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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涵虛得通禪師의 『彌陀讚』에 나타난 正報莊嚴 연구

        한태식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08 佛敎學報 Vol.0 No.48

        There was a major political change and a consequent ideological change in Korean peninsula during the period when Zen Master Hamhuh-Deuktong existed (1376-1433). Buddhism was a state religion during the political ruling era of Koryo dynasty. Koryo dynasty’s ruling era ended, however, a new Chosun dynasty’s ruling era began with the first king Lee in 1392. Furthermore, the idea of Chosun dynasty was founded by Confucianism, and hence Chosun dynasty drove out Buddhism by employing a policy of worshiping Confucianism and rejecting Buddhism. In this violently shaking era, Buddhists once made great efforts in keeping the dignity of Buddhism and protecting Buddhism from the policy of rejecting Buddhism at that time. Among various works of Zen Master Hamhuh-Deuktong, this dissertation study focused on his work of the ‘Praise to Amitabha’, which is related with the Pure Land. The prayers’ pattern takeson Kyunggi style verse which was one genre of traditional literature in Korea. The prayers take serious consideration on rhythm like as a song. Even though its pattern takes on Kyunggi style verse, Korean literature scholars announced that its pattern is not an orthodox one but a transformed Kyunggi style verse because it lacks in the essential sentence of orthodox Kyunggi style verse (such as ‘kyung gui aduhani igo’ ㅡ景 긔 엇더ㅎ니잇고). The prayers are presumed to use in a ritual performance of Buddhism. And it seemed that the prayers had been composed for wishing the dead being reborn in Paradise. This dissertation attempts to study on the prayers in a light of Buddhist Sutra rather than in an aspect of Korean literature. The prayers are mainly composed of the contents of the immeasurable bliss sutra which belongs to Pure Land Three Sutra. The prayers’ contents mention about the virtue of Amitabha, the virtue of chanting a prayer to Amitabha, and the praise to Amitabha. In his first chapter of the prayers, called as a Jaeiljong-jingywha, Zen Master Hamhuh-Deuktong states that Amitabha and sentient beings are not dual being in the place of original Buddha nature, and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the Pure Land and the Impure Land, but Amitabh revealed the magnificence established by the great compassion power in order to save all sentient beings, and this is what called a land of magnificence. In his last tenth chapter of the prayer, called as a Jaesipgo-chowonjeng, he pointed out such ideas by concluding that the mind is the Pure Land and the original self nature is the Amitabh. Zen Master Hamhuh-Deuktong’s source of Buddhism thought coincide with Zen Master Wonhyo’s One mind-Pure Land theory. We could be sure about this conclusion by observing an invocation to Buddha Zen, which has been prevailing in the Korean Buddhism, An invocation to Buddha proclaims that the mind is the Pure Land. ‘Praise to Amitabha’ is the prayers for right retributive magnificence centering around Amida Buddha and residents of paradise. It particularly praises both the absolute authority of Amitabha and the superior virtue of Amitabha’s original vow power. It also emphasizes that mundane sentient beings are easily able to receive a mercy from Buddha by the virtue of an invocation to Buddha. Thus ‘Praise to Amitabha’ is the prayers that would lead public generals into the way of accumulating the virtue of an invocation to Buddha throughout the easy pattern of Kyunggi style verse, while it contains the teachings of Pure Land sect. 涵虛得通(1376-1433)가 生存하였던 시기는 韓半島에 있어서 큰 變化가 있었다. 佛敎를 國敎로 삼았던 高麗가 滅亡하고 1392년에 李太祖의 새로운 朝鮮王朝가 誕生하였다. 특히 朝鮮은 建國理念을 儒敎에 두고, 佛敎를 배척하는 崇儒排佛政策를 施行하였다. 이러한 격동기에 불교의 위상과 排佛政策을 막아 내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기도 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函虛得通禪師의 여러 가지 측면 중에서 정토관련 「彌陀讚」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찬문의 형식은 우리나라 문학의 한 장르인 경기체가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노래가사와 같이 운율을 중시하고 있다. 경기체가이긴 하여도 경기체가의 기본적인 요소인 ‘ㅡ景 긔 엇더ㅎ니잇고’라고 하는 문장이 생략된 변격격형의 경기체가임을 국문학자들은 밝히고 있다. 이 찬탄문은 불교의식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망자의 왕생극락을 위하여 지어진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본 논문에서는 국문학적인 측면보다 불교교학적인 면에서 다루었다. 특히 정토삼부경중 『無量壽經』을 중심으로 아미타불의 위덕과 염불공덕 및 아미타불찬탄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함허선사는 먼저 第一從眞起化에서는 眞如本性의 자리에는 아미타불과 중생이 둘이 아니며, 정토와 예토과 달리 없지만 중생제도의 대비원력으로 그 장엄을 나투었으니 이를 幻住莊嚴土라고 한다. 이러한 논지는 마지막의 第十高超圓證에서 唯心淨土 自性彌陀로 결론을 내고 있다. 그의 불교사상적인 원천은 元曉의 一心淨土論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결론이 한국불교에서 주창하는 唯心淨土의 念佛禪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彌陀讚」은 아미타불과 극락대중의 중심으로 한 正報莊嚴에 대한 찬탄문이다. 특히 아미타불의 위덕과 본원력의 수승한 공덕을 찬탄하고 그로 인하여 세운 염불공덕으로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쉽게 부처님의 가피를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정토교학을 쉬운 경기체가의 형식을 빌어 일반민중들이 누구나 아미타불을 찬탄하고 염불공덕을 쌓아 갈 수 있도록 인도하기 위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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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용성스님의 민족운동

        한태식 대각사상연구원 2010 大覺思想 Vol.14 No.-

        Master Baek, Yong-seong(1864-1940) has been studied mainly in Buddhism. This paper expanded the view to the national movement under Japanese imperialism. Followings are some of the essential facts. First, he played a main role in the national movement for independence. He started it by writing 『Guiwong-jungjong 歸源正宗』. He criticized the prevalence of Christianity as invading Korean traditional religion. Next, he was against Won Order, which attempted to merge Korean Buddhism with Japanese Buddhism, and participated in the propaganda section as a president. Furthermore, he was one of 33 representatives in 3.1 Independence Movement. As a result, he had suffered in the prison for a long time, but never surrendered, and continued the movement. Second, Master exerted developing the national spirit. The Japanese government tried to make Korean Buddhism like that of Japan. It declared the temple law nationwide, and formed the structure of 31 main temples. Japan deleted the requirement that monks had to be remained single, making Korean monks got married. Master submitted a white paper warning twice. which became the origin of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 after emancipation. Third, Master conducted a movement for propagation of Korean Language (Hangeul). During the prohibited period of Hangeul, he translated sutras into Hangeul and propagated them widely. His translation of sutras was not limited in Buddhism, but also was a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Last, Master Baek, Yong-seong exerted himself to national economic independence movement. He participated in the minor business, while managing farm in order to practice Seon(Zen)-agriculture Buddhism. Temples' economic independence and farm production were a part of independence movement. Therefore, all of his activities were evaluated that they were not limited to Buddhism, but also were the process of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백용성스님(1864-1940)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불교의 범주 안에서 그의 행적을 조명하였으나 그 범위를 넓혀 민족이라는 차원에서 몇 가지로 요약하여 살펴보았다. 첫째는 민족독립운동이다. 그의 독립운동의 시작은 『歸源正宗』의 저술에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서구 기독교의 범람은 우리 민족의 고유 종교의 침략으로 보았다. 다음으로 조선불교를 일본 조동종에 병합하려던 圓宗에 반대하여 臨濟宗中央布敎堂의 개교사장으로 참여하여 활동한 것도 민족운동의 하나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그가 민족대표로 된 것은 3,1독립운동의 33인으로 참여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오랜 옥고를 치르고 고통을 겪었지만 그는 평생토록 지조를 지키고 끝까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둘째는 민족정신 진흥운동이다. 일제는 민족정신말살정책의 하나로 한국불교를 왜색화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전국에 사찰령을 발표하여 전국의 사찰을 31본사제도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주지의 자격에서 독신비구조항을 삭제하여 한국승려들을 대처화하였다. 이에 반대하여 대처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비구승단이 되어야 함을 주창하는 불교정화운동의 건백서를 2차에 걸쳐 제출하였다. 이것이 해방이후 대한불교조계종 탄생의 시원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민족전통불교의 회복운동이며, 민족운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는 한글보급운동이다. 그는 일제가 한글 사용을 금지하던 시기에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보급하는데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이러한 경전번역사업은 단순한 불교적인 차원이 아니라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운동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넷째는 민족경제 자립운동이다. 그는 광산업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직접 농장을 개간하여 禪農佛敎를 실천하였다. 사원경제의 자립과 생산불교의 실천은 민족경제의 자립을 통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의 모든 활동은 단순히 불교적인 차원이 아니라 민족의 독립운동과 연관되지 않음이 없는 민족운동의 전개과정으로 평가하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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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각사 창건 시점에 관한 제문제

        한태식 대각사상연구원 2007 大覺思想 Vol.10 No.-

        Zen master Yong-Sung finished his practice in the mountain, and went to Seoul. At first he visited church and cathedrals. He realized how Buddhism fell far behind, and made a firm vow of dissemination in the cities. Before three months, he developed hundreds of Buddhists at a layman's house. He started to build the Taegak-sa temple in order to broaden and systematize the areas of dissemination. Regarding the first of year of building the Taegak-sa temple, some says April 8, 1911, while others 1914, and 1916. Among them 1916 is the strongest because the master himself told about it. Therefore, we cannot help but accept the starting year as 1916. After he was released from the prison for the independent movement, the Taegak-sa temple was already abolished. He rebuilt the Taegak-sa temple at 2 Bongil-dong in 1922. Here he earnestly conducted dissemination, teaching of dharma, independent movement, Buddhist refreshment movement, struggle against Japanese colonialism, as well as Taegak-Kyo movement. 용성선사는 그동안의 山中禪會를 정리하고 48세에 서울로 상경하여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 다른종교의 집회장소인 교회와 성당이었다. 여기서 불교의 열세함을 절감한 그는 도시포교의 원력을 세우게 되었으며, 처음으로 실천한 곳이 姜氏 신도집이었다. 포교 석 달이 채 못 되어 수백명의 신도를 교화하였다. 신도집에서는 한계가 있으므로 康永勻 집으로 이사하여 선종포교의 법규를 정하고 참선포교를 시작하였다. 아마도 이 집의 주소가 嘉會洞 211번지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1911년부터 1922년까지 주석하면서 1912년에는 寺洞 朝鮮臨濟宗中央布敎堂의 開敎師長으로 포교사가 되었으며, 한용운과 함께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수천명의 신도들을 교화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포교영역을 좀 더 깊이 있게 넓히고, 체계화하기 위해 대각사를 창건하게 된다. 처음에는 봉익동 1번지에 대각사를 창건하였다. 대각사의 창건년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1911년 4월 8일설과 1914년 창건설과 1916년 창건설이 있었다. 이 세 가지 설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있고, 명확한 것이 1916년 창건설이다. 다른 것은 타인에 의해 정리 된 것이지만, 1916년 설은 본인의 구술로 직접 언급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각사의 창건년대를 1916년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으로 철창생활을 하다가 3년만에 출옥하여 보니 봉익동 1번지의 대각사를 이미 매각되고 말았다. 그는 다시 가회동 211번지로 가 있으면서 1922년에 봉익동 2번지에 대각사를 재창건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본격적인 포교와 전법, 역경, 독립운동, 불교개혁운동, 항일운동과 더불어 대각교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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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虛應堂 普雨禪師의 『勸念要錄』 연구

        한태식 한국불교학회 2009 韓國佛敎學 Vol.53 No.-

        Master Huwoodang Bowoo(虛應堂 普雨)(1507?-1565) lived in the worst period of Korean Buddhist History, the middle of Choseon Dynasty. He made enormous efforts to revive Buddhism under the policy of ’respecting confucianism and oppressing Buddhism,’ but he was finally sacrificed as a martyr. His life went with constant hardship. and the future of Buddhism was in obscure despair. However, Queen Munjeong(文定王后)(1501-1565), a sincere Buddhist, rebuilt the policy for monks, and made new hope by selecting Buddhist elites for five contests. Master Bowoo was unhohorably killed, as a weird monk. It can be said that his highly valuable sacrifice made it possible the Korean Buddhism survive today. Adding to previous studies, this paper mainly examined Advising Buddhist Invocation Important Document(勸念要錄) which he edited, especially his motivation to do it and its structure. The paper compensated the contents of obsolete parts of ’Preface,’ and provided references for the reincarnation stories. First, his motivation was to collect stories to disseminate the Pure land thoughts and Buddhism. The book was story-telling of people’s experiences and reincarnation. It was considered to be edited in Chinese characters first, but later was translated into Korean for Queen Munjeong, who enjoyed reading in Korean. Master chose the stories of reincarnation for the Queen to learn, so the stories were mainly to influence and offer good examples for the Queen. Second, references for the ’Preface’ were not easy to find. Fortunately it is found to be takeny from Amitāyus Seminary Prediction Chapter(禮念彌陀道場懺法) in Wang Zi-cheng(王子成). The lost parts were able to be revived by comparison and research. About 90% were reconstructed. One doubt is why Master Bowoo selected many contents in Amitāyus Seminary Prediction Chapter, even in ’Preface.’ Third, ten stories, except one, are Chinese stories. The Tale of Wang-nang’s Resurrection(王郞返魂傳) was not found in the Chinese resources. The backgound of the story was like Korean stories. Fourth, ten stories were selected from 34 stories in the book 4 Birth in the West Document(往生傳錄)of Amitāyus Seminary Prediction Chapter in Wang Zi-cheng. The contents are about Queen Munjeong’s management and development of Buddhism. Fifth, the book showed the proof of Observing practice and Chanting Buddha in the sutras. Observing practice was explained mainly Amitāyur-dhyana-sutra(觀無量壽經). It taught chanting Buddha in one mind, and explained the teachings in the sutras. 虛應堂 普雨(1507?~1565)가 생존했던 조선 중기는 한국불교사에 있어서 최대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혹독한 崇儒排佛의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도 불법을 중흥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다가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어 결국 殉敎를 당하고 말았다.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으며, 한치 앞을 내다 볼 수없는 불교의 장래는 실의에 빠져 자포자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文定王后(1501~1565)의 독실한 불심에 힘입어 폐지된 度僧制度를 부활시켰으며, 승과제도를 복원하여 5회에 걸친 選佛場을 열어 조선불교의 정법안장을 계승할 인재를 발탁하여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피웠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역사적으로 妖僧이라는 가장 불명예스러운 멍애를 쓰고 순교당하고 말았다. 그는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불법의 중흥과 승단의 발전을 위해 몸을 받쳤다. 그의 爲法忘軀의 희생으로 오늘날 한국불교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행적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이미 선학들의 뛰어난 연구 성과가 발표되었으므로 본고에서는 그가 편찬한 『勸念要錄』을 중심으로 연구를 전개하였다. 특히 『勸念要錄』의 편찬 동기와 구성에 대하여 살펴보고, 다음으로 序文 가운데 마멸되어 내용을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은데 이를 보완하였다. 그리고 往生譚의 출처를 밝히고 그 의도를 규명하였다. 첫째 편찬동기는 정토신앙과 불법의 홍포를 위해 알기 쉽도록 모은 것이다. 그 내용이 영험담이나 왕생담을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체로 역고 있다. 처음에는 한문으로 편찬하였으나, 諺文을 즐거이 읽었던 문정왕후를 위하여 한글로 번역한 것을 諺解本으로 간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정왕후를 감화시키기 위해 한 편의 왕생담씩 번역한 것을 모았다고 보여 진다. 그래서 먼저 한문왕생담을 편찬하고, 그 뒤에 한글번역은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勸念要錄』은 그가 문정왕후에게 감화가 되고 귀감이 될 만한 것만을 뽑아 모은 것 같다. 둘째 序文의 出典과 복원문제는 그 증거를 찾기기 어려웠으나 다행히 王子成의 『禮念彌陀道場懺法』의 첫 부분에서 轉載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비교 분석한 결과 일부를 제외하고 서문의 마멸된 부분을 복원할 할 수 있게 되었다. 완전한 복원은 아니지만 90%정도는 가능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왜 보우는 이와 같이 서문에서 조차도 『禮念彌陀道場懺法』의 많은 부분을 부분적으로 발취하여 轉載하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셋째 여기에 소개된 11편의 왕생담 중에서 「王郞返魂傳」을 제외한 10편은 중국의 왕생담이다. 그러나 「王郞返魂傳」은 중국의 왕생담에서는 그 자료를 찾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배경이 국내로 추정된다. 넷째 나머지 10편은 모두 王子成의 『禮念彌陀道場懺法』 권4 「往生傳錄」에서 소개되고 있는 34편의 왕생담에서 선별한 것이다. 그 내용이 문정황후의 治政과 불교발전에 참고가 될 만을 뽑아서 모은 것이다. 다섯째 觀法수행과 칭명염불 및 경전상의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관법은 주로 『觀無量壽經』 중심으로 설명하고, 칭명염불과 관념염불을 하나가 되어 一心念佛이 되기를 설하고 있다. 引證은 경전상의 염불 가르침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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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bonacci 수열과 황금비의 일반화에 관하여

        한태식 陸軍士官學校 2001 한국군사학논집 Vol.57 No.-

        Fibonacci 수열과 황금비에 관계되는 많은 성질이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Fibonacci 수열과 황금비의 개념을 일반화하여 이와 관련되는 여러가지 성질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Fibonacci 수열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성질이 일반화된 Fibonacci 수열에서는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아보았고, 황금비에 대해서도 이러한 수열과 일반화된 황금비의 관련성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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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虛應堂 普雨禪師의 淨土觀

        한태식 한국불교학회 2010 韓國佛敎學 Vol.56 No.-

        The age when Zen Master Huwoodang Bowoo(1507?-1565) lived was the hardest time for Korean Buddhism under oppression. He is generally considered as a weird monk, but he was actually the martyr who sacrificed himself for Buddhism in the Buddhist history. His Seon thoughts was not inclined to Kwanhwa Seon(Zen); He declared that the Seon and Pure land are the same, that meditation and wisdom should be equally practiced, and that the three teachings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are not separate. The paper focused on his thoughts of Pure land. His method of The Buddha-Contemplation Seon was first, practicing both meditation and wisdom, recommending it to others. Second, his view on seeing the buddha and manifesting buddha: When one opens one’s mind eye, buddha would come without coming, and go without going. It means the freedom of true nature. Third, He emphasized being born in the Pure land. He taught not only the mind-centered pure land, but also pure land by Buddha-Contemplation Buddhas’names. Fourth, the Master wrote a prayer paper. He had been to many places to pray for the prosperity of the king’s family and Queen Munjung(文定王后). His secular prayer was done in the heaven altar, while his buddhist prayer was done in the dharma hall. Queen Munjung supported all this process. Even though Master himself was a Seon practitioner using his own mind power, he was so dedicated himself to reconstruction of Korean Buddhism that he asked for Buddhas’s grace and power. Fifth, he actively disseminated the Chanting Buddha Seon. He edited 『Kwanyumyeorok勸念要錄』, for the lay people and women. At the same time, wanting to widely spread it, he translated it into Korean for Queen Munjung and those who were illiterate. He was very positive of disseminating the thought of Pure land. 虛應堂 普雨(1507?-1565)가 생존 시대는 崇儒抑佛의 불교교단으로서는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그는 일반적으로 妖僧으로 평가 되고 있지만, 불교사에서는 불교를 위해 목숨을 받친 殉敎者이다. 그의 수행과 교화방편은 일방적인 간화선에만 치우치지 않고 禪敎一致, 禪淨雙修, 儒佛仙 三敎가 다르지 않음을 설하고 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그의 정토관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그의 염불수행은 첫째 念佛禪은 禪淨雙修的인 수행방법을 선택하였고, 타인에게도 권장하였다. 둘째는 見佛과 化佛에 관한 견해이다. 마음의 눈을 뜨면 부처님은 오지 않으면서도 오고 가지 않으면서도 간다고 하여 진여의 자유자재를 말하고 있다. 즉 염불삼매와 견불삼매가 둘이 아님을 말한다. 셋째는 極樂往生發願이다. 그는 각 종 疏에서 극락왕생발원을 간절히 하고 있다. 따라서 唯心淨土만을 주창한 것이 아니라 칭명염불과 指方立相的인 서방정토를 확신하고 있다. 넷째는 祈願文이다. 그는 왕실과 문정왕후의 번창과 건강을 위하여 많은 곳을 다니면서 기도발원하였다. 현세적인 그의 기도는 왕실을 위해서는 天壇에서 행하였으며, 일반적인 기도는 佛前에서 행하였다. 그리고 그 후원은 문정왕후가 內需司를 통하여 하였다. 崇儒抑佛政治 하에서 불교중흥을 위하여 그의 기도는 간절하였다. 그는 자력수행을 하는 禪師임에도 불구하고 타력신앙에 간절하였던 것은 그에게는 자력과 타력에 대한 구분보다 부처님의 가피력을 믿고 의지하였다고 보여진다. 다섯째는 淨土信仰의 홍포를 적극적으로 하였다. 그가 일반대중들이나 서민들 및 아녀자들을 위하여 이야형태의 『勸念要錄』을 편찬하였다. 이 왕생담은 국내의 것과 중국의 것을 모아서 편찬하였다. 그러면서 이를 문정왕후와 한문을 모르는 서민들에게 널리 유포하기 위해 언해본도 편찬하였다. 이를 볼때 그는 정토신앙홍포에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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