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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周易≫의 象數學으로 본 李箱의 〈烏瞰圖〉

        李九義(Lee, Kueui) 동아인문학회 2018 동아인문학 Vol.45 No.-

        논문은 이상의 〈오감도〉를 ≪주역≫의 상수학 이론에 적용시켜 그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오감도(烏瞰圖)〉에 나오는 오감(烏瞰)의 의미는, ‘어찌 볼 수 있는가?’ 또는 ‘무엇이 보이는가?’라는 뜻이다. 이는 곧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시 제목을 〈오감도〉라 한 것은 현재 자아가 처한 상황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암시한다. 〈오감도〉는 제1호로 시작하여 제15호로 끝맺고 있다. 이 숫자를 통하여 자아가 정명(正名)을 주장하고 있다. 세상이 혼란할수록 사람들이 자신의 분수를 지켜야 하고, 자신의 분수에 맞게 행동하여야 한다. 그가 〈오감도〉 시를 제1에서 제10까지를 한 연으로 제11에서 제13까지를 한 연으로 한 것은 질서와 조화가 공존하는 세계를 바라고 있는 것을 뜻한다. 아해(兒孩) 울음에서의 아해는 어리석은 백성을 가리키고, 울음은 고통스러운 현실세계를 의미한다. 현재 백성들이 어리석어 고통을 받고 있지만, 이 어리석음을 깨트리면 밝은 미래가 오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시제4호에서, 첫째 숫자가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은 자아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표현한 것이다. 둘째 •이 대각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숫자를 분리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자아가 드러내고자 한 것은 그가 바라는 세상이 혼란한 세계가 아니라 질서정연한 세계라는 나타낸 것이다. 셋째 진단 0 • 1은 곧 자아의 무한한 포부 또는 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넷째 자아가 26 • 10과 1931등의 숫자를 통하여 자신이 소원을 비사(秘辭)하고 있다. 자아 자신의 희망을 숫자 안에 담고 있다. 그가 바라는 세계가 만민(萬民)이 질서 있고 공평한 세상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 숫자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이 〈오감도〉는 자아 자신이 처한 현실세계와 그가 바라는 이상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This article sought to contemplate Sang Lee’s 「Ogamdo(烏瞰圖)」 by applying the statue and mathematics of the book of changes. This means uncertainty of the future. The title of the poem: 「Ogamdo」 implies that there is uncertainty for one’s situation as well as future. 「Ogamdo」 is a series of works; it starts from No.1 and ends with No. 15. Sang Lee claims righteous moral duty throughout the numbers. If the world is chaotic, people have to know their place and behave accordingly. Sang Lee purposely set No.1 to No. 10 to one verse and No.11 to No.13 to another to wish order and harmony to coexist. Crying of Ahae(兒孩) indicates that stupid civilians and crying means distressing real world. The sentence means that civilians are suffering because they are ignorant, but as soon as they break out from their own stupidity, there will be a bright future for them. Firstly, in No.4, numbers are written upside down, which expressed Sang Lee’s the viewpoint of realm. Secondly, • are connected diagonally, which separate numbers. Sang Lee did this in his work to express his desire; he pursued orderly world rather than chaotic world. Thirdly, diagnose 0 • 1 implies ultimate aspiration and hope. Fourthly, throughout numbers such as 1931 and 26 • 10, Sang Lee secretly expresses his wishes. He contains his wishes in numbers. One can observe that what Sang Lee wants is to recover the world; that every citizens are in order and equally treated in the world. In this way, 「Ogamdo」 illustrates Sang Lee’s current situation in the real world and his ideal image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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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한시(漢詩)에 나타난 가야산(伽倻山)의 형상(形狀)

        이구의 ( Ku Eui Lee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3 韓國思想과 文化 Vol.70 No.-

        본고는 가야산을 소재로 한 시에서 가야산의 모습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가를 목표로 집필되었다. 가야산을 대상으로 한 시는 고려 말부터 조선 시대 말까지 이어진다. 많은 시인들이 가야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지은 시가 거의 없다. 하지만, 작품 수는 다른 어느 산을 제재, 소재로 한 작품에 뒤지지 않는다. 가야산을 제재나 소재로 하여 지은 시에서 그려낸 가야산의 모습을 보면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탈속(脫俗)의 장(場)으로서의 가야산이다. 이는 신라시대 최고운이 이 가야산에 은거하면서부터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가야산을 대상으로 읊은 시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비록 자신들이 관직에 얽매여 있는 몸이지만 최고운처럼 자유의 몸이 되기를 희망하고 하고 있다. 둘째 교유(交遊)의 장으로서 가야산이다. 조선 전기에서 중기에 이르기까지 살았던 시인과 내원암(內院菴)에 살았던 승려와의 교유에서 잘 나타난다. 이들은 종교나 종파를 벗어나 인간으로서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시재(詩才)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셋째 명승(名勝)의 장으로서 가야산이다. 가야산의 경관을 읊은 시들도 처음에는 그 산의 빼어남을 읊었지만, 최고운과 결부시켜 신이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 점이 다른 산의 경관을 묘사한 것과 차이가 있다. 넷째 도학(道學)의 장으로서 가야산이다. 조선 중기 이후의 시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들 일군의 시인들은 무욕(無慾), 항심(恒心), 독서여등산(讀書如登山), 활발발(活潑潑)한 정신세계 등을 추구하였다. This thesis examines the configuration of the Gayasan in poems of classical chinese. The poems of description of Gayasan arise from the end of the Coree dynasty to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The characteristics of external shape of the poetry can be summarized into several things. First, A spot of transcendence of Gayasan. The composers tired to save contents of original poem. Those are stories about Choi Go-un, and description of streams, seclusion, unworldliness, blue mountains and clouds. And they believe that Go-un``s place of seclusion is Gayasan and believe legend that he became hermit there later. Second, a spot of companionship of Gayasan. During the preceding or middle term of the Joseon dynasty, the classical scholar associate with the monkey at the Naewonam. They composed poems and gave and took theirs with sincere mind. Third, a spot of scenic beauty of Gayasan. At first, the poets described with a spot of scenic beauty of Gayasan. But at last they was described with a mystery of Choi Go-un``s. It``s different from the description of the other mountains. Fourth, a spot of confucian ethics of Gayasan. It``s found out the which described in the post middle term of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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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현(崔晛)의 「금생이문록(琴生異聞錄)」의 구성(構成)과 의미(意味)

        이구의 ( Lee Ku-eui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6 韓國思想과 文化 Vol.85 No.-

        본고는 조선 중기에 살다간 인재(?齋) 최현(崔晛: 1563∼1640)의 「금생이문록」의 성격과 구성을 바탕으로 연구한 글이다. 성격 면에서 보면, 첫째 이 작품은 장르상 몽유록계 소설이다. 둘째 이 작품은 허구가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셋째 이 작품은 작자가 명시(明示)되어 있다. 넷째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부(導入部), 전개부(展開部), 결말부(結末部)가 그것이다. 도입부는 자아가 입몽(入夢)하기 전까지의 상황, 전개부는 자아가 입몽한 뒤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이다. 이 부분은 말 그대로 자아가 꿈속에서 전개되는 여러 가지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 실제 이 소설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결말부는 자아가 각몽(覺夢)한 뒤의 상황을 서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몽유록계(夢遊錄系)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자아의 지향의식(志向意識)을 서사하고 있다. 이 소설의 전개방식은 평면식(平面式) 또는 나열식(羅列式)이다. 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가 뛰어났다.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작가 자신의 지향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시가 핵심을 이루고 있다. 작가가 삽입시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묘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시를 통하여 그의 지향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는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 작품은 작자가 명시되어 있다. 둘째 자신이 출생한 고을에 대한 자부심을 표출하고 있다. 셋째 이 소설에서의 자아의 심리가 안정되어 있다. 넷째 작가인 최현(崔晛) 자신이 유학자이며 올곧은 선비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다섯째 이 소설의 창작 목표가 명시되어 있다. 여섯째 그 갈래가 전기(傳奇)에 해당한다. 이 작품 뒤의 여러 작품이 나오게 되는데 이 작품이 일조(一助)하였다. This thesis examines the structure and meaning of InJae Choi Hyun`s Geumsaengyimunrok. The distinguishing feature of this work is a branch of a description of sleepwalking. This work based on not fiction but nonfiction. The author this work was known to conspicuously. This work is organized three parts. Namely, the part of introduction, development and conclusion. The part of introduction is come within before the narrator falling in dream. The part of development is described of the narrator`s dreamworld. The part of conclusion is narrated awaking from dream and returninioig to realities. This work was described the consciousness of inclination of the narrator. The formalities of development of this work is enumerative or planic. The distinctive feature of this work was well describing of character. The consciousness of inclination of the author`s was described by the characters. The core of this work is the poems which were included in the work. The included poems were described the poet`s consciousness of inclination. The significance of history of literature can be summarized with several things. The author of this work is exposed distinctly. The narrator described of self confidence of his hometown where he was bone. At this work, the mental state of narrator was kept quiet. The narrator described the author was the righteous of classical scholar. This work influenced next generation`s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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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점필재(점畢齋) 금종직(金宗直)의 시에 나타난 정신세계

        이구의 ( Ku Wui Lee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1 韓國思想과 文化 Vol.56 No.-

        본고는 점필재(점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시에 나타난 정신세계를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점필재의 시 가운데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용사(用事)를 많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상고정신(尙古精神)에 입각해서 용사(用事)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혁신하려 하지 않았다. 그 당시의 체제를 지키면서 잘못된 점을 고치려 하였다. 점필재는 현실에 있어서는 온건주의를 추구하였다. 그는 선비로서의 선비의 의리와 신하로서 충성을 강조하였다. 점필재는 평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선민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선비의 표본으로 야은 길재와 목은 이색을 내세우고 있다. 점필재는 선비로 관리의 신분이었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더 깊었다. 그는 가슴이 따뜻하고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선비였다. 유학자들은 우환의식(憂患意識)을 지니고 있다. 점필재도 예외가 아니다. 그가 공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는 일처리가 대단히 엄정하였다. 그는 춘추사관을 바탕으로 난신적자들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가 공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을 때는 참으로 낭만적이었다. 점필재의 또 다른 모습은 낭만적 삶과 낙관주의의 소유자이다. 점필재의 의식은 보편성을 가지고 인문정신을 견지하였다. 그는 비록 현실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겠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도덕적 이상주의를 실천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This thesis examines how the poems of Jumpiljae KimJongjik`s (점畢齋 金宗直: 1431-1492) are linked with life, and what the spiritual sphere in his poetry is. The characteristics of his poems can be summarized into several things. The styles of his poems are much using of an ancient event. It`s based on the spirit of worship of things classical. In his poems, he described with the relm of a classical scholar and the chosen elitism. The genius of these are situated in his consciousness, unconsciousness and subconsciousness. He made Yaeun Giljae(冶隱 吉再) and Mokeun Leesaek(牧隱 李穡) stand for an example of the classical scholar. He attached great importance to Confucian ethics and literary composition. Between these two things, he emphasized the Confucian ethics. He was a classical scholar and poet. But he made friend with many Buddhist priest. It`s means the boundary of his spirit sphere was not stopped one point, but magnanimous. He hope pursuit learning himself to his studies with his amusement. Even if he advocated moral philosophy at political affairs, he exhibited his sportive instinct in his poetry. Several his poems involved dualistic of ethics and amusement. He accomplished from the fundamental property of human beings through filial piety and loyalty. He promoted practical morals. He emphasized practice filial piety toward his wife. He was a man of intimate or a warm hearted person. His home of spirit was the virtual idealism. An ultimate goal of his life was unity of nature and man. It is the expression of the simple spirit of the classical scholar. Lastly, he put superior to the spirit rather than reason and character. In his innermost feelings are overflowing with consciousness of distresses and worries. He pursued maintaining of universality the spirit of humanity. He earnestly desired putting moralistic idealism in the realities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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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㵢溪 兪好仁의 〈花山十歌〉 攷

        李九義(Lee Ku-Eui) 한민족어문학회 2010 韓民族語文學 Vol.0 No.56

        본고는 ?溪 兪好仁(1445-1494)의 〈花山十歌〉에 나타난 자아의식을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형식면에서 보면, 〈화산십가〉는 五言律詩 10首로 된 連作詩이다. 구성면에서 보면, 이 시는 起承轉結의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둘째 서정적 자아는 3인칭 목격자 시점, 또는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자신의 심경을 묘사하고 있다. 셋째 이 시의 창작 대본은 『詩經』이다. 이 시에서는 國風의 여러 시에서 用事하고 있다. 넷째 내용면에서 보면, 이 시는 사회시 또는 紀俗詩이다. 여기에 나타난 자아의 정신은 민중의식 또는 서민의식이며, 重商主義가 아니라 重農主義이다. 다섯째 이 시는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月令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시를 의미단락으로 가르면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안동의 지리적 위치와 시인의 의식이 나타난다. 그는 淵源을 찾고자 하였다. 이는 겉으로 보면 안동 지방의 연원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의 학문하는 방법이 녹아 있다. 둘째는 주민들의 생활상과 당시의 정세를 묘사하고 있다. 그의 생각은 희망적이며 긍정적이었다. 이 점은 그의 성품과 일치한다. 셋째는 현실의 고난에 대한 극복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자아는 청량산을 통해서 자신의 욕심 없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넷째는 농사일의 마침과 자아의 희망이다. 그는 正名意識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를 통하여 먼 옛날 堯임금의 唐나라 때처럼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것이 그의 理想이다. 끝으로 이 〈화산십가〉에서는 도학적인 면보다는 현실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뒷날 事理에 중점을 둔 조선 후기 문학에 영향을 주었다. This thesis examines how the poetry of Noegye Yuhoin's (?溪 兪好仁: 1445 - 1494) Hwasansipga(花山十歌)- it's means ten pieces poems under one title of Hwasan are what the self-consciousness in which is. These are a quatrain with characters to a stanza. The characteristics of his poem can be summarized into several things. Firstly, these poems are composed of four steps. Secondly, The persona is describing own state of mind in the third person eyewitness point of view. Thirdly, the script of these poems are the Book of Odes. In these poems, the ancient fables and phrases are quoting from the Book of Ode's Gukpung. Fourth, In contents, these poems are described manners and customs those days. The spiritual sphere of the self is physiocratism this not being mercantilism. Incompletely, these poems are basing on age of the moon sieves that the fifth this was acid. If it divides these poems to meaning paragraphs, it is divided four sections. The first, it's described the geographical position of Andong and the consciousness of the poet. He will look up the origins. It is the origin regional Andong, The second is describing the situation with a life quotient of residents at that time. He was hopeful, and his thought was positive. This point is matched with his nature. The third is expressing conquest intention regarding an actual pressure. Do not have own greed through Mt. CheongRyang, and the persona is exposing indirectly. He is emphasizing to a consciousness of moral justification. He was praying for a make to the world to be good for their living through these as Tang dynasty - the times of ancient Yo emperor. This is his ideal lands. In closing, he is emphasizing to a realistic aspect than a Confucian ethics. These affected in the latter period of Chosun Dynasty's the literature which describing reason of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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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남계(藍溪) 표연말(表沿沫)의 삶과 문학에 나타난 지향의식

        이구의 ( Ku Eui Lee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12 남명학연구 Vol.36 No.-

        본고는 조선 중기에 살다간 藍溪 表沿沫(1449, 세종31-1498, 연산군4)의 작품에 나타난 그의 학문자세와 사상을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藍溪는 일찍 부모를 여의어 유년기의 그의 삶은 그다지 호화롭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스승과 좋은 벗들을 만났다. 특히 그가 태어나 24살 2월까지 살았던 咸陽은 그의 꿈과 희망이 깃든 곳이었다. 남계는 우리나라에서 한창 성리학이 성장할 때 살다간 사람이다. 그의 스승은 점필재였고, 서거정은 그의 座主였다.그가 깊이 사귄 친구들은 대부분 점필재의 제자이면서 그와는 동문관계인 사람들이었다. 그 외 그가 관직 생활을 하면서 사귄 친구들도 있다 寒暄堂과 一囊가 도학면에만 뛰어났다면, 藍溪는 道學과 文章 두 가지에서 뛰어났다. 그의 「謹次朱子感興」시 20수는 그가 주자학을 구체적으로 수용하였다는 것을 입증한다. 藍溪는 道學과 文章을 다 갖춘 사람이었다. 남계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中庸』에 나오는 ‘尊德性 道問學’이라는 말을 하나의 문젯거리로 다루었다. 그는 고려 말부터 서서히 싹이 트기 시작한 新儒學, 즉 性理學을 보다 깊이 체득하였고, 작품을 통하여 이론화 한 先驅者였다. 實踐 倫理面에서 보면, 藍溪는 春秋史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가운데 그의 의식 속에는 正名思想이 녹아 있다. 그는 자신의 心性修養, 즉 存心養性을 통하여 도학을 실천하였다. 그는 明道學, 闢異端의 이론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을 병행하려 하였다. 그는 현실에 대해 憂患意識이 있었다. 그는 고고한 선비로서 王道政治 통한 道德的 理想主義를 추구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뒤의 靜菴 趙光祖의 이상과도 통한다. 그의 삶과 정신이 繼往聖 開來學이라는 말을 실천하였다는 점에서 그 意義를 지닌다. This article was focused on Namgye Pyoyeonmal(藍溪 表沿沫)`s idea and literature mind who lived in middle of Choseon(朝鮮) dynasty. Namgye when he was 2 years old his father passed away and he was 18 his mother too. But he met nice teacher and friends especially in Hamyang(咸陽) where he has lived was filled with his dream and hope. He lived in the era when the metaphysics of human nature and natural law was started to be popular. He communicated with popular erudite people his teacher was Jumpiljae (占畢齋). The friends who deeply connected to him were pupils of Jumpiljae and fellows of his study field. Moreover he made friend while he worked as national officer. Hanhwundang(寒暄堂) and Ildoo(一囊) was extraordinary at confucian ethics. But he was talented at confucian ethics and liberal art. He won first score in competition the year when he became 37 years old could realize he was really good at literature. Also his poem can see he accepted details about the metaphysics of human nature and natural law. He dealt about rise the ethics and lead first in korea. He accommodated the neo-confucianism which was blossomed end of korea dynasty. Thus he was the founder of theory from his article practicing ethics which was the historical view of Chunchoo(春秋). On practical morality, his historical view was based on the historical view of Chunchoo. The righteous of moral justification was harmonized in his consciousness. He was not only focused on theory but also practicing theory and tried work those together. He practiced confucian ethics with the cultivation of conscience and true character, namely preservation and education of one`s conscience and true character. His spiritual sphere was not limited lightening of confucian ethics and driving away of paganism. He intended keeping pace with the theory and the practice. On actuality, he has the consciousness of anxiety. It was not lightened the confucian ethics. It`s means his spiritual sphere was not a scholar of mean type but a man of virtue. He was a scholar of nobility. He pursued the politics of principles of royalty. His idealism was very responsive to Jungam Chokwangjo(靜菴 趙光祖)`s. His life and spiritual sphere was succeeded sages of the past and guided scholars of the future. At this point, it has the significant of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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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시에 나타난 자아의식

        이구의 ( Ku Eui Lee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1 韓國思想과 文化 Vol.57 No.-

        본고는 조선 중기에 살다간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의 시에 나타난 자아의식을 고찰하는 목표로 집필되었다. 한훤당은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즉, 세상을 광정(匡正)하는 것이었다. 한훤당의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그의 포부가 원대하였다. 이처럼 자아, 즉 한훤당은 젊어서부터 장부(丈夫)의 기개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한훤당을 평할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꼿꼿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정통 도학의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책을 펴서 강론할 때나 공무(公務)를 집행할 때는 엄정하였지만, 평소 생활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평소 남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데 있어 인색하지 않았으며 다정다감(多情多感)하였다. 한훤당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근본으로 하여 효·제·충·신(孝悌忠信)을 실천하려 하였다. 그가 비록 관직에 매여 있었지만 그의 학문의 지향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었다. 그는 이 위기지학을 바탕으로 도덕적 이상주의를 실천하려 하였다. 이 도덕적 이상주의가 그의 제자인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 1482-1519)의 국가관에 그 영향을 미쳤다. 한훤당은 어려서는 성질이 강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그다지 강직하지 않다. 그의 시에 나타난 풍격(風格)은 전형적인 유학자들의 시와 같이 충담·한아(沖淡·閒雅)하다. 이러한 인품과 시풍은 바로 지지당의 그것과 서로 비슷하다. 한훤당의 시에는 호방(豪放)하거나 웅혼(雄渾)한 풍격(風格)의 시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일반적으로 한훤당에 평가와는 차이가 있다. This thesis examines how the poems of Hanhweondang Kim Goengpil`s (1454-1504) are linked with life, and what the spiritual sphere in his poetry is. The characteristics of his poems can be summarized into several things. In the youth days of his life, He maintained his ambition or aspiration. It was correction of regularity in his living world. The goal of the prosecution of his studies was reaching the stage of sages. In his twentieth he keeped a farseeing scheme or an ambitious plan. He was estimated a man of principle. Because he was a scholar of legitimate Cofucian philosophy. He attached great importance to Confucian ethics and literary composition. Between these two things, he emphasized the Confucian ethics. He was a classical scholar and poet. But he made friend with Buddhist priest. It`s means the boundary of his spirit sphere was not stopped one point, but magnanimous. He hope pursuit learning himself to his studies with his amusement. Even if he advocated moral philosophy at political affairs, he exhibited his sportive instinct in his poetry. Several his poems involved dualistic of ethics and amusement. He accomplished from the fundamental property of human beings through filial piety and loyalty. He promoted practical morals. He hoped to practice filial piety, brotherly love, fidelity and devotion in based of his benevolence, righteousness, propriety and wisdom. His home of spirit was the virtual idealism. An ultimate goal of his life was unity of nature and man. It is the expression of the simple spirit of the classical scholar. Lastly, he put superior to the spirit rather than reason and character. In his innermost feelings are overflowing with consciousness of distresses and wor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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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당(止止堂) 금맹성(金孟性) 시에 나타난 정신세계

        이구의 ( Ku Eui Lee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0 韓國思想과 文化 Vol.54 No.-

        본고는 지지당(止止堂) 김맹성(金孟性: 1437-1487)의 시를 통하여 그의 정신세계를 고찰하려 하였다. 지지당의 시는 충담(沖澹) 한아(閒雅)하다. 그는 시를 통하여 인간 본연(本然)의 도를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의 학문 자세 역시 위기지학(爲己之學)을 바탕으로 하였다. 그의 시에는 선비 정신과 선민의식(選民意識)이 나타난다. 자신이 아무리 어려워도 일반 서민들과는 차이가 난다는 생각이 그의 의식?무의식, 또는 잠재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도(道)와 문(文)을 아울러 중시하였다. 그는 도와 문, 둘 가운데 도(道)를 문(文)보다 우위에 두었다. 그는 선비이면서 시인이다. 그가 유학자였지만, 그는 많은 스님들과 사귀었다. 이는 그의 정신영역이 한 곳에 머문 것이 아니라, 그 폭이 대단히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지당의 이상은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나라를 이상국가(理想國家)로 만드는 것이다. 이상 국가는 다름 아닌 왕도정치(王道政治)의 구현이다. 그는 또 역사적인 인문을 들어 사람들을 감계(鑑戒)하려 하였다. 그는 맹자가 말한 `대장부(大丈夫)`의 길을 가기를 바랐다. This thesis examines how the poems of Jijidang KimMaingsung`s (止止堂 金孟性: 1437-1487) are linked with life, and what the spiritual sphere in his poetry is. The characteristics of his poems can be summarized into several things. The styles of his poems are frankness and openheartedness. he desired to practice innate of humanizing. The attitude of his prosecution of studies based on Wigizihak(爲己之學). In his poems, he described with the relm of a classical scholar and the chosen elitism. The genius of these are situated in his consciousness, unconsciousness and subconsciousness. He attached great importance to Confucian ethics and literary composition. Between these two things, he emphasized the Confucian ethics. He was a classical scholar and poet. But he made friend with many Buddhist priest. It`s means the boundary of his spirit sphere was not stopped one point, but magnanimous. He hope pursuit learning himself to his studies with his amusement. Even if he advocated moral philosophy at political affairs, he exhibited his sportive instinct in his poetry. Several his poems involved dualistic of ethics and amusement. He accomplished from the fundamental property of human beings through filial piety and loyalty. He promoted practical morals. He emphasized practice filial piety toward whose`s parents and allegiance to whose`s country. His home of spirit was the virtual idealism. An ultimate goal of his life was unity of nature and man. It is the expression of the simple spirit of the classical scholar. Lastly, he put superior to the spirit rather than reason and character. In his innermost feelings are overflowing with consciousness of distresses and worries.

      • KCI등재

        崔致遠 文學의 創作 現場과 遺跡에 對한 硏究

        李九義(Lee, ku-eui) 대동한문학회 2008 大東漢文學 Vol.29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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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최고운의 문학과 창작현장, 유적과 그 문제점 配享 現況과 그 意義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고운이 주로 활동했던 지역은 慶州의 金鰲山, 義城의 氷山, 陜川의 淸凉寺 또는 海印寺, 智異山의 雙溪寺, 梁山의 臨鏡臺, 東萊의 海雲臺, 昌原의 月影臺, 成陽의 學士樓 등지이다. 그의 창작현장은 주로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즉 경상도에 분포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머문 시간의 대부분이 경상도였다는 것을 입증한다. 유적 현황과 문제점으로는, 첫째 유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새로이 단장하거나 복원하였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큰 도시에 위치한 유적 주변의 환경이 많이 변모하였다. 셋째 유적지에 있는 최고운의 친필 최고운의 친필이라고 하는 것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러나 바위에 새긴 글자가 최고운의 것인지 확실한 근거가 없다. 넷째 최고운이 심었다는 나무들의 진위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최고운을 문묘에 배향한 이유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우리나라 역사상 문장과 공적으로 중국에 이름을 떨치고 후세에 빛낸 이는 최고운뿐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기미를 보고 벼슬에서 물러나 깨끗이 은거하여 세상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特立獨行한 그 義가 또한 百世의 스승이 될 만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최고운의 후손인 경주 최씨들이 지신들의 조상을 천양하기 위해서 문묘에 배향했다는 점이다. 최고운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곳은 12곳이고, 동상이 있는 곳이 한 군데이다. 영정을 모시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최고운을 추모하는 정이 깊다는 것을 입증한다. This thesis is an inquiry into Choigowoon's literature, relics and about that's a point in dispute. In short, like this. He mostly acted at these areas, Kyeungju, Easing, Hapcheon, Jiri mountain, Yangsan, Dongrae(Pusan), Changwon, Hamyang, etc. It's mostly in south and north Kyeungsang provincial. It's the proof that his scene of creation was mostly in these areas. The remains situation and that's problem is, first because of the concern of remains decorated new or demobilized. Second, remains placed in big city's and it's surrounding has transfigured. Third, in his historic scene, his handwriting spread in several places. But that's not absolute proof that engraved in stone is real or not. Fourth, he planted trees problem is that it's truth or falsehood. The enshrinement at a shrine of confucius temple are three reasons. First, Only he made name about literature and excellent achievements in China and he brought glory till after future generation. His name is known both at home and broad in our history. Second, He withdrawer from the government post and leaded a carefree life in retirement. Third, His descendants enshrinement at a shrine of confucius temple for eminent those ancestor who was Choichiwon. This thesis is a small portion of research which specialized the scene of creation of Choichiwon's literature and relics. Accordingly, I set limits to his home. and abroad relics external description of his poetries. Consequently, I did not contrast or compare his scene of creation of Choichiwon's literature and relics at home and broad. This point shall be revealed itself the time my research fin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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