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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한국 창세신화의 ”속이기“ 모티프를 통한 트릭스터의 이해

        신연우 ( Yeon Woo Shin ) 한국고전문학회 2013 古典文學硏究 Vol.44 No.-

        우리 창세신화 속에는 인세차지 경쟁담이 들어 있다. 그 중요한 화소는 꽃 피우기 경쟁으로, 속임수로 이긴 자가 이 세상을 차지했기 때문에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창세신화의 속이기의 양상을 두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미륵과 석가 또는 대별왕과 소별왕은 이 세계를 인간이 살기에 적당한 곳으로 만들었다. 둘째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근원적으로 부조리와 악이 존재한다. 이 둘은 상호 모순되면 서 공존한다. 석가는 창세의 동반자이다. 그래서 세상 자체가 선과 악의 공존 처이다. 이것이 우리 창세신화가 보여주는 세계 인식의 깊이이다. 세상을 단순하게 선악으로 나누지 않고 선 속에 있는 악을 생각하고 악 속에서 선을 보는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인식이다. 이러한 원형적 관념으로부터 트릭스터의 여러 가지 다양하고 모순되는 면모들이 생겨난다. 크게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그는 창조하는 자이면서 어리석은 실패를 전전하는 자이기도 하다. 둘째 경계선상에 있는 이중성을 갖는 자이다. 셋째 속이기와 변신에 능한 자이다. 넷째 식욕 성욕 등 탐욕이 심한 자이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관계가 있다. 우리 설화의 트릭스터가 단순히 속고 속이는 우화적 동물/인물, 탐욕과 성욕으로 점철된 인물로 상정되거나 또는 조선후기라는 시대성으로 사회적 의미를 한정하는 것으로만 논의되는 것을 넘어설 수 있음을 보였다. 트릭스터를 하나의 신화적 원형으로 볼 때 이는 신화의 근원인 창세신화에 닿아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창세신화에 보이는 창세의 질서와 창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무질서의 이중성은 트릭스터형 인물의 이중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세계를 구성하는 주체가 동시에 사회적 악과 무 질서의 이유가 된다는 창세신화의 세계 이해는 세계를 선과 악의 복합체로 인식하는 민중적 이해의 소산이다. 세계는 지속적으로 창조를 통해서 질서를 구 축하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악 또는 무질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우리 인간 개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회가 선악의 복합체이듯이 우리 개인도 선과 악, 질서와 무질서의 복합체이다. 이점이 트릭스터가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사회가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게 마련이기에 선과 질서도 고정되어서는 안된다. 경직되어 가는 선과 질서에 시비를 걸고 새로운 질서를 마련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개인들이 트릭스터들이다. 이러한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서 사라 지지는 일은 없기에 트릭스터 이야기는 언제나 묘한 매력을 가지고 다가온다. The creation myths of Korea has the motif of ``Governor-deciding game``; the main motif is the ``blooming flowers``, which SeokKa secretly robbed Miruk of the flower and is to govern this world, and consequently evils came into existence. I summed up the aspects of creation myths in two. Firstly, Miruk/SeokKa or Taebyolwang/Sobyolwang made this world for people mellow out. Secondly, we have absurdity and evil by the roots in this world. These are contradicted each other and coexist at the same time. Korean creation myths tell us that it is this world in which good coexist with evil in itself. In Korean Creation Myths, malicious Miruk is the very co-worker of the Creation. That explains why we have evil, absurdity, crime all the time in this world. We see the depth of cognition which our ancestors had when they look into the man and world in itself. They saw good in evil and evil in good. It is multiphasic awareness of this world. We also have extracted various and contradictory aspects of tricksters; (1) He is a creator and failure. (2) He stand in the liminal space and has double face. (3) He is good at tricks and transformation. (4) He is a perfect picture of avarice, sexual desire. When we consider a trickster as a mythic archetype, it could reach as far as the mythic archetype. The order of this world and the chaos accompanied by shown in the creation myths of Korea help us understand the duplicity of the trickster type character in the history. Our world cultivates social order through continuous creation and the creation also begets evil and disorder at the same time. It is the true picture of our world and so is the human being. That is why there are tricksters in all over the world. As the world and society change, not fixed, so the good and order are not to be fixed. All the people who want to prepare new order of society, facing against the stiffened order and good, are the very tricksters.

      • KCI등재후보

        제주도 대별왕,소별왕 재탄생담의 신화적 의의

        신연우 ( Yeon Woo Shin ) 영주어문학회 2014 영주어문 Vol.28 No.-

        초감제의 베포도업침과 천지왕본풀이에는 영웅의 일반적인 모습과 함께 고대적 영웅의 모습까지도 아직 보존하고 있다. 그런데 초감제 신화는 여기에 더하여 영웅의 이중탄생의 모습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대별왕 소별왕 형제는 하늘 옥황으로 아버지를 찾아가 증거물을 제시하고 아들임을 인정받는다. 그리고는 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똥오줌을 싸면서 흥애흥애 하고 어린애 소리를 내는 것과 큰어머니 저고리 한쪽 팔로 들어가서 다른 쪽 팔로 나온다. 이러한 행동의 의미는 무엇인가? 두 가지가 연관된다. 전자는 아기 되기이고 후자는 어머니에게 다시 들어갔다 나오기 또는 자궁으로 되돌아가기(return to the womb)를 상징한다. 이는 바로 다시 태어나기 즉 재생의 이미지이며 通過儀禮 중 入社式(initiation)의 상징이다. 영웅은 보통사람을 넘어서는 또 한 번의 탄생을 거쳐서 태어나는 것이다. 대별왕 소별왕에게는 왜 이런 재탄생이 필요한 것인가? 해 둘 달 둘로 인해 지상의 인간들이 겪는 고통을 해결하거나 수명장자의 악행을 응징하여 인간 세상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능력을 얻기 위함이다. 이들은 지상적 존재로 지상의 어머니에게서 지상적 문제의식을 물려받았으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힘은 천상의 아버지의 능력으로 거듭나야 가능하다. 즉 궁극적인 해결은 지상적 문제의식과 보편적 초월적 원리를 가지고 있는 지상에 뿌리를 둔 존재이다. 지상적 문제의식은 地母에서 발단하고 초월적 원리는 天父의 것으로 인식된다. 이 두 요소를 함께 갖춘 존재여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를 신화는 보여준다. 영웅이란 자신이 이러한 존재임을 자각한 사람이다. 이 자각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느 정도 이상 성숙한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다. 태어나서 자라고 살면서 자신의 문제 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알게 되고,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나 수단을 찾다가, 그 사람이 바로 자신임을 자각하는 순간, 과거의 어린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자신의 개인성을 떠나 공동체 보편의 질서를 세우는 인물을 그 공동체는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자각은 개인적이어서 스스로 알게 되지만, 사회는 그런 인물을 제도적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것이 입사의례이다. 입문자가 갖게 되는 앎이란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보다 높은 차원의 지성이다. 입사 제의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지식, 지성은 성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탄생을 되풀이하여 구송함으로써 지상의 문제를 해결하였던 원형적인 모습을 상기한다. 지상과 다른 초월적 존재를 경험하여 지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회는 지성과 통찰을 통하여 구체적 문제의 다기함을 넘어서는 지혜를 가진 자를 요구하는 것이다. 입사의례를 통과하여 지상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는 신화적 주인공은 흔히 건국신화로 모습을 보인다. 주몽이나 혁거세, 수로왕 등이 알로 태어나고 태어나자마자 성숙해 있는 것은 바로 이들의 탄생이 문자적 육체적 탄생이 아니라 입사의례를 통과하여 새로 태어난 정신적 존재로서의 탄생임을 보여준다. 이들은 사회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온다. TaeByulWang·SoByulWang in Jeju Island``s shaman epic, 「Baepo-doupchim」 and 「Chonjiwang Bonpuri」, have an heroic behavior of the ancient times. In addition to this, they show the appearance of rebirth; (1) After being accepted as sons, the brothers sat on the knees of their father and took shit and leak, wauling, as babies do, (2) They went into one arm of the aunt``s coat and out of the other arm. According to M. Eliade and Sir Fraser, the former is ``to be a baby`` and the latter is ``returning to the womb``. These are the images of the rebirth and a symbol of initiation. Heroes are to be born by twofold birth, dissimilarly from ordinary person. And why did they need this process? It is because they need the power to get rid of the sufferings the humans undergo under the heat of the two suns and the exploitaion from Sumyong Jangja, a man of rich and power, in this Jeju myth. The Brothers were born in this earthly world and had got the critical mind to solve the earthly problems, human sufferings from nature and social discord. And in order to solve the problems they need the ability authorized by celestial father, the transcendental principle. They are earthly existence with the problems related the earthly mother, but they realize the transcendental principle of heavenly father to solve the problems. A hero is the person who realized it in person. On that moment of realization he throw out what he was and is to be born anew. This process is made up in the ``initiation`` in many societies. Similar image of rebirth is an egg in many Korean nation-establishing myths. ChuMong of Koguryo, HyukKeoSe and TalHae of Shilla were born as eggs and on hatching they arrived at grown-up. This tells us that their birth is not bodily but symbolic, that is of the initiation. They lead people into the new order of the new society.

      • KCI등재

        〈초공본풀이〉의 비속함과 성스러움

        신연우 ( Yeon Woo Shin ) 韓國古典文學會 2012 古典文學硏究 Vol.42 No.-

        〈Chogong Bonpuri〉 is the most important epic that Jeju shamans sing in almost every shamanistic rituals, especially in KeunGut(The massive shaman rituals). However, when we hear the song, we can hardly believe it is the sacred narrative. So it is natural to ask where is ``the sanctity`` in that long story-telling song. We can subdivide the whole story into four phases. 1. the downfall of the Lady, the only daughter of a wealthy person. 2. ascend from the poverty-stricken life through her son`s effort. 3. downfall again. she was killed in the end. 4. switching over to transcendental dimension. The lady and her sons left this harsh realities and became the gods in the heaven. 1-3 phases are about the every life of the vulgar world. This world has been a series of hardship and frustration. We can not understand the reason and/or settle them. From this point, the women of Jeju island regard life as a futile torment. The death of the lady was required to expose the absurdity of life in this world of mundanity. The Lady could become a god for she has gone through all the process of downfall-ascend-downfall and death. The ordinary persons who go through the similar process see a paragon of their lives. And they expect the other life, a transcendental one. They realize the transcendental Lady look down upon them on the earth. They try to live with a image of the Lady and the vulgarity of their life could be replaced with something dignified. They make themselves sanctified. This is the very point of singing and listening 〈Chogong Bonpri〉, the representative shaman song in Jeju Island. 우리 삶이 실재하며 의미가 있다는 체험을 하는 것을 엘리아데는 거룩함, 성스러움의 체험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초공본풀이〉도 심방과 청중이 거룩함, 성스러움의 체험을 하게 하여 자신과 세계를 성화하는 의례 체계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상 〈초공본풀이〉를 들으면, 그런 생각이 쉽게 들지 않는다. 노가단풍 자지멩왕 아기씨의 삶은 지리멸렬할 뿐 거룩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신으로 좌정한다. 〈초공본풀이〉의 어디서 심방이나 청중은 성스러움을 체험할까? 아기씨는 어떻게 해서 신이 되었는가? 거룩함은 삼멩두의 것이고 아기씨 몫은 여성의 삶에 대한 공감 정도로 그치는 것인가? 아기씨의 삶 자체로 거룩함을 확보할 수는 없는가? 〈초공본풀이〉는 네 단계로 서사적 맥락을 구분해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轉落의 서사’이다. 부잣집 외동딸이 소종래를 알 수 없는 남자를 만나서 임신하고 집을 나와서 낯선 곳에서 혼자 아이 셋을 낳고 기르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보면 이야말로 비속한 저잣거리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 단계는 앞의 전락을 상쇄하는 ‘上昇의 서사’이다. 비천한 존재에서 고귀한 존재로의 상승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현실적인 소망으로 읽히거나 민담적 비약으로 수용될 뿐 거룩함의 차원으로까지 상승하지는 못한다. 다음 단계는 다시 ‘전락의 서사’이다. 과거에 합격한 삼형제가 위풍당당하게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그것이 빌미가 되어 고향의 어머니가 죽고 만다. 삼천선비의 모략에 의한 불행이다. 합격의 취소와 어머니의 죽음, 이 둘은 간절했던 소망을 무화시킨다. 네 번째 단계의 서사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이제 삼형제는 과거를 포기하고 어머니를 살리러 길을 떠난다. 세속적인 성공을 포기하고 초월적인 세계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이는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이다. 이는 일상 삶의 차원을 넘어서는 초월적 세계로의 방향 전환이다. 이 네 번째 단락에서 바로 성스러운 세계로 진입한다. 그 전까지는 俗의 세계를 그렸다. 속의 세계는 불행과 고통으로 점철된다. 그것은 이유를 모르거나 또는 이유를 알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다. 이런 점에서 제주 굿의 현장을 사는 이들은 삶을 ‘부질없는 고통’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것은 죽어서야 끝난다. 노가단풍 아기씨의 죽음은 이 삶의 부질없음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하다. 노가단풍 아기씨의 삶의 여정, 전락-상승-전락을 모두 겪고 심지어 죽음까지 겪기에 아기씨는 신이 될 수 있다. 삶의 고난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깊이 알고 있기에 사람들의 고난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전락-상승-전락의 삶의 과정을 겪는 보통 사람들은 노가단풍 아기씨의 삶에서 삶의 전범을 본다. 아울러 그런 부질없는 고통인 삶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의 세계를 꿈꿀 수 있게 해준다. 이들의 삶에 〈초공본풀이〉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노가단풍 아기씨가 겪었던 삶의 고난은 구체적인 양상은 다르지만 자신들의 것이기도 하다. 없는 살림에 힘겹게 아이를 길러내는 모습은 모든 어머니들이 같이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초공본풀이〉의 전반부가 왜 그렇게 비속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제주 여성들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기씨와 삼멩두가 신이 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일상의 삶을 살면서도 여성들의 가슴에는 아기씨나 삼멩두가 신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겨져 있다. 이들처럼 초라하고 비속한 삶을 살았던 아기씨가 신이 된 것이다. 고단한 삶을 벗어나 다른 존재,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떤 초월적인 존재, 더 높은 무엇이 되었다는 것이 어떤 빛처럼 가슴에 남는다. 이런 빛을 가슴에 가지고 있으면 그 일상은 더 이상 비속함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게 된다. 방향 없는 삶이 아니게 된다. 무언가 나은 것, 더 높은 것을 향하는 삶이 된다. 일상의 비속함을 참고 견딜 뿐 아니라 그것을 포용하면서 더 크고 넓은 자아가 된다. 스스로 성스러워진다.

      • KCI등재

        제주도 창세신화의 얼개를 통해 본 『성서』와 『포폴 부』

        신연우(Shin, Yeon-Woo) 비교민속학회 2015 비교민속학 Vol.0 No.57

        노드롭 프라이는 성서를 문학의 관점에서 연구하면서 “그 통일적 원리는 의미의 원리보다는 형태의 원리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제주도의 창세신화와 기독교의 성서 그리고 중앙아메리카의 포폴 부를 비교 검토했다. 제주도의 창세신화는 “1. 천지개벽(천지창조) - 처음 상황, 2. 천지 재창조- 문제와 해결 시도, 3. 천부지모의 아들 탄생 - 주인공 탄생, 4. 아들 형제가 문제 해결 - 문제 해결, 5. 지상적 질서 세움 - 새로운 질서와 미완의 문제”의 다섯 단계를 가진 구조를 보여준다. 이 얼개를 기준으로 성서 이야기를 정리해볼 수 있다. 예수의 경우도 천지개벽(천지창조)의 처음 상황, 악을 해결하는 일차적 시도인 천지 재창조, 실패를 해결할 주인공이 천부지모의 아들로 탄생하는 대목까지 많이 유사하고, 다음의 아들 형제가 문제 해결하는 것과 새로운 지상적 질서 세우기에서는 양상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구조는 같고 구조 내의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포폴 부』도 기본적으로는 위의 다섯 단계의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천지창조로부터 재창조, 천부지모의 아들이 탄생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지상의 질서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물론 이야기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 다르고 어떤 부분을 상세화하고 강조하는가 하는 점도 다 다르다. 그러나 그 얼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세 편의 이야기는 창세로부터 시작하여 지상의 질서를 재편하는 인물의 영웅적 활동을 그리는 점에서 닮았다. 이 인물은 지상의 문제를 안고 있는 지상적 존재여야 하기에 지상의 여성을 어머니로 두고, 지상을 넘어서는 초월적 안목과 능력이 필요하기에 하늘의 아버지가 요구된다. 여기까지는 공통되기만 한데, 이후 이 인물의 활동 내역과 새로운 질서에 대한 관점은 지역에 따라 차이를 노정한다. 제주도의 경우는 소별왕이 속임수로 이 세상을 차지했기에 이 세상에는 악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는 악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현실에 악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악에 대처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의 경우는 예수가 제시한 방안이 하늘의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를 이 지상에 실현하는 것이므로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부정하고 하나님이 제시한 삶의 기준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중앙아메리카의 고대문명들은 가혹한 희생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신화에서 보여준 바 쌍둥이 형제가 세상의 악을 완벽하게 징치하고 자신들은 해와 달로 좌정했으므로 이 정화된 세상이 더러워지거나 약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그 사회의 질서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제주도라는 작은 섬의 신화 구조 분석에서 시작한 작업이 근동의 『성서』와 중앙아메리카의 『포폴 부』 신화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점을 살핌으로써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접근해보았다. 신화는 사실을 전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전하자는 것이다. 그 가치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더 탐구해야 할 과제이다. I compared the structure of the 3 myths - the creation myth and Jesus story of the Old and New Testament, K‘iche’ kingdom in Guatemala’s western highlands Popol Vuh’s prominent features of creation myth and epic tales of the Hero Twins Hunahpu and Xbalanque, and the creation myth and the Hero twins bet in the songs of the shamanic ritual of Jeju Island, Korea. I used the narrative structure of <Bepodoeopchim> and <Chonjiwang Bonpuri>, the shaman songs of Jeju Island, which I floated before; 1. Cosmic Creation(the first condition), 2. Re-creation(problem and attempt to solve it), 3. Birth of the son of heavenly king and earthly mother(birth of the hero), 4. the son’s solving of the problem(problem solving of the hero), 5. setting up the order of the earth(new order and unfinished problems). I could arranged the story of the Bible based on the same framework. The first condition is the God’s cosmic creation. The Flood as a recreation,- a problem solving. And Jesus was born between heavenly God and earthly mother Maria. God’s son Jesus showed the new solution, the heavenly kingdom. He established a new order, the Christendom in the world. The narrative structure of Popol Vuh is as much as the shaman songs of Jeju Island, and the Bible; Cosmic Creation and Recreation, the birth of heroes, the problem solving, and new order of the world. Even though the detailed narratives are different among the three, we can say that the framework of 5-step sequence is similar. But their meanings are not the same. The shaman songs of Jeju Island told us that the evil will last in this world for the little brother win the game by trick method. Man can not help living without the various wickedness. We ought to admit the evil of this world and tried to have precaution. In case of the Bible man denies this world and waits for the Second Coming as Jesus presented the Heavenly Kingdom. The ancient Meso-American civilization was famous for the merciless sacrifices; it is because we should keep this world pure and strong as the twin heroes repulsed the wickedness. The heroes became the Sun and Moon, so we ought to keep them not to be weak or vanish away.

      • KCI등재

        <초공본풀이> 노가단풍아기씨의 죽음과 재생의 농경신화적 이해

        신연우 ( Yeon Woo Shin )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11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Vol.0 No.23

        노가단풍 아기씨의 행적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초공본풀이>의 서사구조는, ``임신 - 긴 여행의 고난 - 출산과 양육 - 살해당함 - 재생``이다. 또한 삼천선비와의 대립과 함께 삼천선비가 아기씨를 살해하는 화소까지 나타난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초공본풀이 특유의 신화적 의미를 담는것으로 보인다. 노가단풍 아기씨가 간 길은 산과 강을 몇 개씩이나 거쳐야 하는 험하고도 먼 거리이다. 아기씨가 임신해서 먼 길을 거쳐 서강베포 땅에서 드디어 출산을 했음을 기억하자. 곡식의 신인 아기씨가 ``임신해서 먼 길을 거쳐 삼멩두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곡식을 의인화한 것일수 있다. 임신한 것은 봄이고 먼 길을 간 것은 여름 동안의 먼 길이며 삼멩두를 낳은 것은 가을의 추수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서강베포 땅에서 아기씨는 살해되어 밭에 묻힌다. 한 해의 추수가이루어졌으니 곡식의 정령의 일이 끝난 것이다. 아기씨는 왔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져야 한다. 이듬해 다시 찾아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기씨의 살해가 상징적이었음은 아기씨 무덤이 헛출병인 것으로 나타난다. 고대중 구연본에는 "앞밭디 출병을 헐□리고 보니 헛출병이로다. 뒷밭디헛출병이로다"라고 하고 이중춘 구연본에는 "어머님 출벵막을 헤싼 보난 사외신체는 엇고 물멩지 단속곳 본메본장 이섰구나"라고 했다. 죽은어머니의 신체가 없는데도 어머니를 살리러 삼형제는 길을 떠난다. 결과적으로 어머니는 재생하고 신이 된다. 다시 말하면 신으로 돌아온다. 신화적 세계관에서 죽음은 완전한 단절이기만 하지 않다. 삶과 죽음은 서로를 잇고 있는 순환이다. 죽음을 가져옴으로써 다음의 생명을 가져온다. 삼천선비는 그런 죽음을 있게 하는 존재이다. 삼천선비와 삼멩두, 아기씨는 그런 대결관계에 있음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모의적 대결이고 다툼이다. 결국은 봄의 생명력을 회복하기 위해치르는 가장된 다툼일 뿐이다. 삼천선비가 없다면 아기씨의 죽음이 없고 그렇다면 다음해의 부활도 없다. 부활이 없으면 곡식의 성장은 없다. 노가단풍아기씨를 어려서부터 기르고 황금산으로 함께 고난의 여행을 하고 서강베포땅에서 함께 살아온 느진덕이 정하님이 순식간에 아기씨를 배반하고 삼천선비와 함께 아기씨를 죽이는 살해행위에 가담한다는 서사적 구성이 자연스럽지 못했던 것은, 이렇게 아기씨의 살해가 필연적인것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초공본풀이>의 노가단풍 아기씨가 살해되었다가 굿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는 설정은, 추수를 하며 곡식의 신이 살해되 었다가 이듬해 봄에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초공본풀이, 하이누벨레나 페르세포네 신화는 모두 여성과 살해-죽음과 식량이 연계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하이누벨레 신화는 축제의 현상적요소가 더 강조되어 있고 페르세포네 신화에는 세계의 질서가 계절의 순환으로 구체화되어 있으며 초공본풀이에서는 세계의 질서가 신의 관념으로 수용되는 양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서사 구조와 신화적 의미가 하나로 융합되는 사례를 <초공본풀이>에서 볼 수 있다. ImJinkook and Jujub Sunsung had a brief trip to Hwanggeumsna Mountain, on the contrary Nogadanpoong Agissi had to take a very long and hard walk to the Mountain. Having been pregnant, she went a long way round, and gave birth to three sons. The itinerary of <Chogong Bonpuri>, a main repertoire of Jeju Shaman Epic, is as follows; pregnancy - journeys of full of hardships - delivery and nurture - being killed - resurrection It alludes to a growth and development, harvest and regeneration of grains. When we count her a goddess of cereals, we understand that the pregnancy implies the Spring season, making a long journey a long time of growing in the Summer and delivering three sons means the harvest of the Autumn. In the land of delivery, Seogangbepo Tang, she was killed and buried in the field. As the harvest of the year was completed, the task of the Cereal Goddess was through. She ought to be sent where she has come, so people might welcome her the next year. The death is not always a complete severance in the Mythic view. Death can bring new life. Samchon Sunbi are the ones who cause the death. Agissi, three sons and Samchon Sunbi make circular confrontations, a mock ones. It is a disguising conflict which people have to carry in order to recover the full vitality of the Spring. Had it not been Samchon Sunbi, there would not be the death of Agissi, and neither the resurrection of the next year. Whrer there is not resurrection there is no growth of the grains. <Chogong Bonpuri>, <Hainuwelle> and <Persephone> are all related with ``woman and killing``, death and foodstuffs. Hainuwelle emphasizes the phenomenal aspect of the festival, Persephone gives concrete form of the cosmic order to the circulation of the four seasons, and in <Chogong Bonpuri> people accept the cosmic order as the idea of a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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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일반신본풀이에 보이는 악(惡)에의 대응과 그 의의

        신연우(Shin, Yeon-Woo) 실천민속학회 2015 실천민속학연구 Vol.26 No.-

        제주도 신화에는 인간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지를 해명하는 〈천지왕본풀이〉가 있다. 태초의 시간에 소별왕이 속임수로 세상을 차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신화의 의의 중 하나는 이 세상의 악이 근원적이라는 합리적이고도 냉정한 현실 인식일 것이다. 제주도 무가들은 〈천지왕본풀이〉 이후의 세계에 악이 존재하는 양상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존하는 악 속에서 악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악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 관심이 제주도의 일반신본풀이들에 수용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악인의 활동이 잘 드러나는 다섯 편인 초공본풀이, 이공본풀이, 차사본풀이, 세경본풀이, 문전본풀이를 대상으로 악행의 양상과 그에 대응 방식을 살펴보았다. 악행의 주체는 남녀나 상하, 빈부의 구별이 없었다. 피해자는 주로 여성과 아이들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악행은 살해이고, 여성에게 가하는 남성의 횡포는 주로 성적인 것이다. 여성은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사람을 살해한다. 이들 본풀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살인, 성적?계급적 횡포, 도둑질과 강도 등 구체적인 악이 엄존하는 곳임을 냉정하게 일깨워준다. 동시에 악에 대한 대응 방식도 검토하는데 이는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정당한 복수로서의 살해, 악이 선과 같은 근원이기에 악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다는 인식, 종교로 승화하는 모습 등이 그 세 가지이다. 대응 살해는 현실에서는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문학에서는 정의라는 법감정을 충족시키는 구실을 한다. 현실적으로는 악과 더불어 살면서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나아가서 악이 선과 함께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서 종교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악과 함께 신을 제시함으로써, 악이 있어 살기 어렵지만 신이 있어 살아갈 수 있다는 위안을 준다. 그리고 이 답들은 굿 첫머리 초감제의 서사무가에서 소별왕의 속임수로 인하여 이 세상에는 근원적으로 악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어떻게 대응하여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의 모색이 제주도 서사무가가 가진 한 가지 기능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삶의 현실적이고도 거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가능한 답을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이야기들은 삶의 모방 또는 모형이다. 모형을 통해 세상과 자신의 삶을 객관화하고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얻는 중요한 방법이었다고 생각된다. 선과 악이 함께 삶을 구성하며 그 속에서 자신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적 사유로 이끄는 구실을 했다는 점이 인정될 수 있다. 〈Chonjiwang Bonpoori〉, one of the shaman epic of Jeju Island, explains why we have evilness in this world. It says it is because SobyulWang, one of the twin brother, took this world by deception at the time of the Beginning. Other five shaman epics of Jeju show us the aspects of the evilness we face, tell us what is it like to live with those evilness and how to treat them. We find pragmatic concerns against the evilness in our life. Five shaman epics are 〈Chogong Bonpoori〉 〈Igong Bonpoori〉 〈Chasa Bonpoori〉 〈Segyung Bonpoori〉 and 〈Moonjun Bonpoori〉, which have motifs of the villains or wicked men/women. And I examined the wicked deeds of them and the countermeasure of the other people. The subject of the bad deeds are across-the-board, men/women, haves/not-haves, upper/low class. Victims are women and children. Typical criminal is homicide and women are in danger of sexual assault by male. Women are blind with avarice and kill a person. These shaman epics bring us to our senses that we live in the world, in which is full of murder, fraud, robbery, and tyranny of sex and class. They tell us the three contingency plans against the evilness; Homicide as a righteous revenge, Sense of the reality that we should live with the evilness as the evilness has the same origins as the goodness from the beginning, Sublimating our minds to religious value. These stories are the imitations or the models of our life. We can objectify our life in this world and get discernment on how to live with the evilness. They show us the insight that this world is composed of good and evil at the same time by the r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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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굿의 타령ㆍ만수받이ㆍ노랫가락의 관계

        신연우(Yeon Woo-Shin) 한국무속학회 2006 한국무속학 Vol.0 No.11

        서울 굿 무가의 노래들인 타령, 만수받이, 노랫가락이 어떤 변별성을 갖는가, 이세 요소가 굿에서 갖는 기능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푸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세 노래의 출현 양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크게는 부정거리로 묶는 부분에는 노랫가락만 보이고 타령과 만수받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노랫가락에는 청배의 기능이 강한 반면 타령과 만수받이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둘째, 노랫가락은 굿 전반에 걸쳐 골고루 나타난다. 굿 앞 부분에서 전체 신을 부를 때와 함께 각 굿거리에서마다 그 굿거리의 주인격인 신을 청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타령은 부정을 제외한 재수굿에 집중되어 있다. 진오귀굿에서는 사재삼성거리에만 타령이 보였다. 타령은 앞서 말한대로 굿 첫머리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사재거리가 끝나고 나면 나타나지 않는다. 넷째, 만수받이는 부정거리에는 보이지 않았고, 산신 도당거리와 물고가망의 경우 타령이 대폭 강화된 것에 반해 만수받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산신도당거리는 마을을 관장하는 신을 모시는 것으로 노랫가락이 한 차례 나오고, 산신신장타령, 산신대감타령, 산신창부타령의 세 차례 타령이 나온다. 다섯째, 노랫가락과 타령과 만수받이가 모두 나타나는 굿거리는 재수굿에서는 천궁불사거리, 진오귀굿에서는 사재삼성거리뿐이다. 이들의 구성은 대단히 구조적이다. 그림으로 나타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림참조〉 만수받이는 신과 인간의 중간에 놓일 뿐 아니라 말과 노래의 중간에 놓여 이중으로 매개 역할을 한다. 각 사분면에 하나씩 배분되는 말과 노래와 함께 그 사이를 매개하는 요소를 하나 더 창안함으로써 단순한 구조주의적 대립을 넘어서는 구조를 보여주었다. 무가는 굿을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이다. 무가가 갖는 주술성과 신성성은 굿을 존재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굿은 자체 내에서 종적으로 횡적으로 일정한 짜임새 속에서 서로서로 상관관계를 갖도록 배려된 종합예술이다. 본고는 무가의 질서를 통해 타령, 만수받이, 노랫가락이 서로 연관된 짜임새 속의 대등한 구성요소임을 보였다. There are three kinds of songs which were sung by Seoul Shamans in Seoul Goot Rituals-Taryong, Mansubaji and Noraekarak.. What differences are there in them? And what function do they work? We have learned the aspects of these songs like this; Firstly Seoul shamans sing Noraekarak only at the foregoing part of the rituals. They don’t sing Taryong and Mansubaji at this part. It is because Noraekarak songs have the function of Inviting gods(Chongbae). Secondly Noraekarak songs are seen evenly in the whole rituals. Thirdly Taryong songs come out intensively in Jaesu Goot except for the PoojungKeory. In JinOgi Goot Taryong appears in SajaeSamsungKeory only. Fourthly Mansubaji don’t come out in PoojungKeory, Sansin Dodang Keory, Mulko Kamang Keory. Fifthly only in PoojongKeory of JaesuGoot and in Sajae Samsung Keory of JinOgi Goot, all kinds of songs are sung all together. The functions and relations among them are very structural like this; 〈그림참조〉 Mansubaji songs are the mediator doubly; gods and human beings, narration and song. That shows the structure which pass over stru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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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창세신화, 대보름 민속, 일광놀이의 비교 고찰

        신연우(Shin, Yeon-Woo) 비교민속학회 2013 비교민속학 Vol.0 No.52

        우리 창세신화에 싸움의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 주목된다. 미륵과 석가 또는 대별왕과 소별왕, 천지왕과 수명장자 등의 싸움이 창세 신화의 주된 화소를 이룬다. 이 싸움의 양상과 대보름 민속의 싸움을 견주어보면 대보름 민속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대보름은 한 해의 시작을 이루는 때이고 창세 신화는 세계의 시작을 노래하기에 ‘처음’ 또는 ‘始初’라는 점에서 일말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구비전승되는 본풀이와 본풀이의 내용에 대응하는 세시절기의 의례와 놀이, 농악의 뒷굿에 등장하는 특정한 놀이를 비교하여 그 의미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창세신화에 보이는 두 주체의 싸움, 그 과정에 보이는 속이기와 훔치기 화소, 해와 달의 모티프와 불 또는 빛에 대한 관심, 그리고 천부지모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생산에의 소망에 주목할 수 있었다. 이는 그대로 대보름 민속과 대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돌팔매 싸움, 줄다리기, 내농작 등 싸움의 형식을 갖는 민속들, 복토 훔치기와 디딜방아 훔치기 등에 보이는 훔치기/속이기의 양상, 달집태우기나 댓불놓기 등 대보름에 흔한 불 또는 빛과 관련된 민속들,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나 줄다리기로 대변되는 생산에의 소망 등이 그러했다. 이 둘 사이에 마을굿에서 도둑맞은 해를 되찾는다는 일광놀이를 연관지어보면 더 많은 민속적 사실을 일관되게 해명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았다. 특히 사제자로서 상쇠의 역할을 강신무권의 무당과 비교해보면 홍박씨의 해의 상징성과 그것을 도둑맞고 되찾는다는 이미지가 창세신화와 접맥해 있는 양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세계 태초의 시간과 한 해의 시작의 시간이 동질의 것이라는 해명이 있었다. 엘리아데는 세계 곳곳의 신화와 민속을 이용해 이들 모두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이행하는 과정을 재현하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이 과정의 반복적 주기적 재연은 농경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점과 닮아 있기에 한해의 시작 의례가 기풍의례이기도 하다는 점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특정한 정월의 세시풍속놀이에서 시간의 순환과 공간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함께 창세신화에서 구현하는 특정한 시간의 반복과 재생에서 원초적 의미를 부여하고 공간과 시간의 의미를 재배열하면서 환기하는 창세신화의 면모는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창세신화의 의미를 새롭게 부각하면서 우리의 농경놀이의 주술적 의미를 모색하는 작업을 하고자 하였다. We have many folk games on the festive seasons through the year in Korea, and on January 15th of the lunar year there especially are so many gang fight games. In this paper I tried to explain why. We usually understand the folklores of the January 15th as the games and events for forecasting a good or bad harvest of the year, but there seemed to be other reasons could be count, I think, because we have the time-honored tradition of the creation myths in Korea. In those creation myths, we can notice the fight motif between Miruk and SeokKa or Taebyolwang and Sobyolwang; they fight each other on the problem who will rule over this world. This fight is meaningful because it is connected to the primal chaos , the beginning of the world. And the gang fights of January 15th are played at the beginning of the year as well. We examined four motifs in the creation myths; ①the cosmic fight between two heroes, ②trick and stealing of SeokKa or Sobyolwang, ③modification of the sun and moon, ④holy marriage of heaven-men and earth-woman. They correspond with the folklore of January 15th; ①gang fighting folklores such as stone throwing, playing tug-of-war, pseudo-farming in the court. ②trick and stealing shown in ‘Stealing good-fortune soil’, or ‘Stealing treadmill’. ③so many folklores related to fire or light as ‘Burning rice sheaves’, ‘Displaying fireworks’. ④wishes for affluence such as ‘Jujube tree marriage’, What lay behind this similarities is the awareness of the homogeneity of the time of the beginning, the likeness of the beginning of this world and a new year. Eliade of Romania explained that it showed the same process of "From Chaos to Cosmos", using the various myths and folklores of the world. And he also showed us that the beginning folklore of a new year is the folklore of the bumper crop year, for the cyclically repetitive process is the similar to the cyclic repetitiveness of the agri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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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滉의 ‘鳶飛魚躍’ 이해와 시적 구현

        신연우(Shin Yeon-Woo) 한국시조학회 2004 시조학논총 Vol.21 No.-

        「도산십이곡」의 「언지」 제6 종장에는 ‘魚躍鳶飛’가 나온다. 이 시어는 흔히 이황의 성리이것은 이황의 문학을 이해하는 주요 어휘로 생각된다. 이 어휘는 이황의 사상과 문학이 만나는 접점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보이고자 한다. 먼저 시경과 중용의 원문을 보고 정호와 주희의 주석을 살핀다. 원문과 해석 사이의 틈을 주목한다. 이를 이황이 수용한 양상과 시작품의 내용을 살핀다. 사상과 문학이 만나는 지점을 고찰한다. 이어서 이언적과 이이가 그 어휘를 사용한 방법과 비교해 이황 문학사상의 특징을 드러낸다. 연비어약은 언어를 넘어서는 유학의 절대적 경지를 대표하는 어구이다. 이는 『詩經』 본래의 뜻에서는 벗어났지만 『中庸』 이후로 궁극적 실체로서의 道體를 형용하는 관습구가 되었다.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경지를 언어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은 불교나 도교에서 뿐 아니라 유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로 나타낼 수밖에 없음도 마찬가지이다. 연비어약은 바로 그러한 점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연비어약 자체가 언어로 나타낼 수 없는 본체를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서, 이론적 설명과 시적 형상화 양쪽으로 나타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론적 설명으로는 어떻게 해도 그 궁극처를 형용할 수 없으므로 시적 형상화는 필연적인 것이다. 연비어약 자체를 시로 수용하려는 노력이 이언적이나 이황 같은 주리적 성향의 성리학자에게 나타난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황은 언어를 넘어서는 경지라 해도 도덕적 경지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해석을 보여준 것으로 특이하다. 연비어약을 자연의 생기의 활발발함에서 그치지 않고, 자연이 위와 아래의 질서를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자연이 그러하듯이 인간에도 상하의 질서가 엄존함을 보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라면 솔개가 물 아래 놀고 물고기가 하늘을 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황의 지적은, 불교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면서 그것으로는 인간 사회의 질서를 마련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이황의 생각에 유학은 불교의 그 경지를 포함하면서 사회 구성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더 낫다는 것이다. 이황이 연비어약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여러 편의 시로 나타낸 이유가 여기 있다. 사 계절의 질서와 연비어약의 약동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아는 것이 「도산십이곡」 시가 드러내고자 하는 이치이다. 「도산십이곡」은, 살아서 만물을 낳으면서 동시에 질서와 조화를 구현하는 세계의 근원적 모습을 사람들이 알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낸 시이다. 그 점을 자연과 고인의 길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알아야 한다고 설득하면서 자연과 도덕을 융화하고 있는 시이다. We see the term 〈Yonbi-Oyak(鳶飛魚躍)〉 in Tosan 12 songs and other poems by Leehwang. The term means "Birds fly in the sky, Fish swim in the water." It is important I think in that it is the point of contact between his poems and thought. There is a gap between original text of 〈Yonbi-Oyak〉, [The way of mean(中庸)] and Leehwang's understanding. It is same with Buddhism and Taoism as confucianism in the idea that we cannot describe the Ultimate into the human language. 〈Yonbi-Oyak〉 is the very confucian way of that. But Leewhang has the peculiar idea that it can't pass over the Moral state even though its meaning is over the human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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