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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源極을 통해서 본 1910년대 陽明學 이해의 특징

          최재목(Choi Jae-mok) 한국양명학회 2009 陽明學 Vol.0 No.23

          이 논문에서는, 아직 학계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양명학 연구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보이는, 金源極(1871-1927)을 통해서 그가 ‘유교 이해’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이자 근대적 학술이 본격 유입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양명학’을 어떤 방식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던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김원극에 대한 소개는 서경석ㆍ김진량 엮음의 『식민지 지식인의 개화 세상유학기』, 최재목의 「日帝强占期 雜誌를 통해서 본 陽明學 硏究의 動向」, 금장태의 『한국 양명학의 쟁점』에 부분적으로 소개되어 있고, 본격적인 연구에 이르지는 못했다. 김원극은 그는 함경남도 永興郡 출신 유학자로, 松南, 春夢, 春夢子, 松南春夢 등의 필명을 사용하여 1908년부터 『西北學會月報』, 『太極學報』, 『大韓興學報』 등에 많은 다양한 글을 싣고 있다. 『태극학보』에는 주필로 활동하였고, 西北學會에서는 副總務로 활동하던 중 1909년(明治四十二年) 11월 11일 伊藤博文 被擊事件 嫌疑者로서 眞相調査를 받았으며 1910년에는 朴殷植에 이어 『서북학회월보』의 주필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1934년 11월 29일자) 기사에 따르면 「한학과 경제학을 겸비한 정치객이었던 바 그 외에도 문맹퇴치에도 노력하여온 드문 지사이었던 바 지난 소화 2년 8월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되어 있다. 김원극은 유교를 1910년대 당시의 서세동점, 약육강식의 세계사적 현실에 맞도록 근대적, 실천적으로 이해할 것을 주장하였다. 특히, 그의 개혁적 특성은 이태리 건국 삼걸의 강조하고 그러한 기풍을 한국의 청년들에게 계몽할 것을 기대하고 촉구한 데에서, 아울러 유교를 서구 기독교에 대항할만한 근대적 콘텐츠(교리, 텍스트 등) 및 종교적 체제를 갖추도록 요구한 바에서 잘 드러나 있다. 이 점에서 그는 수구적 보수 유림들과 사고가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김원극은 박은식의 대동교 정신에 동조하는 유교 개혁 쪽에 서 있었다. 그는 유교의 본질은 계승하되 구체적 내용들은 한국의 지금ㆍ여기에 맞는 ‘時中’의 유교를 지향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는 유교가 새로운 체제로 개혁하고 나아가서 利用厚生 및 국민ㆍ청년계몽이라는 세계사적 문명에 발맞출 수 있는 학술이어야 함을 적극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의 유교에 대한 관점은 그대로 양명학 이해에도 적용된다. 김원극의 양명학 이해는 「明代諸儒의 學說」과 「王陽明學論」에 잘 드러나 있는데, 먼저 「明代諸儒의 學說」에서는 양명학과 불교의 ‘합일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양명학과 불교의 합일론은, 「王陽明學論」에서는 양명학이 나의 정신을 번롱하여 단순히 悟道를 주안으로 한 禪家와 다름을 지적하고 ‘人倫交際의 道’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각 학술은 그 세부적 특성을 유지하지만, 큰 틀에서는 합치됨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王陽明學論」에서는 근대학문의 한 장르인 ‘倫理學’으로서 양명학을 이해하는데 큰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은 의견은 아마도 1908년 그가 일본에서 유학을 하며 얻은, 당시 일본에서 유포되고 있었던 최신의 양명학 지식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추정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한국적 상황에서 근대적 학술체계로 전통사상을 이해하려 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양명학이 근대적 학문에 어울리는 특징이 있음을 평가하고자 했음을 인정해도 좋겠다. 김원극이 구상한 「倫理?」으로서의 양명학은 주체성과 능동성을 갖고 있으면서 ‘人倫交際의 道’로서 실제 사회에서 실용성을 갖춘, 化學ㆍ物理學ㆍ金石學ㆍ地質學등의 제 학문과 대등하게 내세울 수 있는 ‘인륜의 학문’(=윤리학)이었다. 다시 말해서, 1910년대의 한국에서, 외국의 신지식을 수용하고, 거기서 힌트를 얻어, 양명학을 근대적 학술로서 재해석하고자 했던 노력이 당시의 여러 양명학 연구가와 비교해 볼 때 큰 특징점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This study focus on Kim Wongeuk(金源極. 1871-1927)’s Yangmyonghak(陽明學), especially, through reexamining his the famous two articles, Myongdaejeuhakseol (the Neo-confucian’s theories in Ming dynasty of china. 明代諸儒의 學說) and Yangmyonghakron(Essay on Yangmingxue. 王陽明學論). Kim Wongeuk is a man unknown to fame to us till now. But his Yangmyonghak (陽明學), during the Japanese imperialism era in modern korea, is very important to know what is the characteristic of Modern Korea. He studied at Japan for a number of years, and so he had many information about Modern knowledge on sciences and academism in Japan. Based on this, I think, most of his knowledge on Yangmyonhak(陽明學) is also from modern japanese academic, scientific research information, such that modern japanese youmeigaku (Yangmyonghak, 陽明學) by Inouetetsujirou(井上哲次?)’s Youmeigaku-notetsugaku(陽明學派之哲學), Takasetakejiro(高?武次?)’s Ouyoumeisyouden(王陽明詳傳), and the Youmeigaku(陽明學) edited by Higasikeiji(東敬治). The most korean thought’s knowledge and action in Yangmyonghak(陽明學) are from these modern japanese. Kim Wongeuk try to define Yangmyonghak as Oriental ethics. And he think the Yangmonghak is one with the Buddhism. His the definition and interpretation on Yangmonghak are does not correspond with the original. an orthodox method. Most people in Joseon dynasty and modern Korea criticize the Yangmyonghak are very like with Buddhism, but it is a distinguishing mark that Kim Wongeuk take an active a point of view the two are fusing with.

        • 1930년대 조선학(朝鮮學) 운동과 ‘실학자(實學者) 정다산(丁茶山)’의 재발견

          최재목(Choi Jae-Mok)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2 다산과현대 Vol.4,5 No.-

          This paper is study on the meaning of rediscovery of Dasan Jeong Yak-yong in 1930"s japanese imperialism era of modern korea. In 1935, Jeong In-bo, An Jae-hong and Choi Ik-han, with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Dasan Jeong Yak-yong as a moment, begin the movements of Josonhak(Joseon Studies) that is entirely different as before. The Josonhak means that is one of the indigenous, traditional, characteristic studies for Korea, by and of the korean against japanese imperialism. The Josonhak, starts area studies in the beginning, for example in Choi Nam-seon, but it becomes to be different much in the period of movements of Josonhak. Jeong In-bo, An Jae-hong and Choi Ik-han publish a slogan Dasan Jeong Yak-yong who is the most prominent figure succeed to the intellectual line of Silhak from Bangye Yu Hyong won and Sungho Lee Ik, in the Joseon intellectual history. Then they can appropriate a new view point for nation and world in Joseon under japanese imperialism era. The other hand, Dasan Jeong Yak-yong" Silhak inherit the traditional intellectual heritage Sil(實), Silsim(實心) in korean Yangmyonhak. We can see the process of intellectual move from Yangmyonhak to Silhak. By this they seeks the best way of their own"s against the cultural, intellectual violence of imperialism under that situation. The Josonhak movements with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Dasan Jeong Yak-yong, so to speak, grope in the dark between nation and world under japanese imperialism era.

        • KCI등재

          일제강점기 정다산(丁茶山) 재발견의 의미 -신문,잡지의 논의를 통한 시론(試論)-

          최재목 ( Jae Mok Choi ) 다산학술문화재단 2010 다산학 Vol.- No.17

          이 논문은 일제 강점기의 주요 신문과 ‘잡지’에 게재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하 ‘다산’ 혹은 ‘정다산’) 관련 기사 및 논고를 토대로 당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재발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제강점기 ‘정다산’의 연구와 ‘언론 매체’가 본격적으로 만나는 계기는 바로 1930년대에 일어나는 ‘민족주의적 한국학’인 ‘조선학’ 때문이다. 그 핵심 세력은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반대하고 협조를 거부했던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의 연구자들 즉 안재홍安在鴻(1891~1965)·백남운白南 雲(1895~1979)·최익한崔益輪(1897~?) 등이었다. 그들이 펼친 조선학은 ‘조선문화 부흥’의 일환이며, 그것은 문화제국주의의 한국학인 ‘청구학靑丘學’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이 대립되는 양자는 ‘한국사회·한국문화 특수성론’으로 공통되어 있었다. 그것은 전자가 후자의 전도형태 顧倒形態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쨌든 정다산에 대한 연구는 1934년을 계기로 하여 본격적으로 착수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산 서거 98주년에 해당하는 해이다. 그들은 조선학 부흥운동을 꾀하면서 그 일환으로 다산 서거 100주년 기념사업을 계획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정약용의 사상을 비롯하여 여타의 실학자들에 대한 연구도 시작되었다. 실학 연구의 기념비적인 작업은 역시 1938년 12월 13일자 『동아일보 東亞日報』 2면 기사에 「茶山與觸堂全書 完刑記念祝寶 來十六日 明月館에서」 라고 있는 것처럼, (1934년에 시작하여) 1938년 12월에 이뤄지는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신조선사新朝雖社 출판)의 완간 작업이었다. 『여유당전서』의 출판에 참여한 인물로는 실학 관련 기사를 쓴 정인보, 최익한, 문일명文一平(1888~1936), 안재홍 등이다. 최익한은 65회에 걸쳐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독讀힘」을 발표하는데 여기서 그는 다산의 『여유당전서』의 핵심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바 있다. 일제 강점기에 다산 서거 100주년을 전후하여 일어난 조선학운동에서 ‘정다산`은 분명 우리나라 ‘위인’의 표상이자 아이콘이었다. 그리고 조선의 지식, 개념, 인물을 새롭게 영유領有하는 방법론이기도 하였다. 그를 둘러 싼 좌의 ‘세계’ 지향과 우의 ‘민족’ 지향이 서로 맞서는 가운데 ‘근대적’ 학술의 논의가 진척되었고 ‘허虛의 학’을 넘어선 ‘실實의 학’을 추구해가는 절실한 논의의 지명이 열리기도 하였다. 아울러 이 시기에 크게는 〈구(전통-구식)〉⇔〈신(현대-신식〉이 극명하게 대립되고, 그 대립 속에서 새로운 이념들이 이데올로그들에 의해 전개되었다. 다시 말해서, ‘우익’측에서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대한 대응 논리로 포괄적인 민족사상 및 학문의 전통 확립을 위해 정인보鄭寅普가 ‘얼’을, 안재홍이 ‘민족정기民族正氣’를, 분일평이 ‘조선심朝鮮心’이라는 개념을 내세워서 주도해갔다. 이에 반해 ‘좌익’측에서는 이청원, 백남운 등이 마르크스주의 역사연구 방법론을 도입하여 세계사의 보편성에서 한국사체계를 구성해 사회경제사학을 확립하는 한편 공산주의 혁명의 필연성을 정당화하였다. 이처럼 ‘세계’에 관심을 둔 좌, 민족에 관심을 둔 우의 ‘시점視點’은 정다산, 실학, 나아가서는 조선학을 서술해가는 방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바로 정다산 논의는 ‘민족民族’과 ‘세계世界’ 사이에서 새로운 연구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This paper is study on the meaning of rediscovery of Tasan Cheong Yagyong in japanese imperialism era, especially, here focused the media and the journal in those days. In 1935, Cheong Inbo, An Jaehong and Choi Ikhan, with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Tasan Cheong Yagyong as a moment, begin the movements of Josonhak(Joseon Studies) that is entirely different as before. The Josonhak means that is one of the indigenous, traditional, char-acteristic studies for Korea, by and of the korean against japanese impe-rialism. The Josonhak, starts area studies in the beginning, for example in Choi Nam-seon, but it becomes to be different much in the period of movements of Josonhak. Cheong Inbo, An Jaehong and Choi Ikhan publish a slogan Tasan Cheong Yagyong who is the most prominent figure succeed to the intel-lectual line of Silhak from Bangye Yu Hyeongwon and Seongho Lee Ik, in the Joseon intellectual history. Then they can appropriate a new view point for nation and world in Joseon under japanese imperialism era. The other hand, Tasan Cheong Yagyong` Silhak inherit the traditional intellectual heritage Sil(實), Silsim(實心) in korean Yangmyonhak. We can see the process of intellectual move from Yangmyonhak to Silhak. By this they seeks the best way of their own`s against the cultural, intellec-tual violence of imperialism under that situation. The Josonhak movements with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Tasan Cheong Yagyong, so to speak, grope in the dark between nation and world under japanese imperialism era.

        • KCI등재

          ‘東’의 誕生

          최재목(Choi Jae-mok) 한국양명학회 2010 陽明學 Vol.0 No.26

          이 논문에서는 경주가 낳은 두 사상가 즉 수운의 ‘동학’과 범부의 ‘동방학’을 ‘東’의 탄생이라는 ‘視點’에서, 관련 자료를 활용하여, 다시 조명해보면서 범부는 신라 -경주로부터 내려오는 풍류를 잇는 수운의 혈맥을 다시 잇고 있는 것이라 보았다. 먼저 수운과 범부의 ‘東’이란 은유의 배경 찾기로서 다양한 ‘東’의 의미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근대기 일본의 논의까지 안목에 두고 살펴보았다. 즉, 〈‘東’ - ‘日出’ 지역 쟁탈전〉, 〈‘西’에 맞선 ‘東’이라는 시점〉, 〈‘東洋’의 의미〉,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 〈‘빛은 동쪽에서’(Ex Orient Lux) - 한국의 ‘동/동방’ 찾기: 元曉, 塞部〉, 〈타고르가 말한 ‘東方의 등불’ 코리아(조선)〉, 〈‘東’의 우월성’, ‘東洋思想’의 등장〉, 〈근대기 동아시아의 ‘동양’ 논의 -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의 ‘동양’-‘아시아’라는 개념논의 - 이 그것이다. 이것은 최치원 등에 의해 ‘동’으로 대표되는 ‘신라 -경주’- 수운의 ‘동학’- 범부의 ‘동방학’으로 전승되는 문화사적 고리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어서 수운의 ‘동학’과 범부의 ‘동방학’이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몇가지 증거를 들어 논의하였다. 즉, 〈최근 신라-경주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 〈수운, 범부의 ‘해동’-‘신라’-‘경주’로의 눈돌림〉, 〈수운의 ‘다시개벽’에서 범부의 ‘동방르네상스’로〉, 〈신라, 경주 문화의 특수성 규명의 방법-범부의 ‘오증론(五證論)’〉, 〈‘血證’論의 확대-범부의 「崔濟愚論」: 무속(巫俗), 계시(啓示), 한울님[天主]의 강림(降臨)에 주목-〉, 〈범부의 ‘사우맞음(대조화)=풍류’는 수운의 ‘內有神靈外有氣化-侍天主造化定’의 부활〉, 〈수운의 ‘仙道+武道+巫俗’(「劍訣」)와 범부의 ‘花郞道’=종교적 요소(←巫)+예술적요소(←風流)+군사적요소(←武)〉가 그것이었다. 이를 통해서 수운과 범부에게서 공통되는 요소들 ①신라-경주에의 주목, ②‘다시개벽’론-‘동방르네상스’론, ③‘내유신령외유기화’-‘시천주조화정’과 ‘사우맞음(대조화)’=‘풍류’, ④ 예컨대 「劍訣」에서 보이는 ‘仙道+武道+巫俗’의 특질과 ‘花郞道’의 ‘종교적 요소(←巫)+예술적요소(←風流)+군사적요소(←武)’의 특질이 지적되었다. 이렇게 수운과 범부의 연결을 통해 ‘동-동방’ 논의의 평가와 그 의의를 되짚어 보는 것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수운의 동학, 범부의 동방학은 ‘동=동방의 탄생’을 통해 우리 민족의 근저가 되는 ‘문화전통’의 본질적 요소들을 당시의 상황에서 재현하려는 하나의 노력이거나 운동이었음을 우리는 기어갈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래와 영화 ‘신라의 달밤’ 등은 모두 신라-경주의 발견과 재탄생을 의미했고 신라-경주가 근-현대 한국적 맥락에서 또 다른 ‘시공간’으로 새롭게 탄생되던 것처럼 말이다. This study sheds new light on the two thinkers i.e. Suun Choi Jewoo and Bombu Kim Jeongsol who are born in Gyonju of Korea. Suun advanced Donghak(the east studies) against Seohak(the west studies). And Bombu advanced Dongbanghak(the orient studies) against Seobanghak(the occident studies). The Dongbanghak of Bombu, basically, succeed the Donghak of Suun. Suun is known as a close friend with Bombu’s grandfather in Gyonju. And so, Bombu seems to have many chance to hear from his grandfather or the neighbors about Suun. This study, especially, focus on how to born the viewpoint of the east in Suun and Bombu. The two thinkers pay attention to the traditional values and traditional ethos in korean, from the ancient and medieval history to their days, because of the erosion of traditional values Pungryu(taste for the arts and a romantic turn of mind) under the influence of foreign cultures, i.e. Jujahak(Zhuxi studies) one of the Neo-confucianism, the Christian religion, and western culture. Then Suun’s Donghak against Seohak in spirit a shamanist custom as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仙道/巫俗). And Bombu’s Dongbanghak match for west in ancient and medieval culture, Pungryu of Silla, that is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keywords for building nation morals and ethics strategies. Thus, the two thinkers, who is as a tradition-minded person, asserted each Donghak and Dongbanghak studies, as the main purpose of alternative cultural vision for survival strategy in modern korea under the rapidly changing circumstances.

        • KCI등재

          咸錫憲과 陽明學

          최재목(Choi Jae-mok) 한국양명학회 2012 陽明學 Vol.0 No.32

          이 논문에서는, 함석헌이 이해, 해설한 왕양명의 「大學問」 즉 「한 사람: 王陽明, 大學問」( 함석헌전집20: 씨?의 옛글풀이 )를 중심으로 그의 양명학에 대한 관점과 그 특징을 살펴본다. 종래의 함석헌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뤄졌지만, 양명학에 초점을 맞춰서 논의한 것은 거의 없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양명학과 관련시켜 고찰해보는 이 논문은 함석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에서 살펴보는 함석헌의 양명학 이해의 특징은 (1)왕양명 만물일체론의 ‘대인’=‘큰 사람=한 사람’論: 한사상과 양명학의 결합, (2)萬物一體論의 ‘神秘主義’적 이해, (3)‘仁’의 ‘씨?’사상적 이해이다. 이 가운데서 함석헌이 왕양명의 만물일체론에 주목하고 더욱이 이것(=만물일체론)을 신비주의로 해석하고, ‘한’ 사상으로 연결시킨 것은 탁견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이단시되었던 양명학의 사상에서 ‘만물일체’론을 끄집어내고, 그것을 신비주의적 측면에서 부각시킨 점은 그간 학계에서 간과해왔던 양명학의 진수를 들춰낸 셈이다. 이것은 함석헌이 「지금같이 살림이 곧 정치, 정치가 곧 전쟁이 돼버려 죽음의 문명이 돼버린 때」라고 진단했던 1980년대 이전 군부독재시절이나 자본과 문명의 황폐화, 에너지의 고갈 등에 맞부닥친 지금의 현실에서나 여전히 시사점을 던져준다. 다시 말해서 현실에서 평가되어온, 승리해온 사상사를 뒤집어 보면서, 그 그늘에 가려진 思考와 지적資産 속에서 새로운 지혜를 찾아내어, 새 옷을 입히고, 정당한 의미를 부여하여, 실천해가는 일이다. 전통시대에 이단, 사이비라 내몰던 사상, 양명학에서 찾아낸 함석헌의 화해와 평화, 생명과 만물사랑의 메시지를 읽어내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靈昭’의 ‘靈’을 「‘얼씨고 절씨고’ 할 때의 얼씸, 양검스러움. 昭는 밝고 환함.」, ‘明德’을 「밝은 속?. 德은 바탈대로 할 수 있는 속의 힘.」이라는 등의 해석은 양명학의 연구에도 새로운 관점과 활력을 제공할 수 있는 탁견이다. 아울러, 함석헌의 저작 속에는 고난을 견뎠던 왕양명의 심경이 담긴 시 「泛海」, 「??吟」, 「老檜」 등이 소개되어 있다. 왜 그가 왕양명의 시에 깊이 共鳴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왕양명의 ‘초연’ ‘초탈’ ‘절개’에 관한 심경의 투영아니었을까. 다시 말하면 고난의 시대를 왕양명의 시를 거울삼아 건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문제를 포함하여 이제 남은 과제는 함석헌의 전저작에 흩어져 있는 양명학 혹은 양명학적 요소에 대한 종합적 고찰이라 하겠다. This study discus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Ham seok-hon and Yangmingxue(Yangming philosophy). Ham seok-hon, who is a famous christian in korea, accepted japanese Mukyoukaishugi(Non-church movement) which is originated by Uchimurakanjo. Later, it is succeed to Kim gyosin who is a famous modern korean christian, and after him it is succeed to Ham seok-hon. Basically, Japanese Yangming thoughts originated by Nakae toju of E-do period succeed to Uchimurakanjo’s Mukyoukaishugi internally in his christian viewpoint and thoughts, for example he estimate Nakaetoju as one of typical japanese four person, just Daihyoudeki nihonzin(代表的日本人). Ham seokhon accepted and interpretated Wang yang-ming’s thoughts, especially Daxuewen(Question and answer about Great learning, Daxue) which is a most famous and important one in wang’s texts, from viewpoint of Ssial(seed, a substantial in things and human) is the key words of his thoughts. And he interested in Wang’s Wanuyitirun, and he understood it as mysticism or occultism.

        • 기획논문 : 칼과 방울의 은유 -동아시아사상사에서 남명 조식 읽기 시론(試論)-

          최재목 ( Jae Mok Choi ) 南冥學硏究院 2016 南冥學 Vol.21 No.-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을 기리는 기념관에는 그가 허리춤에 늘 차고 다닌 ‘경의검(敬義劍)’이라는 단검과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이 보관되어 있다. ‘내명자경(內明者敬)’과 ‘외단자의(外斷者義)’라는 글자가 새겨진 ‘경의검’은 ‘안으로 나를 깨우치는 ‘경’과 바깥으로는 결단 있게 행동하는 ‘의’를 겸한 것이다. ‘성성자(惺惺子)’는 걸을 때마다 방울 소리가 울리고 울릴 때마다 봄가짐을 살피고 반성했던 성찰의 도구였다. 동아시아 사장사에서 조식처럼 칼과 방울을 지니고 다닌 유학자는 없었다. 적어도 유학자가 칼을 차고 다닌 것은 일본의 사무라이라면 모르겠으나 조선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그래서 남명을 두고 ‘무사적-노장ㆍ법가 기질-실천적’동의 코드를 찾아내어 평가하기도 한다. 어쨌든 칼은 붓처럼 부드러운 이미지가 아니다. 굳센-강한 ‘힘’ 혹은 ‘위엄’, ‘단호함’, ‘강직함’, ‘접근금지’ 둥을 상칭한다. 그래서 문(文)-문인(文人) 이 아닌, 무력(武力) -병법 (兵法),무인(武人)-병가(兵家)의 이미지를 갖는다. 남명이 지녔던 칼-방울은 시각적(비디오적)-청각적(오디오적) 요소가 잘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 역사에서 칼-방울의 이미지는 무당, 단군신화, 신라의 화랑도, 남명, 이순신, 동학 등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남명의 칼-방울은 우리 역사의 속의 문화사상 맥락과 연관시켜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남명이 보여준 칼과 방울 또한 그의 사상과 지향을 명확히 읽어낼 하나의 코드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텍스트 내부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조선의 역사와 사상문화를 가로질러 저류해오는 사유형식에서 찾아볼만한 것이었다. 보통 문(文)의 국가로 인식되는 조선이 남명에게서 무(武)적 이미지는 새롭게 번안되는 특이한 대목을 필자는 ‘은유’로 보고 접근해 본 것이다. 남명이 지녔던 칼방울의 은유적 의미를 동아시아의 사상사 속에서 성찰해보는 것은 종래의 문헌학적인 연구를 넘어서서 문화적 은유 혹은 상징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시도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tudy the metaphor of the sword and bell in Nammyeong Josik, who was always attended it his waist. So, His the sword and bell is exhibited in his memorial in Jinju. The sword and bell is found in the history of Korea, in addition nammyeong, for example, the text Samgukyusa written by the monk Ilyeon, Hwarangdo in Silla, Yi Soonshin the navy General of Joseon, Donghak founded by Choe Jeu, Shin Chaeho and the President Park Chung-hee in modem Korea. The basis of the history of our country, like this, is also the spirit of the soldier(Mu武). So called Mun(文) , Confucian intellectuals are weak. But the soldier(Mu) are strong. So Shin Chaeho pointed out the reason that Korea dominated by the Japanese is because of the tradition of Confucian intellectuals Mun. The sword and bell in Nammyeong Josik was to rigorously check himself. It does not stop there. It shows his ideological orientation. In this paper discussed, carrying a knife with drops on body in Nammyeon, is also located in the context of Korea``s history and culture. Also discussed it is hard to find the East Asian Confucian tradition, except Wang Yangming who is founder of Yangminghak, practical and dynamic Confucians, in Ming dynasty. So nammyeong is sometimes compared with Yangming``s characters.

        • KCI등재

          자연과 양명학

          최재목(Choi Jae-Mok) 한국양명학회 2000 陽明學 Vol.- No.4

          This is a study on What is Nature in Wang Yang-Ming Philosophy. A word, ziran(自然), is seen in Chuanxilu(傳習錄) which is the main text of Wang Yang-Ming. But it does not have the same meaning as 'nature' does. Ziran originally means 'by itself, 'naturally', or 'of it's own course'. This is true in Chuanxilu as well. In this study we answer the question of What is Nature in Wang Yang-Ming Philosophy. Wang Yang-Ming, in conclusion, considers 'nature' as all things(tiandiwanwu. 天地萬物) in the universe. He regards Man and all things as one body(yiti. 一體), which originally respond to each other. They are an organic and cosmic unit. Thus if one of them is inflicted it affects the rest automatically, he thinks. This is subject to a cosmic mutualism of Wang Yang-Ming philosophy.

        • KCI등재후보

          일반논문 : 「凡父文庫」를 통해서 본 凡父金鼎卨의 東洋學지식의 범주

          최재목 ( Jae Mok Choi ),이태우 ( Tae Woo Lee ),정다운 ( Da Un Jeung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08 儒學硏究 Vol.18 No.-

          이 논문은 종래 凡父金鼎卨(1897-1966. 凡父는 호)(이하 범부)의‘東洋學지식의 범주’를, 현재 영남대학교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凡父文庫」(1974년 설치)를 통해서 살펴보는 것이다. 우선 범부의 동양학적 지식 형성을 추측해 보기 위해 그의 「연보」를 살펴보고, 「범부문고」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들을 내용별, 출판년도별, 발행지별로 분류·정리하면서 범부가 탐독한 지식의 윤곽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아울러 「범부문고」목록은 부록으로 첨부하여 소개하였다. 「범부문고」중 『사부총간』 의 수적 우위로 인한 도서 다양성의 한계와 불명확한 서지사항 등으로‘「범부문고」= 범부 동양학 지식’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범부문고」의 도서들은 그의 동양학 지식을 형성하는 주요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 문고는 범부의 지식의 범위와 관심이 어는 한 곳에만 머물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학문의 전 영역에 걸쳐있었음을 말해주는 직·간접적인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연구는 범부연구를 위한 기초연구로서 범부문고의 소개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범부가 한국 현대사상사에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해서 그에 대한연구는 부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는 「범부문고」와 같이 그의 지식 형성에 관여한 기초적인 연구와 더불어 그의 학술 전반과 관련한 당시의 지식·지식인 네트워크도 연구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This is a study on the relation between Bombu Kim Jeongseol(凡父 金鼎卨, 1897-1966)`s Oriental studies and 「Bombumungo(凡父文庫)」. The 「Bombumungo」 is Kim`s collection of books during his lifetime, which had found in Yeungnam University Library by donation of Kim Jeongseol`s son since 1974. Kim Jeongseol, who was the first dean of the Gelimhaksuk(鷄林學塾) of Geongju, is always in everyone´s mouth as a potential genius. He, under Japan`s colonial rule of Korea, he went to Japan and studied at Touyo University and Tokyogaikokugogakkou of tokyo. And he also studied as an irregular student at Tokyo and Kyoto University. He, moreover, after this, teaches as a part-time lecturer or an honorary professor at Tenri University and Hiezansenshugakuin of Japan as well as Bulgyojeunganhaklim of Korea. As like this, internal and external in those days, he has a name for his great learning. He is widely informed such as oriental and occidental philosophy, and history, politics, linguistics of korean and so on. In other words, he covers a wide area as well as his reading also reach everywhere. The 「Bombumung」reveals a cross section of Kim`s category of knowledge above-mentioned, specially in oriental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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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명학을 통해서 읽는 세상과의 ‘어울림’

          최재목(Choi, Jae-mok) 한국양명학회 2012 陽明學 Vol.0 No.33

          왕양명이 知行合一, 萬物一體란 말을 자주쓰고, 三敎가合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을 보면‘一’의 사고 쪽에 발을 깊이 들여놓은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아니 사상의 저면에서 깊이 있게 살펴보면, 知行에서 이든 萬物에서이든 三敎에서이든 어떤 개개의 사물과 사안들을 획일적인 문법-틀-원리[定理]에 가두려 한 것이 아니었다. 事上磨鍊(각각의 구체적인 일(사건-사안)에서 공부해 나간다)의 이념처럼 개개의 특징과 특성, 즉 ‘個性’을 살린채로 包攝, 通攝하려는 것이었다. 상대적인 가치를 인정한 다음,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container)으로서 ‘一’을 요청한 것이 다. 왕양명이 정원의 풀을 뽑지 말라고 한 것처럼, 이것저것의 온갖 생명체들이 어울릴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으로 ‘一’이라는 사유를 요청한다. ‘一’은 각 개성적인 생명체를 담아내는 ‘하나의 그릇’이자 ‘어울림 틀’이며, 양명철학의 이념적 뿌리이다. ‘一’은 우리 전통에서보면‘包含三敎’의‘포함’과 같은 것이다. 이 포함은 개성들이 어울릴 수 있는 틀이다. 이‘어울림틀’에서는, 마치 왕양명이 ‘良知의 體用(良知之體-良知之用)’이 순환한다고 인식했듯, 上下의 구조보다는 左右의 구조로 전환된다. 여기에는 빙글빙글 돌고도는 ‘왕복순환’과 차등차별이 배제된 ‘수평-평등’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이처럼 양명학은 ‘多’라는 가치를 존중하는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양명학은 다문화적(multicultural)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로 이행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철학이라 생각한다. 어울림은 인간과 만물 存在間, 理念間, 宗敎間, 文化間에서 이뤄질 수 있다. 어울리지 못하면, 사물들은 지속하고 변화할 수 없다. 어울림은 지속과 변화의 힘을 만들어낸다. 여성성에는 세상의 말단, 허물어짐, 강함을 견뎌내는 따뜻한 말초신경이 있다. 여성성은 남성성이 미치지 못하는 온갖 낮고, 보이지않고, 어둡고 가려진 곳에 시선이 미친다. 이런 여성성에서 볼 수 있는, 아픈 세상을 만지고 찾는 따사로운 손길과 시선이 양명학에 있다. 만물과 인간과 세상과의 큰 어울림의 성찰은 태양이 없는 자리에 보이는 다른 빛들, 달과 별과 온갖 등불들, 그리고 내면의 빛들. 눈-시각을 넘어 귀-청각으로, 소리로, 그리고 온몸과 생명의 소리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것, 이것이 왕양명, 양명학의 새로운 메시지라 생각한다. Today is a multicultural society. Respect than either the value of many. We hope do together harmoniously, such as a lot of flowers in a flower garden, the majority should be in harmony with each other. Wang Yangming’ idea, I think, can play a big role in now multicultural society. Wang Yangming’s core idea, 〈Human mind is the principle(心卽理)〉 is formed away from the Han Chinese frontier alien nation. So he made a variety of things, thinking that embraces the great ideological framework. In addition, Yangming thoughts aims to be in harmony with the world all things, it is just 〈all things are one body(萬物一體)〉. His core concepts Yangji(良知, Liangzhi) is based on the basic thinking, all things that can communicate with each other. So, Wang Yangming’s thoughts are there any implications in this day? I think, as follows: Emphasis on the individuality of each human being. Interest for life. Feminine sensibility. Importance of femininity. Musical sensitivity. Care about the sun and the moon and the night than the day. Large aggressive ideology than about the personality and ability of individual assessment. Emphasis on the visual than auditory skills. Delicate spirit. Love about inanimate objects, plants, animals. A broad understanding of all things on the horizon overlooking one and s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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