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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총화』는 조선 전기 대표적 文人인 虛白堂成俔(1439∼1504)의 저술이며 조선전기 필기류 문학의 白眉로 꼽히는 傑作으로서 중종 20년 (1525년)에, 아들 世昌이 주선하여 慶州에서 간행되었다. 『용재총화』는 高麗때부터 成宗까지의 王世家, 士大夫, 文人, 書畵家, 音樂家등의 人物逸話를 비롯하여 風俗. 地理. 制度. 音樂. 文化. 笑話등 사회문화 전반을 다룬 필기류이다. 『용재총화』 는 일찍부터 여러 연구자들에 의하여 연구되어 왔다. 수록된 내용이 다양한 만큼 이에 대한 관심 역시 다양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주요 관심사로 부각된 것은 笑話이다. 여기서 다시 같은 자료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소화" 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설화적 측면에서 만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좀더 시각을 확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코자 함이 이 글의 주목적이다. 필자는 우선 서양과 동양 3국의 소화의 개념부터 검토하여 확정하고 유형별 분류를 시도하고 이에 기초하여 용재총화 에 所載된 "笑話"를 유형별로 분류하여 분석한 결과 용재총화 에는 무려 91편의 소화가 기록되어 있다. 이런 소화가 기록된 배경은 성현이 다양한 문예취향을 지향한 훈구파(勳舊派)에 속한 것도 있지만 당시 흥행한 광대놀이 특히 소학지희(笑謔之戱)와도 갈라놓을 수가 없다. 성현은 예문관대제학을 맡고 있었기에 궁중에서 진행되는 각종 연회나 의식에서 연출되는 각종 광대놀이를 직접 장관하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남보다 이런 것을 접촉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기록가능성이 있다. 또한 성현은 당시 뛰어난 文才로서 이런 소화를 기록함에 있어서 그의 뛰어난 문학적 기량과 소화를 다루는 독자적인 시각으로 보다 흥미 있게 다루어 고농도의 웃음을 유발시키게 하였다. 이 소화들은 또 성현의 강한 현실의식과 해학성까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때까지 기타의 소화집들은 단독으로 소화집을 이루고 있어 중요시되어 왔지만 『용재총화』에 所載된 笑話들은 그 방대한 양에 끼여 있어 중시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기타 소화집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소화로써 笑話史에 귀중한 자료로 된다. 이 소화들은 소화뿐만 아니라 기타 문학, 특히 소설에 소재로써 직접 수용됐을 뿐만 아니라 인물, 구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면에서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용재총화』에 소재된 이런 소화들은 풍자와 해학 등 희극성을 갖춘 소설에서는 큰 변화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적용됨을 보여주며, 소화가 소설에로의 변모과정을 보여준다는 데서 중요한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Yong Jae Chong Hwa」was written by Sung-hyun Bag-dang who was a representative man of letters in the first term of Chosun period. This is a mast erpiece of note literature and is published by the king Jung-jong's son, Che-chang, in Kong-jue province. This describes so many stories of royal families, high officers, men of letters, painters, and musicians who lived between Korea period and Sung-song period. This is also a collection of all humorous stories which cover general social cultures such as customs, public morals, geographical features, social system, music, lit erature and folk story. 『Yong Jae Chong Hwa」has been studied by researchers. This includes so many stories, and produces interesting results. In these results, the major interest is the humorous fable. In this paper, I consider the different approach to the fable which has been studied hitherto. And I give a new chance to under st and the fable in amore extensive view. I investigate and define a fable term of the Occident and the Orient. Sorting this term into type and get 91 fables in 『Yong Jae Chong Hwa」based on his experience and knowledge of various literature, folk culture, and so on. His job is a government official that treats any part of palace and produces any folk plays. Therefore, he had many chances to get various experiences. And he shows his wonderful dexterity in view of art and literature talent. All of these reasons makes his strong reality and humor. This fables in the 『Yong Jae Chong Hwa」was not treated in other studies, but this is very important to the fabl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and other literatures. In this paper, I introduce this fable that it important and has had a great influenece on Korean literature.
임명걸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2013 국내박사
본 논문은 18세기 후반기 북학파 지식인들의 연행록을 중심으로 그 속에 반영된 실학(북학)정신을 살펴보았다. 18세기 북학파 지식인들은 연행을 통해 실학의 논리와 사유를 보다 구체화시켰고 이러한 점들은 그들이 남긴 ‘연행록’에 적실하게 담겨져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학파 연행록은 연행 주체들의 내면세계를 담아낸 기록물이라는 특징도 함께 지니고 있는 셈이다. 北學의 탄생과 발전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집단 지성과 같은 그룹의 예지를 바탕으로 산생되고, 그 산생의 밑거름은 연행이 그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를테면 燕巖 朴趾源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그룹 혹은 流派 속에서 탄생한 북학과 북학파는 기본적으로 燕行과 깊은 관련성을 지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학파의 연행록 역시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이를 종합해서 파악해야 그 실상에 다가설 수 있으므로 앞에 그들이 남긴 연행록을 하나로 묶어 고찰하였다. 기존 연구는 주로 한 개인의 연행록으로 들여다보거나, 단지 개별 연행록 작품을 주목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북학파 지식인이 남긴 연행록을 18세기 후반기 조선 사상사의 한 획을 그은 북학파의 집단 지성이 일구어낸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였다. 이 점에 착안하여 본고는 연암 그룹의 대표적 인물들인 燕巖 朴趾源, 湛軒 洪大容, 靑莊館 李德懋, 楚亭 朴齊家, 泠齋 柳得恭, 綸菴 李喜經 등의 연행록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그들의 북학정신이 연행록에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펴보았다. 북학파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이용후생의 사안을 상호 토론과 학문적 교류를 통하여 상호 소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연행에서의 견문지식과 체험을 공유한 바 있었다. 무엇보다 북학파 지식인은 연행록에서 집단적 관심을 보인 북학의 諸문제를 고스란히 담아내어 공통 사항을 보다 예리하고 논리적으로 심화시킨 바 있었다. 이는 평소 그룹을 통해 지닌 공통의 사유방식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연행 체험에서 평소의 사유와 논리를 구체화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학파 지식인들은 연행록을 통해 북학정신의 구현이라는 동일한 토대를 구축하면서도 각자의 출신과 신분, 성장배경 등의 차이로 하여 연행 체험을 담은 기록에서 다른 특징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북학파 연행록이 보여주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북학 혹은 이용후생을 통해 자국을 혁신시키려 한 방향에서 어긋나지는 않는다. 본고는 각기 다른 결을 담고 있는 북학파의 연행록의 각 특징을 거론하면서도 가능하면 하나의 사상 그룹, 유파로서 그들 북학파들의 연행록에 나타나는 북학정신의 기본적인 흐름을 읽어내려고 하였다. Ⅱ장에서는 18세기 전반에 거치는 연행록의 실체를 통시적으로 살펴보았고 담헌 홍대용의 연행록을 기점으로 하는 후기 연행록 즉 북학파의 연행록이 18세기 전반기 연행록과 어떤 차별화를 보이는지 살펴보았다. 북학파의 연행록은 18세기 전반기의 연행록에 비해 작자층과 문체형식의 변화, 연행록에 기록된 내용에서 뚜렷한 변별성을 보였다. 북학파 지식인들의 연행록은 기존의 연행록에 비해 작자층이 대부분 삼사가 아닌 수행원으로서 연행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여유 있게 중국을 다방면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형식적인 특징에 있어서도 기존의 일록형식 위주의 연행록에 비해 다양한 형식을 도입하였는데, 잡지체, 기전체, 일기체 등이다. 내용상에서 북학파 지식인들은 기존의 청조에 대한 부정일변도의 시각에서 벗어나 조선사회에 대한 뚜렷한 문제의식을 갖고 발전된 청나라의 문물과 선진기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중국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였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Ⅲ장에서는 북학파 연행록에 대한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그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북학정신이 어떻게 연행체험을 통해 검증되고 재확인 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때 연행의 과정과 그 체험은 그들의 북학정신이 청나라의 실상을 통해 재확인되고 논리적 근거를 획득하는 현장체험의 장이 되었다. 북학파의 이러한 연행 자세와 기록의 방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나타난다. 하나는 관찰의 자세와 열린 시선이다. 북학파들은 연행 이전에 각종 서적에서 얻은 정보와 지식들을 연행과정에서 직접적인 체험과 관찰을 통해 실증하고 재확인하고자 하였으며, 특히 선진적인 문물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세히 관찰하고 설명함으로써 선진적이고 우수한 문물을 조선에 소개하고 나아가서는 조선의 현실에 맞게 적용하고자 하였다. 다른 하나는 실사구시의 태도와 개방성으로 볼 수 있다. ‘북학’파 등장 이전의 조선 지식인들의 청나라에 대한 인식은 ‘북벌’론의 영향 하에 선입견의 작용으로 굉장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이었다면, ‘북학파’들은 청에 대해 무조건 부정이 아니라 실사구시의 자세로 청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사실을 왜곡 없이 인식하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합리적 타자인식과 객관성으로 볼 수 있다. 북학파 지식인들은 청나라의 선진적인 문물과 기술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수용하여 낙후한 조선의 현실을 개혁하는 것을 연행의 주요한 목적으로 삼고 있었지만, 중국의 문물과 풍속을 있는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표준으로 그것의 장, 단점을 분석하고 최대한 합리적으로 인식하고자 하였다. Ⅳ장에서는 북학파 연행록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 살피고 새로운 지식과 다양한 정보의 유통과 학계에 남긴 충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들의 글쓰기 전략은 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하나는 비평방식을 통한 지식 ․ 정보의 제시이다. 비평 방식을 통한 글쓰기는 청나라의 문물이나 문화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연행한 실학자의 시각과 비평을 통해 분석하고 조선의 실정에 맞게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글쓰기 전략을 가리킨다. 그 와중에 비판적인 것을 거쳐 조선 현실에 어울리는 방향에서 논하는 것이 있을 수 있고, 청나라와 조선의 사례를 비교함으로써 더 좋은 것을 수용하려는 것이 있을 수 있으며, 비평자의 안목을 통과하면서 다소 원래 내용과 바뀌거나 굴절되어 수용되는 경우 등 여러 가지 방식이 나타난다. 이런 글쓰기는 비평의 과정을 통해 자국의 실정에 맞게 청나라의 선진적인 문물이나 지식, 정보를 제시함으로써 그 수용과정이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과정이 될 수 있도록 독자들에게 비판적 안목을 키워주는데 그 장점이 있다. 다른 하나는 탐문을 통한 북학의 구현이다. 조정에서 연행 중에 꼭 수행해야 할 특별한 명이 있을 경우 그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단히 탐문을 하여 맡은바 임무를 수행하는데, 그 결과에 대해서만 기록하여 글의 내용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탐문 과정을 중심으로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마지막으로 북학파 연행록의 가장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글쓰기 전략으로 필담과 대화를 통한 타문물의 수용을 들 수 있다. 이는 18세기 북학파의 연행록이 연행 체험을 통해 청나라와 외국의 선진 문물과 기술을 수용하여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개혁하고자 했던 뚜렷한 목적과 의식을 가진 글쓰기였던 것으로부터 연유한다. 이 과정에서 필담은 주로 청나라의 관리, 문인, 서양 선교사 등과 새로운 문물의 원리, 사용방법, 특징 등을 물어보는 담화 형식으로 나타나며 대화는 주로 조선인과의 문답형 교류를 통해 청나라와 외국의 새로운 문물과 조선의 것을 비교하고 청나라의 새로운 문물에 대해 설명하고 그 우수성에 대해 설득하면서 그것의 수용을 주장하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 논문은 집단 지성으로서의 북학파의 그룹 내지 유파적 성격에 주목하여 연행체험과 북학사상의 공유라는 측면에서 그들의 연행록을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공유된 체험과 사상이 주로 다뤄졌으며 그 기본적인 흐름에서 이탈하는 미세한 가닥의 차이에 대해서는 세밀한 분석을 진행하지 못했다. 이는 이후의 작업으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