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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Various Phases of Ethnicity : the Chinese Minority in Korea 한국화교의 경우

        Park, Eun-Kyung 漢陽大學校 民族學硏究所 1995 民族과文化 Vol.3 No.-

        화교에 대한 연구는 그들의 분포지역의 광대성, 경쟁력, 사회·정치의 조직력 및 중국과 대만의 정책이 자기들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으로 말미암아 일찌기 인류학자들의 주요 관심대상이 되어 왔다. 가난과 재난으로 인하여 외국으로 이주한 화교들은 세계 도처에 정착해 있고, 각 지역마다 화교의 특성이 달라 화교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화교연구는 거의 황무지의 경지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활발한 동남아 화교연구에 비교해 보면 더욱 미개척 분야임을 알 수 있다. 화교의 연구는 비교문화 연구 외에도 종족성(ethnicity) 연구의 일환으로 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종족성 연구에는 퍼셀(Purcell)의 동남아 화교에 관한 포괄적 연구를 비롯하여, 식민세력이 임의로 그어 놓은 동남아 국가들의 경계선으로 인하여 동일한 종족이 상이한 국가에 속하게 된 비극적 역사에 대한 연구도 있다. 리치(E. Leach)는 카친(Kachin)족과 샨(Shan)족의 유대관계를 분석했고, 벌링(R. Burling)은 산지족과 평지족과의 상호작용에서 야기되는 갈등과 친목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종족 간의 갈등 문제, 도시와 농촌으로 갈라진 종족의 갈등, 남부 아프리카 흑백문제도 중요한 종족 연구이다. 또한 미국의 흑백문제 및 각 종족 간의 갈등 및 동화과정도 많이 다루어졌고,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및 부락민(部落民)의 차별 대우에 관한 연구도 이 범주에서 제외될 수 없다. 한국에 살고 있는 중국인 사회는 하나의 종족집단으로 형성되어 중국인들에게는 가족 외의 가장 중요한 사회집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지리적 인접성, 한·중 정치 관계 등으로 한국에 정착해 사는 동안 중국인들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의식을 간직하고, 정기적인 고향방문, 교육, 사회단체 조직 등을 통하여 자신들의 종족집단을 고수해 왔다. 또한 한국 화교들은 동일종족집단에 속함으로써, 특정 경제행위에 종사하기 쉬웠고, 또한 동일 경제행위를 함으로써 자신들의 종족집단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즉, 종족집단이 경제집단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시기와 그렇지 못한 시기에 오는 화교 사회의 변화를 이 논문에서 다루고자 한다. 이 연구는 문헌과 관청의 자료와 한국의 서울, 인천, 수원의 화교사회(1979. 1~1980. 6)와 대만의 대북(臺北), 영화(永和)시를(1980. 1~2) 중심으로 참여관찰을 통해 이루어졌다. 지난 100년 간의 한국 화교사회를 정착기, 강화기, 이동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중국을 배경으로 하나의 경제집단으로 성장한 정착기 동안, 화교들은 그들의 사적인 조직망인 동향회 조직과 공적인 조직인 자치조합을 통해 자신들의 친목·공익을 도모하였고, 일 년에 한 번씩 구정이면 고향에 가 처자를 만나면서 자신의 중국정체성을 의심치 않았다. 한국 속에 살면서도 한국인 또는 식민정권인 일본인과 별개의 집단으로 인식되어 바르쓰가 주장하는 종족집단의 테두리를 형성해 갈 수 있었다. 중국과의 왕래가 끊긴 1949년 이후 화교들은 중국적 배경을 잃게 되고 한국 정부의 경제 억압책에 의해 대다수의 화교가 중국 요식업으로 전향하여 강화기로 들어갔다. 체계화된 화교 협회 조직, 증가된 교육시설로 중국인의 종족 정체성이 더욱 강화된 시기이다. 이는 한국 정부의 자유방임적 교육정책에 의해 가능하였다. 귀화·경제·정치면에서 보인 한국 정부의 억압책은 화교를 중국 요식업 중심의 경제집단으로 만들었고, 화교 사회 내부조직을 강화시킴으로써 정착기보다 종족 정체성을 더욱 강화시켰다. 중국 요식업의 쇠퇴로 화교 사회가 한 경제집단으로 구실하지 못하게 되자 이동기로 이어진다. 중국 요식업의 대안을 한국 내에서 찾을 수 없게 되자 보따리 상업으로 가능해진 대만 방문과 친지의 방문을 통해 1949년 이래 잃었던 중국의 배경을 되찾게 되었다. 보따리 상업은 중국을 이용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셈이다. 이동기에는 동향기, 계, 의사 친족제도를 지속시키기에 영향이 미칠 정도로 화교들의 이동이 많았으나, 화교 협회, 교육제도, 한국 정부의 정책 등이 그대로 지속되어 화교의 종족정체성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이상과 같은 한국 화교 사회의 종족 정체성이 형성·강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한국의 화교 사회는 글레이저와 모니한이 주장한 정치 이익집단으로 발전하지 않았고, 오히려 페터슨이 언급한 경제집단으로 존재하여 강한 동질성을 보여 주었다. 특정 경제행위와 중국 종족 정체성을 유지시켜 나가면서 바르쓰가 말하는 종족집단의 테두리를 지속해 나갔다. 한국 화교의 종족 정체성이 정착기, 강화기, 이동기를 거치는 동안 큰 차이없이 지속되었으나, 이동기에 화교 사회가 경제집단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되자 화교 사회에는 변화가 오고 이동이 시작되었다. 화교가 주재국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데에는 자신들의 종족 정체성의 강도 외에도 주재국의 경제적 여건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예는 한국의 화교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CHO, Hung-guk

        조흥국 漢陽大學校 民族學硏究所 1993 民族과文化 Vol.1 No.-

        이 논문은 17세기 후반 남중국해에서의 태국의 중국 및 일본과의 무역관계를 그 주제로 삼는다. 여기서 17세기 후반을 연구대상으로 둔 것은 이 시기의 3국 무역관계에 대해 여러 일차문헌들, 특히 유럽문헌들로부터의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7세기 후반의 태국의 대 중국·일본 무역형태는 다른 시대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서 위치 연구를 통해 3국간의 무역에 관한 일반적인 모습이 획득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17세기 태국·중국·일본간의 무역관계는 종종 3각무역(三角貿易)이란 개념으로 이해된다. 즉, 한 태국상선이 중국으로의 항해 중 일본을 방문하거나, 일본을 목적지로 삼은 배가 우선 한 중국의 항구에 들려 무역을 했다. 혹은 거꾸로, 한 중국 항구를 출발한 정크선이 나가사끼를 거쳐 당시 태국의 수도인 아유타야(Ayutthaya)로 갔거나, 혹은 아유타야를 경유하여 나가사끼로 항해하기도 했다. 위의 3국간의 무역관계는 본 논문에서 주로 태국의, 특히 태국정부의 입장에서 고찰된다. 그 이유는 중국측의 경우 그 정부차원의 대 태국 및 일본 무역에 대한 관심이 분명히 파악되지 않으며, 일본의 경우는 심지어 당시 대 중국 및 태국 무역을 자체적으로 행하지 않았고 태국의 대 일본무역을 오직 비공식적으로 허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반면, 위의 3각무역에서 타이정부가 대 중국·일본 무역을 얼마나 중시하고 열성적으로 추진했던가가 뚜렷이 나타난다. 본 논문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해국의 중국 및 일본과의 무역관계가 독립적으로 논의된다. 이러한 개별적인 연구를 통해 당시 타이정부가 이들 두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에 대해 갖고 있던 자세를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 중국 샤머니즘 연구사

        崔埈 漢陽大學校 民族學硏究 2001 民族과文化 Vol.10 No.-

        근 10년 이래 중국과의 교류가 잦아지며 각 분야에서 학술 교류가 이루어진다. 샤머니즘 분야도 그 중 하나이다. 특히 중국 동북지역 샤머니즘의 경우 일정 부분 우리의 무(샤머니즘)와 연관성이 있으므로 주목 받아온다. 만·몽 지역이 더욱 그러하다 연구가 고조되면서 샤머니즘과 직접·간접으로 관련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관심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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