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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道의 現象學(Ⅱ)

        여종현 한국철학회 2003 철학 Vol.74 No.-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의 학적 의미는 인간성의 실현에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人性의 현상학에 이르러서야 그 학적 의미를 다하게 된다. 물론 두 현상학은 별개의 학이 아닌 바, 초월론적 현상학의 완성(성숙)된 형태가 인성의 현상학이고, 인성의 현상학의 근원적 형태가 초월론적 현상학이다. 이로 보건대, 초월론적 현상학은 인성의 현상학으로 승화될 때 성숙된 철학의 경지로 접어들 수 있거니와, 그러나 그것은 ‘인식의 현상학(인식론)’으로 남아있지 인성의 현상학(인성론)으로 승화되지 않았다. 본고는 그것이 도의 현상학으로 정립될 때 인성의 현상학으로 승화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본고는 그것이 원숙한 철학이 될 수 있도록, 그것을 도의 현상학으로 정립하기 위한 예비작업의 성격을 지닌다. 본고가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이 도의 현상학으로 정립될 때 그것이 인성의 현상학으로 승화될 수 있다고 보는 까닭은, 道야말로 인간의 인간성을 구성하는 진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본고의 주 내용은 그 도를 찾기 위한 한 방안으로 맹자의 良心을 선택하여, 그것을 후설 현상학의 탐구 주제인 지향성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동시에 그의 지향성을 맹자의 양심의 관점에서 심성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서 심(이성)의 형식적ㆍ논리학적 진리에 대비되는 심의 질적 진리, 즉 道(仁 또는 誠)를 찾고 동시에 그 도가 심의 지향대상(지향적 또는 현상학적 진리)임을 보이고 또한 그러한 해석의 결과 정초되는 도의 현상학은 맹자의 심성론,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 M. Scheler의 실질적 가지 윤리학과 같지 않음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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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머니즘의 脫 - 형이상학적 (II) - 老子의 道사유와 하이데거의 존재사유를 중심으로 -

        여종현 대동철학회 1999 大同哲學 Vol.3 No.-

        우리는 휴머니즘은 진리와 자유로 구성되는 인간의 초월성(본질)을 탐구하는 형이상학에서 정초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초월성을 주체성으로, 존재(자연)를 가치로 사유하고, 휴머니즘을 인간학주의와 동일시하는 주체성 형이상학(서양 형이상학 및 동양의 유교 형이상학)에서 휴머니즘은 그것의 본래적 의미 상실)을 야기한다. 그래서 본고는 참된 휴머니즘(그 본래적 의미 회복)은 주체성 형이상학을 극복하려는 형이상학, 즉 탈-형이상학에서 가능하다고 보고 그것에서 정초한다. 이 경우 우리가 도입하는 탈-형이상학은 노자의 도 사유와 하이데거의 존재사유이다. 그리고 본고가 극복하고자 하는 주 형이상학은 플라톤에서 시작되고 니체에서 완성된 서양 형이상학이다. 이 서양의 완성된 형이상학에서 존재(자연)는 경제적 가치로, 주체의 본질은 동물성으로, 진리는 주체가 자연을 인공화(비품화)하는 방법의 진리로, 자유는 주체가 자연을 인공화하는 무제약성으로 각각 사유된다. 인간은 그러한 진리와 자유를 통해서 마침내 자연을 인간의 이성 안에 가두어 그것을 무제약적으로 지배하게 하고, 그 결과 인간과 자연은 인간성과 자연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휴머니즘의 본래적 의미가 상실된다. ....와 하이데거의 탈-형이상학, 즉 휴머니즘의 본래적 의미회복은 주체(인간)에 의해 왜곡, 은폐, 망각된 존재(도)를 회복하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그것의 회복은 우선은 주체가 자연 자체(....에서 무위자연, 하이데거에서 피지스)에로 귀환하는데서 시작된다. 이 귀환은 형이상학적 자연, 즉 인간의 이성 안에 갇힌 자연을 원래의 그것에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자연 차체는 주체와 주체에 의해 규정된 자연의 근원이다. 휴머니즘의 본래적 의미 회복은 인간이 그러한 자연 자체에 귀환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데서 가능하다. 자연 자체는 존재(도) 자체에 따른 존재자(..)의 존재이고 인간 역시 하나의 존재자인 이상, 인간이 자연 자체에로 귀환하자면 존재(도) 자체에 따라야 한다. 인간은 어떻게 그것에 따를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점을 해명하기 위해 인간과 존재(도)의 관계를 ....의 “......”과 하이데거의 “Esgibt Sein”에 함축된 도(존재)의 의미에서 찾았다. 그것에 함축된 존재(도)의 의미는, 존재(도)가 존재자 (..)에로 자신을 탈은폐하면서(보내면서) 자신을 은폐하는(거둬들이는) 것이다. 이러한존재(도)의 의미는 존재(도)의 진리, 존재(도)의 역사(운명), 존재(도)의 완전한 자기화, 자유로 표현되었다. 이에 존재(도)는 진리, 역사, 자유로 ....(..)하되, 존재자에서, 특히 모든 존재자들 중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자에서 그렇게 현성 생 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질은 인간이 존재 ( ) . (도)의 진리 안에 섬이다. 그 때에 우리는 휴머니즘의 본래적 의미 회복이 가능하다고 본다 I think that humanism can be founded in metaphysics which researches human transcendence composed of freedom and truth. But I think that humanism loses its original sense in ‘the metaphysics of subjectivity which considers human transcendence as subjectivity, Being(nature) as value, and identifies humanism with anthropologism. So, I think that humanism is possible in metaphysics that attempts to overcome the metaphysics of subjectivity, namely in meta-metaphysics and found it in meta-metaphysics. The meta-metaphysics being discussed in this essay is Lau-tzu's thinking of Tao and Heidegger's thinking of Being. The main metaphysics that we attempt to overcome in this essay is Western metaphysics that begins with Platon and ends(finishes) in Nietzsche. In this finished Western metaphysics, Being is considered as economic value, the essence of subjectivity as animality, truth as the truth of method that subject make nature artificially, and freedom as unconditionality that subject make nature artificially. On the basis of such truth and freedom, man locks nature in his reason and controls it unconditionally. From that follows the loss of naturality of nature, and from the loss of naturality follows the loss of humanity, namely the loss of original sense of humanism. Lao-tzu's meta-metaphysics and Heidegger's meta-metaphysisocs are charactered as recovering Being(Tao) interpreted wrongly by subject. Its recovering begins with returning to ‘nature self(........ for Lao-tzu, '.''. for Heidegger)’of subject. And this returning let metaphysical nature, that is, nature locked in human reason go back to nature as it is. The nature self is the source of subject and of nature formed by it. The recovery of original sense of humanism is possible when man returns to such nature and reconciles himself with it. The nature self is Being of being entrusted to Being(Tao) self. Man is also a being among beings belonging to such nature self. Therefore, man must follow Being(Tao) in order to return to nature self. Can man follow it really? To answer to this question, we explained the correlation of Being(Tao) with man in the sense of Being(Tao) implied in Lao-tzu's “......” and Heidegger's “Es gibt Sein”. The sense of Being(Tao) implied in them is that Being(Tao) reveals self unto being and withdraws self. This sense of Being(Tao) is the truth of Being, the mittence(Geschick) of Being, the event(Ereignis) of Being, freedom. Being(Tao) now comes-to-presence(wesen) as them, but as them only in man among all beings. The essence of man is his standing in the truth of Being(Tao). I think the original sense of humanism can be recovered when man stands in the truth of Being(T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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