most brilliant periods in Byzantine records. And Photius's patriarchal activities met with strong opposition and his enemies had the advantage of painting him in such malevolent colours that they left him with a name blackened for centuries. In the picture painted by his enemies, he was unscrupulous and so covetous of patriarchal honours that he conspired with the government of Michael Ⅲ and Bardas to overthrow Theodora; he offered himself as a tool for the riddance of the Patriarch Ignatius, whose sole fault had been to castigate Bardas for immoral conduct. When ignatius refused to abdicate, Photius seized his throne and let loose upon the unfortunate Ignatius and his followers a merciless persecution. Blinded by pride and lust for power, Photius tried to obtain recognition from Nicholas I by misrepresenting the circumstances of his installation in Constantinople, but the Pope, duly informed by Ignatius' envoys of the true state of things, refused to recognize a Patriarch who had raised himself to the dignity in total disregard of canonical precedent. Photius, without taking any notice of the sentence, summoned a synod of the Eastern Church, deposed the Pope and created the 'first great Schism'. Not until the pious Emperor Basil I had murdered the iniquitous Emperor Michael Ⅲ, whose reign was execrated by the whole of Byzantium, did Photius receive his punishment; then he was dethroned and solemnly condemned by the Eighth Oecumenical Council, that is the fourth Constantinople Council(869-70); that favourite source in the medieval canonical legislation of the West. But Photius insinuated himself once more into the Emperor's favour and, after Ignatius' death, reoccupied the patriarchal throne; to make sure this time of papal approval, he deceived the Pope, who was willing on certain conditions to show leniency, by falsifying his letters and also those sent by the Pope to the Emperor and the Fathers of a Council summoned to examine his case. He bribed the legates sent by the Pope and tampered with the Acts of the Council. When John Ⅷ learned that he had been hoodwinked by the astute Greek, he forthwith excommunicated him. Hence arose the second schism, which was to last till the end of the ninth century and to cast its shadow over the tenth; finally there carne the great rupture of 1054 between East and West, the rift that has withstood all attempts at healing and has been such a disaster to Christendom. This was the kind of picture which many of the contemporary sources drew of Photius' ecclesiastical career and it is the picture that has generally been accepted as authentic in the West. For centuries he has stood as a sign of contradiction, a symbol of disunion, a challenge that still keeps apart the Western and Eastern fragments of Christendom. But his influence and personality are not confined to the religious field, for since the Renaissance philosophers and philologists have venerated him as the genius who among others was instrumental in transmitting to later generations through the Byzantine period classical Greek and Hellenistic culture. A man of his stature deserves a study and the significance of his memory to the living minds of East and West makes such a study all the more timely and urgent. The very discordance of the contradictory estimates of the character and activities of this enigmatic Greek would call for a revision of the judgement of history for, despite centuries of tradition, championship and abuse, both views cannot be right, however sincere they claim to be. It is then the historian's duty to reopen the case, reduce the jarring verdicts to their just proportions, confront the witnesses, and if there has been miscarriage of justice, to rehabilitate the defendant in the eyes of posterity. What we should pay attention is the fact that the Photian case is not merely a matter of byzantine intrest. It concerns the history of Christianity and of the world, as the appraisement of Photius and his work lies at the core of the controversies that separate the Eastern and the Western Churches. According to the consideration in the main discourse, Photius at least was not the man, who his chief opponents, especially of the abbot Theognostos, the archbishops Stylianos and Metrophanes, and the remarks of the anonymous author of the anti-Photian Collection described with the virluence of their tone. He was not the man who was unscrupulous and so covetous of patriarchal honours that he conspired with the government of Michael Ⅲ and Bardas to overthrow Theodora, who offered himself as a tool for the riddance of the Patriarch Ignatius, who let loose upon the unfortunate Ignatius and his followers a merciless persecution. There was no other choice except Photius' election as Patriarch under the Byznatine situation, which was in the struggle between the partisans of 'oeconomea', the liberal policy of compromise in matters not concerning the fundamentals of the faith, and the intransigent ultra-conservatives, who held that Church prescriptions should be carried out in all circumstances and with the utmost rigour. His election was achieved with consensus of two parties mentioned above. Therefore the blame, that Photius seized Ignatius' throne, is not able to be justified. And also the argument that Photius, blinded by pride and lust for power, tried to obtain recognition from Nicholas I by misrepresenting the circumstances of his installaion in Constaninople, is doubtful. But It seems that Photius was no way conscious of the development of the doctrine on the papal supremacy in the West, when we examine the course of excommunication of Nicholas I by Photius. Moreover he overestimated his prestige in Constantinople. Pope Nicolaus I was also responsible for the schism between the Byzantine and the West . First of all he was lack of the understanding on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Byzantine Empire. Compared to the West, the Eastern Church had a lot of high-educated men as laymen, and made positive activities within the communities. It goes without saying that we should always strive to dialogue with no prejudice, keeping these views, especially in the case of the first affair of the Schism, although the historical supposition itself is meaningless. We can find the basis of this opinion in the Vnitatis Redintegraio, the document of the Second Vatican Council, "Therefore this sacred Synod urges all, but especially those who plan to devote themselves to the work of restoring the full communion that is desired between the Eastern Churches and the Catholic Church, to give due consideration to these special aspects of the origin and growth of the Churches of the East, and to the character of the relations which obtained between them and the Roman See before the separation, and to form for themselves a correct evaluation of these facts. If these recommendations are carefully carried out, they will make a very great contribution to any proposed dialogues" (Decree on Ecumenism 14).

      • 뉴미디어와 복음화

        김용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대학원 2000 국내석사

        RANK : 249631

        Jesus drew near and said to them, "I have been given all authority in heaven and on earth. Go, then, to all peoples everywhere and make them my disciples; baptize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and teach them to obey everything I have commended you. And I will be with you always, to the end of the age." (Matthew 28, 18-19) Jesus ordered the disciples to preach to the human race, before he ascended to Heaven after finishing His work on earth. The church, which is the community of believers and the body of the Christ, has its own mission to preach the Gospel as Jesus, the origin of the Gospel, has ordered. Therefore, "evangelization" is the most important mission of the church and the reason why the church exists. The good news of salvation has been proclaimed that Jesus Christ was sent to the earth in order to save the human race and He promised those who have followed Him in order to let them see the Kingdom of Heaven. Many people have accepted Christianity since the good news was proclaimed. As of the third millennium, Christianity is being proclaimed and presenting the spirit of the Gospel to the human being. The Truth of the Gospel is eternal; nevertheless, the Gospel has always been read in different ways which fit best into each of the times and circumstances. The Gospel has also been handed down in a language of the era and in a proper way of the culture in which the Gospel belongs. The modern society can be defined as the post-modern, the secular, and the informationalized. In a huge trend into constant changes, the church-the ark of salvation-and its members have been facing the need to spread the Gospel in a proper language of our changing environment In order to accomplish the overriding task of the church, so-called evangelism, we have to understand the changing circumstances of this world and its unique culture. In doing so, we have to ask ourself how much today's church has understood the current world and how effectively it has proclaimed the truth of salvation using a new word of this modem world. The communication among people through media has characterized the modern culture. We cannot deny that media have been playing crucial roles in proclaiming the truth of salvation. In order to understand this modern society, the church has to understand changing environment of media which has been influencing and forming beyond the media's own role as mere a tool of communication. Therefore, based on our understanding of the modern media and its roles, we need to proclaim the Gospel in a new way for the sake of the modern evangelization. Comparing to what apostle Paul preached the Gospel to the Greek in the areopagus of Athens, Pope John Paul II said that the world of media is the primal 'areopagus' in the modern society and the most important area for the evangelism of this present age. We need to understand and use the media not only to spread the Gospel, but also to effectively integrate the messages of Christianity in the newly formed culture by the modern media. which we have to read the world through. If we do not use this most effective tool of the Gospel, we would neglect our mission given by the Christ. The rapid changing environment of this world would lead the church into crisis. However, it is the church itself that drives the church into a bigger crisis. We cannot say that we have dealt with the changing trend of this world. Without understanding this world, we would not be able to evangelize this world. In order to accomplish the mission assigned by the Christ, the church has to study the characteristics of this age with the light of the Good news. Consequently, for the sake evangelization of this world. we have to understand this world and light it up with the Good news. This paper is designed to study what is the meaning of the evangelization. how it can be effectively achieved the modern society reflected by a new media circumstance, and how the church can find its own position in this flowing trend of the world. The Korean Catholic Church has to be aware of the importance of religious activities in the cyber world regarding the way of using the multimedia and processing information through them. Even in the cyber world. the same problems of the church exist. It means that the church does not present some alternatives of evangelization in a way and a language of information society. Therefore, for the sake of evangelization of the modern society, first of all, the church has to understand the culture and value of information society and present a new direction. Also, in terms of that evangelization. the church has to analyse the problems incurred by information society and th fulfill its prophetic mission. Whether the church can perform these kinds of roles in this society is directly related to the successful future of the church as to greet the third millennium. New wine must be put into fresh skin, and the church and all of the believers has the most crucial task: preaching. The Truth of the Gospel to the end of the earth. I think that the church has to define its new mission with consideration of the new trend of the modern society and to present concrete alternatives to fulfill the mission. This paper still needs some work to be done in the future. This paper cannot present specific alternative for the church to adjust to the new trend. Also, because the media circumstance constantly changes even when I was writing this paper, I could not deal with every aspect of the changing new environment. I wish this paper to be a first step of considering how we can effectively preach the Gospel under the circumstances of the rapid technological development and how we can perceive this world as the history of God's salvation. I hope that these efforts he made actively in the church.

      • 성숙한 부부애를 위한 자연 가족계획법의 도움에 관한 고찰

        한경자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대학원 1996 국내석사

        RANK : 249631

        If it was God's providence to create men and women as equal partners needing each other, it must be that they will need each other for their salvation as well. For us laymen living .in a marriage in a symbiotic manner with the other sex, we are responsible of realizing loyalty, exclusivism, and sacrifice through conjugal love. Therefore intercourse among husband and wife must pursue oneness rather than the result of simple physical attraction. It is also where all the goodness of a marriage is being spread, and should not be taken as a sexual satisfaction, but, as declared in the Second Vatican Council, the communion of Christ's love. No human love can guarantee satisfaction to the end. Love in its best form is infinite and respectful, only perfected by God and when loving others as God would have loved them. The other should be loved for what he or she may be, recognizing their uniqueness. This respect for other is really seen when we relate each other with God, loving and acknowledging them in this supernatural relationship where their finite self is treated as an absolute value. Humans rarely commit themselves to others as they do in a marriage, nor are they as ready to compromise. Hence seldom we value our relationship with Christ as highly as we do in our marriage. A conjugal couple is more than just the sum of its two parts, the man and the woman, and that is the most profound truths of a marriage. Unlike the single-sided love for oneself, love for the other creates a second dimension, and also opens the possibility for a third dimension through which miracles can happen. Marriage, as a community of love, roots on the climax of eros, the sexual intercourse. In this intercourse physical wholeheartedness is an expression of emotional devotion and is granted human respect. This respect and devotion aids physical wholeheartedness, partaking in a dynamic act of displaying love. The experience of daily love indicates the importance of spiritual love over physiological love. Therefore, the intercourse which is granted by eros and sex must also be aided by philia to attain its final form of intimacy. Philia also captures the goodness of human respectability in all humans. The basic thesis of God's grace forms the premise and completes human nature also applies to love. For example, the divine-gracious love of agape allows human love to join in godly love while enabling eros and philia to overcome their unique possibilities, and completes them. True and innocent love demands that acts of harming, manipulating, or irrespecting others to be totally excluded, treating people only with compassion and respect. Faith accepts the absoluteness of the above ethics and maintains that such is what love demands. They are not just simply rules to follow, but a guideline that will lead us to the true life of a Christian. By living within the guidelines for a Catholic couple, the Natural Family Planning, asks for respect and a respectable conversation among each other, playing a big role in helping to mature conjugal love, and will serve as the keystone to a happy marriage. As conjugal love becomes more pure and salvational, it will become a truer blessing to the children, and marriage will become more and more the sacrament it was intended to be. In other words, the love among husband and wife will bless and guide each other closer to God and purify them, finally enabling them to complete their responsibility as parents. Marriage is a calling for a journey for both husband and wife that will lead to their maturing and sanctifying and this thesis considers that for laymen couple to understand the nature of respecting sex and to properly use the God-given gift, that they will need to live by the guidelines set by the Natural Family Planning, and also discusses its ethical, and human values. Ethical and human values are absolute and is found by this absolute value, hence superseding any other values, will not be reduced to any other values nor can it be compared to any other values. This value of absoluteness is only spawned by the ethical relation to God. Humans only make true free choices via ethical actions, and therefore ethical values are very uniquely human, and also completes the human self. Only humans acting ethically can become complete human beings. Only when each act meets with the transcendental dimension and also displays faith in this transcendental dimension it becomes ethical, therefore calling forth the Church's stand on such matters. Although an individual or a family intends to protect and encourage the goodness in family and society, acts that are considered unethical and inhuman - such as a couple purposely using artificial methods to prevent conception, becoming evil within - will not help in purifying conjugal love, and the Church states so in Humanae Vitae (art. 14). This means that although it may not seem to be a sin when viewed subjectively, anything that goes against nature will be considered sinful objectively, meaning that it is against evaluating action by their purpose to justify them, and this opposition to such is also reasonable in human terms, because individualism that isolates the individual, or nationalism that does not value individuality will never truly perceive a person's human and social nature. The teachings of contraception in the church is based on the totality of the human sex, guided by the holy spirit, trusting, understanding, and having survived centuries within Catholic communities through the words of God. The most reliable methods of contraception that is upheld by the Church are that of inspecting vaginal secretion and that of monitoring body temperature. Where as other methods rely on preventing any possibility of pregnancy, the aforementioned natural methods acknowledge their possibilities and tries to work with it. These methods also require conversation with respect and helps to control sexual desires. Also, it retains the will of the married couple to preach love through their children. Moreover, it helps to grow patience and self sacrifice that is needed to sustain a marriage, and opens up the possibility of discovering oneself through endless sacrifice. This is comparable to the love of Christ who bled until his last drop to display agape and leads the conjugal couple to such completion and allows them to be the witnesses of the values of love and life. Catholic ethics are not made to restrain and restrict followers in the name of the gospel. They are made to serve as guidelines to a more human and free achievement of humanity. Therefore ethics can also be called the way to complete oneself and become one with God. Love that leads us to salvation is not the theory, but the act. In this thesis, conjugal love is portrayed as a human, ethical way to reflect divine love in its best, and must focus on its humanity, acting on the absolute value of life, and only then it will lead to salvation that is oneness with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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