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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원(唐宋元),고려(高麗)의 휼형(恤刑) 입법원칙(立法原則)과 형정인식(刑政認識) -휼형사상의 원류(原流)와 관련하여-
전영섭 중국사학회 2012 中國史硏究 Vol.77 No.-
本稿は、東アジアの法制史を理解するのに不可欠な領域である、法制 の裏面に流れる思想の源流ないし理念的背景を究明するという次元で主 な對象の恤刑立法原則と刑政認識を提示し、續いて唐宋元·高麗の恤刑條 文を比較分析し、各王朝の恤刑の立法原則と刑政認識の異同点を導出し た. 『周禮』を代表とする周代の刑罰は禮治·德化を實現するための補助手段、すなわち禮治システムのカテゴリに限定されて機能し、それに應じ て、中國古代の儒家の刑罰觀は恤刑·愼罰が强調·重視された. これは、恤 刑の立法原則である明德愼罰·惟刑是恤に反映されています. 明德愼罰·惟刑是恤に內包されている恤刑の本質は濫刑の境界と正刑だった. 周代は恤刑の本質である濫刑の境界と正刑を實現するために案件の起訴 から執行まで訴訟全體で樣□な法規を制定した. 唐宋元·高麗も東アジア法制の基本的な構造の德主刑輔を基礎に置き、 同時に恤刑の立法原則である明德愼罰·惟刑是恤思想に基づいて刑罰に愼重を期すた. そして唐宋元·高麗で恤刑の立法原則である惟刑是恤·明德愼罰思想が頻繁に提起された背景には、すべて濫刑·寃獄·滯獄という獄訟 の弊害があり、その解決策として恤刑の本質である濫刑の境界と正刑に しようとしました. この点で唐宋元·高麗の恤刑の立法原則と刑政の認識 も周代のそれと基本的に同一線上にあったといえる. 一方、唐宋元·高麗で恤刑の立法原則である惟刑是恤·明德愼罰と、そ の中に內在する濫刑の境界と正刑を實現するために赦免、減刑に關する さまざまな法規を立案·運營している. その中で特に恤刑の立法の原則と 刑政の認識が集約されているのは刑獄の迅速な審理の判決を重視する慮囚·疏決、取調時拷訊. 覆奏、刑の執行と受刑者に適用される月令の規定 である. ところが唐宋元·高麗に施行されたこれらの規定は、通常濫刑の境界と正刑を實現するために立案·運營され周代の法規に基づくながらも 各王朝に內在する特殊性によって違いがある. これらの違いは、中國法 制の內部の變化だけでなく、東アジアの各地域で展開された法制の係數·定着を經て獨自化する過程で始まったことを言ってくれたと言えよう.
10~13세기 漂流民 送還體制를 통해 본 동아시아 교통권의 구조와 특성
전영섭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1 石堂論叢 Vol.0 No.50
This dissertation with the various characteristic middle drift one actual condition which is developed from 10∼13 centurial East Asia trades circle the structure and a quality of the traffic circle which is formed analyzed a repatriation setup and this time examined. The drift one occurrence and the repatriation this timely East Asia trade setup and is very deep relationship. Consequently about this problem investigation there is being a possibility of seeking the entity about formation of the sea network, a possibility of knowing the composition of the people who advances toward the ocean from the various nations and to observe there is also these drift one control process and namely repatriation setup leads is a research territory which is important from the point which is the possibility which even until structure and quality of difference of foreign trade management of the various nations and further East Asia traffic circle tries. To the drift one repatriation setup which occurs consequently from this timely East Asia merchant ocean with the stage major role, under these leading this week when is a southeast route -Kumju(金州)- Tamna(耽羅) -Daemado(對馬島)-Kuju(九州) and the western sea route -Naju(羅州)-Kunsan(群山)-Daemado(對馬島)-was joined together. And Naju which from this setup reaches to the cluster home country and when considers the point which repatriates the line burning, drifting where also song is developed from East Asia to close relation to the repatriation setup which pushes was. This timely East Asia drifting the repatriation setup which pushes southeast route-Myengju(明州)-Kumju(金州)- Tamna(耽羅) -Daemado(對馬島)-Kuju(九州), the western sea route Myengju(明州)-Naju(羅州)․Gunsan(群山)-Daemado(對馬島)- the method which is formed. And to the area where is located in this route almost the most higher officer existing the possibility is, was the key point of the traffic where the commerce advances. And to the area where is located in this route almost the most higher officer existing the possibility is, was the key point of the traffic where the commerce advances. Drifting which from like this point is developed from 10∼13 centurial East Asia the repatriation setup which pushes 10th century after that hour doctor setup which is formed (business reverse setup = civil trade system in the merchant center ocean with the stage) comes is to be a structure which is identical. 이 논문은 10∼13세기 동아시아 교역권에서 전개되고 있는 여러 특징 가운데 표류민의 실태와 송환체제를 분석하여 이 시기 형성된 교통권의 구조와 특성을 알아보았다. 표류민의 발생과 송환은 이 시기 동아시아 교역체제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검토는 해상 네트워크의 형성에 대한 실체를 찾을 수 있고, 바다로 진출한 사람들의 구성을 알 수 있으며, 또한 각국에서 이들 표류민의 처리절차, 즉 송환체제를 통하여 각국의 대외교역 관리의 차이점, 나아가 동아시아 교통권의 구조와 특성까지도 살펴볼 수 있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영역이다. 이 시기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표류민의 송환체제에서 표류민을 송환할 때 고려․일본 간에는 탐라 중심의 탐라―금주―대마도라는 항로가 한 축을 이루고 있었고, 송․고려 간에는 나주 중심의 남방(남중국)항로가 이용되었다. 그리고 이 항로에 위치한 표류민의 출신지역(탐라․나주․강주 등)에는 대부분 상관이 존재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업이 발달하고 海商의 활동이 활발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러한 점에서 10∼13세기 동아시아에서 전개된 표류민 송환체제는 10세기 이후 형성된 시박사체제(海商 중심의 사무역체제=민간교역시스템)와 동일한 구조였다.
당(唐)ㆍ일본(日本)ㆍ고려(高麗)의 부곡(部曲)ㆍ가인(家人)ㆍ가노(家奴) 비교 연구 -그 기원(起源)과 특징(特徵)을 중심으로-
전영섭 부경역사연구소 2012 지역과 역사 Vol.- No.30
三國の賤人制は唐の律令制を模範にして、自國法の例の受け入れに應じて差別性を示した。このうち、私賤人は、各國の賤人制の特徵を明らかにすることができる部分である。つまり、律令身分制の良賤制は國王を頂点に階層身分秩序を實裝しているので、强力な國王の權力を示すことができる制度である。ところで私賤人は國王權が浸透したことがある素地が官賤人より少なくならざるを得ない。これ私賤人の編制がどのような方法で行われたかがすぐに賤人制の特徵といえる。これに對するもので、中國の部曲、日本の家人、高麗の家奴を考察對象とした。 部曲は先にも述べたように沒落した良人や戰爭捕虜を政府が主であると妥協して編制し、家人は、日本の豪族に屬している人民を統制しながら形成された身分である。これらの法的地位は、私奴婢よりも一段階高い。そしてこれらは良人に疏通できる素地を持っており、例えば、部曲は良人の女性と結婚し、さらに姓名を使用し、家人は主人家の代切れる良人に解放された。また、部曲と家人は以後に家兵の役割に變質され、その地位も以前の賤人とは比較できないほどに改善された。最後に、これらは主人家に從屬度が强かったが、部曲と家人の中で、後者はこの部分では、忠誠度が優れている。このような特徵を背景に、高麗の家奴を比較するとこれも、これらのカテゴリと似ていま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