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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ays in Canadian Ecocriticism

        Simon C. Estok 문학과환경학회 2006 문학과 환경 Vol.5 No.1

        Despite the very strong history of representations of Nature in Canadian literature, very little in the way of Canadian ecocriticism has appeared. There are several reasons for this, some of which have to do with Canada's history as a colonized nation. By 2006, though, Canadians may rightly say, "Nous sommes arrives." The sudden interest, not only within Canada but well outside of the nation's boundaries, suggests a bright future for Canadian ecocriticism. It is, without a doubt, very fertile ground for publishing these days.

      • KCI등재

        Coriolanus and ecocriticism: a study in confluent theorizing

        Simon C. Estok 한국셰익스피어학회 2008 셰익스피어 비평 Vol.44 No.3

        최근에 생태비평은 세익스피어 연구에 새로운 통찰력과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생태비평의 유효성을 증명하였다. 그럼에도 아직 생태비평은 다양한 병렬식 이론화작업(confluent theorizing)을 추구하면서 “자연공포증”(ecophobia)과 같은 개념을 명확히 규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자연공포증이란 자연 환경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설명해주는 개념으로, 페미니즘적 “여성혐오증”이나 퀴어이론의 “동성애공포”와 유사한 개념이다. 『코리오레이너스』는 목소리, 성, 장소에 관하여 열띤 논쟁을 야기했던 텍스트로, 코리오레이너스의 정체성의 위기가 환경의 일부로서 인간의 위기로서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생태비평적 병렬식 이론에 합당한 텍스트이다. 자연공포를 이론화하는 일은 생태비평을 방법론적·구조적으로 정의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자연공포는 생태비평 특유의 병렬식 이론화 작업에 적합한 개념이면서 다른 다양한 정치 이론들과 쉽게 접합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생태비평이 텍스트를 둘러싼 문화적·지성사적 역사를 섬세하게 논의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텍스트를 둘러싼 환경적 역사와 환경적 상황에 대한 차원으로 논의를 확대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코리오레이너스』는 성적 유동성과 자연의 공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병렬식 이론화 작업에 적합한 텍스트이다. 과거에 서로 무관하게 취급되었던 주제들 사이의 숨겨진 연관성을 찾아서 보여주는 이론적 얼개가 생태비평이지 않은가. 그러한 문제들이 병렬식으로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태비평은 윤리적으로 사소한 환경적 스키마가 각인된 코리오레이너스의 몸은 자연과 같이 취급될 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자연과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자신을 사회로부터 분리하려 했던 코리오레이너스는 자연세계와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공간이 아닌 공간, 이성애적 결혼과 동성애적 우정 사이, 로마와 코리올 사이, 사람이 살 수 없고 언어가 불가능한 공간에 뿌리채 제거해야 할 잡초나 질병처럼 코리오레이너스는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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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ds, Power, Masculinity

        Simon C. Estok(싸이몬 에스톡),Jungyoun Kim(김정연) 한국셰익스피어학회 2010 셰익스피어 비평 Vol.46 No.2

        이 논문은 셰익스피어의 초기 비극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에서 나타나는 손이 앤드러니커스 가족과 그 밖의 인물들의 권력과 남성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밝히는 연구이다. 이 극에서 여러 차례 나타나는 신체 훼손은 이러한 의미를 더욱 부각 시키고 있으나, 신체로부터의 절단이 이 극에서 손이 전달 하고자 하는 권력과 남성성의 의미에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연구를 통해 밝힌다. 이 극에서 손은 절단 여부에 상관없이 정치 권력을 드러내고, 복수를 정당화하며 남성성을 극대화 한다. 그리고 또한 손은 대상화 되어 이동하며 신체에 재배치되면서 신체의 일부로서의 기능 이상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신체 절단을 프로이트적 거세(castration)로 보는 비평은 이 극에서 나타나는 손과 신체 훼손의 의미, 그리고 그 기능에 대한 해석을 축소시킬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이를 프로이트의 “물신주의”(fetishism)입장에서 절단된 손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심리학적 비평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해석이라는 점을 연구를 통해 밝힌다. 이러한 신체 절단과 훼손, 윤간, 식인행위(cannibalism)등 수 차례 등장하는 기괴하고 잔혹한 장면들로 인해 과거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저평가 되어온 이 극에서 손은 의아하리만치 여러 차례언급, 등장하고 있는데,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셰익스피어가 일반적, 물리적으로 기능하는 의미로서의 손을 나타내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 수사학적 표현을 통해 손의 함의와 기능을 반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 극에서 나타나는 손은 권력과 남성성을 상징화하는 동시에 여성을 대상화, 타자화된 이미지로 재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과 남성성, 그리고 남성 중심적 가치는 셰익스피어의 로마극에 있어 두드러지게 재현되는 요소로서 이 극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는 손과 신체 절단을 통해 이를 부각시키고 있음을 이 논문에서 밝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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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formation Fatigue, Environmental Fatigue: Producing Affect in Ecomedia

        ( Simon C. Estok ) 한국영어영문학회 2014 영어 영문학 Vol.60 No.3

        The 21st century narrates science through various mass media outlets, producing both an audience and a set of responses from that audience. The affect of the narrative maneuvers of mass media often precludes activist intervention into the very problems being presented. Concurrent are both information fatigue among an audience simply exhausted by data and environmental fatigue in a world teetering on the verge of virtually global ecosystemic collapse. The dire necessity of engaging meaningfully with the present means that it is necessary to recognize the weariness that various media engender in us. It means also recognizing the sense of powerlessness, of ephemerality, and of unrootedness to which we are as spectators consigned. It is a very gloomy but real fact that humanity has arrived at a position where its own ruin has become entertainment and where information has become virtually unmanageable. Yet, as this article shows, there have been other times in history when a surfeit of information has resulted in a perceived crisis and a sense of paralysis. What we experience is not new, but the context and nexus of information fatigue and environmental fatigue is new and very dangerous. This article argues that it is necessary to address the matters of spectatorship and the effects and implications of what are often very enchanting media narratives (which ultimately often have compelling economic motives). Activist intervention is absolutely contingent on our recognition of the degrees to which our media write us fatigued accomplices to future r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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