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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富軾의 歷史哲學

        윤천근 안동대학교 1995 退溪學 Vol.7 No.1

        역사가로서의 김부식은 여러 가지 면모를 갖는다. 그는 최치원이 신라의 거서간이나 차차웅 마립간 같은 칭호들을 왕(王)이라는 중국식 호칭으로 통일하여 쓰는 것을 비판하며 신라사를 기술함에 있어서는 그러한 방언을 씀이 옳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나, 삼국의 선조들이 중국의 성인들로부터 흘러나왔다는 것을 일축하는 부분, 당 태종의 간담을 서늘케 한 안시성싸움의 역사적 기록이 남아있지 않음을 아쉬워 하는 부분 등에서는 분명히 주체적 역사의식의 일단을 드러내 보여준다.

      • 유학의 예(禮)

        윤천근 안동대학교 1992 退溪學 Vol.4 No.1

        이렇게 '예'는 기본적으로는 진리가 구현될 수 있게 하는 도구로서의 기능을 하고, 인간학적 차원에서는 인간성의 본질을 구현할 수 있게 하는 도구로서의 기능을 하며, 사회적 차원에서는 사회 전체에 조화와 균형·질서가 유지될 수 있게 하는 도구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그리하여 '예'의 구현을 통하여 인간의 삶과 생활에 아름다움을 부여하여 줄 수 있으리라고 유학자들은 생각하였던 것이다.

      • 향산 이만도 선생의 절의정신

        윤천근 안동대학교 1997 退溪學 Vol.9 No.1

        이만도가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그가 진리로 섬겼던 주자학 근본주의의 성채를 지키기 위하여, 죽음을 통하여 발언하고자 하였다는 점은 분명한 일이다. 그런 결연함 속에서 우리는 한 인간의 영웅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만도가 선택할 수 있었던 영웅다운 길이란 결국 목숨을 내던지고 의리를 다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위기의 시대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길을 봉쇄하여 그를 출구 없는 자리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만도의 결연함 속에서 시대가 떠올려주는 비극성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第九輯 解題 : 壺峰先生文集, 鶴川先生文集, 賁趾先生文集, 一竹齋先生遺集

        윤천근 안동대학교 1992 退溪學 Vol.4 No.1

        『壺峯集』은 宋言愼의 시문집이다. 송언신은 字가 寡尤이고, 관향은 礖良인데, 스스로 壺峰이라고 호를 붙였다. 그의 시조는 宋惟翊으로 고려 중엽에 살았던 사람이다. 시조로부터 3세에 이르면 貞烈公 宋松禮, 良毅公 송분, 正嘉公 宋瑞가 있는데, 송서는 송언신의 9대조가 된다.

      • 박광전의 사상체계 속에서 본 정치권력의 문제

        윤천근 안동대학교 1991 退溪學 Vol.3 No.1

        박광전(朴光前: 1526~1597)은 자(字)가 현재(顯哉)이며 호가 죽천(竹川)으로 전라남도 보성군 조양리에서 출행하였다. 그는 이황의 문하에서는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 호남사람 중의 하나이다. 박광전이 이황과 사제관계를 맺는 것은 그의 나이 장년에 이르러서의 일이며, 도 그리 오랫동안도 아니다. 물론 박광전은 이황을 스승으로 모시고자 하여 스스로 그의 나이 41 되던 해에 도산에 이르러 이황의 문하에 든다. 그렇지만 그가 이황을 모시고 배운 것은 채 1년도 지나지 않는 기간 동안이 고작이었다. 이것은 박광전이 이황 사상이 진수를 계승하는 사상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각에는 반론이 있을런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영향을 많이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세월만큼의 배움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니까 말이다. 오랜 기간동안 같이 있어도 거의 영향을 받지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번도 얼굴을 대면하지 않더라도 많은 영향을 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번도 얼굴을 대면하지 않더라도 많은 영향을 받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받는 영향과, 그 사람과의 교유기간이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박광전의 이황에 대한 승모감의 정도와는 무관하게, 그가 이황으로부터 받고 있는 사상적 영향은 이황과 이황의 다른 제자들 사이에서만큼 심도깊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인하여야만 할 것이다. 박광전이 이황을 만난 것이 그의 나이 40줄에 이르러서라는 점도 우리가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중요한 인자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박광전의 학문적 반경은 이미 어느 정도는 스스로의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한·중 유학 세미나 참가 보고

        윤천근 안동대학교 1993 退溪學 Vol.5 No.1

        안동대학교 부설 퇴계학연구소는 전임 소장 이윤화교수 시절에 중국 산동성 사회과학원 산한「유학연구소」와 공식적인 상호 교류와 협력을 위한 협약을 맺는 일을 추진하여 왔다. 그것은 서울「퇴계학연구소」의 연구원과 함께 안동을 방문하였던 「유학연구소」의 조종정소장과 본 대학 총장과 보직교수들, 그리고 본 연구소 이윤화 전임 소장을 비롯한 소원들과의 예기치 않았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92년 가을에 본 연구소는 당시 대구에 체류하면서 연구중이던 중국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소속 보근지(步近智)교수를 초청하여 「중국 고대의 사상과 문화의 특징」이라는 제하의 강연회를 가졌는데, 강연회가 끝나고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 안동을 방문하였던 조소장이 동석하게 되었고, 이 자리에서 중국 유학의 태두인 공구(孔丘)의 본향인 산동성에 있는 「유학연구소」와 한국유학의 준봉인 이황의 본향인 안동에 있는 본 「퇴계학연구소」가 갖는 유사한 상징성을 매개로 하여 두 연구소 간의 학술교류와 인적 교류가 있다면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리라는 식의 이야기가 오고 가게 되었던 것이다.

      • 유학에서 민주는 가능한가 ? : 현대중국의 선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윤천근 안동대학교 2001 退溪學 Vol.12 No.1

        이 글은 2천년 여름, 청도에서 열린 '한ㆍ중 유학 학술대회'에서 내가 발표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쓰여졌다. 굳이 이 점을 밝히는 것은 이 글이 단지 유학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를 목적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중국이 선택하고 있는 것과 연관지어 광범하게,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사유하고자 하는 입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유학적 지식인의 꿈과 좌절이 갖는 철학적 의미구조 : 조광조를 중심으로

        윤천근 안동대학교 1994 退溪學 Vol.6 No.1

        지식이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출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지식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는 거듭 반추하여 보지 않으면 안된다. 지식은 결국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에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식인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사회의 건강한 삶에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유학은 지식인의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주장하는 사상의 체계이다. 그리고 그러한 참여의 논리는 소극적인 경우에는 민간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적극적인 경우에는 정치현실에 참여하여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世界理性과 李滉哲學

        윤천근 안동대학교 1995 退溪學 Vol.7 No.1

        이황의 철학은 주희철학의 직접적인 연장선 상에 놓여진다. 이황은 주희철학의 상속자임을 자처하며, 주희의 눈을 통하여 진리와 만나고자 하는 것이 자신의 철학적 입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입장도 이황은 주희의 것을 그대로 상속받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황이 주희에 대하여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여서 이황과 주희가 완전히 서로 일치하는 입장과 태도를 갖는다고 말 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세계이성과 존재이성을 존재록적으로 일치되어 있는 구조로 이해하고, 그것을 이치와 기운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여 내며, 이치에는 주재력을 기운에는 실현력을 부여하고, 기운의 작용 여하에 따라서 악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이황은 주희와 입장을 같이한다. 그러나 주희가 그러한 문제를 존재론적 영역과 심성론적 영역에서 주로 말하고 있다면, 이황은 그러한 문제를 심성의 작용이라는 측면과 행위론적 문맥 위에서 주로 취급한다는 차이를 갖는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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