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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의 소종래(所從來)에 대한 고봉(高峯)·퇴계(退溪)·율곡(栗谷)의 인식 비교

        조첨첨 ( Zhao Tian Tian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2019 율곡학연구 Vol.38 No.-

        사단과 칠정을 구분하는 기준은 ‘所從來’와 ‘所主[所指]’ 두 가지이다. 高峯은 사단과 칠정은 ‘所指’는 다르지만 ‘所從來’는 동일한 ‘性’ 하나이기 때문에 ‘실질은 같고 이름만 다르다[同實異名]’라고 주장하였다. 退溪는 사단과 칠정은 ‘所指’ 뿐만이 아니라 ‘所從來’가 각각 리와 기이기 때문에 사단과 칠정은 리와 기의 차이에 상응하는 이질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栗谷은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 있는 사단과 칠정은 물론 대립적인 인심과 도심도 소종래는 동일한 ‘理’ 하나이기 때문에 사단과 칠정은 하나의 정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즉 高峯과 栗谷은 사단/칠정의 소종래에 대하여 ‘理一源論的 認識’을 갖고 있었던 반면에 退溪는 ‘理氣二源論的 認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사단과 칠정의 ‘所就而言[所指]’가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봉·율곡와 退溪의 의견이 일치하였으나 ‘소종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서로 첨예하게 달랐던 것이다. 고봉·율곡와 退溪의 주장이 충돌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퇴계·고봉·율곡이 사단칠정논변의 핵심적 과제는 ‘사단과 칠정의 소종래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연구한 논문은 많지 않다. 더구나 율곡과 우계의 논변에 있어서 이 문제가 어떻게 논의 되고 있는지에 대하여 고찰하고 퇴계, 고봉의 주장과 비교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본 논문은 이 문제에 대하여 논의한 것이다. The distinction between the Four-Seven Debate is based on 'sojinglae (origin,source)' and 'soju (the main referred to). Toegye thinks the two are two kinds of emotion, because their 'sojinglae' are li and ki. Gobong thinks the two are one kind of emotion, because their 'sojinglae' are li. They all agreed on ‘sochuiion(different point of view about same thing)’ of the Four and the Seven. However, they had different opinions about 'sojinglae', which is the most important reason for their different theories. Although the questions of 'sojinglae' is the main issues of the four and seven, it has not gotten attention and systematic research so far. This issue in Yulgok and Ugye's Four-Seven Debate is rarely discussed, so this paper focuses on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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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암 이현익의 사단칠정론

        이선열 ( Sun Yuhl Yi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2016 율곡학연구 Vol.32 No.-

        본 연구는 18세기 낙학계열의 학자인 정암 이현익의 사단칠정설을 중점적으로 조명한 것이다. 김창협의 제자였던 이현익은 초기 낙학파 사유에서 두드러졌던 퇴율절충적 사칠론의 경향을 따르고 있다. 즉 율곡학파의 전제를 바탕으로 퇴계설을 최대한 율곡설과 모순되지 않도록 해석하는 것이 이현익의 기본입장이었다. 그는 사단과 칠정이 모두 인의예지에서 발원한 것이라 하여 양자의 발생경로를 일원화하는 ‘기발리승일도’의 관점을 취하되, 퇴계가 말한 ‘리발’과 ‘기발’ 역시 ‘주리’와 ‘주기’의 맥락에서 용인하는 입장에 선다. 이현익에 따르면 사단과 중절한 칠정은 모두 선한 정(情)으로 가치상 동일하며, 존재상으로도 어느 쪽이 더 리에 가깝다거나 기에 가깝다는 식으로 차별화할 수 없다. 하지만 개념의 층위에서 각자가 함축하는 취지에 주안점을 둘 때 양자의 차이가 불거진다. 즉 사단은 리의 순선한 측면만을 단적으로 지시하고 기의 측면을 언급하지 않은 것인 반면, 중절한 칠정은 기가 리를 순조롭게 따른 경우를 지칭하기 때문에 기의 역할에 강조점이 놓인다. 이처럼 가치론적ㆍ존재론적으로 동일한 대상이더라도 무엇을 의도하고 강조하는지에 따라 개념상의 차이는 변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이현익의 기본생각이다. 그는 기에 따라 좌우되는 우연적ㆍ가변적인 선악의 한 측면과 동일시하기에는 사단의 도덕적 함의가 크다는 퇴계의 문제의식에 공명한다. 즉 사단이 칠정의 일부로만 간주될 때 단순히 ‘중절한 일반감정’과 차별화되는 ‘천부적인 도덕감정’의 가치가 희석된다고 본 것이다. 그 같은 취지하에 이현익은 논리구조상 율곡의 학설을 따르면서도 그 안에 퇴계의 문제의식을 수렴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아울러 그는 퇴계와 율곡의 관점이 각각 빠질 수 있는 편향을 지적하면서 사단칠정에 관한 종합적인 인식을 꾀하기도 했다. 비록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낙학파의 논리로 사단칠정 문제를 명료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현익의 학설은 일정한 사상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This research focuses on the theory of Four Beginnings and Seven Feelings performed by Yi Hyun-Ik. Yi belonged to Rakhak(洛學) in Yulgok school in the Joseon Dynasty in the 18th century. Yi``s view on this issue can be recapitulated as two claims: (i) Yulgok was entirely right as regards to the relations between Four Beginnings and Seven Fellings, and (ii) nevertheless, Toegye``s view on this issue, if examined closely to understand what it was originally meant, is not incompatible with Yulgok``s theory. This reveals the basic attitudes of Yi``s philosophy, which compromises the two great philosophers`` views. At the same time, Yi provides criticisms on their views. He attempted to reach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Theory of Four Beginnings and Seven Feelings, while pointing out the problems one may face taking Toegye or Yulgok``s view tendentiously. In sum, Yi``s view on Four Beginnings and Seven Feelings is the result of accommodating both Toegye``s and Yulgok``s philosophies, and, at the same time, of critically examining their views.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Yi``s view lies in the fact that it clarifies the complex issues raised by the theory of Four Beginnings and Seven Feelings within his own line of thinking, as opposed to merely following previous discourses.

      • KCI등재

        포용적 복지국가시대의 지역사회통합돌봄과 율곡의 복지철학에 관한 소고

        김수정 ( Kim Soo Jung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2021 율곡학연구 Vol.44 No.-

        본 논문은 지역사회통합돌봄 기본법을 제정과 본격적인 사업 확대에 앞서 율곡이 제시했던『동호문답』, 『성학집요』, 『만언봉사』같은 역사적 사료에서 포용적 복지와 지역 사회통합돌봄의 방향성을 탐색함에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하여 2026년에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이 예상되어 그 전까지 대다수 국민들의 보편적 문제인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어디서 돌봄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해법 마련이 필요했다. 그 대안으로 지역사회중심의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서비스 간의 연계를 중심으로 어르신이 살 던 곳에서 주거·의료·요양·돌봄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정책을 만들게 되었다. 현 정부는 출범과 함께 ‘5대 국정목표’를 제시했는데 그중 세 번째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이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5대 국정전략 중 첫 번째가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이다. 포용적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의료 공공성 확보를 전략과제로 삼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발판으로 지역사회통합돌봄 체계를 가져왔고, 이러한 ‘지역사회통합돌봄’이라는 시범 사업을 통해 보편적 복지에 대한 전향적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으며, 보건의료·주거·복지·돌봄 등의 영역에서 대상자별 서비스 통합이 시대적 상황은 달랐지만 율곡이 살았던 시대에 나라가 생업을 보호하고 세금과 부역 착취를 줄여 밥을 최우선으로 보장했던 상황과 결부시켜 부양의 사회화라는 공통분모를 끄집어 낼 수 있다. 율곡의 『만언봉사』에서는 시의(時宜)와 실공(實功)을 핵심으로, 『동호문답』에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토대로, 『성학집요』에서는 애국경세(愛國經世)의 실질적 리더십을 통해 안민(安民)정책을 세웠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포괄적 복지개념에 있어서 지역사회통합돌봄의 가치는 율곡이 말하는 경세론과 안민론에서 충분히 방향성을 제고해 볼 수 있겠다. Before the legislation of Community Integrated Care Act and its full execution, this article has reviewed the comprehensive social welfare system and the community integrated care as suggested in the historical documents, such as Yul-Gok's 『Dong-Ho-Moon-Dap』(東湖問答), 『Sung-Hak-Jip-Yo』(聖學輯要), 『Maan-Un-Bong-Sa(萬言封事). Our country has entered aging-society and is expected to enter super-aged society in 2026. Ahead of such stage, we need to prepare how to provide care to whom in need, and such care is a general problem for all people. To provide a solution for such problem, new policy has been made that will dramatically enhance services for residence, medical care, treatment and daily care. The policy is to associate various services in the community where the elderly people have lived in, with a view to providing community-centered services. With its inauguration, Moon-Jae-In administration has proposed 5 governmental goals and the 3rd goal is "the nation that cares my life". To achieve the goal, among 5 governmental strategies, the 1st strategy is "the comprehensive welfare country for all people". And to make comprehensive welfare country, Moon-Jae-In administration decided to achieve 2 strategic missions, which are (i) broadening medical insurance coverage and (ii) enhancing public medical services. To achieve these goals, comprehensive community care system is established. And, with the pilot project for the comprehensive community care system, the approach for the "universal welfare" has gained its momentum. In times when Yul-Gok had lived, although the circumstances were different from now, we could found same ideas for providing social care for the people by protecting daily earning, reducing taxes and mandatory works, and guaranteeing basic lives. And those ideas share common ground with the consolidated services we consider now for each person in the area of residence, medical care, treatment and daily care. We found that Yul-Gok has established the “Caring Policy for People” by Siui(時宜), Silgong)實功) in 『Maan-Un-Bong-Sa(萬言封事). Sugichiin(修己治人) in 『Dong-Ho-Moon-Dap』(東湖問答), and leadership of Aegugjeongsin(愛國經世) in 『Sung-Hak-Jip-Yo』(聖學輯要). In this regard, we can find a better way to improve our comprehensive community care system for comprehensive welfare by reflecting it with Yul-Gok's Gyeongselon and Anmin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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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심의 선과 중절의 선 - 사단칠정 해석 분기(分岐)의 제1원인 -

        김기현 ( Kim Kee Hyeon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2018 율곡학연구 Vol.37 No.-

        송명시대의 이학자(理學者)들은 모두 성선설 지지자들이다. 당연히 이들은 맹자의 사단설(四端說)을 중요하게 여기며, 사단의 선심(善心)을 실행하면 선이 산출된다는 선(善)의 규준을 취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학자들은 북송(北宋)시대부터 이미 『중용』의 중화(中和) 논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중용』의 중화설에 따르면 희노애락 등의 정서가 발동하였을 때 중절(中節)하면 화(和)의 선이 산출된다. 이렇게 되면, 희노애락 등의 정서가 발동하여 중절하였을 때인 ‘중절의 선’과 사단의 선심을 실행한 ‘선심의 선’, 이렇게 두 종류의 선악 규준을 갖는 것이 된다. 하나의 철학체계 안에서 선(善)의 규준이 둘일 수는 없다. 이 두 선악 규준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작업은 북송이래 중국과 한국에서 이학이 전개되는 가운데 반드시 정립되어야 할 것의 하나가 되었다. 결과를 놓고 말하면, 육구연(陸九淵)과 왕수인(王守仁)의 이학(理學)에서는 ‘선심의 선’이 ‘중절의 선’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정립(定立)되어 갔다. 반면에 새로운 유학(Neo-Confucianism)인 성리학에서는 이 난제에 대해 닦아놓은 기왕의 길이 없어 새롭게 노선을 열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실질 내용 면에서 보면, 이 난관은 성리학이 ‘심(心)-성(性)-정(情) 삼분(三分)’의 원칙에 의거해 사단(四端)의 선심을 칠정(七情)과 함께 다같이 ‘정(情)’으로 규정한 데서 비롯된다. 16세기의 사단칠정 논변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퇴계와 율곡에 의해 각기 하나의 노선이 열렸고, 이 두 성리학 노선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글은 윤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사단의 정’과 ‘칠정의 정’ 간의 관계 설정 문제에 직면한 성리학이 16세기 사단칠정 논변의 결과 호발설(互發說)과 일도설(一途說)의 두 노선으로 길을 닦아 현재에 이르고 있음을 거시적으로 조명한 것이다. 주요 논제는, 송명이학이 직면했던 두 개의 선악 규준에 대해 성리학은 호상학-양명학의 노선과는 근본적으로 길을 달리 하였다는 점과 성리학 안에서는 퇴계와 율곡에 이르러 두 노선으로 분기(分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학의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핵심 논점들은 무엇무엇이었는지를 짚어보고, 향후 연구자들이 수행해 내어야 할 과제들에는 무엇무엇이 있는지를 정리해 간다. All the Rational Philosophers of the Song-Ming Dynasty supported the theory that human nature is good. Naturally, they made much importance of the “Four Beginnings of Moral Sentiments” Mencius proposed, and regarded what the “Four Beginnings of Moral Sentiments” as the criterion of the good. On the other hand, the Rational Philosophers began to discuss ‘equilibrium and harmony of feelings’ in the Doctrine of the Mean from the Northern Song Dynasty. According to the theory of equilibrium and harmony in the Doctrine of the Mean, when the feelings of pleasure, anger, sorrow and joy have been stirred and they act in their due degree, the good of harmony ensues. This resulted in two kinds of criterion for the good: ‘the good of the original mind’ that performs the “Four Beginnings of Moral Sentiments” and ‘the good of acting in a due degree’ when the feelings of pleasure, anger, sorrow and joy have been stirred and they act respectively in their due degree. There cannot be two criteria of the good in a philosophical system. How to establis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se two criteria of the good became one of the notions that had to be established in the process of the development of Rational Philosophy in China and Korea since the Northern Song Dynasty. From the perspective of the result, in the Rational Philosophy of Lu Hsiang-shan and Wang Yang-ming, ‘the good of the original mind’ was established to have precedence over ‘the good of acting in a due degree’. On the other hand, Neo-Confucianism faced a situation in which a new line should be developed because of the absence of existing ways to understand and solve this difficult problem. From the perspective of the substantive content, this difficulty stems from the fact that Neo-Confucianism defined both goodness in the “Four Beginnings of Moral Sentiments” and the “Seven Feelings” as ‘feelings’ according to the doctrine of a trisection into mind-nature-feeling. Through the “Four-Seven Debate” in the 16th century, Yi T’oe-gye and Yi Yul-gok finally established one line, respectively, and these two lines of Neo-Confucianism have been maintained to date. From the viewpoint of ethical thoughts, Neo-Confucianism, which was faced with the problem of establish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feelings in the “Four Beginnings of Moral Sentiments” and the feelings in the “Seven Feelings”, it developed two lines of thought through the “Four-Seven Debate” in the 16th century: the theory of “Mutual Issuance of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and the theory of the “Single Path of the Issuance of Material Force”, and these two doctrines have been maintained to date. This is macroscopically examined in this study. This study examines what major issues were involved in the process of development of Rational Philosophy, and summarizes tasks that researchers should undertake in the future.

      • KCI등재후보

        중국시선집 『정언묘선(精言妙選)』의 내용과 특성

        진영미 ( Young Mi Jin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2015 율곡학연구 Vol.31 No.-

        본고에서는 먼저 율곡의 생평(生平)과 사상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이어 『정언묘선』에 대한 서지적 검토와 함께 중국시선집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정언묘선』의 편찬 의의를 고찰하였다. 『정언묘선』은 조선시대 문신이며 학자인 율곡 이이가 1573년 38세 때 편찬한 중국시선집이다. 서두에 「정언묘선서」가 있고, 이어 원자집 · 형자집 · 이자집 · 정자집 · 인자집 · 의자집 · 예자집 · 지자집 등 8개의 ‘자집(字集)’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자집’마다 넉자로 된 풍격용어로 성격을 규정지었고, 그 풍격의 특성을 밝힌 짧은 서문이 본문 앞에 붙어 있다. 각 ‘자집’마다 오언고시 · 칠언고시 · 오언율시 · 칠언율시 · 오언절구 · 칠언절구 순으로 창작시기가 이른 시부터 수록되어 있다. 시제를 기준으로 총 40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위응물의 시가 47편으로 가장 많이 수록되어 있고, 이어 이백(41) · 두보(31) · 맹호연(20) · 유종원(17) · 왕유(15) · 유장경(11) 순이다. 『정언묘선』에 수록되어 있는 시들을 중국시선집 및 중국개인시문집과 비교 검토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1) 한위진남북조 시의 경우 대부분 『풍아익』에서 시를 선하였고, (2) 당나라 시는 주로 『당음』과 『당시품휘』에서 시를 선하였으며, (3) 송나라 시는 『송예포집』과 각종 개인시문집에서 선하였다. 그렇다면 율곡은 왜 『정언묘선』을 편찬한 것인가? 율곡은 거짓과 수식을 일삼는 시를 바로잡아 시도(詩道)의 본원을 찾기 위해, 중국 역대 시 가운데 ‘가장 정(精)하여 법(法)으로 삼을 만한 시’ 400여 편을 선하여 여덟 개의 자집으로 만들었다. 여덟 개의 자집은 곧, 『역경』의 ‘원(元) · 형(亨) · 리(利) · 정(貞)’으로 표제(標題)를 삼은 뒤 각각 ‘沖澹蕭散[元字集] · 閑美淸這[亨字集] · 淸新灑落[利字集] · 用意精心[貞字集]’이라는 풍격용어로 성격과 가치를 부여하였고, 『논어』와 『맹자』의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로 표제를 삼은 뒤 역시 각각 ‘情深意遠[仁字集] · 格詞淸健[義字集] · 精工妙麗[禮字集] · 明道韻語[智字集]’라는 풍격용어로 성격과 가치를 부여하였다. 동시에 율곡은 충담(沖淡)한 시를 첫 번째에 둠으로써 시의 원류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알게 하였고, 점차 뒤로 내려가 미려(美麗)함에 이르러서는 시의 맥락이 거의 참됨을 잃음에 가까워짐에 따라 도를 밝힌 운어(韻語)로 끝을 맺음으로써 억지나 거짓으로 흐르지 않게 하였다. 따라서 율곡의 『정언묘선』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는 천도(天道)와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인도(人道)가 율곡의 차원 높은 철학적 심미의식의 발현인 풍격을 통해 시도로 통합된 조선본 중국시선집이라고 할 수 있다. In this paper, first of all, Yoolkok(栗谷)`s life and his thoughts will be introduced briefly. Subsequently, compilation purpose of the Jungeonmyosun was considered by its` bibliographic review and comparative research with Chinese poetry anthology. Jungeonmyosun is Chinese poetry anthology written in 1573 by Yoolkok Yi Yi(李珥) who is a scholar and politician in Chosun Dynasty. The book starts with the declaration of the Jungeonmyosun followed by Wonjajip(元字集), Hyeongjajip(亨字集), Ijajip(利字集), Jungjajip(貞字集), Injajip(仁字集), Euijajip(義字集), Yejajip(禮字集), Jijajip(智字集). In each jajip, Yoolkok has named with qualitative words in 4 letters such as Choongdamsosan(沖澹蕭散), Hanmicheongjeok (閑美淸這), Cheongshinshaerak(淸新灑落), Yongeuijeongshin(用意精深). In the Jungeonmyosun, total of 402 poems with each topics are included. Within the book, 47 poems by Wieungmool(韋應物) followed by 41 by Yibaek(李白), 31 by Doobo(杜甫), 20 by Maenghoyeon(孟浩然), 17 by Yoojongwon(柳宗元), 15 by Wangyoo(王維), and 11 by Yoojangkyung(劉長卿) are contained. After comparing poems from Jungeonmyosun with Chinese poetry anthology and Chinese Personal Poetry Literature, we have discovered a few significant characteristic. Firstly, most of the poems written in Han, Wee, Jin Dynasty, and South North Period were extracted from other poetry named Poongaick(風雅翼). Secondly, most of the poems written in Dang Dynasty was extracted from other poetry named Dangeum(唐音) and Dangsipoomhui(唐詩品彙). Lastly, most of the poems written in Song Dynasty was extracted from Songyepojip(宋藝圃集) and various personal poetry anth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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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栗谷)의 애도시(哀悼詩)에 나타난 추모의 형상화(形象化) 방식(方式)

        고명신 ( Ko Myoung-shin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2019 율곡학연구 Vol.38 No.-

        이 논문은 율곡의 애도시의 효율적 고찰을 위해 ‘남다른 가족애와 생애적 자취의 회고’, ‘인간적 유대감과 생애적 업적의 회고’로 주제 영역을 나누어 그의 애도시에 형상화된 특징적 면모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었다. 먼저 ‘남다른 가족애와 생애적 자취의 회고’를 살펴보면, 율곡은 누구보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사람으로 한 집안의 평범한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충실한 삶을 살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의 제약으로 가족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드러난다. 이러한 그의 삶의 회한은 가족을 대상으로 한 애도시의 주된 모티브로 작용되며, 망자와 함께한 삶의 회고를 바탕으로 서사적 진술이 곡진하게 전개되는 특징적 면모를 띠게 한다. 다음으로 살펴본 ‘인간적 유대감과 생애적 업적의 회고’에는 율곡이 학문 수양의 시기에서 출사기 이후까지 교유한 당대의 저명한 석학 또는 대소 정객들과의 인간적인 유대감이 형상화되어 있다. 이처럼 정치(사회적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애도시의 경우, 망자의 정치(사회적 위치에 따른 생애적 업적에 초점을 맞추어 전고를 활용하는 등의 수사적 기법을 동원하여 전개되는 특징적 면모를 보인다. 이러한 율곡의 애도시의 특징적 면모는 인류보편적인 인간애에 바탕을 둔 것으로써 당대는 물론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이점이 그의 애도시가 오늘날에도 큰 위상을 지니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aims to concretely examine the characteristic aspects expressed in the monody of Yulgok, by dividing its subject area into "retrospection of extraordinary family love and lifecourse traces" and "retrospection of humane bond and lifecourse achievements" for efficient consideration of Yulgok Ae city. First, a close look at Yulgok's "retrospection of extraordinary family love and lifecourse traces" reveals his remorse for the fact that he had trouble meeting the needs of his family because of various realistic constraint, even though he wanted to live a faithful life as a normal head of household in a family as a person who had a love for family like no other. This remorse of his life serves as a main motif of the monody for his family, and shows a characteristic aspect in which the narrative statement was given in a thorough manner based on the lifecourse trace of the dead. Next look at the Yulgok's “recollection of human bond and lifecourse achievement” shows the expression of humane bond with great scholars and various politicians of his age, who had been in contact with Yulgok since the time of study adoption and after he entered government service for the first time. In the case of monody for those who had political and social relations with Yulgok, it shows a characteristic aspect developed by the use of rhetorical techniques such as using the previous history focusing on the lifecourse achievements according to the social position of the dead. In this way, Yulgok wanted to live a faithful life internally as a normal head of household in a family and, externally, live a respectable life that emphasized humane bonds that were not ashamed of his duty as a Confucian scholar. This life of Yulgok raises the alarm about the function and role of the family in the modern society where the family disorganizationphenomenon is widespread. It also reminds modern people who live in the era of materialism, where human beings are commercialized, of the importance of humane bond. Here we can find an important reason why his monody can receive attention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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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학연구(栗谷學硏究)의 새로운 지평 및 신공동체(新共同體)의 모색

        손흥철 ( Son Heung Chul ),박용석 ( Park Yong Suk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2020 율곡학연구 Vol.43 No.-

        이 논문은 율곡학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보고, 21세기 미래사회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이상을 율곡의 경세론에서 찾아보았다. 이를 위해 이 논문에서는 율곡의 철학을 두 가지 분야로 나누어 연구하였다. 첫째는 율곡의 성리학(性理學) 연구의 경향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다. 여기서 필자는 그동안 율곡 성리학을 연구하는데, 기존의 주리·주기의 이분법적 연구 경향과 지나친 퇴계와의 비교연구의 태도를 버려야 율곡 성리학의 진면목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율곡성리학의 세계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보았다. 둘째는 율곡 경세론의 특징을 정리하고, 이에 관한 적극적 연구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율곡학은 바로 성리학과 경세론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그동안 경세론에 관한 연구가 부족함을 반성하고, 율곡의 경세론을 연구함으로써 미래 사회의 새로운 사회윤리와 이념을 모색하였다. 여기서 필자는 공동체 운영에서 지도자는 도덕적 정의를 실천해야 하고, 또한 실무능력과 희생정신을 갖추어야 하며, 일반 백성은 자유로운 소통(疏通)과 공론(公論)을 존중해야 함을 논증하고 확인하였다. 율곡의 경세론에서 이러한 정신을 밝혀서 미래의 공동체 형성과 운영의 원리로 삼아야 함을 검토하였다. In this paper, I seeked for new horizons of Yulgok(1536~1584) studies, and looked up the ideal to form a new community of future society in the 21st century in Yulgok's administration theory. For this purpose, I divided Yulgok's philosophy into two areas. The first was criticizing the tendency of study Yulgok's Neo-Confucianism and seeking new directions. As a researcher who has been studying Yulgok’s Neo-Confucianism, I believe that it is necessary to discard the dichotomous research trends of the existing Li(理)-centered(主理) and Qi(氣)-centered(主氣), and to cease the excessive attitude of comparative research with Toegye(退溪) to understand the true aspects of Yulgok Neo-Confucianism and thus to promote the globalization of Yulgok’s Neo-Confucianism. Secondly, I emphasized the need for active research on Yulgok’s theory of Administration(經世論). The studies of Yulgok consist of two parts : Neo-Confucianism and the theory of Administration, but the latter has not yet been studied enough, and thus we need to study further Yulgok’s theory of Administration to get new social ethics and ideologies in future society. Here, I argued and confirmed that in the operation of the community, leaders should practice moral justice, also have practical skills and spirit of sacrifice, and the general public should respect free communication and public opinion. This spirit was revealed in Yulgok's theory of Administration, and it was proposed that the principle of the formation and the operation of good community should be based on the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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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초반 江陵지방 栗谷鄕約의 성격

        이규대 ( Kyu Dae Lee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2013 율곡학연구 Vol.27 No.-

        이 논문은 宣祖33년(1600)에 강릉지방에서 시행된 江陵鄕約을 자료로 삼고, 이 향약이 海州一鄕約束의 변용된 사례라는 점을 주목하여, 그 내용과 조직 및 운영 실태를 분석하여 시대적 특성을 밝히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강릉향약 은 壬亂직후에 시행되면서 지방의 사회질서를 복원하려는 의도가 투영되고 있다. 이 향약은 朱子의 朱子增損呂氏鄕約을 체제의 근간으로 삼고 栗谷李珥가 선조 10년(1577)에 입안한 해주일향약속 을 <附錄>과 <別條>의 형태로 수용하고 있다는 체제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체제는 원론적 의미의 주자향약과 실무적 규정으로서 율곡향약의 조합이었다. 특히 율곡향약의 수용은 율곡과 이 지방 사림들의 인적·물적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것이었으며, 율곡향약의 변용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강릉향약 의 조직과 운영은 율곡향약과 유사한 양상이다. 鄕案에 등재된 鄕員을 구성원으로 하고, 鄕會를 통해 규합되는 公論을 기반으로 지방사회의 자치적 운영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향원 상호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행위와 下民을 침탈하는 행위가 가장 무거운 벌칙으로 규제되며, 城主와 향원들의 의례관계를 관권우위의 질서로 정형화하며, 鄕吏및 官屬의 민간 작폐와 品官능욕행위는 留鄕所를 통해 규제되고 있다. 이로서 향원 자신들중심의 지방사회의 자치적 운영질서를 구축하려는 성향을 지향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강릉향약 에서는 율곡향약에서 강조되는 유향소 결원에 대한 추천권·근면한 향리에 대한 추천권·부세 책정안의 조사권 등에 대한 내용이 배제되었고, 아울러 향회에서는 朝廷과 州縣政事의 得失에 대한 논의가 일체 금지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자료상의 城主手決에서 시사되듯 향약시행에 수령권이 크게 작용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향약에서 政務와 敎化가 분리되는 것으로 이 시기 향약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한계로 지적될 수 있으며, 이후 교화 위주의 향약운영을 예고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The main material for this thesis is Gangneung Hyanyak which was written in Sunjo 33(1600). This is noted for the transformation of Yulgok Hyangyak. The aim of this thesis is to analyze the system and the content to figure out the periodic character. Gangneung Hyangyak had the intention to restore the social order to its original state right after Imran. This had systematic basis on Jujajeungsonyeossihyangyak of Juja. In addition, Haejuilhyangyaksok devised in Sunjo 10(1577) from Yulhok Yiyi was accepted as the appendix and the additional clause. This kind of system was the combination of Juja hyangyak in principal and Yulgok hyangyak as the practical regulation. Especially, the acceptance of Yulgok Hyangyak was based on the human and material network of Yulgok and the community people, which meant the transformation of Yulgok hyangyak. The organization and the operation of Gangneung Hyangyak had similarities to those of Yulgok hyangyak. This hyangyak had Hyangwon registered in Hyangan as members. The operation aimed for the autonomous operational order of the local community based on the public opinion gathered through Hyanghoi. The deed which could cause the conflict between members and plundering the people were controlled by heavy penalties. The formal relationship between Seongju and members was standardized following the government authority order. The Hyangri`s evil effects to the people and civilian insult were regulated through Yuhyangso. So it could be said that Gangneung Hyangyak tried to establish the autonomous operational order in the community which was centered on themselves, in harmony with the government authority. In spite of these tries, in Gangneoung Hyangyak, the main content that was emphasized in Yulgok Hyangyak was deleted. That is, Yuhyangso and the right to nominate Hyangri and to investigate tax were excluded. Furthermore, in Hyang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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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 이이의 동북아 인식과 21세기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

        김용헌 ( Yong Hun Kim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2013 율곡학연구 Vol.27 No.-

        2013년 8월 현재 동북아는 여러 힘들이 충돌하는 장이면서 경제·문화의 측면에선 화해와 협력, 나아가 상생을 위한 공동체 담론들이 성숙되어 가고 있다. 미국의 전통적인 동북아 전략은 동북아는 물론 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체제를 미국과 중국이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체제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최근 일본의 대외 전략에서 두드러진 것은 미일 동맹체제의 강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우경화와 군사대국화의 경향이다. 더욱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조치, 그리고 개성공단 가동 중단등 경색된 남북 관계는 해법의 실마리를찾지 못하고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율곡 이이가 제시한 대외 정책의 두 기준은권(權)과 의(義)이다. 권으로써 변화에 대처하고 의로써 일을 처리한다면 나라를 다스리기가 전혀 어렵지 않다는 것이율곡의기본적인 생각이었다. 권은때에 따라 중을얻는 것[隨時得中]이고 의는 일처리를 합당하게 하는 것[處事合宜]이다. 율곡은 이 두 기준에 따라 동북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국중심주의, 백성이익주의, 상호신뢰주의, 비침략주의 원칙을 적용했다. 율곡의 사상에 비추어 보자면, 동북아 문제에 접근할 때 우리가 지녀야 할 두 기준은 대한민국의 번영과 동북아의 평화·공생이다. 우리의 동북아 전략은 대한민국 국민의 삶의 고양, 동북아 국가 간의 신뢰와 협력,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율곡이 전해주는 동북아 전략의 지혜이다. Two criteria for formulating foreign policy which Yulgok(1536∼1584, his real name is Lee Yi), who served in various high-ranking government posts as a famous Neo-Confucian in Joseon Dynasty, proposed are gwon(權) and eui(義). Yulgok thought that it would be not difficult for a king to govern his country if he coped with change by means of gwon(權) and carried out a task in accordance with eui(義). Gwon(權) means to follow the golden means according to circumstances and eui(義) means to deal with issues rightly. According to these criteria, Yulgok gave priority to profit of his own country and interests of his country`s people in solving international problems of Northeast Asia. At the same time he maintained mutual trust between countries and objected to military attacks against other countries. On the basis of Yugok`s diplomatic policy, we have to keep two principles, that is, the prosperity of Korea and peace and co-prosperity of Northeast Asia about issues of Northeast Asia. Our strategy for Northeast Asia must be focused on the sustainable improvement of Korean people`s life, their national confidence and cooperation among Northeast Asian countries, and the peace and co-prosperity of North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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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퇴계학파의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율곡학(栗谷學) 인식

        김낙진 ( Nak Jin Kim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2014 율곡학연구 Vol.28 No.-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17세기 퇴계학자들의 율곡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은 16세기에 활동한 선배들의 정파적 느낌인 편당성을 꼬투리로 삼아 불교 출가, 공부법의 문제, 이기론의 상이성 등이 점차 추가되면서 만들어졌다. 인조반정 이후 정권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는 서인들의 편당적인 행태의 큰 원인을 이이에게서 찾고, 그에 대한 부정적 상상을 키워갔다. 17세기의 서인들이 정권 담당의 도덕적 정당성을 先師에게서 찾았던 것에 비례하여 퇴계학자 또는 남인들은 그들의 선사인 이이의 도덕적 부적합성을 역설하게 된 것이다. 17세기 정치와는 무관했던 이이에 대한 논란은 문묘종사의 적합성 여부, 즉 도학자인지 여부를 놓고 일어났다는 특수성이 있다. 정쟁이 격화될수록 관용과 이해의 여지는 없어졌고, 불행하게도 이때 형성된 이이의 이미지는 유학의 시대가 종언을 고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비록 퇴계학자들의 이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퇴계학의 심법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내포된 당파적 편견을 간과해서는 안 되므로, 율곡학의 본래적인 측면과 당파적 시각에 의해 왜곡된 해석을 구분하여야 한다. Negative Cognition on Yiyi and Yulgok-studies in the 17th Century Toegye School was made step by step. They looked up a clue in their foregoer´s feeling of political faction, additionally superinduced the career of entering the Buddhist priesthood, the fault of study method and the differentness of Li-Qi theory from Yi Hwang. They attributed the cause of the political partisan and autocratic acts of the seo-in party to Yiyi´s teachings, then fostered their negative imaginations about Yiyi. The 17th nam-in bureaucrats and scholars emphasized the moral flaws of Yiyi in proportion to the 17th seo-in´s adoration. The dispute between the nam-in party and the seo-in party over Yiyi and his academic theory took on a concrete form of Do-hak(Ideal moral philosophy) controversy, in other words, dispute about acceptance or rejection the memorial rites on Temple of Literature(文廟). There was no mutual tolerance and understanding, unfortunately their image of Yiyi was reproduced on an enlarged scale until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Although that negative cognition was based on the mind learning of Toegye school, we must not overlook their partisan bias. So we need to disentangle the truth from their prejudiced con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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