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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CIESCOPUSKCI등재
        • KCI등재

          엘리트 여자 필드하키 선수의 기능적 움직임(Functional Movement Screen)비교 연구

          전지영(Jeon, Ji-Young), 백승희(Baek, Seung-Hui), 최승욱(Choi, Seung-Wook) 한국체육과학회 2019 한국체육과학회지 Vol.28 No.3

          This study analyzed the difference of functional movement of women"s field hockey the national team and the K professional team, The study compared 7 national team players and 10 professional team players. The results were as follows. Among 7 functional movement screen(FMS: Deep Squat, Hurdle Step, Inline Lunge, Shoulder Mobility, Active Single Leg Raise, Trunk Stability Push up, Rotary Stability), there were significant differences in Deep Squat, Hurdle Step, Trunk Stability Push up, Rotary Stability of national and K professional team(p<.05). The national team and the K professional team have different functional movements. Among them, the K professional team has relatively less mobility movements such as Shoulder Mobility and Active Leg Raise. Therefore, if the functional movements of the athletes in elementary, middle, high school, college team as well as the professional team are improved in the future, it can be expected that the competitiveness can be improved due to the increase in the number of injury Loses.

        • KCI등재후보

          일제강점기 비평가들의 민요인식

          전지영(Jeon Ji-young) 한국국악교육학회 2008 국악교육 Vol.26 No.-

          The subject of fusions between traditional music and western music was prominent under Japan's colonial rule 1910-1945, among which the acutest controversies were in Korean traditional folk songs. The music critics such as Kim guan, An giyeong, Gu wangsham, etc. recognized that Korean traditional music including folk songs were old-fashioned, so the new fusions with western music were necessary for new Korean contemporary music. Accordingly the harmony of pentatonic scale or an accompaniment by western musical instruments was mainly argued. These controversies were very important in modern point in that they are not cleared till now. However, these controversies proceeded from the overbalance of western music compared with Korean traditional music, so they were the aspects of Korean traditional music under the hegemony of western music.

        • KCI등재

          선비음악으로서의 가곡 향유 재론 : 발명된 위대함에 관한 소고

          전지영(Jeon, Ji-young)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14 한국학논집 Vol.0 No.54

          가곡과 관련된 국악학계 연구물들은 대부분 가곡이 선비음악임을 전제로 한다. 선비음악이라는 말은 가곡의 다양한 담당층과 수용층 중에서 사족士族들이 주로 가곡을 향유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가곡이 선비사회에서 군자로서 덕목을 닦는 예능적 틀로 존재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날 전통음악계에서 가곡은 조선후기 선비들의 풍류문화를 대변하는 음악으로, 지식인들의 심신수양의 도구로 익혀온 음악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조선후기 여러 기록들에서, 당시 선비사회에서는 아악만을 위대한 음악으로 간주했고 삭대엽에 대해서는 오히려 부정적 인식이 있었던 점, 성리학자들이나 영남지방에서 삭대엽은 관심 밖의 음악이었던 점, 가곡 자체가 고도의 예술음악이기 때문에 아마추어들에 의해 연행되면서 발달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가곡 노랫말 상당수는 선비들의 뜻과 지조에 걸맞지 않는 내용을 갖고 있다는 점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가곡은 원래 선비사회의 문화양상과는 다소 괴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20세기 이후 가곡이 이왕직아악부와 국립국악원을 거치면서 선비음악으로 이미지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전통의 국유화 작업이 영향을 끼쳤으며, ‘국악'은 일종의 ‘발명된 전통'의 모습으로 재편된 것이었다. 그러한 ‘발명품'으로서 국악의 가장 대표적인 장르가 가곡이며, 따라서 가곡은 그 레퍼토리는 조선후기부터 전승된 것이긴 하지만, 선비음악으로서의 이미지는 20세기 현대사가 만들어 놓은 ‘발명된 위대함'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Korean traditional lyric song, gagok has been regarded as the music of seonbi, learned men in the Joseon Dynasty. Gagok is still considered about a musical means to moral training of the learned man's body and soul However, there were many records in the late Joseon period against this point of view ; the learned men regarded a'ak as a unique music of virtue and a lot of them regarded sak-daeyeob, the predecessor of contemporary gagok, as a harmful music. It can be argred that the image of gagok as a music of seonbi(learned men) was invented in the 20th century in South Korea by the The National Gugak Center. After the establishment of South Korean government, there had been various nationalization projects of traditions, among which gugak had also been ‘invented' as the new forms and systems. Gagok was a representative genre of those ‘inventions', so it should be argued that, though gagok is a music genre bequeathed from the late Joseon period, the image of seonbi music is the ‘invented greatness' by the modern history of Korean 20th century.

        • KCI등재후보

          예술민주주의와 전통예술교육의 새로운 좌표

          전지영(Jeon, Ji-young) 한국국악교육학회 2015 국악교육 Vol.40 No.40

          이 글에서는 문화민주주의 논의와 같은 맥락에서 예술민주주의를 설정하고, 전통예술교육의 차원에서 그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예술민주주의의 실천적 당위는 이 시대 예술적 정의(正義)와 맞닿아있으며, 이 관점에서는 예술에 있어 작품중심주의가 배격되어야 한다. 그리고 예술은 타자의 작품 감상활동이 아니라 삶의 욕망의 실천적 구현이어야 하며, 그것은 일상 속에서 실천과 참여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발견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예술민주주의 담론에서 사고할 때 전통예술 또한 창조와 능동성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에 대한 요구는 필연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소위 ‘발명품'적 전통을 벗어나 새로운 공존의 기획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전통이 발명되었다고 할 때, 그 발명은 식민지배와 서구근대의 거울로서 발명됨을 의미한다. 전통과 근대는 상호 구성적 관계이며, 전통과 관련된 맥락으로서 근대성과 식민성은 어쩔 수 없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근대성의 논리적 생산을 위해서는 식민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근대성은 식민성을 극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전통은 탈식민화를 지향할 때 시대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근본적 의미에서 탈식민은 윤리적 해방 지향이자 인간 회복의 당위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전통의 탈식민적 접근에는 예술 민주주의적 시각이 불가피하다. 전문가 양성교육과 학교 예술교육의 양 측면에서 예술민주주의적 참여와 실천의 가능성은 진지하게 논구(論究)되어야 한다. 전문가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위대한 작품'을 구현하는 ‘탁월한 수월성'을 가진 전문가 양성이라는 표면적 지향보다도 ‘어떤 전문가'를 양성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상품화된 작품을 잘 생산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공동체 삶 속에서 구성원들과 욕망을 공유하고자 하는 예술가, 이기적 작품활동을 통해 타자배제와 자기과시를 하는 권위자가 아니라 사회의 그늘진 곳을 외면하지 않고 시민의 의미를 실은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예술가가 진정으로 대학에서 길러내야 할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학교 전통예술교육 차원에서는 음악의 개념규정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전통예술은 ‘작품'이 아니라 ‘언어'로 이해되어야 한다. 언어가 작품감상이 아니라 생존과 삶의 의미 구현을 위해 필요한 것인 것처럼,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참여와 실천의 예술민주주의적 고뇌에서 볼 때 전통예술교육은 ‘작품중심주의'의 탈피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그를 위해서는 전통음악이 작품중심구조의 서양음악과 함께 배치되어 있는 체제를 벗어나서 독자적 교과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아울러 다양한 교과목과 결합된 “통문화적 교육시스템”의 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융통성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전통예술교육의 새로운 접근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미디어정책이 동반될 필요도 있다. The idea of art democracy can be established on the same context of cultural democracy, upon which the new direction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ducation(gugak education) can be argued. In the discourse of art democracy, what is important is participation and practice of art rather than work appreciation. Emerging from ‘tradition as an invention' and planning for coexistence would be necessary for this idea. So-called ‘emerging from tradition as an invention' does not mean modernity, in that coloniality and modernity are ‘heads and tails', and so modernity cannot overcome coloniality. It should be accentuate that the sincerity of tradition is strongly related to art democracy and decolonization. For the participation and practice in terms of art democracy, some access routes in relation to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ducation can be argued as follows. First, ‘artist with awareness of human community' should be emphasized rather than ‘specialist with supremacy in artistic skill'. Second, the notion of traditional art should be changed from ‘work of art' to ‘human language' in regular school art education. The work-centered viewpoint should be wept out from school art education. Third, the integrated study module should be requested for this art democracy education.

        • KCI등재후보

          일제강점기 관립음악학교 설치 및 조선 아악의 교수(敎授)에 관한 논의 고찰

          전지영(Jeon, Ji-young) 한국국악교육학회 2014 국악교육 Vol.37 No.37

          이 글은 일제강점기 관립음악학교 설립 논의가 어떤 배경에서 펼쳐졌고, 그 과정에 조선 아악의 교수(敎授)에 관한 논의가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세 차례 관립음악학교 설립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1921년과 1937~1938년, 그리고 1941년 무렵에 논의가 있었는데, 1921년은 본격적인 일제의 문화통치체제가 모색되던 때였고, 1937~1938년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시기이며, 1941년은 2차 세계대전이 격화되던 시기임을 고려하면, 음악학교 설립 논의는 일제의 정치적 계산과 궤를 같이 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일제 교육정책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관립음악학교 설립 논의가 유독 이시기에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것은 음악학교 설립 필요성이 음악 자체의 순수한 발전보다는 음악을 식민체제 공고화와 전시동원 필요성의 관점에서 제기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음악교육을 통한 황민화 강화의 추구를 의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관립음악학교 설립 필요성을 역설한 이들 대부분은 일본 국민정신 강화나 아국체본의와 같은 군국주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 음악학교에서 담당할 음악교육은 겉으로는 정서교육임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종속물로서 국민교육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일제강점기 관립음악학교 설립 논의는 신문·잡지기사만 보면 당시 한반도의 뜻있는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희망을 담아서 표출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조선총독부의 의중이 내재해있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들에도 불구하고 예산상의 문제 때문에 관립음악학교 설립은 해방이 될 때까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식민지 지배체제를 위해 의도된 관립음악학교 설립 논의에서 조선 아악의 정규 학과설립 혹은 조선 아악 교수(敎授)의 주장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점은 얼핏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 조선 아악은 일제에 의해 내선일체론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었고, 조선 아악의 역사를 삼국시대까지 의도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일본 아악과 같은 뿌리임이 선전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체제를 위한 음악학교 논의에서 조선 아악 교육 필요성의 제기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There were three times of discussions about the establishment of the government music school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 1921, 1937-1938, and 1941. Each of these periods was related to Japanese political schedules and educational policies ; groping for cultural ruling to Korea in 1921, the Sino-Japanese War in 1937, and Japanese new structure for the victory of war in 1941. The discussions about the establishment of the government music school in each period were raised not for the pure development of music but for the reinforcement of colonial rule and wartime mobilization system by means of music. The arguments for the establishment of music school were mainly related to the upsurging of national spirit or loyalty to Japanese militarism. The so-called emotional education through music was the national education for Japanese colonial control in reality. The superficial arguers of the discussions were the Korean musicians, but the principal agent was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In spite of the discussions, the government music school was not established due to the lack of budget. There had been suggestions for the education of Korean a'ak in relation to the discussions of the government music school. The Japanese government regarded Korean a'ak as a good logical basis for the Naeseon Ilche(‘Korea and Japan are One' policy). The Japanese government propagated that the Korean a'ak and Japanese gagaku had the same origin. The Korean a'ak was useful to the Japanese colonial rulers for this r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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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삭대엽의 변화와 그 의미

          전지영(Jeon Ji Young) 국립국악원 2003 국악원논문집 Vol.15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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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ven though research on Sakdaeyeop and gagok has been accumulated to a certain extent, most of the articles has discussed the changes of the melodic lines. However, the important changes that Sakdaeyeop underwent during the early and the late eighteenth century were related to the social changes at those period. Therefore, examining the changes of the melodic lines within the time frame of the late Joseon period without considering the social aspects is problematic in properly understanding the meaning of its changes. In the case of Sakdaeyeop, the differences of Sakdaeyeop shown among the seventeenth, eighteenth, and the nineteenth centuries reveal that the late Joseon period should not viewed as a single time frame. Considering the changes of the melodic lines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mpilation of the musical notations, until the seventeenth century Sakdaeyeop was administered by the music institute Jangagwon and was performed at official occasions. In the eighteenth century, Sakdaeyeop was not performed at official sites but at private sites and was performed for self-complacency and to chase worries away by retired officials who are financially affluent. In the late eighteenth century, Sakdaeyeop was transformed to entertainment music for the privileged and the rich, and the appreciators thought on the music became conventional. Such characteristic changes were not limited to Sakdaeyeop but were also found in literature and fine arts at those periods. The changes revealed in various art genres were influenced by the transformation of social and economic situations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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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예술정책과 전통예술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설정

          전지영(Jeon, Ji-young) 한국국악교육학회 2015 국악교육 Vol.39 No.39

          이 글은 전통예술정책과 전통예술교육이 공통적으로 보였던 철학적 빈곤함을 지적하고 바람직한 방향성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태까지 전통예술정책은 전통예술을 실질적으로 진흥하기보다는 전통을 수단화하는 정책이었다. 그것은 정책수립 단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정책철학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전통예술정책의 최종적 구현목적이 전통이 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전통이 수단화됨으로써 경제주의의 맥락에서 사고되어온 측면이 강했다. 수단과 목적의 혼동은 국악교육 혹은 전통예술교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악교육 혹은 전통예술교육이 궁극적으로 무엇이며, 무엇을 위한 교육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과정이 짜여졌고, 그로 인해 마치 국악교육(전통예술교육)의 목적이 국악발전이나 국악인재양성인 것으로 오해되어왔다. 따라서 정책과 교육 양 영역에서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정책현황이나 교육현황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철학의 빈곤함을 비판하고 그 위에서 정책과 교육의 방향을 새로 설정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전통예술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성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수단중심주의 탈피이다. 전통예술을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 설정하는 오류는 시정되어야 한다. 둘째, 엘리트중심주의와 작품중심주의의 탈피이다. 예술을 ‘작품'과 동일시하고 경쟁을 통한 ‘질적 검증'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예술을 풍성하게하기보다는 황폐화시킬 개연성이 크다. 셋째, 전통예술은 국가의 ‘지원'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국가의 의무라는 인식이다.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전통예술에 대해서 국가기관이 우월적 지위에서 현장의 전공자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구조는 시정되어야 한다. ‘의무'의 주체로 국가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정책철학이 다시금 필요한 것이다. 넷째, 보편주의 탈피이다. ‘세계적 보편성'이라는 구호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보편성이 실은 서구중심주의의 산물이며, 전통예술은 그에 대항하는 가치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 네 가지 방향성은 결국 전통예술과 관련한 정책철학의 부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로 귀결되며, 수단과 목적의 혼동을 극복하는 과제로 연결된다. 한편 국악교육(전통예술교육)에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목표 재설정에 접근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학습에서 학문으로'의 변화이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아닌 기능적 학습의 현장밖에 되지 않는 현실을 넘어서는 것이 절실하다. 국악교육은 국악발전이 아니라 인간적 존엄과 조화로운 사회적 삶을 위한 것이며, 이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당위적 훈련이 교육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다양성과 창의성이 존중되는 건강한 비판적 사유는 기능학습 차원이 아닌 학문의 차원에 해당한다. 둘째, ‘작품'과 ‘엘리트' 중심에서 ‘예술' 중심으로의 변화를 담아야 한다. 예술을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동일시하고, 소수 엘리트 양성을 위한 기능교육이 반복될 때, 그것은 창의적 예술교육이기 이전에 억압과 순응을 미덕으로 강요하는 시스템이 될 수밖에 없다. 작품중심의 ‘예능'교육을 벗어나 건강한 지성인으로서의 ‘예술'교육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전통예술교육은 ‘국민교육'이 아니라 ‘시민교육'이어야 한다. 무조건 국가에 순응하고 권위주의에 복종할 것을 강요하는 교육체제를 벗어나 건강한 시민들 사이의 풀뿌리 예술문화를 위한 교육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소수 엘리트의 생존을 위해 공동체가 희생하거나 기능적 훈련만하는 교육이 아니라 비판과 토론을 통한 담론들이 활성화되고 사고의 다양성과 예술적 도전정신이 존중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기능학습 중심의 예능교육이 지배하는 대학교육체제에서는 이런 시민교육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상의 교육적 방향성들은 기본적으로 교육철학의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역시 수단과 목적을 혼동해왔던 모습을 극복할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전통예술정책과 전통예술교육은 모두 철학부재에 따른 파행이라는 현실적 공통점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오해를 해왔고, 수단과 목적이 혼동되어왔던 것이다. 정책 측면에서 제기되었던 수단중심주의 탈피, 작품중심주의와 엘리트중심주의 탈피, 국가를 지원이 아니라 의무의 주체로 간주하는 문제, 보편주의 탈피 등의 관점, 교육 측면에서 제기되었던 학습보다 학문 중심, 작품과 엘리트보다 예술 중심, 국민교육보다 시민교육 방향성 등의 문제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들이다. 정책철학의 부재, 교육철학의 부재가 현재와 같은 전통예술정책의 다양한 문제와 전통예술교육의 내용적 빈곤함을 가져온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적 존엄과 조화로운 사회적 삶의 차원에서 전통예술을 사유하는 바탕 위에서 정책과 교육은 그 방향성이 새로 설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곧 문화민주주의, 교육민주주의의 구현이라는 틀에서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It can be argued that the scantiness of philosophy i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policy and education should be indicated in the present status. The existing policies of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have exposed the confusion between means and aim due to the absence of policy philosophy. This has been the same problem i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ducation. The normative line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policy can be argued as follows. The first one is the breakway from viewpoint regarding traditional arts as means for something like economic growth or national competitiveness. The second one is the breaking of elite-centered and work-centered viewpoint for the artists. The third one is the awareness that traditional performing arts is the object of duty for a nation, rather than that of aid. The forth one is the breakway from the universalism in arts. The normative line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ducation can be argued as follows. The first one is a change from technical training to scholarship, because the aim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ducation is not the development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but the dignity of man and harmonious social living. The second one is a change from elite-centered and work-centered viewpoint to ‘art in essential meaning', because university education exists not for training the performers or entertainers but for educating conscientious intellectuals. The third one is a change from ‘national education' to ‘citizenship education', which means the emancipation from authoritarianism education system. In conclusion, the philosophical poorness is a common problem i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policy and education. The purpose and normative line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policy and education should be re-established in the aspect of the dignity of man and harmonious social living.

        • KCI등재

          중장년 남성의 부위별 신체조성이 간 기능 지표에 미치는 영향

          전지영(Jeon, Ji-Young), 이시은(Lee, Si-Eun), 한태용(Han, Tae-Yong), 최승욱(Choi, Seung-Wook) 한국체육과학회 2019 한국체육과학회지 Vol.28 No.3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factors influencing liver function and to provide basic data of exercise prescription for prevention of fatty liver in 10 middle - aged men by comparing body composition of abnormal liver function indicator and normal. We measured fat mass and muscle mass in 5 normal and 5 abnormal patients according to liver function enzymes. The results of the analysis were as follows: First, the fat mass of the middle - aged men was significantly lower than that of the normal group in the right arm and left arm by 37.5% and 40.1%, respectively. The right leg was 9%, the left leg 9.59%, and the trunk 16.8% lower. Second, the analysis of muscle mass of middle - aged men showed that the right arm was 10.68% and the left arm was 16.98% lower than the abnormal group. Legs were significantly higher in the normal group than in the abnormal group (22.67% on the right side and 21.46% on the left side). The body was 7.32% higher than normal. Taken together, these results indicate that the liver function index normal group has higher muscle mass than the abnormal liver muscle group, especially the leg muscle mass. Therefore, the relationship between muscle mass and hepatic enzymes in middle - aged men is closely related, and muscle mass is thought to be very important. In order to improve and prevent liver function, enhancement of muscle mass in the body composition is considered to be very important factor. Therefore, it is considered that a program for improving muscle mass for liver function improvement and prevention should be developed.

        • KCI우수등재

          장애인에 대한 임상간호사의 옹호간호 영향요인

          전지영(Jeon, Ji Young), 최현경(Choi, Hyunkyung) 한국간호교육학회 2020 한국간호교육학회지 Vol.26 No.3

          Purpose: Clinical nurses are the ideal health care providers to advocate for vulnerable and underserved populations such as people with disability. This study aimed to understand factors influencing nursing advocacy for people with disability among clinical nurses. Methods: The subjects of this study were 186 clinical nurses who were working in three hospitals in B and D cities. Self-report questionnaires were used to collect the data. Data were analyzed using IBM SPSS Statistics 25 with descriptive statistics, t-test, one-way ANOVA, Pearson's correlation coefficients, and multiple regression analysis. Results: Clinical experience and esthetical nursing competency have positive correlations with nursing advocacy, and optimism-human rights has a negative correlation with nursing advocacy. Factors influencing nursing advocacy for people with disability were identified as patient directivity (β=0.36, p=.001), optimism-human rights (β=-0.18, p=.008) and clinical experience (≥10) (β =0.14, p=.036). The final model consisting of these factors explained 19% of the variance of nursing advocacy (F=14.99, p=.001). Conclusion: The findings of this study indicate the importance of developing and implementing nursing interventions that can improve patient directivity and optimism-human rights toward people with disability among clinical nurses. These nursing advocacy interventions can be provided as part of continuing education as well as the nursing curricu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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