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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周易≫의 象數學으로 본 李箱의 〈烏瞰圖〉

        李九義(Lee, Kueui) 동아인문학회 2018 동아인문학 Vol.45 No.-

        논문은 이상의 〈오감도〉를 ≪주역≫의 상수학 이론에 적용시켜 그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오감도(烏瞰圖)〉에 나오는 오감(烏瞰)의 의미는, ‘어찌 볼 수 있는가?’ 또는 ‘무엇이 보이는가?’라는 뜻이다. 이는 곧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시 제목을 〈오감도〉라 한 것은 현재 자아가 처한 상황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암시한다. 〈오감도〉는 제1호로 시작하여 제15호로 끝맺고 있다. 이 숫자를 통하여 자아가 정명(正名)을 주장하고 있다. 세상이 혼란할수록 사람들이 자신의 분수를 지켜야 하고, 자신의 분수에 맞게 행동하여야 한다. 그가 〈오감도〉 시를 제1에서 제10까지를 한 연으로 제11에서 제13까지를 한 연으로 한 것은 질서와 조화가 공존하는 세계를 바라고 있는 것을 뜻한다. 아해(兒孩) 울음에서의 아해는 어리석은 백성을 가리키고, 울음은 고통스러운 현실세계를 의미한다. 현재 백성들이 어리석어 고통을 받고 있지만, 이 어리석음을 깨트리면 밝은 미래가 오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시제4호에서, 첫째 숫자가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은 자아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표현한 것이다. 둘째 •이 대각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숫자를 분리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자아가 드러내고자 한 것은 그가 바라는 세상이 혼란한 세계가 아니라 질서정연한 세계라는 나타낸 것이다. 셋째 진단 0 • 1은 곧 자아의 무한한 포부 또는 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넷째 자아가 26 • 10과 1931등의 숫자를 통하여 자신이 소원을 비사(秘辭)하고 있다. 자아 자신의 희망을 숫자 안에 담고 있다. 그가 바라는 세계가 만민(萬民)이 질서 있고 공평한 세상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 숫자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이 〈오감도〉는 자아 자신이 처한 현실세계와 그가 바라는 이상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This article sought to contemplate Sang Lee’s 「Ogamdo(烏瞰圖)」 by applying the statue and mathematics of the book of changes. This means uncertainty of the future. The title of the poem: 「Ogamdo」 implies that there is uncertainty for one’s situation as well as future. 「Ogamdo」 is a series of works; it starts from No.1 and ends with No. 15. Sang Lee claims righteous moral duty throughout the numbers. If the world is chaotic, people have to know their place and behave accordingly. Sang Lee purposely set No.1 to No. 10 to one verse and No.11 to No.13 to another to wish order and harmony to coexist. Crying of Ahae(兒孩) indicates that stupid civilians and crying means distressing real world. The sentence means that civilians are suffering because they are ignorant, but as soon as they break out from their own stupidity, there will be a bright future for them. Firstly, in No.4, numbers are written upside down, which expressed Sang Lee’s the viewpoint of realm. Secondly, • are connected diagonally, which separate numbers. Sang Lee did this in his work to express his desire; he pursued orderly world rather than chaotic world. Thirdly, diagnose 0 • 1 implies ultimate aspiration and hope. Fourthly, throughout numbers such as 1931 and 26 • 10, Sang Lee secretly expresses his wishes. He contains his wishes in numbers. One can observe that what Sang Lee wants is to recover the world; that every citizens are in order and equally treated in the world. In this way, 「Ogamdo」 illustrates Sang Lee’s current situation in the real world and his ideal image of the world.

      • KCI등재

        淸越樓 吟詠詩에 나타난 자아와 세계의 만남

        이구의(Ku-eui Lee) 동아인문학회 2020 동아인문학 Vol.52 No.-

        본고는 상주시(尙州市) 모동면(牟東面) 옥동서원(玉洞書院) 안에 있는 청월루 음영시에 대하여 고찰한 논문이다. 옥동서원이라는 이름이 있기 전 백화서원을 제재로 하여 시를 지은 분은 유촌(柳村) 황여헌(黃汝獻)과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이다. 유촌의 〈백화서원(白華書院)〉시는 백화서원과 서원 유생들에게 바라는 큰 기대감을 이 시 안에 함축하고 있다. 대산(大山)은 두 수의 시에서 그 자신의 정감(情感)을 묘사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시에서 학문에 관한 자신의 견해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신이 한결 같은 마음을 가진 선비라는 것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는 〈청월루(淸越樓)〉 시를 통하여 청월루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인격과 학문이 완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청월(淸越)을 금성옥진(金聲玉振)에 비유하여 청월루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가 이〈청월루〉시를 통하여 청월루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인격과 학문이 완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백하(白下) 황반로(黃磻老) 역시 청월루에서 그냥 시를 읊은 것이 아니라 청월루에 의미를 부여하였고, 또 그 의미에 맞는 인재가 배출되기를 바라고 있다. 장원(藏園) 황원선(黃源善)도 입재나 백하와 같이 단순히 그의 눈에 보이는 경물(景物)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경물을 통하여 자아의 희망을 읊고 있다. 녹차(綠此) 황오(黃五)의 〈청월루〉시는 시려(是廬) 황난선(黃蘭善)과 수창한 작품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시가 곧 대화였다. 시려와 녹차가 묘사한 청월루는 창작의 공간이면서 접빈(接賓)의 공간이었다. 시려 황난선은 녹차 황오와 수창한 시를 비롯하여 청월루를 제재로 하여 17제 25수의 시를 지었다. 그가 청월루를 제재로 하여 지은 시는 청월루가 창작의 공간, 접빈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이는 강학(講學)할 때는 시를 짓지 않은 탓이다. 그에게 청월루는 충전의 공간이 되었다. 청월루 시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청월루 뿐만 아니라 옥동서원의 여러 건축물을 제재로 하여 창작을 했던 시인들은 당대에 학문과 덕행으로 유명한 선비였다. 둘째 이 시인들을 통하여 당시 학맥과 혼인 관계를 알 수 있다. 셋째 이 청월루 시를 통하여 장수황씨 후손들의 선조에 대한 추앙(推仰)과 일가에 대한 애정을 알 수 있다. 넷째 이 청월루 시를 통하여 당대의 시풍(詩風)의 단면을 알 수 있다. 다섯째 이 청월루 시를 통하여 그들의 현실인식과 시인들의 지향의식을 알 수 있다. 여섯째 청월루 음영 시를 통하여 이를 제재로 하여 창작을 했던 시인들의 학문 경향을 알 수 있다. This paper seeks to analyse poems about, which is located inside of Okdong School, Sangju city. Before dive into interpreting poems, the place which will be mentioned in this whole paper was called as BaekHwa School before its name changed to Okdong school. Several poets such as Yuchon YeoHeon Hwang, Daesan SangJung Lee were inspired to write poems about Baek Hwa school. Even if all those authors wrote poems about it, all of them have different writing styles as well as convey different messages in their poems. In this article, several authors who wrote poems about Baek Hwa school will be discussed below. To begin with, Yuchon’s poem implies that he was anticipating all pupils in the school to do well and the place to be propereous. Second, Daesan’s poem depicts affection towards the school. He did not necessarily provide his opinion on literature. However, his poem subtly shows that he was a steady scholar. Third, JeongJongro’s poem conveys the message that he wished for pupils who studied at Cheongwolru to improve both personally and academically. He gave considerable meaning to Cheongwolru by metaphorically calling it as the sound of the metal and jade. Also, BanRo Hwang was not just chanting a poem in Cheongwolru, but he had put the meaning in the place. Furthermore, he hoped for new elites to appear in there. Alike all the poems cited above, WonSeon Hwang sought to put considerable meanings in the place in his poems. He did not stop reflecting his consciousness by only chanting the poem in Chengwolru, but he showed his consciousness by chanting a poem. On the other hand, Oh Hwang and Nansun Hwang exchanged poems. For them, the poem was used as a conversational method. Throughout an analysis of inherent meanings in poems about Cheongwolru, literature trend in that period can be identified as following: First, all the authors who wrote the poems about Cheongwolru and other architectures inside of Okdong School were infamous scholars for their literature and moral behaviors. Second, it is possible to notice the literal style and marital status at that time throughout the authors analysed above. Third, poems about Cheongwolru portray that not only descendants of the family of Jangsu Hwang worshipped their ancestors, but also showed their affection towards them. Fourth, the literature style of that time can be easily identifiable. Fifth, poets’ sense of reality and their world view are identifiable. Sixth, literature trend of poets who wrote poems after getting inspiration from Cheongwolru can be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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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한시(漢詩)에 나타난 가야산(伽倻山)의 형상(形狀)

        이구의 ( Ku Eui Lee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3 韓國思想과 文化 Vol.70 No.-

        본고는 가야산을 소재로 한 시에서 가야산의 모습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가를 목표로 집필되었다. 가야산을 대상으로 한 시는 고려 말부터 조선 시대 말까지 이어진다. 많은 시인들이 가야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지은 시가 거의 없다. 하지만, 작품 수는 다른 어느 산을 제재, 소재로 한 작품에 뒤지지 않는다. 가야산을 제재나 소재로 하여 지은 시에서 그려낸 가야산의 모습을 보면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탈속(脫俗)의 장(場)으로서의 가야산이다. 이는 신라시대 최고운이 이 가야산에 은거하면서부터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가야산을 대상으로 읊은 시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비록 자신들이 관직에 얽매여 있는 몸이지만 최고운처럼 자유의 몸이 되기를 희망하고 하고 있다. 둘째 교유(交遊)의 장으로서 가야산이다. 조선 전기에서 중기에 이르기까지 살았던 시인과 내원암(內院菴)에 살았던 승려와의 교유에서 잘 나타난다. 이들은 종교나 종파를 벗어나 인간으로서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시재(詩才)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셋째 명승(名勝)의 장으로서 가야산이다. 가야산의 경관을 읊은 시들도 처음에는 그 산의 빼어남을 읊었지만, 최고운과 결부시켜 신이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 점이 다른 산의 경관을 묘사한 것과 차이가 있다. 넷째 도학(道學)의 장으로서 가야산이다. 조선 중기 이후의 시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들 일군의 시인들은 무욕(無慾), 항심(恒心), 독서여등산(讀書如登山), 활발발(活潑潑)한 정신세계 등을 추구하였다. This thesis examines the configuration of the Gayasan in poems of classical chinese. The poems of description of Gayasan arise from the end of the Coree dynasty to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The characteristics of external shape of the poetry can be summarized into several things. First, A spot of transcendence of Gayasan. The composers tired to save contents of original poem. Those are stories about Choi Go-un, and description of streams, seclusion, unworldliness, blue mountains and clouds. And they believe that Go-un``s place of seclusion is Gayasan and believe legend that he became hermit there later. Second, a spot of companionship of Gayasan. During the preceding or middle term of the Joseon dynasty, the classical scholar associate with the monkey at the Naewonam. They composed poems and gave and took theirs with sincere mind. Third, a spot of scenic beauty of Gayasan. At first, the poets described with a spot of scenic beauty of Gayasan. But at last they was described with a mystery of Choi Go-un``s. It``s different from the description of the other mountains. Fourth, a spot of confucian ethics of Gayasan. It``s found out the which described in the post middle term of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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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崔溥의 漂海錄과 하멜의 漂流記에 나타난 東西洋의 交涉

        李九義(Lee, ku-eui) 동아인문학회 2019 동아인문학 Vol.49 No.-

        본고는 최부의 ≪표해록≫과 하멜의 ≪표류기≫를 통하여 조선시대에 동서양의 문화가 어떻게 교섭되었는지를 고찰하려는 목적에서 추진되었다. 이 두 작품은 단순히 여정(旅程)만을 기록한 글이 아니다. 이 두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15,17세기 동서양의 문화가 어떻게 소통되었는가를 보다 쉽게 알 수 있다. 최부의 ≪표해록≫과 하멜의 ≪표류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공통점으로는 첫째 열린 공간으로서의 바다이다. 육지가 닫힌 공간이라면 바다는 열린 공간이다. 이 바다가 사건의 발생의 시작이 된다. 최부(崔溥)나 하멜이 표류하게 된 것은 열린 공간에서 풍랑을 만났다. 이 열린 공간은 자아에게 새로운 경험 세계를 인도하고 있다. 둘째 자국 또는 자민족 중심의 실리주의 추구이다. 금남이나 하멜이 표류할 당시에 그들의 신분이 서로 달랐다. 이에 따라 그들이 표류기를 서사하는 방법도 서로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자국 또는 자민족 중심의 실리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셋째 하멜 역시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지 않았다. 금남과 하멜 두 사람은 그들의 작품을 통하여 진리의 다양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유일(唯一) 보편론(普遍論)을 극복하고 진리의 다양성(多樣性)과 복수성(複數性)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하였다. 이들이 새로운 문명 세계에 접근하였다. 넷째 금남(錦南)이 인문학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의 경험 세계를 서술하였다면, 하멜은 사회학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의 경험 세계를 기술하였다. 금남(錦南)은 당시 관리였고 하멜은 회사원이었다. 당시에는 금남이 하멜보다 더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와는 반대이다. 금남이 흔적이 정지된 상태라면 하멜의 흔적은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현재로는 금남보다 하멜의 흔적이 훨씬 많이 남아 있다. 앞으로는 금남 자취도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에 설치하여 문명의 소통의 자취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를 문화관광화 한다면 서로의 실리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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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崔溥의 《漂海錄》에 나타난 敍事樣相과 文明意識

        李九義(Lee, ku-eui) 동아인문학회 2019 동아인문학 Vol.47 No.-

        필자는 금남(錦南) 최부(崔溥)가 지은 《표해록》에 나타난 서사양상(敍事樣相)과 문명의식(文明意識)을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본고를 집필하였다. 《표해록》의 서사 양상은, 첫째 일기체(日記體)의 전개방식이다. 곧 보고문의 양식이다. 둘째 이 《표해록》의 서술 방식 가운데 또 하나의 특징은 시간적 순차에 따른 사건 중심의 서술 방식이다. 셋째 이 《표해록》은 간접 대화방식을 택하였다. 넷째 간결체의 결구방식(結句方式)이다. 《표해록》에 나타난 문명의식(文明意識)은, 첫째 아체타용(我體他用)의 동인의식(東人意識)이다. 금남은 주체의식을 가지고 중국 사람과 교류하였다. 둘째 학자(學者)로서의 선민의식(選民意識)이다. 그가 선민의식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그의 학문이 해박한 데 있었다. 셋째 관리(官吏)로서 정명의식(正名意識)이다. 그가 관리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려고 노력하였다. 《표해록》이 가지는 문학・역사・철학・지리・경제・사회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금남(錦南)의 《표해록》은 우리나라 표류기(漂流記)의 처음이라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둘째 금남의 《표해록》을 통하여 나라와 나라 사이 문명의 소통을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이 《표해록》은 이보다 180년 뒤에 나온 하멜의 《표류기》에 나타나는 정신과 행동 면에서 대조적이다. 넷째 이를 통하여 당대의 학자와 관리들의 위계질서를 알 수 있다. 다섯째 최부(崔溥)라는 한 사람의 행적을 통하여 당대 학자 또는 관리들의 관심사(關心事)와 지향점(志向點)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다. This thesis examines how the A Record of Drifting across the Sea, which is written by GeumNam(錦南) ChoiBu"s(崔溥: 1454~1504) is linked with his life. The characteristics of this work can be summarized into several features. The characteristics of narrative styles of this work are, firstly it’s discovery has a diary style. Secondly, it’s built up centering around the occurrence. Thirdly, it has a style of indirect communication. Lastly, it is written in a concise and clear language. The realms of civilians of this work’s asserted or involved have several features. Those are; Firstly, it is the national identity which named a consciousness of the East People. Secondly, the culture back then in the Chosen Dynasty was cultivated by Confucian school of thoughts, which influenced the civilians in that era including Choi-Bu. He speculated his thesis based on extensive knowledge on this work. Finally, his moral justifications which contributed to shape his consciousness. The work of ChoiBu has noticeable features with regards to literal, historical, philosophical, economic and social perspectives. Firstly, his work was the first piece of A Record of drifting across the sea in the Korean peninsula. Secondly, with this work, it allows us to grasp cultural differences between China and Chosen properly. Thirdly, this work has several distinguishing features compared to Hamel’s view on his work. Finally, through this article, it is able to acknowledge the concerns or interests of scholars in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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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朱子〈觀書有感〉詩의 韓國的 受容

        李九義(Lee, Kueui) 동아인문학회 2014 동아인문학 Vol.27 No.-

        본고는 주자(朱子) <관서유감(觀書有感)>시가 우리나라 시인들한테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고찰한 논문이다. 이 <관서유감>시가 고려 말 성리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수용되었다. 특히 16세기 이후 주리파(主理派)들에 의하여 이 시가 다시 주목받았다. <관서유감> 시의 구절에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퇴계 이황이 처음이다. 이후 신정모(申正模), 탁계(濯溪) 김상진(金相進), 정조(正祖), 곽종석(郭鍾錫) 등이 나름대로 이 시를 풀이하고 있다. 이들을 보면 정조와 김상진을 제외하면 모두 경상도(慶尙道) 사람으로 퇴계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다. <관서유감>시의 수용 양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관서유감’이라는 제목을 수용한 경우이다. 이 경우는 주자의 <관서유감> 시와는 그 내용이 다르다. 주자의 시에 화운 또는 차운하지 않았고 형식도 5언 또는 7언, 절구 또는 율시로 다양하다. 이러한 제목의 시가 16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에 해당하는 시인들은 대부분 영남지방 출신 학자들이다. 둘째 화(和)?차운(次韻)을 통한 형식(形式)과 내용(內容)의 수용이다. 이에 해당하는 시인들은 모두 주자의 <관서유감>시의 형식과 내용을 많이 수용하였다. 이들은 모두 영남지방 출신 학자들이며, 퇴계학맥(退溪學脈)을 잇는 주리파(主理派) 학자(學者)들이다. 이는 퇴계(退溪)가 주자학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곧 퇴계가 직접 ≪주자대전≫을 완독하였고, 주자의 편지를 추려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관서유감> 시를 수용하고 그 맥(脈)을 잇는 사람은 영남지방, 그것도 퇴계학맥과 직결된다. 조선(朝鮮) 22대 임금인 정조(正祖) 또한 남인(南人)을 중시하였기에 퇴계학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셋째 용사(用事)를 통한 <관서유감>시에 나오는 어휘(語彙)를 수용한 경우이다. 조선 시대 시인들이 주자의 <관서유감>에 나오는 어휘(語彙)를 빌려 쓴 경우가 대단히 많다. 첫째는 제목을 수용한 경우이고, 둘째는 제1수(首)의 어휘를 용사한 경우, 셋째는 제2수(首)의 어휘를 용사한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지역에 관계없이 많은 시인들이 주자의 시에 나오는 어휘를 수용하고 있다. 특히 16세기 이후의 작품에서 주자의 이 시에 용사한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또 이들은 자신들의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생활공간의 이름도 주자의 <관서유감>에 나오는 시어를 빌려 쓰고 있다. 이는 그만큼 주자의 이 시가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This script is considered about how korea’s poets accepted Juja"s 〈Felts after reading〉. It was exported to Korea and started to be accepted from end of Korea era. Especially got attention again by members of a Confucian school of definite view of reason after 16c. Toegye Lee, Hwang was first person who gave the meaning to 〈Felts after reading〉"s phrase. After ShinJeungmo, KimSangjin, Jungjo, Kwak Jongseok translated the poem in their on way. To look at these peoples, except Jungjo and KimSangjin, they come from Kyeungsang region, were influenced by Toegye. 〈Felts after reading〉"s aspect of acceptance can divide into 3 ways. First of all, receive the title 〈Felts after reading〉. In this case, content is different from Juja"s 〈Felts after reading〉. Didn’t compose a rhyme in response, form is various, such as 5 or 7 alphabets in 1 line of verse, phrase or style of chinese poetry. This kind of title was appeared end of 16c. Who come under this tendency were mostly from Youngnam region’s scholars. Secondly, acceptance of form and content by sum, having a loan of meter. Every poets who"s related, accepted much Juja"s 〈Felts after reading〉"s form, contents. All these people are scholars from Youngnam region. Followers of a Confucian school of definite assertion of reason, which is generation of Toegye’s study line. This means no difference from Toegye was interested in Juja"s. Can say Toegye was interested in Juja"s. Toegye completely read 〈The complete book of Juja(朱子大全)〉by himself, selected Juja"s letter and made 〈The essentials of Juja"s letter(朱子書節要)〉. As this reason, who accepted, inherited 〈Felts after reading〉, directly connect to Youngnam region, especially Toegye line. Jungjo, who was 22nd king of Chosen, also has deep connection with Toegye"s line, because he liked the school of south. Thirdly, inherited lexical in poet through quotation of old history. In this case, many poets from Chosen era borrowed lexical from Juja"s poem. Here are the cases. Firstly, inherited title. Secondly, quote the lexical from the first poem. Thirdly, quoted vocabulary from the second piece. This case there is no correlation with region, many poets accepted lexical from Juja"s poet. Especially, after 16c, many poems using of an event of the remote past from Juja"s. Moreover, they borrowed lexical from 〈Felts after reading〉 not only poem but also name of living space. This means the poem from Juja"s is rooted deeply in Chosen’s erudite people’s consc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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