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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와 헤겔 : 헤겔의 역사목적론에서 역사혁신의 서술문제

        유헌식 ( Heon Sik Yoo ) 한국헤겔학회 2011 헤겔연구 Vol.0 No.30

        헤겔의 역사목적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목적론, 칸트의 역사표시론 그리고 유대교적 종말론과 구별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사물들은 전체적으로 유기체의 유비에 따라 정렬되어 개별자들은 특정한 목적을 향해 무의지적로 추동될 뿐이다. 또한 칸트와 유대교의 역사관의 경우 우리가 경험하는 사물들은 자신의 존재의 필연성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자기 안에 지니고 있지 않다. 이는 헤겔의 경우 절대정신의 이념을 분유하고 있는 개별자(민족정신 흑은 세계사적인 개인)의 의식이 역사에 개입한다는 점, 그리하여 개별자가 자기전개의 필연성을 자기의 밖과 안에 동시적으로 지닌다는 점과 구별된다. 세계정신의 진보로서의 세계사는 절대정신의 감춰진 목적을 규명하는 행위와 민족정신의 주관적인 관심을 충족시키는 행위가 교차하는 데에서 성립한다. 따라서 세계정신은 절대정신의 객관적인 목적과 민족정신의 주관적인 목적을 상호 매개하여 화해시킨다. 객관적인 목적과 주관적인 목적의 매개는 절대정신의 자기목적과 민족정신의 자기목적의 통일이다. 세계정신은 이러한 매개의 현실태이다. 세계정신의 매개행위에서 절대정신은 자신의 직접적인 추상성에서 벗어나며, 민족정신도 자신의 직접적인 자연성에서 탈피하게 된다. 두 목적이 세계정신 안에서 일치하지 않을 때 낡은 원리는 몰락하며, 서로 일치 할 때 새로운 원리가 출현한다. 보편정신의 목적적 활동을 고려할 때 새로움이란 역사적 시간 속에서 보편적인 목적이 특수자를 통하여 파악되는 데에서 생겨난다는 점에서 역사현신의 정당성은 시원적인 존재의 목적에서 확보된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이 세계정신의 객관적인 목적인 자유이념과 세계사적인 개인의 주관적 목적간의 변증법에서 산출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유이념의 원천인 절대정신의 개념의 목적론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Die Hegelsche Geschichtsteleologie unterscheidet sich einerseits von der Aristotelischen Naturteleologie, in der die Dinge nach Analogie des Organismus in ihrer Gesamtheit und als Einzelne auf ein bestimmtes Ziel hinstreben, und andererseits von der Kantischen Lehre des Geschichtszeichens wie von der judischen Eschatologie, in denen die Dinge, die wir erfahren, nichts in sich selbst enthalten, was die Notwendigkeit ihrer Existenz ermoglicht. Nach Hegel ist die Verwirklichung des Telos der Weltgeschichte weder eine bewußtlose Entfaltung der naturlichen Sache noch ein Sollens-Postulat des Endlichen. Die Entwicklung des Weltgeistes laßt sich als die Begegnung der Enthullung des verborgenen Zwecks Gottes mit der Erfullung des subjektiven Interesses des Volksgeistes darstellen. Der Weltgeist wirkt die Versohnung, indem er zwischen dem objektiven Zweck des absoluten Geistes und dem subjektiven Zweck des Volksgeistes vermittelt. Diese Vermittlung ist nichts anderes als die Vereinigung des Selbstzwecks des absoluten Geistes und des Selbstzwecks des Volksgeistes. In den vermittelnden Handlungen des Weltgeistes tritt der absolute Geist aus seiner unmittelbaren Abstraktion heraus ebenso wie der Volkrgeist seine unmitelbare Naturlichkeit verlaßt. In dem jeweiligen Moment der Nicht-Ubereinstimmung beider Zwecke im Weltgeist geht das alte Prinzip unter und in dem Moment der Ubereinstimmung taucht das neue auf. Beim Ruckgriff auf die Zwecktatigkeit des allgemeinen Geistes ist darauf hinzuweisen, daß die historische Erneuerung ihren Geltungsanspruch grundsatzlich eben aus dem Zweck des anfanglichen Seins bezieht, indem sie sich im Laufe der Zeit aus der Identifizierung des allgemeinen Zwecks durch das Besondere entwickelt. Auch wenn das historisch Neue aus der Dialektik des objektiven Zwecks der Freiheitsidee und des subjektiven Willens des welthistorischen Individuums resultiert, wird es letztlich auf jene Begriffsteleologie des absoluten Geistes reduziert.

      • KCI등재

        역사에서 새로운 것의 출현에 대한 헤겔의 행위이론적인 이해

        유헌식 ( Heon Sik Yoo ) 한국헤겔학회 2010 헤겔연구 Vol.0 No.28

        이 논문은 헤겔의 <법철학>과 <역사철학>을 연계하여 이해하면서 개인의 도덕적 의지 혹은 자유의 의지가 역사에서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있는 근거일 수 있는 가능성과 그 의미론적 특성을 밝힌다. 헤겔에게서 정신의 행위는 의지의 주관적인 목적을 객관적으로 전환시키는 주체로서 이 과정의 최종 결과가 곧 세계사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새로운 것``의 출현 문제는 주관적인 목적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객관적인 세계정신의 논리에 의존한다. 역사에서 새로운 것의 창출에 주관적인 이성이 기여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행위의 측면에 국한된 사항일 뿐 새로운 것의 실질적인 담지자는 세계이성의 몫이다. 여기서 헤겔의 이성 개념은 아포리아에 직면하게 된다. 헤겔에게서 이성은 개인의 합리적 행위의 토대이면서 동시에 실현되어야 할 목적이기 때문이다. ``아직 아닌 존재``와 ``규범적인 진리기능``이라는 이성의 이중성은 헤겔의 주체 개념의 양면성에서 기인한다. 헤겔에게서 ``주체``는 개별적인 의지와 보편적인 정신을 동시적으로 지시한다. 이러한 양상은 헤겔이 근대의 인륜성을 정초하기 위해 그리스의 객관적 인륜성과 칸트의 주관적 도덕성을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주관적(주체적) 인륜성으로 고양시킨 데에서 비롯한다. 헤겔이 주목하는 행위는 근대의 자유의지로서 그는 행위자의 주체적인 의지를 살리면서도 또한 이 의지 너머에서 작동하는 객관정신의 의지도 살려야 하는 이중의 목표를 겨냥한다. 이 목표의 실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헤겔의 서술방식에서 나타나는 ``사후정당화의 논리``가 언급되어야 한다. 인간의 합리적인 행위는 역사에서 새로운 것을 만든다. 그러나 새로운 것의 출현은 무에서 유의 창조가 아니라 이미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이성성의 발현이다. 이성의 추상적 이념은 인간의 실천을 통한 실현을 기다린다. 이 행위는 객관적인 이성성에 적합할 때에만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역사에서 새로운 것은 특수한 정신과 보편정신의 이성적인 이념 간의 상호관계 혹은 통일(화해)을 통하여 발현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치의 내용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행 속에서 결과로서만 확인된다. 특수한 정신들은 비록 의식을 가지고 행위하지만 이 의식의 진리성은 오직 행위의 결과 속에서만 확인된다. 행위하는 자(주관정신)는 자신의 행위의 의미와 목표를 알지 못하고, 정작 행위를 아는 자(객관정신)는 행위하지 않는다. 시간의 차이에 따른 행위와 지식 간의 상호보완 속에서 ``역사적으로 새로운 것``의 의미론적 지평이 열린다. Es handelt sich um die Moglichkeit, wie der Wille zur Moralitat und Freiheit zum Grund der Entstehung des geschichtlichen Neuen wird, und um ihre Wirklichkeit, indem Hegelsche Rechtsphilosophie und Gechichtsphilosophie handlungstheoritisch in einem genealogischen Prozeß verstanden werden. Die Handlung ist es, die den subjektiven Zweck des Willens in die Objektivitat umwandelt und das abschließende Resultat dieses Prozesses ist die Weltgeschichte. Doch ist das Problem der Entstehung des geschichtlichen Neuen nicht auf den subjektiven Zweck zu reduzieren, sondern hangt von der Logik der objektiven Weltvernunft ab. Zwar tragt die subjektive Vernunft zum Produzieren des geschichtliche Neuen bei, aber dies begrenzt sich auf die Handlungsebene und betrifft das substantielle Subjekt des Neuen nur die Weltvernunft. Hiermit stoßen wir auf eine Aporie der Hegelschen Konzeption der Vernunft, weil der Begriff Vernunft die Grundlage der rationalen Handlung des Individuums und zugleich der zu verwirklichende Zweck ist. Diese Ambivalenz der Vernunft, d.h. ihr Noch-nicht-Sein und ihre normative Wahrheitsfunktion, kann man aus dert Ambivalenz des Subjektbegriffs Hegels ableiten. Das handelnde Subjekt und das ihm zugrundeliegende Subjekt werden von Hegel im allgemeinen als der individuelle Mensch und die allgemeine Idee gekennzeichnet. Diese doppelte Konstellation ergibt sich daraus, daß Hegel die griechische objektive Sittlichkeit und die kantische subjektive Moralitat zur kritischen Synthesis erhoben hat. Als der freie Wille der Moderne hat der hegelsche Begriff Handlung die doppelte Aufgabe, zum einem den Willen der subjektiv Handelnden bedeutend macht und zum andern den daruberhinaus laufenden Willen des objektiven Geistes effektiv macht. Um diese zwei Ziele zu erreichen, ist die Logik des postfactum in der eigentumlichen Darstellung Hegels zu verstehen. Die rationale Handlung des Menschen schafft das Neue in der Geschichte. Aber das Schaffen des Neuen ist keine Schopfung ex nihilo, sondern die Verwirklichung der bereits ansichseienden Vernunftigkeit. Die abstakte Idee der Vernunft wartet auf ihre Verwirklichung durch die menschliche Praxis. Und diese Handlung bringt dann das geschichtliche Neue hervor, wenn sie der Vernunftigkeit gemaß ist. Das Neue in der Geschichte entwickelt sich eben in diesem Wechselbezug und somit durch die Vereinigung(Versohnung) der vernunftigen Idee des allgemeinen Geistes mit der vernunftigen Handlung des partikularen Geistes. Dennoch ist der Inhalt dieser Ubereinstimmung nicht vorherbestimmt, sondern erscheint im Gang der Geschichte nur als Resultat. Auch wenn der partikulare Geist handelt sich mit Bewußtsein, wird ihre Wahrheit erst im Resultat seiner Handlung festgestellt. Der Handelnde(der subjektive Geist) selbst weiß nicht seine Bedeutung und Ziele, aber der Wissende(der objektive Geist) handelt sich nicht. Aus dieser gegenseitigen Kompensation von Handlung und Wissen, die sich im zeitlichen Abstand entwickeln, eroffnet sich der semantische Horizont des geschichlichen Neu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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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겔의 경험 개념과 타자

        유헌식 ( Yoo Heon-sik ) 한국헤겔학회 2016 헤겔연구 Vol.0 No.40

        이 논문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나타난 `의식의 경험`을 설명하면서 자체존재로서의 `타자(他者)`가 어떻게 의식의 개념으로 환원되는지를 밝힌다. 논의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자연적) 의식의 타자는 의식에 대립해 있는 대상으로서의 자체존재이다. 2) 자체존재는 의식이 대상과 긍정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지(知)를 평가하는 근거이다. 3) 그런 의미에서 자체존재로서의 타자는 의식에게 진리의 담지자이다. 4) 그런데 의식이 의식과 독립해 있는 타자로 설정했던 자체존재는 자연적 의식의 입장에서 그런것일 뿐, 즉 `의식에게` 드러난 가상에 지나지 않을 뿐, 실제로는 `의식을 향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5) 여기서 타자는 `의식 안의 타자`로 입증된다. 6) 타자가 `의식 안의 타자`라고 해서 타자가 주관으로 환원되는 것을 뜻하지 않고, 오히려 타자의 객관적 실재성과 진리성을 담보하기 위해 의식연관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뜻한다. 진리로서 자체존재의 객관적 실재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체존재의 의식연관성은 불가결하다. 7) 이에 따라 의식은 자신의 지(知)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근거를 자기 밖의 타자인 자체존재에서 찾을 필요가 없게 된다. 8) 여기서 의식은 개념과 대상 그리고 지와 진리의 비교를 위해 `의식의 자기검사`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대상에 따른 검사`는 곧 `의식 안의 대상에 따른 검사`이다. 9) 대상에 대한 의식의 지와 진리의 불일치 혹은 자기와 타자의 불일치가 확인되면 의식은 대상에 대한 지를 변화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의식의 지를 가능하게 했던 대상 자체도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때 의 대상은 그에 상응하던 지의 경우에만 유효했기 때문이다. 결국, 타자는 의식에 대한 타자로서만 그의 진리를 획득한다는 사실, 즉 `대상(타자)의 진리는 개념(관념)으로 현상한다.`는 사실을 헤겔은 『정신현상학』을 통하여 드러낸다. 헤겔의 철학적 사유를 `객관적 관념론`으로 칭할 때 `객관적`의 의미가 충분히 부각 되어야 한다. 존재의 실재적 객관성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확보하기 위해 헤겔의 철학적 사유는 한 편으로 구체적인 경험세계에 준거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 그 경험세계에 대한 설명이 궁극적으로 의식의 개념 혹은 정신의 관념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밝힌 다. 의식이 행하는 경험에서 대상은 칸트의 파악과 달리 감성과 오성의 차원에 머물 수 없고 이성의 차원에까지 나아감으로써만 그 객관성과 진리성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헤겔은 입증한다. 그런 한에서 칸트의 물자체는 헤겔에게서 더 이상 인식에게 낯선 타자가 아니며, 헤겔의 체계 안에 이성과 무관한 `절대 타자`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Im Begriff der Erfahrung in der Phanomenologie des Geistes Hegels ist das Andere(das Ansichsein) dasselbe des Bewußtseins selbst, wobei es als die Wahrheit mit der Unwahrheit des Wissens von dem Gegenstand auseinander gesetzt ist. Die Wahrheit des Seins wird erst dann erscheinen, wenn es durch den Begriff des Bewußtseins, welcher sich uber die den Gegenstand gemachte Erfahrung praktiziert, aus dem Schein des vorhergehenden Wissens herauskommt. Dieser Sachverhalt weist darauf hin, daß das Andere, das das naturliche Bewußtsein als Gegensatzliches gegenuber demselben weiß, nur ein Schein ist, welches es gegen Wahrheit vorgestellt hat. Damit eroffnet sich eine Konstellation, in welcher `das Ansich(das Andere) dem Bewußtsein` zum `Ansich fur das Bewußtsein` ubergehen kann. Aber die plausible Erklarung des Ubergangs ist so sehr schwierige Frage, mit welcher Hegel in der Einleitung des Phanomenologie des Geistes anstrengend beschaftigt ist. Diese Frage hangt mit der sogenannten Selbstprufung des Bewußtseins zusammen. Das Bewußtsein pruft sich selbst insofern, als das Andere fur das Bewußtsein ansich ist. Dennnoch das Andere fur es lehnt nicht die selbstandige Realitat des Gegenstandes ab. Vielmehr die objektive Realitat und seine Wahrheit wird durch die Selbstbezuglichkeit des Gegenstandes auf das Bewußtsein gewahrleistet. Das Andere fur das Bewußtsein ist der Maßstab der Pufung, an dem sich das vorhegehnde Wissen des Gegenstandes falsch erweist und sowohl es als auch der Gegenstand verandert. Daruas folgt der neue Gegenstand und das neue Wissen. In dieser Weise erschoft sich der Gegenstand, d.h. das Ansichsein in den begrifflichen Bewegungen des Bewuβ tseins. Insofern gibt es keinen Platz fur das absolut Andere im Hegelschen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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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시대의 철학적 인간학

        유헌식 ( Heon Sik Yoo ) 단국대학교 철학연구소 2021 哲學論考(철학논고) Vol.3 No.-

        ‘코로나 19’라는 낯선 타자(他者)가 지금 인류의 일상적인 삶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 새로운 ‘타자’의 출현에 맞서 어떤 해법을 구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이 글은 철학적 인간학의 시각에서 조명한다. ‘타자’로서 코로나 19는 자연에서 출현한 미지의 존재자이다. 일반적으로 자연은 인간 또는 인위와 대비되어, 인간에게 친구이면서 동시에 적이다. 자연을 내 것으로 삼지 않으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는 반면, 인간이 자연에 방치될 경우 생명을 위협받게 된다. 그래서 자연에 대해 인간이 구사하는 전략의 특성들은 철학적 인간학의 중심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여기에는 이념형적으로 크게 두 가지 길, 즉 인간문명주의의 길과 자연생명주의의 길이 제시되었다. 전자는 인간의 지성을 따르는 길이고, 후자는 자연의 생명을 따르는 길이다. 인간문명주의는 자연을 인간의 척도로 재는 작업의 불가피한(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문화(문명)의 개선과 창달에 매달리는 한 편, 자연생명주의는 그러한 작업의 미흡한(부정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인간지성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자연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한다. 철학적 인간학은 무엇보다 인간이 신체적 역량 면에서 다른 생명체에 비해 ‘결핍된 존재’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결핍을 보완할 수 있는 근거를 인간 사유에 구비된 세계공간Weltraum, 사이세계Zwischenwelt 그리고 간극 Hiatus에서 찾는다. 이를 통해 인간이 결핍을 보완하는 방식은 점차 진화한다. 여기서 보완 방식의 진화는 곧 인류 문화의 발전이다. 특히 카시러는 문화의 매개적 특성에 주목하여 인간은 자연을 ‘날 것’으로 만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힌다. 인간은 자연을 인간에 따라 판단하고 인간에 맞게 재단한다. 인간은 세계를 재는 척도이다.(인간척도주의homomensuraism) 자연생명주의는 인간이 부딪치는 타자 문제의 돌파구를 자연에서 찾고자 하지만 카시러의 관점에서 볼 때 자연생명주의의 자연은 가상에 지나지 않아 실제에서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현재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간척도주의가 불가피한 만큼 인간문명주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겔렌의 말대로 ‘자연인(自然人)이란 없다.’ 문화는 ‘제 2의 자연’ 또는 ‘인간이 자발적으로 가공한 자연’으로서 이 안에서만 인간은 생존할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이 가공한 자연은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유리 집’이다.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팬데믹은 이 유리 집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격이다. 인류를 감싸 보호하던 ‘문화’라는 ‘유리 집’이 관리 소홀로 인해 부분 파손되면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있다. 백신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개발하는 일은 다시 인간의 몫이 되었다. 효능 좋은 백신이 개발되면 인류는 다시 새로운 ‘유리 집’에 거주하게 될 것이다. The daily lives of humanity is shaken to its very core by the outbreak of Covid-19 virus, comprehended here as a strange Other. This article is an attempt to suggest a way of thinking about this Other from a viewpoint of philosophical anthropology. Covid-19 understood as an Other is a being that emerged from hitherto uncharted parts of nature. Generally, nature is understood as being in contrast to humanity or arbitrariness: both a friend and foe. While the survival of humanity is conditioned by their assimilation of nature, our unprotected exposure to nature entails dangers to life. Hence the characteristics of humanity’s strategic instruments used towards nature that constitute problems central to philosophical anthropology. In such a light, they can be categorized into two ideal types: civilizationalism and ecocentrism. The former’s major concern lies in the improvement and development of culture(civilization) via the inescapable (positive) human work of measuring nature, while the latter focuses on the inadequate (negative) aspects of such work and thus the limits of human intellect towards nature. Philosophical anthropology hinges upon the fact of humanity’s ‘lack’ of corporeal capabilities in comparison with other certain living beings. It finds grounds for overcoming this lack in Weltraum (world-space), Zwischenwelt (intermediate world) and Hiatus intergal to human thinking. Through them evolves the means of overcoming the above lack: such evolution is nothing other than the evolution of human cultures. Cassirer notably argues that humans do not meet nature in its ‘raw’ state, pointing out the intermediary characteristics of culture. Human beings taylor and judge what is given by nature as they see fit. According to this view, humanity is the yardstick for all things. (civilizationalism) Ecocentrism seeks breakthrough to deal with human lack in nature, whereas according to Cassirer, nature as viewed from ecocentric viewpoint is nothing more than mere imagination, thus invalid in reality. Owing to the indispensability of human measurement in the midst of the current crisis, it can be argued that civilizationalism is the way forward. As Gehlen affirms, “there is no natural human.” If culture is as a ‘secondary nature’ or ‘nature made voluntarily by human beings’, it is only within it that humans can maintain their lives. This man-made nature can be likened to a ‘glasshouse made for humans by humans’. The current pandemic is an imposing hole pierced on this “glasshouse”, or culture acting as a shield for humanity which has been compromised, increasing damage to a crucial degree. Inventing the vaccine has once again become the task of humanity. The invention of adequate vaccine will coincide with a new glasshouse for humanity.

      • 강한 인간척도주의에서 약한 인간척도주의로 - 4차 산업혁명 시대 포스트 휴먼의 존재론적 특성과 관련하여 -

        유헌식 ( Heon-sik Yoo ) 단국대학교 철학연구소 2020 哲學論考(철학논고) Vol.2 No.-

        인간과 세계를 잇는 미디어로서의 인공지능(AI), 즉 ‘생각하는 기계’는 ‘인간의 사고(개념)에 맞추어’ 산출된 인공물이다. 이러한 인간척도주의 (Homensuraism)와 관련하여 인공지능의 연구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강한 인간척도주의’로서 유기체적인 인간의 사고와 외형을 기준으로 기계를 제작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약한 인간척도주의’로서 유기체적인 인간의 모방이 아니라 특정 목적의 달성에 적합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 최적화된 디지털 기계를 개발하는 길이다. 최근 인공지능은 연구동향은 ‘강한 인간척도주의’에서 ‘약한 인간척도주의’로 이동하고 있는 추세이다. ‘생물적인것’을 ‘비생물적인 것’으로 환원하여 설명하고 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이 점차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사실을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의 차이 그리고 순수 수학적인 알고리즘에 기초한 인공지능의 자율학습에 기초하여 진화론에서의 아날로그적인 자연선택의 과정과 단계를 가속시킬 가능성을 통하여 밝힌다. 여기서 보스트롬의 ‘초지능’과 카즈와일의 ‘특이점’이 의미 있게 부상한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경우 인간의 사유활동이 고리가 되어 인간과는 전혀 다른 종이 출현하여 인류세가 종착점에 이를 수도 있다. 사고를 멈추면 인간이 아니게 되고 사고를 계속하면 인간이 파멸하게 되는 진퇴양난의 국면에서 인간은 어떤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인가? Die kunstliche Intelligenz(AI) ist als eine denkende Maschine ein kunstliches Produkt, das sich gemaß der menschlichen Denkfahigkeit entwickelt. In bezug auf den Homomensuraismus differenziert sich die Untersuchungsweise der kunstlichen Intelligenz zweierlei: zum einen ghet es um den starken Homomensuraismus, in welchem die denkende Maschine am Mastab des menschlichen Organismus hergestellt wird, ein anderes Mal um den schwachen Homomensuraismus, in welchem sie nicht am Model des menschlichen Organismus, sondern am mathematischen digitalen Algorismus der zum adaquatesten Funktion zum rationalen Zwecke des Menschen entworfen wird. Nererlich geht der Schwerpunkt der AI-Untersuchungen von jener zu dieser uber. Da verbreit sich die wisschenschaftliche Versicherung, daß das Organische zum Unorganische zuruckfuhrt werden kann. In dieser Abhandlung wird diese Tatsache zum einen durch den qualitativen Unterschied zwischen der menschlichen und kunstlichen Intelligenz erwiesen und zum anderen dadurch, wie sich der analogische Prozeß der naturlichen Selektion in der Dawinischen Evolutionstheorie auf Grund des digitalen autonomen Lernprozeß der kunstlichen mathematischen Intelligenz beschleunigen laßt. Hiermit handelt es sich um den Begriff der Bostroms ‘Superintelligence’ und der Kurzweils ‘Singularity’. Falls das letztliche technologische Wachstum der kunstlichen Intelligenz ohne Bremse weiter entwichkle, erscheine der neue Art jenes menschenahlichen Wesens auf der Erde, welches er trotz seiner genealogischen Verbindung mit dem Menschen nicht vorstellbar und absehbar ware. Jetzt hat der Mensch die Aufgabe vor seiner Auge, wie er aus der Sackgasse entkommen kann, in der er sich verwwirrend daruber sorgt, ob er sein wissenschafliches Denken weitertreibe oder es unterbreche.

      • KCI등재

        헤겔의 경험 개념에서 동일성의 정신철학적 의미

        유헌식(Yoo, Heon-Sik) 새한철학회 2014 哲學論叢 Vol.75 No.1

        이 글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나타난 의식의 경험과정에서 동일성이 차지하는 정신철학적인 위상을 살핀다. 정신현상학에서 의식의 지와 그 대상의 불일치가 일치로 이행하는 과정이 곧 의식의 경험이라고 할 때, 전자는 의식의 동일성으로 후자는 의식의 비동일성으로 치환할 수 있고 양자의 대립이 새로운 동일성으로 이행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동일성’이라는 헤겔의 테제는 넓은 의미에서 경험과정의 이러한 양상과도 부합한다. 여기서 종합 또는 통일의 의미를 지니는 동일성은 당연히 후자의 동일성을 일컫는다. 하지만 동일성이 이렇게 ‘결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전자의 동일성과 비동일성 속에 이미 양자의 동일성의 씨앗이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이 씨앗이 곧 정신이다. 여기서 의식의 경험과정과 정신의 자기인식 과정은 결국 같은 사태에 대한 서로 다른 명명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은 의식의 경험과정에 빈틈없이 내재해 있지만 의식이 대상과 관계함으로써 획득하는 내용을 자기로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정신의 진리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성은 경험의 소산이면서 동시에 정신의 결과이다. 정신이자기를 알아가는과정은그런 의미에서 원환운동이며 동어반복이다. 원환운동은 의식-자기의식-이성-정신이라는 일련의 시간적인 계기를 거침으로써 완결되며, 더욱이 각 단계의 이행은 규정적 부정이라는 긍정적(생산적) 방법을 토대로 진행될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전자의 개별성은 후자의 보편성에 귀속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상적인 의식이 생각하는 것(사념)과는 반대되는 것이 참이라는 전도된 세계의 진실이 드러난다. 동일성은 결국 경험에 내재적인 것이면서 또한 드러난 경험을 넘어서 있는 초월적인 것이며, 경험의 과정에 내재해 있으면서 결과로 드러난다. 하지만 동일성의 출현 자체는 논리로 환원할 수 없는 정신의 창조적인 활동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정신의 원환운동은 자기인식이며 동시에 자기혁신이다.

      • 새로운 리얼리즘의 철학적 인간학

        유헌식 ( Yoo Heon-sik ) 단국대학교 철학연구소 2023 哲學論考(철학논고) Vol.7 No.0

        이 글은 새로운 리얼리즘(der neue Realismus), 특히 가브리엘(M. Gabriel)이 제시하는 새로운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전통적인 철학적 인간학의 토대를 반성하여 새로운 철학적 인간학의 단초를 마련하려는 시도이다. 철학적 인간학은 기본적으로 동물과 인간의 경계는 어떻게 설정되며, 그 결과에 따라 인간은 자연(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문화를 창출해 왔는지를 탐구한다. 셸러의 점진적인 단계론과 정신의 초월성, 겔렌의 단계론 부정과 인간 문화의 조건독립적인 환경적응력, 플레스너의 인간 도구사용론과 도구의 자연친화성 그리고 카시러의 문화 주관주의와 상징주의 등은 인간이 자연에 속해 있으면서도 어떻게 자연의 물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 고유의 문화를 생산하여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이 소통해 왔는지 살핀다. 가브리엘이 인간을 ‘동물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동물’이라고 정의할 때 그는 겔렌과 플레스너의 철학적 인간학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새로운 리얼리즘의 존재론을 통하여 그들이 제시하는 인간학적 틀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환경이 하나의 존재론적 지평 안에서 상호 의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그는 무엇보다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실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존재’를 거부하고, 존재에 대한 셸링적이고 하이데거적인 실존철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존재는 의미장에서만 나타난다’는 새로운 주장을 펼친다. 그의 의미장 이론은 인간의 사유(생각) 능력을 인간의 자연성과 결부시킨 ‘생각감각(Denksinn)’ 개념과 맞물려, 생각감각이 새로운 의미장을 발견하고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보인다. 존재는 인간에 무관심한 자연의 물리적인 의미장들을 비롯하여 인간이 사유와 상상으로 구성한 인위적인 의미 장들이 상호 교차하고 중첩된 무수히 많은 의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인간의 생각)은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소산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자기를 이해하고 규정하는 능력’인 ‘정신’을 지닌 존재로서 ‘자유로운 정신적 생물’이다. 가브리엘의 의미장 이론에 따라 존재 일반을 총괄 지도하는 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인간은 ‘자유’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생각감각’을 부단히 일깨워 현재 인류가 처한 다양한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요구되는 새로운 의미장을 창출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다. This article is an attempt to construct a new philosophical anthropology by the means of rethinking the foundations of its traditional form from the standpoint of M. Gabriel’s “der neue Realismus”. Philosophical anthropology studies what kind of relationships human beings establish with nature (or its environment) and give rise to culture by determining differences between human and animal. Scheler’s notion of gradual transition and transcendence of spirit, Gehlen’s denial of transition theory and advocacy for the human culture’s conditionally-independent ability of adaptation to environment, Plessner’s theory on the tool-using ability of humans and natural affinity, and Cassirer’s notion of cultural subject and symbolic forms all strove to understand how humans could overcome their physical limitations in relation to nature to produce cultural phenomena proper and how they communicate with nature as well as between themselves, despite being within nature. Gabriel’s view is in line with that of the philosophical anthropology of Gehlen and Plessner in defining human being as “animal that does not want to be one”. In the meantime, he distances himself from this anthropological framework and seeks, through his new realism, ways in which humans and natural environment can communicate with and rely on each other in conformity with one and the same ontology. He above all rejects the notion of ‘being’ understood by the traditional metaphysics as existent in favour of the new Schellingian-Heideggerian theory according to which being can only be within the field of sense. This theory, in conjunction with the concept of Denksinn (thought-sense) that couples human thinking with the naturality proper to humans, purports to open up ways in which new fields of sense can be created. The Being consists of numerous and criss-crossing layers of sense constituted by human thinking and imagination as well as physical sense fields of the natural things which are oblivious of humans. These latter (human thinking) are the product of nature as is all living organisms, but are also those of ‘liberal spirit’, in other words, spiritual beings that have the ability to understand and determine themselves. In the light of Gabriel’s theory of sense field that does not allow for the all-encompassing generalized being, human beings have the tremendous responsibility of creating new fields of sense required to overcome various crises by awakening their Denksinn endowed as ‘freedom’.

      • KCI등재

        칸트와 헤겔 : 헤겔 『정신현상학』의 시원(始源)문제에 대한 방법적 반성

        유헌식 ( Heon Sik Yoo ) 한국헤겔학회 2011 헤겔연구 Vol.0 No.30

        이 논문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서문을 중심으로 이 저작의 서술적 시원(Anfang)이 지닌 방법적인 특성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정신현상학』은 ``정신의 현상학``이면서 동시에 ``의식의 경험학``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명명상의 특징 속에 이미 ``시원``에 대한 양가적인 평가가 함축되어 있다. 헤겔은 이 저작의 서문에서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당대에 도달한 정신의 수준에 입각하여 회고적으로 과거를 재구성하여, 겉으로는 양립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정신의 기억과 외화를 하나의 방법적 틀 안에서 통일시킨다. 외화는 시간적으로 과거의 정신이 점차적으로 현현하는 양상인 데 반하여, 기억은 현재의 정신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행위로서 그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헤겔은 ``시원``에, 현재 도달한 시대의 정신과 과거의 시초적인 정신 모두를 담음으로써 시원에 대해 이중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신현상학』의 출발점을 이해하는 데에서 방법적으로 참여자와 관찰자의 입장에서 두 개의 층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게 된다. 여기서 관찰자로서 현재에서 과거로 향하는 ``기억의 층위``가 참여자로서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하는 ``외화의 층위``를 주도하는 한에서 『정신현상학』의 변증법적 운동에서 출현하는 ``새로운 대상``이 과연 ``새로운 것``인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Hiermit handelt es sich um die kritische Auseinandersetzung mit dem Anfangsproblem, das in der Vorrede Hegels Phanomenolgie des Geistes behandelt worden ist. Fur Phanomenolgie des Geistes laßt sich so wohl die Phanomenolgie des Geistes als auch die Wissenschft der Erfahrung des Bewußtseins zu nennen. In dieser Bennenung is die amvibalente Bedeutung des Anfangs enthalten. Indem Hegel in der Vorrede dieses Werkes ``die Geurt der neuen Zeit`` proklamiert, rekonstruktiert er die Vergangenheit gemaß seiner Gegenwart, wobei die scheinbar unvertraglichen geistigen Handlungen, namlich die Erinnerung und die Entau ßerung des Geistes, in eins gesetzt hat. Wahrend ``Entaußerung`` eine vorschreitende Bewegung des Geistes ist, ist ``Erinnerung`` eine retrospektive Beweging desselben. Jedoch hat Hegel dem Anfang die doppelte Bedeutung angegeben, einerseits die Gegenwart des zeitgenossischen Geistes und andererseits der anfangliche Geist der Vergangenheit. Danach ist ein doppelter Gesichtpunkt zu unterscheiden, der des Beobachters und der des Teilnehmers, um zu verstehen des Anfangsmodus der Phanomenolgie des Geistes. Insofern die Erinnerung des Geistes als der Gesichtspunkt des Beobachters methodisch die Entaußerung des Geistes leitet, kann man zweifeln, ob der ``neue Gegenstand`` in der dialektischen Bewegung der Phanomenolgie des Geistes wirklich ``neu`` ware.

      • KCI등재

        1부 헤겔 주제 논문 : 의식의 경험과 규정적 부정

        유헌식 ( Heon Sik Yoo ) 한국헤겔학회 2012 헤겔연구 Vol.0 No.32

        <정신현상학> 서론에서 헤겔은 의식의 경험을 통해 새롭고 참된 대상이 출현한다고 말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헤겔은 방법적으로 규정적 부정을 사용한다. 초점은 규정적 부정이 어떤 점에서 이전 대상의 비진리성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상의 진리를 서술하는가에 맞춰진다. 규정적 부정은 어떤 점에서 이전에 없던 긍정적인 내용을 새로운 대상에 부여하는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대상의식이 어떻게 규정적 부정을 통하여 새로운 대상의식으로 이행하는지 그 과정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규정적 부정은 이중부정이나 ``규정은 부정이다``과 달리, ``특정한 내용의 부정``과 ``부정의 결과의 규정``이라는 양 측면을 지닌다. 이러한 이중성은 의식이 즉자적 대상에 접하여 행하는 경험에서 즉자가 ``즉자의 의식에 대한 존재``로 이행하는 문제 그리고 ``즉자의 의식에 대한 존재``가 참되고 새로운 존재로 이행하는 문제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여기서 전자는 ``우리의 추가``로 인한 가상으로서, 규정적 부정은 이러한 가상의 비판과 후자의 진리를 설명하는 핵심축으로 작용한다. 즉 이전 대상의 비진리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대상의 진리에 대한 서술이 규정적 부정에 의해 통일적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사실은 규정적 부정의 부정 행위가 단순히 ``어떤 것은 어떤 것이 아니다``가 아니라 ``어떤 것은 어떤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다``라고 판단하여 긍정적인 내용을 정립하는 데에서 가능하다. 어떤 것의 비진리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 진술의 토대에 긍정적인 진술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부정대상의 내용성과 부정 결과의 긍정성이 하나로 연결된다. 따라서 규정적 부정은 이중부정이라는 단계적인 부정이 아니라, 하나의 부정 행위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에서 이중적으로 언명한 것, 즉 부정된 대상의 측면과 규정하는 진리의 측면에서 조망한 개념이다. 따라서 의식의 경험에서 새로운 대상(내용)의 출현은 방법적으로 이중부정이 아니라 규정적 부정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 Warum hat die betimmte Negation in der Erfahrung des Bewusstseins einen positiven Inhalt? Die Antwort darauf diese Frage besteht darin, daß in die Negation die Wahrheit des unthematisierten Gegenstandes als Moment einbezogen ist. Damit ist der Ubergang des Ansich zum fur-das Bewusstsein-Sein des Ansich einerseits die Kritik an dem vorausgehenden, bereits thematisierten, unwahren Gegenstand, andererseits aber die Darstellung des wahren Gegenstandes, der als der neue Gegenstand entsteht. Daß die Negation des ersten Gegenstandes nicht zum leeren Nichts wird, sondern ein Positives, einen neuen reicheren hoheren Begriff produziert, wird dadurch erreicht, daß die Negation ein Subjekt braucht, das den ersten als das Unwahre beurteilen kann; sie ist keine blosse Verneinung in der Weise, daß Etwas nicht Etwas ist, sondern enthalt eine positive Aussage in der Weise, daß Etwas sowohl ``nicht Etwas`` als auch ``etwas Anderes`` ist. Die Aussage von der Unwahrheit des Etwas ist ohne die ihr zugrundeliegende positive Aussage unmoglich. Das ist eben die Einheit der Inhaltlichkeit des Negationsgegenstandes und der Posotivitat des Negationsresultats. Die Doppeldeutigkeit der bestimmten Negation ist keine doppelte Stufenfolge der Negativitat, also keine stufenweise auftretende Operation der ersten und zweiten Negation, sondern nur die doppelseitige Aussage eines Negationsaktes, die einmal vom negierten Wissen(dem unwahren Gegenstand) her, einmal von der negierenden Wahrheit(dem wahren Gegenstand) her betrachtet wird. Daher stellt sich die Entstehung des neuen Inhalts sowie des neuen Gegenstandes nicht durch die doppelten Negation her, sondern durch die eindeutige Neagtion, d.h. die bestimmte Neg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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