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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문학) : 연담 이세인의 「독이(讀易)」시 고

        이구의 ( Ku Eui Lee ) 한국사상문화학회 2005 韓國思想과 文化 Vol.31 No.-

        이 논문은 조선 전기 학자이면서 경세가(經世家)인 연담(蓮潭) 이세인(李世仁 1452-1516)의 「주역을 읽고 여섯 수 절구시를 지음(讀易六絶)」에 대해서 고찰한 것이다. 연담이 「독역(讀易)」 시를 지은 이유는, ① 이 『주역』 이론을 후생들에 가르치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② 『주역』의 이치를 알면 마음속이 탁 트이기 때문이다. ③ 위학(爲學)의 방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연담은 『주역』 상수리(象數理) 가운데 이(理)를 바탕으로 하였다. 그는 『주역』의 도통 계보를 복희(伏羲), 문왕(文王), 주공(周公), 공자(孔子), 정자(程子: 程이), 주자(朱子: 朱熹)로 잡고 있다. 이는 고려 말부터 유행한 신유학자, 즉 성리학자들의 견해와 일치한다. 그는 정자(程子)의 『역전(易傳)』와 주자의 『주역본의(周易本義)』의 내용을 많이 수용했다. 「독역」시의 구성면을 보면, ① 『주역』 도통의 계보를 잡고 있다. ② 육합(六合)의 원리를 담고 있다. ③ 은근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연담의 성품과 일치한다. ④ 여섯 수의 시가 독립적으로 의미를 지닌다. 이들 시 전체를 두고 보면 서로 인과관계(因果關係)를 지닌다. 내용면에서 보면, ① 『주역』을 공부하는 까닭 ② 『주역』공부를 시작과 그에 대한 보람. ③ 『주역』을 공부를 통한 공자(孔子)와의 서로 교감. ④ 『주역』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김. ⑤ 진리의 보고(寶庫)인 『주역』 ⑥ 자신의 위상과 『주역』에 몰두하는 이유에 대해서 읊조리고 있다. 이 「독역」시의 문학사적 의의는, ① 『주역』의 도통 계보를 세운 시로는 전무후무하다. ② 『주역』이 상수학(象數學)이 아니라, 이학(理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③ 연담이 송대(宋代)부터 싹트기 시작한 신유학의 계승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④ 조선 시대에 유행할 이학(理學)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⑤ 문학 속에 철학이 있어, 그의 시가 당시풍(唐詩風)이 아니라 송시풍(宋詩風)이라는 것을 입증하였다. This thesis is an inquiry into Making Six Stanzas after reading the Book of Changes by Lee Se-in(李世仁 1452∽1516), a scholar and a statesman in former period of Chosun. He writes these poems for some reasons; he likes to teach younger scholars the theory of the Book of Changes, and knowing the principle of the Book of Changes, he can feel his mind open, and he can know the methodology of study. His thinking is based on the Ree(理) among Sangsuree(象數理). He set the taoistic lineage of the Book of Changes into Bokhui(伏義), Munwang(文王), Jugong(周公), Gongja(孔子), Jeongja(程子:程이), Juja(朱子:朱熹). This setting corresponds to the opinion of Neoconfucians, that is that of Seongreehakja(性理學子) which is popular from at the end of the Koryeo dynasty. He mainly accepts the contents of Yeokjeon(易傳) by Jeongja(程子) and Juyeokbonui(周易本義) by Juja(朱子:朱熹). In the construction of Making Six Stanzas after reading the Book of Changes, some important points are found out. First, the taoistic lineage of the Book of Change is set. Second, the principle of Yukhap(六合) is contained. Third, his poetic style, seven-line stanzas which have a long breathing, corresponds to his disposition which pushes his point courteously. Fourth, the six poems have an independent meaning each, and also, in general, they have a causal relation. Viewing from the content, he recites some points; a beginning of study of the Book of Changes and its gains, a communication with Gongja(孔子) through the study of it, regarding the Book of Change as a mind`s home, a thesaurus which is the Book of Changes, his status and the reason he is immersed in the Book of Changes. The significances of the work in literary history should be pointed out. First, it is the only work that set the taoistic lineage. Second, the Book of Changes is not Sangsuhak(象數學) but Ihak(理學). Third, he is a successor to the Neoconfucianism which begins to bud from the Sung period. Fourth, he takes an pioneer role of Ihak(理學) which will be popular in the Chosun Dynasty. Fifth, judging from his poetic philosophy, his poem is not a style of Tang poetry but that of Sung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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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崔溥의 《漂海錄》에 나타난 敍事樣相과 文明意識

        李九義(Lee, ku-eui) 동아인문학회 2019 동아인문학 Vol.47 No.-

        필자는 금남(錦南) 최부(崔溥)가 지은 《표해록》에 나타난 서사양상(敍事樣相)과 문명의식(文明意識)을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본고를 집필하였다. 《표해록》의 서사 양상은, 첫째 일기체(日記體)의 전개방식이다. 곧 보고문의 양식이다. 둘째 이 《표해록》의 서술 방식 가운데 또 하나의 특징은 시간적 순차에 따른 사건 중심의 서술 방식이다. 셋째 이 《표해록》은 간접 대화방식을 택하였다. 넷째 간결체의 결구방식(結句方式)이다. 《표해록》에 나타난 문명의식(文明意識)은, 첫째 아체타용(我體他用)의 동인의식(東人意識)이다. 금남은 주체의식을 가지고 중국 사람과 교류하였다. 둘째 학자(學者)로서의 선민의식(選民意識)이다. 그가 선민의식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그의 학문이 해박한 데 있었다. 셋째 관리(官吏)로서 정명의식(正名意識)이다. 그가 관리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려고 노력하였다. 《표해록》이 가지는 문학・역사・철학・지리・경제・사회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금남(錦南)의 《표해록》은 우리나라 표류기(漂流記)의 처음이라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둘째 금남의 《표해록》을 통하여 나라와 나라 사이 문명의 소통을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이 《표해록》은 이보다 180년 뒤에 나온 하멜의 《표류기》에 나타나는 정신과 행동 면에서 대조적이다. 넷째 이를 통하여 당대의 학자와 관리들의 위계질서를 알 수 있다. 다섯째 최부(崔溥)라는 한 사람의 행적을 통하여 당대 학자 또는 관리들의 관심사(關心事)와 지향점(志向點)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다. This thesis examines how the A Record of Drifting across the Sea, which is written by GeumNam(錦南) ChoiBu"s(崔溥: 1454~1504) is linked with his life. The characteristics of this work can be summarized into several features. The characteristics of narrative styles of this work are, firstly it’s discovery has a diary style. Secondly, it’s built up centering around the occurrence. Thirdly, it has a style of indirect communication. Lastly, it is written in a concise and clear language. The realms of civilians of this work’s asserted or involved have several features. Those are; Firstly, it is the national identity which named a consciousness of the East People. Secondly, the culture back then in the Chosen Dynasty was cultivated by Confucian school of thoughts, which influenced the civilians in that era including Choi-Bu. He speculated his thesis based on extensive knowledge on this work. Finally, his moral justifications which contributed to shape his consciousness. The work of ChoiBu has noticeable features with regards to literal, historical, philosophical, economic and social perspectives. Firstly, his work was the first piece of A Record of drifting across the sea in the Korean peninsula. Secondly, with this work, it allows us to grasp cultural differences between China and Chosen properly. Thirdly, this work has several distinguishing features compared to Hamel’s view on his work. Finally, through this article, it is able to acknowledge the concerns or interests of scholars in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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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락당(眞樂堂) 김취성(金就成)의 시에 나타난 지향의식(志向意識)

        이구의 ( Lee Ku-eui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7 韓國思想과 文化 Vol.87 No.-

        이 논문은 조선 중기에 살다간 진락당(眞樂堂) 김취성(金就成: 1492∼1550)의 시에 나타난 지향의식을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가 생존하던 시대에는 우리나라에 성리학이 무르익어 갈 때였다. 그가 일선학맥(一善學脈)의 가운데 심학(心學)을 계승하였다. 그가 벼슬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넓었으며, 학문이 깊고, 욕심이 없어 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두루 지녔다. . 그가 남긴 시는 모두 철리적(哲理的)인 것이다. 그가 시에서 감정보다는 이성을 중시하였다. 순수 문학 면에서 보면 그의 시가 다소 부족한 점이 있다. 그가 남긴 시를 통하여 그가 지향의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진락당이라는 당호를 통하여 그가 참 즐거움의 이치를 추구하였다. 그가 추구한 추구한 진락(眞樂)의 의미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둘째 맑은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욕심 없이 맑은 마음을 굳게 지키고자 하였다. 자신의 마음속의 때, 곧 욕심을 버려 맹자가 말하였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추구하였다. 셋째 그가 사사로운 욕심을 막아 천리를 보존하고 자신의 겸손(謙遜)을 통하여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추구하였다. 넷째 그가 정명(正名)을 바탕으로 하여 그가 실천 행동과 학문에 있어서 체용겸비(體用兼備)를 지향하였다. 지금까지 진락당 김취성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다. 본고를 통하여 그의 삶과 문학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가 무엇을 지향하였는가를 알 수 있었다. 또 그가 태어나 자란 일선(一善: 善山)의 학풍이 어떠하였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작품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지만, 우리 한문학사에 있어서 그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이 점이 한문학사에 있어 그의 위상(位相)이다. This article focused on discussing JinRakDang Kim Chuiseong`s life and the inclination of consciousness which appeared in his poems. He lived on middle era of Choseon Dynasty. He had leaved 6 pieces poems. In his living days the philosophy which based on the principle of human nature was become popular. He had succeeded to the vein of prosecution of studies of Seonsan district. It`s called the principle of practical or popularized ethics. The works which he leaved were the philosophical principles. The consciousness of inclination in his poems was appeared 4 aspects. Firstly, He pursued the principle of real pleasure. The name of his house was the House of real delight. Secondly, through the clean or bright mirror, he protected his mind from avariciousness. Thirdly, with blocking up his own covetousness, he pursued the inseparability of knowledge and practice. Fourthly, he also pursued combine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r a principle and its application which based on justification of his moral duty. He did not leave many piece of poems but he had succeeded to the vein of prosecution of studies of Seonsan district. Further more, he had become popular the principle of controling mind. At this point he should not be disregar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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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淸越樓 吟詠詩에 나타난 자아와 세계의 만남

        이구의(Ku-eui Lee) 동아인문학회 2020 동아인문학 Vol.52 No.-

        본고는 상주시(尙州市) 모동면(牟東面) 옥동서원(玉洞書院) 안에 있는 청월루 음영시에 대하여 고찰한 논문이다. 옥동서원이라는 이름이 있기 전 백화서원을 제재로 하여 시를 지은 분은 유촌(柳村) 황여헌(黃汝獻)과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이다. 유촌의 〈백화서원(白華書院)〉시는 백화서원과 서원 유생들에게 바라는 큰 기대감을 이 시 안에 함축하고 있다. 대산(大山)은 두 수의 시에서 그 자신의 정감(情感)을 묘사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시에서 학문에 관한 자신의 견해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신이 한결 같은 마음을 가진 선비라는 것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는 〈청월루(淸越樓)〉 시를 통하여 청월루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인격과 학문이 완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청월(淸越)을 금성옥진(金聲玉振)에 비유하여 청월루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가 이〈청월루〉시를 통하여 청월루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인격과 학문이 완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백하(白下) 황반로(黃磻老) 역시 청월루에서 그냥 시를 읊은 것이 아니라 청월루에 의미를 부여하였고, 또 그 의미에 맞는 인재가 배출되기를 바라고 있다. 장원(藏園) 황원선(黃源善)도 입재나 백하와 같이 단순히 그의 눈에 보이는 경물(景物)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경물을 통하여 자아의 희망을 읊고 있다. 녹차(綠此) 황오(黃五)의 〈청월루〉시는 시려(是廬) 황난선(黃蘭善)과 수창한 작품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시가 곧 대화였다. 시려와 녹차가 묘사한 청월루는 창작의 공간이면서 접빈(接賓)의 공간이었다. 시려 황난선은 녹차 황오와 수창한 시를 비롯하여 청월루를 제재로 하여 17제 25수의 시를 지었다. 그가 청월루를 제재로 하여 지은 시는 청월루가 창작의 공간, 접빈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이는 강학(講學)할 때는 시를 짓지 않은 탓이다. 그에게 청월루는 충전의 공간이 되었다. 청월루 시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청월루 뿐만 아니라 옥동서원의 여러 건축물을 제재로 하여 창작을 했던 시인들은 당대에 학문과 덕행으로 유명한 선비였다. 둘째 이 시인들을 통하여 당시 학맥과 혼인 관계를 알 수 있다. 셋째 이 청월루 시를 통하여 장수황씨 후손들의 선조에 대한 추앙(推仰)과 일가에 대한 애정을 알 수 있다. 넷째 이 청월루 시를 통하여 당대의 시풍(詩風)의 단면을 알 수 있다. 다섯째 이 청월루 시를 통하여 그들의 현실인식과 시인들의 지향의식을 알 수 있다. 여섯째 청월루 음영 시를 통하여 이를 제재로 하여 창작을 했던 시인들의 학문 경향을 알 수 있다. This paper seeks to analyse poems about, which is located inside of Okdong School, Sangju city. Before dive into interpreting poems, the place which will be mentioned in this whole paper was called as BaekHwa School before its name changed to Okdong school. Several poets such as Yuchon YeoHeon Hwang, Daesan SangJung Lee were inspired to write poems about Baek Hwa school. Even if all those authors wrote poems about it, all of them have different writing styles as well as convey different messages in their poems. In this article, several authors who wrote poems about Baek Hwa school will be discussed below. To begin with, Yuchon’s poem implies that he was anticipating all pupils in the school to do well and the place to be propereous. Second, Daesan’s poem depicts affection towards the school. He did not necessarily provide his opinion on literature. However, his poem subtly shows that he was a steady scholar. Third, JeongJongro’s poem conveys the message that he wished for pupils who studied at Cheongwolru to improve both personally and academically. He gave considerable meaning to Cheongwolru by metaphorically calling it as the sound of the metal and jade. Also, BanRo Hwang was not just chanting a poem in Cheongwolru, but he had put the meaning in the place. Furthermore, he hoped for new elites to appear in there. Alike all the poems cited above, WonSeon Hwang sought to put considerable meanings in the place in his poems. He did not stop reflecting his consciousness by only chanting the poem in Chengwolru, but he showed his consciousness by chanting a poem. On the other hand, Oh Hwang and Nansun Hwang exchanged poems. For them, the poem was used as a conversational method. Throughout an analysis of inherent meanings in poems about Cheongwolru, literature trend in that period can be identified as following: First, all the authors who wrote the poems about Cheongwolru and other architectures inside of Okdong School were infamous scholars for their literature and moral behaviors. Second, it is possible to notice the literal style and marital status at that time throughout the authors analysed above. Third, poems about Cheongwolru portray that not only descendants of the family of Jangsu Hwang worshipped their ancestors, but also showed their affection towards them. Fourth, the literature style of that time can be easily identifiable. Fifth, poets’ sense of reality and their world view are identifiable. Sixth, literature trend of poets who wrote poems after getting inspiration from Cheongwolru can be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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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崔溥의 漂海錄과 하멜의 漂流記에 나타난 東西洋의 交涉

        李九義(Lee, ku-eui) 동아인문학회 2019 동아인문학 Vol.49 No.-

        본고는 최부의 ≪표해록≫과 하멜의 ≪표류기≫를 통하여 조선시대에 동서양의 문화가 어떻게 교섭되었는지를 고찰하려는 목적에서 추진되었다. 이 두 작품은 단순히 여정(旅程)만을 기록한 글이 아니다. 이 두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15,17세기 동서양의 문화가 어떻게 소통되었는가를 보다 쉽게 알 수 있다. 최부의 ≪표해록≫과 하멜의 ≪표류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공통점으로는 첫째 열린 공간으로서의 바다이다. 육지가 닫힌 공간이라면 바다는 열린 공간이다. 이 바다가 사건의 발생의 시작이 된다. 최부(崔溥)나 하멜이 표류하게 된 것은 열린 공간에서 풍랑을 만났다. 이 열린 공간은 자아에게 새로운 경험 세계를 인도하고 있다. 둘째 자국 또는 자민족 중심의 실리주의 추구이다. 금남이나 하멜이 표류할 당시에 그들의 신분이 서로 달랐다. 이에 따라 그들이 표류기를 서사하는 방법도 서로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자국 또는 자민족 중심의 실리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셋째 하멜 역시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지 않았다. 금남과 하멜 두 사람은 그들의 작품을 통하여 진리의 다양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유일(唯一) 보편론(普遍論)을 극복하고 진리의 다양성(多樣性)과 복수성(複數性)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하였다. 이들이 새로운 문명 세계에 접근하였다. 넷째 금남(錦南)이 인문학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의 경험 세계를 서술하였다면, 하멜은 사회학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의 경험 세계를 기술하였다. 금남(錦南)은 당시 관리였고 하멜은 회사원이었다. 당시에는 금남이 하멜보다 더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와는 반대이다. 금남이 흔적이 정지된 상태라면 하멜의 흔적은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현재로는 금남보다 하멜의 흔적이 훨씬 많이 남아 있다. 앞으로는 금남 자취도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에 설치하여 문명의 소통의 자취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를 문화관광화 한다면 서로의 실리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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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우곡(愚谷) 송량(宋亮)의 부(賦)에 나타난 정신세계(精神世界) ― 그의 「의蘭」부(賦)를 중심으로 ―

        이구의 ( Ku Eui Lee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5 韓國思想과 文化 Vol.79 No.-

        본고는 우곡(愚谷) 송량(宋亮: 1534∼ 1618)의 「의란(의蘭)」부에 나타난 정신세계를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우곡(愚谷)이 이 부를 지은 목적은 문학의 효용론에 입각하였다. 이 부(賦)는 다섯 가지의 형식적 특징이 있다. 첫째 이 부는 크게 다섯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 다섯 단락을 크게 묶으면 세 단락이 된다. 둘째 이 부는 한 구(句)가 여섯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부(賦)는 당나라 이후의 율부(律賦)의 형식이 아니라, 고부(古賦)의 형식이다. 셋째 의 부는 의도적으로 『초사(楚辭)』의 형식을 모방하고 있다. 이는 그가 『초사』도 공부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넷째 그가 먼저 공부한 것은 『초사집주』가 아니라 『고문진보』일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뒤 그의 학문이 깊어지자 주자의 『초사집주』를 공부하였다. 다섯째 용사를 많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용사한 전고(典故)는 주로 한(漢)나라 이전의 고사이다. 그가 요순삼대(堯舜三代)나 공맹(孔孟)시대를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의란(의蘭)」부를 통하여 드러내고자 한 우곡의 지향의식은 첫째 우환의 식을 통한 왕도(王道)의 지향이다. 내우외환의 위기 속에서 우곡 자신의 가정이 왜군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 점이 절실하였다. 둘째도(道)와 문(文)을 겸한 경세제민의 시행이다. 이 점에서 우곡의 문학관이 도학파의 문학관과 통하는 면이 있다. 셋째 현실에 대하여 강한 참여의식이 있다. 그가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였기에 이 점이 더욱 절실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넷째 원시반종(原始反終)의 도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가 현실에 참여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도(道)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다섯째 그가 가장 바란 것은 왕도 정치를 바탕으로 한 도덕적 이상주의였다. 공자와 굴원(屈原)의 처지를 내세워 자신의 삶에 결부시켰다. This script was written for aim to observe intended consciousness on Woogok Songryang``s descriptive prose interspersed with verse of pretty orchid. He wrote for aim to this poetical prose. It’s based on the usefulness of literature. This work contained five formal characteristic mark. Firstly, this work divided into five parts. Secondly, this work is organized six letter at one phrase. But it’s not a poetical prose of meter but the old style’s poetical prose. Thirdly, this work was imitated 『Chosa(楚辭)』. Namely, it’s proved that he have been studied this book. Fourthly, first of all, his study was not 『Chosa』 but 『Gomoonjinbo(古文眞寶)』. Fifthly, he quoted from using of an ancient event. Because he pursued the principle of royalty. The consciousness of inclination of Woogok’s 「The poetical prose of pretty orchid」was the principle of royalty through the consciousness of worries. Secondly, he pursued the application of national administration and relief. At this point his view of literature leaded to the confucian’s ethics. Thirdly, At this work, he described the consciousness of actual world or society. The reason of this is who had not been go forth into a government position. Fourthly, His consciousness of inclination was recovery of the peaceful reign. Fifthly, the goal of his consciousness of inclination was the moralistic idealism. His life was definitely not smooth. He would lived his youth with the way he intended, but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壬辰倭亂) his life was filled with perennial of misfortune. Same time when japan swept away in korea his family bankrupted. He was intimate with many erudite people. He succeeded humanism based on the theory of the unite of the Man and the Heaven. He was autonomy and voluntary moreover his spirit was general and widespread. He tried to live together with people his mind was neither intolerant nor complicated. He wanted to hold his ideal not for himself but to the worlds. He admired peaceful era the King Yo and Soon(堯舜). It was not only his appetite but also the tendency of that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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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계(木溪) 강혼(姜渾)의 시에 나타난 정신세계(精神世界)

        이구의 ( Lee Ku-eui ) 한국시가문화학회(구 한국고시가문화학회) 2018 한국시가문화연구 Vol.0 No.41

        이 논문은 조선 전기에서 중기에 걸쳐 살다간 목계(木溪) 강혼(姜渾: 1464∼1519)의 시에 나타난 정신세계를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집필되었다. 목계가 전형적인 영남 사림파의 학맥을 잇고 있다. 시풍(詩風) 면에서 보면 목계의 시는 여느 사림파 또는 도학파의 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첫째 목계의 시는 문학적이며 정감적이다. 둘째 이미지 면에서 보면 어둡거나 침울한 이미지가 많지 않다. 셋째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시는 자연경관에 대하여 읊은 시가 많다. 넷째 그가 주장한 문학관과 실제 작시(作詩)는 이원적(二元的)이다. 다섯째 그의 시를 이루고 있는 시어가 비교적 평이(平易)하다. 시에 나타난 정신은, 첫째 사실적(寫實的) 묘사와 낭만정신이다. 둘째 그가 구사한 시어는 그 분위기가 대부분 밝다. 셋째 그의 시에는 그의 온유(溫柔)한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 넷째 긍정적 세계관과 초월의 정신이다. 그가 세상의 풍파를 겪고 난 뒤 지은 시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초월의 정신이 나타난다. 목계 강혼의 시와 시풍을 통하여 우리가 조선 전기·중기의 학파를 사림파와 훈구파, 도학파와 사장파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his article aims to discover mentality of MokGye KangHon, who lived in the middle of Chosen Dynasty. This article will summarize and discuss his writing style and his mentality. MokGye inherited thoughts of typical YeungNam scholars. His writing style differs from any other scholars. Those differences are mentioned in followings. Firstly, his poems are metaphorical and humane rather than philosophical or natural. Secondly, it is hard to see sad or depressing words in his poems. Thirdly, when looking at the poems that he wrote is based on nature poetry. Lastly, he used plain language in his work. He did not use any complicated words when he wrote poems. The mentality of MokGye can be seen his poems in several ways. firstly, it is very realistic and romantic. Subjects in his poems are depicted directly and realistically. Throughout his style, it is possible to feel that he was in favor of romanticism. Secondly, the words he used in the poems are bright and delightful. This can be interpreted that he encompassed his way of thinking because he had gone through difficulties in life. This contributed to him to realize about the world. His poems were written after experiencing hardships, thus his mentality can be seen in his work. To summarize, this article sought to explore his poetry style. Throughout analysis of MokGye or this, it is shown that it is difficult to make a clear distinction between school of thoughts in the middle of Chosen dynasty. Therefore, more detailed research would be needed in order to classify scholars in that era. The limitation which is mentioned above will be dealt nex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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