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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문화권의 역사 유산과 역사 연구자의 지적 곤경

        이훈상 ( Lee Hoon-sang ) 한국한문학회 2021 韓國漢文學硏究 Vol.- No.81

        이 연구는 역사학의 시점에서 일상 및 일상사가 한문학 연구에서 왜 중요하며 어떻게 조우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논의한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연구자는 이 연구가 서구의 일상 및 일상사 연구 동향 그리고 이에 촉발된 한국사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것으로 생각할 것 같다. 그러나 이와 달리 이 연구는 俗利의 세계가 뚜렷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19세기 후반의 새로운 역사적 경험이 논의의 중심이다. 바로 이 시기에 조선왕조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禮治와 義理와 맞서고 타협하는 사회 문화적 역동성이 급격하게 분출하면서 한국에서 일상 또는 일상성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시작하였고 나아가 이것이 근현대를 만든 중요한 전경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이 연구는 俗利의 중요 표상으로서 popular culture의 급격한 확산과 더불어 주변부 지역에서 상층 문화를 적극적으로 포섭하는 새로운 움직임 그리고 한자 문화권이 계급과 지역을 넘어 확산한 변화를 지목하였다. 이 같은 중요 동향은 오랫동안 간과 되었는데 필자는 이것이 정전과 중앙 중심의 헤게모니 나아가 엘리트 중심의 편향성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배경에 깔린 한국학계의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거대 이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한문학이 오히려 새로운 지평을 열 가능성도 모색하였다. 이 같은 논의를 위하여 필자는 자신의 지적 여정을 자전적 역사 민족지의 방법으로 풀어가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다양한 지적 영역과의 대화와 현장에서의 추체험 등을 강조하면서 역사 만들기에 자신이 어떠한 방식으로 개입하였는지를 고백하는 방식은 언제나 연구자 개인을 구속하게 마련인 거대 이념을 응시하고 맞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This study discusses why everyday life and its history are important and what should be an issue in the study of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in terms of historical study. The attempt to reevaluate the secular self-interest of Joseon Dynasty has not been made until now. However, this paper views the rapidly changing historical phenomena of Joseon Dynasty in late 19th century as the starting point for the study on everyday life history. While confronting and compromising with the norms of Confucianism, Joseon people began to seek for the secular self-interest embedded in everyday life. As its results, popular culture was rapidly spreaded and even the marginal areas began to actively accept the upper culture. The Chinese character culture was also spreaded beyond the limited high class. The fact that these important trends have long been overlooked among the Korean academics has been due to cannon-centered research, the central hegemony of Korean academism, and macro discourse such as intrinsic development hypothesis of Korean academic community. For the discussion, this paper is based on the methodology of autoethn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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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부 림프절염로 발현된 가와사키병과 급성 편측 경부 림프절염의 비교

        이훈상 ( Hoon Sang Lee ),김지용 ( Ji Yong Kim ),송보경 ( Bo Kyung Song ),김용우 ( Yong-woo Kim ),박수은 ( Su Eun Park ) 대한소아감염학회 2016 Pediatric Infection and Vaccine Vol.23 No.3

        목적: 본 연구는 경부 림프절 비대로 시작된 가와사키병과 급성 편측 경부 림프절염 환자에서 임상 양 상, 혈액검사 소견, 경부 컴퓨터단층촬영 소견에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방법: 2010년 1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발열과 경부 림프절 비대로 부산대학교 어린이병원에 내원하여 경부 컴퓨터단층촬영을 시행한 환자 총 372명 중에 가와사키병으로 진단된 28명의 환자군과 편측 경부 림프절염 환자군 28명을 후향적으로 비교하였다. 결과: 경부 림프절염으로 발현된 가와사키병과 급성 편측 경부 림프절염에서 발열 기간, 항생제 사용, 경부 림프절 크기에는 차이가 없었다. 혈액검사 소견에서 CLKD 환자에서 AUCL 환자와 비교해서 총 백혈구 수, 호중구 수, 적혈구 침강 속도, C-반응단백 수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P<0.05). 경부 컴퓨터단층촬영 소견에서 후인두부 부종 소견은 두 군 간에 차이가 없었다(P =0.686). 결론: CLKD와 AUCL을 조기에 구별할 수 있는 특징적인 소견은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발열과 경 부 림프절 비대가 있는 환자에서 항생제 치료에도 증상 개선이 없다면 가와사키병을 고려해야겠다. Purpose: This study aimed to identify the differential clinical, laboratory, and imaging characteristics between patients with cervical lymphadenitis as first presentation of Kawasaki disease (CLKD) and those with acute unilateral cervical lymphadenitis (AUCL). Methods: We surveyed 372 patients who visited Pusan National University Children`s Hospital because of fever and cervical lymph node enlargement, and underwent neck computed tomography (CT) from January 2010 to December 2014. We compared 28 confirmed cases of Kawasaki disease and 28 cases of AUCL based on a retrospective review of the medical records of the patients. Results: Patients with CLKD and AUCL showed no differential clinical characteristics in terms of the duration of fever, antibiotic use, or the size of lymph nodes. Patients with CLKD had higher white blood cell count, absolute neutrophil count, erythrocyte sedimentation rate, and C-reactive protein levels (P <0.05) than those of patients with AUCL. The presence of retropharyngeal edema on neck CT was similar between the groups (64% vs. 33%, P =0.686). Conclusions: CLKD and AUCL showed no differentiating clinical and radiological characteristics; hence, Kawasaki disease should be the presumptive diagnosis in patients with fever and cervical lymph node enlargements who fail to respond to antibiotic trea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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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기 경남 지역사회의 탈춤 “부흥” 운동과 주도자들 -동래 야류 연행의 문화정치학

        이훈상 ( Hoon Sang Lee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2 大東文化硏究 Vol.79 No.-

        이 연구는 1935년의 동래 야류 연행에 촛점을 맞추어 식민지기 연행의 역사를 지역사회의 권력 구조와 담론과의 상호 작용이라는 문화정치학적인 입장에서 논의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각별히 1935년의 연행에 주목한 것은 탈춤이 민속극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포섭되는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인데, 그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식민지기 이후 연행 모두를 논의 대상으로 삼았다. 기본적으로 이 작업은 식민지기 경남 지역사회의 탈춤 연행의 역사를 새롭게 읽고 그 성격을 분명하여야 한다는 구도에서 출발하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동래 야류를 비롯한 탈춤 연행에 대하여는 오랫동안에 걸쳐 적지 않은 연구들이 축적되었다. 그런데 구술에 기초한 이들 민족지적 기술은, 논의 대상이 되는 시기가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칠 정도로 비역사적일 뿐 아니라 문제 중심적인 접근도 찾기 어렵다. 이 연구는 이 같은 문제를 성찰하면서 탈춤의 연행을 지역 사회와 역사의 지평으로 끌어 들였다. 이 작업은 기초 조사부터 새로운 지적 성과와의 대화까지 방대한 영역을 아우를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동래 야류는 여기에 현실적으로 부응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사례에 해당한다. 동래 지역의 경우 다른 지역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풍부하면서도 정치한 지역 연구와 조사 성과가 오랫동안에 걸쳐 축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탈춤 등 포퓰러 문화와 지역사회 권력의 문화적 연망과의 상관관계와 같이 연행의 역사에서 응당 다루어야 할 논제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이후 탈춤의 연행이 각 지역 사회에 확산-정착한 후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겪었다. 그렇지만 식민지기 연행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여 식민지기라는 특정 시기에 논의를 집중하여 연행을 둘러싼 사회 문화적 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연출, 그리고 연희 조직과 집단 구성원의 변화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사안들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그리하여 호의적이지 못한 연행 환경과 연희 조직의 불안정 속에서 연행이 이어지고 새로운 연출이 이루어진 식민지기의 연행의 역사를 재현하였다. 특히 식민지기 동래 야류의 연행에서 한말 이전 동래의 吏胥나 武任 출신 또는 그 후손, 그리고 이들 사이의 연망이 중요한 역할을 한 사실을 밝혔는데, 이것은 탈춤 연행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더불어 1928년에 주로 이들 출신으로 구성된 청년 운동 단체에서 야류 연행을 반대하였다가 1935년의 ``부흥`` 운동에 적극 참여한 사실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며 이것은 탈춤 연행과 새로운 연출, 그리고 식민지 근대성과의 관계로 논의를 확장하는 데 중요한 관건이 된다. 한편 이 같은 문제 의식과 새로운 접근 방법은 종래 구조 중심의 정체적인 민속지 서술의 한계를 개개인의 역할과 사건의 효과를 통하여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주어 추후 역동성있는 역사 민속지 서술의 지평을 여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The aim of this study is to search for the cultural politics of the performance of Dongrae mask dance dram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1928, a group of young intellectuals criticized the performance of Dongrae mask dance drama as vulgar play. In response to these criticisms, the players of mask dance drama tried to change it by performing with tug of war in lunar new year. Spectacular parade and variety of dances were often added to the performance as new Mise-en-Scene and the previous slangs and vulgar expressions were omitted from the dialogues of mask dance drama. However, nineteen thirty five revealed the change of attitude in the young intellectuals who criticized the performance of mask dance drama seven years ago; they began not only to participate but to actively take the lead of the performance. Focusing on this noticeable change, this study describes the invention of mask dance drama under modern urbanization from the ritual play of county seat to folk drama. In the proces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ultural nexus of power of local society and the discourse of popular culture in the history of performance of mask dance drama is closely examined. The methodology of this study includes field surveys as well as documentary surveys covering premodern and modern times. The reason why Dongrae mask dance drama is chosen in this study is because systematic studies and constant researches surrounding the local history of Dongrae District has been carried out for a long time. These studies and researches helped to clear up many important issues concerned in this paper. The ultimate goal of this study is to show the possibility of a dynamic historical ethnography by emphasizing the individual roles and effect of incident in the history of performance of mask dance d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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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고창의 향리 신재효의 재부 축적과 그 운영 -판소리 창자의 양성과 관련하여-

        이훈상 ( Hoon Sang Lee ) 한국고문서학회 2015 古文書硏究 Vol.46 No.-

        전라도 고창의 향리 가문 출신인 신재효가 19세기 후반에 판소리 창자들의 교육에 헌신한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교육은 창자로부터 일정 사례를 받고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이들을 기거하는 경비까지 부담할 정도로 헌신적인 것이었다. 여기에는 여성 제자들의 연행을 주선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판소리에 전업하려는 이들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더욱이 그는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적지 않은 돈을 기부하였는데, 그의 기부 활동은 35세 때부터 시작하여 66세가 되는 1876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 일련의 사실들이 신재효의 재부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을 촉발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까지는 사실상 구전에 기초한 이야기가 대부분일 뿐 구체적인 내용은 물론 의미도 밝혀진 것이 사실상 거의 없었다. 전승되는 이야기들은 막연하게 신재효가 부친 신광흡의 유산을 물려받아 살림이 넉넉했고 나아가 근검으로 재산을 일구어 창자들을 교육시켰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대한 자산가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같은 구전은 여전히 애매하며 신재효와 부친, 그리고 후손들의 그것이 뒤섞여 있기도 하다. 그의 재부에 대하여 연구자들이 쉽게 거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구체적인 논거에 기초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 연구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비판하면서 그 구체적인 실태를 밝히고 이어 그 의미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 연구는 재부만으로 판소리 창자의 교육에 대한 그의 헌신과 판소리 발전에 대한 기여를 설명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신재효의 재부가 어느 수준이며 이 재부를 어떻게 축적하고 경영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작업은 판소리의 발전과 그 방향을 논의하는데 매우 중요함을 강조한다. 한편이 같은 작업이 가능한 것은 재부의 축적과 관련된 일련의 문서들을 최근 발굴하였기 때문인데, 이제 이를 토대로 그의 재부와 이를 기초로 한 판소리 교육과의 상관관계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전제 아래 이 연구는 그의 경제 기반과 경영을 수입과 재부 축적, 그리고 기부와 소비라는 큰 구도 위에서 논의하였다. 한편 이 연구는 신재효가 창자의 교육에 헌신한 시기가 이른바 포퓰러popular 문화가 크게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이라는 점도 주목한다. 그렇다고 그가 단순히 시대의 조류를 추종하거나 반영한 것은 아니다. 연행에 대한 그의 다양한 실험은 포퓰러 문화의 확산을 촉진하고 새로운 방향을 만들었다. 이와 관련하여 19세기 후반은 구체제의 동요와 이에 따른 긴장이 고조된 시기이라는 점도 강조하였다. 재부의 축적만이 아니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그의 태도를 각별히 주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직면한 가혹하면서도 불안한 환경과 이에 대응하는 노력에 논의를 집중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사후 그의 가족이 겪은 곤경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전제 아래 수입과 재부의 축적을 이서로서의 수입과 대부 행위, 그리고 토지 투자와 축적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이어 소비의 경우 그 전모를 알기는 어렵지만, 일단 기부 등 중요 사안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검토하였다. 그리고 그가 여성 제자들의 교육시키는 헌신에는 이들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음을 드러냈다. 한편 이 같은 재부 관리와 관련된 신재효의 신중한 자세는 19세기 후반 향리 사회가 직면한 불안과 연관되며 신재효도 늘 의식하여야 하는 살아 있는 현실이라고 보았다. 한편 그의 검약 수준이 통상 기대되는 것을 훨씬 넘어선 것도 주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색하다는 비난 대신 주위로부터 끊임없이 칭송을 받은 것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늘 인심을 잃지 않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재부를 축적하는 한편 주위에 계속해서 인정을 베푼 모습을 보여준다. 사망하고 불과 11년 후 고창은 동학농민봉기의 중심지에 포함되었다. 이미 임술농민봉기를 겪었던 신재효로서는 계속해서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 악화되어 가는 것을 감지했다고 보았다. 그의 경제 행위도 이 같은 신재효의 현실 인식과 연관 지어 접근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This study explores the relationship between Shin Jaehyo`s wealth and the development of Pansori. It has been the general understanding that his education of pansori singers was due to his wealth. Contending this view has devaluated his indefatigable devotion to pansori, this paper emphasizes Shin Jaehyo`s passion and devotion to pansori in addition to his wealth which was accumulated through his self-control and thrift and made it possible to support and educate pansori women singers. The emergence of professional women pansori singers in Korean history was possible only through Shin Jaehyo`s devotion and financial support. Another concern of this paper was to examine the way his wealth was distributed among his relatives after his death. The way of distributing his wealth can be interpreted as a social contexts and anxiety surrounding hyangli of the latter part of the 19 century. After all, Shin Jaejyo was uncommon man of his times who used his wealth in fulfilling his ideal arts of pan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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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 한국학 연구 성과의 한글 번역과 그 의미

        이훈상(Lee, Hoon-sang)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9 코기토 Vol.- No.87

        이 연구는 서구의 한국학 연구 성과의 한글 번역과 관련하여 그 의미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하여 에드워드 와그너, 제임스 팔레, 그리고 마르티나 도이힐러 등 세 연구자의 연구 성과에 대한 필자의 번역 작업에 논의를 집중하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들 세 연구자들은 서구 한국학의 토대를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이들의 성과에 대한 한글번역 작업은 서구의 한국학의 새로운 시선과 만나는 데 중요하다. 이와함께 이들의 연구가 한국의 한국사 연구와의 지속적인 긴장과 비판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번역 작업은 오랫동안 한국사를 포함한 한국학의 지배적인 지적 조류인 내재적 발전론을 새로운 시점에서 거리를 두고 평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필자는 이 연구를 먼저 부산 지역의 번역 실태를 살피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번역자 자신을 둘러싼 지역사회의 지식 생태계를 돌아보는 데이 작업은 중요한다고 본 것인데 이제까지 이러한 시도는 없었다. 이어 1960년대 이후 이루어진 서구 한국학 연구 성과를 한글로 옮긴 성과들도 개관하여 필자의 번역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려 하였다. 이것은 번역을 둘러싼 역사적 문화적 유산 내지는 전통이 빈곤한 한국학계를 직시하려는 노력이다. 서구의 한국사 연구는 서구의 아카데미즘에서 한국학이 정립되는 데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이것은 이들의 독창적인 시선 때문인데 번역을 통하여 그 성과를 국내 연구자들도 공유하는 것은 창의적 긴장을 통하여 한국학의 새로운 향방을 모색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한국학의 본질화와 자민족중심주의가 강인한 국내 한국학 연구에서 서구 한국사연구의 번역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This study aims at finding the meanings and contributions of Hangul Translation of the Western Korean Studies. For this, Hangul Translation of Edward W. Wagner’s, James B. Palais’, and Martina Deuchler’s works became the focus of discussion at issue. As is well known, these three scholars built up the foundation of the Western Korean Studies. Naturally, Hangul translation of their works contributed for domestic academy to see its own studies with new eyes. What is important is these three scholars’ academic works were accomplished through consistent tension and criticism of domestic Korean studies. Naturally, the translations helped domestic Korean studies to keep distance from ‘Intrinsic Development Theory’ which was dominant academic current of domestic Korean studies. After all, the significance of Hangul translation of the Western Korean studies can be found in the fact that these Western perspectives revealed the essentialization and ethnocentricism of domestic Korean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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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귀희에서 매귀 연극으로, 매귀 연극에서 오광대로 -고성오광대의 연희자들과 연행의 역사적 맥락-

        이훈상 ( Hoon Sang Lee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2014 공연문화연구 Vol.0 No.28

        탈춤 연행, 고성오광대, 매귀희, 매귀 연극(매귀극), 잡희, 연행의역사적 맥락, 문화적 대응로서의 탈춤 연행, Maegu Ritual, Goseong County, Goseong Ogwangdae(Mask Dance Drama), Performance in historical context. Player``s Social Status, Mask Dance Drama as Cultural Response to Changing Social Circumstances In the process of examining the transition of “maegu” ritual to mask dance drama, this study clarifies the historical context of Goseong Ogwangdae (Mask Dance Drama Performance) from the late 19th century to Japanese Colonial period focusing on three eminent players who led and systematized the performance of Goseong Ogwangdae after liberation until 1970s. Like the studies on the other mask dance dramas, the studies on Goseong Ogwangdae are ahistorical and problematical. There is disjunction between the studies on Goseong Ogwangdae and its historical reality. The reason lies in the lack of documents concerning popular culture such as mask dance in premodern society. Furthermore, not a few researchers have tended to ignore the importance of historical approach while contending their ideology and biased ideas. In an attempt to escape from this predicament, this study relocated and represented Goseong Ogwangdae in the context of local society and history with the associated and multilayered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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