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 좁혀본 항목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 KCI등재

          백제 22부사체제의 성립과정과 그 기반

          정동준(鄭東俊) 한국고대사학회 2009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54

          이 글에서는 佐平制의 발전과 官司의 증설, ?魯制의 실시와 將軍 중심의 군제 개편에 대하여 검토하여 22부사체제의 성립과정과 그 기반을 파악해 보았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武寧王代(501~523)부터 7세기 초반까지 존재한 5명의 좌평은 특정한 직무없이 국가대사를 결정하는 會議體의 構成員이었다. 이러한 좌평들의 회의체는 상좌평의 등장 이후에 정원이 3인이었다가 5인으로 늘어난 것이었다. 그것은 泗?時代의 政事巖會議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22部司의 성립과정은 단계적으로 몇 개씩 설치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 중 外官 10部는 대체로 阿莘王~蓋鹵王代(455~475)에 설치되었다. 內官 12部는 東城王代에 등장하는 내두에서 점차 분화된 5부와 武寧王代 이후 새로 설치된 7부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관사의 신설과 분화는 정사암회의가 장악하고 있었던 外官 중심의 행정권을 왕권에 귀속시키려는 시도였다. 한편, 武寧王代부터 博士制가 확대되어, 관등제 ? 관사제의 정비에 맞추어 왕권에 협조적인 관인들을 양성하는 시스템으로서 기능하였다. 武寧王代에는 전지역적인 戶口 把握이 시도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武寧王代의 지방통치체제는 ?魯制였다고 상정되는데, 이 시기에 처음 행해졌다고 파악되었다. ?魯制는 聖王代(523~554)의 方-郡-城制가 시행되는 기반을 마련해준 제도라는 데에 그 의미가 있었다. 武寧王代 이후의 將軍은 평상시에도 존재하는 것은 물론, 複數여서 출정시에 1인을 중심으로 指揮體系가 확립되었다. 장군의 상설화는 징병제로 충원되는 중앙군의 특정 부대에 배속되어 그것을 지휘하면서 예하에 軍官 組織을 갖추었다는 의미였다. 중국왕조의 사례를 참고하면, 領軍이 나타난 이후 백제의 병사 충원방식은 중앙군은 초기적인 형태의 징병제, 시위군은 모병제였다고 파악되었다. 백제의 정치제도 발전과정을 시기 구분해 보면, 溫祚王(B.C.18~A.D.28)~契王代(344~346)의 成立期(1~4세기), 近肖古王(346~375)~東城王代(479~501)의 發展期(4~5세기), 武寧王~法王代(599~600)의 完成期(6세기), 武王(600~641)~義慈王代(641~660)의 再編期(7세기)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중 完成期는 관직ㆍ관사제로서의 22部司, 16官等制, 將軍 중심의 중앙군과 方領 중심의 지방군, 지방통치제도로서의 5方制 등과 內官 중심의 정치운영이라는 백제의 정치제도적 특징이 완비되는 시기로서 주목된다. 武寧王代는 이러한 완성기의 시작으로서, 제도적 완성을 보여주는 여러 현상들이 불완전하게나마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시기이다. 국내체제상 백제의 최전성기로 알려진 聖王代의 번영은 武寧王代 여러 개혁의 기반 위에서 가능하였던 것이다.

        • KCI등재

          「佐官貨食記」 목간의 제도사적 의미

          정동준(鄭東俊) 한국목간학회 2009 목간과 문자 Vol.4 No.-

          이 글에서는 「佐官貨食記」목간의 판독문과 내용을 둘러싼 연구동향 「佐官貨食記」 목간 중 ‘佐官의 정치제도사적 의미, 貨食制와 出擧制의 비교를 통한 대식제의 시행범위와 대식을 받는 대상자 등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佐官貨食記」 목간은 판독문이 어느 정도 확정되면서 기본적인 내용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진전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佐官이 어떠한 존재인지, 貨食의 내용인 ‘食'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貨食의 시기와 목간의 작성시점이 언제인지, 貨食의 이자율은 어느 정도이고 그에 따라 파악되는 ‘貨食制'의 성격은 어떠한 것인지, 貨食을 받은 사람들은 어떠한 사회적 처지에 있었는지 등에 대하여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유일하게 ‘佐官에 대한 연구만이 불분명한 채로 남겨져 있기에 아직 과제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또 고대 동아시아에서 ‘貨食制'의 위치에 대한 연구도 아직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佐官貨食記」 목간의 ‘佐官은 중국왕조의 용례를 참고할 때 ‘왕이 직접 임명하여 각 관사의 장관을 보좌하는 중간층의 관리'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佐官의 용례를 백제에 적용시키면 22부사의 계층구조는 ‘宰(장관)-佐官-서리층'이라고 볼 수 있었다. 특히 「佐官貨食記」 목간에 보이는 ‘邑佐'는 ‘佐官이 중앙관사 뿐만 아니라 지방관사에도 존재함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또 다른 목간의 출토사례를 통해 ‘資丁'이 중앙관사에 동원되는 부역자층이라고 상정할 수 있으므로, 백제 중앙관사의 계층구조는 ‘宰-佐官-서리층'의 관인층과 그들에게 동원되는 부역자층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佐官貨食記」 목간에 보이는 貨食制는 ?貨나 還穀과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오히려 고대 일본열도에서 보이는 出擧制와 유사점이 많았다. 특히 ‘佐官이 통설과는 달리 대식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라는 점이 고대 중국왕조나 일본열도의 사례를 통해 새롭게 제기되었다. 중·하급관인에 대한 관사의 재화 대여는 고대 동아시아에서 일반적인 현상이었던 것이다. 대식제의 시행범위와 관련하여 적어도 ‘좌관대식기'에서 나타나는 대식제는 중앙에서 실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시행주체가 중앙관사임은 인정할 수 있어도 內?部·外?部 중 하나로 범위를 좁히기는 어려웠다. 또 ‘좌관'이 중앙관사와 지방관사에 모두 존재하는 ‘관인의 계층'이라는 점을 바탕으로 대식제가 지방에서도 시행되었을 가능성 또한 상정할 수 있었다.

        • KCI등재

          「陳法子 墓誌銘」 역주

          정동준(鄭東俊) 한국목간학회 2014 목간과 문자 Vol.13 No.-

          陳法子 墓誌銘은 2007년 陝西省 西安市의 大唐西市博物館에 소장되었다가, 2012년에 소장처에서 도록을 발간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묘지명에 따르면 陳法子는 615년에 출생하여 690년에 76세로 洛陽縣毓財里 자택에서 사망하여 洛陽 邙山에 매장되었다. 이 묘지명은 탁본의 상태가 매우 좋아서 판독에 이견이 있는 글자가 거의 없고, 특히 기존 사료에서 보이지 않던 백제의 관직이 다수 보여서 주목되었다. 묘지명의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 부분은 묘지명의 제목, 묘주의 출신에 대한 간략한 소개, 중국대륙에서 陳氏의 유래와 활동, 오래 전의 조상들 이래로 중국대륙에서 한반도로 옮겨와서 자리잡는 과정, 증조부∼부친의 관력과 인물 등을 서술하고 있다. 두번째 부분은 묘주가 백제에서 태어나 관직생활을 하던 시기까지의 행적, 묘주가 백제에서 唐으로 귀순하여 이주하는 과정, 唐에서 묘주의 관력, 묘주의 퇴직 등을 서술하고 있다. 세번째 부분은 묘주의 장례, 묘주의 후손과 묘지의 작성 등을 서술하고 있다. 네 번째 부분은 명문인데, 시조부터 아버지까지의 역대 선조, 백제에서의 활약과 唐에의 귀순, 唐에서의 활약과 묘주의 사망, 묘주의 장례 등에 대하여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 중 첫번째 부분에서 舜의 후예인 ?滿이 周 武王의 맏사위로서 陳公으로 봉해져 춘추시대 제후국인 陳의 시조가 되었고, 대표적인 선조로서 전국시대 종횡가인 陳軫이 활약하였음을 고사 등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중국대륙에서 한반도로 옮겨와서 자리잡을 때에 중간경유지를 거쳤을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두번째 부분에서는 묘주가 백제에서 唐으로 귀순하여 이주하는 과정이 순탄한 것으로 되어 있어, 철저하게 唐의 입장에서 서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묘지명의 내용상 唐 조정이 작성에 관여한 흔적이 보이지 않고 백제에서의 행적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백제 유민에 의해 작성되었을 가능성도 상정해 볼 수 있었다.

        • KCI우수등재

          한국고대사 연구의 양적 증가와 새로운 동향

          정동준 역사학회 2019 역사학보 Vol.0 No.243

          The latest study of ancient history of Korea has shown a trend of quantitative growth, with more than 500 papers per year in a simple statistic. The growth was not led by an average increase, but by a minority of researcher, who were full- time faculty members or prospective candidates. This paper reviewed the research trends of migration issues, newly excavated materials and state-led history that are distinguishing in recent trends, and presented the possibility of environmental history as a future prospect and task. Migration issues are pioneering in terms of diversification of subjects. A research on wooden tablets is noteworthy among the newly excavated materials, and pseudo historical trends are a concern in state-led history. Environmental history is expected to offer a new perspective to the study of ancient history of Korea which lacked data. 최근의 한국고대사 연구는 단순통계상으로 매년 500편이 넘을 정도로 양적 증가의 추세를 보여 왔다. 이러한 양적 증가는 평균적 증가라기보다는 소수 연구자가 주도한 것이었고, 그들은 대학 전임교원 또는 예비후보들이었다. 이 글에서는 최근의 동향과 관련하여 특징적이라고 판단된 이주 문제, 신출토자료, 국가 주도의 역사학 등의 연구동향을 검토하였고, 향후 전망이자 과제로서 환경사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주 문제의 경우 주제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선구적이었고, 신출토자료 중에는 목간 연구가 주목되었으며, 국가 주도의 역사학과 관련해서는 유사역사적 경향이 염려되었다. 환경사는 자료부족의 한국고대사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고 기대되었다.

        • KCI등재

          백제 색복제 관련사료의 재검토

          정동준 호서사학회 2019 역사와 담론 Vol.0 No.90

          This article explored the possibility of a new interpretation on related records of the Coloured dress system(色服制) through comparison of those in Chinese dynasties and Japan. To sum up, it is as follows. In the ancient Chinese dynasty, Coloured cloth system(衣色制), which represents rank as cloth colour, seems to appear after the late fifth century, and firmly settled as a system early in the seventh century. It was the influence of Taoism that the five colours were ranked in a hierarchical order and violet colour became the color of the highest order. The time of great change in this connection can be seen in the fifth century. Although many aspects of the ancient Japanese Official dress system(官服制) were similar to that of Baekje, it was noted that official was more important than “dress” in the early and mid-7th century, which was the early period of that system. After reviewing the records related to the coloured dress system in Baekje, a partial restoration of implementation and changing process of the system was possible. First, the contents of Coloured hat system(冠色制) and Coloured belt system(帶色制) in the middle of 6th century could be understood by the examination of Chinese historical records. The structure of those two systems was the same, then Jangdeok(將德) and Sideok(施德) formed a boundary, and so did Mundok(文督) and Mudok(武督). On the other hand, coloured cloth system in Samguksagi(三國史記) and Jiutangshu(舊唐書) were the same system but had different contents, and can be understood that it was implemented in the 630s by the influence of Tang(唐). In the Baekje Dynasty, similar to the ancient Chinese dynasties and Japan, coloured hat system appeared first, and coloured cloth system appeared later in the emergence of coloured dress system. Baekje, however, was characterized by the advances in coloured belt system. 이 글에서는 백제의 색복제에 대하여 古代 中國王朝·日本과의 비교를 통하여 관련사료의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탐색해 보았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고대 중국왕조에서 衣色으로 서열을 표시하는 衣色制는 5세기 후반 이후에나 등장할 가능성이 보였고, 확실히 제도로 정착한 것은 7세기 초였다. 5색이 서열화되고 紫色이 최고 서열의 색이 된 것은 도교의 영향에 의한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크게 변화하는 시점은 5세기로 볼 수 있었다. 고대 일본의 관복제는 백제와 유사한 양상이 많이 보였지만, 제도로 정착한 초기인 7세기 초·중반에는 ‘의복'보다는 관이 중시되었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백제 색복제 관련사료를 검토한 결과, 색복제의 실시와 변천과정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복원이 가능하였다. 먼저 중국측 사료를 검토하여 6세기 중반에 실시된 冠色制와 帶色制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관색제와 대색제의 구조 자체는 동일하여, 장덕과 시덕, 문독과 무독이 하나의 경계를 이루었다. 반면 의색제는 『三國史記』와 『舊唐書』가 동일한 제도의 다른 내용을 전하는 것이었고, 630년대에 唐의 영향으로 실시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결국 백제의 경우도 고대 중국왕조·일본과 마찬가지로 색복제의 등장과정은 관색제가 먼저이고, 의색제가 나중이었던 것이다. 다만 대색제가 발달하였다는 것에 백제의 특징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대장암종에서 암관련 유전자들의 Promoter Methylation과 암종 발생 및 진행과의 관게에 대한 연구

          정동준,이정은,민영기,조성우,백무준,양승하,김의한,김창진 순천향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2004 Journal of Soonchunhyang Medical Science Vol.10 No.3

          The colorectal corcinoma is one of the most common malignant tumor in Korea and its carcinogenic mechanism has not been elucidated exactly yet. So far, the most common carcinogenic mechanism has been known to be multiple genetic changes. But, the CpG island hypermethylation has been revealed to be one of the most important carcinogenic mechanism second to the genetic changes. The epigenetic changes characteristically imprint and transfer to the next generation without changes of nucleotide sequences. When the CpG island of promoter or 5'- exon 1 of a specific gene is methylated by DNA methyltrasferases (DNMTs), the gene expression is inhibited. Carcinogenic mechansisms by promoter methylation has been well known, but the progression of the cancer has not been elucidated yet. The molecular researches on the carcinogenic mechanisms largely depended on the tumor tissue containing various components of cell, due to difficulties in harvesting pure homogeneous tumor cells. Promoter methylatonof the cancer related genes as APc, hMLH2, p16, DAP-K and MGMT in 50 cases of sporadic colorectal carcinoma was studied. The pure normal colorectal epithelial cells, and cancer cells from superficial and deep invasive portion were harvested respectively by laser captured microdissection(LCM), and DNA was extracted from them. The promoter methylation was studied by methylation specific poymerase reaction (MSP) after bisulfite modification of the DNA and the expression of the genes by immunohistochemistry. The results suggests that promoter methylation of the cancer related genes are closely related with the colorectal carcinogenesis and it occurrs from early phase of carcinogenesis, progressing constantly to the late stage. And the promoter methylation of normal epithelial cells increased by age. The p15, known to be the genes related to hematologic malignancy, was closely related to the colorectal carcinoma as well.

        • 국내외 금융가격변수들이 한국산업생산에 미치는 장단기 효과

          정동준 영산대학교 2004 영산논총 Vol.13 No.-

          The preceding tendency and long- & short-term relations of between international & domestic financial variables and Korean industrial output were empirically analyzed in this paper for the period of Jan.1980~Jun.2002, by using such monthly data as Korean industrial output index, KOSPI, Dow Jones index, Nasdaq index, won/dollar exchange rate, yen/dollar exchange rate, won/yen exchange rate, and the difference of Korean corporate bond yield. The monthly seasonality of the financial variables was eliminated by using the monthly dummy variables, but the monthly seasonality of Korean industrial output, the real macro-variable, was eliminated by using X12-ARIMA method. This paper followed the estimation model of Estrella & Hardouvelis(1991) and Chu(2000). In addition, the standard errors estimated by Newey & West(1987)'s estimation method were used in this paper because the serial correlation was found in the estimating the model. According to the estimation results of this paper, the preceding tendency and long-& short-term relations of between international & domestic financial variables and Korean industrial output were evidently found. If we are interested in Korean real economy, it is the policy implication that it is desirable to pay attention to the financial variables indicated in this paper.

        • KCI등재

          중국 『역사』 교과서의 고대사 서술 분석 ― 2016년판 중학교 국정교과서의 특징과 문제점을 중심으로 ―

          정동준 중국고중세사학회 2019 중국고중세사연구 Vol.0 No.52

          本稿では、中國の國定敎科書に見える古代史敍述の特徵と問題點を分析するために、全體の構成、政府主導の歷史觀などを基準として特徵を分析し、統一的多民族國家論を踏まえた敍述と周邊國の古代史に対する無關心という問題點を指摘した。まとめれば、以下の通りである。 全體の構成から中國の國定敎科書に見える古代史敍述の特徵を把握するために、古代史部分の目次を檢討したうえで、各單元の內部の構成を分析してみた。その結果、社會主義的歷史觀から當面した課題の解決のために國家主導の民族主義的歷史觀へ變貌した姿を把握することができ、特に「夏商周斷代工程」・「統一的多民族國家論」・「一帶一路」など各種の國家プロジェクトの影響が强く感じられ、周邊國に對する無關心もうかがえる。これは具體的內容においても同様であり、「夏商周斷代工程」・「一帶一路」など各種の國家プロジェクトの結果が强く反映されていたが、おおむね依然として論争中であるだけであり、立證された內容であるといいがたいものであった。 中國の國定敎科書の問題點を分析するために、具體的敍述に見える「統一的多民族國家論」と關聯する內容を提示したが、その問題點は次のような二つに要約できる。一つ、分權的要素、統一または中央集權の短所、民族差別の現實が削除されて意圖的な歷史の隱蔽が成されたと見ることができ、現實の諸問題を隱蔽するための方便ではなかったか疑わしい。二つ、現實の政權が必要とする內容だけを敎科書に敍述する態度は、多樣な歷史の解釋の可能性を封鎖し劃一的な知識を注入しようとする意味で解釋することができる。その他の問題點として、周邊國や周邊國との交流についての內容が極めて少なく、本文の敍述よりは地圖から現れる場合が多かったが、分析してみた結果、地圖から現れたものさえも誤りが多かった。誤りが多く現れた理由は、すべての文化交流を傳播論にのみ基づいて敍述し、領域を最大限広く標示しようとし、「誇らかな歷史」に反する周邊國との歷史的事件は徹底的に隱蔽しようとしたためであった。特にその過程で朝鮮の古代史がほとんど徹底的に排除されたが、これはまた東北工程と切り離して考えがたいのであろう。

        맨 위로 스크롤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