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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말(麗末)선초(鮮初)완풍대군(完豊大君)이원계(李元桂)의 생애와 사상

        이현중 한국동서철학회 2000 동서철학연구 Vol.20 No.1

        고려 말 조선의 건국 시기를 살다간 完豊大君 李元桂는 고려 조정과 明나라의 조정에서 文科에 급제한 文臣이면서 홍건적과 왜구를 토벌하여 두 차례나 二等功臣에 오른 武將이다. 그는 위화도 회군 이후 동생인 李太祖가 조선을 개국하려는 움직임이 대세가 되자 네 아들에게는 조선의 개국에 적극 참여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독을 마시고 自盡하였다. 完豊大君 자신은 고려의 忠臣일 뿐만 아니라 아들인 安昭公 李良祐와 襄度公 李天祐는 개국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功臣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개국 이후 개국의 주체 세력들에 의하여 개국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인물로 여겨지면서 그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 모두 歪曲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 지금에 이르기까지 삶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이에 본고에서는 完豊大君의 生涯와 思想의 고찰을 통하여 삶의 意義를 밝히고자 한다. 完豊大君의 삶은 高麗와 朝鮮, 忠臣과 逆臣이라는 二分法的 論理로는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完豊大君의 삶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麗末鮮初가 갖는 時意性과 그의 삶의 정신을 비교함으로서 가능하다. 韓國 易學의 易道를 응용한 易學的 史觀에 의하면 麗末鮮初는 한국 철학의 生長期와 長成期가 終始하는 때이다. 따라서 정치사적으로는 고려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여야 할 때이며 사상적 측면에서는 佛敎를 이어서 儒學을 통하여 한국 사상을 장성시켜야 할 때이다. 따라서 麗末鮮初에 태어난 完豊大君에게는 麗鮮과 佛儒의 終始 繼代的 使命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完豊大君은 고려를 위하여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치는데 盡力하였고 위화도 회군에도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회군 이후에는 조선의 개국이 대세가 되자 아들에게는 개국에 참여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진하였다. 이러한 完豊大君의 삶을 과정을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을 분명히 자각하고 時義性을 따라서 그것을 실천 구현하며 살아간 삶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大東奇聞』에서 完豊大君을 고려의 수절 충신으로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에 설화로 전하여진 『東稗洛誦』에서 完豊大君과 李太祖의 관계를 역사적 사명을 중심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내용을 보면 그 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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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랜스휴머니즘의 인간관과 儒佛道 사상의 인간관

        이현중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8 인문학연구 Vol.57 No.4

        A study on the views of Human beings in Transhumanism and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This paper deals with Transhumanism which pursues to improve human beings through scientific technologies and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which seek an ideal life of a human by self-awareness of authenticity. Transhumanism, based on Humanism and simultaneously in pursuit of Posthumanism, regards Body as central and Mind as collateral because it is dependent on Cartesian dualism. Transhumanists think that not only can human nature, a quality of Body, evolve but humans also can choose to develop themselves with the use of technologies. Therefore, they strive to use technologies to change and improve human natures. In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authenticity is the humanity of a man. But this authenticity is not related to the properties of Body, but to the presentation of human nature in the world where it has not yet been revealed as Body or Mind. Authenticity does not change itself but it can be shown as a kind of ‘change’ phenomenon. It can show itself as a life and a death, though it has no such temporal limitation as life or death. It can come out as a combination of oneself and another, though it does not have a spatial limit preventing the combination. Some work motivated by Mind and words and actions driven by Body are the emergence of authenticity. Ascetic practices and life are therefore to be conscious of authenticity and be prudent in speech and action for it to appear in time and space. Practice asceticism in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orients towards a world of indifference revealed after the disappearance of discernment which divides me from others or humans from things. However, that is also the very exposure of a indiscriminate world. Thus, there is no intrinsic human nature different from other beings’ and the same goes for the change of human nature. 본고에서는 과학기술을 통하여 인간의 향상을 추구하는 트랜스휴머니즘과 본래성의 自覺을 통하여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儒佛道 사상의 인간관을 비교하여 고찰하였다.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포스트휴먼을 추구하는 트랜스휴먼-이즘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인간관에 바탕을 두고 육신을 중심으로 그 부수적 현상으로서의 정신을 인간의 본성으로 여긴다. 그들은 육신의 속성인 인간의 본성이 진화를 할 뿐만 아니라 발달한 과학기술을 통하여 인간이 스스로 진화를 선택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본성을 변화시켜서 향상시키는 인간 향상을 추구한다. 유불도 사상에서는 육신과 마음을 넘어선 본래성을 인간의 인간다움으로 제시한다. 그것은 육신의 속성을 인간다움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의식과 육신으로 드러나기 이전의 세계를 통하여 인간의 본성을 제시함을 뜻한다. 본래성은 변하지 않지만 변화의 현상으로 드러난다. 본래성은 生死라는 시간적 한계와 나와 남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공간적 한계가 없지만 생사의 현상과 나와 남으로 드러난다. 마음에 의하여 일어나는 여러 작용과 육신에 의하여 일어나는 언행은 본래성의 드러남이다. 본래성을 자각하고 그것을 시공에서 이른바 마음, 육신을 통하여 드러나는 다양한 기능과 언행을 하는 것이 修道이자 삶이다. 유불도 사상의 수도는 나와 남, 인간과 사물을 나누는 分別心을 버린 후에 드러나는 무분별의 세계를 향한다. 그러나 그것도 본래성이라는 경계가 없는 세계의 드러남이다. 그러므로 다른 존재와 구분되는 인간의 본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向上이라는 본성의 변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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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체제기 북한영화의 미국 표상 (1994~2010)

        이현중 대중서사학회 2022 대중서사연구 Vol.28 No.3

        1990년대 북한은 내외적으로 위기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소련의 붕괴로 냉전 체제가 해체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었고,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며 체제 위기를 맞는다. 후계자 김정일 체제도 결속을 유도했지만, 수해와 가뭄에 따른 식량난으로 ‘고난의 행군’기가 왔고, 북핵 문제로 인해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가 경색되었으며 그에 따른 국제 사회의 제재 조치로 경제난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영화에 반영되었으며, 최악의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군사 선행의 선군정치의 교시를 담은 선군영화들이 제작되었다. 군대와 군 생활을 담은 선군영화의 특성 상 과거의 조국해방전쟁이 소환되기도 했고 군의 적대적 표상은 미국으로 수렴되었다. 당시 북한영화의 미국 표상을 살펴보는 것은 적대적 표상의 대척점에서 당시 북한이 지향하던 체제의 모습을 영화적 선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이 시기 북한영화가 미국을 표상하는 방식에는 변화가 발견된다. 1990년대 이전의 북한영화들에서 미국을 폭력성이 강조된 캐릭터를 통해 직접적으로 악인의 이미지로 만들었던 것에 반해 이 시기 영화들은 수령형상화와 내부 결속을 위한 장치로 미국을 소모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과정에서 현재의 위기를 만든 원흉으로서 미국이 설정된다. 그러한 이유로 이 시기 북한영화들에서 미국의 표상은 직접적인 이미지로 표현되기 보다는 배경에 위치한 악으로 역할을 한다. 전쟁영화에서도 직접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이 아닌 자료화면으로 노출되고, 경제난을 다룬 영화에서도 고난의 원인으로 존재하지만 직접 인물 간의 서사에 개입하는 장치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는 체제 결속을 위한 선전 목적이라도 이 시기 영화들에서는 미국 표상이 지니는 다른 방향성이 발견되는 것을 뜻한다. 과거처럼 미국이라는 외부의 적을 통해 내부를 결속한다는 목적보다는 김정일이라는 새 지도자를 선전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유도하고 대중을 교양하는 것이다. 그 장치로 미국이 관습적 적으로 소모되는 경향을 영화적 표상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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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時間性을 통해 본 三一神誥의 修行論

        이현중 동아시아고대학회 2015 동아시아고대학 Vol.0 No.40

        본고에서는 三一神誥에 내재된 인류가 共有할 수 있는 문화적 가치를 드러내려는 목적에서 형이상의 근원적 존재인 時間性을 중심으로 수행론을 고찰하였다. 다만 수행은 세계 안의 인간의 삶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관과 인간관을 먼저 고찰한 후에 그것을 바탕으로 수행론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三一神誥는 시간성을 理數에 의하여 표상하고 있는 天符經과 달리 그것을 공간적 관점에서 개념화하여 나타내고 있다. 三一神誥에서는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시간성을 神으로 규정하고, 神이 변하여 天地人의 공간 세계로 化하였음을 三一의 구조를 중심으로 밝히고 있다. 三一과 一三은 天符經과 三一神誥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논리구조이다. 一三은 一神이 변하여 三神으로 化함으로서 현상의 세계가 전개되는 세계관을 나타내고, 三一은 三神이 一神으로 化하는 人間觀을 나타낸다. 인간은 一神이 三神으로 化하여 형성된 존재이다. 三神은 인간에 있어서 性命精의 三眞으로 화한다. 三眞은 三妄으로 他者化하여 양자가 三塗로 상호 작용을 하고, 그 결과 十八境이라는 人文의 세계가 드러난다. 十八境이 三妄과 三眞에 의하여 나타난 三塗의 결과이지만 그 본질은 一神이다. 이는 一神이 變하여 三神으로 化함이 모두 형이상적 차원에서의 이루어지는 점에서 단지 현상적 변화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내었음을 뜻한다. 이를 시간성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시간성이 時義性으로 化하면서 과거성과 미래성 그리고 현재성으로 化하였지만 셋이 一體임을 뜻한다. 시간성이 時義性으로 化하여 셋으로 드러난 현상적 관점에서 보면 三者는 다시 하나가 되는 작용을 하게 된다. 그것을 三一神誥에서는 一神이 化한 三神에 의하여 卽妄卽眞하는 작용이 이루어짐으로 밝히고 있다. 三眞이 스스로 他者化하여 三妄과 三眞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다시 一神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인간의 삶이다. 이를 變하여 化하는 관점에서 나타내어 수행이라고 한다. 변화를 중심으로 인간의 삶을 나타낸 수행은 用心을 통하여 三神이 化한 三眞과 하나가 되는 性通과 몸을 통하여 時空에서 體驗하는 功完을 통하여 朝天의 결과로 드러난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一意化行하는 과정을 통하여 내재된 神機가 발현되는 과정인 점에서 三神이 一神으로 化하는 변화이다. In this paper, in the perspective of change, views on the world and human beings are examined through the lens of Samilshingo and self-discipline theory, centered on Zeitlichkeit. By studying Samilshingo through an integrated metaphysical viewpoint—zeitlichkeit—and in the light of human universality and not specific ideas or people such as the philosophy of Sundo or Korean Sundo, I intend to reveal the cultural value inherent in Samilshingo. I think that all human beings can share this value. While zeitlichkeit is represented by a number in time in Cheon- bugueong’s point of view, it is expressed in a space perspective conceptualization in Samilshingo. Like Cheonbugueong, Samilshingo defines zeitlichkeit—the origin of all things with the structure of Samil as a center—as Shin, and Shin becomes the world of Cheonjiin (it says). Samil, three Gods of the universe, means that by Ilshin changing into Samshin, the phenomenon of the world is spread out. A human is the being in which Ilshin is turned into Samshin and then formed. Samshin changes into Samjin—three true things—Seongmyeongjeong, comes to meet Sammang, that is, mind, energy, and body. Then, it works as Samdo—three places to come and go by evil deeds—and it finally forms the called Sipalgyeong—eighteen territory. Although Sipalgyeong is the result of the Samdo represented by Sammang and Samjin, essence lies in Ilshin. Thus, there is a process of change from Jeonggisin to truth, and the changing process is a human life. In that sense, human life itself is the process of training and self-discipline. As Shin turns into the nature of a human, training is the result of meeting the son of heaven through achieving enlightenment, which is experienced by our body. That is the very change from Samshin to lshin, in that an inherent spiritual activity is revealed through the process of educating mankind with only one heart by one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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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암각화의 하이브리드 형상과 상징의미 - 대곡리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를 중심으로

        이현중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0 인문학연구 Vol.59 No.2

        이 논문에서는 대곡리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를 구성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형상을 고찰함으로써 선사 시대의 사람들의 사유체계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대곡리 암각화에서는 세계를 무분별과 분별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무분별의 세계로부터 분별의 세계로 그리고 현상의 세계로 구분하여 삼자를 인과적 선후 관계로 나타내어 변화의 세계관을 나타내고 있다. 천전리 암각화에서는 현상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원형과 방형에 의하여 세계를 시간과 공간으로 구분하여 나타내고, 다시 시공의 세계를 문자에 의하여 대상화함으로써 실재와 분리된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두 암각화에는 사건과 물건의 변화를 통하여 변화의 세계관을 나타내고 있다. 이 때 사건의 변화와 물건의 변화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인간과 시공의 무분별에서 분별로, 분별에서 무분별로 그리고 다시 인간과 대상화된 현상으로 나누어지는 점에서 변화의 세계는 인간에 의하여 창조되는 세계이다. This paper attempts to identify the thoughts of prehistoric people by studying the hybrid motifs that appear on the petroglyphs of Daegok-ri and Cheonjeon-ri. The Daegok-ri petroglyphs present a worldview on change by showing the world as undifferentiated and differentiated and as phenomena brought about by the interaction between the undifferentiated and the differentiated, depicting the three aspects as being in a causal relationship. The Cheonjeon-ri petroglyphs depict the world of phenomena as the point of origin. They show how the world is divided into time and space through circles and squares and how letters are used to objectify time and space presenting a world detached from reality. Both petroglyphs demonstrate a worldview of change through the transformation of events and objects. Here, humans are at the center of the changing events and objects. The world of change is created by humans showing how humans, time, and space move from undifferentiated to differentiated, from differentiated to undifferentiated, and then back to being humans and objectified phenom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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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占事와 易道를 통해본 易學의 世界觀

        이현중 동아시아고대학회 2013 동아시아고대학 Vol.0 No.32

        이 논문에서는 占事와 易道를 중심으로 그것들이 주역과 역전에서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지 그리고 양자의 관 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역학자들은 주역이 점을 치는 데 사용되어지는 占筮書이며, 역전은 주역을 다양하게 해석한 哲學的 著書라는 데 이견이 없다. 주역과 역전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역학의 연구 방법에 영향을 미친다. 전통적 입장의 역학자들은 양 자를 하나의 체계로 보고 역전을 토대로 주역을 연구하고자 한다. 반면에 비판적 입장의 역학자들은 양자의 성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철저하게 구분하여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주역의 내용인 占事와 역전에서 밝히고 있는 易道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고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양자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양자의 세계관을 살펴보는 문제로 귀결된다. 주역의 괘효사와 역전에서는 占事를 미래를 아는 知來의 문제로 재시하고, 지래는 시간의 세계를 넘어서 있는 형이상적 세계를 파악(知來)하여 그것을 주체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일(通變)로 밝히고 있으며, 역전에서는 역 도를 만물의 만물된 所以로서의 형이상적 존재로 규정하고 그것을 사물의 관점에서 性, 性命으로 밝히고 있다 . 占事에서 밝히고자 했던 미래의 세계와 역도의 내용으로서의 性命은 형이상적 존재로 물리적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존재이다. 따라서 양자의 세계는 동일하다. 형이상적 존재인 도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 변화여 자신을 드러내다. 그러한 도의 변화가 현상적 측면에서는 만물의 생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도를 역도, 변화의 도라고 한다. 점사와 지래, 성명, 역도의 세계를 막론하고 모두 변화인 점에서 보면 고정된 실체가 없다. 그것은 세계 자체 가 형이상과 형이하, 道와 器 등의 어느 일면으로 규정할 수 없음을 뜻한다. 주역과 역전에서는 그것을 中正으 로 규정하여 만물이 실체적 존재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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