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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충과 충돌 : 근대 중국의 기독교 近代中國的基督敎

        유장근 대구사학회 2003 대구사학 Vol.73 No.-

        本論文試圖從兩方面探討在近代中國時期基督敎所引起的作用. 向來多數學者從民族主義的角度檢討近代中國的基督敎. 因而其結果一直强調近代中國的基督敎以文化優越感蔑視中國文化, 甚至有帝國主義的色彩, 從而被中國的國家權力和知識階層批評. 但是兩者的折衷方面, 長期以來學術界似乎不구重視. 鑒於此, 本論文要着重於兩者的折衷方面進行探討. 如中國民族主義者所言, 基督敎傳敎師在中國傳敎時偶爲自己國家的利益而辯論, 這是不能否認的事實. 他門在中國盡多方面努力傳敎而失敗. 這是平面的觀察結果. 換個角度觀察, 不難現基督敎與中國文化不斷折衷的面貌. 明末利瑪寶(Matteo Ricci)和中華民國時期的儒學者吳雷川互相切??的事情, 卽代表的例子. 折衷主義的特徵在近代民間宗敎中更呈現出來. 20世紀發展出來的民間宗敎從多方面吸收了基督敎的長處和特徵. 其結果更有效的服務於民衆. 因此在近代中國時期期基督敎傳統敎失敗的原因, 就在於근中國近代宗敎競爭中被淘汰.

      • 일반논문 : 현대의 오키나와와 경남 지역에서 민간인 전쟁희생자를 기억하는 세 가지 방식 -찌비찌리 동굴, 히메유리탑, 그리고 여양리 유골-

        유장근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구 역사학연구회) 2014 사총 Vol.81 No.-

        この硏究は、現代の東アジアで起きた大規模な戰爭で犧牲になった民間人を前後各地域や各國がどのように記憶しているに焦點を當てたものである。扱う對象は、沖繩戰場に屬するチビチリガマやひめゆり平和祈願資料館、すなわち一般的にひめゆりの塔と呼ばれるところと、韓國戰場に屬する慶尙南道昌原市馬山合浦區艅陽裏で民間人の身分で虐殺された被害者である。現在の沖繩の2つの場所は、沖繩戰の殘酷さを示す代表的なシ一ンとして、それぞれ異なる方法で保存·展示されている。一方、艅陽裏虐殺現場は、遺骨を發掘した後、發掘現場は痕跡すらほとんど消えて、遺骨さえ安置されていないまま、ほとんど放置されているレベルである。硏究の結果、私は次のような事實を知ることになった。1945年4月にチビチリガマであった 「集團自決」の遺族と生存者たちは、この悲劇が天皇制國家の暴力性に起因したと判斷した。したがって、この體制を批判し、平和を祈願するスペ一スを現場にした。これに比べればひめゆりの學徒隊は 沖繩戰に參戰して殉國したかのように展示されている。すぐに覺え主體は、戰後に戰沒學徒を基三、自分たちも被害者という意識を建造物を使用して實裝しようとしていたと思われる。その點で、ひめゆりの塔は、建設の構成の原則から、靖國神社と似ているという批判を受けており、この批判は正當だと思う。これに對し、韓國戰爭の犧牲者たち、例えば馬山の艅陽裏であった民間人犧牲者は全く別の處遇を受けている。彼らは死後50年の間に忘れられた存在であり、2002年に台風によって偶然にさらされて、必然的に調査が行われたにもかかわらず、死んだ163人の身元も晉州地域保導聯盟員であるという事實以外には明らかでなく、銃殺の主體も、軍人であるということ程度しか知られていた事實はない。だから、彼らの魂を慰めるだけの主體として、遺族會ということも事實上ない方で、地方自治體や議會でも大きな關心を佛っていない。韓國の南部と沖繩では、なぜこのような差が來る?私たちの日常が、まだ戰爭と國家暴力の遺産の中に縛られているからだろう。戰爭當時の恐怖と暴力が社會をまだのしかかっているように見えるからだ。いわば左右理念が銃劍で立ち向かった冷戰の遺産が國家だけでなく、地域社會にも强く殘っている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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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 오키나와와 경남 지역에서 민간인 전쟁희생자를 기억하는 세 가지 방식 - 찌비찌리 동굴, 히메유리탑, 그리고 여양리 유골

        유장근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2014 사총 Vol.81 No.-

        This study is intended to examine the problem of violence used by the state regarding problems of civil war victims of Great Wars in the contemporary East Asia and ways of memorials through the two categories of state and region. The objects are Chibichiri cave and Himeyuri Peace Memorial museum, commonly called Himeyuri pagoda in Okinawa, Japan and Remains of Korean War civil victims of Yŏyang-ni in South Gyeongsang Province, South Korea. In visiting these places, I paid much attention to the reason of civilian death in battlefields, the ways of memorials about the deads by the contemporary natives or by the government. This interest is not related to a reproduction of past memories, but to a worry about any possible repetition or enlargement of these tragic scenes nowadays. As a result of the visit and the study of two places in Okinawa, I conclused that the related tragedies have been caused by the state-violence used by the Japanese modern imperial government in the internal colony. Following Anthony Giddens who pointed out that the monopolization of violence of Modern State is executed in the category of Nation-State, it means the discrimination and disregard of the Yamato nation against the Okinawa nation and the imperialization of the border of Okinawa in order to protect the Japanese territory. By the way, the memory about the collective suicide in Chibichiri cave was honored by surviving families and anti-imperialists and the scene of suicide is originally preserved as if it symbolize the state crime. The Memorials are also minimized and, in this point, it is an anti-imperialist instrument of memory. In contrary, the death of Himeyuri girlstudents drafted for military service present a strong reproach against the genocide, but its way of memory resembles with the Yasukuni Shrine. This reveal the intention of the subjects of memory, that they makes themselves victims through the mediation of the real victims. The remains of Yŏyang-ni, result of typical genocide, were not memorized by anyone after the massacre for 52 years. After the revelation in occasion of typhoon, this scene of genocide was actively excavated and became the object of memory of the past event. But the original scene disappeared and the remains are not properly preserved. It means that, in the korean society, the problem of civil massacre in Korean war is not yet solved. As the military rule like the presence of U.S. Army continues in Okinawa, an element of internal anxiety is not clearly exterminated. At this point, the military structure by violence state, produced in the Battle of Okinawa and in the Korean War has the virtuality of revival and reoperation. 이 연구는 현대 동아시아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전쟁에서 희생당한 민간인의 문제와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국가와 지역이라는 두 범주를 고리로 삼아, 국가가 저지른 폭력의 문제를 검토해 보고자 한 것이다. 다루는 대상은 오키나와 전장터에 속하는 찌비찌리 동굴과 히메유리평화기원자료관, 곧 통상적으로 히메유리탑으로 불리는 곳과 한국전장터에 속하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학살당한 피해자들이다. 나는 위의 곳들을 탐방하면서 민간인들이 전쟁터에서 왜 죽었는가, 또 그 주검들은 현재 현지인들에게 혹은 국가에서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 관심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만을 재생해보는 차원이 아니라, 과거의 비극적 현장이 오늘날에도 반복되거나 확대될 수도 있다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현지 답사와 연구 결과 오키나와에 있는 두 곳의 비극은 ‘일본 근대의 천황제’와 그 체제가 오키나와라는 내부 식민지에 가해진 폭력의 결과였다고 판단하였다. 근대국가의 폭력의 독점은 민족국가라는 범주 속에서 가능하다는 기든스의 말을 상기하면, 야마토 민족에 의한 오키나와민족에 대한 멸시와 차별, 그리고 자국의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오키나와라는 변방을 꾸준히 황국화 시킨 결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찌비찌리 동굴의 집단자결에 대한 기억은 유족과 외부의 반천황주의자에 의해 진행되었고 자결의 현장도 그것을 상징화시킨 듯,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기념물도 최소화되어 있다. 이 점에서 반천황제의 성격이 강한 기억장치라고 본다. 반면 학도대로써 징용된 히메유리여학생들의 죽음은 제노사이드적 성격이 강하였지만, 기억하는 방식은 야스쿠니신사와 닮아 있었다. 이는 기억 주체들이 희생자를 매개삼아 자신들도 희생자로서 위치시키려는 의도의 결과라 생각된다. 전형적인 제노사이드인 경남 마산의 여양리 유골은 학살 이후 52년간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려했다. 그러나 태풍에 의해 우연히 세상에 드러난 뒤 본격적으로 발굴되면서 과거의 사건을 기억화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현장도 사라지고, 유골 역시 안치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아직도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을 의미한다고 본다. 오키나와 역시 미군주둔과 같은 군사적 지배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이 역시 전쟁 당시에 만들어진 내적 불안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오키나와전과 한국전쟁 때 생산된 폭력 국가적 군사 구조는 여전히 살아서 작동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하겠다.

      • 논문(論文) : 현대 중국의 샹그리라 만들기와 그 의미

        유장근 한국중국근현대사학회(구 중국근현대사학회) 2011 중국현대사연구 Vol.49 No.-

        這個文章的主題是目前在中國以最高水平成層的雲南省旅游勝地·香格裏拉縣是如何形成的。首先, 對香格裏拉縣提供創作理念的小說和電影中組成的想象空間, 道行了分析。詹姆斯希爾頓的小說《失去的地平線》和把타體現在影像裏的잡普拉導演拍的同名電影裏, 其中的香格裏拉遠遠不同於通常我們一直所追求的理想型空間, 反而把東方主意像蜘蛛一樣到處分布在空間, 타更不是東方人的理想空間。此外, 探究審査希衆所周知的約瑟夫洛克探險記被成爲希爾頓小說的動機。美國農業部派遣的植物獵人約瑟夫岩石不僅忠誠於本人的任務、按照國家地理學雜志社的邀請, 把雲南西北部和西藏東部的美好景觀介紹給舊美國。在哈弗大學的支援下, 爲了硏究納西人的歷史和文化, 他在北瀘沽湖麗江文化附近조了住處。他所看到的雲南西北部的景觀是非常優美、但西藏的宗敎社會和雲南的政治社會形勢是非常不利的。雖然他對納西族比較感輿趣, 但他也就僅限於關心。硏究對象的程度, 依賴於西方價値。在1990年代末在雲南省忠貞縣的香格裏拉基本上是接受希爾頓的想法和約瑟夫洛克的探險結果形成的。其動機是雲南西北經濟蕭條、中國政府的西部大開發、生態文化旅游發展趨勢、世祀末的末劫思想等。雖然經歷了一個相當복雜的議論過程、但在忠貞縣形成的香格裏拉的商品最終還是取得巨大的成功。當然當地文化不是生活中的一部分、而取代爲給游客觀看的形式, 而且大部分游客是韓國人、旅遊系統本身就以韓國人爲主運營下去的。香格裏拉進一步擴大成與他具有類似條件的隣近地區, 井促進大香格裏拉的出現。其範圍是幾乎足以匹配省級區域、民族地區生熊條件也흔類似。通過邊防的旅游化、中國政府解快在這邊提及到的民族沖突的一方面, 同時吸收市場祉會主義成果、幷更鞏固管理系統。這樣看起來, 在少數民族地區形成的所謂香格裏拉世界就像希爾頓或洛克制作的東方學一樣, 以漢人爲中心, 似乎被看做是直接同樣복制在地面似的。相當於漢人形式的東方主義再現了。而且注重於祉會主義以上的中國祉會, 不如通過香格裏拉的旅游, 減少對現實生活的不滿, 幷意識到滿足的空間,這也算是一個重要的成就。特別是大香格裏拉圈的建設更分淸這兩個的含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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