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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소설의 `천편일률`을 패러디의 관점에서 읽는 법 -전기소설 『금오신화』와 『오유란전』을 중심으로

        정출헌 ( Chung Chul-heon ) 국제어문학회 2006 국제어문 Vol.38 No.-

        고전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가 고전소설의 특징으로 거론하는 `천편일률`이란 게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고전소설에서의 `천편일률`을 현대문학에서 종종 구사되는 패러디라는 관점에서 읽어볼 볼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으로 고전소설에서의 천편일률을 음미해보면, 그곳에서 `반복의 안도감`과 `변주의 새로움`이 빚어내는 독특한 미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전근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한시가 그러했던 것처럼, 고전소설에 있어서도 典範을 적절하게 모방·활용하던 창작관습은 존중되어야 한다. 고전소설에서 모방작·아류작이라는 불명예스런 딱지를 붙이기 이전에 원작과 그것을 활용한 작품 간의 `비평적 거리`를 엄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전등신화』를 모방 또는 재창작 했다는 평가를 받는 『금오신화』를 대상으로 그 점을 따져보았다. 그 결과 『금오신화』의 <醉遊浮碧亭記>는 『전등신화』의 <藤穆醉遊聚景園記>·<鑑湖夜泛記>에서는 전혀 실감할 수 없었던 면모를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전등신화』에서의 경이로운 모티프두 개를 혼합·모방하여 전혀 새로운 서정적 미감을 자아내는 작품으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그 점, 원작과의 비평적 거리라 부를 수 있다. 어찌 보면, 고전소설사의 전개란 미세한 또는 과격한 패러디의 과정이라 부를 수도 있다. 19세기에 창작된 <오유란전>·<종옥전>이라든가 <절화기담>·<포의교집>과 같은 전기소설 작품, 이들은 모두 파격적인 패러디를 실험하며 고전소설사의 새로운 시기를 펼쳐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Whenever reading classical novels people feel that those novels are all the same on some ways. That is what we call `stereotype` as we mention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classical novels. It is necessary that the `stereotype` of the classical novels should be read from the viewpoint of parody, which is frequently used in the modern literature. When we examine the `stereotype` in the classical literature closely, we can realize the unique beauty produced by `relief of repetition` and `newness of variation` from them. As they did in the Chinese poetry in the premodern East Asian culture, it is imperative that we should respect the practice of imitating and utilizing the exemplar appropriately when writing. Before we call them dishonorable names as imitation or copy, the critical distance between original works and the works that followed the originals should be dealt with in strict fairness. Geumoshinhwa which is evaluated as imitation or re-creation of Jeondeungshinhwa is studied in this article. As a result "Chuiyububyukjeonggi" in Geumoshinhwa was newly identified as having new aspect from "Deungmokchiyuchigyungwongi", "Gamhoyabeomgi" of Jeondeungshinhwa. It is converted to a completely different work evoking new lyrical beauty by combining and copying the amazing two motives from the original works. In that respect it is called critical distance from the original. In some way the development of the history of the classical novels could be called as the process of delicate or radical parody. Tales written in the nineteenth century such as Oyuran-Jeon and Jongok-Jeon, and biographical novels such as Jeolhwagidam and Poeuigyojib all experimented unprecedented parody and unfolded a new era in the history of the classical nov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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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근대 동아시아 敍事學의 지평과 한국 고전소설의 위상

        정출헌(Chung, Chul-heon)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10 동양한문학연구 Vol.31 No.-

        우리 고전소설이 중국소설과 부단한 소통과 교섭을 통해 발전·전개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불가분의 관계는 지금까지 주로 모방 또는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져왔다. 실제로 <<수이전>>·<<금오신화>>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한․중 고전소설의 영향 관계는 전근대 동아시아 문학 창작의 실천에서 매우 중요하게 간주되어 왔던 用事, 곧 현대적 용어로 바꾸면 패러디의 관점으로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량한 중국소설의 문예적 성취를 때론 적실하게 차용하고, 때론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때론 전복적으로 변용하며 소설사를 개척해온 것이다. 그 점은 이른바 소설의 시대라 할 수 있는 17세기를 넘어서면서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명·청대에 창작된 四大奇書를 비롯하여 「西廂記」는 조선후기 소설 작가들에게 있어 하나의 모범적 典範이었고, 그것과 견줄만한 소설을 창작하고자 하는 유력한 動因으로 작용했다. 그리하여 조선후기 최고의 독서 안목을 갖추고 있던 兪晩柱가 “참으로 才情이 특이하고 首尾結搆가 갖추어져 있어 꼭 大作家가 쓴 것과 같은 작품도 많다.”고 증언하고 있듯, 중국소설의 답습이나 아류 수준을 훨씬 벗어날 수 있었다. 朴趾源의 말을 빌면, 法古創新의 경지에 다다랐다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을 구가하던 그들과 경쟁하던 소설 작가들의 분투, 그리하여 그에 버금갈 만한 작품을 산출하던 우리 고전소설계의 실천은 그에 값하는 정당한 독법 및 객관적 평가의 시각을 확보하지 못했다. 여기에서는 그런 점을 반성적으로 되짚어가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한·중 고전소설의 소통과 교섭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It is well known that Korean classic novels are developed and flourished through incessant communication with Chinese classic novels. This close connection is mostly examined in terms of imitation and influence until now. Suijeon and Keumosinhwa are the certain evidence of it. However the influential relationship between Korean and Chinese classic novels should be read from a new perspective, which is in modern term, parody that has been considered significantly in the practice of premodern Asian creation of literature. Korean novels had developed through the history of novels by appropriating adequately the literary achievement of outstanding Chinese novels, by embracing critically and transforming subversively. The development was carried out actively after the seventeenth century, the so-called, the Age of Novels. Meanwhile Seosanggi including four great classical novels in the Ming, Qing period was single most ideal example among late Joseon writers and worked as influential driving force for Joseon writers to create comparable novels. Thus Yu Man-ju who had the most excellent discerning eye on reading in late Joseon period testified, "Truly it has unique wit and is consistent. There are many great novels like the ones written by masters." These novels broke free from following the old path of imitating Chinese novels. Park Ji-Won quoted that Korean novels emulated Chinese novels and furthermore created new level of novels. Nevertheless the practice of Korean classic novelists and their efforts to compete against world best Chinese novelists at the time and to produce comparable works did not receive objective and justified evaluation. This article proposes the necessity to read the communication and connection of Korean and Chinese novels from a new viewpoint reflecting these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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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의 여성을 읽는 두 ‘남성’의 시각-『삼국사기』와『삼국유사』를 중심으로-

        정출헌(Chung. Chul-heon)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04 동양한문학연구 Vol.19 No.-

        김부식의『三國史記』와 일연의『三國遺事』는 삼국의 역사를 전해주는 귀중한 우리의 古典이다. 이들은 흔히 正史와 野史, 사대적/자주적, 유가적/불교적, 귀족적/서민적, 합리적/신비적이라는 점에서 대비되는 역사서로 평가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 두 고전을 ‘유학자/남성’인 김부식과 ‘승려/남성’인 일연이 삼국의 여성을 각기 어떤 시각으로 읽었는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살피고자 한다. 분석의 대상은『三國史記』「列傳」에 실려 있는 ‘설씨녀’와‘도미’, 그리고 『三國遺事』「感通篇」에 실려있는 ‘김현감호’으로 삼았다. 그 결과 김부식은 본래의 텍스트에 인위적인 개작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설씨녀와 도미처를 유가적 규범인 節行과 孝行에 충실한 여성으로 만들기 위해 본래의 서사를 개작했던 것이다. 한편 일연은 불교적 영험을 증명하기 위해 본래의 텍스트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는 낭군을 위해 희생한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가 아니라 관음보살의 化身일 것이라 해석했던 것이다. 그 결과 다채롭던 이들 삼국의 여성은 유가적/불교적 여념에 충실한 인간형으로 왜곡·고착되고 말았다. 우리는 이런 몇몇 사례를 통해 삼국의 여성이 인간중심적·남성중심적인 중세사회를 경과하면서 점차 생기를 잃어버리게 되는 단초를 읽는다. 순종과 희생이라는 여성의 덕목을 실천하고 있다는 讚辭를 얻는 대신. Samkuksagi(三國史記)by Kim Bu Sik and Samkukyusa(三國遺事)by Il Yeon are our valuable classics that convey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The two works generally appreciated as confucian history books in terms of authentic history book, subservien/independent, Confucian/Buddhist, aristocrats/ commons, and rational/mysterious history book, respectively. However, we focus here the two male writers-a Confucian male scholar Kim Bu Sik and a male Buddhist monk Il Yeon. A focal point will be with what viewpoint the two men read the women of the period of Three Kingdoms in their classical works. The subjects of analysis are <Seolssinyeo(薛氏女)>, <Domi(都彌〉recorded in Yeolgeon, Samkuksagi(『三國史記』「列傳」)and <Kimhyeon-gamho(金現感虎) recorded in Gamtongpyeon, Samkukyusa(『三國遺事』「感通篇」). Kim Bu Sik seems to adapt the original text factitiously. He adjusted original narrative to make Seolssinyeo and Domi’s wife faithful women to Confucian standards and filial piety. On the other hand, Il Yeon seems to interpret original text arbitrary in order to prove Buddhist miraculous efficacy. He interpreted the tiger that sacrifices herself for her loving husband is not the real tiger but the incarnation of Buddhist Goddess of Mercy. As a result, a variety of women of Three Kingdoms ended up distorted characters and sticked to female types dedicated to Confucian/Buddhist ideas. The women of the Three Kingdoms gradually lose their animation through these cases in humanistic and male-oriented medieval society. Instead, they receive praise that practice the female virtues such as obedience and sacri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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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과 전쟁포로, 굴절된 기억과 서사적 재구

        정출헌(Chung, Chul-heon) 한국고전번역원 2013 民族文化 Vol.41 No.-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삼국의 인민을 전쟁의 광기로 몰아넣었다. 수많은 병사가 전쟁터에서 죽어갔고, 힘없는 백성은 전란을 피해 전국으로 떠돌았다. 그러다가 전쟁포로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잡혀간 조선인은 최대 10만 명쯤 되는데, 그 중 7,500명 정도만 귀환할 수 있었다. 이들의 귀환 경로는 대략 세 가지였다. 첫째는 錦溪 魯認처럼 자력으로 탈출한 경우다. 둘째는 睡隱 姜沆과 月峰 鄭希得처럼 일본인의 도움으로 돌아온 경우다. 셋째는 조선에서 파견한 回答兼刷還使가 데리고 귀국한 경우이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자신의 포로체험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여기서는 姜沆의 「看羊錄」과 鄭希得의 「海上錄」, 그리고 최척의 구술을 토대로 하여 서사적으로 재구한 趙緯韓의 「崔陟傳」을 주요 텍스트로 삼아 검토하였다. 지금까지 이들 포로체험 實記類는 사실의 기록이란 측면에서 다루어져왔다. 하지만 귀국포로들은 자신의 굴욕적인 체험을 기억하는 과정에서 자기 방어기제를 끊임없이 작동시키며 일정한 굴절 현상을 일으켰다. 자신에게 불리한 과거는 기억에서 흐릿하게 처리하거나 아예 배제해버렸던 것이다. 또한 뒷사람들이 이들의 포로체험 기록을 출판물로 公刊할 때도 유사한 방어기제가 작동했다. 과거의 기억이 굴절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 결과 중앙정계에 몸담았던 강항은 「간양록」을 통해 자신의 귀국을 ‘충절의 실천’으로 돋보이도록 만들고, 재지사족이었던 정희득은 「해상록」을 통해 자신의 귀국을 ‘효심의 실천’으로 돋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최척전」의 주인공이기도 한 최척은 삼국을 떠돌아다니다가 귀국한 자기 부부의 체험을 구술할 때, 부인에게 드리워진 ‘훼절의 의혹’을 불식시키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작가 조위한은 이런 구술 사실을 바탕으로 그들 부부의 전란체험을 서사적으로 재구했던 것이다. 이런 검토의 결과, 포로체험을 담은 실기류는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 오히려 ‘기억의 서사’라는 시각에서 보다 섬세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Imjin War drove nationals of three countries in East Asia into the insanity of war. Countless soldiers were killed in the battle fields and powerless ordinary people had to wander all over the country to escape the war. Meanwhile some people got caught as prisoners of war (POW) and were taken to Japan. As many as one billion people from Joseon were taken to Japan during Imjin War and only 75,000 people among them could return to their home country. There were approximately three return paths for these people. First, they escaped by themselves, e.g. in the case of Geumgye Noin. Second, they could escape with the help of Japanese people, e.g. the cases of Sueun Gang-hang and Walbong Jeong-Heedeuk. Third, they could return to Joseon with Hoidapgyeom Seohwansa, who were envoys of Joseon to Japan. Some of them kept a record of their experience as POWs (prisoners of war). Here I have examined as my main texts Gang Hang’s Ganyangrok, Jeong Hee-deuk’s Haesangrok, and Jo We-han’s Choiceokjeon, which was reconstituted based on Choi Cheok’s oral statement. The records of POWs’(prisoners of war) experiences were treated as the record of the truth until now. However returned POWs activated defense mechanism incessantly in the process of recollecting their humiliating experiences and bent the truth to a certain degree. They made dim or even excluded for some past events that were disadvantageous to them. Also similar defense mechanism was activated when future generations published these POW records. That is why past memories went through alterations. As a result, Gang Hang who worked for central government made his returning home look like “accomplishment of fidelity” through Gangyangrok, Jeong Hee-deuk, who was a provincial nobleman made his returning home look like “practice of filial piety” through Haesangrok. When Choi Cheok, who is the hero of Choicheokjeon, dictated he and his wife’s experience while wandering three countries, he made a great effort to eliminate the doubt towards his wife’s faithfulness. Jo We-han reconstituted he and his wife’s war experience based on this oral statement. In conclusion, these documents that have POW experiences need to read with deliberate care in terms of ‘narrative of memories’ rather than ‘record of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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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소설의 특징과 그 기원에 대한 변증

        정출헌(Chung Chul heon) 우리말교육현장학회 2017 우리말교육현장연구 Vol.11 No.2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그 고전을 짓고 즐겼던 옛사람의 진정(眞情)과 공감하며 함께 걸어가는 시간의 여정이다. 그런 여정을 즐거운 마음으로 동행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향유했던 그때 그들과 눈높이를 같이하고, 그것이 산출되었던 시대를 깊이 이해하고,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진지하게 되물을 필요가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그런 고전 가운데 우리 교육현장에서 고전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소설이란 갈래는 매우 유치한 독서물로 치부되기 일쑤이다. 일대기적 구성, 권선징악의 주제, 평면적·전형적인 인간형, 비현실적·우연적인 사건 전개,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든가 편집자적 논평 등등. 그렇지만 고전소설에 대한 이런 특징 또는 통념은, 정작 우리 고전소설을 창작하고 향유했던 당대인들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주목하지도 않았던 생소한 개념이나 규정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지금 우리에게 국민적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처음 이런 고전소설의 특징 또는 통념을 발견하여 확정지었던 것일까? 우리는 그 장본인으로 근대전환기에 조선에 들어와 조선을 탐색하고 있던 재조외국인(在朝外國人)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890년부터 1892년까지 서울에 머물며 우리의 고문헌을 광범위하게 수집·정리했던 프랑스 외교관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과 경성제국대학 설립을 주도하고 조선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다카하시 도루(高橋亨)는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고전소설에 대한 선구적 착목과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근대담론’과 ‘식민담론’에 사로잡혀 우리 고전소설을 조망했다는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우리의 고전소설 연구는 그렇게 일그러진 학술장(學術場)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경성제국대학을 다니던 식민지 조선의 젊은 학도들은 고전소설 연구 1세대로 성장해가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항담론을 제출하려는 학적 분투를 지속했다. 그리하여 다카하시 도루의 ‘식민담론’은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구 근대인에 의해 처음 주입된 ‘근대담론’은 식민의 시대는 물론 지금의 시대까지도 제대로 극복되지 못한 채 이어져오고 있다. 우리 고전소설을 낡고 진부한 서사로 간주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의 잘못된 통념이 그 부동의 증거이다. Reading classical literature is a journey with an old acquaintance. In order to enjoy such a trip with pleasure, one should join them at the same time. Also, you should understand the times that are produced and how it connects to our lives now. Nevertheless, novels from the Joseon Dynasty are considered childish. The composition of the biography, the theme of the Joseon Dynasty, the theme of romance, unrealistic events, omniscient fiction, and so on, such as the author of the Joseon Dynasty novel, are the concepts that the author never thought of when he created novels and novels. So who created the characteristics of such classical novels first? We consider a resident of Joseon Dynasty, as the heir apparent to Joseon Dynasty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French diplomat Maurice Cuurant, who worked as a professor of French diplomat and 高橋亨 a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Kyung-sung, is a representative figure. Despite pioneering research on our classic novels, they have limited the value of our novels, saying, Modern discourse and colonization. Our study of classic novels started off in the wrong direction. Of course, the young students of the colonial Joseon Dynasty grew to study the first generation of classical novels and wanted to submit a discourse to cope with it. Thus, the colonization was able to overcome somewhat. However, Modern discourse has continued to rise, not as well as the period of colonial rule. Our false wisdom is the proof that our classical novel is regarded as an old cli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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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강 남효온과 유산(遊山): 한 젊은 이상주의자의 상처와 지리산의 위무(慰撫)

        정출헌 ( Chul Heon Chung ) 한국한문학회 2011 韓國漢文學硏究 Vol.0 No.47

        추강 남효온 그의 나의 34세 되던 1497년(성종 18) 9월 27일부터 l0월 l3일까지 지리산에 올랐다. 그리고 그때의 여정을 『智異山日課』 라는 유산록에 담았다. 그보다 l5년 전 스승 김종직도 지리산을 유람한 뒤 『遊頭流錄』 올 남겼고 그보다 2년 뒤 김종직의 제자였던 탁영 김일손도 『鑽頭流錄 』(頭流紀行錄) 을 남겼다, 이들 외에 조위, 유호인, 김굉필, 정여창, 훙유손, 양준과 같은 김종직 제자들도 지리산에 올랐다. 이들이 잇따라 지리산을 유람하고 그 여정과 감회를 기록으로 남겼던 이런 현상이 우연만은 아닐 터다. 거기엔 분명 15세기 후반 김종직과 그 문도들을 중심오로 한 新進士類의 강력한 동류의식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동질성에 유념하면서도 그들 각각이 지리산에 올랐던 까닭, 그리고 유산과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미세한 떨림과 변화를 삶의 여정 위에서 보다 꼼꼼하게 읽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남효온이 남긴 『智異山日課』와 문집에 산재 되어 있는 지리산 詩文들을 함께 아울러 검토하는 작업은 매우 요긴하다. 여정에 대한 사실적 기록인 『지리산일과」 와 내면의 심회를 읊고 있는 시문 작풍들을 통해, 16일 동안 지리산을 ``홀로`` 유람했던 남효온의 모습을 거의 온전하게 재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지리산일과』 에 인상적흐로 轉聞, 記錄되어 있는 ``칠불사의 玉寶高 거문고 전설``, ``화엄사의 緣起祖師 모자 전설``, ``쌍계사의 최치원 은거 전설`` 은 지리산을 유람하던 즈음, 남효온의 상황과 심경을 대변하고 있는 흥미로운 단서로 읽힌다. 한때 뜻을 같이 했던 師友들로부터 점차 고립되어 가던 자신의 처지, 거기에 가족사의 시련이 겹쳐지면서 늙은 모친과 처자식을 뒤로한 채 정처 없이 떠돌던 자신의 심회, 그런 방랑의 삶에 지친 심신을 내려놓고 싶던 내면의 갈망과 일정하게 조웅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소릉복위 상소의 실패로부터 시작된 한 젊은 이상주의자의 깊은 상처를 장엄한 지리산은 慰撫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고 있었던 것이다. 『지리산일과』 와 그때 지은 시문은 그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런 면모는 신진사류의 士意識 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남효온 개인의 구체적인 삶에서 분비되는 독특함이다, 이런 결과는 개인의 체험을 집단 의식으로 환원하려는 거대담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한 인물의 연구가 보다 철저한 실증적 삶의 再構로부터 출발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하다. Chugang Nam Hyo-On climbed Jiri mountain from September 27th to October 13th in 1487(eighteenth year of King Seongjong) at the age of thirty four. After that he recorded mountain travelogue called Jirisan Ilgwa. His teacher Kim Kong-Jik had written Yuduryurok after climbing Jiri mountain fifteen years before and Tak Young, Kim Il-Son, another pupil of Kim Jong-Jik, wrote Sokduryurok or Duryu Travelogue two years after that. Besides them, followers of Kim Jong-Jik such as Jo-Wi. Yu Ho-In. Kim Gweng-Pil. Jeong Yeo-Chang. Hong Yu-Son. Yang Jun climbed Jiri mountain. It was no accident that they went sightseeing to Jiri mountain and recorded their itinerary and impressions. It seems that there must have been strong concept of the consciousness of kind among Sinjinsaryu(newly established scholars) such as Kim Jong-Jik and his followers in the late fifteen century. However keeping in mind that homogeneity we need to endeavor to read more in detail their reasons of climbing, subtle tremor of feelings and changes in mountain sightseeing in the middle of life journey. Some stories that they heard and wrote were interesting such as "The Legend of Okbogo (geomungo. six string instrument) at Chilbulsa Temple", "The Legend of Yeongijosa and his mother at Hwaumsa Temple". "The Legend of Choi Chi-Won`s Hermitage at Ssanggyesa Temple". It appears that the scholar Choi Chi-Won left behind his teachers and scholar friends who were of the same mind once and secluded himself and left behind old mother and his family due to family`s ordeals. It seems that he expresses feelings of his wandering life and inner longings to let down worries and soothe his weary body and soul. Jib Mountain appeases the idealist`s deep hurt with soothing hands who submitted appeal to the government and got discouraged in his younger years. These aspects were distinct from other newly established scholars, which is coming from Nam Hyo-On`s personal life experience. These findings not only shows the limitations of grand narrative to reduce individual experience to group consciousness, but also awakens to more thorough and substantial reexamination of an individual scho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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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문명으로의 전환과 ‘시대의 스승’, 김종직과 김시습(Ⅰ)―세종-세조대 유교지식인의 자기정체성 모색을 중심으로―

        정출헌 ( Chung Chul-heon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8 民族文化硏究 Vol.80 No.-

        성종의 시대를 주된 무대로 활동했던 占畢齋 金宗直(1431-1492)과 梅月堂 金時習(1435-1493)은 네 살 차이의 동시대 인물이다. 뒷날 한 사람은 성리학의 道統을 계승한 ‘士林의 宗匠’으로 일컬어지고, 다른 한 사람은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方外人의 典型’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들을 한 자리에서 묶어 다룰 만한 공통의 지점도 존재한다. 같은 스승, 같은 친구, 같은 후배를 중간에 두고 같은 시대를 호흡했다는 객관적 사실은 물론 유교문명의 전환과정에서 견지하고 있던 삶의 자세가 그것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시대정신에 충실한 유교지식인이고자 노력했고, 그로 인해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와 같은 후대인은 그들을 ‘백세의 스승’이라 높여 불렀다. 본고에서는 그런 공통의 면모에 주목하여 그들이 유교지식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해가고 있었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보고자 했다. 완성된 정점에서가 아니라 형성되는 과정으로부터 되짚어보는 작업이야말로 조선전기라는 문명전환의 시대를 가장 생동하게 읽어내는 관건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교문명의 때 이른 절정을 이루었다고 평가되는 세종의 시대에 유교지식을 습득해갔던 그들은, 불의 연대기라 할 수 있을 단종-세조대에 낡은 전통이라든가 절대 권력과 맞닥뜨리며 적지 않은 부침을 겪어야만 했다. 김종직이 진사시에 탈락하고 지은 <濟川亭>을 통해 문장과 도학을 함께 아우르려던 새로운 시학정신, 김시습이 진사시에서 <崇義殿>을 지어 일으킨 파문을 통해 비판적 역사인식은 그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이처럼 패기만만하던 젊은 그들에게 들이닥친 과거에서의 탈락, 그리고 방랑과 파직을 계기로 갖게 된 省察과 自覺의 시간은 유교지식인이 자기정체성을 정립해 가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단련의 과정을 거쳤기에 40대에 들어선 김종직과 김시습은 성종대의 젊은 선비들로부터 ‘시대의 스승’으로 존중받으며 그들에게 돌이키기 어려운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김굉필·정여창·남효온·이심원과 같은 젊은 제자/사우가 바로 그들이다. 모두 연산군 때 일어난 두 차례의 사화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만, 오히려 그것은 김종직과 김시습이 ‘시대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역설이기도 했다. Kim Jongjik, aka, Jeompiljae (1431-1492) and Kim Siseup, aka, Maewoldang (1435-1493) were contemporaries who worked actively during the period of King Seongjong though they had four year age difference. In the future, one became ‘the master of Sarim Confucian scholars’ who succeeded Neo-Confucian tradition, whereas the other was said to be the typical outsider, which was quite different from the life of the other scholar. However, there is a common trait that can connect both of them. In addition to the same teacher, same friends, same successors they shared and they lived and breathed at the same period, they kept the same attitude at the transitional period of the Confucian civilization. They endeavored to be the Confucian intellectuals who remained faithful to the Zeitgeist so Yi Hwang, Toigae and Yi I, Yulgok could be called “the teachers of the century.” This article examines meticulously how they establish their identity as Confucian Intellectuals focusing on their commonalities. The retracing formulating procedure rather than peak would be the key factor to read vividly the time of civilization change, that is, the early Joseon period. As a matter of fact, while they acquired Confucian knowledge, the essence of a new civilization, they had to undergo quite a few ups and downs in the face of old customs and the established authority. A new poetic spirit that combined writings and ethics can be identified through Jecheonjeong, Kim Jongjik’s writing that he wrote after he failed the first civil service exam. We can acknowledge their cultivation of critical spirit through the sensations of Sungeuijeon when Kim Siseup composed it in the civil exam. So these passionate young scholars had the time of reflection and self-realization after their failure in the civil service exam, wandering and dismissal from office. This period was in a sense, a rite of passage in the process of self-identity. After this discipline Kim Jongjik and Kim Siseup were esteemed as “teachers of the age” by young people in their twenties. The two scholars were in their forties and became a huge influence to young people. Young followers such as Kim Gwangpil, Jeong Yeochang, Nam Hyo-on, Lee Sim-on confronted the tragic fate due to two incidents during King Yeonsan but the tragedy is the evidence that Kim Jongjik and Kim Siseup were “Teachers of the century.”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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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고전소설의 주인공 ; <육신전>과 <원생몽유록> -충절의 인물과 기억서사의 정치학-

        정출헌 ( Chul Heon Chung ) 한국고소설학회 2012 古小說 硏究 Vol.33 No.-

        추강 남효온은 흔히 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단종 모후인 昭陵의 복위를 건의하는 상소와 세조의 불법적 왕위찬탈을 용납할 수 없어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죽은 인물 가운데 여섯 명을 골라 <육신전>을 지었던 까닭이다.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죽은, 곧 역적으로 몰려 죽은 인물을 忠節의 인물로 기리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선조 때 정치권력을 장악한 士林들은 그의 작업을 본격적으로 잇고자 했다.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조광조로 이어지는 道統으로 자신의 계보를 확립하는 한편 그에 값하는 실천적 행위로 절의의 인물들을 되살려내었던 것이다. 단종복위 운동에서 죽은 여섯 신하는 물론 살아서 충절을 지킨 인물들도 발굴하여 포상하는 작업에 전력하기 시작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이런 작업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실이 하나 둘씩 맺어지기 시작했다. 사육신이 복권되고, 단종도 복위되었다. 또한 살아서 절의를 지킨 김시습·남효온에게 旌閭가 내려지고, 조정을 떠나 은거의 길을 택했던 원호·조려 등도 거기에 추가되었다. 사육신에 짝을 맞춘 생육신이 마침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 뒤에도 그런 부류에 포함시켜달라는 요구는 빗발치듯 끊이지 않았다. 정조는 마침내 莊陵에 配食壇을 세워 이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대규모 작업을 치르기에 이르렀다. <육신전>과 <원생몽유록>은 이런 정치적 역정에서 문학의 힘을 통해 단종의 비극적인 죽음, 사육신의 의연한 충절, 그리고 비록 죽지는 않았지만 구차한 삶을 거부했던 남효온의 절의를 은밀하면서도 강력하게 환기시켜주었던 작품이다. 그리고 남효온에 비견되는 인물들도 속속 발굴·발견되기 시작했다. <원생몽유록> 결말에 이름을 올린 원호, 최덕지, 김시습, 황여일 등은 남효온과 같은 부류에 포함시켜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뒷사람들의 정치적 산물이다. 사대부들은 서사적 기록을 통해, 또는 꿈의 서사를 통해 자신의 사회 정치적 욕망을 은밀하면서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16세기 서사문학은 이전부터 축적해온 문학적 감동을 날카롭게 벼려가면서 이처럼 민감한 정치현실에까지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Chugang, Nam Hyo-On is commonly remembered as one of Saengyuksin, six loyal vassals because he wrote "Yuksinjeon", which is the story of six vassals who were killed in plotting to restore King Danjong`s throne in revolt against King Sejo`s unjust usurpation. His intention was to pay a tribute to the subjects as figures of fidelity who were branded as traitors and killed in the process of restoration of former king Danjong`s throne. Sarim, who were confucian scholars seizing the political powers in the reign of king Seonjo, tried to continue Nam Hyo-On`s work in earnest. He established his own genealogy in the descent of Jeong Mong-Ju, Gil Jae, Kim Suk-Ja, Kim Jong-Jik, Jo Gwang-Jo, while he actively involved in practical work worth the name. That`s why he started to discover and reward the faithful living figures of fidelity as well as six dead subjects in restoration movement of king Danjong`s throne. The task was not easy but it came to fruition one after another. Sayuksin, six dead loyal subjects were reinstated and king Danjong restored his throne. Also Kim Si-Seup, Nam Hyo-On received honorable praise for their loyalty and Won Ho, Jo Ryeo who left the central government and retired to hermitage were rewarded. In the long run, Saengyuksin were brought forth to the world in parallel to Sayuksin. Nevertheless the tremendous demands of people requesting similar rewards never ceased. King Jeongjo finally established Baesikdan, distribution table, in Jangnyung, king Danjong`s tomb and could put together all those people`s names in one place. "Yuksinjeon" and "Wonsengmongyurok" were the works that strongly evoke the tragic death of king Danjong, unyielding fidelity of six dead subjects, the life of Nam Hyo-On who rejected compromising his integrity in the political turmoil through the power of literature. People who were comparable to Nam Hyo-On begin to be discovered one after another. People such as Won Ho, Choi Deok-Ji, Kim Si-Seup, Hwang Yeo-Il whose names were recorded in the final chapters of "Wonsaengmongyurok" are the political product of future generation who thought these people deserved to be included in the category of honorable names. Sadebu, confucian scholars strongly but secretly revealed their social, political desires through narrative documents and dream narratives. The sixteenth century narrative literature sharpened literary impression that was accumulated from old time and engaged in sensitive political realities in a very profound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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