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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타늄의 소결특성에 미치는 산소함량의 영향

        최종석,이동희,최국선,길대섭,서창열,김원백,하호,Choe, Jong-Seok,Lee, Dong-Hi,Choi, Good-Sun,Kil, Dae-Sup,Suh, Chang-Youl,Kim, Won-Baek,Ha, Ho 한국재료학회 2000 한국재료학회지 Vol.10 No.7

        스폰지 티타늄으로부터 수산호-탈수소화법(HDH)법으로 제조된 부말에 고상탈산법(DOSS)을 적용시켜 만든 산소 농도 범위 1980~8450 ppm, 입경 $25\mu\textrm{m}$ 내외의 불규칙 티타늄 분말의 성형 및 소결성을 조사하였다. 250MPa의 가압력으로 냉간압축성형한 결과, 성형밀도는 69.0%~62.3% 범위 내에 있었고 산호함량 증가에 따라 직선 또는 완만하게 감소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티타늄 분말의 경도변화로 설명할 수 있었다. 최고 7%까지의 차이를 보였던 성형밀도에도 불구하고 $1100^{\circ}C$에서 2시간동안 소결한 결과, 산소함량에 무관하게 소결밀도는 90.5$\pm$0.5%를 보였으며, 결정립의 크기는$60\mu\textrm{m}$ 내외의 균일하였고, 가공크기 및 분포도 유사하였다. 소결체의 경도에 미치는 산소의 영향은 실험범위 내에서 VHN(sintered)=135.5+64.3$\times$(wt%$O_2$)의 실험식을 얻었다. 소결체의 파단면 관찰한 결과, 연성에서 취성파괴로의 천이는 소결체에의 산소함량이 2987~5582ppm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The compacting and sintering behavior of titanium powders containing oxygen in the range of 1980~8450 ppm was examined. The powders were prepared by the hydride-dehydride (HDH) and by the deoxidation by solid state(DOSS) methods. Their compaction density ranged from 69.0% to 62.3% and decreased with the increase in the oxygen content. It was explained by the effect of oxygen on the hardness of powders. Unlike the compaction density, the oxygen content did not affect the apparent density greatly being 90.5$\pm$0.5% after sintering at $1100^{\circ}C$ for 2 hours. Their average grain size was $60\mu\textrm{m}$ and the size and distribution of pores were about the same for all cases. The hardness of sintered samples showed a linear increase with oxygen and could be expressed as VHN(sintered)= 135.5+64.3$\times$$(wt{\%}O_2)$ The exami-nation of fracture surface revealed that the ductile-brittle transition occurs at oxygen contents of 2987~5582 ppm.

      • 사물인터넷 서비스 연동을 위한 블록체인 아키텍처

        최종석,허신욱,김호원,Choi, Jongseok,Heo, Shinwook,Kim, Howon 한국정보보호학회 2018 情報保護學會誌 Vol.28 No.5

        본 논문에서는 사물인터넷 서비스와 블록체인 플랫폼간의 연동을 위한 아키텍처를 제안한다. 블록체인은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데이터 신뢰성 및 안전성 측면에서의 효율성을 제공한다. 반면에 데이터 쓰기 및 읽기에 대한 낮은 성능 때문에 실제 서비스 적용하기 어렵다. 특히 사물인터넷 서비스와 같은 다량의 데이터가 발생하는 분야에서는 블록체인을 실질적으로 적용하기 어렵지만, 사물인터넷은 프라이버시 및 데이터 보안 측면에서 많은 보안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분야로써, 블록체인을 통한 데이터 추적 및 신뢰성 보안을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이 실시간성과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한 사물인터넷 연동형 블록체인 플랫폼 아키텍처를 소개한다. 실시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단일 피어 검증을 통한 실시간 데이터 관리를 활용하며, 신뢰성 유지를 위해서 합의를 통한 분산원장을 활용한다. 단일 피어 검증 데이터는 합의 과정을 거치기 이전에 데이터를 수신받은 단일피어가 분산원장과 별도의 상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실시간 데이터를 저장하여 실시간 서비스에 제공한다.

      • KCI등재

        조선 초기 종교 심성의 전환과 신사(神事) 혁신

        최종석 ( Choi Jong-suk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20 民族文化硏究 Vol.88 No.-

        조선초기에는 국가와 개인 차원에서 神에게 제사하는 일을 대상으로 하여 대대적인 혁신이 단행되었다. 국가 차원의 제사는 국가와 민인에게 공덕을 베푼 존재를 대상으로 보답과 감사를 전하는 당위적이고 윤리적 행위로 변모하였고, 개인적 치제는 官·民이 分限에 걸맞게 자신의 조상만을 제사 지내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추진되었다. 祀典과 개인적 치제 방면의 이러한 혁신은 종래와는 이질적인 종교 심성을 토대로 이루어졌고, 단순히 유교화의 진전의 차원에서 시행된 것으로 그치지 않고 명나라 초기에 새로이 등장한 종교 심성과 이를 토대로 한 각종 조치를 수용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명초의 종교 심성은 유례없이 혁신적이었고 이를 토대로 한 각종 조치 또한 그러하였으며, 이러한 각종 혁신책은 명에서 하향식으로 추진되었고 당시 현실과 괴리가커 예제와 법령을 통해 강제되었음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정착되어가기보다는 오히려 유야무야되어갔다. 이와 같은 성질의 것을 수용하여 조선초기에 추진된 각종 개혁책 역시 종래의 종교 심성과 이질적이었고 당시 현실과 괴리가 클 정도로 혁신적이었다. 神事를 대상으로 한 각종 개혁은 태조·정종대에 空轉하기는 했지만 태종대를 분기점으로 해서 구현되어 갔다. 祀典과 개인적 치제 방면의 혁신은 조선의 현실이 감당하기에 벅찬 성격의 것이다 보니, 태조·정종대에는 일부 유자 관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왕의 관행·종교 심성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혁신안은 수용되지 않거나 수용되었어도 실행·정착되지 못하였다. 그러다 혁신적 종교 심성을 수용·지향하는 태종의 즉위를 계기로, 공전되어 온 혁신안은 구현되어 갔다. 특히 사전 방면에서 그러한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사전 방면에서의 대대적이고 적극적인 혁신 행보와 달리, 개인적 치제 방면에서의 혁신은 지지부진하였다. 사전 방면의 혁신은 국가(국왕)가 확고한 의지와 지향을 지니고 탑다운 방식으로 구현해 낼 순 있지만, 개인적 치제의 경우 官·民 내에 혁신적 종교 심성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사실상 조상 제사만을 허용하는 금령을 밀어붙였다간 반발과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건에서 국가(국왕)는 금령에 의지하지 않고 긴 호흡을 갖고 새로운 심성의 확산과 禮俗의 정착을 유도하고 기다려야 했다. This paper is a research work on the situation of the offering services for ancestors or god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from the perspective of a shifting religious mentalit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major changes were carried out targeting the sacrifices to the gods on the national and individual level. The major changes in the area of sacrifices to the gods on the national and individual level were made based on a different religious mentality from the past, and were not merely implemented in terms of Confucianization, but were made by accepting various measures based on the newly emerged religious mentality and these in the early Ming Dynasty. By the way, the religious mentality of the early Ming Dynasty was unprecedentedly innovative, and various measures based on it were also the same, and these various innovation measures were promoted from the central government to the top-down, and the gap with the reality at the time was large, and even though it was enforced through ritual institutions and laws, as time passed, it became faded. In line with this, various reform measures promot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were also different from the traditional religious mentality and were innovative enough to be far apart from the reality at that time. Various reforms targeting the sacrifices to the gods on the national and individual level were not achieved in the periods of King Taejo, the founder of the dynasty, and King Jeongjong, King Taejong’s period, but King Taejong’s period served as a turning point for achieving the various reforms with the offering services for ancestors or gods. Not long after King Taejong ascended the throne, he took a measure to promote the reforms, if not all. His measure was based on the newly emerged religious mind of the time, not solely on his own will. Since then, this religious reform measures have steadily expanded. Especially, attainment in the area of sacrifices to the gods on the national level was conspicuous. In other words, the reform on the state register system of sacrifice was successfully implemented.

      • KCI우수등재

        Grand Canonical Ensemble에 기반을 둔 Simulated Annealing의 확장

        최종석(Jong Suk Choi),이원돈(Won Don Lee),이석훈(Sukhoon Lee),박래현(Nae Hyun Park),황상일(Sang Il Hwang),윤여덕(Yeo Duck Youn) 한국정보과학회 1990 정보과학회논문지 Vol.17 No.4

        Simulated anncaling은 Gibbs의 canonical ensemble에 해당되는 문제에 적용된다. Canonical ensemble은 입자의 수가 변화되지 않는 경우를 말하며, 입자의 수가 변환되는 경우는 grand canonical ensemble의 문제이다. Grand canonical ensemble에 기반을 두어 기존의 simulated annealing을 확장하였다. 이 확장된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확장된 (augmented) TSP(traveling salesman problem)와 선박조파저항 추정을 위한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를 보였다. Simulated annealing is based on the Gibbs' canonical ensemble. We exend the simulated annealing by using the grand canonical ensemble which do not fix the number of particles. To test the power of extended simulated annealing(ESA), we apply this ESA to augmented TSP and to an alternative method for selecting a reasonable number of the appropriate variables that explain the variation of the wavemaking resistance coefficients.

      • KCI등재

        조선초기 迎詔禮 운영과 『蕃國儀注』

        최종석(Choi, Jong-suk) 호서사학회 2018 역사와 담론 Vol.0 No.86

        고려말기에는 고려 측이 작성한 ‘迎大明詔使儀’에 따라 영조례가 거행되었다가, 조선에 들어서는 한동안, 정확히는 세종 10년 예조에 의해 ‘迎詔儀’가 작성되기 전까지 영조례는 명이 사여한 『蕃國儀注』‘蕃國接詔儀注’에 의거하여 치러졌다. 그런데 ‘迎大明詔使儀’는『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를 저본으로 하여 그것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어서, 고려말기 이래 세종 10년 ‘迎詔儀’의 작성 전까지 영조례는 사실상 『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에 의거하여 거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종 10년 ‘迎詔儀’는『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를 저본으로 하면서 이를 상세화한 것이었다. 이것은 의례 절차의 기본 구성뿐만 아니라 각 부분 내 세부 절차마저도 『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와 사실상 동일하였다. 『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는 명 측이 불특정 번국을 대상으로 하여 조서를 맞이하는 절차를 개괄적으로 서술한 성격의 것이었기에, 세종 10년 ‘迎詔儀’는 영조례가 이루어지는 곳인 조선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원활한 의식 거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단위의절들 간에, 혹은 단위 의절 내에 존재한 미비한 지점들을 메우는 식으로 『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를 보완 · 상세화하였다. 『세종실록』 오례 ‘迎詔書儀’는 세종 10년 ‘迎詔儀’와 의례의 구성과 세부 절차등에서 다른 바가 없다. 그렇기는 하나 세종 10년 ‘迎詔儀’가 의주대로만 의식을 거행해도 될 정도로까지 빈틈없는 매뉴얼로는 기능하지 못한 것과 달리, 『세종실록』오례 ‘迎詔書儀’는 이에 전적으로 의지해도 될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이처럼 영조례는 고려말 이래 기본적으로 『번국의주』‘蕃國接詔儀注’에 의거하여 거행되었는데-세종 10년 ‘迎詔儀’와『세종실록』오례 ‘迎詔書儀’의 작성에도 불구하고-, 그러면서도 영조례 운영의 방식은 세종대를 분기점으로 하여 달라졌다. 세종대 이전에 영조례는 『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를 토대로 하면서도 다소 편의적이고 임기응변 식으로 거행되었다고 한다면, 세종대 들어서는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에 걸맞은 ‘제대로 된’ 영조의례를 거행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영조례 실행을 놓고 禮義 등의 관점에서 문제가 될 만한 사안들을 스스로 찾아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세종대에는 그 이전과 달리 東國에서 東人이 주체가 된 이상적 문명 중화의 구현에 걸맞은 ‘제대로 된’ 영조의례를 거행하고자 한 노력이 경주된 것이다. Since the end of the Koryo dynasty, ritual for receiving the imperial order of the Ming was basically carried out in accordance with ‘Bunkukuiju’ given by the Ming Dynasty. The protocol for YeongJo Ritual in the end of the Koryo dynasty was a copy of ‘Bunkukuiju’ and its substantial portion was transcribed. Before the year 1428, the Joseon made direct use of ‘Bunkukuiju’. However, since 1428, the Joseon used ritual codes written with ‘Bunkukuiju’ as the base. They supplemented and elaborated rough ‘Bunkukuiju’. The way of operating Yeongjo ritual was changed by using the King Sejong period as a turning point. Prior to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Yeongjo ritual was based on ‘Bunkukuiju’, but was somewhat convenient and ad hoc. In the reign of King Sejong, Yeongjo ritual was operated in a desire to materialize ‘ideal’ Yeongjo ritual, which is in line with their ideological orientation. There is a movement to find solutions to problems that could be problematic from the point of view of Yeui(禮義) and the like in the process of the execution of the Yeongjo ritual by oneself.

      • KCI등재

        방대한 IoT 장치 기반 환경에서 효율적인 빅데이터 수집 기법 설계

        최종석(Jongseok Choi),신용태(Yongtae Shin) 한국정보전자통신기술학회 2021 한국정보전자통신기술학회논문지 Vol.14 No.4

        IT기술의 발달로 인해 최근 IoT 장비에 적용되는 하드웨어 기술이 저비용, 고성능 RF 및 연산장치를 사용한 스마트 시스템들로 변화되고 있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IoT 장비들이 설치된 인프라 환경에서 빅데이터 수집은 전송되는 데이터간 병목현상으로 인해 수집 서버의 부하가 발생한다. 이로인해 데이터수집 서버로 전송되는 데이터는 패킷 손실 및 데이터 처리율 감소 현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방대한 양의 IoT 장비들이 설치된 인프라 환경에서 효율적인 빅데이터 수집 기법이 필요하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방대한 양의 IoT 장비들이 설치된 인프라 환경에서 효율적인 빅데이터 수집 기법을 제안한다. 성능평가 결과, 제안하는 기법의 패킷 손실 및 데이터 처리율은 전송되는 파일의 손실없이 전송이 완료된다. 향후 본 설계를 기반으로 시스템이 구현이 필요하다. Due to the development of IT technology, hardware technologies applied to IoT equipment have recently been developed, so smart systems using low-cost, high-performance RF and computing devices are being developed. However, in the infrastructure environment where a large amount of IoT devices are installed, big data collection causes a load on the collection server due to a bottleneck between the transmitted data. As a result, data transmitted to the data collection server causes packet loss and reduced data throughput. Therefore, there is a need for an efficient big data collection technique in an infrastructure environment where a large amount of IoT devices are installed. Therefore, in this paper, we propose an efficient big data collection technique in an infrastructure environment where a vast amount of IoT devices are installed. As a result of the performance evaluation, the packet loss and data throughput of the proposed technique are completed without loss of the transmitted file. In the future, the system needs to be implemented based on this design.

      • KCI등재후보

        한국사상(韓國思想)사학(史學) : 조선초기 제후국 체제 운영의 특징과 그에대한 맥락적 이해

        최종석 ( Choi Jong Suk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3 韓國思想과 文化 Vol.70 No.-

        본고는 제후국 체제를 철저하고 온전하게 운영하고자 한 조선초기의 움직임을 부각하고 아울러 그것의 역사적 맥락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조선초기 국가의 위상이 대내외적으로 공히 중국의 外國이면서 동시에 제후국이었고 이는 ‘원간섭기’ 이래로 지속되어 온 현상이었음을 논급하였다. 그러한 후 조선초기에 ‘원간섭기’와 다름없이 제후국의 위상이 국내에까지 관철된 이유를 탐색하였다. 특히 조선에 들어 제후국의 위상 내지 제후국제가, ‘원간섭기’에서와는 달리, 자발적으로 보다 철저히 구현되었음을 주목하였다. 이상의 검토를 토대로 하여, 조선에 들어 제후국의 위상 내지 제후국제가 자발적으로 보다 철저히 구현된 움직임의 역사적 맥락을 추적하고자 했다. 곧 조선에 들어서의 제후국 명분의 견지는 기본적으로 명에 의한, 혹은 명을 의식한 외향적 행위가 아니라 중화(문명)를 보편적인 것으로 여기는 세계관 속에서 이상적 중화 문명을 구현하고자 하는 일환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았다. The Joseon thinkers` tendency and decisions were not only out of their former experiences of enduring powerful Chinese dynasties. They themselves believed that the new world order and honor codes were identical with what they pursued as universal and obligatory. And they really wanted to repair Joseon to make it a state equipped with all those things. So they relentlessly pursued their own intentions in domestic reforms, no matter Ming urged the Joseon people to do so or not. In domestic reforms, the Joseon officials rather employed certain `original` methods to fulfill Joseon`s rightful status as a vassal state(分義).

      • 휴먼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위한 뇌파 측정 장치 성능 분석

        최종석 (Choi, Jong-Suk),방재원(Bang, Jae Won),이의철(Lee, Eui Chul),박강령(Park, Kang Ryoung),황민철(Whang, Mincheol),이정년(Lee, Jung Nyun) 한국방송·미디어공학회 2011 한국방송공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 Vol.2011 No.7

        최근 사용자와 컴퓨터간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 User Interface)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중 키보드나 마우스, 리모컨과 같은 별도의 입력장치가 없이 뇌의 활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생체신호를 이용하여 사용자의 생각만으로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뇌만으로 컴퓨터와 커(BCI, Brain-Computer Interface) 시스템이 각광을 받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뇌의 생체신호로는 뇌전도도(EEG, Electroencephalogram)를 사용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P300 speller 실험을 수행하였다. P300 speller 실험을 통하여 발생된 뇌전도도를 취합하여 P300(사건 관련 전위(ERP, Event-related potential)에서 자극 제시 약 300msec 후에 정점에 달하는 정파)을 분석하였다.

      • KCI등재

        조선초기 풍운뢰우산천성황제(風雲雷雨山川城隍祭)의 수용·지속과 그 인식적 기반

        최종석 ( Choi Jong-suk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6 한국학연구 Vol.0 No.42

        본고에서는 태종대에 수용된 풍운뢰우산천성황제가 조선시대에, 구체적으로는 조선초기에 지속적이면서도 비중 있게 거행될 수 있었던 인식적 기반을 탐색하여 당시의 종교적 심성을 한층 깊이 있게 이해해 보고자 했다. 풍운뢰우산천성황제에서의 대상 신들인 風雲雷雨, 國內山川之神, 國內城隍之神은 이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다가 여말선초 시기에 이르러서야 새로이 등장한 것으로 개별성을 상실한 채 합체화되고 일반·추상화된 존재라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다. 신은 영험을 지니고 있는 인격신적 존재로, 신에 대한 제사는 그의 영험에 의지하여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하는 행위로 보는 고려시대 사람들의 감각에서 보자면, 풍운뢰우산천성황을 구성하는 이들 신에게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영험을 기대할 수 없다. 고려시대에서라면 풍운뢰우산천성황제 식의 제사는 수용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설령 수용되었다고 할지라도 유명무실화되기 십상이었을 테지만, 조선시대 동안에는 風雲雷雨山川城隍을 대상으로 한 치제가 지속적이면서도 비중 있게 설행되었다. 정례적인 제사는 물론이요 한발 시에 기우 차원에서 시행되는 비정기적인 것에서도 그러하였다. 고려말기, 특히 조선에 들어서는, 신에 있어서 영험 대신 공덕이 중시되었고 제사는 영험 있는 신에게의 기복 행위가 아니라 국가와 민인에게 공덕을 베푼 존재에 대한 마땅한 보답이라는 전대와 달라진 인식적 환경 하에서, 각각의 작용(직분)을 토대로 국가와 민인에게 공덕이 있어 온 존재인 風雲雷雨, 國內山川之神, 國內城隍之神을 대상으로 하여 보답 차원의 치제가 거행되는 것은 당연하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다만 한발 시에 기우 차원에서 시행되는 비정기적인 풍운뢰우산천성황제는 제사에 대한 생각이 공덕이 있어 온 신에 대한 치제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가뭄이라는 당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염원에서 거행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風雲雷雨, 國內山川之神, 國內城隍之神을 대상으로 가뭄 문제의 해결을 염원해서 기우제를 거행한다고 해도, 그것은 이를 통해서 가뭄이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가 아니라 가뭄으로 인해 민인들이 고통 받는 상황에서 위정자가 해야 할 바를 하는 차원에서였을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what enabled to launch and implement the Pungunnoe-u Sancheon Seonghwang ritual in significant manners in the early Choson period for better understanding of the religious mindset prevalent in that period. To contrast, the Koryo dynasty reveals that religious rituals such as the Pungunnoe-u Sancheon Seonghwang ritual had not been accepted or rarely instantiated, if any. The Chosun Dynasty, however, witnessed rituals including the Pungunnoe-u Sancheon Seonghwang ritual enacted in regular and significant manners. They include non-periodic rituals for rain in the time of severe drought as well as regular rituals. The emphasis shifted from miraculous deity[靈驗] to meritorious virtues[功德], which happened at the transitional period from the late Koryo dynasty into the early Choson. It had been widely granted that rituals ought to be observed for meritorious virtues as appropriate rewards, not praying good lucks for miraculous deity. Such change enabled rituals for Wind·Cloud·Thunder·Rain god(Pungunnoe-u風雲雷雨), Mountain·River god(Sancheon國內山川之神), and City god (Seonghwang國內城隍之神) possible as rewarding for meritorious service on their own. The Pungunnoe-u Sancheon Seonghwang ritual, as non-periodic one for rain, means more than a ritual for meritorious virtues. In spite of aiming to solve upcoming problems such as current severe drought, these rituals had served for governing classes that did what they were supposed to do for the need of people who suffered from dr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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