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平田辺尚雄の朝鮮伎楽調査がもたらしたもの

        山本華子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2009 翰林日本學 Vol.0 No.14

        일본의 음악학자 다나베 히사오(田邊尙雄,1883-1984)는 1921년에 존속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던 이왕가(李王家)의 아악(雅樂)을 현지조사하고 그 가치를 주장하였다. 결과적으로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가 보존되었고 현재의 국립국악원으로 궁중음악의 계보가 이어지게 되었다. 그의 공적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인데 모두 조사 그 자체에 한정하여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현재의 시점에서 조사를 포함한 다나베의 행동 전반에 관해 살펴보고 그의 조사가 초래한 것을 폭 넓게 검토하였다. 그 중에서도 1970년 이후 그가 수 차례에 걸쳐 행해온 한국으로의 자료 기증(반환)은 근대 한국의 궁중음악연구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 KCI등재

        한국음악의 세계화 전략

        야마모토 하나코(Yamamoto Hanako)(山本華子) 국립국악원 2009 국악원논문집 Vol.19 No.-

        일본에서는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여러 가지 형태로 한국음악이 소개되어 왔다. 더욱이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이한 2005년은 한·일 우정의 해 2005 로 지정되어 전통음악 세계에서는 민간차원의 공연이 증가하면서 한일 교류연주회가 활발히 열리게 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2005년 이래 일본에서 한국음악이 어떠한 형태로 소개되어 왔는가를 개관하고, 그 현황을 파악한 후에 향후의 전략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한국음악에 바로 접할 수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공연과 강습회·워크숍을 꼽을 수 있다. 수도권을 대상으로 공연정보를 수집해서 분석한 결과, 2005년 1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이루어진 한국음악 공연 중 타악기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현악기가 이어진다. 결국 단독 공연이 되면 사물놀이나 가야금 등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 연주자와의 교류 무대로는, 2005년의 한일 우정의 해에 이루어진 교류공연이 가장 많았다. 연주가의 분야로서는 한국인·재일 한국인·일본인·기타 민족이 포함된다. 횟수가 많은 순으로 열거하면 한국인, 한국인과 일본인 혼합, 재일 한국인, 한국인과 일본인과 기타 민족, 한국인과 재일 한국인, 한국인과 일본인과 재일 한국인, 재일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일본에서는 한국음악의 연주에 재일 한국인이 여러 형태로 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도쿄에서 강습회·워크숍이 행해지는 3개소를 개관한 결과 거론된 분야는 관악기(피리·단소), 현악기(가야금·해금), 타악기(장구·꽹과리), 소리(민요·판소리), 악기 수리 등으로 밝혀졌다. 주일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은 국립국악원과 연계하여 본국에서 강사를 초빙하여 초심자를 대상으로 한 강좌를 개최하며, 재일본 한국YMCA는 초심자와 경험자 및 장기간 참가자들이 대상이었으며, 강사는 한국에서 초청하고 있다. BBD 한국전통악기 전문점은 워크숍 이후의 대응을 고려하여, 재일 연주가를 강사로 초빙하고 있다. 도쿄에서 계속적으로 한국음악을 배울 수 있는 기관으로 한국YMCA를 들 수 있겠다. 한국YMCA의 한국음악 강습이 거둔 효과로는 재일 한국인들의 정체성 확립과 지도자 양성을 들 수 있다. 수강생 중에는 프로를 목표로 하는 인재가 나타나 현재 장구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는 이도 있다. 그리고 일본에 한국음악 보급에 이바지한 가야금연주자인 지성자의 역할 또한 컸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해서 한국음악의 세계화를 위하여 5가지를 제안하였다. Since the nomalization of diplomatic relation between Korea and Japan on 1965, many Korean music has been introduced in Japan. Moreover, the 40th anniversary of the normalization of diplomatic relation, as in year 2005, was announced as the fellowship year between the two countries. Performaces of Traditional music of two countries increased between the private organizations as well as musical interchanges. In this paper, I would like to examine the musical exchanges between two countries and how Korean Traditional Music introduced in Japan since year 2005. In conclusion, 5 different suggestions on the possible strategies on promoting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its globalization will be provided at the end of the paper.

      • KCI등재
      • KCI등재후보

        1910년대 조선에서의 일본 전통음악 사정 2

        이지선(LEE, Jisun),山本華子(YAMAMOTO, Hanako) 한국국악교육학회 2013 국악교육 Vol.36 No.36

        1917년 후반기부터 1919년까지의 『경성일보』기사에서 일본 전통음악에 관한 내용을 살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기사 중에서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은 노가쿠 관련 기사이다. 경성에서 노가쿠는 공연과 교습 모두 성행했고, 사회 인사의 사교 모임에서도 종종 연행되었으며, 이왕가의 왕실모임에서도 공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평양 기생에게 노가쿠를 교습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샤미센음악 중 기다유부시는 음악회 형태뿐 아니라, 인형극 형태의 공연도 이루어졌다. 경성에는 나가우타의 동호회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게이기(藝妓)도 포함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전 시기에 비해 샤쿠하치에 관한 기사는 현저하게 적어, 샤쿠하치에 관한 사회적인 관심은 이전보다 줄어든 것으로 생각된다. 비와에 관해서는 사쓰마비와와 지쿠젠비와의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남성 중심의 일본음악계에서 젊은 여성 비와연주자가 활약하고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 경성신사에서는 제례에서 ‘雅樂’이 연주되었다. 이것은 조선의 ‘아악’이 아니라 일본의 ‘가가쿠’를 지칭하는 것으로, 경성신사에는 가가쿠를 담당하는 악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월 22일 고종이 사망함에 따라, 조선총독부령에 의해서 가무음곡이 정지되었다. 장례의 각 절차에서 보이는 음악의 명칭은 ‘雅樂’, ‘和樂’, ‘道樂’이다. 이중 ‘雅樂’과 ‘和樂’은 일본음악으로, 연주는 내지에서 파견된 궁내청 악사들과 조선의 신사에 소속된 일본 악사들에 의해서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장례가 일본식으로 치러짐에 따라 진위부작(陳而不作)하는 조선의 장례와는 달리, 장례의 여러 의식에 음악이, 그것도 일본의 음악이 연주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하겠다. In this study, we have examined the articles in The Gyeongseong Ilbo from the late 1917 to 1919, in relation to the Japanese traditional music. Among the articles, it was the Nogaku-related content that appeared the most frequently. The reason behind its popularity lies in a common phenomenon that people were regarded cultured to learn Nogaku, considering that some public figures were included in the Nogaku group in Gyeongseong, in addition to the convenience of learning the songs and dance without musical instruments. For Shamisen music, articles on Gidayubushi and Nagauta can be found. Gidayubushi Shamisen is presumed to have been begun training in the beginning of 1910s. There are the least articles on Shakuhachi. For Biwa, articles on Satsumabiwa and Chikuzenbiwa can be found. Biwa was getting more and more popular in Joseon, and there was a big demand for Chikuzenbiwa in particular. The imperial obsequies of Emperor Gojong from March 1st to 7th were not carried out accordingly to the traditional custom of Joseon but to the traditional custom of the Japanese imperial family, with an exception of the bier procession. In each ceremony of the funeral rites, Gagaku and Wagaku were played by Japanese musicians, while the western music that was usually played in the Japanese funerals, was played by a military band and the Western music band of Yiwangjik during the bier procession. As the funeral rites were carried out in the Japanese style unlike the Joseon’s style in which the musical instruments were not for playing but for arranging, it happened that music, what’s worse, the Japanese music was played in the imperial obsequies of Emperor Gojong.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