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韓國 文人 年譜 ?究 : 16세기 이전의 연보를 중심으로

        李鍾默(Lee Jong-mook) 한국학중앙연구원 2001 장서각 Vol.- No.5

        After the chronological record of Lee Kyu-bo was compiled by his son in the middle period of Kory?, the chronological record began to be set to work in earnest from the late Kory? to the early Chason. Mast chronological records in the late Kory? and the early Chosen were the Pyo-bo(標譜) system made up of three compartments, unlike that of Song(宋) dynasty in China which was composed of four compartments. Pyo-bo system put down periods(紀年) in the upper part and accounts in the middle and low part. The chronological records of Lee Gok, Lee Saek, Lee Ch?m, Kw?n K?n, Ch?ng Mong-ju were produced in this Pyo-bo system. It is presumed that these were used as basic materials for an inscription on a tombstone or record of a deceased person's life. Early Kang-mok(綱目) style emerged in the later 15th century, but we have precedents for it in the chronological record of Lee Kyu-bo in the middle period of Kory? and that of Min Sa-py?ng in the late Kory?. The early Kang-mok style was a main style of the chronological record until the later 16th century. Compared with the previous Pyo-bo system, the contents of the early Kang-mok style became more detailed and the intention of compiling the chronological record was to deliver the literati's lifetirne achievements. The chronological records of Kim Suk-ja and Kim Hon are the representative ones of the early Kang-mok style. The chronological record of Kang-mok style is a complete form of the early Kang-mok style. The chronological record of Lee ?n-j?k produced in the later 16th century is the earlist one. Kang-mok style in which the main account was described in divisions(綱) and more detailed accounts were described in subdivisions(目) became the typical style of the chronological record since the 17th century. With this Kang-mok style, Ki-ny?n (紀年) style based on 「Juja-y?nbo(朱子年譜)」 was also used from the middle part of the 16th century. This style put down the period every year regardless of the accounts and recorded a year centering on an era name of China. This study deals with the chronological records until the 16th century which belong to the earlier period of Chos?n and examines the formal change of the chronological record and the procession how each one was produced. The compilation of the chronological record became activated since the 17th century and the most chronological records were produced in the 18th and 19th century. Therefore, more arguments about the chronological records in the later Chas?n are needed. Mast chronological records in this period were the Ki-ny?n(紀年) system of 「Juja-y?nbo」 style and Kang-mok style. Except some changes of Ki-nyon system after the downfall of Ming(明) dynasty, there was nothing to be noteworthy in the chronological records in the later Chos?n. That is why this study is focusing on the chronological records before the 16th century.

      • KCI등재

        옛글과 함께 하는 영월 어라연 기행

        이종묵(Lee, Jong-Mook)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9 인문과학연구 Vol.0 No.60

        영월의 어라연은 18세기 무렵부터 문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주로 정자암(亭子巖)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김이만(金履萬)은 1722년과 1733년 두 차례 정자암 일대를 유람하고 처음 문학작품으로 남겼는데 선돌[立巖]의 빼어남도 함께 소개하였다. 이를 이어 1736년 영월부사 이명곤(李明坤)이 수운암(水雲庵)과 어풍정(御風亭)을 지었으며, 그의 벗 이광정(李光庭)이 정자암 일대의 명승에 이름을 붙이고 이를 시문에 담았다. 그 후 1745년 이인상(李麟祥)이 「정연추단도(亭淵秋湍圖)」를 그렸고, 시로도 노래하였다. 또 조하망(曺夏望)이 1746년 영월부사로 부임하여 정자암을 유람하고 그곳의 전설을 소개하였다. 그 밖에 정기안(鄭基安), 한만유(韓晩裕) 등도 정자암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남겼다. Yeongwol Eorayeon started to become known to the literati around the 18th century, and was often called Jeongjaam. Kim visited the area twice in 1722 and 1733 and create literary works for the first time. It was introduced along with Sundol. In 1736, Lee Myeong-gon built Suunam and Eupungjeong, and his friends Lee Gwang-jeong named many places. Then, in 1745, Lee In-sang painted Jeongyeonchudado and sang a poem as well. Jo Ha-mang in 1746 toured Jeongjaam and introduced the legend of Jeongjaam. In addition, Jeong Gi-an and Han Man-yu also left works on Jeongjaam.

      • KCI등재

        릉양(菱洋) 박종선(朴宗善) 한시의 창작 방법과 미학

        이종묵 ( Lee Jong-mook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7 大東文化硏究 Vol.99 No.-

        이 논문은 『菱洋詩集』을 대상으로 하여 朴宗善의 시세계를 고찰하였다. 그 시세계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조선적인 정서를 담은 民謠風의 한시가 유행한 18세기 韓國漢詩史의 흐름에 부응하여 박종선은 古樂府의 정신을 빌면서도 당대 여성의 구체적인 삶을 때로는 낭만적인 기법으로 때로는 현실적인 기법으로 담았다는 점이 첫 번째 중요한 특징이다. 이와 함께 박종선은 중국 江西詩派의 창작 방법을 원용하되 『堯山堂外紀』, 『傳燈錄』 등의 전적에 수록되어 있는 낯선 전고를 적극적으로 구사하였으며 특히 불교 어휘를 자주 사용하였다. 이에 따라 그의 시는 무척 험벽하다. 다만 『菱洋詩集』에는 자세한 주석이 달려 있어 낯선 시어나 전고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거니와 당대 사회의 다양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또 박종선은 조선이나 일본의 역사 등을 소재로 활용한 竹枝詞 스타일의 시를 즐겨 제작하였는데 역사와 풍속, 학술, 제도 등 구체적인 내용을 시의 본문과 주석에 담았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李德懋, 朴齊家, 徐理修, 金正喜 등 당대 중요 인물에 대한 중요한 정보도 그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poetic world of Park Jongseon(朴宗善), focusing on Neungyang-Shijip(菱洋詩集). His poetry includes three characteristics. As the trend of Korean poetries during the 18th century, His poetries based on the spirit of ancient Yuefu (古樂府), deal with the reality of contemporary women`s life during the period with romantic and realistic techniques. Also, He uses the techniques of Jiangxi poetry(江西詩派) and frequently utilizes the unfamiliar precedents which are contained in Yaoshantang-waiji(堯山堂外紀) or Chuandeng-Lu(傳燈錄). Additionally, diverse Buddhist terms in his poetries make the pieces more difficult to understand. However, the poetry collection has detailed annotations that help the readers to comprehend missing ideas or thoughts of the poetries. The detailed annotations appear a lot, considering that his poetries include various information of the society then. The poetry style is based on materials about histories of Joseon and Japan which are explained by the annotations covering content such as history, customs and academic system. For those characteristics, significant information about personages such as Lee Deokmu(李德懋), Park Jaega(朴齊家), Seo Isu(徐理修), and Kim Jeonghee(金正喜) are also found in his poetries.

      • KCI등재
      • KCI등재

        중국 황실(皇室)로 간 여인을 노래한 궁사(宮詞)

        이종묵 ( Jong Mook Lee ) 한국고전문학회 2011 古典文學硏究 Vol.40 No.-

        한국과 중국은 고대로부터 많은 인적인 교류가 있었다. 많은 중국인이 한국으로 왔고, 한국인 역시 전쟁 등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타의에 의하여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 글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중국 황실로 들어간 한국의 여성을 형상화한 宮詞이다. 중국의 宮詞에 본격적으로 중국 황실에 들어간 우리나라 여성이 등장하는 것은 元代의 宮詞에서부터이며, 貢女 제도가 폐지되는 永樂帝 때까지 宮詞에서 간헐적으로 나타난다. 淸의 황실에도 조선 여성이 있었는데 宮詞는 아니지만 다양한 형태의 문학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이에 따라 이 글에서는 琵琶에 능하였던 元의 宮人 李氏, 元末의 정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奇皇后를 소재로 한 宮詞를 살폈고, 明代에는 永樂帝의 生母 공妃, 피리에 능하여 宮詞의 주인공이 된 태종이 賢妃 權氏, 永樂帝와 先德帝의 궁인이 된 韓永정의 두 딸 등에 대한 문학 작품을 두루 살폈다. 그리고 淸代에는 太宗에게 시집간 懷恩君의 딸, 多爾袞의 계비가 된 義順公主 등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발굴하여 고찰하였다. There were a lot of personal exchanges between Korea and China from the ancient times. Many Chinese came to Korea, and many Koreans also went to China in the whirlpool of history like wars against their wills. This article is a part of research on Korean women in Chinese royal courts, especially focused on literary genres like gongci on these women; in Yuan Dynasty, Gongren Lady Lee who played the mandolin well, and Qi Empress who was an empress of Emperor Shun, In Ming Dynasty, Consort Gong who was a biological mother of Emperor Yongle, and Taizong`s Consort Xian Gweon who was a subject of gongci by her flute, and two daughters of Han Yeongjeong who became court ladies of Emperor Yongle and Emperor Xuande. And in Qing Dynasty we discovered and studied works on Prince Hoieun`s daughter who married Taizong, and Princess Euisan who became Dorgon`s succeeding Empress.

      • KCI등재

        조선전기 관각문학의 성격과 문예미

        이종묵(Lee, Jong-mook) 국문학회 2002 국문학연구 Vol.8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 KCI등재후보
      • KCI등재

        다전공 복합학문시대 한문학연구의 역할

        이종묵(Lee, Jong-mook) 대동한문학회 2009 大東漢文學 Vol.31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논문은 21세기 다문화 복합학문 시대를 맞아 한국한문학 연구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한국한문학 연구는 그 출발단계에서부터 순문학적인 것만을 고집하지 않아 사상사, 사회사, 예술사 등을 포괄하는 통합 학문적 정격이 강하였다. 특히 최근에는 문학의 범위를 넘어서 타전공 영역의 본령에 해당하는 연구 성과까지 도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포스트모더니즘과 탈근대 담론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민족이나 근대와 같은 거대담론이 축소되고 그 자리에 생활 혹은 일상이 자리하는 한편, 문화론적인 접근이 크게 유행하면서 한문학 연구 역시 문화론적인 연구가 크게 성행하고 있다. ‘물질(material)’을 키워드로 하는 문화론적 연구 방법에 의하여 한문으로 된 텍스트를 바탕으로 건축, 조경, 여행, 서적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주목할 만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한문학 연구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지만, 정밀한 한문 해독 능력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문학 이외의 여러 학문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동반될 때 한문학 연구의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 이와 함께 학문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생태, 소수자, 다문화, 여성 등 현재적인 의미가 있는 주제를 개발하여 살아 있는 한문학 연구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法古創新은 여전히 한문학 연구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 되어야 한다. 물론 탈근대와 연계된 문화론적인 접근은 어떤 이념이나 목적을 지향하지 않음으로써 그간 주도적이지 않았던 문화사적 현상을 새롭게 부각시키는 것 자체에 관심이 있다. 이에 따라 문화론적 접근은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어 새로운 형태의 창작행위로 나아갈 필요도 있다. 한국한문학 연구가 다른 분야를 향하여 개척의 길을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문학 텍스트를 정밀하게 해독하기 위해서도 다전공 복합학문의 자세가 필수적이다. 한문학 작품은 일반적인 문학이 다 그러하듯이 삼라만상을 담는 그릇이므로, 정밀한 작품해석을 위해서는 다전공 복합학문에 힘을 쏟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조선 후기 박물학적인 경향이 문학에서 강하게 드러나므로 박물학자적인 박학이 필요하다. This paper tries to seek to find a way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research in the twenty-first century, the age of Multi-major Interdisciplinary Study. From a beginning stage, the research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has a tendency of coordinate learning, including history of ideas, social history, and art history. Especially, in recent days, it produces the outcomes in other major fields beyond the boundary of literature. Furthermore, it follows the trend of cultural studies focusing on the dailiness or everyday lifes under the influence of discourses on post-modernism and post-structuralism, while the macro-discourses such as nation and modemity are being retreated. By the methodology of cultural studies which take 'material' as an academic keyword, the research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turns out noteworthy achievements in diverse areas, such as architecture, gardening, travel, and book. In this situation, we can be optimistic about the future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but for the upgraded advancement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deep approaches on various subjects outside the literature based on the close understanding of Chinese texts are required. The research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should develop new methodologies with a creative mind, covering current academic issues such as ecology, minority, multi-culture, gender. These cultural approaches associated with post-modernism pay attention to show the cultural phenomena which have not veen focused so far, unrestricted to any specific ideology or intention. These might offer many materials to the readers and need to get to a new form of writing activities. It is important that the research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explores a new way forward different academic fields, but for the close interpretation of Chinese texts, the attitude for multi-major interdisciplinary study is necessary. Especially, the literature in the late Joseon has a strong tendency of natural history, so the researchers need to have a wide knowledge as a naturalist.

      • KCI등재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