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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금성의 위치 비정

        황보은숙 동국대학교 WISE(와이즈)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 2009 新羅文化 Vol.34 No.-

        The assumption of the Geum-seong location which recorded on the history book (Samgooksagi) is difficult because it still haven't its ruins. So this study tried to find out the location of Geum-seong comparing with Weol-seong(the next palace to Geum-seong) in the documents and the archaeological studies and found out its location “Hwangseong-dong” because of the only earlier place than Weol-seong in the Gyeong-ju basin. And the other reason is the Gyeong-ju basin was swampy because of the flooding that came from the rivers on the western, southern, and northern in ancient time, so there wasn't any place to live in the Gyeong-ju basin. And this study includes many archaeological excavation cases and the ancient documents to prove the topographical and the environmental conditions of the ancient Gyeong-ju basin.

      • KCI등재

        신라왕경의 도시적 발달

        황보은숙 동국대학교 WISE(와이즈)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 2008 新羅文化 Vol.32 No.-

        본고에서는 지금까지 경주분지 내에서 발굴조사된 신라왕경의 유적, 특히 도로유적을 중심으로 신라왕경의 발달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신라왕경의 발달은 6세기 중엽에서 통일 이전까지의 왕경의 형성기, 7세기 후반, 즉 통일 이후에서 8세기 중반까지의 왕경의 확산기, 마지막으로 8세기 후반 이후를 왕경의 완성기로 구분할 수 있었다. 또한 현재까지 보고된 경주분지 내 왕경유적을 통해 그 형성기의 도시유적들이 월성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파악, 당시의 궁성이 월성이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월성 남쪽의 (전)인용사지 등의 유적을 통해 왕경 형성기 중에서도 이른 시기의 도시유적은 기존의 주거지를 그대로 이용, 최대한 기존의 주거군을 유지하는 식의 소극적 도시화를 진행시켰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 왕경의 확산기 및 완성기의 도시유적은 방의 구획을 계획에 두고 축조되었으며, 완성기의 도시유적은 형성기의 소극적 도시화에서 유지되었던 초기의 도시유적에 대한 재개발까지를 포함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 금까지의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가장 늦은 시기의 도시유적 축조지역이 현재의 시가지 중심인 성동동 및 서부동 일대로 8세기 중반을 상회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도시유적 이전에 축조된 폐기장적 성격의 수혈유구, 토층 등을 통해 이 일대가 북천의 범람으로부터 8세기 전반까지도 자유롭지 못했으며, 이는 8세기 이전으로 편년되는 그렇다할 건물지 등의 유적이 확인되지 않음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 경주분지 내 원삼국시대 유적의 이해 - 황성동유적과 월성 주변유적을 중심으로 -

        황보은숙 경주사학회 2009 경주사학 Vol.0 No.30

        본고는 경주분지 내 유일한 원삼국시대 유적인 황성동유적과 월성 주변유적의 관계에 대한 대강의 모식도를 그려보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두 유적의 시기적 분포양상을 파악해 서로 간의 상관관계를 상정하였으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당시 경주분지의 자연환경을 지리적·고고학적으로 복원하고 두 유적이 공반한 제철유적을 파악해 보았다.

      • 新羅王京에 나타난 自然現像 - 三國史記 新羅本紀 記錄을 中心으로 -

        김호상,황보은숙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06 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Vol.27 No.-

        본 논문에서는 『三國史記』 「新羅本紀」에 나타난 기록 중 자연현상과 재해관련된 기록을 중심으로 신라왕경 범위 내에 일어난 현상에 한정하여 그 변화를 살펴보고 정치중심으로만 해석한 나머지 선학들이 간과하였던 몇 가지 자연현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와 함께 신라왕경에서 일어났던 자연현상을 『三國史記』 「新羅本紀」에 나타난 기록을 중심으로 정리하여 앞으로 이런 방향에 관련된 연구를 할 분들이 자료를 찾는 수고로움을 조금이나 덜 수 있도록 표로 작성하였다. 한편, 신라왕경에서 나타난 자연환경에 대한 기록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신라왕경에 나타난 바다에서 일어난 자연현상으로 적조현상이 그 대표적인 것이며, 이 적조현상은 3回에 불과하지만 기원후 161년 아달리니사금에서부터 기록되어 모두 음력 7월에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의 적조현상이 일어나는 月과도 같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신라왕경에 있어 땅에 나타난 자연현상으로는 地震 48回, 洪水 29回가 기록되어 있었으며, 오늘날과 같이 경상도지역의 지진활동이 가장 활발히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 함께 홍수는 고대사회에서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므로 통치자가 가장 염려했을 뿐만 아니라 지배자들이 직접적으로 다른 재해보다 피해지방을 구제하는데 중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셋째, 신라왕경에 나타난 하늘의 현상으로는 黃紗 6回, 颱風 23回, 雨雹 22回, 서리 24回, 벼락 9回, 안개 3回, 暴雪 13回, 日食 30回, 彗星ㆍ流星과 관련한 기록이 70回로 확인되었다. 특히 일식과 유성과 혜성 등의 기록 외에 황사현상과 怪雨 등의 현상이 신라왕경에서 일어났던 점을 기록하여 둔 고대인들의 천문관측의 우수성과 정밀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This paper examines the changes of natural phenomenon in Silia capital based on the records of 『三國史記』 「新羅本紀」, including passing it over by other scholars. And the changes of natural phenomenon in Silia capital is made a list in tabular form for the other researchers. On all the records about natural phenomenon in 『三國史記』 「新羅本紀」, these could be found: First, red tide, representative phenomenon in the sea, is only 3 times of records in 『三國史記』 「新羅本紀」 and all of them were occurred in July from Adalla king's days. In these days red tide also is occurred in same season compared to the past's. Second, there are 48 times of earthquake and 29 times of flood records in 『三國史記』 「新羅本紀」 and most of them were occurred in same province compared to these days. And flood influenced on the people heavily in ancient society, so administrator worried about it extremely and tried to relieve it from people above all things. Lastly, there are 6 times of yellow dust, 23 times of typoon, 22 times of hail, 24 times of frost, 9 times of thunder, 3 times of fog, 13 times of snow, 30 times of solar eclipse and 70 times of comet and shooting star of records in 『三國史記』 「新羅本紀」. Especially there were our ancestors' excellence and precision in records of yellow dust and flog rain in addition to records of solar eclipse, comet and shooting star.

      • 崇福寺 伽藍配置의 檢討

        최순조,황보은숙 경주사학회 2011 경주사학 Vol.0 No.33

        신라왕경에는 법흥왕의 불교 공인(528년) 이후 국가와 왕실 및 귀족의 지원 아래 수많은 사찰이 창건되었다. 신라 상대(중고기)에는 이른바 7처가람으로 불리는 흥륜사, 영묘사, 영흥사, 황룡사, 분황사 등이 창건되고, 중대에는 성전사원을 비롯한 굴불사, 불국사, 석불사, 보문사 등 신라왕경의 불국토사상이 사찰창건에 투영되는 특색을 보이고 있다. 하대에는 신라 왕실과 귀족들의 원찰이 주로 창건되어 진다. 현재까지 신라 寺址에 대한 문헌 및 금석문 자료와 지표조사, 시․발굴조사 등을 통해 축적된 고고학적 자료 등을 바탕으로 신라왕경 內 200여 개 소의 寺刹이 확인되었다. 그 중 현재까지 법등이 이어져 오거나 지표조사나 발굴조사에 의해 가람배치를 파악할 수 있는 寺址는 분황사, 기림사, 사천왕사, 감은사, 불국사 등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 조사된 사찰들의 창건시기가 명확하고 또 신라의 각 시기대에 고루 분포하고 있어, 이들을 통해 신라사지의 가람배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숭복사는 최치원이 지은 사산비명 가운데 「大崇福寺碑銘」이 있었던 절이며, 이 비명은 다른 세 비명과 달리 신라 왕실에서 세운 願刹의 내력을 기록하고 있어 주목된다. 숭복사에 대한 조사는 일찍이 일본인 학자인 후지시마에 의해 진행되었고, 절터를 조사한 후 현상에 대한 실측도를 작성한 후 가람배치에 대한 추정 복원도를 작성한 바 있다. 본고에서는 후지시마의 복원도를 살펴본 후, 1차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동회랑지와 2차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기와무지를 바탕으로 남회랑의 위치를 추정하고, 전체적인 사지의 영역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후지시마가 복원한 회랑지보다 동서회랑 간의 간격은 7m 정도 좁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남북회랑간의 간격은 14m 가량 넓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었다. 이는 발굴조사 결과를 근거로 복원한 것으로 후지시마가 작성한 복원도와 비교해 보다 사실에 가까울 것으로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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