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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本の儒學における睡隱姜抗 の足跡 : 藤原惺窩와의 交流를 中心으로 藤源惺窩との交流を中心として

        林成哲 부산 외국어 대학교 1988 外大論叢 Vol.6 No.1

        日本에도 古代부터 外國思想이 輸入되어 4世記頃에는 儒敎가 들어가서 儒敎를 統一國家의 政治理想으로, 佛敎를 人間의 內面的 精神問題의 解決로 받아드렸다. 이러한 外國思想이 日本人의 精神生活을 支配하게 된것이 佛敎는 鎌倉時代, 儒敎는 江戶時代에 들어서이다. 特히 豊臣秀吉의 任辰. 丁酉亂後, 德川家康이 覇者가 되면서부터 自身이 내서운 支配體制의 根據를 儒敎에 두고 대대적으로 儒敎를 장려했다. 儒敎는 德川幕藩體制의 正當性을 理由로하여 儒敎倫理에 의한 日本의 統一을 企圖했다. 또한 德川支配體制의 精神的支柱로서 朱子學을 택하고 이르 官學으로 삼았다. 이와같이日本에 있어서 朱子學을 開拓한 사람이 所謂 「京學」의 始祖라고 불리우며 佛敎에서 還俗한 藤原?窩이다. 그러나 ?窩이 「四書新註」의 公表로 日本의 巨儒가된것은 바로 姜?의 도움에서 비롯된것이다. 姜沈은 丁酉倭亂때 日本軍에 捕虜가 되어 京都에 머무는 동안 ?窩와 交遊하면서 그에게 儒學의 講義와 學問精神의 討究로 直接 援助해 주었던 것이다. 本稿는 捕虜姜沈과 藤原?窩의 交流를 中心으로 日本에 있어서의 朱子學普及과 文敎復興을 이룩하는데 多大한 功獻을 한 姜沈의 事積에 對하여 論考해 보았다.

      • 2008 대한민국패키지디자인대전 대상수상 - 아이나비 K7, 최고급 디지털 컨버런스 패키지 디자인 선뵈

        임성철,Im, Seong-Cheol (사)한국포장협회 2009 包裝界 Vol.189 No.-

        제17회대한민국패키지디자인대전에서는 일반부문 대상으로 전자부문에 출품한 D&C의 팅크웨어 아이나비 K7이 선정되었다. 금번 2008년 대한민국패키지디자인대전에서는 외관을 구성하는 형상, 모양 및 색채 등의 요소가 종합적으로 아름답게 구성되고 독창성이 있으며 판매를 촉진 할 수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평가가 이뤄졌으며 특히 상품 목적에 적합한 기능, 사용상의 편리성 및 유지 관리의 용이성 등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작품을 높게 평가했다. D&C 임성철 국장에게 수상소감 및 아이나비 K7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았다.

      • KCI등재

        자문화기술지를 통한 고등학교 학교스포츠클럽 운영 경험 분석

        임성철,이승범 한국홀리스틱융합교육학회 2012 홀리스틱융합교육연구 Vol.16 No.1

        이 연구의 목적은 학교 현장에서 2년간 학교스포츠클럽을 운영했던 경험을 자문화기술지를 통해서 탐색적으로 분석하여 학교스포츠 클럽을 운영했던 체육교사의 경험과 다양한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 학교스포츠클럽대회를 운영하고자 하는 체육교사들에게 학교스포츠클럽대회 운영에 관한 실천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학교스포츠클럽대회를 2년간 운영했던 연구자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자문화기술지를 활용하였다. 자기회상, 자기성찰, 자기관찰, 참여 관찰, 연구일지의 작성, 심층면담, 관련 문서의 분석을 실시하였고 수집된 자료들은 자문화기술지 분석방법으로 분석하였다. 체육교사의 학교스포츠클럽 운영 경험은 다음과 같이 분석되었다. 첫째, 학교스포츠클럽대회 학급 구성원 간의 관계를 가깝게 하였고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통해서 연구자는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하였다. 둘째, 연구자는 장기간의 학교스포츠클럽대회 운영으로 인한 과중한 업무로 큰 부담을 갖고 있었다. 셋째, 연구자는 학교스포츠 클럽대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했으나 학교스포츠클럽대회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교사들과의 갈등으로 외로움, 슬픔, 분노를 경험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experiences of a Physical Education(P.E.) teacher who has managed a high school sports club for two years by using an autoethnography, to understand the experiences and various emotions of researchers, and to share practical knowledge of school sports club management. The autoethnography is used for the naturalistic description of a researcher’s experiences and emotions. I have examined my own experiences as a P.E. teacher through self-recall, self-reflection, self-observation, participant observation, research journal, depth interview, and document analysis. The key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the students in school sports club activities showed intimate relationship with their classmates. Above all, they expressed and shared their true feelings with the researcher, which was a big gift for the researcher. Second, the long period of the school sports club management was stressful and demanding. Third, due to the stress from some teachers who had negative perspectives with the school sports club management, the researcher couldn't help suffering from loneliness, sadness, and resentment.

      • KCI등재

        고대 희랍 철학에 나타난 ‘관상적 생활’ : 이상(理想)의 기원과 의미에 관한 연구

        임성철 중앙대학교 중앙철학연구소 2007 철학탐구 Vol.21 No.-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희랍의 생활이상을 향락적 생활, 정치적 생활, 관상적 생활로 구분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구분이 그보다 이전 시대에 논의된 사실로 인정한다. 관상적 생활의 기원에 관하여 헤라클레이데스는 피타고라스가 그러한 생활 이상의 제창자라고 밝힌다. 그러나 피타고라스가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성향을 나타내는 조화의 철학자라는 점과 그의 교단에 속한 자들의 정치 참여를 감안할 때, 그를 단순히 자연을 관상하는 철학자로 단정지울 수는 없다. 관상적 생활의 문헌상의 기원을 피타고라스에게 둔다할지라도, 정신적 기원은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그리고 플라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관상적 생활은 실천적 생활과 혼재된 혹은 대립적 모습을 보여준다. 관상적 생활에 관한 Franz Boll의 심도 깊은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그의 테오리아에 대한 어원적 의미 분석은 학계에 논란의 여지가 없이 받아들여지지만, 탈레스 이래로 철학자의 삶의 이상이 관상적이었는가 그리고 관상적 생활은 실천적 생활과 언제나 상극관계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아울러 후대에 정형화된 관상적 생활이 고대로 소급되어 그 독자적 권위를 갖게 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 의문시된다. 그 까닭은 이와 관련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철학자의 삶이 관상적 생활과 실천적 생활의 조화를 추구한 삶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관상적 생활은 특히 소크라테스에게서 실천적 생활의 존재 이유로서 관상적 생활의 가치가 드러나면서 실천적 생활과 분리되기 시작한다. 아울러 사유가 자연이 아니라 인간에게 향해지면서 실천적 생활이성의 통제자로서의 관상적 생활이 인정받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관상적 생활과 실천적 생활이상의 통일을 성취한 최초의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6권, 7장에서 관상적 생활의 기본 원리로 소피아를, 실천적 생활의 원리로 프로네시스 개념을 분석한다. 이 분석에 따르면, 테크네의 본질은 아레테에 있고, 소피아, 아레테 그리고 테크네는 같다는 등식이 성립한다. 하지만 아레테는 정신적ㆍ윤리적 의미를 갖게 됨으로써, 테크네에서 떨어져 나와 소피아와 아레테가 같게 되고, 결국 이론과 윤리적 의미의 실천과의 통일이 이뤄진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프로네시스 개념을 윤리적 지식으로, 이해 반해 소피아 개념을 형이상학적 지식으로 한정시킨다. 플라톤은 인간이 로고스적인 동물이자 동시에 뛰어난 폴리스적 동물임을 인정하면서, 철인왕 사상과 관상적 생활이상의 연관성을 논의한다. 관상적 생활의 형이상학적ㆍ윤리학적 의미에서 관상적 생활은 플라톤의 경우 종교적 영감에 의하여 초월적 세계를 관상한다는 형이상학적 비전으로 이해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는 순수한 지성의 활동으로 지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실천적 영역에서 모든 의무를 감면해 주게 된다. 이후 관상적 생활은 여러 학파로 계승되며, 고대 후기에는 관상과 실천이 혼합된 삶이 두드러진다. 결과적으로 이 논문에서 확인되는 바는 관상적 생활이 희랍인의 철학적 생활이상으로서 초기 자연 철학자들에 의해서 창시되고 실천되었다기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이론적으로 정립되었다는 점이다. 고전 시대 희랍인의 의식에게 관상적 생활은 실천적 생활과 조화되기 어려운 두 세계로 구분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플라톤에게서는 '관상하는 실천'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실천하는 관상'이 우위(優位)를 점유했다고 할 수 있다. Es ist wohl bekannt, dass Aristoteles das griechische Lebensideal unter drei Lebensformen, nämlich das apolaustische Leben, das politische Leben und das theoretische Leben unterscheidet. Er weist aber darauf hin, dass diese Unterscheidung schon vor ihm verbreitet und von manchen viel gesprochen worden ist. Über den Ursprung vom bios theoretikos spricht Herakleides, Pythagoras sei Urheber dieses Lebensideals. Unter dem Gesichtspunkt, dass Pythagoras als Philosoph der hamonia war, mit der er politischen, religiösen und philosophischen Charakter zusammenverbindet, und dass die Pythagoreer das politische Engagement haben, darf man nicht behaupten, dass er ein Philosoph war, der nur die Natur betrachtet. Obwohl der doxographische Ursprung des bios theoretikos Pythagoras zuschreibt, scheint es zu sein, dass der geistige Ursprung vor ihm gewesen war. Die Angaben von Homer, Herodot, Euripides, Aristophanes und Platon zeigen sich, dass das theoretische Leben und das praktische Leben gemischt oder gegenseitig waren. In Betracht der richtungsweisenden Forschungsarbeit von F. Boll über den bios theoretikos wird zwar seine etymologische Analyse der theoria unter Mitforschern zweilsohne akzeptiert. Aber es ist fraglich, dass seit Thales das Lebensideal der Philosophen theoretiscb war, und der bios theoretikos immer mit dem praktischen Leben konfrontierte. Dazu noch ist es umstritten, dass der bios theoretikos, der im späteren Zeitraum charakterisiert und danach zum früheren Zeitraum zurückgeführt wird, seine absolute Autorität bekam. Weil nach Diogenes Laertios und Aristoteles die griechischen Philosophen auftreten, die das theoretische Leben und das praktische Leben harmonisieren. Insbesondere bei Sokrates fängt die Spaltung von beiden Lebensformen an, wobei die Wert des theoretischen Lebens als Daseinsgrund des praktischen Lebens erhoben wird. Es hat allmählich begonnen, dass das theoretische Leben für die Kontrolle des praktischen Lebens anerkannt wird, indem sich das Denken nicht nach der Natur, sondern nach dem Menschen richtet. In diesem Sinne kann Sokrates zum ersten Denker gewürdigt werden, der das theoretische Leben und das praktische Leben einheitlich zusammenbindet. Aristoteles erhellt in seiner Nichomachischen Ethik(Buch 6, Kap. 7), dass sophia für das Grundprinzip des bios theoretikos, und phronesis für das Grundprinzip des praktischen Lebens gekennzeichnet wird. Nach diesem Verständnis besteht die techne in der Arete. Demzufolge stellt Aristoteles sophia, arete und phronesis gleich. Die arete enthält aber den geistigen und ethischen Sinn. Dadurch ist sie getrennt von der techne. Folgerichtig wird die sophia zur arete. Konsequenterweise werden die theoria und die die ethische Bedeutung in sich habende praxis einig. Letzten Endes wird die phronesis als das ethische Wissen bei Aristoteles betrachtet, und demgegenüber die sophia als das metaphysische Wissen beschränkt. Bei Platon ist der Zusammenhang zwischen dem Philosophen-König und dem bios theoretikos die Rede, wobei er die Menschen nicht nur für zoon logon, sondern auch für zoon politikon hält. In metaphysischer und ethischer Hinsicht ist der bios theoretikos bei Platon eine metaphysische Vision in dem Sinne, dass man die transzendente Welt durch die religiöse Inspiration schaut. Im Vergleich dazu ist der bios theoretikos bei Aristoteles die intellektuelle Tätigkeit des reinen Geistes. In dieser Tätigkeit sind die Philosophen von allen praktischen Verpflichtungen befreit. In den folgenden Jahrhunderten war der bios theoretikos in verschiedenen Schulen überliefert worden. Und in der späten Antike war die gemischte Lebensform von der theoria und der praxis von besonderer Bedeutung. Zusammenfassend lässt sich sagen, dass bei den Griechen der bios theoretikos als das philosophische Lebensideal nicht von Vorsokratikern gesprochen und praktisiert wird, und jedoch vielmehr seit Aristoteles an Bedeutung gewinnt. Unter dem Bewusstsein der Griechen ist der bios theoretikos vom bios praktikos nie getrennt. Daher haben die beiden Lebensideale keine Schwierigkeit, miteinander harmonisiert zu werden. Kurzum: Bei Platon spielt die schauende Praxis erste Geige, und bei Aristoteles die praktisierende Theoria.

      • KCI등재

        에피쿠로스 '쾌락' 개념의 사상적 체계 및 토대 - Kyriai doxai를 중심으로 -

        임성철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2007 철학연구 Vol.0 No.34

        In den Kyriai doxai, die das "Glaubensbekenntnis des Epikureismus" (C.-F. Geyer) und die "Quintessenz der gesamten Lehre"(H. Steckel) seiner Philosophie enthalten, erklart Epikur, dass der Hedonebegriff als das Begrenzte verstanden wird. Diese Untersuchung zielt darauf ab, festzuhalten, wie er zu der so starken positiven Fullung des Hedonebegriffs kommt, wo doch die Hedone nagativ im Sinne einer blossen Abwehr des Bedrohenden und Beunruhigenden beschrieben wird, und zu erhellen, was das gedankliche System und Fundament seines positiven Hedonebegriffs ist. Zur Vermeidung der unmoralischen Kritik an der Verbindung zwischen der Hedone und moralischer Arete geht Epikur von seinem empiristischen Hedonismus auf der Basis von der erkenntnistheoretischen Sicherung des ethischen Lebensziels, der Unterscheidung der Epithymiai und dem Zusammenhang zwischen sozialer Gerechtigkeit und Philia aus. Und Epikur bezeichnet seinen gedanklichen Hintergrund, mit dem man das moralische Agathon und die Hedone verbindet, nicht als die objektive Weltordnung, sondern als das subjektive Sichheitsgefuhl. Damit begrundt er die Grundlage seines hedonistischen Gedankensystems im Begriff Autarkeia, indem er die Eudaimonia fur das Ergebnis der Freiheit des unabhangigen Ichs halt. Zugleich ist bei Epikur der Philiabegriff nicht nur als ein Element fur die Verstarkung der ausseren Grenze des Hedonismus, sondern auch als ein Ausgangspunkt fur die innere Freiheit zu verstehen. Dazu weist Epikur, der die Grundposition des sokratischen Autarkiebegriffs ubernimmt, darauf hin, dass die Freiheit als die Grundlage der selbstandigen Erfahrung, die dem Menschen die absolute Souveranitat und die Eleutheria bietet, das Ergebnis der Autarkeia sein soll. In dieser Hinsicht sind bei Epikur die beiden Begriffe, Autarkeia und Eleutheria, eine grundlegende Basis fur die Verwandlung vom negativen Moment zur positiven Uberzeugung. Die Ataraxia, die die hedonistische Philosophie Epikurs beinhaltet und die das Endziel der unter der Voraussetzung der Physiologia und Erkenntnistheorie entfalteten Ethik ist, kann man als die "Bedurfnisokonomie" kennzeichnen, in der man die endgultige Seelenruhe beim Festhalten der durch sich selbst begrenzten Physis und unter der freiwilligen Anerkennung der relativen Autarkeia vollendet. “에피쿠로스주의의 신앙고백”이자 그의 철학 “전체 가르침의 정수”를 담고 있는 『중요한 가르침』에서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한정적이고 제한적인 의미로 설명한다. 본 논문은 위협과 불안정에 대한 단순한 방어라는 쾌락 개념이 갖는 부정적 의미에서 에피쿠로스가 어떻게 긍정적 측면을 나타내는가를 확인하고, 특히 이러한 긍정적 측면의 사상적 체계와 근거를 밝히는 데 그 목적을 둔다. 에피쿠로스는 『중요한 가르침』에서 쾌락과 도덕적 아레테의 결합을 통해 비도덕성의 비난을 피하면서, 윤리적 삶의 목적 달성을 위한 인식론적 방책, 욕망의 구분, 사회적 정의와 우정의 연관성을 토대로 자신의 경험론적 쾌락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을 제시한다. 또한 그는 윤리적 선과 쾌락의 결합을 근거 짓는 사상적 근거를 객관적 세계 질서로 상정하지 않고, 주관적 안전감을 통해 나타낸다. 이러한 주관적 안전감을 전제로 삼아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쾌락주의 사상 체계의 기반을 ‘자족’ 개념을 통해 근거 짓고, 비의존적 자아의 자유로움의 결과로 드러나는 행복감을 강조한다. 아울러 그의 ‘우정’ 개념은 쾌락주의의 외적 경계를 공고히 해주는 요소이자 내적인 자유로 이끄는 출발점으로 이해된다. 여기에 덧붙여 소크라테스의 자족에 대한 근본 입장을 수용한 에피쿠로스는 인간에게 절대적 주권과 자유를 제공하는 자립적 경험을 자족의 결과인 ‘자유’로 지적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에피쿠로스에게서 ‘자족’과 ‘자유’는 그의 쾌락주의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계기를 긍정적 확신으로 변환시키는 근거이자 기반이라 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철학이 목적으로 삼는 ‘아타락시아’는 그의 자연학과 인식론을 전제로 전개되는 윤리학의 궁극적 목표로서, 인간이 자신의 본성이 정한 한계를 엄수하고, 상대적 자족을 자발적으로 인정하는 데서 완성되는 “욕구의 경제학”이라 할 수 있다.

      • 기관지내 섬유종

        임성철,이용,김동출 朝鮮大學校 附設 醫學硏究所 2005 The Medical Journal of Chosun University Vol.30 No.1

        A 61-year-old man with dyspnea and wheezing depending on recumbent posture was admitted to the hospital because of a tracheal mass, which was found on a routine check done by health care unit of the another hospital. Computed tomography of the chest revealed a polypoid endobronchial mass in the left bronchus. Bronchoscopy revealed a 2cm-sized polypoid mass at 7cm below the carina. The tumor was successfully removed without dropping any tumor fragments to obstruct the distal bronchus. A biopsy taken from the tumor was fibroma histologically. Endobronchial fibroma is a rare benign lung tumor. The patient had an uneventful postoperative recovery course. No adjuvant therapy was deemed necessary or given. Follow-up bronchoscopies done 1 day and 4 months after the polypectomy did not demonstrate any sign of recurrence or residue of the tumor, respectively.

      • KCI등재

        고대(古代)의 경복진단법(經服診斷法) 중 십이경맥(十二經脈) 맥진(脈診)에 관(關)한 연구(硏究)

        임성철,손성철,이경민,황민섭,김갑성,윤종화,Lim, Seong-cheol,Son, Seong-cheol,Lee, Kyung-min,Hwang, Min-seob,Kim, Kap-sung,Yoon, Jong-hwa 대한침구의학회 2002 대한침구의학회지 Vol.32 No.4

        Objective : The study of relations between twelve meridians and pulse diagnosis Method : The possiblity of pulse diagnosis on the pulse points(脈動處) of each meridian through the scription of $\ll$Maek beop(脈法)$\gg$ $\ll$Nae kyeong(內經)$\gg$ and $\ll$Nan kyeong(難經$\gg$ Result : The comparative pulse diagnosis method(比較脈診法) in the scription of $\ll$Mack beop$\gg$ progressed to the five Jang bu maek(五臟脈) in the scription of $\ll$Young chu : Sa gi jang bu byeong hyeong(靈樞 邪氣臟腑病形)$\gg$ in accordance with the progress of pulse diagnosis and the theory of medicine. Conclusions : The comparative pulse diagnosis method in the scription of $\ll$Mack beop)$\gg$ progressed to the five Jang bu maek(五臟脈) in the scription of $\ll$Young chu : Sa gi jang bu byeong hyeong$\gg$ and the moxibustion and Pyum bup(貶法) in the scription of $\ll$Mack beop$\gg$ altered to acupuncture therapy on the five shu points(五輸穴)

      • 두경부 편평세포암종에서 c-erbB 수용체, MMP 및 VEGF 발현

        임성철 朝鮮大學校 附設 醫學硏究所 2005 The Medical Journal of Chosun University Vol.30 No.3

        Head and neck squamous cell carcinomas (HNSCC) are characterized by a marked propensity for local invasion and cervical lymph node metastasis. The aim of this article was to review the expression of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 (EGFR), c-erbB-2, vascular endothelial growth factor (VEGF) and matrix metalloproteinases (MMPs) in HNSCC patients and to study their possible correlation to various clinicopathologic parameters. Based on this review, the expression of EGFR, c-erbB-2, VEGF, or MMPs play important roles for tumor growth, invasion and metastasis in HNSCC. c-erbB receptors, MMPs and VEGF might aid the clinician in theselection of an appropriate therapy for individual patients and help to predict the prognosis of patients.

      • 朝鮮通信使往還における日本側の接待問題 : An Analysis of Arai Hakusekis Revision of Treatment Terms and the Reason of Delegation Exchange Ruptures 新井白石の特遇改定分析と通信使行停止の意味

        林性哲 부산외국어대학 1985 논문집 Vol.3 No.-

        本考는, 壬辰·丁酉兩亂後, 對馬의 誠意있는 交涉과 德川家康의 和親政策을 받아들여, 修好刷還, 또는 善隣慶賀使節로서 訪日했던 通信使에 대한 日本側의 接待內容을 살펴본 論文이다. 韓·日間의 二千年歷史에서 兩國이 가장 隣好로 通交한 일은 역시 豊臣秀吉의 兩亂以後인 近世朝鮮中期(宣祖40)부터 末期에 이르는 約 260年間이라 할 수 있겠다. 이 時期에 우리나라에서는 親善友好使節團인 通信使가 12回나 日本에 派遣되어 韓國史, 日本史의 各槪說書에도 通信使訪日事實을 敍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通信使의 性格이나 活躍이 무엇이며, 通信使訪日이 갖는 歷史的 意義는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져 있지않는 상태로 그친 실정이다. 이런 意味로 本考에서는 우선, 一行 500여명의 通信使가 日本領內에서 보통 5∼8개월동안 체재하는중, 거기에 따른 經濟問題나 勞力動員, 實行者의 立場은 어떠하였으며, 執權者의 意圖는 무엇인지를 前提로 通信使送迎準備에 관한 全般的過程을 整理하여 보았다. 더욱이 日本으로서는 通信使가 唯一한 修交國使節團이고, 또한 自國의 繁榮을 과시하려는 점에서도 지나친 歡待를 하여 沿道各藩의 제정고갈을 야기시키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立場에서 6代將軍家宣襲職祝賀使節團(1711年)때에는 드디어 通信使에 대한 待遇改正이 斷行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新井白石의 正德通信使待遇改革"이다. 江戶慕府家宣時代의 中心人物로서 政治的實力者인 新井白石의 改革을 日本의 歷史敎科書에는, "從來, 지나치게 정중했던 朝鮮使節의 待遇를 改正하여 나라의 權威를 높였다"고 敍述하고 있다. 그러나 日本에서 一般的으로 알려진 만큼, 실제로 待遇簡系化가 成果가 있었는지의 여부를 分析檢討하여 보았다. 또한 純祖11(1811)年에는 通信使行이 政治中心地인 江戶가 아니고, 對馬에서 易地行禮가 이루어졌는데 결국 그 原因은 어디에 있는지를 新井白石의 待遇改正과 관련하여 論考하여 보았다. 結論的으로는 前後通信使行을 통해, 韓·日關係에 있어서 잊혀져가는 歷史的事實의 眞實을 알고, 이를 토대로 今後韓·日兩國의 보다높은 友好增進을 認識시키는 契機를 提示코자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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