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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대행선사(大行禪師)의 한마음 사상을 중심으로 본 업과 삶

          김원명(KIM, Won-Myoung) 새한철학회 2016 哲學論叢 Vol.85 No.3

          이 논문의 목적은 ‘대행(大行)스님(1927-2012)의 한마음 사상에서 개인의 삶이 결정되어 있다는 것인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인지'를 묻고, 이에 대해 답을 찾는 것이다. 논문의 진행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개인의 삶이 결정되어 있어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내용들을 살펴본다. 둘째, 개인의 삶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이는 내용들을 살펴본다. 셋째, 앞의 두 내용이 서로 어긋나는 바, 이 어긋나는 것들이 병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 어긋난 바들을 회통할 수 있는 것인지, 회통의 근거는 무엇인지 등의 내용들에 대해 한마음 사상 안에서의 해결 가능성을 밝힌다. I seek to answer the venerable question, “In Hanmaum thought by Seon Master Daehaeng Kunsunim, has an individual life been determined, or not? ” in this paper. First, the responses that an individual life has been determined and cannot be chosen in the system of Hanmaum thought. Second, the responses that an individual life has not been determined and can be chosen in the system of Hanmaum thought. Lastly, the foregoing both are contrary to each other, how can these contrary ones be compatible? How will these be reconciled? What is the basis of reconciliation? We conclude this paper with my own attempt to give an appropriate response to the problem of whether an individual life can be chosen in the system of Hanmaum thought by Seon Master Daehaeng Kunsunim.

        • KCI등재

          원효의 비불교적 배경 시론(試論)

          김원명(Kim Won-Myoung) 새한철학회 2009 哲學論叢 Vol.58 No.4

          이 논문의 목표는 원효철학이 불교적 사유 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비불교적인 측면의 '고유함', 그 고유함의 '시원'을 추측적으로 밝혀보고자 하는 것이다. 원효의 실존적 근본경험이 그가 살던 시대의 살아있는 말 가운데 고대로부터 전해져 온 한국의 '문화목록어'라 할 수 있는 '한', 그가 살던 시대의 살아있는 전통 종교인 풍류(風流), 단군신화와 대감굿 그리고 화백(和白)의 지혜전통,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오랜 동안 다양한 경로로 들어와 축적된 점이지대의 문화교류와 관련이 깊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개체발생적 지혜가 고대 한국 중 하나인 신라인의 계통발생적 지혜와 다르지 않은 것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의 불교철학 이해의 바탕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효 철학의 비불교적 측면의 기원을 추측하였다. 에티엔느 세헤(Antoine Étienne Renaud Augustin Serres, 1786-1868)의, '개체발생(Ontogeny)은 계통발생(Phylogeny)을 반복한다'는 주장 이후, 헤켈(Ernst Haeckel, 1834-1919)은 '개별적 유기체의 배아발달은 그 종의 진화의 역사와 동일한 길을 따른다'고 주장했다. C.G.융(Jung, Carl Gustav, 1875-1961)은 이를 의식과 관련하여 연구하였다. 원효의 '근본경험'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생겨나는 모든 역사적이고 영적인 유산들이 축적된 집단무의식'과 관련이 있다. 원효 자신의 경험이 바로 한국인의 경험이며, 동시에 인류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The goal of this thesis is to give a bright to Wonhyo philosophy in the respect of non-Buddhism. To justify the direction of this research, the modern research results to uncover the characteristics of Wonhyo philosophy were cleanup simply. Recent studies tend to reveal a correlation between the non-Buddhist factors and the Buddhist ones in Wonhyo philosophy. His existential fundamental experience was correlated with the ancient Korean collective wisdom which could be revealed the ancient Korean 'Han', poetical religion of ancient Korea, 'Daegamgut' and 'Hwa Baek', the Cultural exchanges and the evidences of the Shilla and the world at that time. According to Antoine Étienne Renaud Augustin Serres(1786-1868), 'ontogeny recapitulates phylogeny.' Ernst Haeckel(1834-1919) proposed that the embryonal development of an individual organism (its ontogeny) followed the same path as the evolutionary history of its species (its phylogeny). According to C. G. Jung(1875-1961)'s theory, Wonhyo's 'individual fundamental experience' in Wonhyo's individual brain system is the self-development of collective unconscious of humanity which has been accumulating historical and spiritual heritage of humanity. Therefore Wonhyo own's experience is Koreans' experience, at the same time, is the experience of mankind.

        • KCI우수등재

          원효 『기신론해동소』에 나타난 원음(圓音)의 현대적 이해에 관한 연구

          김원명(Kim Won-Myoung) 불교학연구회 2008 불교학연구 Vol.19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This study is to try understanding Woneum (圓音), the Round sound by Wonhyo(元曉). To increase our understanding Woneum, this study aims atI interpreting Woneum as various modern Korean terms which represent the Korean speaker's freedom of imagination and opportunity to manifest one's own oneself.<BR>  Woneum is found once in the Awakening of Faith (Mah?y?na?raddhotp?da) translated into Chinese by Param?rtha (499-569) in 550 A.D. Wonhyo had studied Woneum in his Commentary on Awakening of Faith (起信論海東疏). Woneum is not found, One sound is found in the Awakening of Faith translated into Chinese by Siks?nanda (實叉難陀, 652-710), who began his work on the eighth of October, 700 A.D.<BR>  Round sound is interpreted as One sound, Absolute soundless sound and All sound by Wonhyo. Buddha had talked about truth in Round sound, all sentient beings heard the truth in One sound each other according to their abilities to hear that. In the part of Buddha, One sound can be interpreted in On sound in Korean, Absolute soundless sound. In the part of sentient beings, One sound can be interpreted in All sound. In the two parts of Buddha and sentient beings, One sound can be interpreted in Duruhan sound in Korean.<BR>  The English immersion education itself of present political power prohibits the Korean speaker's freedom of imagination and opportunity to manifest one's own oneself. Korean of Korean speakers is a calling of Being, On sound and Duruhan sound in Korean.

        • 현대 문명 위기 극복을 위한 원효와 하이데거의 존재이해

          김원명 ( Kim Won-myoung ) 한국하이데거학회 2007 존재론 연구 Vol.15 No.-

          이 논문은 현대 서양과학기술문명 위기 극복의 형이상학적 대안을 제시한 하이데거의 존재자의 존재 회복을 탐구와 원효의 귀일심지원(歸一心之源)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 둘을 비교 연구한 이유는 현대 한국문명의 위기는 서양과학 기술 문명의 수입과 우리의 전통 상실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양 형이상학이 존재 망각을 하여 오늘날 과학기술 문명의 위험을 초래했다면, 우리는 서구화의 현대적 과제 속에서 서구과학 기술문명의 수입과 동시에 서구의 위기를 함께 수입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자신의 근본 마음을 상실해 위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때문에 하이데거와 원효의 사색의 길을 돌이켜 보고 우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길을 찾고자 한다. 그 길에서 둘의 사유가 고유하면서도 서로 소통 가능한 측면을 밝히고자 하였다. 즉 하이데거는 존재의 감추어진 무(無)의 측면ㆍ침묵의 측면, 즉 스스로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드러나지 않는 측면을 강조해 밝혔다. 그리고 원효는 일심이문(一心二門)에 대한 사색에서 마음의 전일성 가운데 이중성 구조를 잘 드러내고 있다. 원효가 밝히는 일심은 심생멸문(心生滅門)과 심진여문(心眞如門)으로 서로 나누어지면서 이문이 서로 섞이지 않고[不相雜] 하나가 아닌[非一] 이중적 구조와 그 안의 통일성이 있다. 일심 이문은 각각 모두 일체법을 총섭하여 서로 여의지 않으며[不相離] 다르지 않다[非異]. 드러나 작용하는 것은 생멸문의 세계이다. 진여문의 세계는 작용이 없다. 하이데거가 강조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존재의 무적(無的) 측면이다. 존재는 나타나는 측면과 감추는 측면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일심이문과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때문에 일심이문의 이해와 존재의 이해가 통관(通觀)적 지혜를 주며 현대문명의 위기 극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현대문명은 각자의 언어와 역사, 그리고 종교와 철학을 통해 익힌 바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혹은 너무 벗어나 길을 헤매면서, 끄트머리를 붙잡고 달려가 위기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근원을 바라보면서도 지류에서 헤매고, 잎사귀를 잡고서 줄기를 잃으며, 옷깃을 끊어서 소매에 붙이고, 가지를 잘라서 뿌리에 두르려 하고 있다. 혹은 대롱으로 하늘을 다 보려 하거나, 소라로온 바닷물을 다 길으려 한다. 원효는 ‘일심'이라는 근원으로 돌아가 동체지력(同體智力)으로 나와 남이 둘이 아니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동체대비(同體大悲)한 마음을 발해,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마음이 되어 잘 어울려 살라는 삶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우리 위기 극복의 철학적 시원지는 바로 우리 마음 밭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work is to seek after a philosophical idea of overcoming a contemporary civilization crisis by inquiring of Wonhyo & Heidegger's ontological Being understanding. Heidegger criticizes western metaphysical history as an history of Being forgetting. Being which Heidegger want to speak contains Non-being which have been forgotten and excluded yet in western metaphysical tradition. It seems that Being consists of two sides, the revealment and the hide. But the side of the hide has been mainly forgotten during history of western metaphysic. In front of the traditional western philosophy a logical calculative thought has leaded to regard Being as being, and consequently to bring out modern technology & science. The civilization of modern technology & science is on the crisis. The modern Korean civilization has imported a western civilization of modern technology & science with the crisis of that, simultaneously has forgotten one of our major traditional Being understandings, one mind Ilsim especially focused by Wonhyo. Ilsim contains two sides(duplicity), the variable or the invariable; permanence or impermanence; transcendence or immanence; essence or phenomena etc. Hence it can give us a balanced view. Wonhyo & Heidegger's Being understandings have commonly the sight of two sides(duplicity) of Being. It is thought that a philosophical way of overcoming a contemporary civilization crisis is to rethink modernly those ways of a forgotten philosophical thoughts like above.

        • 원효 『열반경종요(涅槃經宗要)』에 나타난 일심(一心)

          김원명 ( Kim Won-myoung ) 한국하이데거학회 2013 존재론 연구 Vol.32 No.-

          본 연구는 원효 『열반경종요』에 나타난 일심의 특징과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주로 기신론관을 통해 원효의 일심 사상을 논구하였다면, 본 연구는 『열반경종요』를 통해 원효의 일심 사상을 논구하였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심(一心)이 바로 불성(佛性)이라는 것이다. 오직 부처만이 체득하는 것이므로 불성이라 하고, 그 특징을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①불성일심은 모든 극단적인 견해를 멀리 여의어[遠離諸邊] 도무지 해당되는 것이 없고[都無所當], 해당되는 것이 없어 해당되지 않는 것도 없다[無所不當]. ②인과의 측면에서 보면, 비인비과(非因非果)도 되고 작인작과(作因作果)도 된다. ③일미(一味)로 적정(寂靜)한 측면과 육도(六道)에 유전(流轉)하는 측면이 모두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약초의 일미(一味)와 가는 곳에 따른 다양한 맛을 말하는 『열반경』의 설명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둘째, 일심(一心)이 바로 열반(涅槃)이라는 것이다. 열반일심의 특징은 세가지로 들 수 있다. ① 열반일심은 모양을 떠나고 성품을 여의었으며[離相離性], ‘공'도 아니요 ‘공 아닌 것'도 아니며[非空非不空], ‘나'도 아니요 ‘나 없음'도 아니[非我非無我]라는 것이다. 이는 모든 극단적인 것을 떠난다는 불성일심과 거의 다르지 않다. ② 일심(一心)이 다심(多心)으로 자재하게 변하여 나툴 수 있다는 것이다. 원효는 『열반경』 인용문을 통해 일심(一心)이 이심(異心) 즉 다심(多心)으로 자재하게 변하고 나툴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③ 일심(一心)으로 돌아오거나 만덕(萬德)을 이루는 것에 다름이 없고[無異] 걸림이 없다[無碍]는 것이다. 원효는 『열반경』에서 여래의 신(身)·식(識)·심(心)·처(處)·택(宅)·상(相)의 있고 없고 간의 걸림없음의 예를 들어 논거로 삼고 있다. 이상의 정리와 같이 『열반경종요』에 나타난 원효의 일심은 ‘불성일심'이라고도 하고, ‘열반일심'이라고도 하며, 원효가 그 특징을 각 세 가지씩 들고 있다. 『열반경종요』의 일심 사상은 이후 기신론관을 통해 형성되는 원효 일심이문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고 보이며, 일심이문 또는 이문일심과는 다른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그 고유한 측면도 드러내고 있다. In previous studies, researchers have studied the philosophy of Wonhyo's One mind in the respect of Commentaries on the Awakening of Faith by Wonhyo.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search the meaning of One mind appeared in the Essence of Mahā-parinirvāna-sutra by Wonhyo. Its content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it's said that One mind is the very Buddhahood which only Buddha gets. There are three characteristics of it, first one is away from all extreme views, nothing to be included, nothing not to be included. Second one is to become the cause and to become the result, is not to become the cause and not to become the result. Third one is that it has two aspects of silence without any movement in One flavor and various shapes in six paths. Proof of this is the figurative story in the Mahā-parinirvāna-sutra that there are original flavor and several flavors of medicinal herbs. The original flavor of medicinal herbs is in mountain where it came from. The several flavors of those depends on where those went out. Second, it's said that One mind is the very nirvāna. There are three characteristics of it, first one is away from shape and nature, is not nothing and not non-nothing, is not I and is not non-I. Second one is said that one Mind can be seen and changed freely in many minds. It can be proved in the figurative story in the Mahā-parinirvāna-sutra. Third one is said that there is no difference and no hindrance between coming back one Mind and getting ten thousands virtues. All extreme views, nothing to be included, nothing not to be included. It can be proved in the figurative story in the Mahā-parinirvāna-sutra that there is no jam between being and non-being of body and consciousness and place and house and appearance in Tathagata. Through the above summary, I argue that One mind in the Essence of Mahāparinirvāna- sutra by Wonhyo, can be Buddhahood One mind and Nirvāna One mind which become bases of philosophy of One mind two gates in commentaries of the awakening of Faith by Wonhyo.

        • 元曉의『涅槃宗要』大義文 · 因緣文 譯註

          김원명(KIM, Won-Myoung),(번역)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문화연구소 2005 인문학연구 Vol.10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역주는 원효의 『열반종요』의 대의문과 인연문을 역주한 것이다. 대의문은 특히 중요한 부분이다. 대의문과 인연문을 통해 원효의 열반 사상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효의 열반 사상의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깊이를 알 수 있다. 원문은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제38권과 동문선(東文選) 제83권에 그 서문이 전해져 온다. 그리고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 1권에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제38권의 원문을 실었다. 번역이 몇 가지 있으나, 한글 번역 모두 열반종요에 인용되는 전거를 제대로 찾아 교감하지 않아 1차 자료로서의 연구재료로서의 가치가 많이 떨어져 이 모두를 비교하며 역주 및 원문 교감을 다시 한 것이다 This Translation is an old asian language character of 'outline the general meaning' and 'the cause that the Buddha said the sūtra' in the Nirva ̄n ̣asu ̄tra Siddha ̄ ntasam ̣graha by Wonhyo into Korean.

        • 고향과 말 -만해와 원효를 중심으로-

          김원명 ( Kim Won-myoung ) 한국하이데거학회 2010 존재론 연구 Vol.24 No.-

          이 글은 첫째, 고향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만해의 오도(悟道)와 원효의 오도의 순간을 통한 고향 체험을 비교하면서 맛보고자 한다. 둘째, 우리가 현재 사람들과 공유하고 사색하는 데 사용해야만 하는 언어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만해의 불교대중화 고민 속에서의 언어에 대한 불교적 사색을 통해 그리고 원효의 불교대중화 고민 속에서의 언어에 대한 불교적 사색을 통해 시도하고자 한다. 불교적 오도는 만해에게는 삶의 근원으로서의 고향 체험과 같은 것이며, 원효에게는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체험은 그들이 중생구제 중생이익을 위한 삶의 여정을 가게 하는 실마리가 되었다고 본다. 그들의 불교대중화 길에서 그들의 오도 전달을 위한 언어 이해가 어떠했는지 살펴보았다. 그들은 모두 『대승기신론』의 언어 이해에 바탕한 진리의 언어와 중생의 언어 사이에 소통가능한 길에 대한 사색을 하고 있다. 가장 쉬운 말로 진리를 중생에게 소통하는 실천으로 만해는 당시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원효는 중생의 말로 그들의 깊은 믿음을 바탕으로 이에 도달케 하고자 하였다. This article has two purposes. First, aims at getting a taste of somewhat through a philosophical comparative speculation about the meaning of home in moment when Manhae & Wonhyo had experienced an enlightenment. Second, tries to speculate philosophically the meaning of language in the process of their difficulties which Manhae & Wonhyo had experienced in the course of expressing the Buddhist enlightenment to the public. Their Buddhist enlightenments were, for Manhae, like home experience as the origin of life and for Wonhyo, to come back to the origin of One mind. Their experiences like this lead to have the journey of their lives to save common people indifferent to them. So I examined how did they understand the language giving them their Buddhist enlightenments in the journey. They all speculate the communicative way between language of truth and one of common people in the base of understanding the principle of ‘(Buddha's) one sound & many sounds(of common people's understanding)' in the Awakening of Faith written by Aśvaghoṣa. Manhae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the translation which is the easiest way to be understood the truth to the ordinary people. Wonhyo taught the easiest words to them to understand the truth based on their deep belief which they would come back to the origin of One mind.

        • KCI등재

          부산 음악비평문화의 최근 흐름-정기간행물 3종에 게재된 음악비평의 정량적 분석-

          김원명 ( Kim Won-myoung ) 부산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 2018 항도부산 Vol.36 No.-

          이 연구는 부산지역 문화예술 분야의 대표적 정기간행물이라 할 수 있는 월간 『예술에의 초대』와 월간 『예술부산』, 그리고 계간 『예술문화비평』에 2011년부터 2017년까지 게재된 비평들을 통해 최근 7년 동안의 지역 음악비평문화의 현황을 파악해 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세 잡지에 실린 비평들 중 음악관련(국악, 실용음악1) 포함) 비평을 전수 조사하여 목록으로 만들고, 그 횟수와 비중·필자·세부장르 등을 정량적으로 분석하였다. 세 잡지에 실린 음악비평 편수는 『예술에의 초대』에 87편, 『예술부산』에 144편, 『예술문화비평』에 65편으로 모두 296편에 달했다. 조사대상 기간이 약7년임을 고려하면 월평균 3.5편의 비평이 이루어진 셈이다. 음악회를 비롯한 전체 음악활동의 규모에 비해 비평 활동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것으로 보인다. 음악비평을 수행한 필자들의 수는 『예술에의 초대』에 13명, 『예술부산』에 37명, 그리고 『예술문화비평』에 21명으로 조사되었다. 두 잡지 이상에 중복 기고한 12명을 감안하면 실제 필자의 수는 57명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단 한 편의 비평만 썼을 뿐이며, 2편 이상 쓴 필자들 중에서도 지속적·적극적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는 필자는 6~7명 정도에 그쳤다. 그럼에도 56명이라는 수치를 통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향후 여건이 좋아진다면 음악비평 문화가 지금보다 활성화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한편 비평 내용의 세부 장르를 살펴보면 두 월간지의 경우 서양 클래식음악 분야에 대부분 혹은 많은 비중을 두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관현악과 오페라 등 비교적 규모가 큰 음악 행사에 집중되었다. 반면 『예술문화비평』의 경우 계간지의 특성상 시평의 비중이 두 월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컸고, 서양 클래식음악과 국악 그리고 실용음악의 비중이 거의 같은 수준으로 게재되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grasp the state of music criticism culture of Busan during the last 7 years through the criticisms contributed on the monthly magazines Invitation to the Arts and The Arts Town Busan, and the quarterly Criticism of Art & Culture. For this purpose I have looked into and cataloged all the music criticisms contributed to the three magazines issued during 2011~2017, and analysed the data quantitatively focusing on frequency, writers, and genres. The number of music criticism was 87 in Invitation to the Arts, 144 in The Arts Town Busan, and 65 in Criticism of Art & Culture respectively. This means monthly average was 3.5. The number of writers was investigated 13 in Invitation to the Arts, 37 in The Arts Town Busan, and 21 in Criticism of Art & Culture respectively. Taking into account the multiple contributors(12) to more than two journals, the actual number of writers was 57. More than half of the writers contributed only one article and there were no more than 6~7 writers who had worked actively and continuously. By this point, we can anticipate a certain more activated music criticism culture if better condition were given henceforth. The genres of the contents of the music criticisms show us some interesting facts. The cases of the two above-mentioned monthly magazines, almost all or a greater parts focus on western classical music events, especially big size concerts including orchestral music or opera. But the quarterly Criticism of Art & Culture show some different aspects. It had contained much more comments on current topics in comparison with the two monthly magazines. Especially this magazine had provided nearly equal weight on western classical music,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popular music.

        • 화쟁의 속틀과 열반의 겉틀, 그리고 우리'말 이해

          김원명 ( Kim Won-myoung ) 한국하이데거학회 2008 존재론 연구 Vol.18 No.-

          이 글은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선행 연구를 검토하였다 둘째, 화쟁의 틀을 열반과의 관계 속에서 밝히며, 기존의 화쟁 연구에서 제시 되지 않은 화쟁의 술어들을 밝혀 제시하였다. 셋째, 화쟁과 열반에 대해 ‘우리"란 우리말로 해석하였다. 논자는 화쟁사상을 대승(大乘) 일심(一心) 열반(涅槃) 무장무애(無障無碍)법계의 속틀과 화쟁이라는 겉틀로 구성된 것으로 보고, 『열반종요』를 중심으로 열반과 화쟁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논는 원효의 불교 이해가 당시 우리말에 바탕한 것이고, 그것을 다시 한자로 투사해 표현한 것이 화쟁이라는 해석학적 가정 하에, ‘우리'란 말로 해석하는 시론(試論)을 전개하였다. 그 요약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화쟁의 속틀인 열반의 특징들은 세 가지다. 첫째, ‘어떤 꼴이 없다. 그래서 어디에도 두루한다.'〔無方無不當〕둘째, ‘특성과 모양을 여의고 온대로 비밀스럽게 감추어져 있다.'〔離性 相如來秘藏〕셋째, ‘넓고 크면서 주 깊고 주 멀며 끝이 없다.'〔廣大甚深深遠無限] 2) 열반의 겉틀인 화쟁의 특징들은 세 가지다. 첫째, ‘서로 어긋나거나 서로 막힘이 없다.'〔不相違不相妨〕둘째, ‘모두 도리가 있다'〔皆有道理], ‘잘 통한다'〔善通], ‘다 얻는다.'〔悉得] 셋째, ‘전체와 부분이 막힘이 없으나 같지도 않다.'〔總別無所障碍不同] 3) 화쟁을 ‘우리' 말로 해석하였다. 우리는 ‘큰 하나'다. ‘작은 하나'로 사는 것은 ‘우리'로 사는 것이 아니다. ‘작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큰 하나'로 사는 것이 ‘우리'로 사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우리'의 이해 속에서 원효가 꼴을 부정하면서, 부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정 속에서 지극한 긍정, 큰 긍정에로 나아가는 것은 바로 ‘우리'에서 ‘나'가 부정되고 ‘큰 나'로 나아가는 구조의 틀에서 이해된 것이라 볼수 있다. 원효가 이해한 ‘우리'는 ‘나 없는 지극한 나요'〔無我之至我〕, ‘나 아닌 큰 나'〔不我之大我〕다. 그래서 불교의 핵심을 이치 없는 지극한 이치요〔無理之 至理], 그러하지 않은 큰 그러함〔不然之大然〕으로 이해하고, 이런 말들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우리'들 속에서는 다양성과 차이가 서로 어긋나지 않으며〔不相違〕, 모두 도리가 있고〔皆有삐, 잘 통하며〔善通], 다 얻을만한 게 있어〔悉得], ‘조화로운 겨름'〔和諍]으로 이해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원효는 ‘우리'들 세계에서 나/남을 모두 살리고 함께 살아(살아남)/사라(사라 짐) 어울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본 것이라 생각한다. The aim of this article is to make a problem of the premise of Hwajeartg(和靜) & the premise of Nirvana clear, to interpret them into understanding of Woori(우리) in Korean. There are three characteristics of Nirvana as the premise of Hwajeang in the Nirvanasutra Siddhantasamgraha by Wonhyo. First, it is no form, thus it is everywhere. Second, it is in existence hidden secretly as it is. Third, it is wide & big & very deep & very far & endless. There are three characteristics of Hwajeang as the premise of Nirvina in the Nirvdmsutra Siddhantasamgraha by Wonhyo. First, it beyonds contrary opinions and each opinions have no hindrance. Second, all opinions have a reasonable principle, and have a good circulation of themselves, are true. Third, whole and part are not blocked and are not same. Woori in Korean can be interpreted into we/our/us, and big one, too. To live small one is not to live Woori. To live small one and simultaneously to live big one is to live Woori. In this understanding of Woori in Korean, Wonhyo says no form, he finds the great affirmation in no form. Woori in Korean is going to the ‘big I' from the negation of ‘I',but there is ‘I' left. I infer that Wonhyo's understanding of Nirvana and Hwajeang was correlated with Woori in Korean.

        • KCI등재

          원효의 화쟁 글쓰기

          김원명(Kim Won-Myoung) 새한철학회 2008 哲學論叢 Vol.2 No.52

          인문학의 위기 시대에 그 위기 극복의 방법은 살아있는 인문학을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인문학은 우리의 현실 삶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반성하고 주위를 돌아보며 느끼고 생각하는 데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우리에게 사무친 우리말을 쓰고 우리글을 쓰는 것이다. 영어 몰입교육은 인문학을 더욱 위기로 몰아갈 것이다. 뜻을 드러내고 뜻을 새롭게 하는 글을쓰라는 이규보의 주의론(主意論)이나 신의론(新意論), 뜻을 전달하는 글을 쓰라는 홍석주의 달의론(達意論)은 당시 한문몰입교육시대의 과거시험 문체 글쓰기나 모방적 글쓰기 또 실용성 현실성이 없는 무실(無實)한 글쓰기에 대한 반성이다. 사람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다양한 글쓰기로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고 어울려야 한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저술뿐만 아니라 대화, 편지, 기도문, 시, 이야기 등을 통해 그들의 철학함을 보여주었듯이 다양한 글쓰기를 장려해야 한다. 최근에 발표되고 있는 다양한 글쓰기 모델들은 잡종적 글쓰기, 늪의 글쓰기, 편집술 글쓰기, 사무침 글쓰기 등이다. 본 논문에서는 원효의 화쟁 글쓰기가 제시한다. 화(和)의 정신을 베다에서 그리고 불교내적으로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원효 시대의 정치·종교·사회전통 상황 모두가 화쟁을 창안하는 근본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그 중에서 신라의 화백회의의 신성성과 만장일치제등은 고조선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전통으로 원효에게 있어 내재적이며 주체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화백회의에서는 모든 의견들이 다 마땅함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신성한 만장일치 의견을 도출해낸다. 이것은 원효가 열고 닫음을 자재하게 하며[開合自在]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은[不一不異] 화쟁 글쓰기를 하며 도출하는 것과 유사하다. 화쟁 글쓰기는 '회통(會通) 글쓰기'와 '화회(和會) 글쓰기'와 불가분리다. 회통과 화회는 소통을 목적으로 하지만, 비판하거나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 뜻을 이해하면 그 글들이 서로 통한다[會通]. 조화를 이루며 그 뜻을 이해한다[和會]. 우리는 '비판'만 하거나 '따지기'만 하는 논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설득당하는 걸 기분 나빠한다. 우리는 세계를 바라볼 때, "본디 모든 것이 '우리'로 어울려 있다"고 본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은 물론이고 사람과 불, 물, 바람, 풀, 나무, 벌레, 동물 등이 본디부터 '우리'로 어울려 있다고 본다." 더불어 어울리기 좋아하는 이들이 따지고 비판하고 설득하는 게 잘 맞지 않는건 당연하다. 현대의 다원주의 지구촌 사회에서 필요한 평화로운 이해와 공존의 시대에 적합한 조화와 이해와 소통의 한국적인 '다 살리는' 인문학적 지구촌 글쓰기는 '화쟁 글쓰기'가 될 수있다. 여기서 '다-살림 글쓰기'는 원효의 '화쟁 글쓰기'를 현대적으로 설명하는 미래 글쓰기 대안을 제시하는 오래된 새로운 용어다. This essay makes an introduction of a few classical criticisms & theories about Chinese writing in Goryeo dynasty Joseon dynasty. Classical criticisms & theories about Chinese writing are a theory of Juei(주의론) of Kyubo Yi(이규보) in Goryeo dynasty, a theory of Daleui(달의론) of Seokju Hong(홍석주) in Joseon dynasty. And what will follow is that this essay makes an introduction of many criticisms & theories about Korean writing today. Criticisms & theories about Korean writing today are a swamp writing(늪의 글쓰기), an editing writing(편집술 글쓰기), a writing of touching the heart & sinking into the mind(사무침 글쓰기) etc.. The comparison between criticism theories about writing of two times, Chinese writing time and Korean writing time, gives us lessons which teach us the good writing method and spirit that writes sincerely and really a writing sprung up from sincere & real experiences of one's life. This essay makes a new and old proposal which is a Wonhyo's Hwajaeng writing(화쟁글쓰기) that do away with contradict opinions and lead a higher wider deeper opinion. In Hwajaeng writing, all writers can be approved a good writer in some sense. All writers can be jumped up highly widely deeply because they are all there-being sprung up from there at that time every moment. This essay makes a new proposal as my interpretation which is a Dasalim writing(다 살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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